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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 한국어 | 에페수스 | |
튀르키예어 | Efes | ||
영어 | Ephesus | ||
프랑스어 | Éphèse | ||
국가·위치 | [[튀르키예| ]][[틀:국기| ]][[틀:국기| ]] 이즈미르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1018 | ||
등재연도 | 2015년 | ||
등재기준 | (ⅲ)[1], (ⅳ)[2], (ⅵ)[3] | }}} |
출처: 위키피디아
Selçuk. [4]
1. 개요
셀축-에페수스 관광지도
튀르키예 서남쪽 끝에 자리한 중간규모의 도시로 서쪽에 휴양 해안 도시인 쿠샤다스(Kuşadası), 남쪽에도 휴양 해안 도시인 마르마리스(Marmaris), 북쪽에는 튀르키예 제3의 도시인 이즈미르, 동쪽에는 데니즐리(파묵칼레)가 있다. 이즈미르/데니즐리에서 오는 경우는 기차를, 나머지는 버스를 타고 접근할 수 있다. 참고로 이즈미르에서 셀축을 지나 데니즐리까지 운행하는 철도는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최초로 놓인 철도이다. 오스만 제국 기준으로 하면 두 번째 철도이기도 하다. 셀주크라고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발음이다.[5]
2. 에페소스
주요 부분 전경
유명한 켈수스 도서관
극장 유적
그리스어: Έφεσος(에페소스)
라틴어: Ephesus(에페수스)
튀르키예어: Efes(에페스)
한국어 번역 성경에서 말하는 에페소 또는 에베소[6]가 이곳이다. 고대에는 '에페소스'라고 불렸으나 현재는 튀르키예어로 '에페스'라 불린다. 셀축에 오는 사람들의 99%는 에페소스 유적지를 보기 위함이고 나머지는 곁다리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장료는 700리라(2023년 9월). 셀축에서는 오토가르에 있는 돌무쉬(20리라)를 타고 5~10분가량(3 km) 이동한다. 입장료 가격은 내부에 있는 옛 터전까지 포함하거나 박물관을 포함하는지 유무에 따라 다르다. 입구는 북쪽과 남쪽 두 곳에 있는데 돌무쉬는 남쪽에 서므로, 개인이 방문하면 주로 남쪽에서 걸어 올라갔다가 회귀하는 방향으로, 단체로 오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며 통과하는 방향으로 관람한다. 다시 같은 입구로 되돌아와도 상관없지만 유적지가 크고 딱히 어느 방향부터 시작하든 큰 상관이 없기 때문에 개인들의 사정에 맞춰 동선을 짜면 될 듯하다. 나중에 지어진 교회와 그리스/로마 시절의 도서관, 원형극장, 신전터, 주택들, 공공 화장실 등을 구경할 수 있다. 2015년에 디야르바크르 성벽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여담이지만 튀르키예에서 인기리에 팔리는 맥주 '에페스'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근데 정작 이름만 따왔지 생산은 전혀 여기서 안 한다. 한국에 수입되는 제품을 잘 보면 공장 등 제조시설이 이스탄불에 있다고 명기되었다.
여름에 이곳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오전 중에 관람을 마치기를 추천한다. 그늘이 없거니와 지중해 기후 특유의 살인적인 땡볕에 대리석 바닥들이 달궈져서(...) 슬리퍼나 샌들 따위로 걸어다니면 발바닥이 실시간으로 구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 유튜버의 에페소스 풀영상
3. 주요 유적지
- 성모 마리아의 집
Ana Meryem Evi.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기 전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집이다. 요한 복음 19장의 내용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숨을 거두기 직전에 제일 사랑했던 제자, 즉 사도 요한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였으므로 그날부터 요한은 성모 마리아를 모셨다고 한다. 성경 외의 다른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말년을 에페소스에서 보냈으므로 성모 마리아도 역시 에페소스에 살았으리란 추측이다. 사실 성모 마리아가 승천 직전에 살았다고 주장하는 곳은 중동지역에서 이곳까지 3군데가 있다.
다른 장소들도 있는데 굳이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평생 독일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아나 카타리나 에머리크(Anna Katharina Emmerick, 1774-1824)[7]라는 수녀 때문이다. 에머리크 수녀가 꿈속에서 성모 마리아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책을 프랑스인 신부 줄리앙 구예(Julien Gouyet)가 읽고는 자신이 직접 에페소스로 찾아가 환시를 확인해보고 싶어 하였다. 그래서 1881년 에페소스에 가서 책이 묘사한 내용을 따라가 보니, 지역민들에게 튀르키예어로 파나야 카풀루(Panaya Kapulu), 즉 '동정녀의 문간'이라고 불리는 폐허가 된 옛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건물의 모습 또한 에머리크 수녀의 환시와 일치했다고.... 참고로 발견 당시에도 현지의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이 매년 8월 15일(성모 승천 대축일)마다 와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구예 신부의 발견은 별 호응이 없었다.
이후 마리 드 망다그랑세(Marie de Mandat-Grancey)라는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소속 프랑스 수녀가 선교차 튀르키예로 파견되어 이즈미르(İzmir)시에 있던 프랑스 병원의 장상이 되었는데, 1891년 식사 중에 에머리크 수녀의 책을 읽고는 환시가 묘사한 '성모 마리아의 집'을 찾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 알고 지내던 선교수도회(라자로회/빈첸시오회)[8] 소속 프랑스인 선교사제 두 명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두 프랑스인 신부들은 에머리크 수녀의 환시 내용을 따라 에페소스 지역을 찾아다니다가, 10년 전 구예 신부와 마찬가지로 '파나야 카풀루'에 이르렀다. 신부들은 파나야 카풀루가 주변 지역민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곳임을 확인하고는 망다그랑세 수녀에게 위치를 알려주었고, 망다그랑세는 1915년에 사망할 때까지 해당 건물과 주변 땅을 사들이고 복원하며 관리하고자 노력하였다.
셀축에서 가장 먼 위치에 있는 관광지로, 대중교통으로는 접근할 수 없고 택시를 타거나 렌터카를 끌고 가야 한다.아니면 히치하이킹이라도.그리스도교 관련 유적이 많은 에페소스 특성상 (특히 겨울철 그날에) 교회에서 온 단체손님들로 북적인다. 그야말로 성지순례급. 특히, 바티칸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져서이기도 한데, 바티칸에서는 이곳을 성모 마리아가 거주했던 곳이라고 공식 인정을 한 적이 없다. 다만 역대 교황 몇몇이 이곳에 성지라는 칭호를 인정하고 성모공경 차원에서 방문했는데, 이 내용이 잘못 알려진 것.[9] 그리스 정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를 제외한 나머지 동방정교회들이나 개신교 원리주의자들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 성지여행 책자에선 시나이산과 같이 자주 언급하는 성지이다. 헌데, 재미있는 건 정교회나 개신교 신자가 아닌 보통 튀르키예인들과 무슬림들도 와서 이곳에서 소원을 빌고 간다는 점이다. 이슬람교에서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낳은 어머니로 공경받으므로 무슬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인데, 성모 마리아의 집 주변에 자라는 나무들을 보면 튀르키예인들이 소원을 적어서 묶어놓은 종이조각들이 휘날린다. 성지이기 때문에 매일매일 미사가 있으며, 이곳에서 여러 나라 언어로 진행되는 미사에 참례해봄도 뜻깊은 경험이 될 것이다.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도 기념미사를 봉헌하는데 가톨릭뿐만 아니라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정교회 등에서도 함께한다. 성모 마리아의 집 뒷편에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이 있으며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성지를 관리하고 있다. 만약에 이곳을 순례할 계획이 있다면 셀축 시내에 위치한 아베마리아 호텔이나 에페소 평화관상 기도의 집에 연락을 하면 차량을 구하기 쉽다. 아베마리아 호텔은 프란치스코회 수사였다가 환속한 튀르키예인이 운영하는 호텔이고, 에페소 평화관상 기도의 집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제인 한국인 신부가 피정객을 대상으로 운영한다.
- 성 요한 성당 유적
Aziz Yahya Kilisesi
시내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보인다. 성당 터의 중앙 부분에는 제대가 있었던 자리와 세례용 욕조가 있다. 튀르키예어로 "St.Jean'ın mezarı"라고 씐 대리석으로 장식된 판석이 있는데, 그곳이 사도 요한의 무덤이다. 이 때문에 사도 요한의 축일이 되면 순례객들이 몰린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 건립된 성당이었으나 13세기에 대지진으로 건물이 거의 다 무너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튀르크 국가인 아이든국이 이 지역을 점령해버리는 바람에 복원되지 못했다. 잔해 중 일부는 성 요한의 교회 바로 밑에 세워진 이사베이 모스크(İsabey camii)를 건설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입장료는 2023년 5월 기준으로 100리라이며 뮈제카르트가 있으면 무료로 통과할 수 있다.
셀축에 가장자리쯤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있고, 셀축에서 야경으로 볼 만한 유일한 관광지이나, 여름을 제외하고는 조명을 켤지 끌지는 당국 맘대로라 운빨이 조금 따라줘야 한다. 뒷편에 아야술룩 성(Ayasuluk Kalesi)이 있는데, 셀축 어디에서든 잘 보이는 성채이다.
- 잠자는 7인의 동굴
Yedi Uyuyanlar Mağarası
에페소의 7인의 잠든 자 항목 참조
- 켈수스 도서관
에페소스의 켈수스 도서관 건물. 출처: 위키피디아
여담인데, 에페소스의 대표인 위 셀축 도서관은 세트장처럼 벽에다가 붙여놓은 형태로 되어 있다. 그리스 출신으로서 로마 원로원의 의원이 된 켈수스라는 사람이 서기 117년에 기증하여 세워졌다. 하지만 3세기에 지진과 고트족의 침공으로 파손되었고 결정적으로 10~11세기에 일어난 지진으로 현재처럼 뼈대만 남았다.
- 쉬린제 마을
Şirince Köyü
에페소스와 반대방향으로 8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마을. 원래는 '못생긴 마을'이라고 불리는 상당히 작은 마을이었는데, 어떤 술탄이 이곳을 지나가면서 아름다운데 왜 '못생긴 마을'이냐며 의아해하여 '예뻐졌다'는 뜻으로 지금 명칭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의 쉬린제는 그냥 수공업 전시장. 와인과 잼, 직물과 도자기와 같은 수제품을 특산품으로 길거리에 내놓고 관광객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사프란볼루의 마이너 버전이니 사프란볼루를 통해 왔다면 굳이 갈 필요는 없다. 과거에 이 지역에는 튀르키예 독립 전쟁 이전까지 그리스인들이 살았는데, 때문에 마을 곳곳에 그리스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사실 현재도 이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 또한 그리스계지만 무슬림이라 (혹은 무슬림으로 위장해) 인구교환에 해당되지 않은 주민들의 후손들이다.
- 에페소스 박물관
Efes Müzesi
에페소스에서 발굴한 것을 모아놓은 전시관으로 입장료는 10리라(2017년 2월). 말 그대로 에페소스에서 발굴한 조각이나 유물들을 모아다가 전시하는데, 메인인 에페소스 사적지만 한 감동도 없고, 규모도 별로 크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박물관에 비해 액션요소(?)를 추가하여 약간 더 공을 들인 분위기다. 민속공예전시관이 야외 방향으로 붙어 있는데, 통합요금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이곳에 유명한 아르테미스 신상이 두 점 전시되어 있는데, 헬레니즘 특유의 인간적인 분위기보다는 고대 근동의 신상을 연상케 할 만큼 크고 웅장하고, 위압적인 포스를 뿜는다.
- 아르테미스 신전 터
Artemis Tapınağı
신전의 유적 |
복원모형 |
역시 한국에서 순례객들이 많이 찾는 곳답게 신전터에서 도로 건너에 한식당도 있다[11]. 사장님 말로는 단체 관광객들이 많은 에페소에서 그런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상대로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신라면과 같은 한국 라면도 맛볼 수 있고, 김치찌개와 파전 맛이 그래도 일품이니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운 사람들은 방문해봐도 좋을 듯하다. 2023년 9월 기준, 현지 물가가 폭발적으로 올라 김밥 한 줄에 15달러, 김치찌개 백반 15달러, 신라면 15달러이다… 에페소 오토가르에서 에페소 시장 쪽으로 가는 길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성 루카의 옛 무덤
에페소의 뒷 출입구로 나와서 (나올 때 다시 에페소로 들어갈 수 있는 손 도장을 관리인에게 받을 수 있다) 길 건너편을 보면 작은 원형 건물의 터가 있고, 철조망 앞에 영어와 한글로 "루가 성인의 묫자리였던 곳"이라는 팻말과 설명이 있다. 한글 게시판은 개신교에서 돈을 들여서 세운 건지 "누가의 묘"라고 쓰였다. 에페소 구경 후 여기서 택시를 타고 성모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가 다시 셀축으로 돌아와서 나머지 셀축 구경을 하면 된다.
4. 방문 팁
1. 셀축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단연 꼬치구이인 쉬쉬케밥. 싸면 6~8리라 혹은 꼬치당 1.5~2리라, 비싸면 12~20리라 정도에 판매되고 있으니 꼭 먹어보자. 그리스에서 넘어오거나 넘어갈 예정이라면 수블라키와 비교해 보는 것도 묘미. 여담이나 "에베소"라고 이스탄불 이외의 튀르키예에선 매우 드문 한식당도 있긴 한데 가격은 조금 부담가는 편이며, 단체관광객들이 주로 들르는 곳이라 한다.2. 바클라와, 로쿰을 무게별로 파는 가게들도 꼭 먹어볼 만하며 평소 진한 커피를 잘 마신다면 튀르키예 커피도 추천할 만하다. 특이하게 스타벅스에서조차 튀르키예 커피를 판매하는데 경쟁 때문인지 값도 다른 커피에 비해 낮은 데다가 주문하면 생수 한 병도 같이 준다.
3. 만일 튀르키예를 반시계로 도는 경로라면 셀축을 정말 빡세게 돌고 파묵칼레에서 휴양하는 경로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파묵칼레의 숙박비가 많이 저렴한 편이기 때문.
4. 이곳에서 쿠샤다스를 통해 페리를 탈 경우(쿠샤다스 - 사모스 섬), 무조건 1박 묵은 다음 이른 아침에 일어나 움직이거나 아예 쿠샤다스에 숙박을 잡는 것이 편하다. 아침 8시 30에 딱 1편, 그것도 성수기에만 페리가 운항하기 때문.[12] 공항을 이용할 경우는 기차 타고 이즈미르 공항으로 가면 된다.
5. 이즈미르까지 올라가서 페리를 타면 2가지 경로를 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것, 다른 하나는 그리스의 히오스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이즈미르를 참고하자.
6. 로도스에서 마르마리스를 경유해서 오는 경우 하절기는 배 편수가 많으나 동절기에 있는 배를 타고 마르마리스 오토가르에 가면 아이든에서 돌무쉬로 갈아타고 가는 것을 추천해준다. 하지만 아이든에 도착하면 돌무쉬 막차는 바이바이. 그래서 차라리 애매한 시간대에 도착했다면 아이든이 아니라 쿠샤다스나 이즈미르로 가는 편이 낫다. 이즈미르에서는
7. 만약에 아이든에서 돌무쉬는 끊겼고, 튀르키예어는 조금 할 줄 안다면 최후의 희망이 있다. 아이든에서 이즈미르, 쿠샤다스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수소문해서 - 쿠샤다스도 작은 도시는 아니라 적어도 1-2시간마다 버스 한 대씩은 꼭 있다! - 버스를 잡아 탄 다음에 셀축 근처에서 내려달라고 하자. 아이든에서 이즈미르나 쿠샤다스로 가려면 반드시 셀축을 지나야 한다. 단 셀축 오토가르까진 안 가고 보통은 셀축과 에페스, 쿠샤다스, 이즈미르 방면 국도 사거리나, 정말로 운이 좋다면 셀축 오토가르, 아고라 레스토랑, 국립병원 앞 사거리에 내려줄 것이다. 거기서부터 걸어가거나, 만약에 숙소를 예약해 놓았다면 숙소 주인에게 연락해 픽업을 부탁하거나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면 된다. 특히 가지안테프, 디야르바크르, 반 등 동부에서 오는 버스들은 자정이나 늦은 새벽쯤에 반드시 아이든을 들르거나 지난다.
[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다른 기준과 함께 적용 권장)[4] 현재의 이름인 셀축은 1913년에 민족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변경된 것으로 과거의 지명은 아야 술룩(Aya Suluk)이었다. 현재도 셀축 곳곳에서 이 지명을 볼 수 있다.[5] 과거 이 항목에는 셀주크가 페르시아어라 되어있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Selçuk은 투르크어 Seljuk의 튀르키예식 사투리이며, Seljuk은 표기법상 셀주크라 표기하는 것이 옳다 (다만 중앙아시아 관련 학계나 튀르키예 관련 학계에서는 셀죽이라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투르크어 Seljuk의 페르시아어/아랍어식 표기는 SLJWQ이며, 살주크라 읽는다. 서구 학계에서 Seljuk(셀주크 제국의 그 셀주크)을 Saljuq, Seljuq, Saldjuq, Seldjuq라 표기하는 것은 페르시아어/아랍어 표기의 영향이다. 최근에는 대체로 Seljuk이라 표기하며, 튀르키예 출신이거나 튀르키예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가끔 Selçuk을 사용한다.[6] 공동번역성서(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및 가톨릭(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 기준.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개역성경에서는 '에베소'라 옮겼다. 여담이지만 이탈리아어로도 에페소(Efeso)라고 표기한다.[7] 한국어 위키피디아에는 '안나 카타리나 엠머릭'이라고 항목이 있지만, 여기서는 독일어 표기법을 따랐다.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녀였는데 환시자로서 생전에 유명했다. 200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복녀로 시복했다.[8] 라틴어 명칭은 Congregatio Missionis. 이름 때문에 '선교활동을 하는 수도회' 전체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처럼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성 빈첸시오 드 바오로가 세운 수도회의 이름이다.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와는 같은 창설자가 세운 형제 같은 관계.[9] 비슷한 예로,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메주고리예 지역 성모 발현도 바티칸에서 공식 인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성모 공경 차원에서 그곳을 방문하는 것을 막지 않는 것과 같다.[10] 2015년 기준으로는 큰 기둥 1개, 그리고 반쪽짜리 기둥 1개밖에 없다.[11] 2023년 기준[12] 성수기는 보통 10월까지. 9시에 출발했다. 셀축에서 갈 경우 돌무쉬 8리라. 쿠샤다시에서 항구까지 5번 버스를 타면 된다. 3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