상징명칭(백마)이 같은 부대에 대한 내용은 백마부대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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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 해체된 사단 |
제9보병사단 第九步兵師團 ROK Army The 9th Infantry Division | |
[ruby(死, ruby=사)][ruby(戰, ruby=전)][ruby(不, ruby=불)][ruby(退, ruby=퇴)] [ruby(常, ruby=상)][ruby(勝, ruby=승)][ruby(白, ruby=백)][ruby(馬, ruby=마)] | |
<colbgcolor=#1E2088><colcolor=#fff> 창설일 | 1950년 10월 25일 |
상징명칭 | 백마(白馬)부대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상급부대 | 제1군단 |
경례구호 | 백마 |
규모 | 사단 |
역할 | 경기도 파주시 및 고양시 일대 수색 및 방위, 최전방 서부전선 강안 경계 |
사단장 | 소장 박진원 (육사 51기) |
위치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 |
1. 개요2. 역사3. 부대 마크 변천사4. 예하부대5. 과거부대6. 출신인물7. 특징8. 사건 사고
8.1. 1979년 12.12 군사반란 가담8.2. 1980년 무장공비 침투 저지 사건8.3. 2013년 임진강 월북 시도자 사살 사건8.4. 2023년 제9보병사단 지휘부 복지회관 특혜 의혹
9. 기타[clearfix]
1. 개요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
2. 역사
2.1. 6.25 전쟁
6.25 전쟁 발발 뒤인 1950년 10월 25일, 28, 29, 30연대로 창설되었다. 다만 부대가 창설된 시점에 유엔군은 신나게 압록강까지 북진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고, 신생사단이라 육본에서도 시작부터 뭘 기대하지 않았기에 초창기 9사단의 활동은 주로 충청-전라도 지역에 암약하는 빨치산 토벌에 집중되었다. 그러다 중공군 개입 이후 중공군에 대항해 유엔군도 최전선에 대규모 병력이 필요해지면서 9사단 역시 최전선에 투입되었다.각 군에서 차출되거나 후송, 낙오병과 신병들을 모아 창설됐기에 서로간의 동질감도, 연대도, 사기도 낮아서 창설 초창기엔 붙었다 하면 늘 패주하기 급급했다. 그러다가 1951년 5월 7일 매봉·한석산 전투에서 제7보병사단 8연대와 임무교대한 30연대가 맹활약하는 등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이후 16일부터 시작된 현리 전투에서 제3보병사단과 함께 부대원 절반 이상이 전사, 실종되는 참패를 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해야 했다.[1] 그러나 1952년 강원도 철원군의 395고지에서 2배가 넘는 중공군 제38군과 12차례나 고지를 내주는 공방전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두며 명성을 떨쳤다. 이 당시 395고지는 온 산의 수목이 사라지고 고지가 1m나 낮아질 정도로 수많은 포격을 당했는데, 그 형상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것 같다고 하여 이 전투를 백마고지 전투라 부르게 되었고, 9사단 역시 백마부대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실전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며[2]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상승(常勝, 항상 승리) 칭호를 받았다.
참고로 초대 사단장은 장도영 준장이고 참모장은 박정희로, 장도영은 31일까지 단 6일간 재임했다.[3] 이후 부임한 김종오 제2대 사단장 역시 2주 남짓 재임했으나, 이것에 한이 맺혔는지 1952년 제8대 사단장으로 재부임해 상술한 백마고지 전투로 본인과 사단의 명예를 드높였다.
2.2. 베트남 전쟁
아이를 구해내고 있는 파월 백마부대 장병들 |
육군 수도사단(맹호부대), 해병 2여단(청룡부대)과 함께 파병된 3개 전투사단 중 하나로서, 이후의 명성과 지명도에는 베트남에서 얻은 것도 한 몫 한다. 원래는 부대마크 자체도 간지나게 생긴 덕분에 해외 군사연구자들에게도 화이트 호스(White Horse)라고 불리며 유명해진 듯하다. 같은 의미로 백마와 함께 블루 드래곤(청룡부대)나 타이거(맹호부대) 등등도 해외 군사연구자들이 한국군이라 하면 떠올리는 부대들이 되었다.
부활절 공세 당시 주월 한국군 사령관이였던 이세호중장은 미군의 요청에 따라 콘툼 패스 개통 작전 투입에 9사단을 투입하려고 했지만 남베트남군의 반대로 작전은 실시되지 않았다고 한다. 남베트남군은 이 작전에서 결국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소장급 권한을 가진 군사고문관 존 폴 벤이 NVA 보병들을 유인한뒤 미 공군 B-52 폭격기의 융단폭격으로 지역을 겨우 방어할 수 있었다.[4]
월남전 파병 이후 귀국할 당시인 1971년 미국에서 닉슨 독트린에 의해 경기도 동두천시에 있던 미 7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하게 되면서 서부 비무장지대 일부를 맡던 미 2사단이 이들의 빈 자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동으로 서부 비무장지대에 공백에 생겼고, 이를 9사단이 채운 상태로 현상유지 중이다. 만약 이 일이 없었다면 기존에 있던 위치인 강원도 철원군[5]으로 갔거나 아니면 2사단처럼 후방 예비사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3. 부대 마크 변천사
외곽의 삼등분 된 백색 원형은 결백숭고한 백의 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강철같은 단결을 의미하며 3개의 전투부대(28, 29, 30여단)가 단결됨을 상징.
청색 바탕은 평화, 대한남아의 백절불굴의 기상, 항구불변한 우국충정을 상징.
백마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발휘한 감투정신을 그대로 계승하여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최선봉이 되어 백두산 연봉을 향하여 용약 돌진함을 상징.
— 백마 신병교육대대 제공 훈련병 가이드북 中
청색 바탕은 평화, 대한남아의 백절불굴의 기상, 항구불변한 우국충정을 상징.
백마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발휘한 감투정신을 그대로 계승하여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최선봉이 되어 백두산 연봉을 향하여 용약 돌진함을 상징.
— 백마 신병교육대대 제공 훈련병 가이드북 中
부대마크 변천사[6] |
1950년 10월 창설 당시 부대마크는 원 안에 다이아몬드 3개가 서로 맞대고 있는 모양이어서 루비부대로 불렸고, # 이후로는 원형 안에 '9'를 써놓았다. 그리고 백마고지 전투 이후로는 백마를 원 안에 해놓았다가 1982년에 날렵해보이는 지금의 모습으로 개선되었다.
백마부대의 마크를 살펴보면 둥근 원형에 외곽에 3등분 된 선은 3개의 주 전투부대(3개 보병연대)[7]를 뜻하고, 백마는 백마고지에서 싸운 이래 사단의 상징이 됨에 따라 부대표식이 된 것이다. 현재의 부대마크는 1982년에 고쳐졌고. 1950년대부터 1982년 개정 전까지는 현재와 다른 모습의 백마였다. 말하자면 백마고지를 상공에서 봤을 때 백마가 누워있는 듯한 모습으로 표시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개정된 모습은 백마가 앞발을 차며 도약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2006년부로 시인성이 높은 각 부대의 전투복 부대마크를 위장색(검은색, 검녹색)으로 교체하였는데, 백마부대의 경우 검은색 바탕에 우중충한 색깔의 백마, 그리고 검녹색 띠로 바뀌었다. 병사들은 농담삼아 흑마라고 부른다. 원조 쪽이 더 멋진지 전역하는 병사들 중 상당수가 흑마 대신 백마 마크를 전투복에 박고 나간다. 말 갈기의 뾰족한 부분이 9사단답게 9개라고 한다.
4. 예하부대
제9보병사단의 예하부대 | |||
제28보병여단 | 제29보병여단 | 제30보병여단 | 포병여단 |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
4.1. 사단직할대
사단 사령부 직할 부대 중에서는 통신대대와 본부대[9]만 구막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부대는 부대 통합으로 건설된 신막사에서 지내고 있다. 본부대와 통신대대만 1980년대 지어진 구막사에서 지내고 있다. 여담으로 군사경찰대대와 같은 울타리에서 지내는 정비대대만 아직 구막사를 사용중이다
사단직할대 중 본부근무대, 보급수송대대, 의무근무대, 정보통신대대, 화생방대대, 방공중대, 정보3중대는 사단 사령부 안에 들어가 있다.[10] 반면, 타 예비사단과 다르게 수색대대는 사령부 위치에 있지 않다.
수색대대는 국군고양병원에서 차로 10분거리인 파주시 광탄면에 위치하여 있다. 그렇다보니 외진이나 응급환자는 사단의무대가 아닌 이곳으로 향한다[11] 대부분의 직할대들이 일산 사단본부 주변에 위치했지만 수색대만 멀리 떨어져있다, 심지어 1사단 본부가 훨씬 가깝다!
부대시설은 오래된 편으로, 신설 체육관 등 점점 개량하고 있으나 사단 신교대 대비 턱없이 부족하다. 수색대대 내 본부중대를 제외한 전 중대는 전부 2층 침대로 구비되어 있고, 온수 시설도 보장되어 있으나 때때로 시설 정비나 고장으로 인한 부족함이 있다. 타 사단 혹은 타 대대에서 체력검증이나 훈련을 위해 방문하는 때가 있는데, 특이사항으로는 대대 구보 코스가 통상 사단 기준보다 힘들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혼재되어 있어 대대에서 1KM 뜀걸음 측정 4분이라 가정하면 평지에서는 개인 기량에 따라 10~30초 이상 감축이 가능하다.
'솔개전사' 라는 제도가 있는데 팔굽혀펴기 200회, 윗몸일으키기 200회를 각각 10분 안에 해내고 20km를 1시간 40분 이내에 완주하면 부대 현관에 금판을 박아 기록한다. 2021년 상반기 기준으로 간부와 병을 포함해 30명 정도가 있으며 2020년도부터 코로나로 인해 솔개전사를 측정을 하지 않고 있다. 수색대대는 면접을 통해 차출되는데, 어느 부대나 마찬가지겠지만 보통 멋과 명예를 위해 온 장병들이 이후에는 항상 후회와 부상을 달고 산다.
4.2. 제28보병여단 도깨비
자세한 내용은 제28보병여단 문서 참고하십시오.- 여단본부
- 군수지원대대
- 제1대대 홍도깨비[12]
- 제2대대 황도깨비
- 제3대대 청도깨비
- 3대대는 1980년대에 삼청교육대로 운영된 부대다. 3대대는 지금도 교통이 불편한데 80년대에는 정말 대대 주변에 산 밖에 없는 오지였다. 덕분에 90년대 초반까지 6.25 전쟁 참전, 베트남전 참전, 삼청교육대 교관으로 복무한 트리플 크라운 부사관들이 부대 내에 꽤 많았다.
- 포병대대 흑도깨비
- 여단 예하 포병대대 신편
4.3. 제29보병여단 황금박쥐
자세한 내용은 제29보병여단 문서 참고하십시오.- 여단본부
- 군수지원대대
- 제1대대 붉은박쥐 (구 사자대대)
- 제2대대 푸른박쥐 (구 전격대대)
- 제3대대 검은박쥐 (구 돌격대대)
29연대는 전두환이 연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전력이 있으며 위에서 서술했듯이 12.12 군사반란 당시에 동원된 이력이 있다. 또한 문서에도 있듯이 3.23 완전작전을 수행한 부대이다.
4.4. 제30보병여단 독수리
자세한 내용은 제30보병여단 문서 참고하십시오.- 여단본부
- 군수지원대대
- 제1대대 불사조
- 제2대대 검독수리
- 제3대대 참독수리
4.5. 포병여단
자세한 내용은 제9보병사단 포병여단 문서 참고하십시오.- 여단본부
- 제30포병대대 백두산/독수리 (K55A1)
- 제51포병대대 한라산 (K55A1)
- 제52포병대대 황희정승 (K55A1)
- 제966포병대대 흑곰(왕포) (K9)
5. 과거부대
6. 출신인물
6.1. 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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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장도영 | 제2대 김종오 | 제3대 오덕준 | 제4대 김종갑 | 제5대 이성가 | |
제6대 최석 | 제7대 박병권 | 제8대 김종오 | 제9대 김점곤 | 제10대 이한림 | |
제11대 백인엽 | 제12대 강태민 | 제13대 심흥선 | 제14대 이희권 | 제15대 박영준 | |
제16대 한웅진 | 제17대 신원식 | 제18대 이소동 | 제19대 박현식 | 제20대 류창훈 | |
제21대 정규환 | 제22대 조천성 | 제23대 김영선 | 제24대 신정수 | 제25대 이광노 | |
제26대 노태우 | 제27대 백운택 | 제28대 정진태 | 제29대 고명승 | 제30대 이필섭 | |
제31대 김재창 | 제32대 안병호 | 제33대 이규환 | 제34대 전관 | 제35대 변호인 | |
제36대 임종천 | 제37대 이상태 | 제38대 신현배 | 제39대 이영계 | 제40대 정인구 | |
제41대 이종철 | 제42대 김춘수 | 제43대 한동주 | 제44대 정태희 | 제45대 김용우 | |
제46대 강천수 | 제47대 황대일 | 제48대 안병석 | 제49대 김동호 | 제50대 김진철 | |
제51대 정광웅 | 제52대 박진원 | 제53대 - | 제54대 - | 제55대 - | }}}}}}}}}}}} |
||<-6><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E2088><tablebgcolor=#fff,#1f2023><bgcolor=#1E2088><color=#fff> 역대 제9보병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
<rowcolor=#fff>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주요보직 | 기타 |
초대 | 장도영 | 예) 중장 | 군영 1기 | 前 사단장, 육군참모총장 | 前 국방부 장관 |
2대 | 김종오 | 예) 대장 | 군영 1기 | 前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제1야전군사령관 | |
3대 | 오덕준 | 예) 소장 | 군영 | 前 사단장 | |
4대 | 김종갑 | 예) 중장 | 군영 | 前 사단장, 제5보병사단장, 제1군단 참모장 | 前 대한민국 국방부차관 |
5대 | 이성가 | 예) 소장 | 군영 | 前 제8사단장, 제7보병사단장, 제1야전군부사령관, 3군단장, 7군단장 | |
6대 | 최석 | 예) 중장 | 군영 | 前 사단장 | |
7대 | 박병권 | 예) 중장 | 군영 | 前 사단장 | 前 국방부 장관 |
8대 | 김종오 | 예) 대장 | 군영 1기 | 前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제1야전군사령관 | |
9대 | 김점곤 | 예) 소장 | 육사 1기 | 前 사단장 | 부대마크 변경[15] |
10대 | 이한림 | 예) 중장 | 군영 | 前 제1야전군사령관 | |
11대 | 백인엽 | 예) 소장 | 현지 | 前 사단장 | |
12대 | 강태민 | 예) 소장 | 현지 | 前 사단장 | |
13대 | 심흥선 | 예) 대장 | 육사 2기 | 前 합동참모의장 | |
14대 | 이희권 | 예) 소장 | 군영 | 前 육군본부 정훈감 | |
15대 | 박영준 | 예) 소장 | 육사 8기[16] | 前 사단장 | 한국전력공사 초대 사장 |
16대 | 한웅진 | 예) 소장 | 육사 2기 | 前 사단장 | |
17대 | 신원식 | 예) 소장 | 육사 2기 | 前 국방부 군수차관보 | |
18대 | 이소동 | 예) 대장 | 육사 2기 | 前 제1야전군사령관 | |
19대 | 박현식 | 예) 중장 | 육사 6기 | 前 사단장 | |
20대 | 류창훈 | 예) 소장 | 육사 6기 | 前 제1야전군 부사령관 | |
21대 | 정규한 | 예) 소장 | 육사 5기 | 前 제2야전군 부사령관 | |
22대 | 조천성 | 예) 소장 | 육사 8기 | 前 5관구사령관 | |
23대 | 김영선 | 예) 중장 | 육사 7기 | 前 합참 본부장 | 前 국회 국방위원장 |
24대 | 신정수 | 예) 소장 | 육사 8기 | 前 육군본부 인사국정감 | |
25대 | 이광노 | 예) 중장 | 육종 13기 | 前 수도군단장 | |
26대 | 노태우 | 예) 대장 | 육사 11기 | 前 국군보안사령관 | 前 대한민국 대통령, 사단 사령부 옆 하사관 주택 개발 # |
27대 | 백운택 | 예) 중장 | 육사 11기 | 前 제1군단장 | |
28대 | 정진태 | 예) 대장 | 육사 13기 |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 부대마크 변경[17] |
29대 | 고명승 | 예) 대장 | 육사 15기 | 前 제3야전군사령관 | |
30대 | 이필섭 | 예) 대장 | 육사 16기 | 前 합동참모의장 | |
31대 | 김재창 | 예) 대장 | 육사 18기 |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 |
32대 | 안병호 | 예) 중장 | 육사 20기 | 前 제2야전군 부사령관 | |
33대 | 이규환 | 예) 중장 | 육사 22기 | 前 합참 정보작전본부장 | |
34대 | 전관 | 예) 소장 | 육사 23기 | 前 학생중앙군사학교장 | |
35대 | 변호인 | 예) 소장 | 육사 24기 | 前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 | |
36대 | 임종천 | 예) 소장 | 육사 25기 | 前 수도군단 부군단장 | |
37대 | 이상태 | 예) 중장 | 육사 27기 | 前 국방대학교총장 | |
38대 | 신현배 | 예) 소장 | 육사 28기 | 前 육군종합행정학교장 | |
39대 | 이영계 | 예) 중장 | 육사 30기 | 前 육군교육사령부 사령관 | |
40대 | 정인구 | 예) 소장 | 육사 31기 | 前 육군유도탄사령부 사령관 | |
41대 | 이종철 | 예) 소장 | 3사 10기 | 前 육군군수사령부 부사령관 | |
42대 | 김춘수 | 예) 소장 | 육사 33기 | 前 육군본부 감찰실장 | |
43대 | 한동주 | 예) 중장 | 3사 14기 | 前 제3야전군 부사령관 | |
44대 | 정태희 | 예) 소장 | 육사 37기 | 前 제1야전군 부사령관,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 | |
45대 | 김용우 | 예) 대장 | 육사 39기 | 前 육군참모총장 | |
46대 | 강천수 | 예) 소장 | 육사 41기 | 前 방위사업청 계획운영부장 | |
47대 | 황대일 | 예)중장 | 육사 43기 | 前 제1야전군사령부 참모장, 육군참모차장 | |
48대 | 안병석 | 예) 대장 | 육사 45기 |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 |
49대 | 김동호 | 소장 | 학군 28기 | 現 육군학생군사학교장 | |
50대 | 김진철 | 소장 | 학군 30기 | 現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 | |
51대 | 정광웅 | 소장 | 육사 50기 | 現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 | |
52대 | 박진원 | 소장(진) | 육사 51기 | 現 사단장 |
6.2. 장교/부사관
- 이상희: 예)대장, 대령 시절 29연대장을 역임.
- 전인범: 예)중장, 대령 시절 29연대장을 역임.
- 이지문: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씨와 함께 대한민국의 정치 역사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또 한 명의 내부고발자이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28연대 소속 보병소대장이었던 이지문 중위는 이전까지 군인 표는 모두 여당표라는 공공연한 비밀을 처음으로 폭로한 사람으로, 이로 인해 군 부재자 투표소 영외 설치와 군 내부 인사고과에서 비밀리에 반영되던 투표율 조사 등을 종식시켜 군의 정치 중립성을 쇄신하는 것뿐만 아니라 투표의 공명성을 더해 대한민국 민주화에도 큰 역할을 했다.
- 이영길: 예) 대령. 광복군 제3지대에 함께 근무하던 박영준 장군 밑에서 부사단장으로 복무했다.
6.3. 병
- 김병조: 코미디언. 카투사에서 전입, 문선대 소속이었으며 1975년 전역.
- 김성규: 배우.
- 김영광: 前 야구선수.
- 김재선: 가수.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수영 모창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성대모사 외에 평상시 목소리도 다소 여성스러울 정도로 고음역이다.
- 김제유: 가수.
- 박상면: 프로게이머.
- 박신양: 배우.
- 배관구: 정치인.
- 선우재덕: 1984년 당시 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조교로 복무. 후술할 KBS1 <TV 내무반 신고합니다> 1999년 4월 12일 방영분에서 언급.
- 신동진: 프로게이머
- 안주형: 야구선수. 2018년 10월군번 30여단 복무.
- 양세형: 코미디언. 2008년 입대. 28연대 2대대에서 복무 하다가 상병 때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연예병사)로 차출.
- 유상봉: 가수, 재주소년 멤버. 2005년 입대, 헌병대에서 복무.
- 윤도현: 가수.
- 윤선우: 배우. 2006년 입대, 29연대 1대대 2중대 복무.
- 윤재영: 경기도의회 의원
- 이준익: 영화 감독. 155mm 포병.
- 장민석: 야구선수. 본래 상무 피닉스 야구단 입대를 목표로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가 깜박 잊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바로 영장이 날아와서 현역으로 입대했다고 한다.
- 정주후: 야구선수. 2018년 12월 군번 29여단 복무.
- 정훈: 야구선수.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당한 후 여기에서 현역으로 복무를 마쳤는데, 보직은 81mm 박격포병이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훈련소에 있던 시기에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2군 구장이었던 원당 야구장을 거쳐서 행군을 했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야구장 뒷산쪽이었다.
- 천준호: 정치인.
7. 특징
백발백중 웹드라마 시즌5 제4편 '9사단' | 2020.11.13. 대한민국 육군 |
대한민국의 유명한 메이커 사단 중 하나이며, 호국 훈련이나 KCTC 훈련 등이 연례행사로 둘 중 하나는 꼭 있고, 그 외 각종 훈련들을 군생활 내내 즐길 수 있다.[23] 15회로 전군에서 대통령 부대표창을 가장 많이 수상한 부대이다.[24] 2009년 부대에는 역대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사단이라는 자체광고도 있었다.
부대 경례구호가 백마다.[25] 때문에 이곳 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기초군사훈련 받고 다른 사단으로 배치받는 병력들 중 개념이 없는 병사들은 다른 사단에 도착한 첫날에 씩씩하게 백마라고 경례하고 고문관 확정되는 경우가 있다. 구호가 좀 특이한 경우인데 보통 1호간으로 경례한다. 원래 2호간 경례였지만 2008년도에 새로운 사단장이 취임하면서 1호간 경례로 바뀌었다.[26] 즉 손이 모자 챙에 닿을 때 "백마"라고 빠르게 외쳐야 된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뱅마]라 발음하며, 이에 대해선 아무도 태클 걸지 않는다.[27] 다만 신병교육대대처럼 2호간으로 경례하는 부대도 있는 듯.
영상물 등장이 잦은 부대이다. 소설이자 영화화되어 유명한 하얀전쟁에서 주인공이 몸담는 부대인 것은 물론, 머나먼 쏭바강(1993년 SBS)에서도 주인공의 소속부대로 나왔다. 그리고 하필이면 12.12 군사반란 때 쿠데타군의 선봉으로 출격한 탓에 MBC 드라마인 제5공화국 등 12.12를 다룬 드라마나 영상물에서는 반란군으로 나온다.
1989년 4월 22일 첫 방송을 시작했던 MBC <우정의 무대> 1편도 백마부대에서 시작했으니[28] 지상파의 단골손님 부대이며,[29] KBS1 <TV 내무반 신고합니다>도 1998년 11월 23일에 같은 베트남전 참전 부대인 제100군수사령부와 함께 다루어졌고, 1999년 4월 12일 방영분에서 단독으로 나온 후 6월 28일 방영분에선 같은 백마고지 참전 부대인 제5보병사단과도 함께 다뤄졌다가 2000년 3월 13일 파월 예비역 편, 2001년 3월 12일 방영분에서도 소개되었다. 2003년 10월 27일 <청춘! 신고합니다>에서도 소개되었다.
tvN 푸른거탑도 백마부대 신병교육대에서 실시하였다. 또한 초기 푸른거탑에서는 백마부대 마크를 단 군복을 입었다가 3화부터는 마크를 바꾸었다. 참고로 당시 촬영을 허가해준 사단장은 47대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김용우 대장이었다.
2013년 MBC 일밤의 2부 코너인 진짜 사나이에서 출연자들이 군생활을 체험하기 위한 첫 자대배치를 이곳으로 받았다. 그동안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리얼 병영 체험 스타일의 예능 프로그램인지라 군부대 촬영 섭외가 쉽지 않았을텐데, 아마도 MBC 예능 프로그램 제작이 일산 드림센터에서 이뤄지다 보니 근방에 가장 섭외가 용이한 부대라서 처음 선택한 듯하다. 이후 2016년도에 이곳 사단 신병교육대대, 수색대대, 포병연대 독수리대대, 백마유격장에 출연하였다.
2014년 1월 BBC 뉴스에 등장하였다.
LIFE AS A SOUTH KOREAN BORDER GUARD | 2014.01.19. BBC News |
영상출연 뿐만 아니라 무언가 바꾸기 위해 실험을 한다 치면 보통 이 부대를 마루타 삼는 경우가 많다. 여러 무기도입이나 훈련방식, 훈련교장, 제도변화 등이 일반병에게 도입되기 전에는 보통 여기서 실험을 거친다.
7.1. 근무환경
30연대와 29연대는 강안 경계를 맡고 있어 대대 규모로 순환되다 2015년 말부터 두 부대 모두 1개 대대로 고정되었다. 수송대, 의무대 같은 일반 보병대대에는 없는 자원을 주로 연대본부 예하 직할중대에서 지원받는다.GOP와 마찬가지로 내륙부대로 복귀함과 동시에 근무일수에 비례해 보상휴가를 받는다. 30연대 기준으로 투입 후 3개월이 지나면 1박이 생기고 그 다음 달부터는 한 달에 1박씩 적립이 된다. 2015년부터는 투입 첫 달부터 2박 3일씩 준다. 강안에 있다 보면 외박 금지는 물론 휴가도 근무 인원이 안 나오면 제한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내륙부대로 돌아오면 모든 중대의 1/3~1/4 정도가 돌아가면서 휴가를 한꺼번에 나갔다 들어오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보상휴가이니 정기휴가(연가)에는 없는 TMO는 덤이다.
그래서 FEBA 부대가 좋냐고 한다면, 그건 틀렸다. 강안이 경계 근무 때문에 훈련이 없는 것에 반해 FEBA 부대는 수도 서울로 들어오는 가장 중요한 길목인 서부전선을 사수해야 하기 때문에 매년 많은 훈련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교통편 만큼은 정말 좋다. 이웃 1사단과 마찬가지로 서울 시내 버스[30]와 서울 가는 전철이 사단 관할지역을 운행하며, 게다가 1사단에 비해 서울 시내 버스 및 서울 가는 전철이 더 많다.
7.2. 동기 제도
6개월 동기제를 실시하고 있다. 가령 2024년 1월에 입대한 용사의 경우 2024년 6월까지 입대한 용사와 동기이며, 2024년 7월부터 입대한 용사와는 후임 관계가 된다.[31]7.3. 사단가
9사단가 |
(1절) 철원 뜰 백마고지 싸움터로 삼고서 싸우고 또 싸워서 대승을 이룬 그 용맹 길이지켜 나라 겨례 수호에 나가자 9사단의 깃발을 높이들고 (2절) 십만의 오랑캐를 한칼에 쳐 무찔러 개가를 높이올린 북진 능선에 무훈도 찬란한다 역사의 백마용사 힘내자 9사단의 불멸의 전승기를 (3절) 중부전선 금화뜰에 터전을 굳게 닦은 혈전의 저격능선 이름도 높다 다같이 마음 엮어 무쇠같이 뭉쳐서 받들자 9사단의 찬란한 우리 전통 (후렴) 오너라 풍진아 정의의 방패 앞에 우리들은 백마부대 9사단의 용사다 |
7.4. 백마가
달려라 백마 |
(1절) 아느냐 그 이름 무적의 사나이 세운 공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정의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 들고 백마가 가는 곳에 정의가 있다 (2절) 아느냐 그 이름 역전의 사나이 그 이름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자유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 들고 백마가 가는 곳에 자유가 있다 (3절) 아느냐 그 이름 상승의 사나이 청사에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평화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 들고 백마가 가는 곳에 평화가 있다 (후렴) 달려간다, 백마는 적진[32]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들[33] |
1964년 제작된 LP판을 CD로 복원한 '달려라 백마' 버전 https://youtu.be/uxsRvdp75lk |
원곡은 월남 파병가로 가사를 수정한 버전은 사단가보다 9사단 내에서 더 자주 불린다. 신병교육대대에서 사단장이 직접 오는 수료식을 진행할 때에는 백마가를 제창한다. 이 때문에 백마가는 사격 주간 전/후부터 연습을 시키는 편이다.
7.5. 원탁의 기사
원탁의 기사 |
희망이여, 빛이여, 아득한 하늘이여 나라의 백마가 울부짖는다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바람을 가르는 갈기 나 소리 높이 외친다 나 소리 높이 외친다 위대한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오늘도 달린다 |
월남 파병가인 '백마가(달려라 백마)'와 함께 사실상 제3의 사단가로 인정받는 노래다. 원래는 1981년 TBC[34]에서 방송한 애니메이션 원탁의 기사의 주제곡으로 '백마가'만큼 자주 불리는 '사가'다. 이유는 노래 가사에 '백마'가 들어가기 때문.
재미있는 점은 대부분의 사가, 특히 가요나 드라마/영화/만화영화 주제곡 같은 것은 지휘관들이 철저하게 금지시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노래 만큼은 소대장~중대장급의 초급장교들뿐 아니라 대대장 이상의 영관급은 물론 일부 사단장들의 경우 허용해주는 정도를 넘어 직접 구보,행군 간에 부르도록 시킨다는 점이다. 아마도 '나라의 백마', '위대한 이나라의 통일을 위해' 같은 가사와 함께 군가풍의 박자와 멜로디를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8. 사건 사고
8.1. 1979년 12.12 군사반란 가담
12.12 군사반란 당시 9사단장이 전두환의 절친 노태우였다. 반란군들의 원래 계획은 특전사와 보안사만으로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었으므로 아무리 사단장이 정변에 가담하고 있었더라도 부대 자체는 반란에 직접 동원되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계획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지체되어 결국 사태가 발각되고 육군본부와 수경사가 전투부대를 투입하여 반란군을 진압하려하자 노태우가 전방에 배치되어있던 9사단 예하 29연대 및 30연대 예하 1개 대대를 동원시켜 중앙청에 임의로 재배치한 것이다.심지어 이는 12.12를 주도하던 전두환이 총리 접견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위기를 직감하고 노태우가 혼자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원래는 국군보안사령부, 수경사 헌병단, 제33헌병경호대, 육군특수전사령부와 수도경비사령부 제30/33경비단 외 나머지 일선 부대장들은 유사시에만 자신의 부대를 호출하기로 되어 있었다. 때문에 일반 전투 부대장 중에 12.12사태 초반에 예하 병력을 불러온 이는 노태우와 국방부·대한민국 육군본부를 점령한 당시 1공수여단장 박희도 정도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12.12 군사반란은 하룻밤만에 대성공했다. 노태우는 이 정변의 결정적인 위기상황에서 자신의 예하 병력을 동원한 덕에 이후 5공 정부에서 승승장구하여 결국 신군부의 2인자 자리에 서게 되었고, 이는 결국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이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지목하는 초석이 된다. 하지만 이후 반란에 가담했던 노태우는 반란수괴 전두환과 사이좋게 잡혀갔으니 이 시기는 9사단의 대표적인 흑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최전방 부대를 부대장이 제멋대로 전용하였다는 점에서 가장 치욕적인 흑역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진압군 측에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전방부대를 차출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었다.[35] 게다가 최전방 부대는 모두 한미군사동맹협정에 따라 주한미군 사령관의 허가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 더군다나 당시 9사단 참모장이었던 구창회 대령은 사단장 명령으로 출동시킨 29연대를 철군시키라는 제3야전군사령관 이건영 중장[36]의 명령에 연대 출동 안 합니다며 상관을 속이고 명령 불복종을 저질렀다. 그러므로 애초에 기본적인 지휘체계를 무시해버린 행동이다.[37]
이렇게 최전방을 지키는 부대를 제멋대로 빼돌려 서울로 진격시켜서 쿠데타로 악용한 사례는 이때가 처음이 아니라 1961년 5.16 군사정변 때도 이미 전례가 있었다. 바로 김포, 강화 해안 경계를 담당하던 해병대 제1여단[38] 병력을 여단장인 김윤근 해병대 준장이 빼돌려 쿠데타에 동원했던 것이다.
8.2. 1980년 무장공비 침투 저지 사건
자세한 내용은 3.23 완전작전 문서 참고하십시오.1980년 3월 23일, 한강무장공비 침투를 저지한 황중해 일병과 김범규 이병이 있다.당시 대한뉴스(시체가 모자이크 없이 나오니 주의) 공로로 두 사람 다 충무무공훈장 수여, 포상금 1,700만원, 사단장 포상휴가 6개월, 연대장 포상휴가 6개월, 헬기로 고향으로 간 후 카퍼레이드를 받았다. # 이 중 황중해 일병은 완전작전 후 부사관에 지원하여 최종계급 상사로 2012년 전역하였다. 그의 공로를 기념하여 소초 하나를 그의 이름으로 바꾸었다.[39] 이 사건은 사상 최초로 아군의 피해 없이 북측의 침투를 막아낸 완전작전이기에 9사단에서는 매년 3월 23일만 되면 3.23 완전작전을 기린다.[40]
8.3. 2013년 임진강 월북 시도자 사살 사건
자세한 내용은 임진강 월북 시도자 사살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2013년 9월 16일, 임진강에서 월북을 시도하던 40대 남성을 초병이 사살한 일이다.
8.4. 2023년 제9보병사단 지휘부 복지회관 특혜 의혹
자세한 내용은 제9보병사단 지휘부 복지회관 특혜 의혹 문서 참고하십시오.2023년 7월 26일, 백마회관에서 9사단 지휘부가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수차례 제공받는 등 특혜를 누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메뉴판에 없는 메뉴 중 티라미수는 순 100% 조리병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는데 거기에는 김진철 사단장의 모교인 조선대학교 로고까지 박아 놓았다. # 결국 김진철(학군 30기) 사단장은 이 사건 여파로 육군종합군수학교장으로 좌천되고 말았다.
9. 기타
- 9사단 입구에서 중산동·구일산쪽으로 조금만 가다보면 약산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은 원래 26대 사단장이었던 노태우 사단장이 주도해서 하사관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은 주택단지이다.# 과거 명칭은 하사관주택이었으나 군인 거주자들이 빠지면서 2000년대 후반 들어 약산마을로 개칭되었다. 실제 과거 군인 주거단지의 흔적으로는 마을 내부에서 부대로 진입하는 통문이 있다. # 경차가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이나 현재에는 존재만 할 뿐 사용되지 않는다.
- 파주-고양 지역 개발이 활발한 탓에 육군 전체의 군사보호구역 협의 건 중 20%가 넘어간다고 한다.
- 주변이 허허벌판이었던 시절에 지어진 사격장 주변에 각종 건축물이 들어선 탓에 관련 민원도 많은 편이다. 사단 사령부 주변은 거리가 제법 된다고는 하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아파트 밖에 안보인다. 모 연대 주둔지는 병사들이 뭐하는지 하나하나 보일 정도로 주변 아파트들이 가깝다.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 왕복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영내 사격장에서 사격이라도 하는 날에는 근처 근린공원을 이용하는 시민과 아파트주민이 함께 민원을 때려 넣는다.
- 자동화 사격장 인근 아파트 촌으로 도탄이 날라가는 사고가 1997년에 발생하여 아파트 베란다 유리창이 파손되는 일이 있었다.
- 백마부대는 과거 베트남 전쟁 관련 드라마였던 머나먼 쏭바강 등으로 이미 대중에게 베트남 전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대인데다가, 작가 안정효가 이 부대 출신으로 월남전 파병을 갔으며, 그의 소설 하얀전쟁의 주인공들 역시 작가처럼 백마부대였기 때문에 제작자 입장에서는 가장 무난한 선택이기는 했다. 하얀전쟁이란 제목도 백마부대의 견장이 하얀색인 것에서 나왔다.[41]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 및 동명의 원작소설 역시 작가 박영한이 참전하여 직접 겪은 일을 소설로 집필한 것이다. 조성모의 가요 아시나요의 뮤직비디오에도 주인공의 부대로 나오지만,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 역사 왜곡이라고 소송을 거는 등으로 인해 현재 작중 나오는 부대 마크의 백마를 파랗게 칠하고, 일부 장면들은 편집한 버전이 공개되어 있다.
- 2008년도에는 대통령을 3명(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배출한 사단이라고 홍보했던 문구가 각 생활관 별로 붙어 있었다(2017년에는 생활관 별로 붙어있지 않으나 9사단 9대 자랑이 복도에 붙어있다).
- 신병교육대대와 일부 부대에서는 기상 때마다 스트레칭 체조 방송을 틀기도 한다. 정훈교육 시간에 당시 30 연대(현 30 여단)의 군종 법사(스님)가 직접 구령을 녹음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배경음은 구라모토 유키의 meditation 출처
- 육군 보병 피복 및 장구류, 개인화기 등의 테스트 부대이기도 하다. 육군 장비들이 우선보급되어 그 결과가 육군 전체에 보급되고 있다. 다른 부대들이 막 K3 받아 가벼워서 좋다고 얘기할 때는 이미 폐급이라 불릴 정도로 이 부대 K3는 노후화가 심한 상태라고 한다. 상상 속의 장비라 불리는 워리어플랫폼 장비도 9사단에서는 이미 보급이 진행 중이다.
- KCTC에서 최초로 3참호까지 돌파했던 사단이다. 백마부대 소속 산하 부대(2009년 11월)가 KCTC 훈련에서 최초로 돌파하였다.
- 공병대대 EHCT 19년 최정예 EHCT선발(황금 베레모 수여 2019.11.27)로 전역하면 메달준다.
- 사단 사령부 내 사슴이 서식한다. 전입 신병들한테 사단 사령부에 사슴이 있다고 하면 안 믿는다. 또한 사단 사령부외에도 전차대대내부에서도 사슴이 서식 중이다.
- 사단 위수지역인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는 노태우 前 대통령의 묘소가 위치해있다. 또한 노태우 대통령이 과거 이 부대에서 사단장을 지낸 바 있어서 한때는 노태우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기도 했다.
- 문제점들이 누적되어, 결국 어머니들이 장병 급식-피복 모니터링단을 결성하여, 군부대를 체험하기로 했다. 2020년 7월에 어머니들은 육군 9사단을 방문했다. 하지만 아버지 모니터링단을 결성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버님들은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한국 군대의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국방부가 거부할 것이기 때문.
[1] 당시 사단장 최석 준장이 계급장을 던져버리고 숨어버리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 패전 자체가 한국에선 흑역사라 잘 안 알려져 있지만. 그나마 욕을 덜 먹는 게 당시 군단장이었던 유재흥 장군의 판단 미스 및 삽질 덕이라는 이야기도 있다.[2] 물론 사단 자체 기준이다.[3] 장도영 소장부터 6대 최석 준장까지 평균 재임기간이 2달이 채 안된다. 때문에 실질적인 부대의 운영은 참모장인 박정희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인민군 10사단이 후방으로 침투하여 보급로 차단을 위한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있었지만 박정희의 보급관리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고 전해진다.[4] 존 폴 벤은 이 작전 이후 기상악화로 인한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했다.[5] 9사단은 전쟁 이후 주둔지가 계속 바뀌었다.[6] 출처 - 2020년 10월 26일자 국방일보 8면[7]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8] 2022년 6월 1군단 141정보대대에서 9사단 직할대 배속[9] 리모델링을 한지 20년이 넘은 건물이다.[10] 보급수송대대, 화생방지원대, 방공중대, 정보3중대는 통합막사 (신막사)[11] 구 30연대 본부시설을 수색대대가 물려 받아 쓰고 있다. 부대 바로 앞에 서울 버스 774가 정차한다.[12] 28여단 대대급 중에서 강안대대와 더불어 유일하게 구 막사를 쓰는 대대다. 2014년,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신막사 급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지낼만 한 상태가 되었다.[13] 2008년 9사단 30연대에 흡수[14] 과거 2007년까지만하더라도 신병교육대가 사단 직할이 아니라 28연대 소속(28연대 1대대)이었다. 그래서 신병교육대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보병 대대처럼 편제가 되어있었다가, 2007년 말에 (구)제101보병여단이 해체되어 제9보병사단과 병력이 통합되면서 신병교육대가 사단 직할로 변경되었다. 2024년에 폐지되었다.[15] [16] 특임소령임관[17] [18] 1970년[19] 이후 대령 시절에 국군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예편 이후 대통령비서실 보좌관, 대통령 정무 제1수석비서관, 미국 헤리테지 연구소 수석연구원, 현대사회연구소 소장, 제14대 국회의원(경북 포항 북구)무소속, 제15대 국회의원(경북 포항 북구)무소속[20] 승준과 함께 입대했다.[21] 와이엇과 함께 입대했다.[22] 실제로 옥택연 조교의 제식모습을 복도 벽에 붙여 일종의 교보재로 사용하고 있다.[23] 6월, 8월, 12월 빼고 매달이라고 보면 거의 맞고 11월은 연대마다 다르지만 보통 진지보수공사로 훈련을 대체한다.[24] 2위는 14회 수상한 동부전선의 제21보병사단이다.[25] 초창기에는 충성을 쓰기도 하였다. TV내무반 신고합니다 월남참전용사 편에서 이 부대가 출연했는데 충성을 썼었다. #[26] 정확히 얘기하자면, 2007년말에 바뀌었다. 2007년 12월 말에 말년휴가 나갈 때만 하더라도 2호간 경례였는데, 복귀하고 전역 신고하러 갔더니만 1호간 경례로 변경됐다.[27] 실제로 비음화 법칙에 의해 이것이 발음 규정상 맞는 발음이다.[28] <TV가이드> 9권 16호(4월 29일자) 58쪽 기사에 따르면, 당시 게스트가 동 부대 출신인 코미디언 김병조였다.[29] 예능 프로그램 게스트라면 거의 반고정 게스트쯤 될 것 같다.[30] 사단 수색대대 바로 앞에 정차한다![31] 원래 2019년도 군번까지는 1년 동기제(연간동기제)여서 갓 자대에 전입한 12월 군번인 이등병과 자대에서 거의 1년을 지낸 1월 군번인 병장이 동기로 지내는 일도 있었다. 현재는 6개월 동기제로 바뀌어서 그러한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32] 베트남전 당시엔 월남 땅이었으나 현행 백마가는 적진이라고 부른다.[33] 현행 '적진으로'로 가사가 수정되기 전인 80년대, 90년대의 가사는 "달려갔다, 백마는 월남 땅에서, 이기고 돌아왔다, 대한의 용사들"이었다. 베트남전 파병 종료 후이기에 '달려간다/월남 땅으로/이기고 돌아오라'를 '달려갔다/월남 땅에서/이기고 돌아왔다'로 바꼈다. 마찬가지로 1절 마지막 가사도 베트남전 파병 종료 후에는 '백마가 가는 곳엔 승리가 있다'로 바꿔 불려졌었다.[34] 현 KBS2.[35] 5공화국에서도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이 '설마 그놈아들이 전방부대까지 빼오지는 않겠지'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12.12 직후 신군부가 계엄령을 유지시킬 근거로 삼은 것이 바로 북한의 남침이었다.[36] 당시에는 중장 보직이었다. 지금은 대장 보직.[37] 참고로, 구창회 역시 육사 18기 하나회 소속이며 기무사령관과 대장 계급으로 3군사령관으로 재직 중 1993년 4월에 하나회 숙청으로 전역당했다.[38] 현 해병대 제2사단[39] 이전에는 구산동 소초였지만, 황중해 소초로 바뀌었으며 그리고 간첩을 발견하여 사살한 초소의 이름은 김범규 초소다. 또한 황중해 일병의 이름을 딴 '황중해 사격장'도 존재한다.[40] 참고로 이때 당시 연대장이 이필섭 장군(당시 대령)으로 12.12 쿠데타 당시 노태우의 지시를 받고 서울로 출동하여 중앙청을 점령 하였다.[41] 영문판 제목이 White Bad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