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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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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일 반일 극일 지일 친일 일빠

1. 개요2. 한국 내의 반일
2.1. 역사2.2. 현대
2.2.1. 일본에서의 반일이라는 단어의 남용
2.3. 온라인상에서의 반일 감정
2.3.1. 오타쿠 혐오에서 나온 반일 감정2.3.2. 국적만 다른 넷 우익2.3.3. 온라인에서의 반일감정 사례
2.4. 특정 목적에서 반일 조장
2.4.1. 종북 세력의 의도적인 반일2.4.2. 일본 우익들의 의도적 반일 조장
3. 북한의 반일4. 중화권의 반일
4.1. 중화인민공화국4.2. 홍콩4.3. 대만
5. 미국의 반일6. 러시아의 반일7. 동남아시아의 반일8. 그 외 나라의 반일9. 관련 항목

1. 개요

反日. 일본에 반대함. 사상이나 신조, 운동, 사회적 분위기 등을 가리키기도 하나, 대체적으로 반일감정을 뜻한다. 그리고 반일감정이 지나치면 혐일로 변하게 된다.

한국의 반일감정은 중국과 함께 유명한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스케이팅 경기 당시 NBC 해설자 스콧 해밀턴이 김연아아사다 마오와의 경쟁을 두 국가의 뿌리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어 경기가 더욱 긴장넘치게 되었단 해설을 할 정도로 외부에 알려져있다.

반한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밑에 서술된 국가의 국민 전체가 반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국의 경우 일본 문화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계층의 증가와 이유없이 저질러도 정당화되고 있는 자국 혐오 계층이 존재해 반한에 가까운 행위를 하며 반일 스러운 게시물이 보이면 곧바로 국뽕으로 몰고가는 경우가 있다.

2. 한국 내의 반일

2.1. 역사

일본은 삼국시대백제가야와는 우호적이었고 동맹 관계에 교류 역시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고구려의 경우 그리 국가관계가 나쁘진 않았으나 지리적으로 워낙 멀어 양국 교류가 백제보다는 적었다.[1]그리고 신라와는 최악의 관계였다. 역사 기록을 보면 초기 신라는 심심하면 왜구에게 약탈을 당했다. 이 관계는 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나아지지 않았고, 신라의 전성기인 성덕왕 때와 경덕왕 때에 일본수백 척의 배를 동원해 신라 원정을 준비했지만 주도자였던 후지와라노 나카마로가 사망하며 중지되었고, 발해와 친교를 맺고 신라를 견제하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다만, 백제만큼은 아니라도 나중 고려, 조선시대에 비하면 신라 때까지는 일본과의 교류는 매우 많은 편이었다.[2] 8세기 중후반으로 가면서 일본의 자존의식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자국을 상국으로 모실 것을 신라에 요구하는 형식적 외교관례에 집착했고, 이러면 신라도 무례하다고 사신을 쫓아내고 개무시하면서 차츰 정부간 교류가 줄어들게 되는데 그래도 장보고로 대표되는 사무역이나 민간 교류는 9세기에도 꽤 많긴 했다.

신라가 몰락한 나말여초 때에는 신라구 해적의 피해로 일본과의 사이가 틀어졌고, 이후 일본이 국풍이 강해지고 고립주의적으로 나가면서 고려시대 들어서 두 나라의 우호적 교류는 삼국, 신라 때와 비교하면 거의 없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도이의 난으로 일본이 여진족들에게 초토화했을 때 고려가 지원을 해주는 등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이후 일본과의 관계는 그냥저냥 평범한 상태로 이어졌지만 고려몽골의 침입을 겪은 후 다시 관계가 크게 틀어진다.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으로, 고려는 이후에 벌어진 왜구의 침탈로 양국간의 감정이 험악해진 것. 정확히 말해 왜구의 침탈은 고려가 몽골에게 한참 얻어터지던 원종 시기부터 서서히 나타났다. 이 때 각국의 속사정이 굉장히 복잡했다.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의 경우 고려는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했고, 왜구 같은 경우는 남북조 시대의 분열로 일본 중앙 정부에서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 전체상을 알 방법이 없었다. 세종대왕 때 간행한 삼강행실도를 보면 상당수가 왜구의 잔인한 면모를 보인다. 특히 열녀부분을 보면 왜구에게 욕을 보이고, 아니면 그 직전에 자살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절개를 지키려는 열녀들의 모습을 강조한다. 비록 과장한 측면이 있더라도, 당대 왜구와 그 속에 들어간 조선의 일본 이미지를 보여준다.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하고 백성들의 삶이 파탄 지경에까지 이르자, 조선의 대일 감정이 최악으로 치닫았다. 그나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가 나오고 겉으로나마 조선과 일본이 화해했지만, 양쪽의 앙금은 전혀 풀어지지 않았고 조선 통신사로 관계를 유지했지만, 조선 측의 경우 통신사를 통해 필사적으로 일본의 경제와 군사 상황을 알아내 경각심을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통신사 제도는 문화 교류의 성격이 커졌다. 특히 왜란은 변경의 전투가 아닌 전면전으로 나라 전체가 비극의 현장이었다. 때문에 다른 국경의 전투나 변경 외적의 노략질과는 다른 차원으로 온나라 백성이 함께 공유하는 기억이 되었다.

2.2. 현대

왜구임진왜란에 의한 반일감정은 근세 대한제국, 그리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그에 따른 조선 침략 정책이 본격화하는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지는 사건들과 식민지 통치에서도 점점 증폭되며 지속된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일본의 전후 처리 미흡을 비롯해 역사 왜곡, 박정희 정권이 독단으로 처리하고 묻은 한일협정과 그에 따른 일본의 태도, 재일교포 차별, 군사대국화 시도, 기존의 사과 발언을 자주 뒤집는 행보가 현재 반일감정의 원인이다. 일부 극우 정치인들의 문제(독도 문제, 일본군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로 반일 감정은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다.

현대 한국인들에게도 반일감정은 남아있지만, 10대~20대(현재 90년대~2000년대에 출생한 젊은 세대들이다.)들에게는 민족주의를 중시하지 않는 특유의 성향이 두드러져, 젊은 세대일수록 반일감정 자체도 조금 약해지고 있다. 이런 점은 일본의 정치계나 언론에서도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반일감정이 가장 강한 계층은 노년층과 30~40대[3]이다.

1990년대만 해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반일감정이 굉장히 잘 먹히던 시절이어서 이런 사설이 신문에 실릴 정도였으며[4][5] '일본은 있다 vs 없다' 식으로 일본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충돌했다. 일본과 관련된 것을 죄악시하던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좋은 사례만 나오면 "일본의 좋은 점을 배우자"라고 한다거나, 로바다야끼를 경영하거나 출입하는 것만으로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일이 당시에는 흔했다. 가요계에서도 이런 반일감정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1997년에 발매된 컬트삼총사 1집에 실린 곡 중 하나인 부활 대한민국은 반일감정을 선동하는 내용의 노래였다.

다만 젊은 세대들도 반일 감정이 다른 세대보단 약하다일뿐이지 여전히 강한 편이다. 워낙 현대에도 일본이 독도, 과거사 문제 등등으로 어그로를 끄는지라 좋게 볼 수가 없기 때문. 문화 교류를 해서 일본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반일 감정은 강하다. 일본 대중문화에 호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일본의 우경화는 당연히 좋게 보지 않는다. 당장 서브컬쳐에서 욱일기가 등장한다거나 작가가 우익이면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하는데, 한국인의 반일감정은 주로 "한국인=일방적인 피해자이자 선량하며 무고한 사람", 일본, "일본인=일방적인 가해자이자 비열하며 사악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이분법적이고 1차원적인 사고이며, 이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의 민족주의만을 내세워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며,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에 당한 역사가 있는 국가들은 이렇게 배타적으로 뭉치는 유대감이 강한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도 서유럽아일랜드동유럽폴란드, 발칸반도의 세르비아 등지의 국민들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서 상당히 민족적인 유대감이 강한 모습을 보이며, 영국, 러시아, 독일에 대한 증오/악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흔하다. 후술할 리영희 교수 칼럼에 의하면 일본인 망언 등에 대한 한국 정부와 언론, 관변단체 등의 비판은 '반짝' 수준에 머무르는데, 초반엔 항의와 규탄으로 시작했다가 망언 당사자가 유감을 표하면 문제가 해결됐다고 섣불리 간주해 급속히 잠잠해지는 식이다.

원로 진보 언론인 리영희 교수는 <월간 말> 1994년 6월호 기고문 '일본인 망언 규탄 전에 국민 총반성이 필요하다'에서 감정적 반일에 대해 경계한 바 있다.[6] 그는 일본 우익 인사들의 망언이나 역사왜곡에 규탄하기 전에 친일파 기용 등 우리의 잘못된 점부터 총체적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하면서, 망언은 주로 우익/반공주의자가 해왔고, 규탄은 좌익 인사들이 해왔다고 견해를 제시했다. 그동안 반일을 줄기차게 외치던 한국 정부는 친일부역 경력자들을 숙청하긴 커녕 오히려 중용했고, 상당수 독립 투사들은 사실상 멸시당해 가난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누군가 총리나 대신, 주한일본대사 부임 시 우익 언론이나 학자들은 '친한파'나 '지한파'라고 치켜세우는데, 이들조차 천황숭배자, 우익, 반공주의자 천지였다. 또 우리는 일본 역사교과서에 대해 규탄하지만, 정작 우리 역사교과서가 좌익 항일독립투쟁이나 해방 이후 권력자들의 친일행적, 반민족 행적들을 다루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가 처음으로 집권한 2006년에는 극우성향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집권한 2010년대부터 이러한 풍조는 줄어들기는 커녕 더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개헌의 움직임을 보이는 등의 행보를 보인 것. 다만 개헌은 주로 아시아의 지탄을 받았고 서방에서는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을 지지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2015년 3월 8일 무라야마 총리가 침략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했으나 아베는 같은 날 당대회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2.2.1. 일본에서의 반일이라는 단어의 남용

일본에서는 빨갱이와 비슷하게 정치적으로 자신들에 동조하지 않는 대상을 비난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만능 단어다. 일본 우익들, 그중에 특히 넷우익들이 상당히 악용하고 있다. 일본의 우익 정권, 정치인에 동조하지 않고 비판하면 반일분자로 낙인 찍으려 하며, 비판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주류 언론 아사히신문은 반일, 날조 신문으로 매도당하기 일쑤다. 자민당 소속 정치인들조차 일본의 국익을 위해 외국인(아시아계)을 적극 활용하거나 한국, 중국과 정상적 범주 내의 교류를 하는 것도 종종 반일 정치인으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한국에서는 일본 우익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빠들이 남용하고 있으며, 일본을 비판하게 되면 이들로부터 반일분자 몰이는 물론이고 종북주의자로까지 매도당할 수 있다. 이들로부터 반일 몰이를 당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일본 우익 정권에 동조하거나 일본의 긍정적인 부분만 찬미해야 한다.

위의 서술의 한국 버전친일몰이 참조.

2.3. 온라인상에서의 반일 감정

당연히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도 일부 한국인들을 거쳐서 반일 감정은 그대로 이어졌으며 수많은 사이트에서 극도의 반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대개 익명인 인터넷인 만큼 노골적 표현이 많은데 일본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원색적인 욕설 및 공격성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특히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 같은 명백한 일본의 잘못이 나오면 그 공격성은 평소보다 커진다.

또한, 포털 사이트나 언론사에서 일본 관련 기사가 올라와도 욕설과 비방을 잇는데, 특히 일본 지진에 관한 기사가 올라오면 조롱하는 글을 올리는 극단적인 일도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가 터지면 댓글 수가 늘어서 일본에 대한 원색적인 글로 반일 감정도 부추기며, 그 밖에도 일본과 관련한 기사는 대부분 부정적이고 혐오적인 시선으로 악플이나 일본을 조롱하는 댓글들이 장식한다. 이런 와중에 조금이라도 친일 성향이 있거나 반격하는 글이 올라오면 공격성 글로 배척도 한다. 일부는 해당자의 홈페이지까지 쫓아간 뒤 서슴없이 모욕적인 글을 올리며, 더 나아가서는 범죄 수준으로 개인용 메일이나 쪽지로까지 공격적인 말도 한다. 게다가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활한 유입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지거나 그와 연관이 있는 코스프레만 해도 욕설(친일파라든지, 매국노라든지 하는)을 퍼붓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애니메이션을 빠는 오타쿠 문화에 속한 사람들 중에 실제로 친일,매국 성향을 가지고 함부로 언행을 하거나 심하면 무조건적인 국까일뽕으로 변하는 사례가 상당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선 자업자득이라는 평도 있다.

밑에 있는 온라인에서의 반일감정 사례를 참고할때, 일본의 넷 우익 뺨칠 만큼 한국 온라인상의 반일 감정이 얼마나 심한지 드러난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2.3.1. 오타쿠 혐오에서 나온 반일 감정

저질 오타쿠 애니 문화를 퍼뜨리는 오타쿠 종주국이라는 이유로 반일을 외치는 이도 있다. 그들은 일본의 무분별한 저질 오타쿠 애니 양산 행위 때문에 동아시아 아니, 세계가 오염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디시인사이드 등에서 활동하는 오타쿠 중엔 일본 애니를 찬양하는 것을 넘어 일본을 찬양하는 놈들이 꽤 있다 보니 그에 대한 혐오감이 기존의 반일감정에서 극렬한 혐일감정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이들의 활약(?)을 무시할 수 없는 게, 일반인들은 평소엔 일본에 대해 관심이 없다가도 이들의 행태에 대한 반발로 반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넷 우익이나 정치인들의 어그로성 발언이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트려주지만, 이들은 정말 정말 꾸준하다. 오히려 일본 넷우익이나 정치인들보다도 이들의 행태에 몸서리치는 사람들도 많다. 한일우호를 외치며 자신들의 취향들을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사실 이런 부류들이 작성하는 글들을 읽어보면 정말 제정신으로 쓴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패배하지 않았으면 한국에서도 일본어를 사용하고 애니메이션 등이 흥행했을거라며 아쉽다고 한다거나, 독립투사 등을 욕하는 경우 등이 대다수

순서를 적자면 친일 오타쿠를 혐오 → 오타쿠를 혐오 → 일본 애니를 혐오 → 일본을 혐오.

사실상 저런 극단적 사례들은 이미 반일의 수준을 넘어선 혐일의 영역에 들어선 셈.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점점 증가해 예전처럼 마냥 혐오하는 분위기는 줄어들고,[7] 이렇게 반일 감정이 종전에 비해 다소 사그러드나 싶었지만 아베 내각 집권 이후 일본 정부의 온갖 망언과 갖은 도발, 그리고 넷우익들의 적극적인 활약? 등으로 한국 내의 반일감정이 반일을 넘어 혐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일관계 문서 참조. 한국 내에서 오타쿠의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최악이기 때문에 혐오하는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에 별로 밀접하지 않은 중노년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반감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지금도 이들은 여론 조사상에서도 반일감정이 여전히 깊은 세대임을 체감할 수 있다. 온라인의 밀접상 이들의 정서가 반영되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로 이들 사이에서 반일정서의 여운은 남아있는 편. 특히 일부 노년층 사이에서는 일본 글씨가 쓰여진 음식점 간판만 봐도 여기가 왜놈 쪽발이들 사는데여? 한국땅인데 왜놈 글씨가 왜 써져있어?라며 혐오하는 듯한 발언도 내뱉는다. 다만 이 경우 그 분들은 일제강점기의 여파를 직접 겪거나 그 영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등 그 모진 세월을 온 몸으로 겪어내신 분들이기에 단순히 반일로 치부하기엔 어폐가 있다.

2.3.2. 국적만 다른 넷 우익

2010년대 들어서 반일감정의 기류가 조금씩 변화하였다. 제일 크게 바뀐 부분이 있다면, 과거에는 일본을 경계하는 성격의 반일 감정이었다면 현재에는 일본을 폄하하고 조롱하는 형태의 반일 감정인데, 이는 넷 우익들이 하는 한국에 대한 조롱과 다른 것이 없는 민족 차별이다. 일례로 관음 문서에 있듯이 일본에서 성행하는 국뽕 번역 사이트를 보여주거나, 방송에서 한국을 의식하는 방송을 보여주며 "일본이 한국을 매사 의식하고 열폭한다"는 혐오적 발언을 거리낌없이 내뱉는다. 물론 관음하는 걸 관음하는 것 밖에 안되지만 이러한 종류의 혐일 밈이 인터넷 상에 알게 모르게 퍼지는 경우가 대다수### 일본인의 국민성, 외모를 이용한 혐오 성향의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넷 우익과 다른 것이 없는 부분##

2.3.3. 온라인에서의 반일감정 사례

  • 2011년에 전북 현대와 일본 세레 오사카와의 경기에서 전북 현대 서포터즈에서 대형 플래카드에 일본 대지진을 축하한다라는 글을 써서 걸어두었다.
  • 2012년에는 20대의 한 한국인 청년이 유튜브일본인들은 지진이 났을 때 모두 죽어주셨으면 싶습니다. 일본인들이 이 세상에서 멸종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라는 망언을 한 동영상을 올렸다. 솔직히, 이건 반일이 아닌 혐일이다.
  • 유튜브에서 시티즈 스카이라인이라는 게임 영상을 업로드하는 "싸2코"라는 한 유튜버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조롱하며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일본원숭이와 비유하며 "쪽발이"등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꺼내는 악질행위를 일삼고있다.

2.4. 특정 목적에서 반일 조장

2.4.1. 종북 세력의 의도적인 반일

소위 민족감정을 계속 자극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반일을 이용하는 무리도 있다. 북한의 갓끈전술을 철저히 신봉하는 종북세력의 반일 전술인데 한국과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파탄 내어 양국의 협력관계를 약화시킬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간 종북주의자들이 철저히 민족주의자 행세를 하며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고 일본과 한국과의 협력을 파탄 낼려는것도 이러한 전술의 일환이다. 황장엽을 비롯한 고위 탈북자들과 미국 역시 이런 움직임을 매우 경계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역사적 피해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시도때도 없이 반일 선동과 친일몰이로 한국-일본간의 우호관계를 끊을려고 하는 공작의 일완인 것이다. 관련기사, 기사2, 기사3, 기사4, 기사5, 아예 대놓고 북한과 연합하자고도 한다, 북한의 반일 선동, 정체불명의 민족 단체들이 북한과 공조하고 있다.

2.4.2. 일본 우익들의 의도적 반일 조장

반대로 일본 내 혐한 감정 조장을 위하여 우익들이 역으로 반일을 조장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일본 우익들은 한국의 반일 감정을 이용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성장시켜 왔으며 그러한 연장선 상에서 한국 내 반일 감정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넷우익들이 한국 포털이나 커뮤니티에서 어그로 댓글이나 글을 적은 뒤, 한국인들이 원색적인 반응을 보이면 그것을 캡쳐해 2ch 등지에 올려 혐한을 부추기는 것은 이미 고전적인 방법이고, 최근에는 아베 정부의 대 한국 무역제재도 한국 내 반일 감정 조장을 통한 일본 내 한류 등 친한 정서 축출 역시 목적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 기사

3. 북한의 반일

북한은 1945년 해방 및 남북 분단 이후 미국 및 서방국가에 버금갈 만큼 일본을 매우 적대시해 왔다. 일찍이 북한 지도부의 근원이 동북항일연군과 같은 항일 빨치산 세력이기도 했고[8], 해방 및 남북분단 당시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사회주의 국가 건설 및 김일성 우상화 과정에서 가장 없애야 할 잔재거리로 당시 북한에 남아있는 일본인을 지목하여 모조리 쫓아내거나 반동분자로 몰아 때려 죽이기도 하였다. 넓게는 과거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친일파매국노로 있던 인물들도 들어갔다. 이런 면에서는 친일파, 매국노 숙청에 미적지근했던 남한보다 이미지 메이킹을 확실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은 친일경력자를 여럿 등용한 것은 마찬가지였음에도.

특히 과거사 문제 등으로 반일성향이 깊은 편이며, 일본측의 과거사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도 반발하였던 적이 있고, 왜왕을 우리의 민중에게 고통을 주게 한 불구대천의 원흉이라고도 주장하였다. 국가의 뿌리를 항일에서 찾으니 전세계에서 반일이 가장 심하다고 한다.[9]때문에 뉴스에서 대놓고 일본을 상대로 욕설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도 북한을 매우 싫어한다. 일본인 납치 사건 및 영해 불법 침투 사건, 그리고 잦은 미사일 실험 및 핵실험 등으로 군사적으로는 한국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
하지만 일본인들의 반북 감정은 북한의 반일 감정에 비하면 양반이다. 아베 신조납북 일본인 문제 해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한중 공조에 대응한 친북외교를 했었을 때 지지하던 일본인도 만만치 않았다.

4. 중화권의 반일

4.1. 중화인민공화국

혐일/중국참조.

4.2. 홍콩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또 하나의 일제 침략의 피해국. 일본이 점령했을 당시 중국인이 많이 학살당하고, 홍콩의 언어인 영어광동어 모두 사용금지되고 일본어만 쓸 것을 강요받고, 강제 지명 변경 및 창씨개명, 강제징용, 심지어 대규모 생체실험까지 겪은 엄연한 피해자인데 한국인들은 애석하게도 잘 모른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대규모의 육군 기병, 기갑, 포병 부대를 광동 성에서 구룡반도로 남하시키고, 일본 해군홍콩 섬 코즈웨이 베이에 함포사격을 퍼부어 해안방어를 하던 영국 해군해병대를 제압한 후 대규모의 육전대를 상륙시켜서 점령해 버렸다. 당시 구룡에는 중국 대륙에서 중일전쟁을 피해 피난 온 광동과 푸젠 출신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 중엔 국부군들도 많았고 당연히 이들은 일본군이 진주하자 낭패를 봤다(...)

일본군은 침사추이에 입성한 후 페닌술라 호텔[10]에서 조용히 최후를 기다리던 총독에게 항복을 받아낸다. 문관 총독이 오던 홍콩은 전혀 전쟁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법관 출신이었던 당시 총독 역시 본국이 멀쩡히 살아 있음에도 불구 겁을 먹고 투항한다. 인도차이나가 본국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해 비시 프랑스라는 괴뢰국으로 전락해 할수 없이 투항한 것과 다르다. 호텔을 접수한 일본의 야마시타 도모유키 장군은 호텔을 임시 육군 사령부로 만들고, 육군 병력이 보트를 타고 빅토리아 하버를 건넌 해군 육전대와 합류하며[11] 곧 이어 홍콩 경찰홍콩 소방처 그리고 주둔 영국 해군 사령부 등을 해체하고 계엄령을 내려 일본군의 헌병들이 대신 치안을 전담한다.

당시에 일본군은 빅토리아 피크에 홍콩신사, 라이언 락에 구룡신사를 짓고 홍콩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했으며 홍콩 섬 코즈웨이 베이나 구룡반도 홍함 등에선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고[12] 수 많은 화인들을 카이탁 공항 활주로 확장공사에 강제 징용해 원성을 산다. 그러나 카이탁 공항은 차라리 나았던 것이 화인들이 징용으로 끌려간 곳은 카이탁 공항뿐만이 아니었고, 당시 광둥 성의 일부였던 하이난 섬으로 2만여명의 화인들이 2만여명의 본토인들과 함께 징용으로 끌려갔는데 이들 4만여명 가운데 살아온 사람들은 겨우 5천명이었다고 한다.

흔히들 일뽕이나 일본 우익들이 홍콩이 대만처럼 친일 성향이 강하다는 말을 해서 홍콩이 친일 성향이 강한 줄 아는 경우가 많으나, 홍콩의 경우에도 본토 못지않게 반일감정이 심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4년간 일본에게 점령되었던 역사가 있고[13] 그 사이 현지인에게 한 잔학 행위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이 시기에는 일본의 수탈이 극심해 사람들이 대규모로 아사하거나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했고(이 시기에 굶어죽거나 병으로 죽은 사람만 5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수많은 화인들이 광동 성으로 추방당해 일본의 점령 이전 160만 명이던 홍콩의 인구가 해방 직후 60만 명으로 쪼그라들었으며, 전술했다시피 화인들이 학살당하거나 징용을 끌려가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문제나 역사 교과서 왜곡 등이 터지면 홍콩 내에서 홍콩 극우들이 반일 시위도 한다. 그리고 본토계 피난민들이 많은 구룡반도에선 일본어를 쓰고 다니면 좋은 시선을 못 받는다. 몇몇 노인들은 대놓고 일본어를 쓰면 고함을 치며 욕을 할 정도다. 가끔 구룡에선 일본인 택시 승차거부도 일어나기도 한다. 대만에서는 "대만을 근대화시켜주신 일본인들께 감사드립니다"라는 팻말을 건 택시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완전히 다른 수준. 홍콩에서 이러면 집단다굴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평범한 일본사람이나 일본 문화에게는 우호적이다. 특히 젊은 층으로 갈수록, 본토파일수록 반일의식이 약한 편이다. 사실 이건 젊은층의 본토 중국인한국인들도 마찬가지로, 그렇다고 해서 일본 우익이나 정치인,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4.3. 대만

대만에선 정치권과 달리 민중들 사이에서는 반일 감정이 그리 심하지는 않고 오히려 친일에 가깝다. 대만-일본 관계 참고.

그렇다고 해서, 대만에서도 난징 대학살 사건은 절대로 부정하지 않는다. 당장 현 중화민국이 피해 당사국 중 하나고, 난징은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였으니. 중화민국 정통주의자의 경우 중화인민공화국이 자신들의 공과를 뺏어갔다고 분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격한 독립주의자 대만인의 경우 중일전쟁이니 난징 대학살이니 남의 나라 역사로 치부하고, 누가 추모하면 욕설을 퍼붓고 오히려 중국놈들 잘 죽었다고 고인드립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14][15] 영토 문제에는 강경해서, 전임 총통 마잉주센카쿠 열도를 ICJ에 제소하자라며 역제안도 했고 대만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하여 일본 극우들을 당황하게 했다. 다만 당시 정권이 본토에서 넘어온 중국 국민당이고 일본과 직접 싸운 당사자라서, 역설적으로 일본 극우들이 국민당 정권을 안 좋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나 일본 주류 정계는 중국 본토가 대만을 합병하지 않고 대만정부가 독립을 시도하지 않는, 즉 현상 유지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나 극우들은 대만을 완전히 독립시켜 반중국 동맹 체결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동조하는 대만인 일부가 위안부 등 일본의 전쟁범죄중국 공산당(+ 중국 국민당)의 날조라고 주장하기도.

본토 출신 외성인들은 중화민국의 구성원으로 항일 전쟁을 치룬 것은 물론 일본군 만행의 직접적 피해자니 기본적으로 일본에 적대적이고 실제로 일본에 협력한/협력했다고 간주된 집단을 매우 가혹하게 탄압했다. 한간이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고 만주족과 대만 본성인은 집단 전체를 도매금으로 묶어서 짓밟았다. 특히 한간의 경우는 국민당이 워낙 가혹하게 탄압하니까 중국 공산당의 편이 되었는데, 이게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지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 이전에 타이완 민주국[16] 설립 때 일본군이 잔학한 토벌을 펼치기도 했었다.

대만에도 극우가 존재해서 반중공, 반일을 동시에 하며 자신(중화민국)들이 중국의 합법 정부라고 주장한다.

5. 미국의 반일

2차대전 때에는 반일 정서가 강했지만 현재는 전쟁이 끝난 지 오래여서 그 정서가 약하거나 거의 없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에 관련이 있는 노년층 세대 중엔 일본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이 그런 경우로 "잽(Jap, 일본인 비하 명칭)"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경제마찰 때 일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악화되기도 했었다. 현재 미국은 일본에 대해 친일 성향을 띠는데, 2017년 미국의 언론인 WashingtonExaminer는 미국이 가장 좋아하는 국가들 중에서 일본이 캐나다, 영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17][18]

6. 러시아의 반일

러시아 이쪽도 만만치가 않은 편이다. 러일전쟁에 관한 문제도 있는 편. 물론 할힌골 전투에서는 관동군만주군을 상대로 완승하였고, 2차대전 말기에 다시 소련군일본군과 붙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그 감정은 아직도 남았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쿠릴 열도 분쟁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러시아 대표팀이 일본에 졌을 때 화난 러시아인들, 특히 쿠릴 열도가 있는 극동 거주민들은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일본차를 불태우고 심지어 대사관 의전차량을 공격했을 정도다.

쿠릴 열도에 러시아해군 및 산하 육전사단, 그리고 공군 등 군대를 주둔시킴과 동시에 중국군과 연합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기에 러일관계도 얼어붙는다. 몇 차례 걸쳐 내무군 소속 해양경찰대가 일본인 어부를 사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 밖에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한국/미국/중국/러시아가 일본과 갈등이 많은 상태였어도 많은 도움과 지원을 보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런 도움을 받고도 영토 주장을 계속함도 모자라 태평양에 방사능 오염수를 무단으로 버리고, 일본 정부가 자국의 방사능 오염 물건들을 계속 수출하려는 모습을 보여 일본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급격히 싸늘해졌다.

2014년에는 러시아 부총리인 드미트리 로고진이 문제의 쿠릴 열도를 방문했을 때 일본에서 항의하자 "일본인은 할복 자살하라"고 발언했다. 당연하지만 이에 대해 당사국인 일본 네티즌들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7. 동남아시아의 반일

의외로, 동남아시아는 일본을 매우 좋아하는 편인 지역이다. 참조.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동남아 국가들을 침공했다지만, 동남아 국가들을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오랫동안 괴롭힌 것은 서구의 식민제국들이었으며, 전후 일본은 막대한 배상을 했고 또 천문학적인 금액을 꾸준히 원조하고, 투자 또한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 다만 반일 감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다른 동남아 나라처럼 식민통치를 겪어 수카르노, 수디르만 등 독립 투사 등이 일본과 네덜란드의 점령에게 저항한 나라다.

말레이시아는 외교부 인사가 일본에 대하여 2차 대전 당시 동남아를 쳐들어와 학살과 약탈을 벌였다면서 차라리 영국이 조금은 낫다는 말까지 대놓고 하여 일본인들을 무안하게 만든 일이 있다.(일본은 없다에 나오는 이야기). 실제로 민간인을 8만 명이나 학살했고, 특히 중국계들의 피해가 막심해 화교들 사이에서는 반일감정이 매우 깊다. 당시의 말레이시아는 지리상으로 중국과 가까워서 화교들이 많이 이주해서 살았는데, 말레이계와 중국계사이를 이간질해서 서로 죽이게 했다고.

베트남은 2차대전 당시 프랑스를 일시적으로 뭉개고 쳐들어온 일본을 환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국부 호치민은 조선을 예로 들며 일본도 프랑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견제했고, 베트남 교과서에서도 일본의 식민지배를 비난하고 있다.이렇게 강력하게 규탄하게 된 이유는 태평양 전쟁 시절 베트남을 점령한 일본은 조선에게 그러했듯 베트남에게도 일본군의 각종 민폐세트와 더불어서 당연히 쌀을 강제로 수탈해서였다. 그러다가 1945년 수탈과 더불어 대기근이 일어났다. 일본군의 쌀 공출과 홍수-가뭄으로 온 흉년, 미군 잠수함 공격에 남부 베트남에서 쌀 수송의 난항은 기록적인 대기근으로 돌아왔다. 당시 북베트남 인구는 1,000만 정도였는데, 이 대기근에서 아사자만 200여만 명.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인은 일본에의 적개심이 커졌다. 때문에 베트민은 세력을 크게 늘릴 수 있었고, 일본 항복 직후 일시적이나마 베트남 전토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인구 1/5이 굶어 죽었는데 강제적인 쌀 공출을 하면 당연히 분노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베트남인의 체험문학작품을 보면, "쌀을 가져가면 안 돼! 가져가지 마라!"라고 울부짖는 여인을 칼로 베어 죽이고 어거지로 쌀을 공출하는 일본군의 모습이 보인다.

라오스에서는 선생으로 봉사하는 한국 봉사단체 KOICA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라오스 세계사 교과서도 '일본은 2차대전 침략국가로 아시아 여러나라를 침략하여 학살을 벌였다'고 집필했다고 한다.

필리핀의 경우는 2차대전 때 태평양의 이탈리아 전선 소리 들으며 학계의 추산으로 70만~100만, 인구의 5~9%가 2차대전으로 인한 파괴, 학살, 기아로 죽으며, 수도인 마닐라만 하더라도 유서 깊은 스페인 식민 시절 부터 보존 되었던 구시가지가 가루가 되어 버리는 등 물질적으로 태평양 전선의 핵심 중 하나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당장 바탄 죽음 행진 같은 전범 행위가 대거 발생한 곳인만큼, 정치적 상황이 혼잡하서 대립이 극심한 나라임에도 항일 투쟁 만은 공산당이나 신인민군 같은 좌익, 막사이사이 같은 우익, 모로 해방 전선 같은 소수 민족 분리주의 계열 마저도 협력하며 공유하는 역사이다. 막사이사이는 자신의 반일 투쟁 경력이 정치적으로 큰 도움이 됐고, 독재자 마르코스도 엉터리지만 자신이 전쟁 도중 항일 투쟁에 나섰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2차대전 당시 일본에게 겨우 4년 지배당했음에도 무수한 중국화교들이 일본군에게 학살당하고 말레이계와 이간질시켜 일본군이 물러나고 골머리를 앓아서인지 교과서가 꽤 반일적이다. 그렇지만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호적이며 일본인 이민도 많다. 당장 싱가포르에서 영어표준중국어 외에 메이저 언어로는 일본어가 있을 정도이다. 정부 대 정부로 볼때 싱가포르일본은 경제 및 군사적 협력관계이며 최근 중국견제를 위해 싱가포르와 일본의 양국이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아베 신조싱가포르를 방문해 집단적 자위권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물론 정부 대 정부 차원이나 일반 일본인, 문화에 대한 우호감정과 별개로 제국주의 일본이나 일본 극우는 철저히 까인다.

미얀마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자세한 항목은 기무라 헤이타로 참조.

그 밖에 일본의 식민지 신세였던 캄보디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여기 왕이었던 시아누크가 상당히 친일파였다는 점.

다만 동남아시아의 반일은 대체적으로 그다지 격하지 않다. 그저 역사적으로 '일본이 잘못했다' 정도만 알고 가는 때가 대부분이며, 한국과는 달리 다른 서양 국가에게 오랫동안 식민지배를 받았고 일본의 직접적인 점령이 매우 짧아서이며 과거는 과거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고려해야 한다. 국민적인 정서상 한국이나 중국에서 보여주는 극단적인 반일감정은 없다고 봐야 옳다. 게다가 피해 당사국들이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재무장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여기에는 남중국해 영토 분쟁 문제 때문에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함께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현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친일적이라고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 지역의 민족 구성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집권 정치층과 일반 대중을 나눠서 봐야 이해할 만한데,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국민국가라는 개념이 근대까지 없었으며, 부족 중심의 복잡한 정치 타협체이다. 다르게 얘기하면 일본의 동아시아 진출은 일본인 대 한국인, 일본인 대 중국인 식의 민족 대립 양상을 띠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몽 vs 크메르 vs 일본인 vs 화교 vs 베트남인... 이런 상황에서 비록 엄청난 병크를 저질렀지만, 현재 당장 국내 정치적으로 심각한 갈등은 국내의 다른 여러 제 민족이 일으킬 때가 훨씬 더 많다. 따라서 한국이나 중국 등에서 보이는 극명한 반일 양상이 없다. 특히 동남아시아 몇몇 국가의 지도층은 서양의 식민지를 벗어나러 의도적으로 친일에 끼었다가 전쟁 후반부에 반일로 돌아선 때도 있어서 대놓고 반일이 아닌 때도 있다. 놀랍게도 그 유명한 아웅산 수 치 여사가 이끄는 계열이 여기에 들어간다. 이들 국가에서 정치층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특정 부족을 위해, 그리고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이 지역의 자원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투자와 지원을 하는 일본 정부와의 협력을 전략적으로 강화하려고 든다.

중국과 한국은 동아시아 특유의 민족주의 성향이 크며, 두 나라는 과거 일본이 독주하다시피하던 1980~2000년대와 현저히 달라진 현재 높은 국력까지 더해 일본이 하는 행동에 따라 반대/방해하거나 앞길을 가로막을 만큼의 입지까지 있어 현재까지도 국가 차원이나 국민 차원의 마찰이 잦다. 그 일과 달리 이젠 한중일이 경제적으로 탄탄히 얽혀서, 서로 반발과 견제는 할지언정 경제적으로 서로의 관계가 끊어지기는 매우 힘들다. 반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일본과 티격태격할 만큼의 국력이 부족하다.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동남아시아의 반일은 동아시아보다 약한데, 식민 지배가 짧았기도 하지만 민족국가 구성이 느렸고, 지난 20년 간 일본이 이곳에 끊임없이 투자로 구애해서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런 모습은 정서와는 관련없이 실익을 위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봐야 옳다.

8. 그 외 나라의 반일

인도의 세계사 교과서도 일본을 침략국가라고 규정한다. 인도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1889~1964)가 영국의 단속으로 구속 수감됐을 때 딸인 인디라 간디(1917~1984)에게 보낸 편지를 봐도 3.1 운동을 찬양하며 한국을 억누르는 일본도 영국과 똑같은 제국주의 침략자라고 비난했다. 특히 러일 전쟁 때는 '동양의 한 나라'가 열강을 꺾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희망을 가졌던 그이기에 배신감이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런 그가 초대 총리였으니 인도 세계사 교과서에선 일본은 영국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침략자인 것이다. 일본 극우들은 반일파(?) 네루가 아니라 찬드라 보세가 인도 총리였다면 일본과 인도는 사이가 더 좋아졌겠다란 헛소리를 이야기하는데, 어차피 찬드라 보세는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이나 심지어는 나치의 힘을 빌려서라도 영국에 맞서려던 것뿐이었다. 그가 일본을 환장하게 좋아했다는 근거는 없다. 좋아했든 싫어했든 결과적으로는 통수로 되돌아왔고 어차피 연합국 소속 국가 식민지라도 추축국인들 딱히 더 좋게 보지는 않는다. 2차 대전은 선과 악의 전쟁으로 보기 어려웠고 연합국, 심지어 중화민국도 별로 좋은 놈들은 아니었다. 단, 추축국이 더 미친 놈들이었을 뿐. 결론은 캐나다와 노르웨이가 제일 깨끗하다. 현재 인도는 친일 국가로 분류된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인도 관계 문서 참고

서유럽은 현재는 반일 정서가 거의 없지만 태평양 전쟁에 관련이 있는 장년층 세대들은 일본을 결코 좋게 보지 않는다. 특히 네덜란드 에서 심했는데 일단 나치한테 제일 크게 당한 나라가 네덜란드기도 하고 일본은 나치의 동맹국이면서 바타비아 식민지를 침략해 많은 네덜란드인이 죽고 많은 숫자의 네덜란드 여자들이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된 역사가 있어 아직 2차대전 참전세대가 많이 살아있던 1970년대에 쇼와 덴노고준 황후 내외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테러를 당할 뻔 했다. 다만 지금은 전쟁이 끝난 지 오래라 반일감정이 많이 사라진 편이다. 때문에 보수주의자나 우익 같은 사람들을 빼면, 전쟁과 관련이 없는 현 세대는 반일정서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역사는 절대로 잊지 않고 일본을 독일과 세트로 외교적 차원에서 현재까지 압박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두 나라(독일과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늘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 최근에는 독일도 일본을 곱지 않게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태평양 전쟁 때는 반 독일, 반 이탈리아 정서처럼 반 일본 프로파간다 역시 유행했고, 월트 디즈니의 단편 애니메이션들, 뽀빠이배트맨등의 만화 작품에도 이런 정서가 많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다.[19] 당시 히틀러 때려잡는 모습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캡틴 아메리카는 당연하게도 일본군 역시 때려잡았다. 닌자와 싸우는 배트맨

호주의 경우는 포경반대 시위나 포스터가 수시로 보이는 나라로서 그 타겟은 물론 일본이다. 일본 어선이 불법으로 영해에 칩입해 고래를 잡아가는 일이 수도 없이 터진후 분노한 호주는 일본 어선이 자국의 해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 해군중국 해군과 연합하여 군사 훈련을 통해 일본 어선을 견제한다. 강력히 조치하며, 맬버른 같은 도시에 가면 이러한 광경을 상당히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에 호주는 일본 어선을 무자비하게 격침시켜 일본의 불법 조업을 막고자 노력한 바 있으며, 자국에서 필리핀인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죽은 필리핀인을 일본인으로 착각해서였다. 역사적으로도 호주는 건국 이후 유일하게 일본군에게 본토를 침략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감정의 골이 꽤 깊은 편.

물론 전쟁세대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에서는 일본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며, 심지어 일류와 오타쿠 문화가 꽤 성행한 독일과 프랑스 또한 마찬가지다.

흔히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가 동아시아권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위에 언급한 나라들은 다 명백히 일본에게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다. 단지 가까운 나라들이 더 심했을 뿐이다. 인원이 적었을 뿐, 백인 위안부도 존재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현 인도네시아의 중요성 때문에 꽤 심하게 타격받았고, 그 피해사례도 한국이나 중국과 비슷하다.

일본군의 잔인함이 동양인들에게만 발휘된 건 아니다. 미군들과 영국군들도 일본과 전쟁을 치르며 자국의 포로들이 숱하게 고문을 받았고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도 많다. 드 골이 괜히 일본 총리보고 외판원 같다고 깐 게 아니다. 때문에 국가 차원으로 일본을 괴롭히는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당시 일본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어느 정도 일본을 좋지 않게 보거나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압박하는 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 프랑스 국제 만화 전시전에서 프랑스 정부가 한국의 위안부 문제 관련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에 반발한 일본 작가들의 역사왜곡 전시물들을 강제 철거했던 일이 있었다. 이건 단순히 일본에 대한 반감보다는 일본이 게시한 작품들이 제 3국의 입장에서도 상식적으로 봐주기 어려웠던 원인도 있지만.

그 외에 오세아니아, 즉 태평양 군도의 여러나라들에도 동남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반일감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일본에게 점령당했던 오세아니아의 여러 섬나라들도 일본의 침략, 지배를 받았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어를 강요하며 원주민들을 패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특히 파푸아뉴기니가 제일 심하게 당했다) 점령은 안 당했지만 투발루인들의 경우는 일본군들이 멜라네시아나 미크로네시아 등 점령지에 거주하거나 일하던 투발루 노동자들을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나중에 미군, 영국군의 도움으로 풀려났지만. 주로 오세아니아 지역은 노인세대들의 반일 감정이 심하며 물론 젊은층들은 노인들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의 잘못을 모르는 것도 아니며, 비판을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동남아시아의 반일감정보다 낮을 뿐이지,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다.

9. 관련 항목



[1]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백제, 신라와 달리 고구려는 워낙 먼 데다 험한 동해 바다가 가로막아 고구려와는 교류, 접촉이 적었다.[2] 가령 조선 통신사 파견이 조선 후기 200여년간 고작 9회에 불과했지만 신라 때는 한일 양국의 사료를 종합해보면 670년부터 779년까지 1세기 동안 신라에서 일본으로 사신단이 39차례나 파견됐고, 동시기 일본 사신단은 신라를 25차례 방문했다. 사신단의 규모에 있어서도 성덕왕 2년(703)에 204명의 사신단을 파견했다는 기록을 참고하면, 압도적으로 많은 횟수까지 감안했을 때 1회에 3~5백명을 파견한 조선 통신사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3] 30~40대들은 한국에 민족주의 열풍이 강하게 불었던 시절에 젊은 시절을 보냈기에 오히려 중장년층보다 반일 감정이 심하다.[4] 이 사설 내용이 문제가 되는건 단순히 친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외국문화를 모조리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극단적인 국수주의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는 이러한 주장이 먹히던 시절이었다.[5] 반면 정치/경제 쪽은 남북분단 및 한-미-일 3국 동맹을 이유로 친일 스탠스를 유지해왔다.[6] 해당 칼럼은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 수록됐다.[7] 다만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것과 반일 감정은 전혀 다른 별개로 치부될 수 있는 문제이다. 실제로 일본 애니나 음악같은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반감정을 갖고 있는 국민들도 상당히 많다. 이것은 문화를 사랑하는 것이 곧 국가를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 매의 눈으로 얼핏 지나가는 군국주의 옹호나 반한 소재조차 판별해내 비판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0.5초도 놓치지 않지!![8]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는 이와 관련하여 북한이 '항일 유격대' 국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9] 국가의 뿌리가 항일에 있는 것은 대한민국도 동일하다. 이는 일본에 맞서 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한국의 정식 정부로 계승한 것을 인정한 것에서 비롯된다.[10] 이 호텔의 이름은 동아(東亞, 일본식 발음 토야)호텔로 개명당하고 일본 육군사령부로 전락한다.[11] 해군은 대규모의 함포 공격을 완차이와 코즈웨이 베이 그리고 영국의 해군 사령부가 있는 애드미럴티에 퍼부어 영국 해병대를 제압하고 상륙한다. 당시 영국 해군의 초계함은 거의 격침당했고 현재 성공회 교회인 성 요한 교회에서 저항하던 중국인 의용군과 영국 해병대, 홍콩 경찰경찰관들은 전멸당한다. 현재 이 교회에서는 이들을 순국 선열들로 기리고 있다.[12] 주로 의용군을 비롯한 반일 인사들, 망명한 중국 피난민들, 영국령 치하에서의 경찰관이나 관리 등이 학살 대상이었다. 재판없이 학살한 건 당연하다![13] 홍콩에서는 이 일본의 강점기를 3년 8개월(三年零八個月)이라 부른다.[14] 유튜브에 보이는 한국인들도 난징대학살 고인드립을 치는경우가 은근 있다.[15] 실제 한 대만 연예인이 페이스북에서 난징 대학살을 추모하는 말을 했는데 자기 나라나 관심하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리플들이 달렸다.[16] 영문명 The Republic of Tawian, 혹은 The Republic of Formosa라고도 불리기도 한다.[17] 기사 원문 참고[18] Canada is the most popular. After Canada, which 92 percent of Gallup respondents said they viewed favorably, the three countries that rate the highest with Americans are England, Japan and France, which posted favorability rankings of 91, 85 and 83 percent, respectively. 해석: 캐나다가 가장 인기가 있다. 갤럽 참가자들 중 92퍼센트가 호감을 느낀다고 말한 캐나다를 뒤이어,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세 국가들은 각각 영국(호감도 91%), 일본(호감도 85%), 프랑스(호감도 83%)다.[19] 이중 일부는 적국인 일본제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일본인(황인)을 비하 및 희화화했기 때문에 Banned cartoon으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