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2 22:30:12

데나리우스

데나리온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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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데나리우스, 밑은 하프 데나리우스(퀴나리우스)이다.

1. 개요2. 데나리우스란?3. 현재4. 가치
4.1. 로마 화폐 기준4.2. 그리스 화폐 기준4.3. 가격 비교

1. 개요

데나리우스(Denarius)[1]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화폐개혁으로 폐지될 때까지 약 400년간 로마의 은화 중 하나였다. 복수형은 데나리(Denarii)이다. 데나리우스는 황제의 이름이 아니다. 데나리우스(dēnārius)라는 단어는 라틴어 dēnī(10개씩)에서 파생되었는데, 처음 도입되었을 때에는 아스(as) 동전의 10개 값어치에 해당했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되었을 때 1데나리우스가 16아스 값어치가 되었지만 화폐의 명칭을 굳이 바꾸지는 않았다.

마태 20:2에 따르면 예수 활동 당시 일용노동자의 하루 일당이었다. 또한 요한 12:3에 따르면 당시 최고급 향수가 300데나리우스나 했다. 마가 6:37~44에 따르면 군중 약 1만 명[2]이 먹을 빵값이 200데나리온으로도 모자랐다.[3] 하지만 예수가 소년에게 받은 바구니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선보여 그만한 거금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2. 데나리우스란?

고대 그리스에서 드라크마라는 은화를 쓰자 무역을 위해 고대 로마도 은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기원이다.[4]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이던 기원전 211년 원로원이 처음 발행하였고,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황제 때 순은 100% 은화가 된 다음 네로의 개혁으로 92%로 떨어졌으나 가치는 거의 그대로였다.

트라야누스 아래에서 83%로 조정되었고, 80%대의 순도는 팍스 로마나와 맞물려 데나리우스가 제국과 그 주변에서 통용되는 과정에서 콤모두스 시대까지 꾸준히 유지됐다. 트라야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각각 파르티아 전쟁, 마르코만니 전쟁 말기에 이보다 은 순도를 10%포인트 정도 줄이기는 했으나 이는 일시조치 정도에 불과했다.

데나리우스의 은 순도가 꾸준히 하락하며 만성적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은 세베루스 왕조가 시작이었다. 다섯 황제의 해와 함께 등장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내전으로 인한 재정 고갈 만회 및 군대의 지지를 확보할 목적으로 많은 데나리우스를 발행했는데, 은이 모자라자 은 함량을 줄이고 구리 등을 섞어 무게만 유지하는 조치를 내렸을 뿐 발행량을 줄이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데나리우스의 은 순도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등장 직후부터 70%로 떨어졌으며, 세베루스 치세 말인 209, 210년부터는 45%대로, 212년 카라칼라 때부터는 40%초중반대까지 떨어진다.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즉위 후에는 데나리우스의 가치 하락을 막고자 발행마다 황제가 보고받도록 하였으며 단계적 상승을 계획해 45~50%까지 은 순도를 회복시킨다. 이는 군인 황제 시대 개막 후, 푸피에누스, 발비누스 아래에서 일명 안토니니아누스로 불리는 데나리우스의 무게를 유지하고 가치하락을 막고자 조치를 취하고, 고르디아누스 3세 때 대량으로 은화를 찍어내며 더이상의 하락을 막고자 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대의 안토니누스 역병 재유행으로 슬슬 불안해지더니 발레리아누스, 갈리에누스 부자의 상시적 방어전략으로 인한 재정 소요 증가,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전하여 황제가 포로로 잡히는 충격, 갈리에누스 시기 데나리우스를 만드는 귀금속을 관리해 온 갈리아가 갈리아 제국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데나리우스의 가치는 폭삭 무너져 은 함유량이 고작 5%에 그친 적도 있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자 화폐개혁을 통해 저품질의 데나리우스를 더이상 만들지 않도록 시도했다. 하지만 은 도금 수준의 동전까지 가치가 폭락한 데나리우스를 다시 거두어들이지 않는 이상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는 없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일명 최고가격령을 발표해 가격통제를 시도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고, 이후 데나리우스를 아예 폐지하는 대신 아르겐투스라는 은화를 만들었으나 이마저도 사실상 실패했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을 재통일한 뒤 데나리우스를 솔리두스 금화로 대체하고 나서야 상황이 진정될 수 있었다.

3. 현재

오래 쓴 화폐라서 그런지 몇몇 옛 로마의 속국 지역의 국가들은 데나리우스를 따와 자국의 화폐로 쓰고 있다. 프랑스의 옛날 동전인 데니어, 영국의 현재 동전인 페니도 데나리우스를 모티브로 만든 것이다.

북마케도니아의 화폐인 데나르(денар)도 데나리우스의 이름을 따온 것이며 아랍에서는 데나리우스의 이름을 따와 디나르(Dinar, دينار)라는 화폐가 통용되고 있다.

그리고 돈(Money)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스페인에는 디네로(dinero), 이탈리아에는 데나로(denaro), 포르투갈에는 디녜이루(dinheiro)가 있는데 전부 데나리우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4. 가치

4.1. 로마 화폐 기준

1 데나리우스 = 1/25 아우레우스(Aureus)
1 데나리우스 = 1/12.5 퀴나리우스(Quinarius)
1 데나리우스 = 4 세스테르티우스(Sestertius)
1 데나리우스 = 8 두폰디우스(Dupondius)
1 데나리우스 = 16 아스(As)
1 데나리우스 = 64 콰드란스(Quadrans)

4.2. 그리스 화폐 기준

1 데나리우스 = 1/6000 달란트(Talentum)
1 데나리우스 = 1 드라크마(Drachma)[5]
1 데나리우스 = 64 고드란트(Kodrantes)

4.3. 가격 비교

1 데나리우스 = 빵 16개[6]
1 데나리우스 = 식기 8개
2 데나리 = 3인 가족(노예 1명)의 하루 지출
7.5 데나리 = 서민의 평균 현금 보유량
4 데나리 = 튜닉 1벌
600~25000 데나리 = 노예 1명

로마 군단병 연봉 = 70 데나리우스(카이사르 이전 공화정 시대) → 140 데나리우스(카이사르의 인상 뒤) → 225 데나리우스(아우구스투스의 개혁) → 300 데나리우스(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개혁[7]) → 375 데나리우스(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개혁)
[1] 고전 그리스어로는 Δηνάριον(데나리온)[2] 성인 남자만 5천 명으로 나온다.[3] 하단의 환산표를 보면 200데나리온은 빵 3,200개였다.[4] 이 당시엔 자국에서는 거의 쓰지 않았다.[5] 마태복음에서 일당으로 주는 돈이 1 드라크마.[6] 매우 큰 빵이다. Herculaneum loaf 참조.[7]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인상은 군 복지개혁이라고 칭찬하였고, 세베루스 황제의 인상은 군과 문민의 균형을 깨트렸다고 비판하는 이중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도미티아누스 때가 세베루스 때보다 로마의 분위기가 좋아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용로그를 이용하여 계산해보면 1세기나 2세기나 평균 연봉 인상률은 0.2% 그게 그거다... 이중잣대라기보다는 그냥 일방적인 의 수준... 도미티아누스 때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때의 다른 점이 인상분을 맡겨뒀다. "전역 때에 주느냐? 바로 인상되었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복무 중 주느냐?'의 차이라고"까지 말 해놓고도 그렇게 말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