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17 23:39:14

박종규(1944)

朴琮圭
1944년 ~ 2010년 12월 7일

육군 예비역 소장. 대통령 경호실장을 역임한 피스톨 박과 동명이인이다.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1967년 육군사관학교를 제23기로 졸업했다. 동기 중 유일한 미국 특수전교육 수료자라고 한다. 1979년 12월 12일 자정 육군특수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 15대대장으로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최세창 여단장의 지시를 받고 김오랑 소령을 사살했으며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했다.[1]

1980년 5.17 쿠데타 때 3공수여단은 서울 국립묘지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신군부는 항쟁 3일째인 5월 20일에 3공수여단을 광주로 내려보낸다.[2] 12.12 군사반란 때부터 3공수여단 15대대장이었던 그는 5.18 강제 진압에도 참여하여 유혈진압을 하였다. 본인 말로도 시위대가 무장하기 전인 20일 밤[3] 광주역에서 시위대를 향해 본인이 직접 권총을 발사했다고 시인했다.[4]

1993년 제56보병사단장(소장)으로 있다가 김영삼하나회 숙청으로 강제 전역된다. 물론 하나회 항목의 '하나회 회원 명단'에도 나와 있지만, 그는 하나회 회원이 아니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징역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사면되었다. 식도암으로 투병 중 2010년 12월 7일에 숨을 거둔다. 다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2009년 12월 9일, 김오랑추모사업회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지금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하늘의 벌이라면서 12.12에 참여했던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을 용서해달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 날 자신의 부하 3명이 불구가 되었다고 개드립친 것은 넘어가자

실형을 선고받은 만큼 군인연금을 포함한 모든 예우를 박탈당했다. 부인이 동대문시장에서 옷가게를 운영한 수입으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정의구현


[1] 드라마 제 5공화국에서는 정병주의 체포에 처음에는 반대의견도 냈으나 결국 명령에 따랐고 김오랑이 쓰러진 뒤 오열하는 장면이 나온다.[2] 3공수여단은 이미 전날 19일 새벽에 광주에 투입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고 20일 새벽에 광주로 기차를 통해 이동했던 것이다. 당시 광주에 투입된 3공수여단은 11, 12, 13, 15, 16대대였다.[3] 시위대가 최초로 무장한 시점과 장소는 다음날인 21일 오후 1시 30분경, 나주 남평지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남지방경찰청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 전남지방경찰청 2017)[4] 조갑제 "조갑제의 광주사태", 조갑제닷컴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