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08:16:00

유중권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유중권
柳重權 | Ryu Jung-kwon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63년 11월 2일
충청도 목천현 이동면 지령리
(現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사망 1919년 4월 1일 (향년 55세)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장터
(現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본관 고흥 류씨 (高興 柳氏)[1]
종교 기독교(개신교, 감리회)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초명 중화(重華)
자(字) 원희(元希)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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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이며,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이소제의 남편이자 유우석·유관순의 아버지이다. 유중무는 유중권의 남동생이다.

2. 생애

1863년 11월 2일 충청남도 목천현 이동면 지령리(現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윤기(柳潤基, 1845. 3. 23 ~ 1919. 5. 19)와 어머니 전주 이씨(? ~ ?. 5. 19)[2]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3] 평소 교육사업에 관심이 많아 사재를 털어 흥호학교(興湖學校)를 세웠고, 교회를 세워 민중을 교화했다.

1919년 4월 1일 오후 1시에 천안군 갈전면(現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 아우내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조인원태극기와 함께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아내 이소제, 딸 유관순, 조카딸 유예도, 홍일선(洪鎰善), 김교선(金敎善), 김상헌(金尙憲), 김상훈(金相訓), 김상철(金相喆), 조병호(趙炳鎬), 이순구, 한동규(韓東奎) 등을 비롯한 3,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여세를 몰아 헌병주재소로 달려가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시위대의 기세에 놀란 일본군 헌병들이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주재소에서 총기를 난사했고, 아내 이소제와 함께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했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검상공파 26대손 중(重) 항렬이다.[2] 이인채(李寅采)의 딸이다.[3] 남동생 유중무는 아버지 유윤기의 둘째 부인 전주 이씨(1854 ~ ?. 1. 30) 이두건(李斗建)의 딸 소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