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12:22:00

제72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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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보병사단
第七十二步兵師團
The 72nd Infantry Division
파일:제72보병사단 부대마크.svg
국가대표 동원사단
창설일 1981년 9월 25일(제72훈련단)
1987년 4월 1일(제72보병사단)
상징명칭 올림픽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육군동원전력사령부
규모 사단
역할 동원준비태세 완비 및 전시 투입
사단장 준장 우성제(3사 27기)
위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1. 개요2. 상세3. 예하부대
3.1. 사단직할대3.2. 제200보병여단 오봉산3.3. 제201보병여단 독수리3.4. 제202보병여단 맹호3.5. 포병여단 불사조
4. 출신인물
4.1. 사단장4.2. 장교/부사관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5.2. 미래동원사단개편5.3. 동원훈련장5.4. 올림픽회관5.5. 송추방위5.6. 사단가5.7. 미디어
6. 사건사고7. 여담

[clearfix]

1. 개요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대한민국 육군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예하 제72보병사단. 별칭은 올림픽부대. 경례구호충성.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하고 있다.

2. 상세

대한민국 육군보병 사단. 1981년에 수도군단 예하 제72훈련단으로 창설되어, 1983년 제1군단으로 배속변경되어 제72보병사단으로 승격되었다. 현재는 육군동원전력사령부 소속이다.

상비사단이 아닌 동원사단으로 예비군훈련이 주 임무이며, 전시 동원예비군으로 완편되는 부대이다.

창설 당시의 부대 별칭은 오봉산부대였으나, 부대 병력들이 1988 서울 올림픽을 지원하면서[1] 노태우 前 대통령이 직접 올림픽 부대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올림픽이 끝난 후 더 이상은 국내외 체육행사와 큰 연관이 없지만, 올림픽 부대라는 명칭은 사단 안팎을 가리지 않고 널리 통용된다.[2]

사단사령부의 위치는 경기도 양주시에 있다. 하지만 보통 말하는 양주 생활권하고는 거리가 멀다. 송추 끝자락에 있기 때문. 오히려 서울시 은평구와 도로로 일직선상에 있으며 구파발·연신내에서 자차로 불과 10여 분 거리라서 서울 생활권이다. 특히 근래 들어 구파발 지역이 크게 발달하여 도심과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서울 뿐 아니라 의정부 시내도 비슷한 거리에 있으며, 부대 앞 34번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20분 정도 가면 된다.[3]

경례 구호는 올림픽이 아닌 육군 범용[4]충성[5]이며 부대마크가늠자가늠쇠를 나타내며 숫자 72를 상징한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연대들이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3. 예하부대

파일:제72보병사단 부대마크.svg파일:투명.png
제72보병사단 예하부대
제200보병여단 제201보병여단 제202보병여단
포병여단
※ 군 공통의 직할부대(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 과거 송추방위사령부에 대한 내용은 송추방위 문서 참고.

3.1. 사단직할대

  • 본부근무대
  • 수색대대
  • 공병대대
  • 전차대대[6]
  • 정보통신대대
  • 화생방대대
  • 군수지원대대
  • 군사경찰대
  • 의무근무대

3.2. 제200보병여단 오봉산

  • 여단본부
  • 군수지원대대
  • 1대대
  • 2대대
  • 3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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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201보병여단 독수리

  • 여단본부
  • 군수지원대대
  • 1대대
  • 2대대
  • 3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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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202보병여단 맹호

사단 창설과 같이 사령부내에 있으면서 동원훈련장에 1개대대가 주둔하면서 관리하다가 신막사를 지으면서 연대 전체가 동원훈련장으로 이동하여 현재 주둔하고 있다. 여단중에 유일하게 독립 주둔지를 가지고 있는 부대이다.
  • 여단본부
  • 군수지원대대
  • 1대대
  • 2대대
  • 3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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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포병여단 불사조

  • 여단본부
  • 제516포병대대
  • 제517포병대대
  • 제518포병대대
  • 제623포병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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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출신인물

4.1. 사단장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72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한상민 예) 준장 육종 16기 사단장
00대 탁수용 예) 준장 육사 14기 사단장
06대 김종헌 예) 준장 육사 18기 사단장
07대 이병달 예) 소장 육사 20기 사단장
13대 박민순 예) 준장 육사 28기 사단장
14대 000 예) 준장 사단장
15대 박종왕 예) 준장 육사 32기 사단장
16대 000 예) 준장 사단장
17대 이재욱 예) 준장 육사 32기 사단장
18대 정종진 예) 준장 육사 34기 제7보병연대장
19대 이홍기 예) 준장 육사 35기 사단장
20대 조정환 예) 준장 3사 15기 사단장
21대 신태경 예) 준장 육사 38기 제203특공여단
22대 이규학 예) 준장 육사 39기 수도포병여단
23대 류정열 예) 준장 육사 41기 사단장 #
24대 박문식 예) 준장 육사 43기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7]
대리 김순철 예) 대령 육사 43기 사단장 [8]
25대 김종태 예) 준장 육사 44기 제103보병여단장 [9] #
26대 김경봉 예)준장 3사 24기 사단장, 前 제203특공여단 [10]
27대 신상범 예) 준장 육사 46기 사단장, 前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
28대 민인기 예) 준장 육사 46기 사단장, 前 제27보병사단
29대 우성제 준장 3사 27기 現 사단장, 前 제1공수특전여단 [11]

4.2. 장교/부사관

  • 노경희 - 여군 36기, 준장. 000 연대장 역임

4.3.

  • 손상연 - 배우 / 2021년 11월에 입대해서 정신적 질환으로 사회복무 요원으로 대체 후 전역
  • 손창민 - 배우 / 1991년 여름에 입대.
  • 오승록 - 정치인 / 1994년 7월 여름에 입대해서 포병으로 복무하다가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어 1995년 1월에 전역.
  • 이종원 - 배우 / 1991년 8기. 연대회식때 의자 넘어뜨리는 리복 광고만 재현했다.
  • 정재형 - 코미디언 / 성대모사 영상중 본인이 72사단 출신이라고 언급했다.
  • 테스터훈 - 크리에이터 / 김재원의 영상에서 72사단 출신이라고 언급했다.
  • 장성철 - 시사평론가 / 공덕포차 방송 중 자신이 송추에 있는 72사단 출신이라고 언급했다.

5. 기타

5.1. 근무환경

파일:external/kookbang.dema.mil.kr/BBS_201507020516495360.jpg 파일:external/kookbang.dema.mil.kr/BBS_201512170429202640.jpg
2015년, 72사단 전차중대의 M48A3K. 출처 2015년 12월, 72사단 전차대대의 M48A5K 출처
201, 202연대의 경우, 1개 중대의 인원이 한 손으로 셀 수 있고 간부의 비중이 높다. 사단 주둔지는 물론이고 탄약고, 치장물자창고, 제202보병여단이 관리하는 예비군훈련장 등 각종 시설이 오라지게 넓기 때문에(…) 청소하고, 제초하고, 나르고, 닦고, 조이고, 기름치느라 죽어나기 십상인 전형적인 동원사단.

각종 훈련 위주의 200연대는 인원수나 편성이 달랐다. 중대 기준 120여 명 정도의 방위병으로 완편 구성되었고, 현역병은 5~8명 정도 배정되는 형태. 90년대 초반까지는 훈련 위주로 운영되는 전력화 연대라서 동원 관련 업무는 주업무가 아니라 가끔 지원하는 수준이었다. 사격(소총 및 주특기 사격)과 진지보수는 물론, 90% 이상이 방위병만으로 구성된 부대로서는 이례적으로 상비사단과 동일하게 정규 훈련을 시행했다. 이후, 방위병의 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1995년부터는 전형적인 동원사단으로 변했다.

사단 주둔지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고, 사단 정문을 나가 바로 앞의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서울 버스 704번을 타고 바로 구파발역, 연신내역서울역까지 향할 수 있다. 소요 시간은 차가 막히지 않는 아침의 출타 시간을 기준으로 각각 30-40분, 1시간 정도. 위수 지역은 서울 전역이다.

2019년 8월 국내 최초로 보병시단 중에서 시원스쿨과 MOU를 맺었다. 또한 카페, 노래방, VR체험장, PC방, 전자다트 게임장, 힐링존(안마의자), 스튜디오(포토존), 버스킹공연장 등 총 8종류의 문화공간으로 구성된 군 복합 문화시설인 '올림픽 문화 콤플렉스'를 개관하여 국내 유일의 복합 문화시설을 자체 운영 중인 사단이기도 했다.

5.2. 미래동원사단개편

2015년 11월 30일,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시작된 미래동원사단 개편의 마지막 부대가 되었다. 본 개편의 특징을 나열하자면, 병사 숫자를 대폭 감축해 간부 비율을 높인 점, 전차가 대대급으로 증편되고 보병연대 예하에 포병대가 창설된 점, 정보감시자산을 갖춘 정보대대가 직할부대로 창설되고 화생방장비도 증가한 점, 기존 정비·보수대대를 통합해 군수지원대대를 창설한 점을 꼽을 수 있다. 관련 뉴스

원래 일반 연대는 기본 10명에, 본부중대나 포 중대는 몇 명씩 더 있었으며 대대가 약 55명 정도였다. 이때는 그나마 중대마다 10명이라도 있어서 근무나 작업량을 어찌저찌 버텼다면, 2010년 말의 개편으로 차기동원사단이 되면서 타 동원사단 대비 적은 현역병을 보유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일반 보병대대 기준 TO가 50명이 넘었으나, 개편 직후 22명선(...)이 되었다. 한 중대당 인원이 4~5명 정도에 불과하다. 중대가 아니라 전우조지, 이건!

이후 인력문제를 감안하여 동원 물자 창고를 컨테이너화 하고 지게차를 운영한다. 이때 새로 지은 동원 물자 창고의 크기는 웬만한 물류센터 빰따구 치는 크기로 두돈반이 직접 들어갈 수 있다!! 개편 이후 근무와 작업에 대해 강도가 많이 오른다. 허구한 날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물자를 열어서 숫자를 파악하고 상태를 확인하는데... 이때쯤이면 내가 군대를 온 건지 물류기업에서 알바하고 있는지 상당히 헷갈린다. 동원사단을 전역하면 박스 테이프칠과 적재의 달인이 되어 전역한다.

이후 언제부턴가 대대본부는 5명, 그 외 중대는 4명씩으로 개편되어 병과 간부 다 합쳐서 1개 대대가 30명이 간신히 넘는 상태가 된다. 또한 연대마다 수송부가 별개로 존재했으나 부대개편 이후 수송부 인원 대부분이 전출+남은 인원은 사단 수송부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1호차 운전병마저 없어졌다. 편제가 너무 줄어들어서 차량관리나 배차운용면에서 비효율이 커지다보니 사단의 모든 수송주특기 인원들을 한 중대에 때려넣어 버린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병이 부족한 실정이므로, 사단 수송부의 배차현황을 보면 레토나나 민수승합차에 연대 간부직접운전자 열 몇 명을 줄줄이 달아놓고 자기들끼리 하루 종일 끌고 다닐 수 있도록 방임해버린다. 간부직접운전자의 확대가 향후 군의 수송지원작전방향이기도 하며, 일차적으로 말단 1호차 운전병 편제를 죄다 예비군으로 돌려버린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후 간부직접운전자의 군트럭, 노부스와 5톤 메가트럭까지 단독운행이 가능해졌다. 간부가 하기 싫어하니까 문제지...

다음으로 급상승한 근무 강도의 정도를 설명하자면, 부대개편을 실시하여 병력이 반토막난 당시, 당장에 근무부터 전과 다르게 빈도수가 와장창 증가하여 "초소를 갔다오니 하루가 끝난다." 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당장 인원은 반토막이 났는데 해야 할 근무와 작업거리는 반으로 줄지 않았기 때문으로, 병장이라도 말년휴가 갔다 와서 전역전날 복귀 혹은 주말만 부대에 있는 상황이 아닌 이상 각종 작업에 끌려나가는 건 예사. 진지공사까지 갈 것도 없이 제초/제설 작업을 한 번 하면 지옥을 맛보게 된다.

사단 특성상 인원이 적고 물자를 관리하기 때문에 허리가 박살나는 인원이 상당히 많다. 물자 중에는 피복 장구류도 있지만, 골때리는 몇몇 무기들은 무게 단위가 100kg을 쉽게 넘어간다. 이 무기들을 올렸다 내렸다 하다보면 나의 허리도 상태가 영 아니게 된다. 그리고 다들 몸이 좋아진다

어떤 대대는 혹한기 훈련 시 초소 근무를 모두 말년병장에게 돌리고, 3시간 근무 3시간 휴식 체제로 단 두 팀만으로 돌린 적이 있다. 단 소등 상태의 생활관을 이용하게는 해줬다. 딱히 위로는 되지 않는다

전역에 따른 인수인계에 어려움이 생길 것은 당연지사. 개편 이후로 간부, 일반병사 할 것 없이 여러 임무의 겸직은 암묵적으로 일상화 되었다. 중대 통신병이 공석이면 기관총수가 P999K를 매고 심지어 모 연대에선 연대장이 중대에 표창을 수여하는데 중대장이 공석이어서 병장이 대신 수령받은 경우도 있었다. 중대 지휘관이 병장?? 또한 한 명의 행정병이 작전, 교육, 정보, 인사, 보급 업무에다가 상황근무 중 통신병 역할까지 소화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군생활의 꽃인 휴가에 관해서는, 개편 전에도 한 중대에서 4명 이상 휴가를 가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한 중대 5인 이하로 편제가 개편되고 나서는 2명도 불가능하다. 인원이 20~25명인 대대에서 3~4명만 동시에 휴가를 나가도 부대 운용이 삐그덕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니 웬만한 경우 아니면 단체 외박이나 단체 휴가는 꿈도 못 꾼다.[15] 일단 사람이 없으니 포상휴가와 외박이 굉장히 귀하다. 휴가 나갈 일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일정 문제로 짤리는 경우가 많아서 위병소를 나가기 전까진 안심을 못한다. 이래저래 힘든 점이 많은 개편이다. 비슷한 일이 60, 66, 73, 75사단에서도 동시에 일어나고 만다

5.3. 동원훈련장

동원훈련장은 202여단 주둔지 내에 위치 하고 있다. 부곡리 예비군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위치해있다. 72사단 내에서 유일하게 사단 본부가 아닌 영외에 주둔한 202여단과 부지를 공유하며, 침상형 생활관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는 깔끔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5.4. 올림픽회관

올림픽회관
올림픽會館
Olympics Hall
위치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북한산로 966-8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5.5. 송추방위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금곡방위[16]와 함께 유명했던 송추방위가 속해있던 사단이다. 일명 '송추방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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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사단가

화랑의 후예들이 여기 모여서
총칼을 굳게 잡고 전기를 닦아
수도권 수호위해 신명을 바친 우리는
떨쳐나설 무적의 용사
나아가자 진군이다 싸워 이기자
그 이름 길이 빛날 72사단

오봉산 정기받아 일어선 우리
송추천 맑은 물에 기량을 닦아
겨레와 나라수호 신명을 걸고
역경을 헤쳐가는 무적의 용사
나아가자 진군이다 싸워 이기자
그 이름 길이 빛날 72사단

5.7. 미디어



6. 사건사고

파일:external/www.ilbe.com/e00007506a4d107f946f82eb989529e0.jpg
72사단 버스 정류장
  • 등산객들이 자주 찾아오는 북한산 일대에 사단 주둔지가 걸쳐 있는데, 이 때문에 간혹 골치 아픈 일에 걸려든다. 사단 뒷쪽 ○초소에서 발치 직후 무리하게 등산하다 쓰러진 민간인을 초병이 발견해 간부가 달려간 적도 있었다. 또한 부대 안에, 북한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수로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간혹 이곳을 정비하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
  • 1990년 7월 9일, 200연대 2, 4대대 쌍방 훈련을 위해 32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완전군장으로 행군하며 급경사를 오르던 병사 3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보도 자료. 게다가 이들은 현역과 비등비등한 신체조건으로 부대로 출퇴근하던 방위병[17]이었는데, 전날 새벽 4시까지 서독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결승 축구경기를 보며 음주를 한 상태에서 부대로 출근해[18][19] 불과 몇 시간 후 훈련에 참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대대에서도 땡볕 아래에서 무리하게 행군을 강행해 순전히 방위병들 탓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고참들은 어느 정도 행군에 적응이 되어있었으나 신병들은 적응이 안되어있었다.[20] 그 후 각 군에선 열사병이 일어나지 않게 극도로 경계하게 되었는데, 그 해 전 육군 부대에서 여름에 예정되어 있던 모든 훈련이 취소된 건 물론, 일과 또한 최소한의 경계 근무 등을 빼면 전부 실내에서 실시했고, 그나마도 상당한 시간을 오침에 활용했다고 한다. 이보다 더 민감한 부대에서는 낮에 담배를 좀 피우러 그늘 밖으로 나왔더니 어디선가 하사관이 튀어나와서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당장 그늘로 안 들어가?" 라며 갈구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다.
  • 2015년 9월 1일 사격 훈련 중 부사관이 한눈 판 사이 일병 한 명이 좌측 손바닥을 K2 소총 총구 위에 올려놓고 격발해 관통상을 입었다.#
  • 2014년 9월 4일 훈련을 위해 병력을 싣고 이동 중이던 모 연대 2½톤 트럭을 반대쪽에서 오던 덤프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해[21] 들이박는 사고가 있었다. 관련 기사. 게다가 사고 트럭에는 불과 전역 한 달 남은 병사도 탑승하고 있었다.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 확인되지 않지만 선탑자의 윗 잇몸 절반이 깔끔하게 날아갔을 정도로 중상이었고, 차량은 유리가 모두 깨졌으며, 문과 바퀴가 찌그러져 있었다. 해당 차량은 네 달 넘게 부대에 방치되어 있다가 반납처리 되었다. 다행히도 해당 선탑자의 말로는 큰 후유증은 없었고, 끼우는 인조 잇몸을 달고 예정된 일정대로 전역했다.

7. 여담

  • 2013년에 사단 의무대/수색대, 202연대 1, 3대대 막사 일대와 그 앞 연병장에서 푸른거탑을 촬영하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좀 슬프다. 국군 막사들이 모두 신형 막사로 바뀌면서 옛 느낌이 나는 건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나... 즉 저 당시 그 일대는 건물이고 뭐고 모조리 구식이라는 거(…) [22]




[1] 개/폐회식에서 매스 게임에 2,500여 명의 방위병력을 투입하였다.[2] 사단 역사관에는 88 서울 올림픽 당시에 고싸움을 재현하는 매스 게임에 사용했던 '고'가 보관되어 있기도 했다.[3]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를 타고 송추IC에서 빠지면 바로 앞이 부대 정문이다.[4] 군대 전체로 따지면 범용은 필승이다.[5] 과거 상급부대였던 제1군단의 경례구호가 충성이었다. 72사단이 1군단 에하에 있던 시간이 30년 이상이었기 때문에 당연했을지도?[6] M48A5를 사용한다. 과거에는 부곡리에 주둔했으나 부대개편으로 제30기갑여단 예하 51전차대대에서 더불어 살고 있다.[7]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사단장직에서 보직해임되었다.[8] 부사단장으로 사단장 직무대리를 맡았다.[9] 장병 복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 부대 내에서 OCC라고 부르는 복합 문화 시설을 처음 만든 장본인이다.[10] 재임 중 부실급식 논란이 터지면서 당시 202여단 동원훈련장에 격리되어 있던 휴가 장병들에게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실제 당시 평소 급식 수준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반찬이 후하게 나오고 급식 편성이 되어 있지도 않은 메뉴가 나오면서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11] 72사단은 1군단 작계 지역내에 있는데, 우성제 사단장은 과거 1군단 참모장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12] 이 외에도 32사단장, 교육사령관, 육군참모차장을 지냈다.[13] 이 외에도 9사단장, 1군 참모장, 3사관학교장, 1군단장, 군수사령관을 지냈다.[14] 전두환의 3남이다.[15] 전체 인원으로 보면 적어 보이지만, 대대 내 모든 중대가 일순간 20% 씩의 공백이 생기는 것.[16] 금곡방위는 73사단에 속해있었다.[17] 해당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지금과 달리 당시엔 남아도는 건장한 청년들을 이렇게라도 활용했다.[18] 이건 사망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변명이다. 집에서 출근하는 방위병이 새벽까지 축구를 봤는지 술을 마셨는지 알 수가 없다. 신병들만 죽었는데, 신병들이 전입 1달도 안 되어서 첫 훈련에 음주하고 3박 4일 훈련을 뛴다는 게 말이 될까? 그때만 해도 구타가 심했는데 신병이 음주하고 출근을 한다고?[19] 다만 사건 전날 고인은 훈련 때문에 일찍 자고 정상 출근했다는 증언도 있어 교차검증이 필요하다.[20] 소금을 나눠주지 않아서, 1군단 헌병대 조사직전에 중대장이 병사들에게 "너희는 소금을 받은 거야" 라고 거짓증언을 강요했다.[21] 운전병 진술에 따르면 건너편에서 어거지로 들어왔다고 한다.[22] 2021년 현재는 2018년 말 신축한 열정드림빌, 행복드림빌, 희망드림빌 3개의 건물을 막사로 201여단, 포병여단, 직할대가 주둔하고 있어 거주환경이 이전에 비해 환골탈태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현재는 구 의무대 위치에 군수지원대대 보급중대가 보급중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푸른거탑을 촬영했던 건물들은 직할대가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