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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토가 넓고 섬이 많은 만큼 지역마다 주가 되는 종교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별로 종교적인 편차가 클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거의 모든 가족은 종교를 집안 전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매우 종교적인 국가로 분류되며, 실제로 종교는 인도네시아인의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헌법 상 종교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 다만 종교를 선택하는 자유가 있는 것이지, 종교 유무의 자유가 있는 게 아니다. 즉, 인도네시아에서 공식적으로 무종교인은 살아 숨쉬는 그 자체부터 불법이다.[1] 선택할 수 있는 종교가 비교적 많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인 점인데, 공식 종교는 이슬람, 불교, 힌두교, 개신교, 가톨릭, 유교, 그리고 토속신앙[2]이 인정되며, 신분증에 종교를 기재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은 수카르노 시절 중국의 지원을 받은 극좌 성향의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진압하고 수카르노까지 이들의 배후라는 누명을 씌워 몰아낸 뒤 2대 대통령이 된 수하르토가 군대 내 공산주의자를 색출해내는 과정에서 평범한 무신론자까지 공산주의자와 동등하게 취급해 온갖 불이익을 주는 병맛같은 종교정책을 냈는데, 이것이 민주화 이후에도 시정되지 않아 지금에 이른 것이다.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수가 굉장히 많다고는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종교를 선택해야 하니까 마지 못해 제일 흔한 이슬람을 고른 것이다.
5가지 건국 이념 중 하나가 유일신에 대한 믿음이다. 다만 보통 다신교로 인식되는 힌두교는 각종 신들이 유일신 '아친탸(Acintya)'의 화신이라고 주장하고, 불교는 태초에 우주를 창조했다는 본초불을 유일신으로 내세우고, 유교는 공자가 유일신 '천(天)'의 계시를 받은 사도라고 주장하며 현지화해서 규칙을 우회했다. #
최대 주류 종교인 이슬람교 명절[3]뿐만 아니라 힌두교 신년인 타이 푸샴 (3월 중에 온다.)[4], 부처님오신날 (음력 4월 15일)[5], 크리스마스(Hari Raya Natal, 12월 25일)[6], 부활절[7], 예수 승천일[8] 등이 법정공휴일로 인도네시아의 부처님 오신 날은 한국에 비해 1주일 가량 늦다. 인도네시아에서 5월에 공휴일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1.1. 지리적 분포
인도네시아는 2억 8,000여만 명의 인구의 87%가 무슬림으로, 그중 99%가 수니파, 1% 정도가 시아파이다. 지역 다수 종교인 이슬람은 13~17세기에 걸쳐 아랍, 인도, 중국에서 인도네시아 군도로 천천히 전파되었다. 초기에는 교역 과정에서 토착민이 개종하거나 선교사가 개인적으로 이주하여 이슬람을 전파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르며 아체, 자바 해안 지역, 남술라웨시 등 이미 이슬람 문화가 뿌리내린 곳은 군도 내 타 지역으로 이슬람이 전파되는 거점이 되기도 했다. 16세기와 17세기, 인도네시아 각지에는 수많은 이슬람 왕조가 세워졌다. 이슬람이 퍼진 지역에는 유럽 세력의 식민지화 이후에도 기독교가 그다지 전파되지 않았다. 민간 차원에서의 선교 시도는 종종 있었지만, 일부 지역에 소규모 개종자 집단이 생겨나는 데 그쳤다.
오랜 유럽의 통치와 선교로 인구의 10% 정도에 달하는 기독교 인구도 있으며, 발리섬에는 힌두교도 잔존하고 있다. 기독교 우세 지역 가운데 개신교와 가톨릭의 분포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플로레스처럼 원래 포르투갈이 진입해 오래 보유했던 지역에서는(플로레스는 19세기 중반에 포르투갈이 네덜란드에 매각했다) 대체로 그대로 가톨릭이 우세하고, 네덜란드 진입 시점에 이슬람, 힌두교, 가톨릭이 아닌 토착 종교가 강세였던 지역에서는 개신교가 우세하다. 대표적으로 파푸아뉴기니와 양분하고 있는 뉴기니섬의 인도네시아령 뉴기니, 소순다 열도의 숨바 섬 등이 이런 케이스다. 북술라웨시, 암본 등은 17세기 중반까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지만 가톨릭이 충분히 뿌리내리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못해 개신교가 우세하게 되었다.
서티모르는 가톨릭 포교가 먼저 이루어진 지역이 많고 그 영향력이 오래 지속되어 오늘날까지도 가톨릭 인구가 개신교도 인구보다 조금 더 많은데, 위의 지도에서는 개신교 지역으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 특히 서티모르 동부는 18세기 중반에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영향권에 들어온 곳이라 동부로 가면 가톨릭 인구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지역도 많다. 숨바 등 개신교 지역으로 표시된 다른 곳도 어느 정도의 가톨릭교도가 공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1.1.1. 전통/근대 이슬람
인도네시아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앞 절의 종교 분포 지도에서 전통 이슬람(traditional Islam)과 근대 이슬람(modernist Islam)이라는 구별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이런 구분은 다소 도식적일 수 있지만, 오늘날까지도 어느 정도 유효하고 인도네시아 이슬람과 종교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므로 여기서 따로 설명한다. 우선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이 전통/근대의 분류는 서구적 '근대' 사회와 문화를 받아들이느냐가 아니라 '근대 이슬람' 내지 정통/아랍 이슬람을 받아들이느냐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이다.인도네시아는 이슬람권 가운데 이슬람을 상당히 늦게 받아들인 축에 속해 이슬람 이전 힌두-불교 전통 및 힌두-불교 이전 토속 종교 문화가 상당 부분 존속하는 곳이다. 특히 자바는 이슬람화 이전 천 년 이상 기록과 시각 예술, 건축, 공연 문화 등으로 축적되어 온 독자적인 문화의 뿌리가 깊은 곳이었다. 이슬람이 퍼질 때도 자바는 아랍 등 정통 이슬람 지역과 너무 멀어 교류가 어려웠고, 군주나 선교사가 정치적으로 정통 이슬람을 강요할 수도 없었던 까닭에 자바 지역의 이슬람은 기존 자바 문화를 심층에 그대로 두고 표면만 대체한 형태가 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전통 이슬람'은 이렇게 이슬람 이전 토착 전통 및 힌두-불교 전통과 융합된 문화를 고수하는 이슬람 문화권(또는 그런 문화, 생활 양식)을 가리킨다. '근대 이슬람'은 19세기 중후반부터 인도네시아로 유입되기 시작한 (주로 아랍 지역의) 이슬람 모더니즘에 기반해 비이슬람적 관습을 멀리하고 이슬람 자체를 좀 더 강조하는 이슬람 문화권(문화, 생활 양식)을 가리킨다.
전통 이슬람 지역에 속하는 자바 중부 지역에서는 힌두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 등에 기초한 전통극과 무용이 지역 전통 문화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에 속한다. 이 지역에서는 힌두 신 및 지역 토착신이 전통극과 전통 설화의 등장 인물로서 사람들에게 친숙하며,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현대 유럽 문화에서 하는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자바 지역만 놓고 볼 때, 힌두-불교와 함께 지역의 종교적, 문화적 저층을 이루는 것은 자바 중부와 동부의 자바인 지역에서는 크자웬(영어 위키)과 카피타얀(영어 위키), 서부의 순다인 지역에서는 순다 위위탄(영어 위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분류의 기준을 '근대 이슬람화'가 아니라 '근대화'로 오해하면 종종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된다. 전통 이슬람 지역이라고 꼭 사회적/문화적으로 보수적이지 않고, 근대 이슬람 지역이라고 꼭 개혁적/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상은 반대에 가깝다. 이상에서 '전통 이슬람' 가운데 주요 지역에 해당하는 자바인 다수 지역은 인도네시아 이슬람 지역 가운데 사회/문화적으로 진보적인 편이다. 정치적으로도 식민지 시대 말기와 독립 초기에는 인도네시아 공산당 등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의 세가 발리와 함께 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강하던 곳이었다.
단, 이렇게 지역이나 종족을 기준으로 '전통 이슬람'과 '근대 이슬람'을 분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략적이다.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실상은 훨씬 더 입체적이다. 근대 이슬람 지역으로 분류되는 수마트라(람풍 제외), 남칼리만탄, 남술라웨시, 롬복, 숨바와 등지에서 정통 이슬람에 반하는 관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령 롬복의 바얀(Bayan) 지역에는 정통 이슬람에서 일 5회 기도하는 것과 달리 일 3회 기도하며, 이슬람의 다섯 기둥 가운데 세 가지만 실천하는 웨투 틀루(Wetu Telu)라는 오래된 이슬람 파생 종파가 있다. 반대로 전통 이슬람 지역으로 분류되는 자바에도 이슬람 기숙학교를 나왔다든가 부모님이 독실하다든가 하는 이유로 근대 이슬람을 따르는 사람이 꽤 있다. 자바섬 내에서는 중부/동부의 자바어권보다 서부의 순다어권에 독실한 사람들이 많은 편이고, 타시크말라야처럼 이슬람 교육기관이 밀집해 비교적 정통/근대 이슬람색이 강한 자바 도시도 소수 있다.
전통 이슬람, 근대 이슬람을 따르는 사람들도 사실 사상적으로 다양한 계파로 나뉜다. 우선 종교 생활에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거나 종교를 단순히 전통으로만 취급하는 세속주의자(주로 대도시 중산층)가 있고, 관습적으로 의례는 수행하지만 종교 지식은 일천한 사람(가령 흔하게는 자바 촌락 공동체의 중장년층)이 있다. 이들은 일단 명목상 전통 이슬람을 따르는 것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어느 정도 지식 내지 사상으로서의 이슬람을 중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전통 이슬람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진보파, 중도파, 보수파가 있고, 근대 이슬람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 진보파, 중도파, 근본주의 계파가 있다. 대략적으로는 전통 이슬람이 좀 더 사회문화적으로는 개방적, 관용적이라고 하지만, 자바의 전통 이슬람은 한편으로 자바 문화의 영향으로 위계와 권위에 다소 덜 비판적일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양대 민간 이슬람 단체 나다툴울라마(Nahdlatul Ulama, 약칭 엔우NU), 무하마디야(Muhammadiyah)가 있다. 이 두 단체 가운데 전자는 보다 전통 이슬람, 후자는 보다 근대 이슬람 성향에 가깝다. 이 양대 단체와 함께 지금은 사라진 이슬람 사회주의 정파 이슬람연합(Sarekat Islam, Syarikat Islam)까지 세 단체의 역사가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인도네시아 주류 이슬람의 역사에서 큰 줄기가 된다. NU와 무하마디야 모두 거대한 단체인 관계로 내부 파벌이 상당히 많다. 양대 단체는 공식적으로 정치 비관여를 표방하고 있지만, 성향상 NU와 가까운 정당으로 국민계몽당이, 무하마디야와 가까운 정당으로 국민수권당이 있다. 한편 오늘날 인도네시아 원내정당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번영정의당은 근대 이슬람 계열 가운데 주로 근본주의 파벌이 결집해 정당화한 것이다. 자유주의 성향의 NU 진보파~중도파로 분류되는 압두라만 와힛은 민주화 이후 첫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역임하기도 했다.
1.2. 이슬람교
자카르타의 이스티클랄 모스크는 수용 인원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이슬람 사원이다.
1.2.1. 개관
무슬림의 수가 압도적이라는 이유로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라고 흔히 불리지만 사실 국교가 이슬람인 것은 아니다. 그저 이슬람이 주류일 뿐. 인도네시아가 넓다 보니 아체처럼 상당히 보수적인 지역도 존재하며 이 지역에서는 소위 쿠란 벨트 같은 분위기가 난다. 수마트라나 자바에서는 서부로 갈수록 보수적이고 동부로 가면 진보적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인데 인도네시아라고 해도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서 이촌향도가 진행된 동네도 있기 때문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이슬람이 주류인 국가라고 해도 걸프 연안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이나 신정 공화국인 이란, 탈레반 잔재가 남은 아프가니스탄처럼 니캅이나 차도르 같은 걸 쓰고 돌아다니는 여성은 찾기 어렵다. 히잡이 대부분이며, 가끔 니캅이나 차도르를 착용하는 여성들이 있지만 굉장히 극소수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아체 출신들이거나 서부 농촌 출신들이다. 홍콩의 가정부 중에서도 가끔 니캅을 쓰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데 IS가 연상되는지 현지인들이 좀 꺼림직하게 보고 가끔 홍콩 경찰이 불심검문해서 멈춰세워 귀찮게 군다.
예를 들어서 인도네시아 내 보수적인 무슬림 여자들은 히잡 등을 착용해 몸을 가려야 하지만 인도네시아 내 화교나 외국인의 경우 길거리에서 민소매에 핫팬츠 입고 하이힐 신고 맨살 맨다리를 내놓고 다녀도 모스크에 들어가거나 할 때 말고는 별로 터치가 없다.
하지만 수마트라섬 북부의 아체라는 특별자치주는 특별하게도 복장의 자유가 제한되는데 여자들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거나 어느 정도 노출이 있는 옷을 입으면 종교경찰에게 제재를 받거나 끌려간다. 아체는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법인 샤리아가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가령 아체는 샤리아에 따라 동성애자에게 명시적인 법적 제재를 가하고 있다. 동성애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은 이란이나 사우디처럼 사형은 아니고 회초리 태형이지만, 태형을 당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 때문에 심각한 사회적 불이익이 있다. 태형이 부상을 입히는 것보다 부도덕한 행위를 행한 자에게 공개적 수치를 줄 목적으로 집행되는 것이다. 잡히지만 않으면 괜찮지만, 재수 없이 동성애 명목으로 걸려서 태형을 당하면 사회적 살해를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아체 내의 동성애자는 동성애가 불법이 아닌 아체주 밖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비슷하게, 아체에서는 음주와 혼외정사가 불법(태형감)이지만, 아체주 경계만 벗어나면 합법이라 아체 주민이 유학 등으로 타지에 머물 경우 자유롭게 음주를 즐기기도 한다. 이곳은 2001년까지만 해도 독립투쟁을 벌이며 중앙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던 곳이었는데,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때문에 아주 큰 피해를 입어 지역에서 이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고, 반대로 독립운동 자체는 점점 세를 잃었다. 결국 아체는 2005년 독립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자치주가 되어 독립운동 세력이 요구한 샤리아 체제에 의한 자치를 하는 곳이 되었다. 과거 아체 내전은 나름대로 잔혹한 전쟁이어서 진행 중일 때는 인도네시아가 종종 국제적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자카르타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띈다. 시골로 가면 갈수록 10명 중 7명 꼴로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데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에게 그 의미를 물어보면 100%가 신앙심이 깊고 신실한 여성만이 히잡을 쓸 수 있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젊을 때는 쓰지 않다가 결혼 후에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남편이 쓰기 원하면 써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안 써도 된다고 하면 안 써도 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나 젊은 여성들이 입는 옷은 레깅스나 미니스커트도 심심찮게 보이는 편이지만 중년 여성들이 입는 옷은 팔과 다리를 전부 가리는 형태의 옷들이 많다. 또한, 히잡의 경우 아체 등의 일부 지방을 제외하면 착용이 자유로운 편이고 패션으로서 히잡을 착용하거나 히잡 디자이너도 있을 정도이다.#1#2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도 신발, 식료품과 함께 히잡만 취급하는 히잡 전문점이 늘어서있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이 주류인데도 주말은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대신 금요일에는 점심시간을 늘려 무슬림들의 예배권을 보장하고 있다.
1.2.2. 전통의 존속 (토속 이슬람)
무슬림의 수가 압도적이라곤 하지만 이슬람이 전 국민적으로 보급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이 확고한 우세를 점한 시기는 17세기 이후이며 그 전에는 불교나 힌두교가 우세했고, 본문의 국장도 불교/힌두교 전설에 나오는 새 가루다 문양이다. 3대 불교 성지 중 하나인 보로부두르 사원도 인도네시아에 있다. 스리위자야 왕국은 불교 국가였으나 스리위자야 이후에 건국된 마자파힛 제국에서는 불교와 힌두교가 융합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힌두교가 우세를 점했다.하지만 결국 17세기 이후부터 이슬람이 대세가 되면서 불교는 수마트라섬 동부의 일부 해안 지역, 힌두교는 발리섬과 자바 동부 산간 지역, 칼리만탄 내륙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힌두교도와 불교도 모두 합쳐 전 국민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음주 등이 만연하고 무슬림들 중 예배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보통 아랍권에서는 쿠란 전체를 외운 사람들이 예배를 집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예배를 집전하는 이맘들 역시 가장 기초적인 예배문 이상을 외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변국 말레이시아에서 이거 가지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엄청 무시하고 놀린다. "너네는 8줄 넘는 수라(Surah)는 하나도 제대로 암송 못하지" 등등.
산간지방에 가면 이슬람과 접목된 주술 행위가 만연하다. 아이라 라피두스가 지은 '이슬람의 세계사'란 책을 보면 마을마다 있는 무당들이 주술에 쿠란을 사용하면서 이슬람을 보급한 이야기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지금도 빠왕[9]이나 두꾼[10]들이 많이 활약한다. 무함마드 탄신제인 마울리드 행사도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토착화된 모습을 보인다. 해당 문서 참고.
그러나 철저히 샤리아 원칙에 따라 사는 무슬림들도 절대 적지 않다. 이슬람 교리에 따라 철저하게 사는 무슬림은 국민의 20~30% 정도로 추산되며 상당수다. 그리고 이슬람의 사회적 영향력도 서유럽, 동아시아 등지의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세속 국가에 비해 매우 막대하다. 라마단 기간에 대도시에서는 문을 열지만 특정 지역에서는 낮시간에 영업이 금지되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다 최근 이뤄진 조사에서 인도네시아 인구의 9.2%는 인도네시아는 칼리프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비율이 나왔다.#
1.2.3. 정통화
앞서 인도네시아의 히잡 착용에 대해 서술된 부분이 있다. 요약하면 오늘날 인도네시아에서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은 선택에 따른 것이자 패션 요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는 타당한 서술이나, 역사적으로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전반적 정통화 과정의 관점에서 조금 더 살펴볼 수 있다. 이 절의 참고 문헌은 다음과 같다.- 김형준. 히잡은 패션이다. 서울: 서해문집, 2018.
- 김형준. 이슬람과 민주주의. 서울: 눌민, 2021.
19세기와 독립 직후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자바인 여성은 히잡을 쓰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 시기에 찍힌 자바인 여성의 사진에는 여성이 대부분 맨머리를 드러내고 있거나, 무언가를 쓰더라도 히잡류가 아닌 전통 예복의 모자 내지 머리장식을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바는 열대 기후 지역이고, 아무리 무슬림이라고 해도 고유 전통이 지속된 자바에서 히잡과 같은 거추장스러운 의복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비슷하게, 이때는 자바에서 지역 사회의 이맘 역시 아랍어에 그다지 능통하지 못했고, 이슬람 지식 역시 제한되었으며 자바 전통이 뒤섞인 방식으로 이슬람 의례를 수행하였다. 정통 이슬람 지식은 근대 이슬람을 받아들인 도시 지역의 이슬람 학자들에게만 퍼져 있었다.
자바 외 타 지역, 특히 수마트라는 경우에 따라 조금 더 정통/아랍 이슬람에 가까운 경우도 있기는 했다. 가령 서수마트라 미낭카바우 지역은 19세기 파드리 전쟁 과정에서 전통-세속 지배층과 이슬람-이맘 간 이원적 구도가 자리잡혀 상대적으로 종교 지도자를 중심으로 지역 사회가 정통/아랍 이슬람에 호의적이었고, 교육열이 높아 새로운 문물을 수용하는 것이 용이했다. 따라서 서수마트라 지역에서는 전쟁 이후 19세기부터 지역 사회에서 정통 이슬람 수용과 학습이 인도네시아 기준으로는 빠르게 진행되었으며 이미 19세기부터 여성의 히잡 착용도 비교적 널리 퍼졌다.
20세기 초 끼블라 문제는 히잡 외에도 전통 자바 이슬람이 근대 정통 이슬람과 충돌하는 초기 사례로 소개할 만하다. 인도-자바 전통이 건축 양식에서 존속했던 전통 시대(20세기 초 이전)에는 사원(모스크) 건축 역시 힌두적 동서남북 방위의 조화에 의거하여야 했었는데, 가령 욕야카르타 지역의 사원을 지을 때 북쪽은 므라피산, 남쪽은 남해 바다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사원의 미흐랍은 고정된 남북 축에서 서쪽으로 만들어져 메카 방향과 한참 어긋나 있었고, 이에 따라 자바 무슬림들은 정통 이슬람에 따르면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20세기 초 이전의 전통 천문학 지식으로도 끼블라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당대 발전한 유럽 과학에 비하면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17세기에 마타람 술탄국이 다양한 역법 체계를 비교하고 독자적 역법을 수립했고, 16~19세기 내내 전통 천문학이나 점성술을 포함해 다양한 주제에 관해 자바어 문헌이 작성되어 온 것에 비추어보면 전통 시대 자바인들의 과학적 인식 능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또한 전통 시대부터 항해술이 발달한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방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기본적인 기술에 속했으며, 16~19세기에도 소수지만 메카 순례를 다녀온 자바 무슬림이 있었다.
하지만 군주가 세운 사원에 관해 토를 다는 것은 자바 전통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므로 이 관행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근대 이슬람을 받아들인 개혁가들은 사원의 미흐랍이 잘못된 방향으로 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사원에서 미흐랍이 아닌 올바른 방향으로 예배를 올리도록 권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시도는 전통 관료들과 전통주의, 혼성 이슬람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렇게 자바 이슬람은 정통 이슬람에 없거나 심지어 하람에 해당하는 관행을 다수 간직하며 정통 이슬람과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대략 1980년대 및 1990년대 무렵부터 자바 지역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정통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교육 저변의 확대,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아랍국의 정통 이슬람 보급 노력, 군부 정권 종교 관리 정책의 반작용 등이다(수하르토 시대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역사는 상당히 복합적으로, 단순히 정부의 탄압/민간 이슬람의 저항이라는 도식으로 요약할 수 없다. 수하르토는 1990년대에는 정권의 유지를 위해 이슬람에 유화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수하르토 정권 말기와 민주화 시대에는 이에 따라 일반 무슬림도 어느 정도 정통 이슬람 및 아랍어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였다. 이것이 시각적으로 가시화된 지점이 바로 젊은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자바에서 무슬림 여학생이 히잡을 쓰고 다니면 오히려 별난 애 취급을 받았다. 예외적으로 이슬람계 종교 학교 여학생은 히잡을 쓰는 경우가 많았지만, 학교에서만 쓰고 하교 후에는 벗고 다니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와 2000년대가 되면 조금씩 일상적 히잡 착용이 흔해졌다. 2000년대와 2010년대에는 학생 사이에서 마침내 히잡이 일반화되었다. 히잡을 착용한 학생에게 히잡은 신실한 무슬리마의 증표였고, 점점 이들이 도덕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사회적 인정을 받으면서 히잡을 쓰는 학생이 늘어났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굳이 종교색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등의 이유로 히잡을 쓰지 않는 무슬림 여학생도 많지만, 쓰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던 시절에 비해 적어도 무슬림 여성 사이에서 히잡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와 함께 대중문화 영역이 확장된 2000년대와 2010년대부터는 대중문화에서도 정통/아랍식에 가까운 이슬람 가치를 강조하는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수피적 신비주의 문학 등이 엘리트 문단에서 독특한 흐름을 형성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이슬람적 문화를 더 많이 소비하기 시작했고, 컨텐츠 제작자들도 이 수요에 발맞추어 더욱 많은 이슬람 문화 상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이슬람적 대중 영화, 이슬람 로맨스 소설(가령 남주가 알아즈하르 학생인 무슬림 엘리트라는 식), 주인공이 무슬림임을 강조하는 애니메이션 등이 활발히 제작되었으며, 마케팅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무슬림 정체성이 활용되었다. 이는 2020년대 초반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렇게 이슬람적 가치를 강조하는 유의미한 비주류 대중문화는 도덕적 호평과 함께 세속적 주류 대중문화와 대부분 잘 공존하고 있고, 둘을 잘 분리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오늘날 인도네시아 이슬람의 정통화가 뚜렷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세속주의의 거부나 불관용의 증가 등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특히 자바와 마두라의 무슬림은 어느 정도 정통화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부분 전통적(정통 이슬람이 아닌 자바식 전통을 따름), 세속적이며, 이슬람을 여러 종교 중 하나, 즉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의 문화적 기반 정도로 상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슬람적 정통 도덕의 강조는 오늘날 가속화한 세계화와 젊은층이 숨쉬듯 받아들이는 해외 문화와 길항하며, 문화적 논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1.2.4. 말루쿠/술라웨시 분쟁
네덜란드 식민 부역자들에 대한 트라우마랍시고 무슬림들이 동인도네시아계 기독교인들을 매국노처럼 보던 시절도 있었다. 최근 인도네시아가 겪은 최대 규모의 종교 간 분쟁도 동인도네시아 지역에서 1999년~2002년 시점에 발생한 분쟁이었다. 이때 말루쿠 제도(주로 암본, 할마헤라)나 술라웨시 중부 포소 지방에서는 무슬림과 기독교도 간 심각한 유혈 분쟁이 벌어져 약 3년 동안 각각 5천 명, 1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 분쟁의 발단이 된 것은 주민 간 사소한 불화나 괴소문이었지만 공동체 안에서 소규모 주민 집단이 종교가 다른 상대방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분쟁은 초유의 경제난에 허덕이던 불안정한 지역 사회에서 삽시간에 커져 온갖 종족 집단이 종교를 경계로 서로를 공격하게 되었다. 이렇게 종교 간 증오가 팽배하자 지역 사회에 이슬람 극단주의자 등의 증오에 기반한 선동이 쉽게 퍼지게 되기도 했다.2001년 12월에 인도네시아 정부의 중재로 무슬림과 기독교도의 평화합의인 <말리노 합의>가 체결되어 종교 간 투쟁은 점차 진정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 특히 술라웨시 중부 포소 등지에서는 종교 간의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복음주의 교단의 주도로 빠르게 증가하는 기독교 인구 성장에 적대와 혐오감을 드러내며 최근까지도 이따금 신자들을 공격하고 종교 갈등을 일으킨다. 가끔 자카르타에서 원정 나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소수민족 기독교인을 학살하거나 교회와 성당에 방화나 폭탄 테러를 해대고 심지어는 미성년자 기독교인을 참수해서 참수된 목을 교회에 던져놓고 가는 만행까지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런 극단주의자들을 단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소규모 점조직 형태로 활동하는 경우 행정력이 약한 산속에 숨어 버리면 찾기가 어려워 꽤 고생해 왔다. 2010년대에 포소 지역에서 테러를 일으킨 극단주의 무장 단체는 2022년 9월까지 완전 소탕되기는 했지만 정부의 진압 작전은 그 뒤로도 한동안 발동되어 있을 예정이다.
1.2.5. 이슬람적 관습
인도네시아의 무슬림들이 중동, 특히 아랍권 중심으로 형성된 이슬람적 관습을 얼마나 따르는지는 지역적, 개인적 격차가 너무 커 일괄적으로 말할 수 있는 점은 많지 않다. 일 5회 권장되는 기도의 경우, 웬만한 도시에서는 아잔이 들리며 많은 공공장소(공항, 기차역, 쇼핑몰 등 포함)에는 기도실이 있으므로 지키기 쉬운 편이다. 금요 예배도 마찬가지로, 비록 인도네시아에서는 금요일이 평일이고 주말은 토요일과 일요일이지만[11], 예배를 위해 여러 기관이나 학교에서 금요일은 점심 휴식 시간이 길거나 오전만 출석하는 경우가 많다(단, 금요일 오후에 일이 비거나 수업이 없을 경우 대개 토요일도 일/수업을 한다). 이렇게 여건이 마련되어 있으니 기도나 금요 예배는 많은 사람들이 지키는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속적인 사람들은 기도나 모스크 방문을 거의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여성들의 히잡 착용은 상술했듯 개인의 선택에 가깝다. 자바의 경우 독립 직후에는 히잡을 쓰지 않는 것이 관습이었고, 1980년대부터 점차 중산층, 상류층 고등학생, 대학생 중심으로 히잡 착용이 늘어났으며, 1990년대는 많은 무슬림 여학생이 히잡을 쓰기 시작했고, 2000년대부터는 일상적 히잡 착용이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수마트라 아체, 미낭카바우 지역의 경우 자바보다 더 이른 시기에 히잡을 널리 쓰는 문화가 있었다.[12] 히잡은 오늘날 무슬림 여성에게 도덕적으로 권장되는 편이지만, 필수는 아니므로 원하지 않으면 쓰지 않아도 된다. 히잡을 쓰거나 쓰지 않는 여성의 의견은 매우 다양하므로 일반화하기 곤란하다. 다만 가정이나 동류 집단이 신실한 무슬림으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 유무형의 히잡 착용 압박이 있을 수는 있다. 참고로, 인도네시아 무슬림 여성들, 특히 자바에서의 히잡 착용 방식은 이웃 국가 말레이시아와 다소 차이가 있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히잡만 보고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쉽게 알아맞히고는 한다.[13] 막연히 '동남아시아 샤피이파 이슬람권'으로 묶이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이슬람 관습은 깊게 들어갈수록 차이점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 무슬림은 일부다처제 결혼이 가능하며, 한 남성이 부인 네 명까지 맞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결혼에 관한 한 시민이 속한 종교의 관습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며, 일부다처제는 인도네시아 주류인 샤피이파를 포함하는 대부분의 주류 이슬람 마드하브에서 《쿠란》에 근거해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이슬람권 지역이 대개 그렇듯 오늘날 여러 부인을 두는 남성은 아주 적다. 인도네시아의 페미니즘 진영과 여성단체에서는 종종 일부다처제를 제한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며, 2008년 4월에는 인도네시아 여성단체가 일부다처제를 법적으로 금지하라는 대규모 시위도 했지만 정치권에서 그리 호의적이지 않아 일부다처 금지는 실현되지 못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명예살인은 사실상 벌어지지 않으며, 명예살인은 인도네시아 이슬람 관습의 일부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문화권과 명예살인이 관습적으로 벌어지는 지역을 등치하곤 하는데, 명예살인은 이슬람적 관습이라기보다는 중동, 아프리카, 남아시아 일부(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등.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과 대조적으로 사례가 매우 적다)의 지역 전통에 뿌리를 둔 악습이다. 기술적인 의미에서 인도네시아에서도 명예살인이 벌어진 적은 있기는 있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최초의 명예살인 사례는 2020년에 남술라웨시에서 보고되었다. 무슬림, 비무슬림을 가릴 것 없이 인도네시아 사회는 이와 같은 범죄 행위에 경악했다. 그 이후 2024년 현재까지 다른 사례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14][15]
할례는 인도네시아 무슬림에게 종종 행해진다. 그러나 문제는 남성할례뿐 아니라 여성할례도 빈번하게 행해진다는 것으로, 이는 인도네시아가 전통적으로 받아들인 샤피이파 이슬람 문화권의 관습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인도네시아에서 주로 행해지는 '여성할례'는 생식기를 직접 심각하게 불가역적으로 훼손하는 FGM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서는 인도네시아의 50% 이상의 가정이 그렇게 딸에 대해 인권침해적인가?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수밖에 없고, 인도네시아 여성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을 때 여성할례에 대해 물어봐도 자기들도 '엥? 내가 그런거 받은 적 있나?' 같은 반응이 대다수인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 성기를 훼손하는 방식이 다수를 이루는지는 '조사된 바 없으며', 특히나 서구권 언론이나 단체의 조사나 보고에서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오해의 여지가 있다. 이는 아프리카나 일부 중동권 같은 곳의 FGM 관행하고는 다르고, 인도네시아 특유의 미신적인 의식의 측면도 강하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관행 역시 문제가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FGM이 얼마나 여성에게 심각한 고통과 성기능 장애를 가져오는지를 알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차이는 크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 그런 고통 때문에 성생활을 못한다는 여성을 흔히 찾아볼 수 없으며,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는 인도네시아 여성들과 클럽 등에서 만나거나, 혹은 진지한 교제를 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그런 훼손된 성기를 목격하는 일은 드물다.
통계상으로 보자면 인도네시아 여성 가운데 절반가량은 할례를 받았으며, 2016년 기준 0-11세 사이에 할례를 받은 여자아이의 비율은 약 49%였다. 비율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중부자바와 욕야카르타 지역은 0-11세 사이에 할례받은 여자아이의 비율이 25% 이하이지만, 수마트라 지역(븡쿨루 제외) 및 서부자바에서는 51~80%, 고론탈로에서는 80% 이상에 달했다. 여성할례는 21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인도네시아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2006년 인도네시아 보건부는 여성할례를 금지하려고 시도했지만, 2008년 인도네시아 울레마(이슬람 성직자) 협의회는 샤리아에 근거해 여성할례 금지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결국 보건부는 2010년 여성할례가 반드시 전문 의료인에 의해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수행되어야 한다는 보건부령을 발표하는 정도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인도네시아 보건부와 울레마 협의회는 공히 여성할례 과정에서 음핵 절제, 훼손이 동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2014년 2월 보건부는 이것이 여성할례를 국가가 공인하는 것으로 보일 것을 우려해 2010년 보건부령을 폐지했다.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여성할례에 대한 명시적인 제도적 제한은 없으며, 이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로 남아 있다. 2013년 국민 기본 건강 조사(Riskesdas)에 따르면, 당시까지 보고된 여성할례 케이스 중 의료인이 수행한 것이 53.2%(전문 조산사 50.9%, 의사 등 기타 의료인 2.3%), 조산사 자격이 없는 산파나 전통 할례사가 수행한 것이 나머지 46.8%를 차지하였다.[16][17]
인도네시아 내부에서도 이 관행에 대해 조사나 비판이 계속 뒤따르고 있는데, 여성할례는 보통 부족별 관습에 따르는 경우가 많으며, 세시풍속이나 민간신앙과 많이 결합된다. 그래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자바족 같은 경우에는 강황을 음핵에 올려놓는 식의 상징적 의식을 할 뿐이며, 부족에 따라서 성기에 상처를 입히는 방식을 사용하거나, 일부는 직접 절개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18] 더 자세한 사항은 인도네시아어로 된 학술자료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1.2.6. 현황
비교적 세속적인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 후반부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술라웨시나 아체 주, 말루쿠 제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민간 이슬람 근본주의/극단주의 단체는 제마 이슬라미야(Jemaah Islamiyah), 이슬람수호자전선(Front Pembela Islam) 등이 있다. 21세기 들어 동남아시아까지 휩쓰는 와하비즘과 이슬람 극단주의의 영향에서 인도네시아도 자유롭지 못하다. 2013년 기준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NGO Setara가 조사해 기록한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공격 사건은 220건이었다.# 종교적 소수자 박해는 주로 기독교도들이 피해를 입는다. 'Aid to the Church in Need'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0년 전후 종교적 불관용 사건 가운데 75%는 기독교도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한다.#여기서도 미국이나 한국처럼 문화 통제 여부를 가지고 이슬람 보수파들과 진보파들이 갈등을 벌이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심의 기준이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독실한 무슬림들이 동성애를 다루는 만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을 때 심의 가지고 논란이 일었다거나 하는 일이 대표적인 예이다.
종교 간의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강경 무슬림들의 행보는 비판을 많이 받는데 서구권 국가 대사관에 극단주의 무슬림들이 돌을 던져대는가 하면 과거 독재정부 시절 대규모로 가해졌던 공산당에 대한 탄압과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조차도 하지 말라고 시위를 벌여대기도 한다.
사실 과거 독재정부도 무슬림 강경파들을 탄압했던 건 마찬가지였는데 수하르토 독재 세력의 후신 정당들과 손을 잡는다는 점 때문에 이들 단체 가운데 상당수가 보수파 정당들의 어용단체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많다. 1966년 학살 사건과 1998년 화교 학살 사건을 보면 그리 틀린 말까지는 아닌 듯하다. 참고로 1998년 화교 학살 때는 파푸아인이나 말루쿠인 등 기독교를 믿는 소수민족들과 자바인 기독교인들까지 싸잡아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국가가 지정하지 않은 종교나 신흥종교들을 박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시아파 무슬림이나 힌두교, 불교, 무신론자에 대한 차별과 박해도 심한 편이다. 2012년에 인도네시아의 한 남성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시물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는 일도 있었으며#, 화교 기독교인 주지사가 쿠란을 인용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이라며 법정에 가게 되자 화합과 관용을 촉구하는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화교 주지사가 신성모독을 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가게 되면서 성탄절 축제를 자유롭게 못하고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행사까지 취소하라는 압력도 하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가 인도네시아에서 퍼지자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슬람 율법해석을 사전에 규제하는 강경책을 내놓았다.#
여하튼 우파 극단주의자들이 시위를 자주 벌어나가자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학을 떼며 질색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중 대다수가 2017년 지방선거 분위기를 타고 부패한 기득권층이 의도적으로 이슬람 과격세력과 연대해서 자신들의 부정부패같은 문제점들을 물타기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다. 그래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주류 이슬람 단체에서도 냉대하고 있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물론 이들 기득권층 세력들은 과거에 세속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한편으로 화교와 공산주의자들을 아예 한 차례 박살내버린 적이 있었고 1998년 민주화 시위 국면에서도 화교에 대한 학살을 의도적으로 선동한 원흉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아혹 주지사에 대한 마타도어가 상당한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이슬람 강경세력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업은 보수 세력들이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 당선되었다.
거기에다 최근인 2017년 인도네시아에서는 학생층들 사이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되고 있어 고교생과 대학생 5명중 1명이 성전에는 참전할 수 있고 비무슬림은 지도자를 인정할 수 없다는 비율이 3분의 1에 육박하자 인도네시아 정부도 묵과할수 없어 종교 교육은 모니터링하고 민족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으며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를 해산시키는 등 극단주의에 대해서 강경대응중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혼외 성관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징역 5년형에 처하는 형법개정안을 추진하려고 하자 성소수자들의 인권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동시에 인권단체들의 반발도 커지면서 인권수준이 퇴보될 위기에 놓여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내 교도소는 제소자들의 수가 많고 거기에다 극단주의의 양성소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2018년 3월 13일에는 정부 전복을 위해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선전선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해온 자생 이슬람 지하드 단체 소속 14명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딸이 패션 관련 행사에서 시를 낭송하던 도중에 신성모독을 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강경 이슬람 단체들이 체포를 요구하는 등 신성모독법을 내세워 반대파들을 마녀사냥하는 행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거기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의회를 공격하려고 했던 극단주의 3명이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2014년에 할랄 인증 의무화 시기를 통과시켰지만 식품업계 등이 반발하자 품목별로 길게는 7년까지 유예하는 초안이 마련되었다.# 2019년 4월 8일에 인도네시아 대법원이 모스크의 기도 스피커가 크다는 이유로 징역 18개월을 받은 불교도 여성의 상고를 기각한 일이 발생되었다.#
그래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 정당들이 민생 대책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국민들의 실망을 사게 되었고 종교 문제보다는 민생을 우선하는 유권자들의 이탈로 원내 입성에는 실패하는 등 급격한 세력 위축을 겪고 있다.#
무슬림 시아파나 아흐마디야를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는 오늘날까지도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아흐마디야 무슬림들은 자타공인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에 지방 정부가 전자 신분증 발급 조건으로 아흐마디야 신앙의 포기를 종용하는 사건이 터져 외신에도 알려졌다. (Indonesian Islamic sect say they're 'denied state IDs' over their beliefs, 2017년 6월 21일.) 특히 자바 서부나 수마트라에서 아흐마디야에 대한 사회적 박해가 심각하여 2010년대에 이 지역에서 아흐마디야 모스크에 대한 공격이나 아흐마디야 신봉자에 대한 폭행 사건이 여러 건 보고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12세 초등학생을 4번째 아내로 맞은 40세 남성이 아동 착취 혐의로 붙잡혔다.#
쿠란 찢은 것을 신성모독죄로 징역 3년형 선고했다.#
2017년 초 급진 이슬람주의의 단체인 이슬람 수호전선의 지도자 리직 시합이 한 여성과 음란물 공유(!)를 한 혐의와 사우디에서 돌아온 뒤에 체포됐다.#
아체 주 빼고 인도네시아 일부 학교에서 여학생에게 히잡 착용을 강요해 논란이 되자 정부가 교내 종교 복장 강요를 공식 금지했다.#
2021년 3월 28일에 마카사르의 가톨릭 성당 인근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이 발생해 범인 1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인도네시아에서 소수 종교에 대해 배척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보로부두르 유적을 보존한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최고기구가 무슬림들의 가상화폐를 금지하는 파트와를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이슬람 고위 성직자가 자선단체를 설립해 모금한 돈을 테러 자금(!)으로 빼돌린 혐의로 체포됐다.#
모스크 아잔 소음 지침을 발표하자 번영정의당이 반발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에 대한 회의감으로 청년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종교를 믿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어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 선수단의 참가로 인해 U-20 월드컵 개최지 취소 사태 이어 콜드플레이 공연을 자국 공연을 막아야 한다고 나섰다.#
1.3. 기독교
인도네시아의 기독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영향으로 포교되어 주로 화교들이나 소수민족들이 믿는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는 '기독교 = 지역 섬들의 원주민&화교들의 종교'로 인식된다. 인도네시아의 공휴일 중 크리스마스 (12월 25일), 주님부활대축일 (양력으로는 3~5월), 주님 승천 대축일 (양력으로는 4~6월, 보통 5월에 온다.)이 기독교에서 유래한 공휴일이다.그 외 암본 섬이나 숨바 섬 등의 소수민족들도 기독교로 개종해 무슬림이 거의 전부인 자바인과는 대립한다. 이들의 인구도 무시 못 할 수준으로, 인구가 넘사벽인 두 섬 자바와 수마트라가 이슬람이 강세라 그렇지 동부는 기독교세가 크다. 이슬람교가 수마트라우타라 주에서는 55%, 말루쿠 주에서는 50%에 불과하다. 그리고 파푸아 주, 서파푸아 주, 술라웨시우타라 주, 누사틍가라티무르 주[19]에서는 기독교 신자 수가 이슬람 신자 수를 압도한다. 말루쿠 주와 말루쿠우타라주는 인구 다수는 무슬림이지만 상당수의 개신교도가 존재하며[20], 서티모르는 포르투갈의 점령 영향으로 가톨릭세가 크며 서뉴기니는 양쪽이 골고루 분포한다.
그리고 소수민족과 외지를 벗어나서 최근에는 자바 등지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증가하는 중이다.
정교회는 극소수로, 자바, 발리, 수마트라, 술라웨시, 서뉴기니 등의 제도에 13개의 성당을 갖추고 신자 수는 2천 명 이상 정도 된다. 개신교의 경우, 대다수는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아 개혁교회를 믿으며 대한민국과 달리 일찍이 시편(mazmur)을 찬송가로 부르는 관례가 정착해 있었다. 반면 수마트라에 사는 바탁인들은 루터교회 비율이 높은 편인데 이는 루트비히 노멘젠이라는 독일인 선교사의 영향이 컸다. 또한 인도네시아 루터교 최대 교파인 HKBP는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큰 루터교단이기도 하다.[21] 그리고 포르투갈이 지배한 서티모르, 플로레스는 가톨릭이 우세하다.
성공회 또한 최근 싱가포르 교구에서 선교구를 설치하고 성당을 짓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는 총 32개의 교회 공동체가 있고 대략 3000명에서 4000명 정도의 영세자가 존재한다.자세한 내용은 인도네시아 성공회를 참고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화교나 말루쿠 제도, 서티모르 같은 소수민족 지역에 집중되어 있어 소수민족 탄압 문제와 맞물리기도 한다. 아체 주와 같이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은 타종교 시설 설립 허가에 심각한 제한을 두기도 한다. 심지어 건축 자격 요건을 다 갖추고, 소송까지 치르며 법원의 허가를 받았는데도 강경 무슬림들의 영향력이 센 지방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교회 건축 허가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으로도 비무슬림에 대한 차별이 상당하다. 취업 제한 등은 예사이며 전술했듯이 맘먹고 테러해서 죽이는 경우도 많다.
인도네시아의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2023년에 예수에 대한 명칭을 이슬람식 표현인 '이사 알 마시'(Isa Al-Masih)에서 크리스천들이 사용하는 '예수스 크리스투스'(예수 그리스도·Yesus Kristus)로 바꾸었다.#
1.4. 불교
전술했다시피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의 전파 이전에 불교 국가가 존재했다. 그리고 힌두교 왕국들이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17세기 이후부터 이슬람이 대세가 되면서 불교는 화교들과 수마트라섬 동부의 일부 해안 지역, 힌두교는 발리섬, 자바 동부 산간 지역, 칼리만탄 내륙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힌두교도와 불교도 모두 합쳐 전 국민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인도네시아는 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슬람의 전래 이후에도 불교의 영향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다.인도네시아 불교도들은 화교와 원주민 신자들로 나뉘는데 화교 불교 신자들은 대승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화교 특유의 신앙을 믿는 경우가 많고 불교도 원주민들은 상좌부 불교를 믿는다.
인도네시아 내에는 불교 유적들이 존재한다. 특히 보로부두르 유적이 유명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약 250만 명의 불교 신자들이 있지만, 불교계에서는 실제 불교 신자들의 규모가 그 3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도네시아의 공휴일 중 불교에서 유래한 날은 부처님오신날인데, 대한민국보다 1주일 늦게 온다.
1.5. 무종교
무신론 이념을 공적인 자리에서 지지 선언 및 전파할 경우 그 강도에 따라 불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표현한 사람의 입장이나 목적, 정황 등에 따라 다르다. 가령 관광지에서 가끔 보이는 입장자 명단 종교 기입란에 누가 '무신론자' 또는 '종교 없음'이라고 써놓아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대학에서 어느 정도 교양 있는 학생들끼리 토론할 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신은 없는 것 같아" 정도의 발언을 해도 대개는 (열성 신자가 욕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다.그러나 예를 들어 대민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공적 연설에서 무신론자임을 밝히고 무신론에 따른 주장을 전개하면 정말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무신론자 및 불가지론자 커뮤니티는 주로 온라인으로만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대개 오프라인에서는 성향을 숨기는 편이나, 아주 친해서 믿을 만한 친구 또는 외국인과의 대화에서는 스스럼없이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종교인은 편의상 속해 있는 민족 커뮤니티의 주류 종교, 가령 순다인이라면 이슬람, 중국계면 기독교 또는 불교, 발리인이라면 힌두교 등을 공식적으로는 택하고 있다.
종종 인도네시아에서 무신론자와 혼동되는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의 경우, 공식적으로 종교를 포기한다고 선언하지 않는 경우라면, 압두라만 와힛 대통령이 1999년에 공산주의 이념 관련 논의의 자유화를 제안한 이후 현대 인도네시아에서 해당 사상의 지지 및 공적 표명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도 인도네시아식 사회주의로서 '마르하엔주의'(Marhaenisme)를 제창하기도 했다. 학자나 사회운동가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연구서를 낼 수 있으며《자본론》 등 관련 서적의 인도네시아어판은 자유롭게 구해 읽을 수 있다. 지지 선언을 하는 것도 자유이다. 단, 인도네시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반공 정서가 오늘날까지도 강한 편이므로 학계나 이념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밖에서 공산주의자임을 공표하면 경원시당할 수 있다.
한편, 무신론에 대한 논의 자체가 인도네시아에서 완전히 금기시되는 것은 아니다. 무신론에 대한 해외 학술서나 대중서 번역 출판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대표적인 대중적 신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의《만들어진 신》(2014년 번역)[22], 샘 해리스의 《종교의 종말》(2007년 번역) 등을 비롯해 다양한 무신론, 불가지론 관련 서적들은 인도네시아어로 번역되어 있고, 절판 상태만 아니라면 자유롭게 구해 읽을 수 있으며 무신론 관련 외국어 서적을 구해 읽는 것 역시 자유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무신론자 커뮤니티는 이러한 서적 및 인터넷에 퍼져 있는 각종 정보로부터 자료를 수집 및 생산하며 활동하고 있다.
1.6. 미인정 소수 종교
무종교가 아니고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경우, 무신론처럼 신앙의 공적 표명 및 신앙 활동이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해당 신앙의 지위가 공식 종교처럼 공적으로 보장되고 보호받는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인도네시아에는 지역마다 공식 주류 종교 외 민족별 전통 종교가 있는 경우가 많다. 잘 알려진 것들만 예를 들어도 숨바섬의 마라푸(Marapu), 카로바탁인의 프므나(Pemena), 바탁인의 말림(Malim), 토라자인의 알룩 토 돌로(Aluk To Dolo, '선조의 길'), 다약인의 카하링안(Kaharingan)이 있으며, 서뉴기니의 토착 애니미즘, 토테미즘 계열 전통 종교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이러한 전통 종교의 신봉자들은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공식 종교 중 하나를 명목상 택해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알룩 토 돌로의 경우 공식적으로 힌두교의 새로운 분파로 인정받는 데 성공하였는데, 이처럼 역으로 자신의 종교가 기존 공식 종교의 분파임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여 기존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주류로 편입되는 경우도 있다. 카하링안도 국가적으로는 민속 힌두교의 일종으로 취급하여 카하링안을 따르는 다약인이 힌두교도로 집계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슬람교에서 유래한 사삭인의 전통 종교 웨투 틀루(Wetu Telu) 신봉자의 경우 이슬람교도로 자처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시아파처럼 이단 취급을 두려워하여 타지에서는 정체성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
2017년부터 인도네시아 토착민의 전통 종교가 법적으로 인정됨에 따라 신분증에 기재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더 이상 주류 종교 중 하나로 정체성을 위장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그렇다는 것뿐이며, 여전히 전통 종교 신봉자가 주류 종교 신봉자로 위장하는 경우도 많다.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외래 종교의 신봉자들도 있다. 이들 역시 불법은 아니지만, 경우마다 그 대우가 천차만별이다.
시크교의 경우, 신봉자들은 인도네시아에서는 큰 저항 없이 공식적으로는 힌두교의 분파로 주민 등록하고 있다. 미인정 외래 종교 중에서는 처우가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 많지는 않지만 여러 시크교도가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별다른 차별 없이 인정받고 활동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시크교도 협회도 공식 활동 및 종교 간 교류 활동을 활발히 수행 중이다.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인도네시아 육상 선수 구르남 싱(Gurnam Singh)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자유롭게 시크교 신앙을 드러냈다.
유대교의 경우, 주로 신봉자들은 기독교도로 주민 등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슬람교도로 등록하는 경우도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유대교는 상당한 수준으로 사회적으로 혐오받는 종교이다. 가령 와힛 재단이 2017년에 수행한 조사 결과를 참조하라. 같은 처지에 처한 시아파, 개신교, 가톨릭 신자들도 유대교를 혐오할 정도다.
유대교도는 주류 사회에서 신앙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유대교도 공동체는 비공식 시나고그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공개적으로 시나고그를 운영하는 경우도 조금 있었지만, 자바섬의 몇 안 되는 공식 시나고그였던 수라바야 회당은 2008-2009년 가자 전쟁으로 인한 이슬람 강경파의 시위로 폐쇄되었다. 2020년 현재 인도네시아의 유일한 공식 시나고그는 기독교 주류 지역인 술라웨시우타라주 톤다노(Tondano)에 있다.
인도네시아 유대인들의 조상은 크게 인도네시아와 중동 국가의 교류 과정에서 건너온 미즈라힘이나 페르시아계 유대인, 인도네시아와 인도의 교류 과정에서 건너온 인도계 유대인, 네덜란드령 동인도 시절에 이주해온 네덜란드계 유대인으로 나누어지지만 이들의 후손들 모두 토착 인도네시아인들과의 잦은 혼혈로 인해 전형적인 인도네시아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바하이교의 경우, 신봉자들은 이슬람교도로 주민 등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대의 바하이교도는 시아파 등 비주류 이슬람교도처럼 사회적 차별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인도네시아에서 바하이교의 역사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되며 1950년대에 이란인 바하이교도 의사들이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여 바하이교를 전파하며 약간 교세가 늘었고, 1957년에 동남아시아 바하이교도 협회는 자카르타에 본부를 두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바하이교도는 수카르노의 정치 노선과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수카르노 정부와 점차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카르노 정부는 1962년, "인도네시아의 사회주의와 사회 도덕에 반한다"는 명분으로 대통령령(제264호/1962)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바하이교의 활동을 금지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후 2000년에 압두라만 와힛 대통령이 다시 합법화할 때까지 바하이교는 인도네시아에서 공식적으로 신앙 활동이 불법인 종교였다.
인도네시아에는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가 섞인 가타파르(Gatafar)라는 새로운 종교를 믿는 신도가 1,000여명에 이르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탄압을 받고 있다.#
1.7. 종교와 결혼
인도네시아 법률상 종교가 다른 두 사람은 결혼하기 어렵다[23]. 신랑 또는 신부 둘 중 한 명이 개종을 하면 결혼이 가능하다.사실 법적으로 "개종"이 필요하다고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혼은 결혼 당사자들이 속한 종교의 규율에 따라서 이루어져야만 합법적"(제2조 제1항)이라고 규정한 1974년 결혼법이다. 이에 따라 합법적 결혼을 위해서는 종교적 인정[24]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상이한 종교를 가진 배우자를 인정해달라고 성직자한테 호소해 승인을 얻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절차적 간소화를 위해 그냥 한쪽이 개종해버리는 것이다.
'안디 보니(Andy Vony) 대 인도네시아 공화국' 재판(1989)이라는 사례가 있는데, 무슬림 안디 보니(여)는 개신교도 남편과 결혼식을 올린 후 무슬림 간 결혼 시처럼 종교 사무 관청(KUA, Kantor Urusan Agama)에 등록하러 갔다 거절당했고, 일반민사관청 KCS(Kantor Catatan Sipil)에도 등록하러 갔지만 종교적 승인이 없어 거절당했다. 결국 안디 보니는 자카르타 지방법원에 이상의 두 관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결혼법 해석에 따라 패소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인도네시아 대법원에 지방법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는데, 마침내 여기서 승소하여 결혼을 인정받고 KCS가 사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1989년 1월 20일). 이 판례가 있으므로 현재도 성직자들이 승인을 계속 거부할 시 소송을 걸면 이종교 간 결혼이 가능하기는 하다.(양승윤, 인도네시아, 121-126쪽.)
[1] 다만 이를 엄격하게 단속하거나 외국인들에게까지 같은 잣대를 들이밀지는 않아서, 공직을 가지거나 무언가 비난받을 거리가 생겼을 때 더 욕먹을 요소로 까발려진 상황 등이 아니라면 그렇게 문제삼지는 않는다고 한다.[2] 2017년 11월 8일에 정부에서 공식 종교로 인정하기로 결정하였다. #[3] 대부분 1953년 공휴일 지정. 일부는 1962년부터 1967년까지 잠시 평일이었다.[4] 1983년 공휴일 지정.[5] 1983년 공휴일 지정.[6] 1953년 공휴일 지정.[7] 인도네시아에서는 성금요일만 부활절 공휴일이다. 어차피 부활절 당일은 일요일이지만 말이다. 성금요일은 1962년 제외되었다가 1971년 다시 공휴일로 복귀하였고 부활절 당일은 2024년 공휴일이 되었다.[8] 부활 제6주 목요일. 보통 5월에 온다. 1962년 제외되었다가 1968년 다시 공휴일로 복귀하였다.[9] 퇴마사 내지는 퇴마를 주로 하는 무당이다.[10] 저주를 주로 하는 흑마술사들이다.[11] 국가 제도가 이슬람 관습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일부 국가는 금요일을 주말에 넣어 주말이 금, 토 또는 목, 금이 되기도 한다.[12] 단, 이조차도 '자바보다는' 조금 일찍 히잡을 쓰기 시작했다는 정도이지, 이슬람화와 동시에 히잡 착용이 퍼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낭카바우 지역에도 이르게 잡아 19세기 후반에 히잡이 조금씩 퍼진 정도이고, 아체의 경우는 19세기 말(1880년대 및 1890년대)까지도 아체 여성들의 사진에서 전형적인 히잡을 쓴 경우가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여성이 머리를 가린 사진은 조금 있지만, 행사의 예복이거나 남녀가 함께 일하는 자리에서 성별 무관하게 착용하는 작업복인 경우가 많았다.[13] 사실 그런거 알 리가 없는 한국인 입장에서도 어느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일단 말레이 출신 무슬림의 히잡은 거의 검은색이다. 새하얀 색이거나 화려한 색깔이면 인도네시아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여성은 히잡을 둘러야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해줄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덕적, 양심적인 이유로 히잡을 착용하는 다른 나라의 무슬림들과는 약간 엇나간 이유이며 이가 히잡 패션에 어느정도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14] "Brothers charged for alleged honor killing of sister in South Sulawesi," The Jakarta Post, 2020년 5월 12일.[15] "Indonesia Records Its First Honor Killing," The Diplomat, 2020년 6월 3일.[16] "Female genital cutting common in Indonesia, offered as part of child delivery by birth clinics," The Conversation, 2016년 2월 16일.[17] UNICEF, "Indonesia: Statistical profile on female genital mutilation/cutting," 2016년 2월.[18] https://id.wikipedia.org/wiki/Pemotongan_kelamin_perempuan_di_Indonesia[19] 서티모르가 있는 지역[20] 말루쿠 주의 경우 거의 무슬림과 기독교도(개신교+가톨릭) 비율이 1:1에 가깝다[21] 출처[22] 2020년 현재 절판 상태이나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리처드 도킨스 재단 측에서 아랍어, 페르시아어, 우르두어와 함께 인도네시아어판 번역본을 무료로 배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23] 가톨릭-개신교 신자 간 결혼 정도만이 예외적으로 비교적 쉽다. 같은 종교이고 교파만 다르기 때문에 동일 종교라고 해서 쉬운 것이다.[24] 되도록 성직자나 종교 사무 관련 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