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6 22:30:25

박종규


파일:나무위키+유도.png   12.12 군사반란 가담자에 대한 내용은 박종규(1944)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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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18일, 육사 생도들의 5.16 군사정변 지지 시위를 지켜보는 정변의 주도세력. 왼쪽부터 박정희 소장, 박종규 소령, 이낙선 소령, 차지철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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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왼쪽)와 함께.

1. 소개2. 생애3. 이야기거리4. 미디어에서

1. 소개

朴鐘圭(1930년 5월 28일 ~ 1985년 12월 3일 향년 55세 총 20279일)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 체육행정가, 교육인[1], 청와대 경호실장, 국회의원을 지냈다.

2. 생애

1930년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일본에 건너가 교토에서 성장하였고, 1947년 국방경비대에 입대, 하사관으로 복무중 육군종합행정학교 제5기로 입교,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의 핵심요원으로 참가하여 박정희의 경호, 공수특전단 출동, 국무총리 장면 체포 등의 임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반도호텔 장면집무실로 쳐들어왔을때 걸려온 CIA한국지부장 드 실바의 전화를받고 5.16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미국측을 설득시키려하기도 하였다.

5.16 군사정변박정희의 경호책임자로 발탁되었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발족과 동시에 경호대장이 되었다. 1964년에는 대통령경호실장으로 승진했다. 경호실장으로 있으면서 전두환, 노태우 등의 하나회를 후원했다.

또한 경호실장으로 있으면서 암살사연구 (1971) 와 그 속편 (1973)을 집필하였다.

1973년 12월 자신과 권력다툼을 하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윤필용 사건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실각하자 2인자 노릇을 하였다. 이 때, 이후락을 몰아내고 자신이 중앙정보부장이 되기 위해 윤필용 사건을 크게 키웠다는 설이 있다.

파일:u4VoBh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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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송출된 방송화면 캡쳐장면.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박종규 경호실장이고 왼쪽 하단에 검은 형체가 문세광이다.

그러나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저격 사건으로 인하여 경호실장에서 물러났다. 자신의 휘하에 있던 경호원이 문세광과의 총격전을 벌이다가 실수로 합창단원인 장봉화양(당시 고 2)에게 총을 쏴 사살하는 어처구니 없는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게다가 박종규는 피스톨 박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권총을 떨어트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대응을 못해 더 까였다.

1978년 12월에는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마산시-진해시-창원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이듬해인 1979년 10월 박정희김영삼을 구속하려 하자 지역구 민심 때문에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같은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신민당황낙주와 자주 접촉하였다.

1980년 5월 신군부에 의해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되어 조사를 받고 재산을 헌납해야 했다. 이후 죽기 전까지 IOC 위원으로 지내다가 1985년 12월 향년 55세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노스롭 스캔들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재산 헌납후에도 다른이의 명의로 이미 많은 재산과 회사를 소유하고 있던터라 정재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은 물론 전두환에게도 접근 가능했다.

3. 이야기거리

사격을 무척 좋아했으며, 별명이 "피스톨 박"이었다. 1970년부터 1985년 사망할 때까지 대한사격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1978년 국제 사격 선수권대회를 유치했는데, 이게 한국이 최초로 개최한 세계구급 스포츠 대회이다. 그리고 이 대회를 위해서 태릉 국제사격장을 만들었다.[2] IOC위원과 대한사격연맹회장으로 당시 국제 스포츠계에서 말빨이 통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3] 1981년 서울 올림픽 유치에 막후에서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별명이 붙은 까닭이 희한하다. 그가 총을 겨누면서, 안하무인으로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전라북도 현지 시찰을 갔을 때, 이춘성 전북도지사가 박정희에게 불을 붙였는데, 라이터가 고물이었는지 불이 높게 치솟아 박정희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박정희가 다치지도 않았고 큰 소동이 없었는데, 박종규는 박정희가 안보는 틈을 타서 도지사를 골목으로 데려가서 때렸다. 나중에 도지사가 박정희에게 정식으로 항의했는데, 박정희는 그 말을 듣고 "임자 나한테 한대 맞은 셈 치세."라고 해서 유야무야되었다. 물론 이 일이 있은 후 박종규에게 이딴 식으로 할거면 때려치우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박정희가 시찰 중에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는 무의식적으로 "야 박정희 오랜만이다!"라고 했고, 박정희도 반갑다고 인사했다. 둘이 헤어진 뒤에, 박종규가 손을 써서 그 사람을 직장에서 해고되게 만들었다. 나중에 그 사람이 박정희를 다시 만나서, "니가 권력자라지만 명색이 우리 둘이 친구 사인데 반말 한번 했다고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항의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결국 박정희는 친구를 직장에 복직시키고, 박종규를 불러다가 일을 이따위로 할 수가 있느냐고 질책했지만[4] 고쳐지지 않았다.

자기 부하한테도 그런 폭행은 얄짤없었던 모양인지 채명신 장군은 본인의 회고록인 "베트남 전쟁과 나"에서 밝히길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 대구 2군사령부에 사령관으로 재직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에 지방순시를 나오자 채명신 장군은 대통령의 마중을 나갔다. 이 때 경호원이 경상북도 경찰국장인 서재근 경무관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던 것을 보고 대통령과 경호실장이 있는 자리에서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자 즉시 그 경호원을 반쯤 두들겨패고 다시 자리에 합석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과잉충성으로도 유명했다. 대표적인 예로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영남대학교 근처를 지나가면서 "여기선 대학이 안보이네"라고 한마디 하자 즉시 거대한 탑[5]을 세워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영남대가 보이게 했다고 한다(…).

박정희가 경상남도의 저도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도중 낮에는 저도에 가서 쉬다가 저녁에 진해 해군공관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며칠동안 아침, 저녁으로 대통령 일행이 이동을 하게 되니까 자연히 해군의 경호가 따르는 등 여러 사람들이 수고하는 것을 보고 저도에 위치한 목조 주택을 수리해서 그곳에서 잠을 자는 게 좋겠다고 지시를 내리자 정주영과 함께 그 목조 주택을 석조 주택으로 둔갑시킨 전력도 있어 다음해에 온 박정희가 노발대발하기도 했다.[6]

김종필 증언록에 따르면 술에 만취하면 청와대 본관 앞에서 박정희 나오라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이튿날 가볍게 꾸짖었다고 한다.

생전에 경남대학교를 소유하였으며,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의 박재규 통일부 장관(現 경남대학교 총장)이 그의 친동생이다.

그가 사용하던 권총이 현재 목동 사격장에 있다. 설마 저 권총이 피스톨 박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물건…?[7]

의외일 수 있겠지만 학구파적인 면모가 있었는데 하사관시절부터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영어, 독어, 불어에 능통하였고 죽기 몇년전에도 러시아어히브리어를 공부중이었다고 한다.

4. 미디어에서

파일:ParkJK-4.jpg
제3공화국에서는 배우 박근형[8]이, 제4공화국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김봉근이, 코리아게이트에서는 배우 정성모가 이 인물을 연기하였다. 이 중 제일 비슷했던 건 역시 김봉근. 특히 비슷한 문제아 캐릭터로 나온 차지철과 투 샷이 잡히면 시너지가 대박이었다.
[1] 경남대 총장[2] 애당초 태릉이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자. 문화재인 왕릉 옆에 사격장을 짓는다는 자체가 요즘 시대라면 택도 없는 얘기다.[3] 김운용은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나서 국내외에서 부각되기 시작했다.[4] 사실 박종규가 사람 팰 때마다 질책했다.[5] 넓디넓은 영남대학교 캠퍼스 가운데 유난히 멀리서 봐도 우뚝 솟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 건물이 영남대 중앙도서관이다. 3~5층 정도의 고만고만한 건물 중에서 유독 22층이라는 초고층을 자랑하는데 2005년에 한번 리노베이션을 하여 현재는 당시 세워진 그 건물 그대로는 아니다.[6] 이 건물이 대한민국 대통령 휴양지인 청해대이다.[7] 이 사격장과 박종규의 인연은 또 있는데, 사격장의 운영자인 박종길(국가대표 사격 선수 출신,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박종규가 발탁해 국가대표가 되었던 인물이기 때문. 박종길씨는 아예 리틀 피스톨 박으로 불리기도 했다고.[8] 이후 제4공화국에서 김재규를 연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