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현 白武鉉 | |
출생 | 1964년 7월 19일 |
전라남도 여수시 | |
사망 | 2016년 8월 15일 (향년 52세) |
서울특별시 도봉구 연세사랑요양원 | |
본관 | 수원 백씨[1] |
가족 | 아내 윤정숙, 딸 백승영, 아들 백승건 |
학력 | 상명대학교 대학원 만화영상학과 수료 |
종교 | 가톨릭 (세례명: 펠릭스) |
데뷔 | 1988년 <평화신문> 만평 |
링크 | | | | |
[clearfix]
1. 개요
전직 서울신문 시사 만화가 및 제20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전남 여수 을 국회의원 후보. 가톨릭 신자이며, 세례명은 펠릭스이다.2. 경력
1997년 : 광주전남언론노조협의회 의장1998년 ~ 2012년 : 서울신문 편집위원
2012년 :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2014년 : 여수엑스포 홍보대사
2015년 : 민주주의 국민행동 서울 공동대표
2.1. 생애
1964년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태어났다.출판한 저서는 만화로 보는 한국 현대사(글/그림), 만화 박정희(글), 만화 전두환(글/그림), 만화 김대중(글/그림), 만화 문재인(글/그림), 만화 정주영(글/그림), 만화 노무현 등이다. 이 작품들 때문에 90년대나 2000년대 데뷔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외로 경력이 길어서 80년대 운동권 만화로 데뷔했다. 만화 박정희는 아예 그림 작가가 장도리로 유명한 박순찬이니 빼고 본다면, 90년대 후반 전까지의 그의 작품들은 채색이 어둡고 그림체가 조악한 편이다.
<만화 김대중> 출간 때는 오마이뉴스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참고로 2011년 현재 Y모 인터넷 서점 판매지수에 따르면 전질 세트 기준[2]으로 박정희가 9078, 전두환이 7380, 김대중은 1494(…)다.
1988년 한국 가톨릭 언론인 평화신문[3]에서 만평을 그린 것으로 시사만화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98년 부터는 서울신문(당시는 대한매일)에서 만평을 그렸다. 노무현,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황우석, 고이즈미, 부시 가리지 않고 다 공격했다. 대북제재를 하려는 미국을 전쟁광으로 묘사하는 만평, 북한의 세습을 비난하는 만평도 있다. 민족주의 좌파 성향으로서 여야, 좌우, 국적을 가리지 않고 비판해 '촌철살인의 화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선거 직후인 2012년 말엔 정주영 관련 만화도 출간했는데,
시사만화가로서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 압축과 단순화, 풍자와 비꼬는 기술이 대단하는 평이다.
2012년 대선 시즌이 오자 서울신문을 퇴사하고 문재인 캠프에 합류, 공식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
2.2. 국회의원 출마
출마 목적은 '구태 청산'과 '박근혜 정권 저지'이다. 그는 "평생을 언론사에서 일하던 제가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유는 이명박 정권을 겪으면서 박근혜 정권만은 기필코 막아야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라고 자신의 출마 이유를 밝혔다.[5] 단수공천되었으나 국민의당 주승용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만약 당선이 되었다면 일본의 아카마츠 켄 작가보다도 이전에 만화가 출신 정치인이 되었을지도...
- 정책공약 : 주빌리법 도입 '악성가게부채탕감지원법'
- 지역공약 : '해양관광 및 산업 거점도시' '해안레저관광벨트화'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 화양지구 투자유치 활성화' '각종 마리나 개발' '365개의 섬을 특화한 관광레저상품화' '지방인재 우선 채용' '우량 중소기업 발굴' '지역 일자리창출'
2.3. 사망
총선이 끝난 뒤 한동안 소식이 뜸했는데, 석 달이 지난 뒤인 7월에 사실 백무현 화백이 암 투병(위암 3기)[7] 중이라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고 총선 유세 중에도 암 투병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주변 사람들에게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백무현은 총선 기간 중에는 본인이 암인 걸 몰랐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알고 있었으나 총선 선거유세에 마지막 열정을 불어넣고 있는 그에게 암 사실을 알리지 못한 것이다. #
2016년 8월 15일 밤 11시 55분경,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52세.# 장지는 천주교 용인공원묘원이다.
2017년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상명아트홀에서 1주기를 맞아 추모전 ‘청년 백무현전(展)’이 열렸다. 시사만화계 선후배 및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와 대학원 동문들의 추모작품은 물론, 고인의 생전 만평들 원화 일부가 전시되었다고 한다.
3. 비판과 사건사고
<만화 박정희>에서는 그 유명한 "요시 토바츠다"라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이는 박정희에게 매우 비판적이었던 재미 언론인 문명자의 저술을 참고한 흔적이다. 그러나 만화 박정희가 나오던 시점에는 오류임이 진작에 밝혀졌음에도 박정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넣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또는 김형욱을 한국에 압송해서 압착기로 눌러죽인다는 가설을 그린 것[8]이나 당시 전두환이 대한민국 정보부에서 국민 여론 반전용이랍시고 자폭 버튼으로 칼기(KAL)를 폭파시켰다며 자작극이라 하는건 도가 지나치다는 평이다. 소련 사할린에서 격추된 항공기 사건은 소련을 지목하는 게 아닌 대놓고 로널드 레이건의 음모로 묘사된다. 전반적으로 만화 박정희, 만화 전두환의 수준이 이런데 그냥 까기 위해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동원한다.
한편 ‘백무현 만평’은 숱한 화제를 몰고 다녔다. 2007년 4월 18일자 서울신문 2면,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때 부시 대통령의 말풍선[11] 만평은 국제적 논란이 됐다. 그는 “미국의 허술한 총기관리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반미주의가 강한 그의 특성상 미국에서 불상사가 터졌으니 그냥 까고 본 것이다. 희생자 33명의 대참사를 희화화했다는 각계의 비판에 서울신문은 ‘백무현 만평’을 한동안 중단했고, 그는 만평 대신 대국민 사과문을 냈다.
원문보기:경향신문 기사 논란이 확산되자 결국 이것 때문에 서울신문에서 한동안 근신처분을 당했다. 4월 18일자, 4월 19일자 참조.
2012년 대선 때는 오자 서울신문을 퇴사하고 문재인 캠프에 합류, 공식 만평을 그렸으나 10.26이 아니었으면 차지철의 주장대로 부마 시민들이 학살당했을 것이라는 만평을 그렸다가 삭제한 일이 있고 박근혜가 당선되면 독도를 아키히토에게 조공으로 바칠 것이라는 등의 저급한 반일 음모론에 기반한 만평으로 역시 비판을 받았다. #
4. 작품
1996년 -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사 2》
1997년 -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사 3》
2005년 - 《만화 박정희 1》
2005년 - 《만화 박정희 2》
2005년 - 《만화 박정희 특가 세트》
2007년 - 《만화 전두환 1》
2007년 - 《만화 전두환 2》
2007년 - 《만화 전두환 세트》
2009년 - 《만화 김대중 1》
2009년 - 《만화 김대중 2》
2009년 - 《만화 김대중 3》
2010년 - 《만화 김대중 4》
2010년 - 《만화 김대중 5》
2010년 - 《만화 김대중 완간 세트》
2012년 - 《만화 문재인》
2012년 - 《만화 정주영 1》
2012년 - 《만화 정주영 2》
2015년 - 《만화 노무현 1》
2016년 - 《만화 박정희 1》
2016년 - 《만화 박정희 2》
2016년 - 《만화 박정희 세트》
5. 출연
노무현의 16대 총선 부산도전기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사실상 제2의 주인공이다. 영화 개봉 전에도 주로 노무현의 다큐멘터리로만 알려져있었고, '두 도시 이야기'라는 제목도 그저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서 따온 이름인 것으로 홍보되었으나 실제로 '두 도시 이야기'라는 이름에는 노무현의 부산광역시 선거 도전기와 2016년 백무현의 여수시 선거 도전기를 다루었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백무현은 노무현과 이름이 '무현'으로 같은데, 한자까지도 '武鉉'으로 같다.6.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전남 여수 을 | | 25,021 (36.80%) | 낙선 (2위) |
[1] 30세손 현(鉉)자 항렬을 쓴다.[2] 낱권보다 이게 더 수치가 높다.[3] 가톨릭평화방송에서 발행하는 신문. 가톨릭신문과 함께 한국 천주교 언론의 양대산맥을 구성하고 있다.[4] 나중에 1992년 선거전 과정에서 이명박이 민주자유당으로 가겠다고 해서 관계가 틀어지지만[5] 출처 : 일요서울 링크[6] 건강 문제도 낙선 원인 중 하나였다.[7] 영화에서 3기로 나오고 있으나, 실제로는 원격전이까지 있는 4기였다.[8] 다만 친북 성향 재미 언론인 문명자와 정일권 전 국무총리의 증언이라는 부연 설명은 있었다.[9] 물론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비판받아야 마땅한 일을 저지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자세한 것은 베트남 전쟁/미군 참조.[10] 일단 이신범을 필두로 한 한나라당의 몇몇 원외 위원장들이 노르웨이까지 날아가 김대중 노벨상 항의 시위를 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11] “한방에 33명, 이로써 우리의 총기기술 우수성이 다시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