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00:14:00

군사경찰단(수도방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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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
首都防衛司令部 軍事警察團
The Capital Defense Command Military Police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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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서울 절대사수 수방사군사경찰단
창설일 1961년 5월 26일
약칭 수방사군경단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수도방위사령부
규모
역할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 지원
단장 대령 김창학 (육사 54기)
위치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1. 개요2. 상세3. 편제4. 과거 편제5. 출신인물
5.1. 단장5.2. 장교/부사관5.3. 병
6. 헌병단가7. 사건사고8. 여담
파일:275362029_269276878718726_3882986288344420181_n.jpg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의 MC기동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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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수도방위사령부 직할의 대한민국 국군 군사경찰 상당수가 모인 육군 군사경찰부대이자, 대한민국 육군 최초의 급 군사경찰부대. 명칭만 단이 붙고 실제 규모는 그다지 크지는 않은 작전사령부 군단 예하 군사경찰단과는 달리 정말로 규모와 인원수가 급인, 육군의 규모가 가장 큰 현실에서 사실상 전군 최대의 군사경찰부대다.

2. 상세

서울에서 무슨 큰 행사가 있다 싶으면 차출되는것이 일상화된 곳이다.[1] 주로 동원되는 행사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로 대표적인 것이 현충일 행사다. 군사경찰의 임무엔 지휘관 경호가 있는데 대통령은 국가원수요, 모든 군인의 상관이니 대통령이 무사히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외곽 경호를 서며 인원통제도 할 겸 동원된다. 다행스럽게도 그나마 수방사에서 맡는 행사가 줄어든 편인데 예전엔 겨울 학군교라고 하여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매년 2월 열리던 대통령이 참석하는 학군장교 임관식에도 동원되었다. 매년 임관하는 학군장교가 약 5천명 정도 되고 임시 주차장에 임관장교의 가족이나 관계자들이 모여 그 좁은 문무대와 종합행정학교에 대략 5만명은 몰려들었다. 2011년부터는 계룡대 통합임관식으로 전환되었고 또한 문무대가 성남을 떠났기에 학군교랑 얽힐 일은 없어졌다. 매년 동원되는 대행사는 국군의 날 기념식과 현충일 행사, 신정 행사이다. 이 행사들은 매년 기념하고 있지만 국군의 날은 5년에 한 번 대통령이 취임한 연도에 대형 기념식을 연다. 각설하고 특히 국군의 날 행사는 규모가 규모니 준비기간도 길며 수방사로도 통제가 힘들어 일부 사단 군사경찰대가 지원을 오고, 타군 군사경찰도 온다. 행사 준비 기간이 기니 사열이 정말 끔찍한데 국방부,육본,수방사,군사경찰단,소속대대 순으로 사열과 검열을 받으며 쉴틈없이 행사복과 전투화를 정비하고전투화 돌리는 손이 남아나지 않는다 제식 훈련을 하루종일 하는 등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국가장 안장식은 전 현직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국가규모로 추앙받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서울 현충원에 안장이 결정되면 동원된다. 그나마 예측이 가능한 국군의 날과는 달리 안장식은 당연히 예기치않게 찾아온다. 새벽부터 밤까지 모든 안장식 참배객들이 나갈 때까지 인원 통제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서울 현충원은 대규모 묘역을 조성할 공간이 모자라 09년 국장과 15년 국가장 때도 비판을 받은 바가 있어 앞으로 서울 현충원에서 안장식이 진행될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는 전직 대통령 칭호론 불리더라도 더는 예우를 받지 못하기에 세상을 떠나도 국가장은 치를 수 없다. 그 밖에도 다른 국가원수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도 동원되며 일부 위너들은 학군단장 이취임식의 초병이나 장군들의 장례식도 동원되기도 한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군기단(기수단)으로 쓰거나 의장대 대용 혹은 예도대로 동원하는 일도 꽤나 있다.

이렇게 내보낼 건 다 내보내면서도 본부에 있는 수방사 직할단 중 가장 가용인원이 많아서 크고 작은 작업에 불려나가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종합 행정학교에 있는 강의실 의자에는 수방사는 군사경찰의 무덤이니 가지말라는 이라는 글귀가 가득하다.

수방사 검문소는 평시에는 운용을 하지 않지만 전시에는 적 특작부대 이동 차단이나 불순분자 색출 및 검거 등이 주요 임무이지만 서울 시계내로 군 병력/차량 진입을 통제하는 임무도 맡고 있다

사실 수많은 직할단 중 가장 큰 부대는 제1경비단이지만 경비단은 절대 외부 업무에 차출되지 못하므로 활동은 군사경찰단이 가장 많다. 육군 기준 약 6000명인 군사경찰 중 1,000명(33군사경찰경호대와 같은 경호처 지원부대 포함)가량이 배치되어 있는데[2], 이는 보병 연대급 규모로 지원부대인 군사경찰대가 사단 내에서 아무리 많아봤자 50~70명 정도라는 걸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게 많은 편. 이게 다 서울 환경이 워낙 특이하다보니 시가전이랑 도로 통제가 매우 중요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규모와 기동성, 유사시에도 주둔지를 벗어나지 않는 특성 덕분에 수방사의 주 전투병력이기도 하며 수방사 군사경찰단에 들어온 병들은 그냥 자신들을 우스갯소리로 헌보병이라고 여기고 산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전투+군사경찰훈련을 견뎌내기에도 편하다고. 일반 근무군사경찰은 군사경찰대대로 배치된다. 또 사람 많다고 만만한게 군사경찰단이라 별 작업에 다 동원된다. 검문소의 경우에는 현재는 비상주 검문소로 전환되어 검문소 파견은 옛날 일이 되었다.

특임 군사경찰과 기동(MC승무)군사경찰은 특임군사경찰대대로 편성된다 기초적인 체력과 무술실력을 심사해서 들어오는 이들이기에 군사경찰단 내에서는 체력으로 이길수가 없다. 이들 중 기동군사경찰은 검문소에도 기동대로 둘씩 짝지어 차출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검문소 내의 일반군사경찰과는 아저씨 관계를 맺으며 인원이 적지 않은 이상 근무에도 투입되지 않아 압도적인 편함을 누린다.

제33군사경찰경호대는 단 내에 있지도 않지만 일단 군사경찰단 소속으로 처리는 되기에 33과 다른 대대간에는 간부들이 이동할 때가 있으며 아주 가끔씩 일반 군사경찰들 중에 33으로 데려갈 병이 있는지 면접을 보기도 한다. 이름만 걸어놓고 남남인 것 처럼 살지는 않는다.

군사경찰 장교에겐 수방사 군사경찰단장(육군 대령이다. 육군 군사경찰 병과장은 준장,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소장)은 별이 되는 주요 코스다. 전군 유일의 단급 군사경찰부대를 지휘하는데다 수방사 내에서도 역할이 큰 직할단장이라 사령부 내 영향력도 센 편이기 때문이다.

군사경찰은 비전투병과답게 숫자가 적으며 별로 올라갈 수 있는 장교도 매우 적다보니 진급 경쟁도 치열하다. 다만 군사경찰단이 저놈의 군기 때문에 허구한날 사고가 터졌는지라 마냥 좋아할만한 보직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단장이 부조리 잡겠다고 구타 사건이 터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영창 전출 콤보를 선사한 적도 있다. 물론 현재는 구타가혹행위가 줄었다고 한다. 어쨌든 병이나 간부나 한 때는 지옥같은 부대였다.

과거 2011년까지 영창(현 미결수용실)이 지하(정확히는 반지하)에 있었는데 2010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되어 영창을 이전했다. 이후 비워진 영창을 막사 리모델링때 식당으로 활용했다.

3. 편제

4. 과거 편제

  • 본부대
  • 제3헌병대대
    • 31중대
    • 32중대
    • 35중대
  • 제5헌병대대
    • 51중대
    • 52중대
    • 53중대
  • 제7헌병대대
    • 10중대
    • 20중대
    • 30중대
  • 특별경호중대
    • 특임중대
    • 기동중대(MC승무)
  • 제33헌병경호대

5. 출신인물

5.1. 단장

역대 군사경찰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000 예) 대령 단장
00대 조홍 예) 준장 육사 13기 대한민국 육군본부 헌병감. 10.26 당시 단장.
00대 승장래 예) 소장 육사 37기 前 육군수사단장, 국방부 조사본부
00대 이종협 예) 소장 육사 42기 국방부 조사본부
00대 최병호 예) 준장 육사 43기 대한민국 육군본부 헌병실장, 육군종합행정학교 교수부장
36대 김성곤 대령 학군 37기단장
37대 김창학 대령 육사 54기단장

5.2. 장교/부사관

5.3.

6. 헌병단가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의 군가로 군가치고는 음이 상당히 어려워 군가 제창시 중대별로 각기 다른 불협화음으로 부르는 일이 잦다.
관악산 정기뻗은 조국의 심장
찬란한 수도서울 번영을 위해
늠름한 충정용사 여기 모였다
필승의 깃발아래 다함께 뭉쳤다
끓는 피 뛰는 가슴 어디 바치랴
젊음을 불태울 곳 오직 여기뿐
우리는 서울의 방패 수방사 헌병단
새역사를 창조하는 수방사 헌병단

7. 사건사고

7.1.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가담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선포 직후 수방사 특임대는 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제3공수특전여단, 제9공수특전여단,국군방첩사령부, 정보사령부 병력과 함께 헌법 기관인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불법 진입했다.' 선관위 당직자 5명의 휴대폰을 빼앗고 출입을 제안시킨 후 정보 관리실에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같은 수방사 소속 제35특수임무대대와 합친 211명은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제707특수임무단 197명, 제1공수특전여단 277명, 국군방첩사령부 병력과 함께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에 불법 진입했다.[4] 수방사 특임대와 1경비단에게는 707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국회의원들을 체포해 인계하면 이들을 차량으로 이송해 계엄시 사령부가 되는 경기도 과천시 국군방첩사령부 벙커에 구금하는 것이 목표가 하달되었다.

12월 6일, 국방부는 비상계엄 관련 주요 직위자인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 특수전사령관 곽종근,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이상 육군 중장) 등 3명의 직무정지를 위한 분리파견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분리파견 부대는 이진우 중장은 지상작전사령부, 곽종근 중장은 수도군단이며 여인형 중장은 국방부로 대기조치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12월 7일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당시 단장인 김창학 대령과 출동한 특임중대장과의 음성기록이 최초로 공개되었다. 주요내용은 출동은 하되 현장에 총기와 탄은 들고 나가지 마라, 하지만 현장출동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총기와 탄을 관리해야한다, 군인은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만 민간인에 대한 위해 등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 이행하지 않는다였다.[5]
12월 8일 지난 3일 중앙선관위 청사에 불법 진입한 계엄군은 당직자들의 모든 통신수단을 차단했던 걸로 확인되었다. 선관위 고위 간부는 계엄군이 휴대전화 전원은 끄게 한 뒤 빼앗아 간데 이어 유선전화도 외부로 걸 수 없도록 발신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컴퓨터 사용도 완전히 차단시켰다고 했습니다. 계엄군이 자료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외부와 소통을 완전히 차단해 선관위를 점령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사에선 무장한 군인들이 아무런 범죄혐의도 없는 직원들의 통신까지 차단한 건 감금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평했다.#

12월 12일 내란 당시 병사들도 계엄군으로 투입됐다는 수도방위사령부 보고가 나왔다. 앞서 윤석열이 12일 오전 담화에서 "사병이 아닌 부사관 이상 정예 병력만 이동시키도록" 했다는 주장과 배치되는 보고 내용이 나온 것이다. 이날 수방사가 국회에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수방사는 군사경찰단 75명을 계엄 상황에 투입했는데 이 가운데 병사는 42명이었다. 8명은 장교, 25명은 부사관이었다. 수방사 1경비단 투입 인원 136명 중에는 병사가 19명이었다. 수방사에서만 최소 61명의 병사가 동원된 것이다. 수방사는 국회에 "국회 울타리 내로 진입한 인원은 48명이며, 의사당 본청 건물에 진입한 수방사 병력은 없다"고 전했다.

8. 여담

  • MBC <우정의 무대>의 경우 1995년 3월 12일 방영분에서 다룬 바 있고, KBS1 <TV 내무반 신고합니다> 1999년 12월 26일 방영분에선 예하 기동대가 25사단 수색대와 함께 다루어졌고, 2001년 5월 14일엔 부대 전체가 다루어졌다. 2013년 9월 15일 MBC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에서도 소개되었는데, 특수임무대와 기동대의 훈련을 고정 출연진들이 직접 체험했다.


[1] 근처에 현충원이 있다보니 6월 6일은 거의 최악수준. 날도 더운데 각잡힌 정복입고 부동 자세로 있다보면 진짜 최악이라는게 느껴진다. 그나마 오전에 하는게 다행.[2] 경비단은 그보다 50%쯤 많다.[3] 편제상으로는 군사경찰단 소속이지만 지휘는 대통령경호처가 맡고 있으며 현재 종로구에 주둔 중이다.[4] 같은 시각 서울 관악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청사에 47명, 경기 수원 선거연수원에 130명의 계엄군이 들이닥쳤는데 소속은 밝혀지지는 않았다.[5] 이런 기사와 지휘관들의 인터뷰들이 이어져 계엄군에 대한 동정 여론이 있으나 국회에 진입한 자체가 불법이고 처벌 대상이다. 특히 지휘관들이 평소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나서자 속으면 안된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