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5 00:39:41

현대 유니콘스/연고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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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타임라인3. 연고이전 옹호론
3.1. 흥행 실패3.2. 인천시의 비협조3.3. 빈약한 도시구조3.4. 인천은 서울과 다르다
4. 연고이전 비판론
4.1. 개선되고 있었던 도시환경4.2. 오랜 암흑기4.3. 현대그룹의 근시안4.4. 인천, 수도권이라는 메리트4.5. 연고지 이전 후 현실은?
5. 총평

1. 개요

2000년 현대그룹이 일방적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를 인천광역시에서 서울특별시로 이전을 추진하면서 생긴 여러 사건을 정리한 문서. 현대그룹은 여러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유니콘스의 연고 이전을 강행하였고, 이에 많은 인천 팬들이 실망감에 빠지고 분열되면서 크게 갈라져버려 안 그래도 없는 팬층이 더 줄어들었다. 삼미청보가 하위권에 머물러도 야구장을 떠나지 않던 인천 팬들이건만, 당시 많은 팬들이 그만큼 충격과 실망감이 얼마나 무척 컸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

기존의 인천광역시 팬들은 SK로 간 경우가 많고, 비인천권 팬들은 현대에 남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원래 이들 사이는 같은 한 지붕에서 응원하고 같이 웃고 울던 관계였는데, 지금은 서로 증오하고 이를 갈고 싸우는 관계가 되었다.

2. 타임라인

연고 이전 직전인 1999년 시즌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는 못했지만, 기존의 삼청태 시절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매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관중 때문에 2000년 1월, 그룹 차원에서 돌연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하겠다는 일방적인 선언을 한다. 원래 현대그룹의 계획은 광역연고에 포함되어 있던 수원 야구장에서 대략 3~4시즌 정도를 치르고 그 사이에 서울에 전용구장을 확보해 최종적으로 서울로 이전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목동 야구장의 증·개축을 시도하였으나 그 비용이 200억 이상으로 추산되자 신축으로 가닥을 잡았고 상암동에 25,000석 규모의 전용구장을 지어 이전하려 하였다. 기사

이 과정에서 스포츠신문을 통해 현대의 연고지 이전 소식이 들려왔고 이 소식을 접한 인천의 현대 팬들은 강하게 분노한다. 인천 구월동 현대해상 건물에 있던 구단 사무실에 연고지 이전에 항의하는 전화가 이어진 것은 물론 당시 운영되던 구단 공식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도 연고지 이전을 반대하는 항의 글들이 쏟아졌다. 그러자 현대 구단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일간스포츠에 "제9구단을 추가로 창단해 기존의 유니콘스를 인천에 존치시키고 9구단을 서울 연고팀으로 키우겠다"는 거짓 해명 기사를 내면서 언론 플레이를 했다.
새천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현대 유니콘스 프로야구단 홈페이지 관리자입니다.

연고지 문제와 관련한 구단의 공식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되었던 구단의 연고지역 이전에 대해 구단에서는 전혀 고려한 바가 없습니다.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할 당시 인천·경기·강원 연고지 영입권으로 450억원을 주었습니다.
그러한 영입권을 포기하고 연고지를 이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 2002년 완공 예정인 문학구장에 대한 장기 임대 등 구장의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구단에 확인 절차 없이 보도된 것입니다.
연고지는 쉽게 버리고 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드립니다.
저희 구단을 믿어주시고 계속 성원 부탁드립니다.

정상 새천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프로야구단 드림
그리고 이 와중 현대 유니콘스 공식 홈페이지에 위와 같은 글이 올라온다.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현대 유니콘스 구단 프런트에선 연고 이전을 할 계획이 없었다. 문학 야구장의 설계에도 참여하는 등 계속 인천을 사용할 생각이었다.[1] 홈페이지에 굳이 저런 글을 올린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던 것. 당시의 연고이전 강행에 대해 선수단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박재홍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이 눈물로 호소하면서까지 구단의 연고이전을 반대했었던 반면 정민태나 박진만 등 몇몇 선수들은 연고이전 소식에 반색하며 환영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팬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하지만 훗날 둘은 이에 관해 루머라 일축했으며 오히려 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이였다고 밝힌 적이 있다. 현대그룹은 프런트와 선수단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도저식으로 프로젝트를 강행했고, 그렇게 현대는 선수단과 팬들의 동의를 일절 구하지 않고 그룹의 이익만을 쫓기 위해 인천을 뛰쳐 나갔다.

한편 자금난으로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단을 기반으로 하여 SK 와이번스가 창단된다. 현대가 서울로 떠남에 따라 SK는 곧 비게 될 인천을 연고지로 삼으려 했다. 이 때는 아직 인천이 현대의 연고지였기 때문에 SK는 현대 구단에 연고 침해 보상금 54억원[2]을 지급했고, 현대는 이렇게 받은 54억원을 LG 트윈스두산 베어스에게 각각 27억씩 지급해 서울에 입성하려고 했다. 이 때 LG와 두산은 어차피 우리에게 올 돈인데 현대를 거치지 않고 우리에게 27억씩 줘도 되지 않냐는 의견이었으나 SK는 우리의 거래 상대는 현대라며 거절한다. SK로서는 난데없이 LG와 두산이 튀어나온 꼴이니 현대에게 돈을 지급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시즌 중반에 모기업 현대전자의 부도와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후 그룹 내부에서 터진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이 분열될 위기에 처하자 자금난 문제가 심각해져서 서울 입성이 미뤄지게 되었다. 상술했듯 SK로부터 받은 인천 연고지 보상으로 받은 54억원을 서울 연고 구단인 LG 트윈스두산 베어스에 주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으나, 하이닉스재정난이랍시고 이 돈을 가로채서 회사 운영비로 써먹었다.[3] 결국 서울 연고도 얻지 못하고, 인천 연고도 SK에 줘 버린 셈이 되어버린지라 기존의 제2홈구장이었던 수원야구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삼게 된다. 서류상 현대의 연고지는 서울이었지만 서울시내에서 프로 전용구장으로 쓸만한 경기장이 없어서 SK 연고권 내의 수원 야구장을 빌리는 셈이었다. 사실상의 무연고. SK 와이번스의 입장에서는 돈은 돈대로 주고 연고지는 연고지대로 침해받는 뚜껑 열릴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후 모기업 하이닉스2001년부터 해체가 될 때 까지 단 한 푼의 지원금도 주지 않았다. 하이닉스는 공식적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더 이상 지원금을 주지 않겠다며 빠져나갔고, 2001년 이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범현대가의 지원금으로 근근히 버텨왔다. 이 어려운 상황을 겪자 현대자동차그룹2001년 인수를 추진했으나 하이닉스는 인수금액으로 900억을 제시했고, 여기에 정나미가 떨어진 정몽구 회장은 제안을 철회하고 비교적 저렴한 값을 부른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했다.[4]

그래도 끊임없이 지원을 해 주던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대북송금 특검 사건으로 조사를 받다가 2003년 8월 자살했다. 정몽헌에 이어 현대그룹을 책임지게 된 현정은[5]은 2005년을 마지막으로 매년 주던 40억의 지원을 끊었고, 이전까지 80억을 지원하던 현대자동차그룹과 40억을 지원하던 현대해상 측에서도 현대그룹이 손을 털자 지원에 항의하던 주주들을 납득시킬 명분이 없어져 유니콘스에게 보내던 모든 지원금을 끊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이미 2001년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같은 리그에 2개 팀을 지원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발을 빼야만 했다. 결국 KBO가 직접 나서서 그동안 모인 야구 발전 기금까지 사용해가며 유니콘스를 위탁 운영했고 어떻게든 인수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이처럼 현대 유니콘스의 서울특별시 연고 이전은 대주주 하이닉스의 무책임한 행태로 인해 실패로 끝나게 되었고, 기존 팬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연고이전을 추진했던 현대그룹 고위 간부들은 뒷날 2005년, 구단이 어렵게 되자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고 대거 빠져나가 버렸다. 이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인기 구단이라고 보기 힘들었던 현대 유니콘스의 인기는 수원으로의 임시 연고 이전 이후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후 8개 구단 체제 유지와 현대 구단의 어려운 재정상황을 등을 감안해 KBO2007년부터 도시연고제를 시행하였다.[6] 하지만 수원 연고로 전환해서 정착하기에도 이미 많이 늦은 상황이었다.

서울특별시 입성 실패는 재정적인 문제 외에도 유니콘스를 괴롭혔는데, 현대는 수원구장을 잠시 임차[7]하는 상황이라 연고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2003년 드래프트부터 1차 지명권을 박탈당했다. 이로 인한 팀 뎁스의 약화는 히어로즈로 재창단한 이후에도 극심한 전력 저하에 시달리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위 라운드도 아니고 무려 6시즌동안 1차 지명을 뽑지 못했으니...[8] 히어로즈 약체화의 1차적인 원인은 폭풍 선수매각이었지만, 사실 선수매각은 주로 투수진 쪽에 집중되어 있었고 야수진에서는 이택근[9]황재균이 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넥센 히어로즈는 눈뜨고 못 봐줄 물빠따를 선보였다. 1차 지명 박탈 기간 6년동안의 드래프트에서 뽑은 야수 중 1년이라도 규정타석을 채운 야수가 강정호황재균밖에 없다. 물론 규정타석을 못 채웠어도 팀에 충분히 공헌했을 수 있다. 하지만 한 시즌이라도 WAR이 1을 넘긴 야수 역시 저 둘이 끝이다. 현금 트레이드가 아닌 이유로 이적해서라도 규정타석을 채웠거나, 한 시즌이라도 WAR을 1을 넘긴 야수도 지석훈, 오재일 둘 뿐이다. 2012년부터 살아난 히어로즈 타선을 이끈 선수들은 대부분 히어로즈로 재창단된 이후 지명하였거나 타 팀에서 영입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고 2003년 한국시리즈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연달아 우승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10] 그러한 원동력이 된 바탕은 구단만의 독특한 가족같은 분위기 형성이 가장 큰 밑바탕이 되었고, 이는 키움 히어로즈에서도 이어진다.

3. 연고이전 옹호론

3.1. 흥행 실패

그런데 현대 기업이 연고지 이전을 추진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99년 개막전. 전년도 우승까지 한 팀임에도 불구하고 개막전 관중석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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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두고 일부에서는 1999 시즌 자체가 IMF의 여파로 야구인기가 사그라들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정작 위의 표와 그래프를 보면 99년은 95년 이래 처음으로 야구 관중 수가 상승세를 기록한 해였다. 실제로 1998-1999 사이 팀별 관중 보면 저 사이에 관중 수가 줄어든 구단은 오로지 현대와 쌍방울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대가 전년도 성적이 시망테크를 탄 것도 아니며 1998년은 현대가 인천야구 사상 처음으로 우승한 해였다. 1996년에도 현대는 정규리그&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었고 그 이전인 94년에도 태평양으로 정규리그&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룩했다. 이쯤 되면 맨날 져서 안 간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실제로 태평양 준우승 다음해인 95년에는 여전히 40만 명대의 관중을 기록했고, 1996년에는 리그 전체 관중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현대 관중은 오히려 늘었다. 결국 1996년의 475,910명을 기점으로 현대그룹은 이미 인천에서 더 이상의 관중동원은 힘들다고 판단한 것. 1년에 많아야 12경기 정도였던 수원 홈 경기가 1999년에 21경기로 늘어난 것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인천의 낮은 관중 동원 능력은 도원구장의 열악한 시설과 교통 때문이며 이는 최신 문학야구장이 들어서면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막말로 "우승을 해도 좁아터진 도원야구장조차 제대로 못 채우는" 도시에서 거대한 문학야구장을 채울 만한 수요를 창출하리라 당시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장 동시기에 롯데 자이언츠는 그 거대한 사직야구장에 1997-1998년 연속 연간 고작 40만여 명밖에 동원하지 못하면서 텅 빈 큰 야구장의 공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광주, 대구 또한 열악한 야구장 상황에 불만만 많다가 연간 관중이 50만을 돌파한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신구장 건설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실제로 그 최신 문학구장조차 2006년까지도 도원구장과 비슷한 관중동원 능력을 보여준 것을 보면 단순히 야구장 문제가 아닌, 인천야구 차원에서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찾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 도원구장 교통이 안 좋지도 않았다. 수도권 전철 1호선 도원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5분 거리였다.

1999년이 인천 경제를 떠받치던 대우그룹의 몰락과 그로 인한 지역 내 기업들의 연쇄 부도로 인천 지역 관중 동원능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라고 하지만,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범한 프로야구의 흥행은 더더욱 바라기 힘들어진다. 어쨌거나 현대그룹은 현대 유니콘스의 성공을 위해 무려 470억이라는 거금을 쏟아부은 판이었고, 특히 야구단 대주주였던 현대전자는 1998년 LG전자 반도체사업부 인수 이후 경영 상황이 꾸준히 악화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태평하게 몇 년을 두고 길게 투자할 것을 바라는 것도 무리다. 오히려 야구단을 냉큼 팔아넘기지 않고 연고지를 옮겨서라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을 기특하게 생각해줘야 할 판이다. 더불어 서울은 현재 시점에서 프로야구팀 세 개 써도 잘 돌아간다. 다만, 서울은 수원 야구단 창단 이전까지 인천 및 경기 서부를 제외한 수도권 전역에서 야구팬들이 찾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3.2. 인천시의 비협조

게다가 그 시절 인천시청의 한심한 프로구단 지원은 인천 스포츠팬들 사이에선 악명이 자자했기도 했다. 대우 제우스는 홈 경기장인 인천도원체육관의 낙후된 시설 수준을 견디기 어려워 대체 체육관을 요구했지만 인천시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삼산체육관이 완공된 2006년까지 부천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쓰는 판이었다. 남자배구의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도 도원체육관에서 어찌어찌 버티다가 계양체육관이 완공되자마자 옮겼고, 여자농구 금호생명 팰컨스는 도원체육관 시설을 견디지 못해 아예 소도시인 구리로 이전해버릴 정도였다. 2014년 신한은행 에스버드가 안산을 떠나 인천으로 오면서 도원체육관을 다시 쓰고 있지만.

명목상 연고지라 할지언정 인천에서 1983년 창단한 유공 코끼리는 1984년 서울로, 1984년 창단한 현대 호랑이 축구단은 1990년 울산으로 연고를 이전했다. 프로스포츠 팀에 대한 협조는커녕 조금의 관심조차 없었다는 반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신구장이 건설된다 한들 현대가 인천에서 과연 비전을 찾을 수 있었을까? 낙후된 숭의야구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인천시가 협조했더라면 적어도 현대가 도망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결국 이 때의 대참사를 경험한 인천시는 새로 인천에 입주하게 된 SK 와이번스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게 된다. 인천에 새로 자리를 튼 SK 와이번스는 인천시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문학야구장을 마음껏 리모델링을 하며 팬서비스를 다각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천시의 태도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 이전으로 인천 민심이 한껏 격앙된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이다.

3.3. 빈약한 도시구조

더불어 데일리스포츠인 프로야구의 특성에 완벽하게 반하는 인천시의 도시구조로 인한 한계도 무시하기 어렵다. 당시 인천1호선 연선에 계양, 연수, 송도 등 아파트 단지들이 대거 계획중이었다고 하지만, 인천시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가 이들 화이트칼라 중산층을 수용할 업무지구나 청년층을 붙잡아둘 4년제 종합대학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래 반론에 인천시 규모에 4년제 종합대학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헛소리가 있는데 인천보다 현저히 인구가 적은 대전이나 광주의 4년제 종합대학이 인천보다 많은 것만 봐도 간단히 박살나는 논리다.[11] 각종 단과대까지 합쳐서 비교해봐도 인천은 송도의 손바닥만한 해외대학 캠퍼스나 안양대 강화캠퍼스(...)까지 박박 긁어와야 간신히 비슷한 수준이다.

송도국제업무지구가 이 때에도 추진은 되고 있었지만, IMF로 인한 국책사업 축소의 광풍 속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었으며 2017년 현재에도 송도, 연수, 계양 주민들은 광역버스나 전철 타고 서울로 출퇴근한다. 지방 광역시들은 인천보다도 인구가 적지 않냐는 반론이 있는데 인구가 아무리 많아봐야 그 인구가 - 심지어 청장년층을 가리지 않고 - 인천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야구장과 동선이 완전히 따로 노는 상황에서는 그저 허수에 불과하다. 당장 송도 인구 12만이 넘은 지금 송도 주민들이 어디로 출퇴근하는지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SK 와이번스가 왕조로 군림하던 2007~2010 시기에조차도 총관 100만명도 못 넘기고 무료표 살포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쳐야 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근본적으로 평일 중산층 관중을 전혀 유치할 수 없는 도시구조 속에서 그나마 관중을 모으려면 남동공단이나 인천항 등지의 블루칼라들을 대상으로 무료표를 뿌리는 것 외에 딱히 답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출혈마케팅조차도 인천시의 극악한 인구유출비율을 보면 녹록한 일이 아니다. 2015년 기준으로 인천시의 전체 통근·통학인구 대비 타지역 통근·통학비율은 24.9%(!), 주간인구유출비율은 14.8%로 경기도보다도 높으며 이는 여타 지방 광역시에 비해 적어도 2배, 많게는 3배 가까운 수치다.[12] 더욱 문제는 2010년 그나마 21.2%였던 타지역 통근·통학비율과 12.3%였던 주간인구유출비율이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15년 기준 60분 이상 통근·통학 비율도 무려 26.9%[13]나 되며 120분 이상 통근·통학 비율은 3.9%로 0.4%인 광주광역시의 10배(!)에 달한다.[14] 인천광역시의 인구는 현대가 연고이전한 직후인 2000년에 247만명으로 집계되는데 이 때도 이미 타지역 통근통학비율 25.8%라는 무지막지한 비율을 자랑했다. 아래에서 도시구조가 개선되어 가고 있다고 항변하는데 15년간 송도, 청라, 남동 등을 열심히 개발한 결과 타지역 통근통학비율은 전혀 개선된 것이 없다.

시외통근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타 지방 광역시들도 마찬가지지만, 이들 지방도시의 시외 통근은 일반적으로 교육이나 생활여건이 좋은 광역시 내에 거주하면서 사업체가 있는 시외로 오가는 것이기에 일과만 끝나면 대부분의 여가생활은 광역시 내에서 이루어진다. 반면에 인천의 시외통근처는 다른 곳이 아니라 서울이다. 지방 광역시들이 도시의 절대적인 규모 자체는 작아도 지역민들의 정주성이 높기 때문에 '내 지역 팀'이라는 애착이 강하고 광역시를 중심으로 하는 광역권 전역에서 팬덤을 형성하는 반면 인천은 전형적인 수도권 도시로 정주성이 낮고 지방 출신 이주민들의 비중이 높으며 인천을 중심지로 여기는 주변도시는커녕 인천과 엮이기만 해도 손사래를 치기에 바쁜 도시들뿐인 것이 현실이다. 문학에 SK팬보다 한화팬이 더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15] 바로 이웃한 서울이나 수원 경기에서 SK 원정팬들의 비중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홈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타지역에 원정팬덤이 강력한것도 아니며, 그 외에 어떤 특출한 시장성과 상업성을 가진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연고지가 바로 인천이라는 도시의 현실이다. 여기에 남북으로 길쭉해 생활권이 조각난 인천시의 도시구조까지 감안하면 답이 안나온다. 수인선이나 7호선 연장 등의 접근성 개선이 SK 와이번스의 흥행실적에 의미있는 기여를 하고있는지도 불분명하다.

3.4. 인천은 서울과 다르다

인천은 서울에 인접해 있어 위성도시 취급을 벗어나기에도 벅찼지 권역 중심으로서 인정받아본 역사가 없다. 당장 위에서 예시로 든 4년제 대학이나 통근수요를 보면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다고 이들 지역이 어느 한 팀의 팬덤이 꽉 잡고 있어서 원정팬이라도 많이 모이면 모를까.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 뒤에 들어온 SK는 KBO 역사상 유례없는 도시연고 강조를 통해 아예 인천 외부의 경인지역 팬덤은 사실상 포기하고 인천 내부에만 집중하는 극약처방을 내려야 했다. 전국구로 서비스망을 운영하던 거대기업 현대의 눈에 인천의 이같은 한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기업의 입장에서 기회가 있는데 어느 쪽을 택할지는 너무나 뻔한 이치다.

4. 연고이전 비판론

4.1. 개선되고 있었던 도시환경

물론 1999 시즌 당시 관중수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1998 시즌에 가장 적은 관중 감소폭을 기록한 팀 또한 바로 현대 유니콘스였다.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외지인이 많은 인천 인구의 특성상, 이를 관중수 증감과 단순 대입하는 것이 크나큰 무리가 있다는 것 쯤은 인천 야구팬이 아니라 야구를 오래 본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도원구장광주구장보다도 더 오래되고 낡은 구장이었으며 무엇보다 무허가 건축 시설이었다. 실제로 현대 구단은 원래 도원구장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려 했으나 무허가 건축시설이라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도원역 역세권이라 교통이 좋아보일 것 같지만 과거는 현재와는 달리 환승제도도 없었으며 인천 도시철도 1, 2호선도 개통되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졌고[16] 20년 전보다 훨씬 교통이 발전한 지금에도 도원역은 그리 교통이 편리한 곳이 아니다. 게다가 과거의 인천 버스는 미개발지가 많아 지금보다 훨씬 노선의 굴곡이 심했고 배차간격도 길었고 경인선으로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경인선 연선은 주로 상업지역, 공업지역이 발달하여 대체로 주거지구와 이격되어 있다.

특히 1999년 관중 감소의 직접적 영향 중 하나였던 인천 지역의 경기침체는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한 요소였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외환위기의 충격은 대우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위치해 있던 인천이 타격을 다른 도시들에 훨씬 크게 받았었다. 비록 대우그룹은 부도를 맞았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인 자동차 부분은 매각이 될지언정 인천을 떠날 일은 없었고 이 부분이 정상화되면 인천 경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게다가 문학야구장과 연계되는 인천 도시철도 1호선 연선에는 계산지구나 연수지구 등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인데다가 이런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어느정도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들인 만큼 신규 수요를 창출할 여지도 많았다. 당장 연수구의 송도국제도시부터가 이 시기에 이미 한창 추진 중이었다. 또한 2016년에야 인천역까지 개통되었지만 당시에는 1990년대 말에 개통될 예정이었던 수도권 전철 수인선이 인근 원인재역에서 인천 도시철도 1호선과 환승 예정이었기 때문에 계양구, 부평구, 연수구 전역,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일대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었다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안산시 출신의 SK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광현 덕분에 수인선이 개통하기 전부터 버스체계 개편 등의 영향으로 인천시민과 경기도 서남권 도민들이 꾸준히 SK 팬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웹툰 작가 이말년이다.

4.2. 오랜 암흑기

게다가 인천 연고 프로야구 팀은 꼴찌를 밥먹듯이 했는데 갑작스레 우승 한 번 했다는 이유로 큰 폭의 관중 증가를 바라는 것도 무리이다. 야구의 열기가 가장 강한 롯데 자이언츠조차 팀이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 때는 관중이 적었다. 그리고 현대를 뺀 삼청태는 거대 재벌이 맡은 팀들도 아니었던데다, 잦은 후원 기업의 변경으로 결코 애착을 갖기에 쉬운 조건이 아니었다. 애초에 십 수년간 거의 최하위권과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의 경기에 직관을 갈 관객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부산, 경남의 유일한 팀이었던 롯데 자이언츠와 달리 바로 옆 서울에도 두 팀이나 있는데다 이주민들은 자신의 고향 팀을 응원하게 되지 않겠는가? 또한 겨우 우승 한 번 했다고 근본적인 관객 증가를 바라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이러한 논리를 가지고 연고지를 옮긴 팀이 프로농구에서는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있으며, 연고지를 옮긴 후로도 지역밀착 마케팅 면에서 고양 다이노스와 그 뒤를 이은 고양 히어로즈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팀이 대구시민들로부터 어떠한 취급을 받는지 상기한다면 옹호하기 어렵다.

4.3. 현대그룹의 근시안

애초에 현대는 인천 연고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현대 유니콘스의 인천 연고 기간은 고작 4년이다. 고작 4년을 선수 현질했다고 해서 관중수의 급격한 증가를 바라기는 어려우며, 지역팜 지원 및 구단 내부 운영시스템 구축이 같이 진행되어야 한다.[17] 또한 당시 레드오션인 서울에 기존 연고 2팀을 두고 경쟁해서 기존 인천 연고 시절보다 얼마나 관중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무리한 3개의 수도연고팀이 어떤 경영상황에 있는지는 도쿄돔을 홈구장으로 썼던 시절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2003년까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두 팀이 사용하는 잠실과는 달리 목동은 문학, 잠실보다 훨씬 배후 인구가 적으며 당시는 그나마도 지금보다 목동구장의 배후 인구가 더 적었다. 오히려 새 구장이 될 문학구장의 배후 인구는 송도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 배곧신도시 등 각종 택지지구 개발 및 연세대학교 등의 이전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잠실 구장도 아닌 목동 구장으로 이전을 추진하면서 관중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심지어 목동은 인천과 그리 멀지 않아 팬덤도 겹치는 상황까지 예견되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2002년 문학야구장의 개장 당시 SK는 시즌 6위라는 부진한 성적 속에서도 402,732명의 관중수를 기록하였고, 이는 2001 시즌의 178,645명보다 무려 2.3배나 증가한 관중수이다. 이는 열악한 도원구장의 상황 역시 관중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데이터라고 볼 수 있다.[18] 또한 연고지 이전으로 상당수의 팬들이 이탈한 상황에서 이 정도만 해도 선방이다. 당시 인천의 야구팬들이 삼분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는데 기존 수준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수요가 없었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신축하고 있던 문학야구장의 토대를 다진 건 다름아닌 현대 유니콘스였다. 그리고 이러한 SK 와이번스의 다양한 팬 유치 정책은 현대 유니콘스의 야반도주로 인한 야구 팬덤 이탈이 주요 원인이다.

4.4. 인천, 수도권이라는 메리트

또한, 인천이 블루칼라 노동자가 많다며 관중 동원에 불리하다는 주장은 쉽게 논파되는데 대구, 광주, 특히 창원 등은 인천보다도 업무지구가 현저히 적고 일자리의 질 면에서도 인천보다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지역이다. 대구, 광주, 창원에서 일자리를 찾아 인천으로 오는 경우는 많지만 그 반대는 거의 없지 않은가? 4년제 종합대학 역시 인천이 적은 편이나 서울 서남권, 고척 스카이돔 인근의 4년제 종합대학은 그나마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가 있으나 각각 서울 2호선, 서울 9호선을 통해 잠실 야구장으로 바로 연결되어[19] 실질적으로 서울의 4년제 종합대학이 많은 것이 고척, 목동 연고 구단의 흥행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인구가 많다는 것도 큰 의미가 없는 게 특히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인천의 자족성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았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도 현재보다 압도적으로 적어 '무료표 뿌리기' 운운할 상황이 아니다. 소위 '서울에서 망하면 돈 없어서 인천 간다'는 희대의 개드립도 일부 사례 때문이지 인천도 대기업, 건실한 중견기업이 적지 않은데다 인천 자체의 인구만으로도 최소한의 업무지구는 당시에도 존재했다. 그나마도 인천 인구의 3 분의 1 수준인데다 자족성이 인천보다 낮은 수원 역시 kt wiz 창단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수원의 거대한 경제축인 삼성전자는 이미 삼성그룹에 삼성 라이온즈까지 있다. 창원 역시 롯데와 팬덤이 중복되면서 배후 인구도 인천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고 창원시는 인천에 비해서도 블루칼라 비중이 압도적인 도시임에도 관중 동원에 문제가 없다. 차라리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조차 서울 연고 이전을 추진하기도 했던 것을 비추어 보면 인천의 도시 특성을 가지고 논하는 것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인천은 서울과 같이 이주민으로 구성된 도시이나 시간이 갈수록 '서울 출신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인천 출신자'가 늘어나는 것을 고려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관중 동원이 유리해지면 유리해졌지 불리해지진 않는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애초에 단순히 연고가 '서울 구단'이라는 이유로 '서울부심'을 부리기 위해 응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 팀이 서울에 오래 머물면서 서울시민들에게 서울 팀으로 인정받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을 대표하는 프로야구 팀은 LG두산으로 단순히 서울을 선망하거나 도시 이미지가 좋아서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대를 이어 지역 연고팀인 LG두산을 응원하는 것이다. 연고 의식은 옹호론에서 말하듯, 단순히 주관적인 도시 이미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만 보더라도, 도시의 이미지에 비해 시민들의 애향심이 강한 시카고라는 좋은 사례가 있다.

4.5. 연고지 이전 후 현실은?

연고지 이전은 대개 관중과 인기 증가를 위해 하는데, 현대의 연고지 이전 후 현실은 연고지 이전이 관중과 팬을 늘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오히려 빅마켓의 장점조차 제대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성적 및 구단 운영은 탬파베이 레이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등과 긍정적인 의미에서 비교되는데 지역연고의식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부정적인 의미에서 비교되며[20], 인기는 구단합병 후 고전을 면치 못한 오릭스 버팔로스와도 비교되고 있다. 오릭스는 홈구장도 상상 이상으로 막장이라...[21] 또한 임시연고지소홀히 했다는 점에선 지바 롯데 마린스와 상당히 유사하다.[22]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에서 연고지 이전을 한 후 임시로 연고로 삼았던 곳은 수원이었다. 당연하게도 수원 야구팬들은 얼마 지나면 서울로 떠나버릴 현대에 마음을 주지 않았으며, 수원야구장의 시설도 상당히 안 좋기로 유명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현대 왕조를 이룩할 정도로 현대의 뛰어난 성적과는 별개로 관중석은 텅텅 비어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 수원 시민은 연고지에 정착한 역사가 깊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년 창단한 수원 FC에게 애정을 주었고, 당연히 수원은 야구보다는 축구에 더 열광하는 도시였다. 그리고, 2015년 kt 위즈 창단 이후 수원시민들은 수원야구의 적통으로 경기도를 광역연고지로 하는 kt를 꼽지 현대를 꼽지는 않는다.

그렇게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지원이 끊기면서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그 선수단을 승계하면서 새롭게 서울 연고팀으로 창단한 히어로즈는 비인기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서울 연고팀인 LG와 두산은 이미 서울 야구팬들을 양분하고 있었고, 연고지를 이전한 현대를 기반으로 태어난 히어로즈는 기존 팬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연고지 이전으로 야구사가 끊긴 인천을 연고로 한 SK보다 확연히 관중 수에서 밀리는 면을 보여주고 있다.[23] 이는 2019년 SK의 경기당 평균 관중이 13,652명으로 전체 구단 3위를 기록한 반면 히어로즈는 정규 시즌 3위, 돔구장, 서울이라는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평균 관중이 6,304명으로 전체 구단 최하위를 기록했다. 수원 연고 신생팀이면서 창단 이래 하위권을 맴돌고있는 KT(7,455명)보다도 적고, 프로야구 연고도시 중 인구가 가장 적은 창원시에 연고를 삼고 인근 도시인 부산의 롯데 팬덤과도 겹치는 NC(9,865명)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민망할 수준이다. 인구 천만의 서울 팀이 인구 백만의 창원 팀에게 관중수로 밀릴 지경로 관객 동원이 심각하게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고척 스카이돔 내의 상가 세입자들도 임대차 분쟁 및 입지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결과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서울 공동화 정책을 펼친 K리그의 경우와 달리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 두산이 있어 이 팀들을 비집고 들어가 팬층을 확보한다는 것부터가 이루기 힘든 목표였다. 지역밀착을 리그 발전계획의 골자로 내건 J리그에서도 도쿄 연고팀보다 사이타마현를 연고로 하는 우라와 레즈[24], 카나가와현을 연고로 하는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카와사키 프론탈레[25]가 훨씬 더 인기있고 잘나가는 팀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연고지를 서울로 하기만 하면 인기가 늘어날 것이라는 발상이 한낱 망상일 뿐임을 증명한다.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천을 깎아내리려 애써 봤자, 현대 유니콘스의 후신을 자처하는 히어로즈의 흥행 실적은 연고지 이전이 최소한 성공적이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일단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 입성을 하더라도 접근성이 뛰어난 잠실 야구장이 아닌 목동 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삼아야 했을 것이고, 고척 스카이돔 개장으로 또다시 고척으로 홈을 옮겨야만 했을 것이다. 문제는 목동 야구장은 고교야구 등 아마추어 야구용으로 설계되어 프로야구 팀의 홈 구장 치고는 시설과 환경이 좋은 편이 아니었고[26] 인천과 비교적 가까워 인천 연고팀이 재창단될 것이 당연한 것임을 고려하면 인천 연고 신생팀의 팬 베이스가 겹치거나 인천과 주변 지역을 주요 팬 베이스로 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어로즈는 서울 서남권을 팬 베이스로 삼고 있지만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호남권 이주민이 많아 특히 금천구는[27] 기아 타이거즈 팬덤이 큰 지역이고 나머지 지역 역시 서울 야구팬들 역시 LG와 두산을 응원했다. # 인접한 인천과 부천은 말할 필요도 없이 SK의 팬 베이스이다. 한 마디로 현대의 후신 격인 히어로즈는 본거지인 서울 서남권에서도 LG, 두산을 응원하던 기존 서울 야구팬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채 기존 인천 야구팬들을 떠나 보내는 결과를 낳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히어로즈는 서울 정착을 위한 이렇다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SK는 현대의 연고지 이전으로 상처받은 연고지역의 팬들의 환심을 다시 얻기위해 '퍼주기'에 가까운 지역 밀착 마케팅을 일관된 자세로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다. 신생팀인 NC나 kt 역시 다른 연고의 팀을 응원할 수 밖에 없던 연고지역의 팬들을 위해 구장 안팎으로 지역 밀착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지역 밀착 마케팅은 실제로 흥행 실적 개선 효과를 보이며 기존 구단들에게도 귀감이 되어 KBO 리그의 모든 팀들이 서로 벤치마킹하고 있는데, 히어로즈만은 그 예외였다. 어렵사리 서울로 가고서도 연고지역 정착을 위해 한 일이 전무하다. 목동구장 시절에는 소음 관련 민원을 무마하는 목적의 초청권을 뿌리거나, 고척돔으로 구장을 옮긴 이후는 구로구민 현장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고작이다. 모기업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히어로즈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부득이한 일이기는 하나, 새로운 팬덤 확장에 소극적인 구단의 태도는 안일하기 그지없다. 안 그래도 타팀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히어로즈의 홈경기 티켓값을 생각하면, 초보 야구팬에게 있어서 히어로즈라는 팀은 진입 장벽이 높아도 너무 높다.

연고지 이전 이후 결과는 연고지 이전을 왜 했는가 알 수 없는 수준이다. 아무리 연고지 이전을 옹호하려 해도 연고가 서울이라는 소위 '서울부심'을 제외하고는 얻은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며, 무개념 팬들이 인천야구의 적통성 문제로 싸우면서 구단의 이미지를 깎아먹곤 한다. 물론 인재풀이 넓은 서울 팜을 쓸 수 있게 되긴 했으나[28] 구단 인기와는 별개의 문제이며, 오히려 지방구단들로부터 신인드래프트 제도 개선과정에서의 서울팜 3분할 주장이 나오는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29]

5. 총평

사실 이 문서나 현대 피닉스 문서 등을 보면 현대그룹 자체가 축구를 제외한[30] 여러 스포츠판에서 수차례 근시안적인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바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로야구 원년에 야구판에 뛰어들 수 있었음에도 이를 외면하여 삼미와 같은 기업에게 드넓은 인천·경기·강원 연고를 내주었고, 이후 왕회장정치 놀음으로 그룹이 결딴날 위기에 처하자 부랴부랴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야구판에 뛰어들려다가 실패하자 현대 피닉스를 만들어 야구계 질서를 흐트려 놓는가 하면, 간신히 프로야구에 진입한 이후에도 엄청난 현질로 리그에 거품을 일으킨 주범이 바로 현대다. 현대가 분명 초기에 엄청난 자금을 야구단에 쏟아붓기는 했지만, 그 엄청난 돈을 아껴 눈앞의 성적 대신 긴 호흡으로 인천에서의 정착을 택한다는 선택지도 얼마든지 존재했으나 현대는 그 선택지를 걷어찼다.

따지고 보면 급작스런 연고지 이전의 이면에는 구단 대주주였던 현대전자의 경영 악화가 있었고, 그 현대전자의 위기는 또한 현대그룹의 문어발식 확장과 정경유착으로 인한 것이었다.[31] 결국은 현대 특유의 근시안적인 조급증이 현대, 그리고 그 역사에 조금씩 발을 걸치고 있는 후대의 팬들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일 뿐. 실제로 SK 와이번스의 인천 연고와 현대 유니콘스의 수원 이전 결정이 있은 다음 날에 현대그룹 분열의 시발점이 된 이른바 '왕자의 난'이 일어났으니...
만일 이 때 연고이전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한 팀을 응원하던 팬들이 분열되어 싸울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1차 지명권을 잃은 후 경기•인천팜이 엄청나게 흥하였던 것도[32] 더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33]

훗날 방송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현대의 연고이전 이후 춘천시 출신이자 현대 팬이었던 장지현 축구 해설위원은 상심해서 야구를 끊었는데, 현대의 연고이전으로 인해 축구로 완전히 전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이 떨어졌다고.


[1] 김용휘 전 사장이 훗날 2008년 스포츠 2.0에서 밝힌 사실이다.[2] KBO에서 책정한 SK 와이번스의 가입비는 250억원이었고, 이 중 쌍방울에 대한 선수보상비 70억을 제외한 180억 중에서 기존 연고지팀에 대한 보상비용으로 30%인 54억을 현대 유니콘스에게 지불했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경우 이 비율이 20%였는데, 현대는 이전 대상지인 서울에 2개 팀이 있어 30%로 상향했다.[3] 결국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 후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바꾸게 되면서, 영업이익을 통해 이 돈을 돌려받게 되며 하이닉스는 KLEVV 브랜드로 T1의 스폰서가 된다.[4] 해태그룹의 채권은행인 조흥은행은 해태의 인수금액으로 250억원을 제시했다. 마침 기아자동차 공장이 광주에 있기 때문에 연고지 조건에도 딱 맞았다.[5] 이 때문에 현정은과 현대그룹은 2019년까지도 야구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6] 광역연고제 하에서 현대 유니콘스는 남의 연고지에 더부살이하는 상황이라 SK 와이번스에게 돈을 물어줘야 할 판이었다. 한편, 이 도시연고제 때문에 엉뚱하게도 2012년 NC 다이노스가 창단되는 과정에서 NC소프트롯데 자이언츠에게 연고지 배상금을 한 푼도 지불하지 않게 된 일이 발생했다. 자세한 것은 프로야구 9구단 창단과정 참조.[7] 당시 SK 와이번스는 인천 정착과 관중 몰이가 시급했고, 인천 SK을 외치는 동시에 경기도강원도에서 마케팅할 여력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kt wiz가 창단하기 전까지 수원구장은 명목상 SK 와이번스의 제2구장이었을 뿐이고, 홈 경기를 치를 수 없었다. 수원에서 홈경기를 하겠다며 인천 수원 SK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8] 기간은 6시즌이지만 2007 드래프트에서는 1차지명이 2명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날려먹은 인원은 7명이다. 사실상 한 시즌 드래프트를 통째로 스킵해버린 꼴이었다.[9] 그마저도 1차 지명 박탈 이전 드래프트에서 지명함.[10] 하지만, 이 시기는 역설적으로 2002 월드컵 이후 K리그 인기의 영향으로 한국프로야구의 암흑기이기도 했다.[11] 인천 3곳(인천대, 인하대, 연세대), 대전 6곳(충남, 한밭, 배재, 우송, 목원, 한남), 광주 6곳(전남, 호남, 광주, 광주여대, 조선, 남부). 그나마 연세대 국제캠퍼스도 약대와 글로벌융합공학부 외에는 1학년 수업만 진행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온전히 대학 하나로 쳐주기가 어렵다.[12] 타지역 통근통학비율: 부산 8.4%, 대구 12.3%, 광주 9.2%, 대전 10.2% / 주간인구유출비율: 부산 4.7%, 대구 7.1%, 광주 5.4%, 대전 6.0%[13] 부산 18.4%, 대구 13.7%, 광주 9.3%, 대전 11.4%[14] 부산 0.9%, 대구 1.0%, 인천 4.0%, 광주 0.4%, 대전 1.4%[15] 한화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첨언하자면, 부산, 대구, 광주는 지역 내 이주민들이 대부분 인접 권역 출신이기 때문에 광역적 연고의식을 공유하기가 쉬운 반면, 그렇지 않은 도시가 하나 있는데 바로 대전이다. 대전은 충청지역의 남쪽 끄트머리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호남권 출신의 이주민들이 적지 않으며, 이 때문에 KIA 타이거즈의 팬덤이 의외로 강하다. 이는 대전을 포함해 청주, 조치원 등 충청권 주요 간선축 도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화 이글스가 충청권 전역을 사실상의 광역 연고권으로 독식함에도 불구하고 기타 지방구단들에 비해 인기도가 저평가되는 이유 중 하나.[16]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은 현대가 연고지를 이전하기 직전인 1999년 10월에야 개통했다.[17] 그리고, 인천 연고 막바지 현대에 있었던 박장희 선수는 두산 베어스의 운영1팀장으로 영전해 두산의 운영시스템 구축에 큰 역할을 한다.[18] 다만 어디까지나 '전년 대비 늘었다'는 수준이지, 최신 문학야구장과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이라는 훌륭한 인프라, 게다가 2003년 준우승과 2005년 3위라는 호성적을 가지고도 여전히 도원야구장 시절처럼 30~40만 사이에서 널뛰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SK 와이번스가 마의 50만 벽을 돌파한 것은 문학야구장 입주 6년차인 2007년 '스포테인먼트'를 앞세워서야 가능했고, 그나마도 팬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무료표와 단체관람으로 출혈 마케팅을 감내해야 했다. 막말로 지금 야구 팬들이 괜히 연간 90만에 이르는 SK 와이번스의 관중 동원능력을 사상누각이라며 폄하하는 게 아니다. 물론 2018년 기준으로 객단가는 8천정도로 올랐고, 관중 동원력은 LG-두산 다음이다. 게다가, 구장 내 음식, MD상품 판매실적으로 인하여 객단가*인원수 해도 상위권. 애초에 타 구단 팬들이 SK의 팬덤을 고평가할 이유도 없지만.[19] 게다가, 중앙대의 경우 모기업 두산그룹이 재학생들에게 입장료 할인 혜택을 제공중이다.[20] 심지어, 2000년대에 사이타마를 붙이기 전까지 세이부는 도쿄 23구 서부, 교외지역과 세이부 철도의 연선주택지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강했다. 게다가 연고지인 도코로자와시조차 철도가 도쿄로 직접 가기 때문에 사이타마보다 도쿄의 베드타운 이미지가 강하다.[21] 오릭스는 두산과 LG가 인기를 나눠먹는 서울과는 다르게, 간사이 전체의 인기를 한신 타이거스가 독점하고 있어서, 현대가 해체된 후 인적자원을 받아 창단한 키움 히어로즈 못지 않게 힘든 상황이다. 그나마 교통 접근성의 경우 한신난바선, 나가호리츠루미료쿠치선의 영향으로 키움보다 훨씬 편리한 편이고, 상업시설 및 유동인구의 경우 이온몰의 영향으로 고척스카이돔보다 더 붐빈다.[22] 게다가, 지바 롯데의 임시연고지였던 센다이는 문화적으로 소외받는 도호쿠 지방의 최대도시였는데 당시 아예 프로스포츠팀도 없는 동네여서 수원시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고, 일본시리즈를 우승했어도 센다이를 푸대접하는 롯데 구단의 처사에 분노하여 2005년 라쿠텐 이글스가 들어오기 전까지 많은 센다이시민들이 야구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거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갈아타버렸다.[23] 현대가 연고지를 옮긴 첫 시즌인 2000년을 제외하고 현대/히어로즈가 SK에 관중동원으로 우위인 적이 없다.[24] 무엇보다, 우라와는 도쿄 메트로 난보쿠선사이타마 고속철도 직통운행의 영향으로 선로용량에 문제가 있는 게이오 전철 토비타큐역 근처의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을 쓰는 FC 도쿄, 도쿄 베르디보다 훨씬 더 낫고 쾌적한 구장 접근성을 자랑하는데 이는 도쿄 도심인 23구(특히 북동부) 팬덤 확보에 중요한 여건이 된다. 그리고, 우라와의 홈구장인 사이타마 스타디움은 육상트랙이 아예 없다.[25] 특히, 카와사키는 베르디가 2000년 도쿄로 다시 연고이전한 뒤 카와사키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26] 게다가, 히어로즈는 2015년까지 목동구장을 쓰던 시절 목동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소음피해 민원에 시달렸다.[27] 금천구는 가산동은 2호선으로 잠실야구장, 독산동과 시흥동은 1호선으로 수원 KT 위즈 파크의 접근성 면에서 이점이 있다.[28] 하지만, 학교수가 팜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29] 게다가, 히어로즈는 서울팜에서 넥센 시절 학교폭력 전과로 문제가 된 안우진을 뽑는 행각을 저질러 야구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며 서울팜에서 길민세, 송성문 등 입단 이후 구설수로 문제가 된 선수를 많이 뽑아서 팬들의 속을 썩이곤 한다. 또한 히어로즈는 서울팜에서 인재를 뽑아도 강진 시절로 대표되는 부실한 2군 육성시스템 및 인프라로 인해 타 구단에 비해 신인들의 1군 콜업시기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문제가 있었다.[30] 대한축구협회를 현대그룹에 드립성으로 포함시킬 정도로 축구계에서만큼은 공이 많다.[31] 상위 문서인 현대 유니콘스 항목에도 짤막하게 서술되어 있듯이, 현대전자를 유니콘스의 대주주로 정한 것이야말로 현대그룹의 가장 큰 삽질이라고 볼 수도 있다.[32] 송은범, 윤석민, 최정, 류현진, 김광현 등이 튀어나왔으니까. 그 뒤로 중3 이후의 유급생, 타 구단 연고지역 출신 전학생 1차 지명 불가 및 전면 드래프트 시행으로 SK는 2013년 1차 지명 부활 전까지 지역 팜에 거의 손을 놓다시피 하지만.[33] 연고이전 직전에는 희한하게 1차 지명이 다 실패하였다. 최원호 - 최영필 - 고호봉 - 박장희 - 박기범 - 설우석 - 조순권 이후로 1차지명권이 박탈당하였는데, 4년 뛰고 트레이드된 최원호가 팀에 가장 많이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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