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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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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프로 경력
3.1. 현대 유니콘스 시절3.2. 히어로즈 시절
3.2.1. 2008 시즌3.2.2. 트레이드 파동3.2.3. 2009 시즌3.2.4. 삼성 이적
3.3. 삼성 라이온즈 시절
3.3.1. 2010 시즌3.3.2. 2011 시즌3.3.3. 2012 시즌3.3.4. 2013 시즌3.3.5. 2014 시즌3.3.6. 2015 시즌3.3.7. 2016 시즌
3.3.7.1. 트레이드?
3.3.8. 2017 시즌3.3.9. 2018 시즌
3.4. LG 트윈스 시절
3.4.1. 2019 시즌
3.5. 롯데 자이언츠 시절
3.5.1. 2020 시즌
3.6. 은퇴
4. 국가대표 경력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장원삼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마산용마고 3학년 때 91 1/3이닝을 던지며 분투했으나 딱히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는지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 드래프트 2차 11라운드에서 현대 유니콘스에게 지명되었다.[1] 이 당시에는 대학 입학 후에도 구단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지명권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장원삼은 일단 경성대에 입학했고,[2] 동기 김기표(야구선수)와 원투펀치를 이루며 경성대를 강팀으로 이끌었다. 대학 통산 32승 4패 0.32를 기록했다. 2004년 세계 대학야구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3학년 때 154 1/3이닝, 4학년 때 109 1/3이닝을 소화하는 등 상당히 혹사를 당한 상태에서 현대에 입단하게 된다.[3]

3. 프로 경력

3.1. 현대 유니콘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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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경성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183⅓이닝, 12승 10패 142탈삼진, 평균자책점 2.85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일반적인 시즌이었다면 신인왕도 충분히 노려 볼 만한, 아니 타고도 남았을 호성적이었으나... 하필이면 1년차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신인왕을 넘어 시즌 MVP까지 독식한 류현진과 같은 해에 데뷔하는 바람에 묻혔다.KBO 역대 신인왕 목록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180+이닝에 2점대 평균자책 & 두자리수 승수면 일반적으로는 충분히 신인왕을 받고도 남을 성적이 맞다. 실제로 다음 해 신인왕인 임태훈의 데뷔시즌 성적과 장원삼의 데뷔시즌 성적을 비교해보면 180+이닝을 소화한 평균자책점 2점대의 10승 투수 vs 7승 20홀드 2점대 불펜투수의 대결이 되며, 이는 당연히 전자의 압승이다. 정말 류현진만 아니었다거나 한살만 더 젊었어도.... 당초 신인 빅3로 지목됐다가 추락한 나승현, 그 해 1군에 못 올라간 유원상은 그저 초라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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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는 168⅔이닝에 9승 10패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 이닝 6위와 평균자책점 10위 등 준수한 성적을 냈다. 시즌 개막 후 5경기에서 32.1이닝 1실점 0.2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는데, 2번은 계투가 날려먹어서, 2번은 타선이 점수를 못 내서 1승밖에 못 챙겼다. 그러다 5월 중순부터 밸런스가 무너지며 급격히 피홈런을 허용하다 막판에 수습하며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결론적으로 2006년과 비교했을 땐 성적이 하락하며 나름의 소포모어 징크스라 부를 시기를 겪기도 했다.

3.2. 히어로즈 시절

3.2.1. 2008 시즌

그 뒤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및 히어로즈 재창단[4]이라는 시련을 겪었지만, 오히려 다음 해인 2008 시즌에는 한층 성장한 투구 내용을 보여주며 팀의 초라한 성적과는 반대로 시즌 성적 12승 8패에 평균자책점 2.85를 기록했고,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서 중국, 네덜란드 등의 하위 팀을 상대로 호투하여 팀의 투수진 소모를 최소화시켜 팀의 우승에 기여한 숨은 공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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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추억이 된 히어로즈 시절.
이 때만 해도 오히려 승운이 매우 없었던 투수이다. 2006년엔 계투진이 날려먹어서, 2007년은 앞에 설명하였으며 2008년엔 걍 팀이 개판이었다.

3.2.2. 트레이드 파동

그러다 2008 시즌 종료 직후인 2008년 11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현금 트레이드 파동이 터졌다. 트레이드 골자는 박성훈 + 이적료 30억. 당시 박성훈의 가치를 볼때 사실상의 현금 트레이드였던 까닭에 파장도 많았고 결국 무산됐지만, 이 와중에 삼성 구단에 짐 싸들고 갔다가 트레이드 승인 여부가 불투명한 까닭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무리 훈련 기간을 상당 부분 벤치에서 허송세월하는 등 고생을 했다. 그래도 이후 소속 팀에서 연봉도 오르는 등 세간의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훌륭한 투수 중 하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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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갔다 차비로 100만원. 삼성이 아니고선 어느 팀이 가능할까. 삼성 측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명분은 1주일 있었으니 연봉 1주일치를 계산해서 지급한 것이지만,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았으니 삼성 측에서 그 1주일치 급여를 부담할 이유는 없었다. 언젠가 반드시 데려오고 싶은 선수인 만큼 관계 유지 차원에서 준 듯.인터뷰 동영상 링크. 40초부터 나온다.

이 외에도 경산 볼파크의 시설 및 식사에 감탄하기도 하고, 삼성 선수들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의 환대에 좋은 인상을 받긴 한 모양.

3.2.3. 2009 시즌

이런 고생을 해서인지 2009년 성적은 막장으로 변했다. 2회 WBC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준 뒤 프로야구 개막 이후에도 별다른 성적을 못 내고 2군으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WBC 후유증과 스토브리그 때 발생한 30억 트레이드 파문 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물론 2010 시즌 성적이 급상승하여 히어로즈에서의 태업도 의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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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자로 여자연예인이 나왔을 때와 안 나왔을 때의 장원삼의 표정 변화를 비교한 짤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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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석의 2008년 스토브 리그의 현금 트레이드가 성공했더라면 날카로운 매각의 귀재로 칭송받았을 뻔했는데 이후 이장석이 어느 자리에서 구단 이익을 내기 위해서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3.2.4. 삼성 이적

2009년 12월 30일[7], 결국 삼성이 장원삼을 정식 영입했다. 이번에는 조건이 달라져서 박성훈+투수 김상수+20억↔장원삼.[8] 2009년 당시 공개된 금액은 20억이었으나 2018년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으로 현금 보상액이 35억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새해 목표는 15승 달성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2008년 겨울에 받았던 유니폼을 잘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적하기 전 2009년 11월 23일부터 12월 18일까지 제39보병사단에서 기초 군사 훈련을 받았다.

3.3.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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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2010 시즌

2010년 시즌 4월 10일 첫 선발승. 7⅓이닝 1실점 7K로 삼성의 위력적인 좌완 선발로 거듭났다. 장원삼 이전의 삼성의 좌완 선발이 퀄리티 스타트를 채운 건 차우찬의 2009년 7월 31일 LG 트윈스전 이후 약 9개월만에 있는 일이다.

결국 2010년 151이닝 13승[9] 5패 평균자책점 3.46으로 시즌을 마쳤다. 주로 선발보다 계투가 강하여 철벽 계투를 구사하던 삼성에서 에이스 역할을 맡아 팀 내 선발 최다승을 거뒀으며, 또한 좌완 선발이 없던 삼성에서 포텐셜이 터진 차우찬과 함께 좌완 원투펀치를 구성하여, 선발이 약한 삼성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2010년 10월 13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진출권이 걸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5:4로 뒤지고 있던 6회초에 등판하여 6이닝 78투구수 1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두산의 타격선을 막아냈고, 결국 팀이 연장 11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스코어 5:6으로 승리하여 장원삼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데 공헌하고 이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여담으로 장원삼과 히어로즈에서 같이 뛰던 이현승도 이날 그와 맞대결을 펼치며 3⅔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기에 히어로즈 팬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장원삼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8이닝 8피안타 2볼넷 2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2.25, 1승을 기록했다.

팀이 3연패로 몰린 2010년 10월 19일, 대구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는데, 이 경기가 장원삼의 데뷔 첫 한국시리즈 등판이었다. 3회까지는 굉장한 호투를 보여 주었으나, 4회 초에 선두 타자이자 3번타자인 정근우, 다음 타자인 이호준에게 연속 안타를 맞으며 흔들리더니, 최정에게 투수땅볼 진루타, 박재홍, 박경완에게 연속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여 실점한 후 8번 타자 박정권에게 2타점 2루타를 맞고 오승환으로 교체되었다.

오승환이 4회 초를 추가 실점없이 마무리해서 장원삼의 추가 실점은 없었고, 장원삼은 이날 3⅓이닝 67투구수 5피안타 2볼넷 2탈삼진 3실점(3자책) 평균자책점 8.10을 기록했다. 결국 삼성 라이온즈는 4회초 3실점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코어 4:2로 패하며 안방에서 SK가 우승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스윕을 막지 못한 장원삼은 이날의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2타점 2루타를 친 박정권은 2010년 한국시리즈 MVP가 되었다.

장원삼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11⅓이닝 13피안타 4볼넷 5탈삼진 5실점 5자책점 평균자책점 3.97, 1승 1패를 기록했다.

3.3.2. 2011 시즌

어깨 부상으로 시즌 초에 결장했고, 결국 개막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나서야 1군에 합류했다. 그를 대신해서 안지만이 잠시 선발로 나섰다.(그래서 안지만은 데뷔 첫 두자리수 승을 거둔다.) 중간계투로 컨디션을 조율하다가 4월 30일 한화 이글스전에 시즌 첫 선발 등판, 6이닝 1실점의 호투로 시즌 첫 승을 따낸다.

이후 나오는 경기마다 난타를 당하면서 심각한 부진에 빠진다. 특히 생일에 등판한 롯데전에서는 롯데 타선에 5홈런을 얻어맞았다.

결국 6월 15일 LG 트윈스전에서 3이닝 3실점으로 조기 강판당한 이후, 불펜으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6월 18일 KIA 타이거즈전에 등판해 1이닝을 던졌으나, 안타 3개를 내주고 2실점하며 불펜에서조차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6월 21일 현재 성적은 1군 12경기에 나와서 2승 3패 평균자책점 6.18. 39⅓이닝 동안 무려 70개의 안타를 허용했다. 피안타율이 0.391. 현재로서는 커리어 최악의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홀수 해 징크스 때문이라고 외치기도 뭐한 게, 2007 시즌은 사실 제법 준수한 성적[10]이었고, 2009 시즌의 부진은 당시 트레이드 파동 때문에 운동에 전념할 수 없었던 환경이었다는 점에서 이해가 갔지만, 2011 시즌의 부진은 단순한 징크스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구위 자체가 맛이 간 상황이라 더 심각하다. 패스트볼 구속이 140km/h를 넘기기 버거운 상황이니 말 다했다.

이 때문에 투구 수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것도 문제. 누가 원-뜨리아니랄까봐 상대하는 타자마다 볼 카운트가 3-1로 몰린다. 매 등판마다 5이닝을 못 막는 것은 부지기수에 5이닝을 넘겨도 평균 투구수가 100개 가까이 된다. 특히 투 볼, 쓰리 볼을 내주고 나서야 스트라이크를 어거지로 우겨넣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6월 23일 등판이 1군에서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여론도 많은 상태. 상대는 한화였는데, 6이닝 무실점으로 승을 챙기며 생명 연장은 했지만 결국 뿔이 난 류중일 감독이 장원삼의 사생활을 지적했다.# 이로 인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은 장원삼의 사생활 문제라면 늦게까지 술 먹는 것이라고 추측하고 장원술이라고 까고 있다. 실제로 장원삼은 주당이기도 하다.

7월 20일 SK전에 선발로 등판, 타자들이 2회 말에 3점을 얻어냈고, 2회까지는 괜찮은 피칭을 보여 주었으나 3회 초에 바로 두들겨 맞고 볼넷도 무수히 내주며 3회도 못 넘기고 또 다시 조기 강판당했다. 자기 손으로만 5실점(후속 투수 이우선에 의해 총 6실점)을 내주면서 사실상 이번 시즌은 이걸로 끝났다라고 보는 시선이 대부분. 이전 류중일 감독의 언질도 있었고 투구 내용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으니 2군행은 확실한데, 많은 사람들이 컨디션 회복 수준이 아니라 부활이 절실한 수준으로 제 기량을 찾아야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문제. 선발 투수로써 기대한 기량 자체가 박살나 있어서 걱정이 크다.

7월 26일, 시즌 최고의 피칭을 보여 주었다. 1회에는 1사 2루서 볼넷만으로 밀어내기 실점을 했고, 2회에는 안타를 3개나 맞으며 또다시 1실점, 2회까지 투구수 52개에 2실점하며 이번에도 이렇게 무너지나 했지만 3회부터 볼넷 하나만 내주고 출루 없이 퀄리티 스타트를 끊으며 7이닝 4피안타 4볼넷 5탈삼진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참고로 삼성의 이번 시즌 마지막 선발승은 6월 23일 본인이 한화 상대로 얻어낸 1승이었다.

2011년 정규리그 최종전인 10월 6일 잠실 LG전에서 6이닝 동안 89구를 던져 8피안타(1피홈런) 1볼넷 3K 3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와 함께 임찬규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8승 8패 평균자책점 4.15로 시즌을 마쳤다.[11]

하지만 2번째 한국시리즈에서 부활하였으니 바로 탈삼진 쇼.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이기던 2011년 10월 26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⅓이닝 동안 90투구수 3피안타 2볼넷 10K 무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스코어 0:0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가는 바람에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비록 장원삼이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지만, 10K를 잡아낸 그의 탈삼진 쇼는 이날 팀이 스코어 1:2로 승리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장원삼에 이어 등판한 권오준이 2차전 승리투수가 되었다.

2011년 10월 26일 경기가 장원삼의 2011년 한국시리즈의 처음이자 마지막 등판 경기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2011 아시아 시리즈를 앞두고 차우찬, 윤성환이 컨디션 난조로 빠지고 덕 매티스, 저스틴 저마노미국으로 돌아가며 믿을 수 있는 선발 투수가 장원삼밖에 없는 가운데, "(정규 시즌 8승에다 아시아 시리즈에서) 남은 2승을 채워 10승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을 언급했다. 그리고 호주 야구 팀인 퍼스 히트전에서 6이닝 4피안타 10K 2실점으로 승리, 소프트뱅크와의 결승전에서 6⅓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또 승리하며 자신의 공약을 이루어 냈다. 더불어 아시아 시리즈 MVP로 선정되며 2011 시즌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 비록 한국프로야구에서 얻은 개인 타이틀은 아니지만, 프로에 데뷔한 후 처음으로 받은 개인 타이틀이다.

3.3.3.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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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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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첫 다승왕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한 시즌.

3.3.4.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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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2014 시즌

4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 5⅓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으나, 타선이 허약한 한화 불펜을 두들겨 패전을 면했다.

4월 6일 롯데전에서는 6이닝 무실점으로 지난번 부진을 씻어내는 쾌투를 보였다. 팀은 송승준을 두들겨 일찌감찌 승부를 내며 이겼다.

4월 16일 두산과의 경기에서는 6이닝 8피안타 5실점(4자책)으로 또 부진했다.

4월 22일 LG와의 경기에서는 5.2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4월 27일 넥센과의 경기에서는 6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6월 14일 두산와의 경기에서 허리통증으로 중간에 강판해 2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팀은 임창용의 블론세이브 이후 이용찬으로부터 끝내기 안타를 치며 간신히 승리했다. 허리통증으로 결국 6월 15일 2군으로 내려가게 됐고, 대신 신인 이수민이 1군에 올라왔다.

7월 9일 1군에 복귀했고, 대신 김현우가 2군으로 내려갔다.

아시안게임 휴식기 직전 LG와 벌인 경기에선 2회까지 잘 던졌으나 2회 이병규의 타구를 카리대 닮은 모 한국시리즈 MVP 2루수 용병의 실수로 결국 최승준에게 맞은 3점홈런 외 3실점하며 6실점 무자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강판, 결국 패배.

10월 28일 저축의 날을 기념하여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한국시리즈에서 다승 순위에 따라 선발 순서를 결정한다는 류중일 감독의 지론에 따라 3선발로 낙점되어, 11월 7일에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4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등판하였다. 6.1이닝 동안 3피안타 2볼넷 6K 1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틀어막았으나 로티노에게 솔로포를 맞고 1점도 내지 못한 타선 때문에 패전 위기에 몰렸다가, 8~9회 박한이의 역전 투런을 포함하여 팀이 역전승하면서 ND를 기록하였다. 승리투수는 안지만. 그럼에도 근 몇 년간 이어온 빅게임 피쳐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7차전 선발 등판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팀이 6차전을 끝으로 우승하여 등판하지 않으면서 윤성환과 안지만이 KS에서 2승씩 나눠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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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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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2016 시즌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돼 4월 3일 선발 등판할 예정이었으나 허리가 좋지 않아 등판이 밀렸다. 이후 등판이 계속 밀리다가 4월 6일 윤성환이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12]

4월 17일 두산전 시즌 첫 선발 등판해 5이닝 10피안타 5실점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4월 23일 kt전에 선발 등판했는데, 3회 마르테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등 5⅔이닝 7피안타 9실점하는 모습을 보이며 한물간 거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냈다. 역시나 패전투수.

4월 29일 한화 이글스전에 등판했다. 5⅔이닝 2실점으로 불안하지만 꾸역꾸역 막아냈지만 승패없이 끝났다.

5월 5일 넥센전 선발 등판해 6.2이닝 3피안타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5월 11일 LG전에서 3이닝 12피안타 9실점(자책점은 6점)하고 강판되었다. 원래 식물타선으로 악명 높았던 데다 NC전 이후 팀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던 LG 타자들을 상대로 12안타나 얻어맞았다.

5월 17일 한화전에서 6.2이닝 4실점 3자책 7탈삼진 9피안타 2피홈런으로 호투했다. 지난해보다는 낫지만 피홈런이 많다는 게 역시 흠이다.

5월 22일 NC전 선발등판해 5회까지 나성범과 박석민에게 솔로 홈런 맞은 걸 빼면 적은 투구수로 NC 타선을 요리했다. 그러나 6회 연속안타와 볼넷으로 무사 만루 상황으로 몰렸고, 이후 이호준과 박석민을 잡아내 2사 만루까지 만들었지만 결정구가 없었다. 결국 대타 지석훈과 손시헌에게 적시타를 얻어맞고 마운드를 내려온다. 뒤이어 장필준이 후속 주자를 내보내 이날 경기 최종 성적은 5.2이닝 8피안타 2피홈런 6실점.

5월 28일 SK전 7이닝 8피안타 2탈삼진 1실점으로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며 2승을 달성했다.

6월 4일 한화전 1회 위기를 잘 막고 7이닝 5피안타 6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지만, ND.

6월 9일 LG전 4.2이닝 8피안타 3피홈런 6실점으로 패전. 이날 장원삼은 생일이었지만 유강남(솔로 2개), 히메네스(투런 1개)에게 생일빵을 너무 심하게 맞았다.

6월 15일 SK전 1회 볼넷-안타-배영섭의 동네북 수비로 1이닝 7피안타 3볼넷 2탈삼진 8실점(8자책점)으로 털리며 먹튀의 품격에 가치를 더하여 삼팬들로 하여금 뒷목을 잡게 했다. 투 아웃을 잡고도 6연속 안타를 맞았을 정도로 난타 당했다. 방어율 7.76.1이닝 58개 투구수를 기록하면서 한 이닝 최다 투구수 2위를 달성했다.# 이 부문 1위는 1990년 4월 21일 삼성전에 나선 최창호(당시 태평양)와 2006년 9월 23일 두산전에 선발 등판한 심수창(당시 LG)이 기록한 59개였으나 앤더슨 프랑코(롯데)가 2021년 4월 17일 삼성전에서 61개를 기록하여 이 부문 1위 자리를 새로 차지하였다.

6월 21일 넥센전에서도 4이닝 11피안타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방어율은 7.69로 내려갔다.

6월 26일 kt전에서 경기 중 목쪽에 담 증세를 호소하면서 2이닝만에 교체됐고, 6월 2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일 1군에 복귀했다. 2군에서 2경기 동안 계투로만 등판했고, 보통 월요일에는 엔트리에서 말소만 하는데다 계속 선발로 쓴다면 선발 등판 예정일을 앞두고 올려도 되는데 굳이 월요일에 장원삼을 올린 게 앞으로 중간계투로 쓰려는 걸 암시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결국 2일 필승조로 기용된다는 기사가 떴다.

8월 4일 SK전 8회 2사 1점차 리드 상황에서 등판하여 박정권에게 빗맞은 안타를 맞고 대주자 최정민의 도루로 위기에 몰린 듯했으나 이진석을 삼진으로 잡으며 이닝 종료. 9회말 최정용도 삼진으로 잡아내며 심창민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팀은 1점을 지켜내며 6:5 스코어로 승리.

이순철이 삼성 경기를 보다가 지난해부터 장원삼이 부진하는 까닭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구질과 제구력은 여전히 좋지만 나이가 들면서 140km/h 중반대를 기록하던 구속이 심각하게 떨어져 버렸고, 그 결과 좋은 제구력을 가졌더라도 안타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 결국 노쇠화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8월 24일 허리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9월 6일 1군에 복귀했다.

9월 10일 신용운의 뒤를 이어 등판했고 3.1이닝 동안 단 1피안타 2사사구 무실점으로 시즌 최고의 피칭내용을 보여줬고 이 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17일 잠실 LG전에 2:2 동점상황 10회말에 등판했다. 2아웃은 잘 잡았으나 이천웅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결국 시즌을 5승 8패에 방어율 7.01이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어찌 되었든 선발진을 지키면서 10승을 달성했던 작년보다 더 심각해져서,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먹튀가 되었고, 시즌 말미에는 선발 자리조차도 빼앗기고 말았다. 삼성의 9위 추락에는 장원삼의 부진도 매우 컸다. FA 계약 마지막 시즌인 이듬해에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결국 FA 계약 실패로 남을 듯하다.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데 선수생활을 안정되게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본인에게도 이듬해가 정말로 중요해졌다.
3.3.7.1. 트레이드?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타 구단으로의 트레이드설이 돌았다. 트레이드되는 선수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사 내용이 내용이기에 네티즌들은 입을 모아 장원삼을 유력 후보로 삼고 있다.

허나 실제로 트레이드된 선수는 같이 언급되곤 했던 채태인. 넥센 히어로즈의 언더스로 투수 김대우와 맞바꿨다. 그리고 정규시즌 들어 장원삼은 구위 하락으로 선발서 강등당했다.

3.3.8. 2017 시즌

FA 마지막해. 이전해까지의 평가를 날려버려야하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3월 6일 롯데와의 연습경기에 등판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우천취소로 하루 미뤄졌다. 3월 7일 SK와의 연습경기에 선발 등판해 3이닝 무피안타 1삼진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9개의 아웃카운트 중 5개가 뜬공이라는 건 여전히 불안요소다.

시즌 첫 등판인 4월 4일 LG전, 김한수 감독의 장원삼도 특급 좌완투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1회에만 6점을 내주더니, 3이닝 9실점(4자책점) ERA 12.00로 불을 거하게 지르고 강판당했다.

4월 11일 한화전에서 배영수가 3.2이닝 5실점(4자책)으로 탈탈 털린 것에 비하면 5이닝 4실점[13]으로 최소한의 역할은 해주고 승리투수 요건까지 만들고 내려갔으나, 김대우-백정현에 이어 심창민정근우에게 안타를 맞아 8회 8:8 동점이 되어 승리가 날아가고 말았다...

4월 16일 사직 롯데전에서 단 75구로 6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첫 선발승을 기록했고[14] 스윕을 막아냈다. 그러나 22일 NC전에서 3⅓이닝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고, 28일 SK전에서도 2이닝 5실점으로 조기에 강판되면서 29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팔꿈치도 안 좋다고 한다.

5월 26일 KIA 2군과의 경기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했고, 5월 28일 정병곤과 함께 1군에 올라왔다.

5월 28일 고척 넥센전에서 7회 불펜등판, 1.1이닝 동안 3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불펜으로 내려가면서 정말 완벽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심창민, 장필준 듀오의 혹사도 줄어들면서 장원삼의 불펜행은 벌써부터 신의 한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장원삼이 하향세로 접어든 뒤 고질병인 잦은 피홈런 허용만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우수하게 틀어막고 있는 중이다.

6월 3일 KIA전에서 팀이 3-5로 지고있던 7회초 1사 주자 1루 상황에서 등판해서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은 뒤, 그뒤 엄청난 호투를 선보이면서 3.2이닝 동안 1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팀이 10회말 박해민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하면서 장원삼은 이날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뒤로 6월 6일 두산전에 나왔다가 김재호에게 피홈런을 허용하고 바로 내려갔다. 팀은 다행히 장필준이 2.1이닝 무실점 호투를 하면서 12:10으로 승리하였다.

7일과 8일에도 연이어 등판해서 무실점 호투를 했으나 이 때는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앞에서 불을 질러 버렸다.

11일과 13일에는 연이어 홀드를 챙기는 데 성공하면서 필승조로 정착해 가고 있는 모습이다.

7월 20일 롯데전에서 7회 말 1점차 상황에서 윤성환의 뒤를 이어 등판했으나, 원아웃을 잡은 이후 안타-볼넷-사구-사구로 어메이징하게 동점을 헌납하고 강판되었다. 다행히 뒤이어 나온 권오준이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패전은 기록하지 않았지만.

8월 19일은 대폭발하여 0이닝 2실점으로 안좋은 투구내용을 보여주었다. 확실히 구위가 안 좋은 탓에 불질을 계속한다. 결국 황수범의 승리를 날리고 블론+패전투수가 되었다.

구위저하로 선발 복귀는 요원해졌으나, 그래도 경험과 제구력으로 불펜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 2의 보직을 찾은 만큼 앞으로는 불펜으로 커리어를 마감할 듯.

FA 계약 기간이 끝났지만 재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

3.3.9. 2018 시즌

FA 취득을 앞두고 4년간의 계약이 끝나 7억 5,000만원에서 5억 5,000만원이 감액당한 2억원에 계약했다. 이로써 역대 연봉 최다 삭감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의 소유자가 되었다.[15]

몸상태가 좋지 않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가 양창섭이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지면서 이를 대신해 4월 18일 1군에 등록됐다. 당일날 6이닝 3실점으로 QS를 기록하며 호투했으나, 팀 불펜진의 방화와 식물타선 때문에 승리가 날아갔다. 경기 다음날 1군에서 제외됐고, 29일 LG전 선발로 내정되며 1군에 등록됐으나 4이닝 5실점(4자책)으로 부진했다.

5월 5일 경기에서 7이닝 3실점으로 호투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15시즌 이후 자리잡은 홈런왕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무홈런, 무볼넷 피칭으로 이닝까지 많이 소화하며 필승조까지 아꼈다. 여담으로 이 경기로 어린이날 5경기 전승을 기록하게 되었다.[16]

5월 11일 경기에서 6⅔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여 통산 120승을 올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김대우와 자리를 바꿔 1군에서 말소됐는데, 사유는 지난 말소와 마찬가지로 컨디션 조절 및 10일 로테이션 가동이다.

5월 23일 롯데전 선발 투수로 내정되며 1군에 복귀했다. 23일부터 10일 로테이션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로테이션을 소화한다고 한다. 그리고 5이닝 4실점을 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29일 kt전 선발등판했으나 0.2이닝 8실점으로 멸망했다.

6월 3일 NC전에선 4⅔이닝 3실점으로 여전히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팬들은 심판존에 불만을 드러냈다.

6월 9일 LG전에선 4이닝동안 단 2안타만 맞으며 잘하나 싶었더니 무릎 통증 때문에 5회부터 빠졌다. 결국 11일 검진 결과 왼쪽 무릎에 미세한 염증이 발견돼 다시 엔트리에서 빠졌다.

7월 7일 화성 히어로즈와의 2군 경기에서 선발등판했으나 무릎 통증이 재발하면서 0⅓이닝만에 강판됐다.

결국 부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다. 암흑기 삼성의 기둥이었던 선발투수 윤성환도 결국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지 2018년에 부진이 심각해지자 팬들은 장원삼을 그리워했다. 가을야구가 사정권에 있었던 시기[17]에 장원삼이 시즌 내에 복귀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사가 뜨자 불펜이나 선발 등 전천후 요원으로 뛸 수 있었던 장원삼이기에 많은 삼성팬들이 반겼다.

지난 시즌과 올시즌 부상과 부진이 발목을 잡았고 결국 2018년 10월 18일 팀에 방출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삼성도 장원삼이 다른 팀으로 가는 것을 도와준다고 했다. 기사

3.4. LG 트윈스 시절

방출 이후 LG 트윈스와 계약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으나 아직 공식 발표는 없다. 이런 설레발 기사(?)가 뜨긴 했지만 영입 확정이 아니라고 한다. 배영섭SK 와이번스와 계약하자 (?) 많은 팬들이 정말 계약한 것으로 착각했다.

이후 2018년 11월 16일 차명석 단장이 직접 구두계약은 완료된 상태며 세부조율만 남겨두고 있다고 밝혀 사실상 LG 트윈스행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11월 23일 공식적으로 입단이 확정되었다.

LG 이외에도 복수의 구단에 제의가 왔지만, 류중일 감독도 있고 좀 더 익숙한 환경인 LG를 선택했다고 한다.

3.4.1. 2019 시즌

스프링캠프 명단에서는 제외되었다.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였으며 불펜으로 등판하였다. 4월 21일까지 5경기 6이닝 2홀드 ERA 1.50 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4월 21일 정찬헌이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되면서 대신 콜업되었다.

4월 25일 KIA와의 홈 경기에서 양현종을 상대로 첫 선발출전이 확정되었으나 우천 취소되었다.

5월 2일 kt와의 홈경기에서 LG 데뷔전 겸 선발 등판이 확정되었다. 상대는 김민. 경기 전 류중일 감독은 "저번에도 말한 것처럼 50구 정도 던지며 3∼4이닝을 소화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나도 장원삼이 어떤 투구를 보여줄지 궁금하다"[18]고 말했다. 하지만 2.2이닝 57투구수 (S:40, B:17) 6피안타 4사구 1, 2삼진 3실점 3자책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다행히 팀이 동점에 성공하며 패전은 면했다.

5월 8일 키움과의 원정경기에서 다시 선발 등판했다. 결과는 3.2이닝 3실점으로 폭망. 타선도 전혀 득점지원을 하지 못하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또한 이 날 경기에서 임병욱에게 사구를 던진 후[19] 욕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인성 논란에 휘말렸다.#

5월 2일~5월 8일 경기와 우천 취소된 4월 25일 경기엔 심수창이 뒤를 이었다. 1+1 선발로 나와 5월 8일 경기에 둘이 6이닝을 던졌다.

5월 14일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세 번째로 선발 등판했으나 홈런을 3개나 맞는 등 5이닝 4실점으로 부진. 또다시 패전투수가 되었다.

결국 불펜으로 전환되어 6월 30일 오랜만에 등판했으나 여전히 구위가 나아지지 못한 채 1이닝 2피안타를 기록하며 또 다시 실점했다.

7월 들어 패전조로 확정되었는지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가끔 올라오는 수준이다. 그래도 1이닝씩 무실점으로 막으며 가비지 이닝을 잘 소화하는가 싶더니 7월 16일 SK전에서 노수광에게 적시타를 얻어맞고 한동민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주는 등 1아웃도 잡지 못하고 강판되었다.

7월 19일 2군으로 내려갔으며, 1군으로는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시즌 성적은 8경기 등판에 ERA 7.98.

결국 10월 7일, 심수창과 함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1년만에 팀을 떠나게 되었다. 곧바로 은퇴를 선언한 심수창과 다르게 장원삼 본인은 여전히 현역 연장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굿바이 LG’ 심수창 은퇴, 장원삼은 새 팀 찾는다

이후 차명석 단장은 올 시즌 두 선수가 정말 큰 힘을 줬다며 향후 진로 모색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20]

3.5.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19년 10월 10일 롯데 자이언츠 입단테스트를 위해 마산 야구장 NC 다이노스 교류전에 등판했다 #. 결과는 2이닝 무실점이긴 했으나 패스트볼 구속이 평균 130대 초반, 최고 134에 불과해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성민규 단장은 몸상태에 만족한다며 테스트 결과에 상관없이 입단을 추진할거라 밝혔다. 나중에 입단이 확정된 후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시즌 끝나고 일단 쉬면서 훈련을 안하고 있다가 갑자기 성민규 단장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내려와 던지게 되어 몸이 덜만들어진 상태였다고 한다.

2019년 11월 27일, 최종적으로 롯데 입단이 확정되었다. 롯데의 부족한 좌완 자리를 채우게 될 듯. 다만, 1군 전력이 아닌 1군 선발 투수가 부상으로 공백이 생기면 대신 등판하는 비상용이라고 한다. 물론 팀 내에 베테랑 투수가 부족한 것도 이유라고 언급했다.

2020년 1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저연차, 저연봉 선수들을 대상으로 1월 6일부터 19일까지 2주 동안 제주도에서 실시한 캠프에 연봉 3000만원의 저연봉 선수 장원삼도 참여했다. 총 15명의 선수가 참여했다고 한다.

3.5.1. 2020 시즌

2020년 1월 39명의 호주 전지훈련 명단에는 제외되었으며, 상동 구장의 2군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다.

2020년 2월 5일 일간스포츠 인터뷰에서 장원삼은 "롯데가 아니면 야구를 못 할 수도 있었다. 솔직히 불러주는 곳도 없었는데, 감사하게 생각하고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당시 창원지역 연고팀인) 롯데에서 주최하는 지역 야구대회에 나선 기억이 있다"면서 롯데와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

2020년 2월 12일 상동 2군에서 훈련 중이던 장원삼은 스타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많이 돌고 고향팀[21]에 올 줄은 몰랐다. 서울까지 찍고 부산으로 왔다.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롯데에 보답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

4월 28일 외국인 투수 아드리안 샘슨이 아버지의 병환 위독으로 미국으로 가 5월 등판이 힘들어지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1군에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

5월 9일 SK와의 경기의 선발 투수로 확정되었으나 새벽부터 계속 내린 비로 경기가 취소되었다.

5월 12일 두산전에서 선발 투수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3이닝 10피안타 1볼넷 5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상당히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 다음날인 13일에 말소되었다.결국 다음 대체 선발은 고등학교 15년 후배 이승헌이 맡았다.

2군에서 3경기 QS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고 서준원의 휴식 차원에서 6월 28일 선발로 낙점됐다.

그러나 6월 25일 더블헤더 1차전이 우천 취소 되고 2차전 선발이 스트레일리가 됐고 2차전 역시 취소 되면서 로테이션이 2차례 밀리게 됐다. 로테이션 상 7월 1일 NC전에서 구창모와 붙어야 하는 불운이 생겼다.

7월 1일 NC전에 선발 등판해서 6이닝 6실점 5자책점을 기록했다. 표면상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공의 구위는 나쁘지 않았고, 4실점에서 끝날 것을 7회말 수비실책으로 6실점을 했다. 앞으로는 땜빵 선발과 불펜을 오갈거 같다.

7월 7일 한화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4실점 했지만 자책점은 2점이라 퀄리티 스타트를 했지만 팀은 12회말 연장 끝에 오선진의 끝내기 홈런으로 6:7로 패배했다.

7월간 등판한 2경기에서 바빕신의 가호[22]를 받고, 연속으로 6이닝을 소화하며 백업 선발의 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피장타율이 낮지 않으므로 바빕이 커리어 평균 수순으로 회귀되면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장마철이 시작되자 우천취소에 유독 사랑을 받고 있다. 7월 12일부터 8월 6일까지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었으나 공식으로 기록이 인정 된 선발 등판수는 1경기고, 선발로서 소화한 이닝은 이닝 4⅓이닝 뿐인데, 그 기간 롯데의 로테이션은 아래와 같다.

12 장원삼(우천취소)
13 장원삼(우천취소)
14 스트레일리
15 샘슨
16 장원삼
17 서준원
18 박세웅
19 스트레일리
20 (월요일)
21 샘슨
22 장원삼(우천취소)
23 장원삼(우천취소)
24 박세웅
25 스트레일리
26 서준원
27 (월요일)
28 노경은
29 장원삼(우천취소)
30 박세웅(우천취소)
31 스트레일리
01 박세웅
02 노경은
03 (월요일)
04 서준원
05 장원삼(경기중 우천취소)

8월 5일 나쁘지 않은 컨디션과 타선의 지원을 받았지만 결국 5회가 끝나기 전 우천으로 인하여 경기가 취소되며 ND.

9월 8일 NC전에서는 KBO 역대 23번째 통산 1,200탈삼진 기록을 세웠으나, 3이닝 7피안타 4실점이라는 부진한 성적 탓에 묻혔다.

9월 20일 NC전에서 3이닝 동안 2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이것이 장원삼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3.6. 은퇴

2020 시즌 후 결국 방출 통보를 받았다. 본인은 현역 연장을 희망했으나# 팀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21년 6월 30일 스톡킹에 또 한번 출연[23]했다. 그리고 2021년 12월 19일 자로 팬들과 은퇴식을 가지면서 선수 인생에 완전히 마침표를 찍었다.

JTBC 예능 프로그램인 최강야구에 합류해 활약하고 있다.

4. 국가대표 경력

4.1.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4.2. 2007 아시아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대표팀 개인별 성적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자책점 4구 삼진 상세
2 0 2.2 0.00 0 0 1 0 1 0 0 2 1
장원삼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예선을 겸한 본 대회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장원삼은 일본과의 경기에 구원등판했다. 팀이 1:3로 뒤지고 있던 3회초 전병호의 뒤를 이어 등판한 것이다. 이 경기에서 일본 강타선을 상대로 무실점으로 꽁꽁 묶으며 제 역할을 100% 해냈다.

장원삼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일본에 패해 대회 준우승에 머물렀다.

4.3.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 예선

4.4. 2008 베이징 올림픽

파일:장원삼 베이징 올림픽.jpg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 최종 예선을 모두 뛴 장원삼은 올림픽 본선 엔트리에 역시 포함되었다. 당시 대표팀에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등의 훌륭한 좌완 선발 자원들이 넘처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약체와의 경기에 등판할 것으로 예상되었다.[24]

장원삼의 올림픽 첫 등판은 8월 17일 중국과의 경기였다. 3일전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재개된 경기에서 장원삼은 7회부터 4.1이닝 0실점 호투를 펼쳤다. 결국 연장 10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치기까지 나아간 상황에서 대한민국이승엽의 끝내기 안타로 1:0 신승을 거뒀다.

3일후인 8월 20일, 장원삼은 네덜란드와의 경기에 선발등판 했다. 한 수 아래의 네덜란드 타선을 상대로 8이닝 0실점 완벽투를 펼쳤다. 경기는 이미 8회 10:0으로 콜드게임이 선언되면서 완봉승을 거두게 되었다.[25]

이후 장원삼은 준결승, 결승전에는 등판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표팀이 일본, 쿠바를 연달아 격파하고 우승에 성공하면서 금메달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최종 성적: 2경기 12.1이닝, 1승 0패, ERA 0.00

4.5. 2009 WBC

총 2경기에 등판, 예선 1라운드 2경기 일본과의 경기에 2번째 투수로 등판해 2.1이닝 3실점, 예선 2라운드 순위결정전 일본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3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출전한 경기 내용상 긴 이닝을 먹어주는 패전처리 투수로 활용되었다. 다만 장원삼이 아니었다면 다른 불펜진에 부담이 걸려 오히려 준우승보다 안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수도 있다.

최종 성적 : 2경기 5.1이닝, 0승 0패, ERA 5.06

4.6. 2013 WBC

장원삼은 2013 WBC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참가했다. 커리어 2번째 WBC 참가이다.

네덜란드, 호주와의 1라운드 1, 2차전에 결장한 장원삼은 대만과의 3차전에 처음 마운드에 올랐다. 8회 0:2 뒤진 상황에서 장원삼은 2피안타를 허용했지만, 1이닝 1K 0실점으로 막아냈다. 뒤이어 강정호가 역전 홈런포를 쏘아올리면서 장원삼은 이 날 승리투수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 날 3:2 승리로 1라운드 2승 1패의 성적을 거뒀지만 승률이 똑같은 네덜란드, 대만에 밀려 WBC 사상 처음으로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최종 성적: 1경기 1이닝, 1승 0패, ERA 0.00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안타 홈런 볼넷 삼진 WHIP sWAR
2006 현대 29 183⅓ 12 10 0 0 2.85
(5위)
126.9 3.61 146 19 63 142
(4위)
1.14 4.14
2007 30 168⅔ 9 10 0 0 3.63 110.0 3.89 152 16 75 132
(5위)
1.35 3.22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안타 홈런 볼넷 삼진 WHIP sWAR
2008 우리 27 167⅓
(5위)
12
(4위)
8 0 0 2.85
(5위)
148.6 3.38 145 9 57 126
(4위)
1.21 5.57
2009 서울 19 91 4 8 0 0 5.54 87.2 5.52 108 17 31 60 1.53 1.08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안타 홈런 볼넷 삼진 WHIP sWAR
2010 삼성 29 151 13 5 0 0 3.46 133.4 3.84 139 13 44 115 1.21 4.40
2011 25 115 8 8 0 0 4.15 100.6 4.44 139 13 37 68 1.53 1.88
2012 27 157 17
(1위)
6 0 1 3.55 107.4 3.11 143 9 38 127 1.15 3.79
2013 27 154 13
(3위)
10
(5위)
1 0 4.38 97.7 4.76 165 21 42 104 1.34 1.84
2014 24 129⅓ 11 5 0 0 4.11 128.8 5.46 149 16 37 63 1.44 2.66
2015 26 136⅔ 10 9 0 0 5.80 85.2 5.91 151 29
(1위)
50 107 1.47 -0.37
2016 26 78⅓ 5 8 0 2 7.01 75.2 6.01 114 16 23 53 1.75 -0.50
2017 49 67⅓ 4 5 0 6 5.61 90.4 4.63 96 8 17 55 1.68 0.33
2018 8 38 3 1 0 0 6.16 86.1 4.89 47 4 13 27 1.58 0.18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안타 홈런 볼넷 삼진 WHIP sWAR
2019 LG 8 14⅔ 0 2 0 0 7.98 51.5 6.13 20 3 3 7 1.57 -0.32
<rowcolor=#ffffff> 연도 출장 이닝 ERA ERA+ FIP 안타 홈런 볼넷 삼진 WHIP sWAR
2020 롯데 13 34 0 3 0 0 7.68 63.5 6.03 49 6 10 15 1.74 -0.42
KBO 통산
(15시즌)
367 1685⅔ 121 98 1 9 4.28 107.8 4.43 1763 199 540 1201 1.37 27.47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8년 2완투
(2위)
2완봉
(1위)
2013년 1완투
(6위)
0완봉
통산 3완투 2완봉

[1] 1차지명은 조순권, 2차 1라운더는 배힘찬, 2차 2라운더는 허웅이었다. 조순권은 수원 유신고 우완투수로 한양대 진학 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2] 같은 좌완투수이자 2차 3라운드에 지명된 동산고 이현승도 마찬가지로 인하대로 진학했고 두 명 모두 대학야구에서 기량을 쌓아 입단에 성공했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 김용휘 사장은 좌완투수는 일단 뽑아놓고 보자는 지론을 가지고 있어 둘의 가능성만 보고 지명했다고 한다. 장원삼과 이현승은 친분이 없었으나 같은 팀에 지명됐다는 점 그리고 학교간 연습경기 및 대학국가대표 생활을 같이하면서 친해졌다.[3] 경성대의 특정 투수 혹사는 원투펀치 졸업 후에도 변함이 없다. 장원삼은 그래도 프로에 진출한 경성대 투수들(이상화, 고창성, 윤희영, 공수빈 등) 중에서는 롱런한 경우.[4] 이 때부터 등번호 13번을 달아서 삼성에서 뛸 때까지 계속 달았다.[5] 1년여에 걸쳐 진행 중인 장원삼의 삼성행을 두고 이런 삼행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원삼은 래가 성이다." 라든지 "석이가 삼이를 십억에 팔았다" 라든지…[6] 첫번째 사진은 윤정희, 두 번째 사진은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 김재박 감독의 지시로 윤정희의 시구지도를 맡았으나 장원삼이 너무 쑥스러워하면서 제대로 지도를 못한다는 이유로 김재박 감독이 직접 지도를 했다고 한다.[7] 이날은 김상수의 실제 생일날이다.[8] 스톡킹EP5-3에 의하면 이 과정에서 정민태 코치가 박성훈에게 전화해서 괜찮은 선수를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이때 박성훈이 김상수를 추천했다고 한다.[9] 사실 이때 장원삼이 원하던 15승 이상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권혁에게 4승씩이나 헌납해 주면서 꿈은 물건너 갔다.[10] 2007년 시즌 당시 팀은 전반적으로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상황이었다. 4~5월에는 나름대로 잘 던졌지만, 6월에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던 것뿐, 당시 상황을 감안한다면 2007년 시즌에도 상당히 잘 한 것이었다.[11] 당시 박종훈 감독은 10월에 임찬규를 선발로 테스트하기 위해 2경기에 내보냈지만, 문제는 그 두 경기에서 신인 투수 임찬규가 상대하기에는 상대 선발이 너무 강했다는 것이다.[12] KBO 측의 실수인지 알 수는 없지만, 원래는 정인욱이 1군 말소 명단에 있다가 장원삼으로 바뀌었다.[13] 송광민에게 맞은 만루홈런으로 인한 자책점.[14] 그동안 호투했던 우규민이나 재크 페트릭보다 먼저 시즌 첫 승을 기록했다.[15] 종전 기록은 17 시즌 종료 직후 이용규의 5억 삭감(9억에서 4억).[16] 2010년, 2012년, 2014년, 2016년, 그리고 2018년까지다.[17] 여름성모드였을 때[18] 삼성 시절 이후로는 한 동안 투구를 안 봤기 때문이다.[19] 정통으로 맞은 건 아니고 유니폼에 스치듯 맞았다.[20] 물론 냉정하게 말하자면 저 둘이 팀에 기여한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애초에 둘 다 은퇴를 앞둔 나이니...[21] 지금이야 창원이 NC의 연고지이지만, NC가 창단되기 10년 전에 고향을 떠났던 장원삼에게 창원은 롯데의 홈그라운드였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22] 2경기 BABIP 0.180[23] 첫 출연은 2020년 시즌 개막 전 EP.09였다.[24] 다만 봉중근은 올림픽에서 부진했고, 반년 뒤 WBC에서 대활약 한다.[25] 이 때 완봉승을 한 덕분에 우리나라는 불펜을 아껴 준결승과 결승에 대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