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40:57

문석환

성명 문석환(文奭煥)
영백(英伯)
운초(雲樵)
생몰 1869년 10월 16일 ~ 1925년 2월 13일
출생지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일방 포성리
본관 남평 문씨
사망지 충청남도 서천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문석환은 1869년 10월 16일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일방 포성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최익현의 문인으로,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그는 1906년 4월 18일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의 휘하에 들어가 종사(從事)가 되었다. 민종식의 홍주의병은 5월 19일 홍주성을 점령한 뒤 진용을 정비했는데, 이때 문석환은 서기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반격으로 홍주성이 함락되었고, 문석환은 동지 80여 명과 함께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는 서울에의 일본군 사령부에서 심문을 받았고, 7월에 유죄 선고를 받고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이때 그와 함께 대마도로 유배된 이들은 이칙(李侙), 유준근, 신현두(申鉉斗), 이상구(李相龜), 신보균, 최상집, 안항식 등 9명이었다. 이후 8월 말에 최익현임병찬도 대마도로 유배되어 홍주의 아홉 의병장들과 합류했다. 이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시를 짓고 학문을 논했다.

1907년 1월 1일 최익현이 사망하자, 문석환은 사서(司書)를 맡아 장례를 정중하게 주관했다. 이후 일제의 위협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대마도에서 옥고를 치른 뒤 1908년 7월에 석방된 후 고향에 은거하며 학문에 정진하다가 1925년 2월 1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문석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6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문석환은 대마도 유배기간 동안 '마도일기'를 집필했다. 필사본으로 전하는 이 책은 1907년 1월부터 1908년 7월까지 대마도에서 체류하면서 겪은 일들을 기술했다. 특히 대마도에서 일본 관리들과의 단발과 변복 문제로 인한 언쟁 등이 자세히 기록되었다. 또한 그와 함께 유배된 최익현, 임병찬, 유준근 등 의병장들의 우국시가 기술되어 있다. 현재 문석환의 아들 문규박(文圭博) 옹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