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9 13:59:26

박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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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4 1998 2000
2003 2005 2006

보유 기록
최다 연속 경기 안타 39경기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
1994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0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4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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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KBO 리그 타격왕
}}} ||
박종호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LG 트윈스 등번호 67번
김성기(1991) 박종호(1992~1998) 최창호(1998~1999)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1번
최창호(1996~1998) 박종호(1998~2003) 장교성(200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1번
틸슨 브리또(2002~2003) 박종호(2004~2008) 에니스(2008)
LG 트윈스 등번호 31번
김용우(2007~2008) 박종호(2009~2010) 신정락(2011~2014)
LG 트윈스 등번호 81번
[[김지용(2010) 박종호(2011~2018) 결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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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 피닉스 야구단 No.71
박종호 (朴鍾皓 / Jong-ho Park)
생년월일 1973년 7월 27일 ([age(1973-07-27)]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관악구
출신학교 서울구암초 - 성남중 - 성남고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1992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2~1998)
현대 유니콘스 (1998~2003)
삼성 라이온즈 (2004~2008)
LG 트윈스 (2009~2010)
지도자 LG 트윈스 2군 수비코치 (2011~2015)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2015~2018)
상무 피닉스 야구단 수비코치(2019~)
응원가 삼성 시절 : Baltimora - Tarzan Boy[1]
LG 시절: 동요 밀과보리가 자라네[2]링크

1. 소개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여담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LG 트윈스,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2루수. 現 LG 트윈스의 1군 수비코치.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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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1기 시절.
이종열?[3]

성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졸연고 자유계약으로 1992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였다. 입단 때만해도 유격수였으나 당시 감독 이광환이 박종호의 어깨가 약하다 판단하고 2루수로 전향시켰다. 그 해 시즌 종료 후 스위치 히터 전환을 시도하였고, 1993년에 한 경기 좌우타석 홈런을 치는 등 주전 2루수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원래 스위치 히터를 안하려고 마음먹었으나 타력덕후 김용달 타격코치와 약간 자존심이 상할 마음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너를 마음껏 밀어 줄테니 한번 바꿔서하자 실패하면 모든 욕은 내가 먹겠다 너는 따라와라"라고... 하면서 스위치 히터로 전환하게 된 일화가 있다.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 중 한 명으로, 그 해 2할 6푼 타율에 21도루, 56타점으로 하위타선의 해결사 역할을 하며 같은 팀 유지현과 준수한 키스톤 콤비를 이루면서 2루수 골든 글러브 수상.

그러나 1995년에는 롯데 자이언츠 포수 강성우와 충돌해 손목 부상과 방위병 복무로 인해 1군 61경기 출장에 그쳤고, 1996년에는 방위병의 경기 출장이 전면 금지되면서 잔여 기간 동안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1997년까지 2년 연속으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고, 이는 곧 밑에 서술되어 있듯 현대 유니콘스트레이드된 계기가 되고 만다. 거기다 그 당시 LG 내야진은 신국환, 안상준, 권용관 등 센터 내야 자원이 많았기 때문에 방위 복무와 부상으로 고전했던 박종호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4]

1998년 좌완투수 최창호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하게 된다. 이는 LG 트윈스의 트레이드 흑역사 가운데 하나로 뽑힌다.

파일:현박종호.jpg
그의 최전성기를 보냈던 현대 유니콘스 시절.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한 후에는 유격수 박진만과 호흡을 맞춰 류중일 - 강기웅 키스톤 콤비 이래 박진만 - 박종호라는 최강의 키스톤 콤비가 탄생되었다.[5] 이후 현대에서 3번이나 우승을 맛보게 된다.[6]

이후 현대에 있던 키스톤 콤비는 삼성에서도 이어지나 이후에는 그의 노쇠화와 잔부상이 찾아오면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기존의 박진만의 파트너였던 박종호의 자리에는 김재걸이 땜빵으로 메워 주다가 2007년부터 신명철이 대신하게 되었다.

트레이드 직후인 1999년 2루수와 3루수로서 3할 타율에 10홈런 13도루를 기록, 이듬해의 대활약을 암시하는 성적을 기록하였다. 이 해의 10홈런은 2000년과 더불어 둘 뿐인 박종호의 두 자리수 홈런. 다만 이 해 1999년도의 골든글러브는 팀을 포시에 이끌고 .329의 고타율을 기록한 박정태에게 돌아갔다. 박종호가 받았다면 홍현우가 분노했겠다. 덤으로 이 해 박종호가 맞은 사구가 무려 31개나 된다.[7]

현대시절에는 김재박 감독이 좋아했던 작전형 2번타자로 1번 리드오프 전준호의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했다. 전준호가 안타치고 도루하면 박종호가 번트를 대거나 진루타를 만들어주는 식. 그만큼 잘쳤고 본인의 작전수행능력도 뛰어났다.

2000년 소속 팀이 역대 최강팀으로 불리울 때는 미묘하게도 성이 같은 박경완, 박재홍, 박진만과 같이 역사상 최강의 골글 센터라인[8](포수 - 유격수 - 2루수 - 중견수)을 구성하였고 121경기 .340 타율로 타격왕[9]에 올랐으며 이 해에 59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웠다.[10] 2루수이자 스위치타자 타격왕이라는 업적을 달성한 이 해의 한 가지 흠이라면 코시에서의 실책.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회 초 병살성 타구를 최고 수준의 수비를 보여주던 박종호가 실책을 2개 연속으로 저지른 것이다. 이로 인해 현대는 3연승 내리 달린 후 3연패를 하면서 사지에 몰리지만 7차전의 톰 퀸란의 활약으로 역대 최강 팀의 이름에 걸맞게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으니 박종호에게 다행이라면 다행. 참고로 7차전에는 지명타자로 출전했고, 현대의 창단 첫 우승이자 핵심 멤버였던 노장 이명수가 2루를 맡았다.

그리고 그해 시드니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같이 출전한 유니콘스 소속 투수들이 부진한 가운데 박재홍과 함께 맹활약했다. 허나 2001년 전 해의 활약이 무색하게 .241로 규정 타석 꼴찌행(..)[11] 무려 1할이나 떨어졌다. 물론 전 해 멤버들이 거의 예외없이 00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우승만을 보고 달린 작년의 후유증으로 볼 수도 있었으나, 어찌됐건 팀의 정규 시즌 2위 달성에 힘을 보탰다. 2002년과 2003년에는 [12] 조금씩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팀의 3번째 우승을 이끌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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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시절.

FA 자격[14] 얻어 2003년 11월 말 삼성 라이온즈와 4년 22억에 계약을 맺어 이적하게 된다. 사실 삼성은 그 해 정수근을 영입하려고 했으나 정수근이 롯데로 이적하자 당시까지 취약점으로 꼽히던 2루수 보강을 이유로 데려온 것이었다.[15] 현대에서는 보상 선수로 노병오를 지명했다. 한편 보상선수 노병오는 현대에서 얼마 못가서 은퇴했다. 2004년에는 2003년 후반기부터 이어온 연속 안타 기록을[16] 그대로 이어가는 등 꾸준히 활약을 하였으며, 3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17] 이때는 삼성이 박종호의 연속안타 이벤트를 열었을 정도.[18] 이 3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은 10년 후인 2014년에 KBO가 비 더 레전드라는 일종의 게임으로 쓰이게 된다. 2004년에도 작년과 비슷한 성적을 찍었다. 수비에서는 괜찮았고 골든글러브도 4년만에 탈환하였다.

2004년 플레이오프 두산戰 경기에서 큰부상을 당한 기점으로 이후 2005년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7년 1할대의 타율에 그치고 시즌 초부터 부상으로 이탈한 뒤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거기에 당시 각동님의 야구 스타일인 기동력 야구에 맞지 않았던 그는 신명철이 영입되면서 비중이 줄어들게 되자 2008 시즌 도중 한화에서 건너온 용병 제이콥 크루즈와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사실상 은퇴에 몰렸지만, 2008 시즌 후 친정 팀 LG 트윈스 감독으로 있던 옛 스승 김재박[19]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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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만에 돌아온 LG 트윈스 2기 시절.

이렇게 LG와 계약하며 복귀하게 되었다. 2009년에는 괜찮은 성적을 올리긴 했지만 이후에 박경수가 2루수로 전향하면서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2010년 5월 27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2010년 9월 26일 잠실 삼성전에서 은퇴식을 열었으나 그 날 LG는 차우찬의 완투 쇼에 막혀 패했다....그리고 2017년부터 차우찬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를 선언하자마자 2군 야수 인스트럭터로 LG 구단에서 임명하여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2군 수비코치를 맡고 있다가 2015년 6월 15일 서용빈과 함께 1군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LG 선수들의 답없는 수비 능력 때문에 가루 단위로 까이기도 한다.

2016년 들어서는 과감한 수비 시프트를 선보이고 있다. 결과는 나름대로 성공하는 편.

하지만 2018년에 들어선 기본적인 수비에서 잔실수가 많아지고 또 실책수가 증가함에 따라 슬슬 까이고있다. 그래도 투코보단 안까이고있다

그리고 2018 시즌 마치고 보니 완벽히 와장창된 수비에 프런트도 질려버렸는지 2018년 10월 19일 새 단장으로 차명석 해설이 임명됨과 동시에 짤렸다.

2019년 상무 피닉스 야구단의 수비코치를 맡았다.

4. 여담

  • 우투양타의 스위치 히터로 2000년 시즌 타율 0.340으로 타격왕에 올랐었는데, 이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양손 타자(스위치 히터) 타격왕이었다.[20] 그리고 타격왕이 나온 팀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못 한다는 징크스를 최초로 깬 타격왕이다.
  • KBO 리그에서 유일하게 타격왕을 수상한 다음해에 정규타석 타율 꼴지를 차지한 선수이기도 하다.[21]
  • 이외에도 59경기 연속 출루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2017년 김태균이 깨 버렸다. 이 정도면 최태원과 더불어 연속 기록의 달인.
  • 외모와 달리 싸움 실력이 대단한 선수였다고 한다. 선수들이 꼽은 싸움짱 1위로 꼽히기도 했다. 1997년 LG와 롯데의 사직 경기에서 주루 플레이 도중 당시 롯데 주전 2루수 박정태와 시비가 붙어 양팀의 벤치클리어링으로 번진 적이 있었다. 박정태도 작은 체구와 달리 싸움에서 2인자라면 서러운 선수라 둘이 제대로 붙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22]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후 대구광역시 달서구 본리동의 한 아파트 상가에 빵집을 열었으나# 지금은 문을 닫았다. 다만 가족은 은퇴 전까지 대구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박종호의 아들이 대구에 있는 리틀야구단에 뛰고 있다는 소식도 있는데 정확한 사실이 알려지면 추가바람.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2 LG 트윈스 45 73 .192 14 0 1 1 7 10 0 8 .260 .272
1993 91 316 .263 83 15 4 6 33 42 8 33 .392 .331
1994 105 335 .260 87 14 6
(1위)
6 56 59 21 58 .391 .366
1995 61 207 .251 52 5 3 0 22 26 12 28 .304 .331
1996 군복무(공익근무)
1997 65 160 .219 35 4 2 0 11 16 2 29 .269 .337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8 LG / 현대 103 218 .229 50 8 2 2 18 38 8 45 .312 .358
1999 현대 유니콘스 119 396 .301 119 29 4 10 55 79 13 59 .470 .388
2000 121 441 .340
(1위)
150 30 3 10 48 89 9 73 .490 .428
(2위)
2001 123 456 .241 110 12 3 9 65 67 5 64 .340 .331
2002 108 402 .266 107 15 2 7 53 58 4 36 .366 .326
2003 131 502 .293 147 26 4 6 61 90 6 65 .396 .37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 삼성 라이온즈 132 514 .282 145 25 0 8 59 78 7 56 .377 .350
2005 119 392 .268 105 21 0 4 36 63 5 64 .352 .368
2006 104 273 .238 65 13 0 1 30 65 3 37 .297 .325
2007 17 27 .185 5 3 0 0 4 0 0 1 .296 .214
2008 33 82 .232 19 2 0 0 5 8 0 9 .256 .304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9 LG 트윈스 62 161 .267 43 5 1 1 11 16 0 23 .329 .357
KBO 통산
(17시즌)
1539 4955 .270 1336 227 35 71 584 761 103 686 .373 .356


[1]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박종호~ *4[2] 가사는 'LG의 박종호, LG의 박종호 안타한방 날려줘요 LG의 박종호, 랄라랄라 랄라 랄라랄라랄라 안타한방 날려줘요 LG의 박종호'. 이 응원가는 박종호의 은퇴후 김태완이 물려받는다. 김태완의 삼성 이적후 아직까지 주인은 없다.[3] 실제로 둘이 꽤 비슷한 점이 많다. 같은 팀 소속이였고, 스위치히터에 내야 포지션을 두루(박종호는 2루수외에도 유격수,1,3루도 가능했다.)섭렵한 점까지.[4] 그러나 셋 다 기대치만큼 못터져서 이종열로 구멍을 메우고 박경수를 거액들여 데려오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손주인이 오기 전까지 엘지의 2루는 구멍이나 다름없었다. 박종호 대신 키운 안상준은 98년 반짝 활약하고 거품이 빠져 두산으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신국환도 주전은 커녕 백업을 전전하다가 한화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나마 권용관이 꾸준하긴 하였으나 주 포지션이 유격수이기도 하였고, 어디까지나 수비형 내야수라 공격에서는 기대조차 하지 못 할 수준이었다.[5] 원래는 기존의 2루수 이명수가 따로 있어 박종호는 2루와 3루를 번갈아 보다가 후에 철벽수비와 한방을 자랑하던 톰 퀸란이 오고 김경기 이적,이명수가 1루로 가면서 2루수로 완전히 안착했다.[6] 1994년 LG 시절과 2005년, 2006년 삼성에서의 우승을 포함한다면 총 6회의 우승을 경험했다. 같은 팀에 뛰었던 영혼의 콤비 박진만과 타이 기록. 단 박진만은 SK에서는 우승을 못했지만 박종호는 가는 팀마다 우승을 했다는 점에서 더 무섭다. 숨겨진 우승청부사. 박종호 말에 따르면 별개로 우승 보너스는 적었다고 한다.[7] 종전 기록이던 공필성의 기록을 바꿨다. 우연의 일치로 당시 박종호는 등번호 31번을 달고 있었다.[8] 또는 밀레니엄 4박 이라고 불렀다.[9] 역대 최초 스위치 히터 타격왕 그리고 타격왕에 오르는 타자는 그 해 우승을 못한다는 징크스를 완벽하게 깼다.[10] 이 기록은 이듬해 펠릭스 호세가 63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며 경신했다.[11] 직전 년도 타격왕이 당해 타격 꼴찌를 한 기록은 당연히 지금까지 유일하다. 큰 부상 없이 이러기도 힘들다...[12] 2002년 0.266, 2003년 0.293[13] 현대의 자율 훈련에 본인도 너무 만족한 나머지 훈련을 제때 하지않고 노는것에 정신없었다고... 박동희 칼럼 참고[14] 이적을 하게 된 계기는 현대가 2001년 이 후로 재정난에 삐꺽했는데 그 해 같은 팀 FA 주장 이숭용이 있었다. 현대는 먼저 프렌차이즈 스타인 이숭용을 먼저 면담 후 계약을 했다. 박종호는 금액에 조금 차이가 있어 삼성이 접근하였다.[15] 당시 삼성의 2루 자리는 공격보다는 수비 위주 선수물빠따였던 김재걸박정환이 번갈아가며 맡았다. 한편 박종호는 어릴적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이었다고.[16] 2003년 8월 29일 수원 두산전~2004년 4월 21일 수원 현대전.[17] 종전 국내 기록은 1999년 박정태의 31경기 연속 안타, 아시아 기록은 1979년 히로시마의 다카하시 요시히코의 33경기 연속 안타. 다만 박종호의 기록은 2년 연속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에 한 시즌 연속안타 신기록은 여전히 박정태가 가지고 있다.[18]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결과,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걸리고 링거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먹으면서 경기에 출장했었다고 한다.[19] 당시 현대 유니콘스 감독.[20] 다만 김재박의 밀어주기도 있었다. 12경기에 일부로 출전시키지 않은 것. 그런데 김재박은 2009년에도 또 한 번 이 짓을 한다.[21] 2000년 .340 2001년 .241[22] 1년 선배 강병규조차도 두려워했다. 참고로 박종호가 야구를 하게 된 계기도 강병규랑 상당히 친해서라고. 강병규가 야구를 하는 것을 보고 하게 된 거. 헌데 과거 박종호의 인터뷰를 보면 강병규에게 엄청 맞아가면서 배웠다는 언급을 한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