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3-31 21:51:03

현대 유니콘스/연고이전

1. 개요2. 연고이전 옹호론
2.1. 흥행 실패2.2. 인천시의 비협조2.3. 빈약한 도시구조2.4. 인천은 서울과 다르다
3. 연고이전 비판론
3.1. 개선되고 있었던 도시환경3.2. 오랜 암흑기3.3. 현대그룹의 근시안3.4. 인천, 수도권이라는 메리트3.5. 연고지 이전 후 현실은?
4. 총평

1. 개요

비록 1997년과 1999년 시즌 그다지 썩 좋지는 못했지만, 기존의 삼미-청보-태평양 시절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음에도 매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관중 때문에 2000년 1월에 현대그룹에서 갑자기 돌연 '현대 유니콘스 야구단을 서울로 연고이전 추진하겠다'고 선언을 하게 되었다.[1] 그 후 인천-경기-강원권의 연고비용으로,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단을 기반으로 창단한 신생팀 SK로부터 54억원을 받고, 연고이전을 추진하게 된다. 이 54억은 원래 서울 에게 전달될 권리금이었다. LG와 두산은 "어차피 에게 오는 돈이니 바로 27억씩 달라"라고 했지만 SK는 "우리의 거래 상대는 현대"라며 거절한다. SK로서는 당연한 태도였지만 이 돈은 모기업 하이닉스가 먹고 튀었고, 당사자들은 결국 이 돈을 10년 후 히어로즈의 가입금을 쪼개서 받게 된다.[2]

결국 현대그룹은 여러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연고이전을 강행, 여기서 많은 경인지역 팬들이 실망감에 빠지고 분열되면서 크게 갈라져버려 기존 팬 전체의 약 3분의 1 정도 규모까지 줄었다. 당시 많은 팬들이 그만큼 충격과 실망감이 얼마나 무척 컸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 기존의 인천 지역 팬들은 SK로 간 경우가 많고, 기존의 비인천권(주로 서울, 경기, 강원 지역) 팬들은 현대에 남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원래 이들 사이는 같은 한 지붕에서 응원하고 같이 웃고 울던 관계였는데, 지금은 서로 증오하고 이를 갈고 싸우는 관계가 되었다(…).

2. 연고이전 옹호론

2.1. 흥행 실패

그런데 현대 기업이 연고지 이전을 추진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99년 개막전. 전년도 우승까지 한 팀임에도 불구하고 개막전 관중석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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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두고 일부에서는 1999 시즌 자체가 IMF의 여파로 야구인기가 사그라들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정작 위의 표와 그래프를 보면 99년은 95년 이래 처음으로 야구 관중 수가 상승세를 기록한 해였다. 실제로 1998-1999 사이 팀별 관중 보면 저 사이에 관중 수가 줄어든 구단은 오로지 현대와 쌍방울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대가 전년도 성적이 시망테크를 탄 것도 아니며 1998년은 현대가 인천야구 사상 처음으로 우승한 해였다. 1996년에도 현대는 정규리그&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이었고 그 이전인 94년에도 태평양으로 정규리그&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룩했다. 이쯤 되면 맨날 져서 안 간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실제로 태평양 준우승 다음해인 95년에는 여전히 40만 명대의 관중을 기록했고, 1996년에는 리그 전체 관중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현대 관중은 오히려 늘었다. 결국 1996년의 475,910명을 기점으로 현대그룹은 이미 인천에서 더 이상의 관중동원은 힘들다고 판단한 것. 1년에 많아야 12경기 정도였던 수원 홈 경기가 1999년에 21경기로 늘어난 것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인천의 낮은 관중 동원 능력은 도원구장의 열악한 시설과 교통 때문이며 이는 최신 문학야구장이 들어서면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막말로 "우승을 해도 좁아터진 도원야구장조차 제대로 못 채우는" 도시에서 거대한 문학야구장을 채울 만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까? 당장 동시기에 롯데 자이언츠는 그 거대한 사직야구장에 1997-1998년 연속 연간 고작 40만여 명밖에 동원하지 못하면서 텅 빈 큰 야구장의 공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광주, 대구 또한 열악한 야구장 상황에 불만만 많다가 연간 관중이 50만을 돌파한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신구장 건설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실제로 그 최신 문학구장조차 2006년까지도 도원구장과 비슷한 관중동원 능력을 보여준 것을 보면 단순히 야구장 문제가 아닌, 인천야구 차원에서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찾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 도원구장 교통이 안 좋지도 않았다. 수도권 전철 1호선 도원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5분 거리였다.

1999년이 인천 경제를 떠받치던 대우그룹의 몰락과 그로 인한 지역 내 기업들의 연쇄 부도로 인천 지역 관중 동원능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라고 하지만,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범한 프로야구의 흥행은 더더욱 바라기 힘들어진다. 어쨌거나 현대그룹은 현대 유니콘스의 성공을 위해 무려 470억이라는 거금을 쏟아부은 판이었고, 특히 야구단 대주주였던 현대전자는 1998년 LG전자 반도체사업부 인수 이후 경영 상황이 꾸준히 악화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태평하게 몇 년을 두고 길게 투자할 것을 바라는 것도 무리다. 오히려 야구단을 냉큼 팔아넘기지 않고 연고지를 옮겨서라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을 기특하게 생각해줘야 할 판이다. 더불어 서울은 현재 시점에서 프로야구팀 세 개 써도 잘 돌아간다. 다만, 서울은 수원 야구단 창단 이전까지 인천 및 경기 서부를 제외한 수도권 전역에서 야구팬들이 찾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2.2. 인천시의 비협조

게다가 그 시절 인천시청의 한심한 프로구단 지원은 인천 스포츠팬들 사이에선 악명이 자자했기도 했다. 대우 제우스는 홈 경기장인 인천도원체육관의 낙후된 시설 수준을 견디기 어려워 대체 체육관을 요구했지만 인천시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삼산체육관이 완공된 2006년까지 부천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쓰는 판이었다. 남자배구의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도 도원체육관에서 어찌어찌 버티다가 계양체육관이 완공되자마자 옮겼고, 여자농구 금호생명 팰컨스는 도원체육관 시설을 견디지 못해 아예 소도시인 구리로 이전해버릴 정도였다. 2014년 신한은행 에스버드가 안산을 떠나 인천으로 오면서 도원체육관을 다시 쓰고 있지만.

명목상 연고지라 할지언정 인천에서 1983년 창단한 유공 코끼리는 1984년 서울로, 1984년 창단한 현대 호랑이 축구단은 1990년 울산으로 연고를 이전했다. 프로스포츠 팀에 대한 협조는커녕 조금의 관심조차 없었다는 반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신구장이 건설된다 한들 현대가 인천에서 과연 비전을 찾을 수 있었을까? 낙후된 숭의야구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인천시가 협조했더라면 적어도 현대가 도망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결국 이 때의 대참사를 경험한 인천시는 새로 인천에 입주하게 된 SK 와이번스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게 된다. 인천에 새로 자리를 튼 SK 와이번스는 인천시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문학야구장을 마음껏 리모델링을 하며 팬서비스를 다각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천시의 태도 변화는 역설적이게도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 이전으로 인천 민심이 한껏 격앙된 덕분이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이다.

2.3. 빈약한 도시구조

더불어 데일리스포츠인 프로야구의 특성에 완벽하게 반하는 인천시의 도시구조로 인한 한계도 무시하기 어렵다. 당시 인천1호선 연선에 계양, 연수, 송도 등 아파트 단지들이 대거 계획중이었다고 하지만, 인천시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가 이들 화이트칼라 중산층을 수용할 업무지구나 청년층을 붙잡아둘 4년제 종합대학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래 반론에 인천시 규모에 4년제 종합대학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헛소리가 있는데 인천보다 현저히 인구가 적은 대전이나 광주의 4년제 종합대학이 인천보다 많은 것만 봐도 간단히 박살나는 논리다.[3] 각종 단과대까지 합쳐서 비교해봐도 인천은 송도의 손바닥만한 해외대학 캠퍼스나 안양대 강화캠퍼스(...)까지 박박 긁어와야 간신히 비슷한 수준이다.

송도국제업무지구가 이 때에도 추진은 되고 있었지만, IMF로 인한 국책사업 축소의 광풍 속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었으며 2017년 현재에도 송도, 연수, 계양 주민들은 광역버스나 전철 타고 서울로 출퇴근한다. 지방 광역시들은 인천보다도 인구가 적지 않냐는 반론이 있는데 인구가 아무리 많아봐야 그 인구가 - 심지어 청장년층을 가리지 않고 - 인천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야구장과 동선이 완전히 따로 노는 상황에서는 그저 허수에 불과하다. 당장 송도 인구 12만이 넘은 지금 송도 주민들이 어디로 출퇴근하는지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SK 와이번스가 왕조로 군림하던 2007~2010 시기에조차도 총관 100만명도 못 넘기고 무료표 살포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쳐야 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근본적으로 평일 중산층 관중을 전혀 유치할 수 없는 도시구조 속에서 그나마 관중을 모으려면 남동공단이나 인천항 등지의 블루칼라들을 대상으로 무료표를 뿌리는 것 외에 딱히 답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출혈마케팅조차도 인천시의 극악한 인구유출비율을 보면 녹록한 일이 아니다. 2015년 기준으로 인천시의 전체 통근·통학인구 대비 타지역 통근·통학비율은 24.9%(!), 주간인구유출비율은 14.8%로 경기도보다도 높으며 이는 여타 지방 광역시에 비해 적어도 2배, 많게는 3배 가까운 수치다.[4] 더욱 문제는 2000년 그나마 231.%였던 타지역 통근·통학비율과 10.4%였던 주간인구유출비율이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15년 기준 60분 이상 통근·통학 비율도 무려 26.9%[5]나 되며 120분 이상 통근·통학 비율은 3.9%로 0.4%인 광주광역시의 10배(!)에 달한다.[6]

지방 광역시들의 시외 통근은 일반적으로 교육이나 생활여건이 좋은 광역시 내에 거주하면서 사업체가 있는 시외로 오가는 것이기에 일과만 끝나면 대부분의 여가생활은 광역시 내에서 이루어지는 반면에 인천의 시외통근처는 다른 곳이 아니라 서울이다. 지방 광역시들이 도시의 절대적인 규모 자체는 작아도 지역민들의 정주성이 높기 때문에 '내 지역 팀'이라는 애착이 강하고 광역시를 중심으로 하는 광역권 전역에서 팬덤을 형성하는 반면 인천은 전형적인 수도권 도시로 정주성이 낮고 지방 출신 이주민들의 비중이 높으며 인천을 중심지로 여기는 주변도시는커녕 인천과 엮이기만 해도 손사래를 치기에 바쁜 것이 현실이다. 문학에 SK팬보다 한화팬이 더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웃한 서울이나 수원 경기에서 SK 원정팬들의 비중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홈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타지역에 원정팬덤이 강력한것도 아니며, 그 외에 어떤 특출한 시장성과 상업성을 가진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연고지가 바로 인천이라는 도시의 현실이다. 여기에 남북으로 길쭉해 생활권이 조각난 인천시의 도시구조까지 감안하면 답이 안나온다. 아래에서 이말년 같은 사례를 끌어오고 있는데 그게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정작 SK 와이번스의 흥행실적에 수인선 개통과 같은 접근성 개선이 기여한 바는 전무하다.

2.4. 인천은 서울과 다르다

인천은 서울에 인접해 있어 위성도시 취급을 벗어나기에도 벅찼지 권역 중심으로서 인정받아본 역사가 없다. 당장 위에서 예시로 든 4년제 대학이나 통근수요를 보면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다고 이들 지역이 어느 한 팀의 팬덤이 꽉 잡고 있어서 원정팬이라도 많이 모이면 모를까. 아니나다를까 결국 그 뒤에 들어온 SK는 KBO 역사상 유례없는 도시연고 강조를 통해 아예 인천 외부의 경인지역 팬덤은 사실상 포기하고 인천 내부에만 집중하는 극약처방을 내려야 했다. 전국구로 서비스망을 운영하던 거대기업 현대의 눈에 인천의 이같은 한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기업의 입장에서 기회가 있는데 어느 쪽을 택할지는 너무나 뻔한 이치다.

3. 연고이전 비판론

3.1. 개선되고 있었던 도시환경

물론 1999 시즌 당시 관중수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1998 시즌에 가장 적은 관중 감소폭을 기록한 팀 또한 바로 현대 유니콘스였다. 게다가 예나 지금이나 외지인이 많은 인천 인구의 특성상, 이를 관중수 증감과 단순 대입하는 것이 크나큰 무리가 있다는 것 쯤은 인천 야구팬이 아니라 야구를 오래 본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도원구장광주구장보다도 더 오래되고 낡은 구장이었으며 무엇보다 무허가 건축 시설이었다. 실제로 현대 구단은 원래 도원구장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려 했으나 무허가 건축시설이라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도원역 역세권이라 교통이 좋아보일 것 같지만 과거는 현재와는 달리 환승제도도 없었으며 인천 도시철도 1, 2호선도 개통되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졌고[7] 20년 전보다 훨씬 교통이 발전한 지금에도 도원역은 그리 교통이 편리한 곳이 아니다. 게다가 과거의 인천 버스는 미개발지가 많아 지금보다 훨씬 노선의 굴곡이 심했고 배차간격도 길었고 경인선으로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경인선 연선은 주로 상업지역, 공업지역이 발달하여 대체로 주거지구와 이격되어 있다.

특히 1999년 관중 감소의 직접적 영향 중 하나였던 인천 지역의 경기침체는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한 요소였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외환위기의 충격은 대우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위치해 있던 인천이 타격을 다른 도시들에 훨씬 크게 받았었다. 비록 대우그룹은 부도를 맞았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인 자동차 부분은 매각이 될지언정 인천을 떠날 일은 없었고 이 부분이 정상화되면 인천 경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게다가 문학야구장과 연계되는 인천 도시철도 1호선 연선에는 계산지구나 연수지구 등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인데다가 이런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어느정도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들인 만큼 신규 수요를 창출할 여지도 많았다. 당장 연수구의 송도국제도시부터가 이 시기에 이미 한창 추진 중이었다. 또한 2016년에야 인천역까지 개통되었지만 당시에는 1990년대 말에 개통될 예정이었던 수도권 전철 수인선이 인근 원인재역에서 인천 도시철도 1호선과 환승 예정이었기 때문에 계양구, 부평구, 연수구 전역,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일대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었다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안산시 출신의 SK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광현 덕분에 수인선 개통 전부터 SK 팬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웹툰 작가 이말년이다.

3.2. 오랜 암흑기

게다가 인천 연고 프로야구 팀은 꼴지를 밥먹듯이 했는데 갑작스레 우승 한 번 했다는 이유로 큰 폭의 관중 증가를 바라는 것도 무리이다. 야구의 열기가 가장 강한 롯데 자이언츠조차 팀이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 때는 관중이 적었다. 그리고 현대를 뺀 삼청태는 거대 재벌이 맡은 팀들도 아니었던데다 잦은 후원 기업의 변경으로 결코 애착을 갖기에 쉬운 조건이 아니었다. 애초에 십 수년간 거의 최하위권과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의 경기에 직관을 갈 관객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부산, 경남의 유일한 팀이었던 롯데 자이언츠와 달리 바로 옆 서울에도 두 팀이나 있는데다 이주민들은 자신의 고향 팀을 응원하게 되지 않겠는가? 또한 겨우 우승 한 번 했다고 근본적인 관객 증가를 바라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이러한 논리를 가지고 연고지를 옮긴 팀이 프로농구에서는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가 있다. 이 팀이 대구시민들로부터 어떠한 취급을 받는지 상기한다면 옹호하기 어렵다.

3.3. 현대그룹의 근시안

애초에 현대는 인천 연고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현대 유니콘스의 인천 연고 기간은 고작 4년이다. 고작 4년을 선수 현질했다고 해서 관중수의 급격한 증가를 바라기는 어렵다. 또한 당시 레드오션인 서울에 기존 연고 2팀을 두고 경쟁해서 기존 인천 연고 시절보다 얼마나 관중을 끌어모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두 팀이 사용하는 잠실과는 달리 목동은 문학, 잠실보다 훨씬 배후 인구가 적으며 당시는 그나마도 지금보다 목동구장의 배후 인구가 더 적었다. 오히려 새 구장이 될 문학구장의 배후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잠실 구장도 아닌 목동 구장으로 이전을 추진하면서 관중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심지어 목동은 인천과 그리 멀지 않아 팬덤도 겹치는 상황까지 예견되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2002년 문학야구장의 개장 당시 SK는 시즌 6위라는 부진한 성적 속에서도 402,732명의 관중수를 기록하였고, 이는 2001 시즌의 178,645명보다 무려 2.3배나 증가한 관중수이다. 이는 열악한 도원구장의 상황 역시 관중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데이터라고 볼 수 있다.[8] 또한 연고지 이전으로 상당수의 팬들이 이탈한 상황에서 이 정도만 해도 선방이다. 당시 인천의 야구팬들이 삼분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는데 기존 수준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수요가 없었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신축하고 있던 문학야구장의 토대를 다진 건 다름아닌 현대 유니콘스였다. 그리고 이러한 SK 와이번스의 다양한 팬 유치 정책은 현대 유니콘스의 야반도주로 인한 야구 팬덤 이탈이 주요 원인이다.

3.4. 인천, 수도권이라는 메리트

또한, 인천이 블루칼라 노동자가 많다며 관중 동원에 불리하다는 주장은 쉽게 논파되는데 대구, 광주, 특히 창원 등은 인천보다도 업무지구가 현저히 적고 일자리의 질 면에서도 인천보다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지역이다. 대구, 광주, 창원에서 일자리를 찾아 인천으로 오는 경우는 많지만 그 반대는 거의 없지 않은가? 4년제 종합대학 역시 인천이 적은 편이나 서울 서남권, 고척 스카이돔 인근의 4년제 종합대학은 그나마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가 있으나 각각 서울 2호선, 서울 9호선을 통해 잠실 야구장으로 바로 연결되어 실질적으로 서울의 4년제 종합대학이 많은 것이 고척, 목동 연고 구단의 흥행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인천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인구가 많다는 것도 큰 의미가 없는 게 특히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인천의 자족성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았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도 현재보다 압도적으로 적어 '무료표 뿌리기' 운운할 상황이 아니다. 소위 '서울에서 망하면 돈 없어서 인천 간다'는 희대의 개드립도 일부 사례 때문이지 인천도 대기업, 건실한 중견기업이 적지 않은데다 인천 자체의 인구만으로도 최소한의 업무지구는 당시에도 존재했다. 그나마도 인천 인구의 3 분의 1 수준인데다 자족성이 인천보다 낮은 수원 역시 kt wiz 창단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수원의 거대한 경제축인 삼성전자는 이미 삼성그룹에 삼성 라이온즈까지 있다. 창원 역시 롯데와 팬덤이 중복되면서 배후 인구도 인천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고 창원시는 인천에 비해서도 블루칼라 비중이 압도적인 도시임에도 관중 동원에 문제가 없다. 차라리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조차 서울 연고 이전을 추진하기도 했던 것을 비추어 보면 인천의 도시 특성을 가지고 논하는 것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인천은 서울과 같이 이주민으로 구성된 도시이나 시간이 갈수록 '서울 출신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인천 출신자'가 늘어나는 것을 고려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관중 동원이 유리해지면 유리해졌지 불리해지진 않는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애초에 단순히 연고가 '서울 구단'이라는 이유로 '서울부심'을 부리기 위해 응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 팀이 서울에 오래 머물면서 서울시민들에게 서울 팀으로 인정받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을 대표하는 프로야구 팀은 LG두산으로 단순히 서울을 선망하거나 도시 이미지가 좋아서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대를 이어 지역 연고팀인 LG두산을 응원하는 것이다. 연고 의식은 옹호론에서 말하듯 단순히 주관적인 도시 이미지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3.5. 연고지 이전 후 현실은?

연고지 이전은 대개 관중과 인기 증가를 위해 하는데 연고지 이전 후 현실은 현대의 연고지 이전이 관중과 팬을 늘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에서 연고지 이전을 한 후 임시로 연고로 삼았던 곳은 수원이었다. 당연하게도 수원 야구팬들은 얼마 지나면 서울로 떠나버릴 현대에 마음을 주지 않았고 현대 왕조를 이룩할 정도로 현대의 뛰어난 성적과는 별개로 관중석은 텅텅 비어 있었다. 더군다나 수원은 야구보다는 축구에 더 열광하는 도시였고, 수원을 대표하는 프로 스포츠팀은 현대 유니콘스가 아니라 수원 삼성 블루윙즈다.

그렇게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지원이 끊기면서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그 선수단을 승계하면서 새롭게 서울 연고팀으로 창단한 넥센 히어로즈의 관중, 팬은 비인기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단 서울 연고팀인 LG와 두산은 이미 서울 야구팬들을 양분하고 있었고 연고지를 이전한 현대를 기반으로 태어난 넥센은 현대라는 이전 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연고지 이전으로 야구사가 끊긴 인천을 연고로 한 SK보다 확연히 팬, 관중 면에서 밀리는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2018년 SK의 경기당 평균 관중이 14,000명을 넘겨 전체 구단 3위를 기록한 반면 넥센은 정규 시즌 4위, 돔구장, 서울이라는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평균 관중이 6,313명으로 전체 구단 9위를 기록해 전체 구단 중 꼴찌인 NC 다이노스를 겨우 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NC는 성적이 꼴지에 연고지인 창원시가 인구 100만으로 프로 야구 구단 중 가장 연고 도시 인구가 적은데다 부산이 인접해 롯데 팬덤과도 겹친다는 이유가 있다.# 수원 연고 신생팀이면서 정규 시즌을 9위로 마감한 KT보다도 한참 못 미치는 평균 관중 수이다. 인구 천만의 서울 팀이라는 것 치고는 심각하게 관중 동원이 안 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결과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서울 공동화 정책을 펼친 K리그의 경우와 달리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 두산이 있어 이 팀들을 비집고 들어가 팬층을 확보한다는 것부터가 이루기 힘든 목표였다. J리그에서도 도쿄 연고팀보다 사이타마현를 연고로 하는 우라와 레즈가 훨씬 더 인기팀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연고지를 서울로 하기만 하면 인기가 늘어날 것이라는 발상이 한낱 망상일 뿐임을 증명한다.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천을 깎아내리려 애써 봤자 현대 유니콘스의 후신을 자처하는 넥센 히어로즈의 흥행 실적이 연고지 이전이 최소한 성공적이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일단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 입성을 하더라도 접근성이 뛰어난 잠실 야구장이 아닌 목동 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삼아야 했을 것이고 고척 스카이돔 개장으로 또다시 고척으로 홈을 옮겨야만 했을 것이다. 문제는 목동 야구장은 프로야구 팀의 홈 구장 치고는 시설이 좋은 편이 아니었고 인천과 비교적 가까워 인천 연고팀이 재창단될 것이 당연한 것임을 고려하면 인천 연고 신생팀의 팬 베이스가 겹치거나 인천과 주변 지역을 주요 팬 베이스로 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넥센은 서울 서남권을 팬 베이스로 삼고 있지만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호남권 이주민이 많아 특히 금천구는 기아 타이거즈 팬덤이 큰 지역이고 나머지 지역 역시 서울 야구팬들 역시 LG와 두산을 응원했다. # 인접한 인천과 부천은 말할 필요도 없이 SK의 팬 베이스이다. 한 마디로 현대의 후신 격인 넥센은 본거지인 서울 서남권에서도 LG, 두산을 응원하던 기존 서울 야구팬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채 기존 인천 야구팬들을 떠나보내는 결과를 낳았다.

연고지 이전 이후 결과는 연고지 이전을 왜 했는가 알 수 없는 수준이다. 아무리 연고지 이전을 옹호하려 해도 연고가 서울이라는 소위 '서울부심'을 제외하고는 얻은 것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물론 인재풀이 넓은 서울 팜을 쓸 수 있게 되긴 했으나 구단 인기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4. 총평

사실 이 문서나 현대 피닉스 문서 등을 보면 현대그룹 자체가 야구판에서 여러번 근시안적인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바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로야구 원년에 야구판에 뛰어들 수 있었음에도 이를 외면하여 삼미와 같은 기업에게 드넓은 인천·경기·강원 연고를 내주었고, 이후 왕회장의 정치 놀음으로 그룹이 결딴날 위기에 처하자 부랴부랴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야구판에 뛰어들려다가 실패하자 현대 피닉스를 만들어 야구계 질서를 흐트려놓는가 하면, 간신히 프로야구에 진입한 이후에도 엄청난 현질로 리그에 거품을 일으킨 주범이 바로 현대다. 현대가 분명 초기에 엄청난 자금을 야구단에 쏟아붓기는 했지만, 그 엄청난 돈을 아껴 눈앞의 성적 대신 긴 호흡으로 인천에서의 정착을 택한다는 선택지도 얼마든지 존재했다.

따지고 보면 급작스런 연고지 이전의 이면에는 구단 대주주였던 현대전자의 경영 악화가 있었고, 그 현대전자의 위기는 또한 현대그룹의 문어발식 확장과 정경유착으로 인한 것이었다.[9] 결국은 현대 특유의 근시안적인 조급증이 현대, 그리고 그 역사에 조금씩 발을 걸치고 있는 후대의 팬들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일 뿐. 실제로 SK 와이번스의 인천 연고와 현대 유니콘스의 수원 이전 결정이 있은 다음 날에 현대그룹 분열의 시발점이 된 이른바 '왕자의 난'이 일어났으니...
만일 이 때 연고이전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한 팀을 응원하던 팬들이 분열되어 싸울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1차 지명권을 잃은 후 경기•인천팜이 엄청나게 흥하였던 것도[10] 더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11][12]

[1] 알려진 것과 다르게 구단에선 연고이전을 할 계획이 없었다. 문학 야구장을 사용하려 했었고, 건설 당시 설계 변경을 요구하기도 했다.[2] 이 때 SK도 현대가 수원 연고를 침해한 댓가로 20억을 받았다. 이 중 LG와 두산은 5억씩, SK는 4억씩 KBO에 야구발전기금으로 납입한다.[3] 인천 3곳(인천대, 인하대, 연세대), 대전 6곳(충남, 한밭, 배재, 우송, 목원, 한남), 광주 6곳(전남, 호남, 광주, 광주여대, 조선, 남부).[4] 타지역 통근통학비율: 부산 8.4%, 대구 12.3%, 광주 9.2%, 대전 10.2% / 주간인구유출비율: 부산 4.7%, 대구 7.1%, 광주 5.4%, 대전 6.0%[5] 부산 18.4%, 대구 13.7%, 광주 9.3%, 대전 11.4%[6] 부산 0.9%, 대구 1.0%, 인천 4.0%, 광주 0.4%, 대전 1.4%[7]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은 현대가 연고지를 이전하기 직전인 1999년 10월에야 개통했다.[8] 다만 어디까지나 '전년 대비 늘었다'는 수준이지, 최신 문학야구장과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이라는 훌륭한 인프라, 게다가 2003년 준우승과 2005년 3위라는 호성적을 가지고도 여전히 도원야구장 시절처럼 30~40만 사이에서 널뛰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SK 와이번스가 마의 50만 벽을 돌파한 것은 문학야구장 입주 6년차인 2007년 '스포테인먼트'를 앞세워서야 가능했고, 그나마도 팬을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무료표와 단체관람으로 출혈 마케팅을 감내해야 했다. 막말로 지금 야구 팬들이 괜히 연간 90만에 이르는 SK 와이번스의 관중 동원능력을 사상누각이라며 폄하하는 게 아니다. 물론 2018년 기준으로 객단가는 8천정도로 올랐고, 관중 동원력은 LG-두산 다음이다. 객단가*인원수 해도 상위권. 애초에 타 구단 팬들이 SK의 팬덤을 고평가할 이유도 없지만.[9] 상위 문서인 현대 유니콘스 항목에도 짤막하게 서술되어 있듯이, 현대전자를 유니콘스의 대주주로 정한 것이야말로 현대그룹의 가장 큰 삽질이라고 볼 수도 있다.[10] 송은범, 윤석민, 최정, 류현진, 김광현등이 튀어나왔으니까. 그 뒤로 중3 이후의 유급생, 타 구단 연고지역 출신 전학생 1차 지명 불가 및 전면 드래프트 시행으로 SK는 2013년 1차 지명 부활 전까지 지역 팜에 거의 손을 놓다시피하지만.[11] 연고이전 직전에는 고졸 우선지명으로 입단한 박진만을 제외하고는 희한하게 1차 지명이 다 실패하였다. 그래도 그 와중에도 현대는 3년 연속 신인왕을 배출하였다.[12] 특히 06년 지명은 최고라는 평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