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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 파넴 에트 키르켄세스)[1]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 시행되었던, 로마 시민에 대한 무상 복지 정책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문구로, 시민의 우민화를 가리킨다.2. 어원
iam pridem, ex quo suffragia nulli vendimus, effudit curas; nam qui dabat olim imperium, fasces, legiones, omnia, nunc se continet atque duas tantum res anxius optat, panem et circenses.
옛날에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표를 팔지 않았지만, 태만해졌다. 통솔권, 직위(fasces)[2], 군단과 그 모든 것을 위임했던 그(시민)는 이제 단 두가지를 초조히 기대한다. 빵을, 그리고 전차 경주(circus)를.
유베날리스 풍자 10권 77-81절
로마의 풍자시인으로 후대 유럽 풍자 문학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데키무스 유니우스 유베날리스(Decimus Iunius Iuvenalis, 55 ~ 140)가 서기 100년경에 쓴 풍자시의 한 구절이 표현의 시초이다. 시민은 국가의 정치 동향에 관심을 갖고 여론을 형성하여 권력의 탈선을 감시해야 함에도, 의식주와 유희, 향락의 공급으로 길들여져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베날리스의 대유(代喩)로 '빵'과 '서커스'는 오늘날에도 우민화 정책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쓰인다.옛날에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표를 팔지 않았지만, 태만해졌다. 통솔권, 직위(fasces)[2], 군단과 그 모든 것을 위임했던 그(시민)는 이제 단 두가지를 초조히 기대한다. 빵을, 그리고 전차 경주(circus)를.
유베날리스 풍자 10권 77-81절
오늘날 서커스라고 하면 '여러가지 곡예나 무용을 관람하는 것'이지만, 이 단어의 어원이 된 로마의 '키르쿠스(Circus)'란 전차 경주, 혹은 전차 경주가 벌어지는 경기장을 의미했다. 콜로세움과 같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극장의 가장 일반적인 건축 양식은 원형극장(Amphitheatre, 앰피시어터)이었기 때문에 원을 가리키는 '키르쿨루스(circulus)'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영어의 '서클(circle)', '서킷(circuit)'과 어원이 같다[3].
물론, 키르쿠스에서 오늘날과 같은 방식의 서커스를 안 한 건 아니다. 키르쿠스를 하는 앰피시어터에서는 다른 경기나 공연 등도 개최되었다. 오늘날 서커스단의 공연에서 코끼리나 사자같은 동물들이 나오는 것도, 과거에 이런 동물을 소개하는 쇼를 하거나, 검투 경기에 투입하던 로마의 전통이 이어진 흔적이다.
3. 역사
당시 로마의 행정당국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에 한하여 매달 한 달치 분량의 빵과 콜로세움에서 경기를 볼 수 있는 티켓을 배급하였다. 빵을 배급받는 줄은 엄청 길어 몇 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공화정에서 이를 처음 시행할 때에는 저렴한 가격이긴 했지만 그래도 빵을 판매하는 형태였으나, 정치 싸움의 결과 무료 제공으로 변경되었다. 더욱이 받을 수 있는 인원의 제한마저 풀렸다가, 제정이 들어서면서 그나마 다시 제한을 가하게 되었다. 당대에 식량 배급이라는 엄청난 복지 정책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수한 정복전쟁으로 획득한 속주, 특히 이집트 지역의 곡물 생산력이 뛰어난 덕이기도 했다. #사실, 이는 로마 제국의 독특한 정치 체계와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문화권과 달리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옮겨간 독특한 정치 체계 때문에,[4][5]시민들에게 겉으로나마 공화정이라는 체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고대 로마의 황제의 칭호 중 하나인 임페라토르(Imperator)는 황제로 의역하기는 하지만, 정치공학적으로는 전제 군주의 측면보다 근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나 볼법한 독재자의 측면이 강했다. '임페라토르' 역시 로마 전군에 대한 최상위 통솔권(Imperium Maius)을 부여받았다는 의미이며, 아우구스투스는 '프린켑스(Princeps)'를 사용했다.[6] 이는 '첫 번째 시민(first resident)'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로마 제정은 다른 황제국과는 개념이 다소 상이했으며, 따라서 '첫 번째 시민'인 황제가 다른 시민 위에 절대적으로 군림하거나 시민의 권리를 억누르는 것에 한계가 있었고,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하기 위해서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복지 정책으로 시민들의 정치 욕구를 진화하고자 한 것이다. 남경태 등에 의하면 이러한 로마의 독특한 정치체제는 중국이나 기타 문화권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황제보다는 종신통령이나 세습통령 쪽이 적절한 단어다.
4. 오해
4.1. 유베날리스 당시 풍자 의도에 대한 오해
빵과 서커스라는 문장을 사람들은 중세 이후 전제 정권이 민중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돌리기 위한 우민화 정책의 대명사로 잘못 쓰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보수정당이 복지정책을 비난하는 뜻으로 잘못 쓰고 있다. 유베날리스 시인이 빵과 서커스라는 말로써 풍자하고자 한 대상은 선거철만 되면, 출마한 후보들의 정치능력과 전혀 상관이 없는, 대규모 검투경기나 전차경주 등을 기대하는 선거 정치의 비합리성이며, 우민화 정책을 뜻하지 않는다. 그리고 선거철만 되면 법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뭘 기대하는 건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4.2. 로마 민주정에 관한 오해
많은 이들이 착각하지만 고대 로마는 현대적인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민주주의 하면 누구나 평등하게 주권이 있는 인민이 직접 선거를 하여 주권을 행사하는 1인 1표가 상식이지만, 로마의 투표권은 세금 많이 내고 병역의무 많이 지는 사람이 더 많이 행사했다. 무산자라면 투표권을 행사할 기회도 돌아오지 않는 일도 흔했다. 만약에 정말로 표를 사기 위해서 선거운동을 할 것 같으면 민중을 상대로 경기대회 개최할 돈으로 유력자들을 포섭하는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겠나? 그런데도 굳이 선거철에 검투경기나 전차경주를 개최하는 건 선거에 출마할만한 유력인사가 실행하는 일종의 사회환원 개념에 가까웠던 탓이다.4.3. 고대 로마의 선별 복지
빵의 경우, 실업자들을 위한 최저생계복지 수단으로써 로마 시민권자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했지만, 가장 본인이 직접 출두해야 했으므로, 이미 직업이 있어 줄서서 기다릴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기회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무료급식 줄에 몇 시간동안 서있는 건 즐거운 일도 아니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이 빵을 먹는게 명예로운 것도 아니라서, 빵은 어디까지나 다음 직업을 찾을 때까지 굶어죽지는 말라는 최소한의 복지였던건데 이걸 무상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면서 없애버린 학살자 술라는 죽은 뒤에 그야말로 오만가지 욕을 다 들어먹었다. 애초에 이런 정책이 필요해지게 된 주 원인은 공화정 후기 원로원 계급의 토지 독과점으로 인한 로마 중산층 붕괴와 토지 독과점 중지를 거부하는 원로원 수구파의 정치깡패화였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정작 빵을 받는 하층 민중과 무산자들은 투표권이 제일 적었기 때문에 표몰이용 정책이었다고 하기도 어렵다.4.4. 선거 비용과 로마의 전통
그리고 검투경기나 전차경주는 이미 공화정 시대부터의 전통이었으며 행사의 과열은 공화정 시대에 훨씬 더 심했다. 공화정 말기에는 선거비용이 하도 폭증해서 낙선만 줄창하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귀족들이 수두룩했을 정도고, 심지어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선거 때문에 빚을 많이 졌다. 오히려 제정 시대에 들어서 황제가 주관하는 국가행사로 포섭되면서 폐단이 시정된 것이다. 또한 물론 싫어하는 사람들은 싫어했지만, 원로원 계급이든 기사 계급이든 계급을 가리지 않고 열광하는 행사였지. 특정 민중 하층민만 즐기는 놀이가 아니었을 뿐더러, 황제 쯤 되면 관람하기 싫어도 가서 관람을 해야했다. 로마인들은 황제가 그런 행사에 꼬박꼬박 참여하는 걸 오늘날의 대통령이 국가 주관 행사에 참여하는 것 비슷하게 여겼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런 행사장은 오히려 로마 민중들이 황제에게 정치적 여론을 표출하는 곳이었지 표출하지 못하게 막는 곳이 아니었던 것은 녹색당과 청색당만 봐도 알 수 있다.이를 보여주는 제정시대 '서커스'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 날,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본래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성미였지만, 황제라서 어쩔 수 없이 경기장에 나가 있었다. 경기에 열광한 관중들이 내는 소음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황제는 황실 포고관을 불러 당장 관중들을 조용히 시키라고 명령했으나, 포고관은 그런 명령을 내리면 민중들이 오히려 반기를 들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황제의 명령을 듣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였던 포고관은 마치 황제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는 듯이 일어서서 손을 뻗었고. 민중들은 황제가 무슨 말씀을 하려나 싶어서 모두 조용히 했다. 그러자 포고관은 "바로 이것을! 황제께서는 원하신다!" 고 외쳤고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제서야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자신의 명령에 배려가 모자랐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즉 본래 빵과 서커스의 취지는 우민화 정책이나 포퓰리즘과 하등 상관이 없는 정책이었지만, 오늘날에 의미가 와전되어 쓰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기타
- 연합군 점령하 일본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정책이나 대한민국 제5공화국의 3S 정책과 같이 대중문화를 진흥하는 정책이 있을 때마다 이를 비판하는 진영에서 드는 이야기의 대표주자이다. 오늘날의 이탈리아 정계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비유로, "로마 제국의 후예답게 여전히 이 정책을 시행 중"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서커스를 대신해서 공차기(Calcio)로 바뀌었지만 콜로세움 유적과 현대의 축구 경기장을 같은 구도로 찍은 포스터 등도 즐겨 사용된다.
- 기독교가 급속히 전파되게 된 계기가 이것이라는 말도 있다. 물론 빵과 서커스 때문에 배부르고 등 따뜻하고 현실에 만족할 수 있던, 아쉬울 것 없는 사람들이 종교에 심취했다는 건 아니고, 후일 로마 제국이 위기를 맞으면서 빵과 서커스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게 되자 불안해진 사람들이 정신적 피난처인 종교에 몰렸다는 것. 실제로 바울이 활동하던 로마 교회는 특히 나라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빈민들이 많았다[7]. 기독교는 처음부터 로마에서 불법이었고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까지 탄압 대상이었다. 여기까지 내몰렸다는 것은 그만큼 로마의 빈민들의 삶이 팍팍했다는 뜻이며, 국가가 보살피지 못한 부분을 이들 기독교 공동체가 나름대로 다양한 빈민구제활동으로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다.[8] 심지어는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았음에도 국가에 대한 충성과 병역, 납세의무도 잘 지켰다. 이러한 기독교의 건실한 사회공헌의 순기능과 민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모든 박해를 중단하고 공인을 해주었다.
- 고대 로마의 역사를 소재로 쓴 소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는 이것은 우민화 정책이 아니라 현대의 복지정책에 해당된다고 평가했다. 물론 이것이 복지 정책인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9] 당시의 통치자가 우민화를 염두에 뒀다는 것은 사실이며 결과적으로 우민화가 일어났다는 것도 사실이다.
- 게임 《토탈 워: 로마2》에서는 칙령(edict)의 하나로 'Bread and Game'이라는 이름으로 등장. 지역에 식량과 치안을 제공하는 효과이다. 칙령 효과를 강화하는 건물이나 인물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치안 +10을 제공하기 때문에 유용.
- 게임 《문명 6》에서는 유흥단지가 완성된 도시의 충성도를 올리는 단기 생산 프로젝트에 빵과 서커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 게임 《라스트오리진》에서는 국가들을 굴복시킨 기업들이 제공하는 보조금과 축제에 인류가 빠르게 타락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 이 문구에서 제목을 따 온 2003년작 영화 《빵과 서커스》가 있다. 마틴 록이 감독과 주연을 함께 한 굉장히 상징적이고 난해한 장면들이 줄을 잇는다. 수위가 높은 하드코어 고어 영화다.
- 오징어 게임(시즌 2)의 첫 에피소드의 제목이 여기서 따온 "빵과 복권"이다. 아무래도 서커스를 자주 하지 않기 때문에 서커스 대신 오늘날에도 자주 쓰이는 복권을 대신 넣은 걸로 보인다.
[1] 직역하면 '빵을 그리고 서커스들을'이 된다. 라틴어에서 빵은 물질명사라 수를 세지 않는다.[2] 파스케스. 곧 몽둥이와 도끼를 묶은 결속을 의미한다. 파시즘이라는 용어의 어원이기도 하며, 고대 로마 시절부터 높은 직위와 권력을 비유하는 데 사용되었다.[3] 지명으로 둥근 광장과 같은 곳에 서커스라는 이름이 붙기도 한다. 피카딜리 서커스, 옥스포드 서커스 등 런던에는 지금도 이런 지명이 남아 있다.[4] 물론 로마도 왕정으로 출발했지만, 아우구스투스가 황제자리에 올랐을때는 왕정이 끝난지 480년이 흘렀다.[5] 다만 왕정 시대의 로마는 소수의 에트루리아인들이 원나라의 몽골족이나 청나라의 만주족마냥 다수의 로마인들을 다스리는 체제여서 로마인들이 주체적으로 이끈 시기부터 로마의 역사라고 하면 로마 공화국이 로마 최초의 국가 체제이다.[6] 프린켑스를 만들게 된 연유도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에 올라 사실상 왕 행세를 하다 공화파에게 암살당하고 다음으로 1인자에 오른 아우구스투스가 공화파를 덜 자극하기 위해 '많은 권력을 가진 시민'이라고 자칭한 것이다. 번역상 황제라고 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독재자가 맞았다.[7] 초창기 기독교인들의 대부분은 사회에 불만이 많은 가난한 하층민들이었다.[8]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목적도 이러한 자발적인 생산과 분배를 바탕으로 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의외일지 모르지만 기독교 공동체에서 예배만큼이나 중요한 성무일과는 식탁교제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9] 로마 공화정은 개인의 공화정에 대한 자발적인 헌신을 모토로 했기 때문에 국가 복지 개념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관리들에게 봉급도 지불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계에 임박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에 비해 빵과 서커스는 의도야 어쨌든 아무것도 안 주고 무관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저절로 제정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10] 레펜하르트는 마법사로서 너무 합리주의에 기반해서 생각하는 바람에 그냥 세금을 적게 거두는 것으로 복지나 빵도 안 주고, 그냥 집에서 쉬라고 축제나 서커스도 제공 안 하는 등 굉장히 재미없게 나라를 다스렸다. 사실 주인공인 레펜하르트는 자신을 레펜하르트 본인은 그럭저럭 나라를 다스린 성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조목조목 따져보면 강대한 마법사인 레펜하르트에게 감히 간언할 수 없었을 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폭군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