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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치개혁당| 신정치개혁당 ]](신설 합당)[1] | → | (개별 합류)[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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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 |
<colcolor=#3D9069> 한문 명칭 | <colbgcolor=#fff>新民黨 |
등록번호 | 제64호 |
등록연월일 | 1994년 7월 8일 |
말소연월일 | 1995년 5월 31일 (자유민주연합으로 신설합당)[3] |
통합한 정당 | · [[신정치개혁당| 신정치개혁당 ]] |
중앙당사 |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8길 18 (여의도동 15-11, 금영빌딩) | |
대표 | 김복동 |
원내총무 | 한영수 |
사무총장 | 정진길 |
국회의원 | 10석 / 299석 |
당 색 | 청록색 (#3D9069) |
당원 수 | 2,896,268명[4] |
정당보조금 | 1,976,843,000원 |
당비 수입 | 367,253,453원 |
1995년 5월 31일 기준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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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新民黨)은 1994년 7월 8일 창당되어 1995년 5월 31일까지 존속하였던 대한민국의 정당이다.
2. 역사
정주영으로부터 버림받고[5] 김동길 측만 남은 통일국민당과 박찬종의 1인 정당이었던 신정치개혁당이 합당하여 창당되었다. 합당 과정에서 김동길과 박찬종 간의 극심한 갈등으로 전당대회에서 양쪽 모두 정치깡패들을 동원하면서 각목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들은 당대표등록 변경 신청과 대표등록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팽팽히 맞섰다.합당 직후인 1994년 8월 박철언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1994년 재보궐선거에 박철언의 배우자인 현경자를 같은 선거구에 공천하여 당선시켰다.[6] 1994년 12월 김동길과 박찬종이 함께 물러난 후, 1995년 3월 김복동[7]이 새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김종필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면서 상당수의 지역조직이 자민련으로 넘어갔으며,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자민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1995년 5월 31일 자민련에 흡수된다.[8] 9석에 불과했던 자민련은 12석의 신민당을 흡수한 덕분에 단숨에 20석을 넘겨 원내교섭단체가 될 수 있었고, 이후 15대 총선과 15대 대선까지 순항했다.
한편 합류에 불참한 임춘원 의원은 얼마 뒤 독자적으로 신민당을 재창당하였다. 이 당은 무소속 정당을 표방한다는 차원에서 무정파전국연합[9]으로 당명을 변경하였으나 임춘원에게도 버림받은 후 15대 총선에는 후보를 내지 못하였고, 그 이듬해인 1997년에 당원수 부족으로 해산하였다.
3. 역대 지도부
3.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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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대 김동길, 박찬종 (1994년 7월 8일~1994년 12월)[10]
- 권한대행 박한상, 한영수 (1995년 2월 11일~1995년 4월 1일)
- 2대 김복동 (1995년 4월 1일~1995년 5월 31일)
3.2. 원내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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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거 결과
4.1. 재보궐선거
<rowcolor=#fff> 연도 | 국회의원 |
1994년 8월 | 1 / 3 |
5. 기타
- 각목 난투극 외에는 정치 역사에서 이렇다 할 족적이 없다(...). 이전 세력인 통일국민당과 신정치개혁당은 나름 존재감이 있었으나, 합당 후 심한 갈등을 빚고 사실상 실패한 정당이 되어버렸다.
- 신민당(1967년)과 같은 이름을 썼으나, 해당 정당의 후신 정당으로 보기는 어렵다. 원조 신민당에 대한 계승 의식으로 지은 당명이 아니라, '신정치개혁당'의 '신', '통일국민당'의 '민' 자를 합쳐서 지은 당명으로 추정된다.[11] 그런데 원조 신민당과의 묘한 공통점이 있다. 원조 신민당에서 1976년에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이 있었는데, 1994년 신민당에서도 전당대회에서 각목 난투극이 있었다는 점.
- 1년도 안 되는 존속 기간 동안 100만 명 이상의 당원이 탈당했다. 원래 통일국민당의 당원이 워낙 많았는데, 그 당원들이 정주영의 정계 은퇴 이후 빠져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로고는 빨간색과 파란색 타원형 두 개가 위아래로 엇갈린 형태였다. 상징색은 #여기 2분 3초경에 청록색을 확인할 수 있다.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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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정부 이후 |
[1] 박찬종계[2] 박찬종계[3] 선관위 기록으로는 자유민주연합에 흡수 합당된 게 아니라 자유민주연합과 신설 합당하면서 새로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4] 등록 당시 당원 수는 3,874,616명이었다.[5] 문민정부에서 현대그룹에 대해 세무조사를 비롯한 정치보복을 단행하다보니 정주영의 입장에서는 대선용 정당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6] 이후 박철언은 사면되면서 2년만에 다시 국회로 복귀했다.[7]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김옥숙의 친오빠. 노태우와는 매제-처남 관계이자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이다.[8] 이 때 자민련이 신민당을 흡수 합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자유민주연합'을 만드는 방식으로 신설 합당을 하였다. 따라서 신민당과의 합당 이후의 자민련은 기존의 자민련을 승계했을 뿐 완전히 같은 정당은 아니다.[9] 원래는 '무소속전국연합'으로 하려고 했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당명 변경을 거부하였다. 참고로 같은 시기에 비슷한 성격의 무당파국민연합도 있었는데, 이쪽은 총선에 참가했다가 득표율 미달로 해산하였다.[10] 국고보조금 지급중단과 관련된 당내갈등으로 인한 동반사퇴.[11] 신민당(1967년) 또한 신한당과 민중당을 합당하면서 지은 당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