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28:51

남기동

성명 남기동(南基東)
이명 호유백(胡維伯)
생몰 1914년 ~ 1942년 5월
출생지 경상남도 통영시
사망지 중국 화북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남기동은 1914년경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십대 때 일본 도쿄에서 유학 생활을 보내다가 1934년경 조선홍색공회(朝鮮紅色工會)에 가입했고 곧 중국으로 망명했다. 중국 망명 후 난징으로 향한 그는 의열단에 입단했고, 1935년에는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했다. 그해 10월, 중국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제3기로 졸업했으며, 마춘식(馬春植) 등과 만주방면으로 파견되어 훈련공작을 수행했다.

이후 조선민족혁명당 특무요원으로 발탁되어 난징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38년 6월 조선민족혁명당이 중국 관내에서 안주하는 성향을 비치자 이에 반발해 탈당하고 최창익의 ML파 노선을 지지하던 김학무(金學武) 등이 1938년 9월 결성한 조선청년전위동맹(朝鮮靑年前衛同盟) 맹원으로 입단했다.

이후 중앙육군군관학교 특별훈련반을 제 6기생으로 졸업했으며, 1938년 10월 조선의용대가 결성되고 조선청년전위동맹이 조선의용대에 가담하자 1941년 5월 조선청년전위동맹 소속원들로 구성된 제2구대 제5전구사령부의 정치지도원으로 선임되었다. 제2구대는 제1전구와 제5전구로 나뉘어 활동했는데, 제1전구는 하남성 전역과 안휘성 북부 일부 지역을 담당했고, 제5전구는 호북성 북부, 하남성 남부, 안휘성 서부 등지를 관할했다.

1941년 조선의용대 무장정치공작원으로서 강진세 등과 함께 하남성 창덕 방면으로 파견되어 항일선전활동에 종사했다. 이때 남기동은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군을 상대로 선전 활동을 전개해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조선의용대가 화북의 팔로군 지역으로 이동하자 화북지역으로 이동했고, 1941년 가을 태행구에서 화북조선청년연합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선전활동에 종사했다. 그러나 1942년 5월 조선의용군과 중국 팔로군 신편 제1여단에 배속되어 대일 공작을 전개하다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총격전 끝에 사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남기동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