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원시 출신 의병장, 안경순
성명 | 안경순(安京順) |
생몰 | 1871년 ~ ?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서면 장대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안경순은 1871년경 경기도 수원군 서면 장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11월 8일 장윤석(張允錫)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해 16명의 의병과 함께 충남 진잠군 남면, 연산군, 은진군 등 8개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1907년 음력 11월 19일경 전북 진산군 염정동에서 군자금을 모집했고, 같은 달에 연산군 동면 한삼천, 진잠군 남면 점촌, 신점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으며, 그해 음력 12월 13일에는 진잠군 동면 천동, 남면 인천, 은진군 갈마면 토기점, 27일에 갈마면 보화치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1908년 7월 21일 연산군 벌곡면 사곡의 한 주막에 유숙하던 중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08년 8월 26일 공주지방재판소 형사부에서 폭동죄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안경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화성시 출신 독립운동가, 안경순
성명 | 안경순(安慶淳) |
본관 | 순흥 안씨 |
생몰 | ? ~ 1919년 4월 15일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공향면 제암동 (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
사망지 |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안경순은 경기도 수원군 공향면 제암동(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출신이지만 태어난 년도 및 날짜는 알 수 없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4월 5일 향남면 발안 장날을 이용해 안상용, 안진순, 안봉순, 강태성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했다. 그는 이날 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앞세워 장터를 행진했다. 일제 경찰이 그들에게 무차별 발포해 3명이 부상당하자, 군중은 분노해 투석으로 대항하여 일본인 순사부장이 돌에 맞아죽었고, 많은 일본인 거주자들도 부상당했다.
이에 분노한 일제 경찰과 헌병대는 철저한 보복을 단행하기로 결정했다. 1919년 4월 15일 오후 2시경, 일본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인솔한 20여 명의 군경이 제암리에 도착해 민간인들에게 알릴 일이 있다고 속여 기독교, 천도교인 약 30명을 제암리 교회에 모이게 했다. 이에 안경순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주민들과 함께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직후 아리타 도시오는 출입문과 창문을 잠그게 하고 불을 지른 뒤 교회에서 탈출하는 주민들을 사살하게 했다. 안경순은 이 제암리 학살 사건 때 교회에 갇혀있다가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안경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