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06-22 23: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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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8
안치홍 (安致弘 / Chi-Hong An)
생년월일 1990년 7월 2일
신체 178cm, 80kg
출신지 경기도 구리시
출신 학교 구지초(구리 리틀)-대치중-서울고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9년 2차 1라운드 전체 1번(KIA)
소속팀 KIA 타이거즈 (2009~2030)
등장음악&응원가1 장윤정 '사랑아'[1]
응원가 Bay City Rollers 'Saturday Night'[2][3]
함중아 '내게도 사랑이' [4]
군 복무 경찰 야구단 (2015~2016)
KIA 타이거즈 등번호 8번
안재만(2008) 안치홍(2009~2014, 2016.9.4.~) 현역
보유 기록
최연소 한국시리즈 홈런 만 19세 3개월 22일[5]
수상 기록
2011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2009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6]

1. 소개2. 플레이 스타일3. 활약
3.1. 2009 시즌3.2. 2010 시즌3.3. 2011 시즌3.4. 2012 시즌3.5. 2013 시즌3.6. 2014 시즌3.7. 2015 시즌3.8. 2016 시즌3.9. 2017 시즌
4. 트리비아
4.1. 국가대표 잔혹사4.2. 인성 및 기부활동4.3. 그 외 기타
5. 연도별 성적

1. 소개



KIA들팬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
KIA의 V10을 경험한 마지막 내야수[7]

서울고를 졸업하고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2009년에 입단한 KIA 타이거즈2루수. 등번호는 8번.

대표적인 별명은 이름노홍철의 별명에서 유래한 안찌롱, 한남자 김종국에서 파생된 안남자[8]. 또 다른 별명은 (...), 입닥치홍[9], 무등공주[10]. 운치홍[11][12], 갓치홍, 개치홍, 곱치홍[13] 등이 있다. 고릴라를 닮았다는 이유로(...) 릴라 라고도 불리며, 기아의 야구하는 고릴라 못 할때는 암치홍, 애드홍, 광고릴라(...) 등으로도 불린다. 바리에이션으로 홍 뒤에 어를 붙여서, 야갤의 대세인 홍어드립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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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학교 재학시절

2009년 2차 신인지명 전체 1순위로 입단하였다. 고교시절부터 투수와의 수싸움능력에도 강하고, 경기를 보는 시야가 좋았으며 타격기술도 기반이 잘 닦여져 있었다. 손목 힘이 좋아 히팅 파워도 괜찮은 편. 수비 시엔 타고난 스피드나 빠른 순간 가속에 의한 수비보다는 좋은 시야에 유연성과 스탭을 기반으로 한 견실한 수비를 보여준다. 고교시절 유격수로서 김상수, 오지환, 이학주, 허경민 등과 라이벌 관계엿으며 2008년에는 U-18 대표팀에 이들과 함께 차출되어 세계대회 2연패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때 대회 최고수비수상[16]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다만 국내고교야구대회에서는 수비 면에서는 어깨가 강한 편은 아니라 프로에 오려면 유격수 수비를 다듬어야 한다는 평이 있었고, 프로에서는 3루수로 시작했으나 수비 불안을 보이며 2루수로 이동해 지금에 이른다.

데뷔 시즌부터 맹활약을 보이면서 정근우에 이어 국가대표 2루수로 자리매김 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되는 등 동기들과 비교하면 또렷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공격 면에서 보면 고정된 타순이 없이 뚜렷한 공격 특색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장타 가능성도 많은 편이고 비교적 빠른 발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뚜렷한 특색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구멍난 타선을 메우는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 라인업만 보면 테이블 세터와 중심 타선이 탄탄한 KIA 타이거즈이지만 2011년2012년 항목에도 알 수 있듯이 저 라인업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 적이 많았고(특히 2012년) 그 공백을 메우는 역할이 시즌 내 가장 많이 출장한 안치홍이 맡았던 것. 더군다나 팀 내에서 안치홍을 받쳐줄만한 공격력이 준수한 백업 2루수도 없는 상황이라 가장 많은 수비이닝 소화로 체력 저하 현상을 많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테이블 세터-중심타선-하위타순 등 4번 타순[17]을 제외하면 안 들어가 본 타선이 없는 궂은 일을 맡아서 하는 선수.

2. 플레이 스타일

준수한 2루 수비를 보여주는 중장거리형 타자로 평가받는다. 발도 제법 빨라서 두 자릿수 도루를 매년 기록해줄 수 있는 수준. 타격에 있어서 3할대에 도전할 수 있는 타격 실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루키 시즌인 2009 시즌과 타어강의 원흉 중 한 명으로 지목을 받았던 2013 시즌을 제외하면 2할대 후반~3할대 타율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장타 생산 능력이 있음에도 점차 홈런 개수가 줄어들며 2009년 데뷔 시즌 주목을 받았던 때에 비해서 점차 묻히는 감이 있었다. 2009년 14개 홈런을 기록하며 고졸 신인 홈런 10개 이상을 기록한 몇 안되는 선수들로 발전 가능성 높다고 점쳐졌으나 시즌에 접어들며 장타 생산보다는 정확성에 맞춘 타격을 하며 점차 홈런 개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14→8→5→3→3) 이에 장타 생산력을 키우기 위해 2013 시즌 무리하게 타격폼을 수정하였다가 망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호타준족으로써의 잠재력은 있지만 그 중간을 맞추기는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2014년 들어 다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장타가 향상되기 시작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타격 면에서 유달리 뛰어난 면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타순도 테이블 세터-클린업 트리오-하위타순 등 여러 자리를 오갔다. 그나마 많이 타순에 들어선 자리는 하위 타순. 2014 시즌 이전까지는 클러치 히터 능력이 떨어졌던 것도 약점으로 지목된다.

타격 면에서 약점이 있다면 상당히 예민한 성격 때문에 슬럼프가 길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잦다는 것. 타격감이 좋지 않았을 때에는 24타수 연속 무안타 기록을 내기도 하는 등 타격감이 널뛰는 면을 간간히 보인다.

수비 면에서는 시즌 동안 10개 내외의 실책을 보여주는, 모나거나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정근우만큼 수비범위가 넓거나 고영민처럼 특이하진 않지만 가끔씩 튀어나오는 허슬플레이를 보여준다. 한편 키스톤 콤비를 맞춘 김선빈의 영향 때문인지 내야 팝업이 뜰 때 가장 먼저 반응하려는 성향도 있다.

참고로 역대 상대 전적에서 가장 강한 팀은 SK 와이번스이다. 특히 기나쌩 중 한명인 김광현에게 상대전적에서 매우 강한 선수 중 한 명.

2000년대 들어 부상병동에 시달리는 KIA 선수층에서 몇 안되는 금강불괴이다. 정확히는 본인도 자잘한 부상을 달고 다니지만 나름대로의 몸관리와 함께 꾹 참고 견디는 것. 이 부분이 같이 키스톤 콤비를 맞추던 김선빈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데뷔 이래로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간 적은 2011년에 단 한 번 뿐이다. 다만 성격 상 잔부상을 달고 뛰어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편이라 병역판정검사에 신체등급 4급을 받았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경찰 야구단에 입대했을 당시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유승안 감독의 증언도 있다.

3. 활약

3.1. 2009 시즌

시범 경기때부터 계속 출장하여 고졸 신인으로써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본래는 1군 물 조금 먹고 2군에서 자기 기량을 쌓아올릴 계획이었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용규의 부상으로 다시 내야 수비를 볼 예정이었던 이종범이 외야 주전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을 타서 좀 더 1군에 머무를 수 있었다고 한다.

시즌 초반에는 3루수로 주로 출장하였으나 실책이 잦아서 결국 2루로 밀려난다.[18] 2루에서는 김종국의 백업요원 수준이었지만, 이미 37살로 노쇠화된 김종국과 조범현 감독의 세대교체 의지[19]로 인해 본격적으로 투입되어 시즌이 끝날 때까지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시즌 내내 KIA 타이거즈의 내야가 흔들리면서 김선빈과 함께 수비력 논란도 있었으나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신들린듯한 수비능력을 보여주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수비가 불안하다는 말을 듣고 한국시리즈에 대비해 수비만 줄창 연습했다고.

123경기에 출장해 타율 0.235, 홈런 14개, 38타점을 기록,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중 타율과 출루율이 꼴찌 바로 다음에다 무려 32볼넷에 103개의 삼진을 기록하는 멘도사 라인급 타격능력을 보였지만 주전 2루수였던 김종국의 노쇠화와 그보다 나은 장타력[20]덕에 계속 주전멤버로 기용될 수 있었다. 시즌중 1안타 1도루 결연식으로 하나를 할때마다 1만원을 적립해 27만원을 적립했지만 삼진으로 적립하면 39만원을 적립할 수 있었다.(...)

특히 2스트라이크 이후에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에 유독 큰 약점을 보여 삼진을 양산했다. 또한 올스타전을 기점으로 기록이 곤두박질을 쳤는데, 전반기 성적이 타율 0.243, 12홈런이었다는 것만 봐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안치홍 개인적인 타격슬럼프도 기인했겠지만 상대팀들이 그의 약점인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후반기에 적극 공략했다는 의미도 있다. 결과적으로 OPS는 리그 평균에도 못미쳤으며 출루율은 3할에도 모자랐다. 다음 시즌 그의 타격은 이 약점을 해결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100M를 11초대에 끊을 정도로 주력도 괜찮은 편이지만, 경험부족인지 도루 성공률은 낮은 편.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부분들이 눈에 띄는 선수다.

693,565표라는 압도적인 표수로 올스타전 멤버로 뽑혀 5회말 투런홈런을 날리면서 서군의 승리를 이끌어 MVP를 차지했다. 김현수에 이어 전체 2위, 사실 운도 많이 따라준 게, 서군 2루수 경쟁자들이 죄다 안습의 극치였다. 오선진, 김민우, 박경수. 과거 서군 2루 올스타 터줏대감이던 김종국도 KIA 타이거즈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체 2위를 자주 했다 당시 부상으로 받은 것이 포르테 하이브리드. 참고로 이미 운전면허는 따놓았다고.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7경기 내내 고졸 신인답지 않은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다. 7차전에는 3:1로 추격하는 안타와 5:4로 추격하는 홈런을 뽑아내며 우승의 숨은 주역이 되었다.

2009시즌 신인왕 후보중 유일한 1년차 신인이다.[21] 결국 신인왕은 3년차 중고신인인 두산의 마무리 이용찬에게 돌아갔다. 이 투표에서 안치홍은 최종투표까지 가는끝에 2위를 기록하고 골든글러브 후보에도 올랐지만 정근우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 신인왕 투표에서는 좋은 활약을 펼친 고창성, 홍상삼을 눌렀고 골든글러브 투표에서는 신명철보다 많은 득표수를 받으면서 본의아니게 공정성 시비의 중심이 되었다.[22]이거 가지고 온갖 시비를 털던 모팀 팬들은 이대수가 김상수를 16표차이로 간신히 꺾고 장원삼이 골글을 받자 말을 바꾸는 중

고졸신인으로서 입단하자마자 주전자리를 꿰차고 앞으로 깨지기 어려운 최연소 기록들을 세운데다 팀은 우승. 이제 갓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지만 그에게는 은퇴할 때까지 잊지못할 한 해가 될 듯하다.

여담이지만 타이거즈 마성의 후로게이 양현종의 사랑을 받는 남자(?) 어멋 이러심...! 이양~♡

3.2. 2010 시즌

2009년 연말부터 2010시즌을 대비해 좌타석을 연습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교시절 수술받았던 왼손목에 아직 통증이 남아있고, 양쪽에 타석을 서는 방법으로 타격 밸런스를 조절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본격적인 스위치 타자 도전은 아니라고 한다. 2010시즌 들어 루키시즌 최대 약점이었던 바깥쪽 밑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밀어쳐 안타를 만드는 등 작년의 약점을 보완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확실히 2010년 경기를 보면 밀어쳐서 만드는 안타가 많이 늘었다.

수비 면에서도 2009년 한국시리즈를 기점으로 상당히 좋아진 수비로 2루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나, 4월 9일 대구 삼성전에서 연장 11회 병살을 잡으려다 끝내기 송구에러를 범했으며, 4월 23일 목동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도 2-1로 앞서있는 상황에서 병살을 잡으려다 또다시 송구에러를 범하며 로페즈의 시즌 2승을 말아먹었다. 이 실책 이후 로페즈는 강판당했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덕아웃에 들어온 그는 쓰레기통을 걷어차며 화풀이를 했다.

시즌 초반 밀어치는 타격으로 한 때 3할을 치기도 했으나, 중반 이후 주전선수의 줄부상으로 상위 타선에 들어서는 기회가 많아져 본인의 부담이 컸고 나쁜 공을 무리하게 잡아당기는 안 좋은 타격을 하며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까지 .268의 타율을 기록하다가(특히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 최근 5경기에서 1할대를 치며 부진) 후반기 들어서며 다시 살아나는 모습. 9월 16일 현재 .289 8홈런 50타점 18도루 8실책을 기록중이며 특히 전년도와 스탯을 비교해보면 홈런과 도루를 바꿔먹은 스탯을 보이고 있다.(...)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손영민,유동훈,나지완과 엄청나게 까이는 존재로 격상(!)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전까지의 타격 부진이 원인인 듯?

득병[23]이라 까였지만 다른 신인들, 특히 오지환이나 김상수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넘사벽급 활약을 보였다. 오지환의 경우 장타력은 확실히 있지만 수비 안정감에서 안치홍에 비해 좋지 못하고(오지환은 유격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김상수는 수비 안정감이 좋은 대신 아직까진 타격이 시망.. 하지만 안치홍은 2루수! 수비부담면에선 이 둘에 못미친다는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오죽하면 한화 한대화 감독이 오선진 깔때 안치홍과 비교해서 깠다... 오죽하면 정근우와 비교해도 1, 2년때 성적은 안치홍이 훨씬 좋다. 문제는 이게 커리어하이인지 아니면 더욱 더 성장할것 인지.

같이 키스톤 콤비를 이루는 김선빈과 특히 친한 듯 하다. 그 때문에 둘이 덕아웃에서 장난 치는 꼴을 보기 쉬운데, 웃기는 건 오프라인 온라인 가리지 않고 1년 선배김선빈에게 대놓고 말을 까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9월 17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콜을 안해 중견수 이용규와 부딪히고 18일 경기에서도 역시 콜을 안해 1루수 김상현과 함께 공을 놓쳐버리는 활약을 펼쳐 안치홍 벙어리설이 힘을 얻고 있다.

2010년 시즌 종료 후 성적은 .291 홈런 8 도루 18. 조인성강정호와 더불어 2010 시즌의 유일한 전경기 출장에 최다 수비이닝을 기록하고 고졸 2년차인 것을 감안하면 준수한 성적이지만, 삼진이 무려 96개... 전체 타자 중에서도 7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삼진을 많이 먹는 타자가 대부분 슬러거인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나이를 먹으면서 힘이 붙으면 홈런 개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라는 예상이 많긴 하지만... 심정수에 이은 두번째 10대 10홈런타자이다.최정은 만 나이로만 10대라서 제외했냐?

3.3.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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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시즌 후 왼쪽 어깨 봉합수술을 받았다. 도루시(특히 홈으로 들어올 시) 수비수의 태그를 피해서 왼팔로 베이스터치를 하면서 생긴 부상이라고 한다. 때문에 5월까지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졌으나 3월 24일 시범경기에 대타-대수비로 출전하여 독한놈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본인이 데뷔 이후 3년 연속 개막전 출장에 대한 욕심이 컸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결국 데뷔후 3년 연속 개막전 출전에 성공.

2011년 4월 17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유원상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 스윙이…. 가볍게 툭치홍

2010 시즌에 이어서 2루수로 출전하면서 김선빈과 함께 키스톤 콤비를 구성하고 있다. 2011 작성시간 기준으로 에러가 5개밖에 없을 정도로 신들린듯한 수비를 보여주며 타 팀에서 부러워 할 젊은 철벽 내야진을 맡고 있다. 거기에 설령 클러치 에러를 범해도 그 경기에서는 모두 패하지 않아 에러가 묻히는 기막한 운빨도 작용했다.

그러나 2010 시즌 이후 고질적인 허리통증으로 고생을 하였다가 결국 6월 11일 처음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2011년 초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부상에서 복귀하여 1군에서 시작했을 정도로 함평생활2군 경험이 없던 안치홍에게 있어서는 첫 1군 말소.[24] 재활 이후에 6월 23일 넥센과의 강진 어웨이 2군 경기에 첫 출전하여 3타수 1안타(2루타) 1타점을 기록했고 당일 바로 광주 SK전 1군 경기에 등판하여 8회말 선발 2루수 박기남과 교체되어 SK 투수 김광현에게 바로 1군 복귀 안타를 신고하는 괴력을 보였다. 하루에 두 탕을... 이런 독한X(...)

2010년에 있었던 상위타선 울렁증이 2011년에 와서는 다소나마 개선된 모습도 보여주었다. 7월 초 악안면 부상을 당한 김선빈과 허리디스크가 재발한 최희섭이 빠진 상황에서 이범호가 4번 안치홍이 3번 타순에 오르는 경기가 많았는데, 득점권 주자 상황에서도 적시타를 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고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출장으로 인한 체력저하가 뒤늦게 나타났는지 7월 12일, 13일 연속으로 정신나간 수비를 벌이며 까였다. 특히 13일에는 실책으로 기록되진 않았지만 야수선택으로 인해 패배의 빌미가 되었다. 거기에 2번 타자로 나섰던 7월 19일 한화전에는 선취타점을 올렸지만 2번의 병살타로 공격의 흐름을 깨먹을 정도. 그래도 스프링캠프 참여를 못한 것 치고는 타율을 많이 높여서 7월 기준 정규타석에 들어선 이후 3할1푼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타격 6위에 등극을 했다.

2009년 데뷔 이후 빠지지 않고 올스타전에 3회 연속 출전하였다.

8월 2일 두산전에서 4타수 3안타 3타점으로 승리의 주역이 되었고,(1회 선취 2타점 2루타, 8회 쐐기 1타점 2루타 등) 수비에서는 5회말 2사 1루에서 윤석민(2번항목)의 잘 맞은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미칠듯한 하이점프캐치로 잡아내는 등 공수에서 모두 좋은 활약을 보였다.

8월 29일 SK전에서 9회말 무사 1, 2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날렸다. 이는 개인 통산 첫 끝내기 안타이자 2011 시즌 KIA 타이거즈의 첫 끝내기 안타였다(…).

2011년 10월 8일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2타수 1안타, 2볼넷, 1득점을 기록했지만 실책 2개를 저지르고 도루를 실패하여 빛이 바랬다. 그래도 팀은 스코어 5:1로 이겼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1년 10월 11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그야말로 안습 모드. 스코어 0:0인 2회말 무사 1, 2루에서 2루주자 최희섭과 자신을 죽이는 번트 병살타를 친 것을 비롯해 정줄 놓은 수비를 보이며 0할타자 김선빈과 함께 병스톤콤비의 위엄을 과시했다.
안치홍은 이날 4타수 1안타에 그쳤고, 팀은 스코어 2:0으로 졌다.

2011년 10월 12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스코어 0:0인 2회말 무사 1, 3루에서 어이없는 스윙으로 폭삼 당한 것을 시작으로 어처구니 없는 모습만 선보였다. 휘발유동훈이 1경기를 말아먹었지만 안치홍은 전 경기를 말아먹으며, 이용규, 김선빈과 함께 2011년 준플레이오프를 말아 먹은 역적중 1명이 되었다.
이날 안치홍은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0으로 대패했다.

안치홍은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3차전은 선발 2루수 겸 6번타자, 4차전은 선발 2루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11타수 2안타 2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182이못쓰, 출루율 .30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비록 안치홍이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망했지만, 페넌트레이스에서 3할을 때려내면서 맹활약한 활약상을 인정받아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했다.

3.4. 2012 시즌

2011시즌이 끝나고 사령탑이 선동열 감독 - 이순철 수석코치 체제로 바뀌면서 코치진에 의해 안치홍을 3번 타순 키 플레이어로 중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이에 KIA 팬들이 2010 시즌의 악몽을 떠올리면서 과연 잘 할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2011 시즌에서는 3번 타순에 있었을 때 .368 1홈런 6타점(38타수 14안타)을 기록하였지만... 아무튼 이제 막 4년차에 접어드는 어린 키스톤 플레이어에 중책을 맡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듯.

이후에는 선동열 감독이 '공격적인 야구'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안치홍을 1번 타자 이용규와 함께 테이블 세터진을 구성한다는 방안까지 나왔다. 2번 타석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김선빈, 신종길이나 2009 시즌 2번타자로 나왔던 김원섭 등과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SK의 정근우가 다시 2루수의 최고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칼을 갈면서 각 팀간의 2루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다 2012년 정초부터 불거져 나오는 악재 소식이 겹쳐지면서 사실상의 기아 타이거즈의 간판타자로 부각시키려는 프론트나 여론의 움직임으로 인해 프로 4년차인 안치홍의 어깨가 매우 무거워지고 있다.

4년 연속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경기 초반부터 결정적인 수비실책을 저지르는 등 KIA 팬들의 속을 뒤집는 일을 벌였다. 하필이면 SK 와이번스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의 수비 불안이 2012 초반까지 이어진 것. 거기에 개막전에는 무안타. 그나마 다행이라면 개막전을 제외하고는 연속 안타를 치고 있으며 3번 타자로써의 역할은 어느정도 하는 중. 다만 박빙 상황에서의 득점권 타율은 여전히 좋지 않다(...) 여담으로 2012 시즌 KIA 타이거즈의 마수걸이 홈런을 때리기도 했다.(삼성 라이온즈미치 탈보트 상대. 그러나 해당 경기는 졌다(...))

4월 한달간의 성적은 타율 0.299 20안타 7타점 1홈런. 기아 타자들중 4월의 수위타자이다.(...) 사실상 빈타에 허덕이던 4월 김기아 타선을 지탱한건 안치홍과 최희섭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4월 말까지는 3할대를 유지하던 타율이 결국 2할9푼대로 떨어졌다.한끗차이

4월 말 약간의 타격감이 하락하였지만, 넥센 심수창 선발 전을 전후로 다시 페이스를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심수창이 선발로 나왔던 경기에서는 5타수 5안타(1홈런) 5타점을 기록하였다. 타격 상승세에 힘을 입어 5월 초에는 김선빈과 함께 공포의 키스톤 콤비 공격진을 구성하고 있다. 심지어는 '김기아' 타선이라 불릴 정도의 빈타에 시달리는 기아 타선에서 홈런 3개로 나지완이나 최희섭보다도 더 많은 홈런을 기록 중(...)

하지만 이후로 김선빈과 더불어 팀의 몰락에 기여한다는 비판을 받는중. 사실 4월에 잘했던걸 생각하면 정신적 부담감과 대체할만한 선수가 없는 2루수의 현실때문에 급속도로 체력저하가 왔다는 분석이다. 결국 이범호가 복귀하면서 3루수로 나섰고, 3루를 보던 윤완주가 2루 백업으로 들어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서 김선빈보다는 조금 나은편이다. 하지만 아직은 덜 돌아왔는지 5월 20일 경기 마지막 아웃카운트 직전에 대타로 나왔지만 허망한 타격으로 연패를 늘리는데 일조했다.(...)

허리 부상과 체력 저하로 인해 한때 3할에 육박했던 타율이 2할 6푼 후반대까지 급하락하기까지도 했다. 그러나 김기아 타선에서는 그나마 하는 타자라서인지, 6월 19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는 오승환정현욱에게 고의4구로 걸러지는 위엄(?)을 누리기도(...). 물론 이 날은 안치홍이 첫 타석 초구 플라이 이후 3연속 안타를 기록하면서 KIA 타선 중에서는 컨디션이 최고조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고, 고의4구 당시 앞-뒤 타석이(6번 타선) 5번 김주형(최희섭 교체) - 7번 이준호(나지완 교체)였기도 했다(...)

6월 26일 히 드랍 더 볼# 걱정하지마. 내가 다 잡아줄게. 뜨면 무조건 빠져. 내가 가서 다 잡을테니까

2012년 올스타전에서는 동군의 승리에 기여를 하는 결정적인 수비실책(기록은 내야안타로 기록)을 범하면서 서군(KIA, LG, 넥센, 한화) 팬들에게 까임을 당하였다(...) 마지막에는 양의지와의 애정 플래그묘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얼빠들의 BL물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 와중에 이 둘을 바라보는 강정호매의 눈
후반기 들어 타율이 3할을 밑돌고, 중요할 때마다 실책을 저지른다는 이유로 틈만 나면 까였다. 본명보다 개치홍(...)이라고 불릴 때가 더 많을 지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든글러브 2루수 유력후보로 떠올랐다. 정근우도 예년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냈고[25], 조성환은 서서히 노쇠화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으며, 고영민은 시즌의 절반 가까이를 2군에서 보냈다. 그 외 다른 팀들은 주전 2루수라 할 만한 선수가 딱히 없을 정도로 팀내 경쟁이 치열했다. 명불허전 운치홍 그나마 신인왕 서건창이 강력한 라이벌로 꼽혔고, 결국 신인왕의 임팩트 덕인지 2012년 2루수 골든글러브는 서건창이 획득. 이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있었지만 밤형의 임팩트로 묻혔다는..

작년에 비해 실책성 플레이가 아쉬운 한해였지만, 그래도 KIA 타선 내에서의 수훈공로를 인정받아(0.288 3홈런 64타점으로 팀내 타점 1위에 오른다) 1억 2500만원에서 60%가 오른 2억원에 재계약, 그나마 안치홍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시즌 종료 후 장타력을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3.5. 2013 시즌

안치홍/2013년 항목으로.

3.6. 2014 시즌

안치홍/2014년 항목으로.

3.7.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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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고양시 벽제에서 사육 중인 고릴라의 퓨처스리그 폭격기

AG 탈락 이후 경찰 야구단에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무난하게 합격하면서 2015시즌부터는 경찰청에서 군 복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선동열 감독의 재계약을 예지하여 경찰청으로 도피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다. 빈말이 아니라, 실제로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재충전의 기회로 삼기 위해 안치홍이 선동열 감독에게 입대 의사를 밝혔는데, 선동열 감독이 안치홍에게 임의탈퇴 공시라는 말까지 꺼내면서 기아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설명하자면, 임의탈퇴 공시되면 군 팀에 입단할 수 없다. 지금까지 국제 대회에서 발탁되지 못해(밑에 국가대표 잔혹사 항목 참고) 군 면제 기회조차도 잡아보지 못한 안치홍이 입대마저 맘대로 못할 상황이었다는 것이다.치홍아 너 프로야. 구단의 소모품 따위가 그렇게 맘대로 입대하면 임의탈퇴시켜 버린다? 졸지에 노예가 될 뻔한 치홍이ㅠㅠ 결국 안치홍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정상적으로 입대하였으나, 이 때문에 선동열에 대한 앙금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팬들의 우려가 제기되는 중.[26] 하지만 선동열 감독은 10월 25일에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아무래도 위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퇴 발표 후 선동열 감독의 해명에서 '임의탈퇴 공시'라는 말을 꺼낸 것은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안치홍 본인은 처음으로 받은 신검에서 4급 판정을 받았지만, 군 팀에 가고 싶어서 재검을 받았다고 한다. 군 팀에서 뛰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한 2년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사회복무요원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고. 실제로 사회복무요원으로 가게 되면 사실상 주말과 평일 저녁 말고는 야구 연습을 할 기회가 없으므로 현역 판정을 받아 퓨처스 리그에서 뛰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안타깝게도(?) 경찰 야구단에서는 KIA 선수 때 달았던 8번 대신, 고교 시절 등번호였던 13번을 달게 되었다. 경찰청 입소 동기이자 선배인 경주 출신 월드 스타 때문(...) 하지만 본인은 가장 달고 싶은 번호가 13번이라고 언급했다. 입단 때 홍세완이 쓰고 있어서 달지 못했다고.

2015년 대만 전지훈련에서 심각한 수술(?)을 받았다는 카더라가 있다(...)

KBO 퓨처스리그에 들어서는 괜히 1군 주전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67경기에 나와 209타수 81안타, 10홈런, 타율 .388, 60타점.... 절륜한 타격 성적을 보여 주었다. (7월 13일 기준) 특이한 사항은 1군 주 포지션이었던 2루수 이외에도 가끔 유격수1루수 수비도 나온다는 것. 팬들은 살이 쪘다면서 이제 2루수를 못 볼 몸매라 깐다

2015년 5월 22일에는 경찰 입소 후 처음으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무등야구장[27]을 찾아서 KIA 타이거즈 2군과 3연전 중 2연전 경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기태 감독, 조계현 수석코치, 김상훈, 유동훈 코치와 만났고, 다른 날에는 허영택 기아 단장과도 만나면서 군 복무 중에도 구단 차원의 관심이 여전함을 드러냈다. 이날 마침 1군도 삼성 라이온즈와 홈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홈 팬들의 관심이 컸다.

6월 22일 체온이 38.5도까지 올라 메르스가 의심되어 인근 한 종합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검진결과 편도염으로 진단받았다. 이어 안치홍은 며칠 푹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을 하여 경찰청 유승안 감독 및 이 소식을 접한 팬들에게도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였다. 경찰청 안치홍, 메르스 의심에 '깜짝'...편도염 진단 그럼에도 그 다음날에 출전을 강행하여 벽제 야구장에서 열린 KIA 2군과의 홈 경기에서 팀 선배 한기주에게 삼진(...)을, 임준혁에게는 안타를 날리기도 했다.

이 포스트에서 동료 나지완에 대한 걱정을 남기기도 했다.KIA 팬들은 이 기시를 보고 '멘탈도 착한 치홍이 ㅠㅠ'라고 눈물 흘리면서 나지완을 깠다 그리고 살아났다.

2015 퓨처스리그가 종료된 시점에서 안치홍은 91경기 326타석에서 .359/.451/.585, 12홈런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물론 많은 경기에 나오지 못했고 후반기 들어서 지친 모습을 보이면서 타율이 깎이긴 했지만 비교적 무난한 시즌을 보냈다. 1군 주전 선수였던 만큼 당장 퓨처스리그를 폭격하는 것보다는 실전감각 유지가 우선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만 벽제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것치고는 홈런이 뜻밖에 많이 나오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시즌 후 인터뷰에서는 어깨가 좋지 않아서 생각보다는 많이 부진했었다고 밝혔다. 훗날 유승안 감독의 이야기에서도 입단 당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었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잔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3.8. 2016 시즌


경찰 야구단 복무 2년차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시즌 후반 KIA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은 시즌.

퓨처스리그 개막 때에는 골반 통증 문제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가 5월 중순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경기에 나섰다. 복귀 이후에는 잔부상을 털어내고 본래 클래스를 발휘한 덕분인지 다시 한번 퓨처스리그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퓨처스 시즌 종료 기준으로 59게임 출장 166타수 71안타 57타점 48득점 7홈런에 타율 0.428을 기록했다.

9월 3일 전역했다. 전역한 뒤 인터뷰를 통해 "해외에 다녀온 선수도 아니고, 이제 군 복무를 마친 선수인데 너무 크게 부각이 돼 부담이 되는 측면은 있다. 반대로 팬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더 책임감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밝혔다.

9월 4일 엔트리 복귀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당일 선발 라인업에 1번타자 2루수로 선발출장한다.

다른 입대 선수들 보다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다. 같이 전역한 홍상삼이나 전준우는 안치홍보다 그다지 꿀릴게 없는 성적인데도, 그 둘보다 스포트라이트가 훨씬 더 집중되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불펜투수나 외야수와 주전 내야 키스톤의 가치는 꽤 차이가 크다. 더군다나 팀 또한 각각 화수분 두산과 외야자원이 꿀릴 게 없는 롯데인지라...

복귀전에서 안타는 치지 못했지만 볼넷 2개를 골랐고, 8회초 손아섭의 날카로운 타구를 슬라이딩 캐치하는 호수비를 했다.

9월 6일, 멀티 히트 게임이였지만, 호투하던 켈리에 밀려 팀은 0:2로 패배하고 말았다.

9월 9일 1군에 등록된지 5일만에, 우측 내전근 손상 1군 말소 되며 사실상 시즌 아웃.

9월 22일 현재는 회복이 된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신중하게 지켜보는 중.

그리고 9월 27일 LG전에서 복귀해 2년만에 김선빈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공수에서 거하게 삽을 펐다...

10월 3일 kt전에서도 무안타. 심지어 1회 빅이닝을 이어가는 와중에 병살을 치면서 공격에서 완전히 삽을 푸고있다. 같은경기에서 김선빈은 5타수 3안타의 맹활약을 한지라 더욱 비교되는 부분. 다만 수비 부문에선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평가이다.

와일드 카드 결정전에서도 아쉬운 타격감을 보이며 팬들의 한숨을 자아내었다.

3.9. 2017 시즌

유격수 김선빈과 키스톤콤비를 볼수 있을까 했지만 시범경기때 발생한 늑골 염좌 부상으로 전남 함평에 있는 기아 챌린저스 필드에서 재활을 하고있다.
4월 7일 1군에 콜업되었다.
그리고 콜업되자 마자 2루타 2방을 날리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4월 16일 4타수 2안타 3타점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7회말 2아웃 상황 최형우를 볼넷으로 거른 피꺼솟 만루상황. 자신을 상대한 김상수에게 2타점 역전 적시타를 쳐 이날의 결승타가 되었고 팀은 승리해 수훈선수가 되었다.

4월 26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마수걸이 홈런을 쳤고, 27일 연이틀 홈런을 기록하며 삼성전 스윕을 도왔다.

5월 11일 현재 병살타 6개로 2위, 실책 1위를 기록하며 부진한 성적을 기록중이다.

5월 12일 어처구니없는 수비로 헥터를 무너뜨렸다. 출루가 안타로 기록된 뒤 헥터가 쓰리런을 맞아 1회의 행복수비가 자책점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었다.

5월 13일 모처럼 3안타를 몰아치며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특히 9회와 11회 모두 안치홍 안타 - 최형우 홈런으로 이어지며 역전승에 크게 기여했다.

5월 31일 선취 솔로포와 3루타를 포함해 5타수 2안타 1홈런 4타점 2득점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했다. 그 덕에 기아는 2위 NC를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기록하며 5월을 마무리했다.
6월 11일 수비에서 불안한 모습을 몇 차례나 보여 주었는데, 경기에서는 이겼지만 팬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6월 17일 LG와의 경기에서 4회말에 안타와 도루를 하며 무사 2루를 만들었고, 신종길의 2루 땅볼때 3루로 간뒤 이범호의 짧은 좌익수 플라이 때 좋은 베이스 러닝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또한, 6회말에 결승 8호 홈런을 치면서 이 경기의 MVP로 등극 되었다.

6월 22일 5타수 4안타 1홈런으로 뜨거운 타격감을 보여줬다. 타율을 0.335로 끌어올렸고 OPS도 9할 2푼을 넘기며 서건창과 골글 경쟁을 하는 중이다. 다만 이날까지 실책이 8개로 꽤나 많은 편이라 수비 지표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고있다.

4. 트리비아

무등 아이돌답게 잡다한 이야기들이 많다(...)

4.1. 국가대표 잔혹사

고등학교 시절에는 청소년 야구 대표팀에 두 번이나 뽑히며 유격수 5인방에 이름을 올리는 활약을 했지만, 정작 프로에 와서는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었다. 데뷔 이후 몇 차례 승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히 탈락하며 불운을 맛보아야 했다.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소속 팀 감독이었던 조범현 감독이 대표팀 감독에 올랐지만, 이 때는 정근우라는 주전 2루수가 버티고 있었고 프로 2년차라는 점에서 경험 면에 밀려 탈락했다. 하지만 조범현 감독이 자팀 선수인 안치홍을 국가대표로 선정하려한다는 말이 돌면서 엔트리가 확정될 때까지 많은 욕을 먹어야했다.
  •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에도 2루수 자리를 놓고 신인왕 및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서건창과 2루수 타율 1위였던 안치홍이 경쟁을 펼쳤으나, 결국 승선한 선수는 또 다시 정근우가 올랐다. 그러나 이 때 당시 정근우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몸 상태에도 정근우를 발탁한 기술위원회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결국 정근우의 부진은 타이중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받기도 했고, 당시 유격수만 3명이나 발탁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때에도 이 불운은 비켜가지 못했다. 이 때 당시에는 안치홍이 절륜한 타격감각을 선보이며 60인 예비 엔트리에는 승선했지만, 하필이면 2014 시즌 최다안타 1위인 서건창이 있었고 멀티백업 오재원과 경험의 정근우에 밀린다는 이유로 2차 엔트리에서 제외가 된 것. 이 부분에 있어서 아시안 게임 엔트리의 가장 큰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 허접한 모습을 보인 김상수가 단지 멀티 내야수라는 이유로 뽑혀서 더욱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류상수의 그 잘난 내야 멀티 능력은 볼 수가 없지 그리고 선수들을 멀티로 출전시키지 않고 고정으로 쭉 출전시켰다.미필자 배분에서 나지완에게 밀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안치홍은 최종 엔트리가 아니라 2차 엔트리에서 더욱이 류중일 감독 스스로 자신이 탈락시켰다고 말했다. 여기에 안치홍 대신 엔트리에 들어간게 정말로 뜬금없이 김주찬. 김주찬은 당시 부상으로 소속팀인 기아에서도 경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 경찰 야구단 군복무 시절에 개최된 프리미어 12에서도 예비 엔트리마저 들지 못했다. 물론 대체복무 중인 의무경찰 신분이고, 퓨처스리그 후반기 들어서 약한 모습을 보였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당시 경찰 소속이었던 장원준이 뽑혔던 사례가 있었던 만큼 군복무 문제에서 자유로운 국제대회마저 들지 못한 건 본인에게 아쉬울 따름.

4.2. 인성 및 기부활동

  • 안치홍의 부친이 서울고 출신이었기 때문에 서울고에 진학하여 야구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학원 수학강사로 서울 모처에 두 아들의 이름을 딴 학원의 원장으로 있었다. 아들 따라 가족들이 광주로 내려왔다고 한다. 일종의 기러기 아빠인 셈. 한편 안치홍은 모교 후배들에게 대회 우승을 부탁하면서 야구방망이 20자루를 쾌척할 정도로 모교에 애정이 많은 듯 하다.# 그러나 최근들어 중,고등학교 교외 학습 시스템이 점차 오프라인 학원에서 온라인 대규모 강의로 변경됨에 따라서 학원의 규모가 줄어들어 결국 아버지의 학원 사업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 위처럼 학구적인 가정 환경 때문인지 일반적인 운동선수들의 이미지와는 달리 학구열도 강하다고 한다. 일단 직접 작성한 글들에서 갸춤법이 보이지 않는다 2011시즌 도중에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글로벌리더 최고위과정 27기를 신청하고 6개월 뒤에 수료하기도 했다. 6개월 과정으로 일반대학원 정규코스는 아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이수하는 사람들이 4~50대의 전문경영인들이 듣는 과정이라는 것(...) 놀랍게도 이 과정 동기생이 개그맨 김현철, 양상문 엘지 감독, 이봉주 마라톤 코치(...) 거기에 한 기수 위가 김경문 NC 감독이었단다(...)참고기사[28]
  • 데뷔 시즌부터 1안타 및 1도루 시 돈으로 환산하여 적립하는 기부활동을 하고 있다[29]. 그리하여 군입대 직전인 2014 시즌 후에 후원단체에서 감사패를 받았고, 이 중에는 안치홍의 후원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야구선수도 있다고.


    안치홍이 군대에 입대하여 경찰청에서 뛰는 동안에는 성적에 상관없이 200만원을 기부한다고 밝혔고, 대신 이범호가 안치홍을 대신해서 공격포인트를 금액으로 환산하여 기부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 모교인 서울고 야구 후배들에게 야구배트를 매년 후원을 해주고 있는 등 모교 지원도 꾸준히 하고 있다. 위의 최고위과정 및 서울고 동문들 등 인맥이 생각보다는 화려한 편.
  • 위의 학구적인 가풍 및 가정교육을 받아서인지 프로에 진출하고 나서는 별 다른 구설수를 만들지 않고 SNS 활동도 잘 안 하는 편이다. 논란이 있었다면 2009년 2루수 골든글러브 투표 당시 신명철보다 더 많은 득표를 받은 것이나 국가대표팀 발탁 문제나 기자기레기가 쓴 기사나 선동열 전 감독이 안치홍에게 했던 '임의탈퇴' 발언이 도화선이 되어 자진사퇴를 이끈 '안치홍 사태' 정도인데 일단 일련의 사건들이 본인이 잘못해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 팬서비스도 정말 좋은 편이다. 한 일화

4.3. 그 외 기타

  • 뼈가 웃자라서 신경이 눌리는 고질적인 손목부상이 있다. 다만 손목 수술시 선수 생활에 지장이 생길 우려로 상태가 심각해지지 않는 이상은 재활을 통한 치료를 한다고. 박동희의 블라인드 데이트
  • SK의 외야수 안치용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KIA 입단 초기에는 친척 아니냐고 오해하거나 LG의 안치용이 KIA로 간 것이 아니냐고 오해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 안치홍이 수비를 보거나 공격시에 이상하게 상대편의 실책성의 플레이가 많이 나와서 기아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운치홍이라고 불리고 있다. 동시에 안치홍이 3루주자로 나가 있을 때 득점을 올리는 비율도 상당한 편.
  • 또한 구장에 따라서 안치홍이 기록하는 성적이 다른데, 대체적으로 잔디구장이 있는 구장(특히 잠실야구장)에서 유독 타율이나 수비율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조잔디구장인 홈구장 무등야구장에서는 의외로 개인기록보다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30]
  • 서울고 2년 선배인 한성구가 부상 경력으로 인해 아무도 지명하지 않았을 때, 후배였던 안치홍이 당시 조범현[31] 감독에게 추천함으로써 2011년 KIA 타이거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하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2년 정규선수로 전환된 이후 KIA가 하위권에 있을 때 1군에 콜업된 이후 타격 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서 안치홍의 '스카우트'로써의 또 다른 면을 보았다는 설레발도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한성구가 후배에게 많이 고마워하는 듯. 여담으로 2012년 6월 14일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한성구가 경기 MVP로 선정된 이후 선배 한성구의 짐까지 같이 챙겨 나가는 안치홍을 볼 수 있었다(...)
  • 2012 시즌 응원구호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은 장윤정의 '사랑아'의 전주 부분. 2009년 장성호가 떠난 이후 2010년경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단순하게 전주 멜로디에 따라서 이름만 외치는 응원구호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원래는 응원단에서 응원도구(막대풍선)를 노래에 따라 흔들 때 방향을 지시하는 '오른쪽~왼쪽!'을 붙였던 것이 관중들마저 이 지시어까지 따라하면서(...) 지금은 응원구호를 외칠 때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안치홍(x2)'을 다 한다(...) 그 덕분인지 2012시즌 관중들에게 가장 호응이 좋은 응원구호이자 은근히 난이도가 빡센 응원구호가 되었다(...)
  • 구단에서 공개적으로 안치홍의 닉네임을 모집했는데 3천개 중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뽑지 않아서 무등상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파일:attachment/안치홍/무등상전.jpg
  • 노안 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데뷔 때부터도 그다지 곱상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연차를 쌓을수록 흐르는 세월을 직접적으로 가격당하면서 동년배에 비해서 더 나이들어보이는 편.
  • 같은 팀의 나지완만큼의 달변가는 아니지만 인터뷰나 팬 서비스 증언에서도 알 수 있듯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이다. 덕분에 별다른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고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평시에 팀 동료와는 수다스런 모습을 보이는 등 '빅 마우스'의 면모도 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9 KIA 타이거즈 123 371 .235 87 13 4
(7위)
14 38 53 8 34 .404 .297
2010 134
(1위)[33]
461
(9위)
.291 134 21 3
(8위)
8 50 79
(8위)
18 56 .401 .365
2011 115 378 .315
(6위)
119 21 4
(7위)
5 46 54 9 36 .431 .373
2012 132
(4위)
489
(4위)
.288 141
(6위)
31
(5위)
2 3 64 60 20 48 .378 .347
2013 118 414 .249 103 15 0 3 39 56 16 58 .307 .338
2014 126 479 .339
(10위)
147 31
(10위)
2 18 88 65 19 39 .544 .390
2015 경찰청 야구단에서 군복무
2016 4 14 .214 3 1 0 0 0 0 0 2 .286 .313
KBO통산(7시즌) 751 2561 .287 734 133 15 51 325 367 90 273 .410 .352



[1] 이 노래의 전주 부분을 쓴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안치홍! 안치홍! (x 4) 장성호가 KIA에 있었을 때 현재의 응원가 이외에 마지막으로 썼던 응원가를 그대로 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Trivia' 참조.[2] 데뷔 당시 응원가. 소주 처음처럼의 CM송으로 알려진 노래로, 이효리가 나와서 춤추면서 불렀던 노래다.[3] 가사는 KIA의 안치홍 안치홍~ 안타치고~ 도루하고~(×4) 근데 원래 가사는 도루가 아니라 홈런이었다. 문제는 2009년 이후로 장타력이 안살아나서 바꾼것... 그러나 2017년부터 사용하지 않는다.[4] 안치홍 이전에 2루 수비를 책임졌던 김종국 응원가의 재탕이다(...) 다만 원래 응원가 주인이 코치로 버젓이 있기 때문에 올드 팬들의 눈치를 봐서인것 같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사랑아'가 더 반응이 좋고 더 자주 쓰기 때문에 실제로 이 음악이 응원가로 쓰인 적은 없다. 여담으로 2010시즌 김종국의 플레잉코치 전환 이후 이 응원가를 박기남에게 주려고 했으나 호사방 아재들의 강렬한 반발로 무산되었던 흑역사가 있었다(...)[5] 2009 한국시리즈 7차전 잠실 SK전[6] 역대 최연소 기록[7] 당시 기아의 내야수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최희섭, 이재주, 김종국, 김상현, 박기남, 안치홍, 이현곤, 최경환. 다만 최경환은 외야수로, 부상으로 낙마한 유격수 홍세완 대신 엔트리를 채우기 위해 넣은 것이다. 2004년 한국시리즈 당시 클리프 브룸바가 3루수로 갔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8] 다만 이 별명은 김종국 코치의 현역 시절처럼 수비는 잘 하는데 타격은 영 시원치 않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9] 경기 중에도 시도때도 없이 주둥이를 나불대서 입 닥치라는귀엽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 2009년 우승이후 일본 챔피언인 요미우리 자이언츠한일 클럽 챔피언쉽 경기를 할 때 당시 요미우리 1루수로 출전한 이승엽을 보고 흥분했는지 평소보다 10배 빠르게 조잘거리는 것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2011 시즌부터 경기중 타팀 선수와 이야기 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좀 조용해 질듯[10] 안치홍의 닉네임을 팬들의 공모를 통해 모아 안치홍 본인이 직접 선택하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팬들이 지어보낸 수많은 별명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아예 고르지를 않아서 최우수상 당첨자가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차도남(...) 그래서 도도함이 공주와 같다고 붙인 별명인데... 포의 둥아리라는 중의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또는 무등상전으로 불린다[11] 최연소 미스터 올스타에 뽑힌것도 인기팀 소속에 주전을 차지하고, 그 소속팀이 좋은 시즌 성적을 내어서 올스타전에 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올스타전이 소속팀인 KIA 홈구장 무등에서 열렸고 그날 팀승리까지 얻어서 가능했던것. 한국시리즈 최연소 홈런도 팀이 진출하지 못했다면 기록할수 없었던 일이기에 실력 외에도 운이 끝내준다는 뜻에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12] 입단 했을 때 김종국 김선빈 이현곤 등과 경쟁해야 했는데, 마침 타격은 못해도 수비만큼은 끝내준다는 김종국이 나이가 들어서 수비능력까지 떨어지자 2루 주전을 꿰찼다. 물론 2루에 가기전에 이미 프로에서 타격이 통하는것을 시즌 초반에 보여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1년 선배 김선빈은 김상현 박기남의 영입으로 이현곤이 유격수로 오자 백업이 되버렸다.[13] 이순철 당시 MBC SPORTS+ 해설위원이 "안치홍은 곱상하게 생긴 선수다" 라는 발언 때문에 붙은 별명.[14] 홍어드립을 당하는데 정작 출신은 전라도가 아닌 경기도다. 음...?[15] 근데 사실 안치홍뿐만 아니라 끝에 호가 붙는 선수나 구단 관계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범이선. 특히나 이범호의 경우에는 전라도 사람이 아닌 대구광역시 출신인데다 심지어 공개적으로 전두환이 프로야구 만들어줬다고 고마원한 발언을 한 경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이러니.[16] Outstanding Defensive Player.[17] 2009년 당시 대주자로 들어간 다음 타석에서 삼진을 당한 적은 있다(...) 2015년을 기준으로는 이것이 4번 타순에서 서 본 유일한 기록.[18] 그리고 이종범을 3루수로 투입시켜보지만, 한 시간도 못 가 포기하고 결국 김상현박기남을 얻어온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2011년 이범호까지 사온다[19] 이미 이전에 2루에 손지환, 김형철(!!) 등을 기용하는 노력이 있었다. 그 때는 누구도 나이든 김종국을 밀어내지 못했지만..)[20] 10대 10홈런은 심정수 이후 두번째[21] 이용찬(3년차), 고창성(2년차), 홍상삼(2년차), 김민성(3년차)[22] 정확하게 말하면 공정성의 시비가 아닌 기자들의 투표기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스탯을 기준으로 투표를 하는 개념 있는 기자들은 정근우와 신명철로 나눠지지만 임팩트를 기준으로 투표하는 개념 없는 기자들의 표가 안치홍에게 몰린 것 이는 2010시즌 박경완의 골든글러브 논란과 비슷한 경우다.[23] 득점권 병신의 준말.. 득점권 타율이 낮아서 붙여진 별명[24] 정확히는 2군(퓨쳐스 리그)행이 아닌 3군(재활군) 행이다. 성적은 좋았지만 허리 통증으로 수비나 타격이 어려웠기 때문에 김원섭과 함께 말소되었다.[25] 꾸준히 3할을 찍어주던 타율이 .266까지 떨어진 게 크다.[26] 그리고 이 임의탈퇴 공시까지 언급하며 안치홍을 압박한 시점이 선동열 감독의 재계약 직후였기 때문에 KIA 팬 중 이미 선동열 감독은 재계약을 통보받았거나, 애초부터 5년 계약이었을 거라는 확신을 한 사람이 늘었다. 만약 경질 예정이었다면 안치홍의 거취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으니까.[27] 이날은 2군 홈 구장인 기아 챌린저스 필드가 공무원 사회인 야구 경기를 위해 대관하면서 함평구장을 쓸 수 없었기 때문. 일요일 경기는 정상적으로 기아 챌린저스 필드에서 경기를 가졌다.[28] 사실 대학원에서 하는 단기 코스도 군대 입영연기의 수단 중 하나이기는 하다.[29] 데뷔 시즌엔 안타 및 도루 당 1만원이었다가 2013년부터 2만원으로 올렸다. 그래서 2013년에 망했나라는 드립도[30] 사실 이는 안치홍뿐만이 아니라 다른 KIA 타자들에게 그런 경향이 강하다.(여담으로 2011시즌 이종범은 8월까지 홈런 3개를 기록중인데 이 홈런 3개가 전부 문학야구장에서 나왔다.) 거기에 무등구장의 구장 상태는 최악으로 알려져있어 인조잔디 상태도 좋지 않고 그라운드가 딱딱해서 주루플레이나 수비에 있어서 야수의 몸상태에 심한 무리를 준다. 이게 다 선수 잡아먹는 무등구장 때문이다. 그나마 새 구장을 지었으니 망정이지...[31] 조범현이 SK 감독에서의 경질 이후 기아 배터리코치에 들어가기 전에 서울고의 타격 인스트럭터로 있으면서 두 선수를 보았던 적이 있다. 물론 안치홍의 공(?)도 있었겠지만 조범현도 나름대로 한성구에 대해서 재능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32] 실제로 일반적인 운동선수들과는 달리 학구파라 향후 감독으로 부임하면 지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33] 전 경기 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