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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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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구성원
3.1. 원내 인사3.2. 원외 인사3.3. 탈당이나 의원직 상실, 혹은 자의로 계파를 탈퇴한 경우3.4. 그 외 인사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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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이후 비박계의 구심점이 된 김무성을 지지하는 세력이다. 친무라는 명칭은 김무성의 가운데 글자 ‘무(武)'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언론계나 정치인들 사이를 제외하면 그리 자주 불리는 명칭은 아니며, 오히려 인터넷상에서는 김무성의 별명인 ‘킹무성’에서 따와 김무성을 지지하는 세력을 일러 ‘친킹’이라 부르는 경우는 간간히 볼 수 있다.

다른 계파들은 대부분 '친+성씨' 형태가 일반적인데, 김무성 계파는 김씨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이기에 변별력이 떨어져 대신 이름 첫 번째 글자로 알려진 듯하다. 당장 김영삼이나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도 '친김'이란 명칭을 가지진 못했다.[1] '친김무성'도 종종 쓰인다.

새누리당 공천 파동에서 비박계 중 공천에 통과한 대부분이 친무계이다 보니 제20대 국회 내 비박계 중진 대다수가 친무이기도 했다. 이는 보수계파에서 박근혜와 무관하게 계파 수장이 될 만한 정통성을 갖춘 인물이 김무성 정도뿐이라 그런 것이기도 해서, 말이 친무지 실질적으로는 비박연합이며 언론에서의 호칭도 비박인 경우가 더 많다.

성향은 대한민국 보수에서 중도 정도로 평가받으며 중도우파 ~ 우파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대체로 친유, 친이 온건파와 친홍 강경파 사이 정도로 평가받았다.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김무성상도동계 중진이기에 온건파로 분류된다.

2. 역사

김무성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비박 진영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2014년에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이 당대표로 선출되어 당권을 잡으면서, 19대 대선 보수진영 유력후보로 등극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이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까지 선거마다 연전연승하면서, 김무성을 따르는 정치인들이 점차 많아졌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친유로 분류되는 오신환이나 범친유소장파로 분류되는 하태경제19대 국회 당시에는 친무에 속했다[2].

하지만 2015년 유승민 원내대표 사태파동과 2016년 새누리당 공천파동을 거치면서 '친무가 친박에게 상대가 안된다.'라는 인식이 보수진영 지지자들에게 퍼졌다. 특히 김무성의 옥새런 사건이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패배로 이어지면서, 대권주자로서 거론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친무 현역 의원들이 지역 기반이 탄탄했는데다, 김무성이 당시 박근혜 및 친박과 밀당을 잘 한 덕분인지, 20대 새누리당 공천파동 때도 비박계 중 기타 주요 계파들인 친박과 대립 관계였던 친이계는 파멸당하고, 박근혜에게 찍힌 유승민의 친유계도 상당히 큰 피해를 봤는 반면 친무계는 김무성의 옥새런 이전에도 박근혜와 친박 및 진박감별사들의 전횡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무난하게 공천을 받은 덕분에 적어도 친무 세력이 축소되진 않았다.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인해서 비박계가 새누리당/비상시국위원회를 결성했다. 이 과정에서 김무성은 19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비박계의 또 다른 핵심인 유승민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이끌었다.

하지만 탄핵소추 이후 비박은 새누리당 당권싸움[3]에서 패배했고, 친무는 친유와 함께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바른정당의 반기문 영입 실패 및 유승민의 오르지 않는 지지율 때문에, 친무와 친유의 갈등이 심화됐다. 결국 친무 대부분이 보수연대론을 외치면서 2017년 5월 2일에 집단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4] 그리고 대선 이후에도 친유와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결국 11월 8일 김무성까지 탈당하여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이런 이유로 친무계가 철새 집단으로 비판을 많이 받는다.

2017년 12월 김성태를 원내대표로 당선시키며 친무-친홍 연합이 사실상의 자유한국당 당권파로 부활했다. 공식적인 당권파는 홍준표친홍이지만, 당시 친홍과 친무가 완전히 한 집단으로 뭉쳐 행동을 항상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무 또한 범주류 당권파에 해당한다. 그리고 소속 의원의 숫자로 보면 친홍보다 친무계 의원이[5] 많으며 원내대표인 김성태가 친무의 핵심이기 때문에 오히려 알맹이는 친무가 뽑아먹었다는 평가까지도 있다.근데 당선 이후로는 김성태는 김무성보다도 홍준표와 맥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 당시에는 당 내에서 숫자가 비등비등한 친박/비홍비무비박/친홍-친무 세력이 대립하고 있는데다 홍준표와 김무성 모두 당 내 친박 청산 및 보수통합을 추진하고 있어 친홍, 친무 모두 아직까지는 서로 같은 배를 타고 연합한 상태로 있으며, 대립각은 보이지 않고 있다.

2018년 12월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가 인적청산으로 지목한 당사자 21명 중에서 복당파 의원도 어느정도 포함되었다. 그 중 친무계는 김무성, 홍문표, 권성동, 황영철, 이은재 5명으로 이은재를 빼면 3선 이상의 중진들이다. 김무성 전 대표가 애초에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감안하면, 21대 국회에서 친무계는 캐스팅보트로의 역할 외에는 수행하기는 어려울 정도로 약화되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뒤집고 호남 험지 출마도 불사하겠다는 의견을 내면서, 그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고 당 내 중직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김무성이 여론조사나 의원 조사에 이름도 올리지 않는 것을 보면 당내 대선이나 대표 경선에 나가도 홍준표, 유승민원희룡 등 다른 대권주자들에게 밀려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21대 총선 결과 당선된 친무는 홍문표, 박성중, 권성동, 황보승희 정도이며 홍준표가 원내에 복귀하고 비박계 인사들이 당선이 되면서 비박계인 친유, 남원정, 소장파, 친이, 친홍과 동맹을 맺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쇠퇴한 계파임에도 불구하고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2021년 재보궐선거 정국에선 단일화 과정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의사에 반하며 비대위 체제에 대립각을 세웠으나, 결과적으로 비대위의 구상대로 단일화가 이뤄지고 또 비대위가 성공하며 당내 구심력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박형준에 대한 비판을 하고 오세훈 대신 안철수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홍준표, 친홍과 달리 친무에서는 박형준, 오세훈 그리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황보승희가 있었다.

그리고 친무는 마포포럼 등의 의원 조직 활동과 후보자에 대한 강연장과 공론장을 제공하며 의견 플랫폼을 성공적으로 창출했고, 김무성과 협력하는 관계인 친유가 주류파로 입지가 상승하면서 친무의 입지 역시 같이 상승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당내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의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터진 포항 가짜 수산업자 사기 사건에 김무성이 연루되어 수사를 받게 됨에 따라 계파 존속에 위기가 찾아온 상황이다. 특히 대선 정국에서 김무성이 직접 대권에 나서지도 못하고, 킹메이커가 되기도 애매한 것도 문제이다. 그리고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친윤 - 친홍 - 친유 간 3파전으로 가게 되면서 김무성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2022년으로 가면서 계파 자체가 사실상 소멸되었으며 21대 국회에 현역의원으로 남아있던 홍문표 의원은 22대 총선 불출마, 황보승희, 박성중 의원은 각각 자유통일당 비례대표와 경기 부천시 을로 옮겨 도전했으나 낙선하면서 22대 국회 내에서도 친무 성향의 현역의원은 한명도 없다. 소멸 시점에서는 친무 출신은 100% 국민의힘 소속이라고 볼 수 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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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성원

3.1. 원내 인사

22대 국회 내에서는 순수 친무성향의 현역의원은 한명도 없다.

3.2. 원외 인사

  • 박성중 (서울 서초구 을 전 국회의원)
    초선 의원 당시에 바른정당에 합류하고 대다수의 친무가 탈당할때 같이 탈당했으며,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서초구 을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경기 부천시 을로 옮겨 도전했지만 더불어민주당 김기표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2016년 12월 27일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을 창당했으나 2017년 5월 2일 다른 비유승민계 의원들[7]과 함께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했다. # 그리고 10일만인 5월 12일, 동반 탈당한 11명의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과 함께 복당 절차가 완료되었으며,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 후보로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 홍성군·예산군에 도전하여 당선됐지만 2024년 22대 총선에는 고령으로 인해 불출마하면서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 김을동 (송파구 병 전 국회의원)
    원래는 전형적인 친박 인사로 꼽혔으나 19대 의원 시절 박근혜의 실정과 독단적인 성격을 보고 박근혜와 결별 후 친무계로 전향했다. 실제로 김무성과 같이 바른정당에 합류했다가 2017년 11월경에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유승민과는 상당히 친했다. 유승민한테 다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타 친무계보다 자유한국당 복당 시기가 다소 늦었다.

3.3. 탈당이나 의원직 상실, 혹은 자의로 계파를 탈퇴한 경우

3.4. 그 외 인사

  •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
신한국당 공채 출신 당직자였으며, 김무성의 보좌관을 지냈다.

4. 관련 문서


[1] 각각 거주지를 딴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로 분류되었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청구동계를 썼다.[2] 하태경오신환이 당시 친무로 분류된 덕분인지 상대적 무난하게 공천을 받은 듯 하다. 사실상 하태경, 오신환 이 두 명이 구 친무계였다는 걸 감안해도 친무 출신 중 끝까지 끝까지 바른정당 - 바른미래당 - 새로운보수당 -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 당적을 유지한 유이한 경우이다. 복당을 고려했던 적이 있던 정운천의 경우 친이로 더 많이 분류되는데다 지역구가 호남인데, 호남 지역구의 민심을 감안하면 당시 자유한국당으로는 해당 지역에서 절대 재선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결국 자유한국당 복당을 철회하고 범친유계로 전향한 것으로 보인다.[3] 정확히는 원내대표 - 정책위의장 선거였는데, 비박에서 내세운 나경원 - 김세연 조가 친박이 내세운 정우택 - 이현재한테 깨졌다.[4] 정작 김무성은 당시에 탈당하지 않고 바른정당에 남아있었다. 썰전에 따르면 아랫 애들이 먼저 가고 보스를 부르면 마지 못해 보스가 가는 식을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5] 친홍은 10명 안팎에 그마저도 초선의원 비율이 높고 홍준표도 원외 당대표였지만, 친무는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친무계만 해도 20명쯤 되며 좌장인 김무성 본인도 원내에 있었으며 현재 비박계 중 재선 이상의 다선 의원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친무-범친무 라인이다.[6] 바른정당 탈당 사태 때 대다수 친무계가 탈당했고 바른미래당에 극히 일부가 합류했으며 친유를 따라간 일부 친무 또한 새로운보수당을 거쳐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에 합류했다.[7] 장제원, 박성중, 여상규, 박순자, 이진복, 이군현, 김성태, 김재경, 김학용, 권성동, 홍일표 의원.[8] 군위군, 문경시, 봉화군, 상주시, 안동시, 영덕군, 영양군, 영주시, 예천군, 의성군, 청송군[9]친유소장파김상훈 의원도 이와 같은 케이스이다. 같은 대구 내 지역구 기반이 강한 유승민, 주호영과 달리 대구 서구의 강한 보수 성향으로 인해 바른정당에 합류하지 못한 케이스이다.[10] 지금은 김성태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했지만 당시에는 친박 3인방 이완영, 이만희, 최교일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 꽤 긍정적인 평을 들었다.[11] 원래 이언주가 노리던 것을 김무성곽규택, 황보승희 경선을 요구하며 견제하였다. 결국 이언주는 옮긴 부산 남구 을에서 낙선하고, 황보승희는 당선되었다.[12] 물론 21대 총선 지역구 획정안에 대해서는 갈등을 벌이기도 했다.[13] 전재수박민식은 사적으로는 가까운 관계이다. 보통 선거하다 보면 상대 후보와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지만 박민식은 예외적인 사례이다. 실재로 박민식은 패배하고 나서 전재수의 당선을 축하해주었다.[14] 이 사태가 다른 수도권 선거구 미래통합당 후보들에도 큰 피해를 입혔지만, 특히 단원고등학교가 있는 안산시 단원구 을에서 출마한 박순자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혔다.[15] 낙선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인한 탄핵정국 당시 친박으로 전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