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7 22:48:29

문응국



1921년 6월 10일~1996년 4월 21일

1. 개요2. 생애3. 여담4.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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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군인. 제2대 문화재관리국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수여.

2. 생애

1921년 6월 10일 황해도 안악군에서 태어났다. 1940년 중국 산시성 노안(潞安)에서 김천성에게 포섭되어 한국청년전지공작대[1]에 가입하였다. 1941년 박영섭, 박영진, 선우기 등과 함께 중앙전시간부훈련단 내 한국 청년 간부 훈련단에서 훈련을 받고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194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영국간의 협정에 따라 편성된 인면지구공작대에 부대장이 되어 한지성, 박영진, 나동규, 최봉진 등과 함께 임팔 전투, 만다레 및 양곤 상륙작전 등에 참전하였다.

해방 후에는 안춘생 휘하에서 남경 잠편지대 참모로 활동하다 귀국하였고, 육군사관학교 5기에 임관해 육군대학 교수부원, 제1보병사단 부사단장을 역임하였다. 5.16 군사정변1962년 2월 17일 문화재청 제2대 문화재관리국장에 임명되어 석굴암 복원 등에 참여하였고, 1963년 3월 12일 원대 복귀하였다. 그 후 보이스카우트 운동에 전념하며 숙명여대 강사, 광복회 의전부장 등을 지냈고 1996년 4월 21일 별세하였다.

3. 여담

  • 장창국이 1983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육사졸업생들에 의하면 뛰어난 영어실력과 독립운동가로서의 기백과 배짱을 갖춰 동기생들 사이에서 형님 대접을 받았다한다. 육군대학 교수부원 등 학술 분야에서 복무하고 후일 문화재관리국장을 역임한 것으로 볼때 학문적 소양이 높게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 인면전구공작대 활동 당시 일본군 정세 판단에 뛰어난 공적을 보여 영국군 사단장이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인면전구공작대 출신 중 박영진은 6.25 전쟁 발발 초기 전사하였고 최봉진은 예편 후 고향인 광주로 낙향했으며 한지성은 조선인민군에 복무해 서울 점령 당시 서울시 인민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여러 이유로 인면전구공작대의 활동이 많이 조명되지 않아 그 들의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4. 참고자료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운동사 제6권
[1] 광복군 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