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8 15:28:58

전국체육대회

전국체전에서 넘어옴

1. 개요2. 목적3. 역사4. 성화5. 운영6. 현황7. 종목8. 역대 개최지9. 전국동계체육대회
9.1. 종목9.2. 역대 개최지
10. 전국장애인체육대회11. 전국동계장애인체육대회

1. 개요

全國體育大會

대한체육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전국 각 시도를 중심으로 우정과 화합을 목적으로 열리는 종합 경기대회. 국제 대회를 제외하면 국내에서는 가장 권위가 높은 공식 대회로 약칭 전국체전이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0년에 경성부에서 첫 개최를 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개최하고 있는 거의 100년에 달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굉장히 유서가 깊은 대회다. 2019년 100회 대회를 개최한다.

2. 목적

대한체육회가 전국 각 시도를 중심으로 우정과 화합을 하는 취지에서 열리고 있는 종합 경기대회이자 대한민국 스포츠 선수들의 실력향상을 높이고 위상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대회로 지방 체육의 활성화와 전국 시도민간의 우정과 친목 그리고 스포츠 선수들의 세계적인 육성과 실력향상을 평가하는 목적과 국민의 체육증진을 도모하는 취지에서 열리게 되었다.

3. 역사

1920년 당시 조선체육회로 불리웠던 대한체육회가 창립 당시부터 시작되었던 종합대회이며 이 당시 조선총독부가 이전의 헌병경찰통치를 끝내고 문화통치로 전환하면서 조선인들의 체육증진과 식민지가 되었던 조선의 화합과 단결을 하는 취지에 따라 전국 시도를 중심으로 체육대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국체전의 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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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1월 4일에 열린 전조선야구대회.

제1회 전국체전은 1920년 경기도 경성부(현재의 서울특별시)에서 "전조선 야구대회"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개최되었고 이 당시에는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시작되었던 중소규모의 야구대회였으며 종합경기대회로 전환된 것은 그 후로 5년 뒤 1925년부터였다. 여담으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는 한반도 최초의 유료입장을 도입한 대회이기도 하다.[1] 또한 이때 독립운동가인 월남 이상재가 1920년 11월 4일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 개막식에서 시구를 했는데 이는 한국야구사에서 가장 오래된 시구 기록이다.

1934년에 가서야 조선체육회가 창설 15주년을 맞이하면서 이 때부터 축구, 테니스, 육상, 농구 등의 경기가 추가되면서 15회 대회부터는 전조선(全朝鮮) 종합경기대회로 명칭을 바꾸고 진화하였다. 그러나 1936 베를린 올림픽 대회 때 손기정일장기 말소사건이 발생하고 사건 당사자인 동아일보가 정간조치를 당하게 되면서 1938년에는 결국 조선체육회도 총독부의 훈령에 따라 강제해산되었고 전국체전도 18회를 끝으로 더 이상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일부 스포츠 출신들이 강제 징병 및 징용을 당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올림픽도 2회 연속으로 개최되지 못하였다.

1945년 8월 해방이 되면서 총독부에 의해 강제해산되었던 조선체육회가 부활하게 되면서 그 해 12월부터 제26회 전국체전을 통해서 부활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이 대회부터는 남한의 지역단체 위주로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1948년에 열렸던 제28회 대회부터는 대한민국 정부 공인대회로 승인되기도 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때는 30회 대회가 열리지 못하였다가 1951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다시 대회가 열렸으며 이후부터는 서울특별시와 각 지방의 균등한 체육발전을 도모하고 전국체전의 취지에 맞추기 위하여 그 동안 서울특별시에서 연이어 개최하였던 전국체전을 지방으로 확대개최하였고 1957년 38회 대회는 경상남도 부산에서 열렸다.

1961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42회 대회는 부산직할시경상남도 시군 일원이 아닌 부산직할시 명의로 참가함에 따라 이 당시 서울특별시와 함께 독립 자치시 명의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1981년에는 경상북도 대구경기도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어 독립 참가를 하게 되었고 1986년에는 전라남도 광주가 직할시로 독립 참가를 하였으며 1989년에는 충청남도 대전이, 1997년에는 경상남도 울산이, 2012년에는 충청남도 연기군으로 있었던 세종특별자치시가 독립 참가를 하게 되었다.

국내 외에도 이북 5도와 재외동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재외동포 선수단도 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거주 외국인은 전국체전 특성상 아무리 한국에서 장기 거주중이고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출전 불가능.[2]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 추가바람.

4. 성화

1955년 제36회 대회부터 성화봉송을 시행하였으며 인천 강화도 마니산에서 채화된 것을 시작으로 오늘날에는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였다가 대회 당일에 선보이게 된다.

5. 운영

운영방식은 남녀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로 분류되며 각 시도의 대표로 나서게 되는 선수들이 경기를 하게 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되고 1,2,3위를 획득한 선수에게는 금은동메달이 수여된다. 개최 시도 개인 선수 및 단체 팀에는 20%의 가산점이 주어지며 국군체육부대 소속 단체 팀이나 개인 종목 선수들은 대체로 개최 시도를 대표하여 참가해 왔으나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임의로 정하여 참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체적으로 학교선수의 경우는 그 학교의 소재지의 대표선수로 참가하며, 시,도청이 아닌 실업팀의 경우(테니스의 삼성증권, 배드민턴의 삼성전기, 대교 등등) 시,도와 제휴를 맺는 식으로 해당 시,도를 대표하여 나가게 되는 것이 보통. 학교에 선수가 많으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출신 지방 대표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한국체육대학교 재학 중 스피스스케이팅 대구 대표로 출전한 김보름 선수의 사례가 그렇다. 시도별 순위는 특이하게 메달 순위가 아닌 메달 득점 + 종합득점제에 따라 결정된다. 종합득점은 각 부문(고등, 대학, 일반)별 배점, 단체 종목 가산점, 개최 시도 가산점 등을 반영해 산정한다.

전국체전에서 상위권 지역은 서울특별시경기도로 이들 지역은 전국체전에서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연달아 기록한 적이 있다. 최다 우승 지역은 서울특별시이나 종합 우승은 1995년이 마지막이다. 1996년 이래 경기도가 2001년을 제외하고는(개최지의 이점을 살린 충청남도가 우승) 모두 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체육대회 중에서는 가장 위상이 높다 보니 주요 정치인들도 많이 참석하고, 대통령도 대부분의 대회 개회식에 참석하는 편이다. 다른 일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불참해도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하는 편이다.

6. 현황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직업운동 선수로 살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

최소 세미프로화된 리그에서 뛰거나 실력이 출중해서 아시안게임,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가 되면 프로선수라면 연봉이, 국대급 선수라면 스폰서와 입상하였을 경우 추가로 연금 등이 나오니 운동선수 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없지만 어중간한 경우 스폰서가 없다면 모든걸 자비로 들이던지 아예 국군체육부대에 들어가야 하는데[3], 전국체전등이 있기 때문에 시-도에서 기초종목 팀을 운영하면서 선수는 운동에 전념하게 되고 시도측은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전국체전 외에도 많은 대회들이 있지만 이런 대회들중에서 전국체전만한 인지도와 효과가 있는 대회는 없다. 문제점도 있는데, 이런 기초종목에서 세계적 성적을 내서 세계선수권에 나가야 될 선수가 전국체전 출전을 강요받으며 기간때마다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국내대회를 뛰어야 되는 문제가 있다. 특히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선수들은 대놓고 얼굴마담 자격으로 출전을 강요받는다.

이형택 같은 경우는 2003년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 전국체전을 뛰어야 했다. 그것도 본인의 고향[4]도 아닌 부산광역시 소속으로.[5] 박태환도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전국체전에 참가했던 적이 있을 정도. 전국체전과 동계체전은 다른 대회이지만[6] 김연아 역시 부상으로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 해 동계체전에 출전해야 했던 바 있다.

물론 학생때부터 전국체전이란 이름이 주는 권위가 있고 애향심등의 이유로 선수 본인이 강하게 원해서 출전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건 보통 학생 때나 전국체전 우승=국내 제일로 통용될 때의 이야기. 그래서 해당선수들의 팬은 선수가 전국체전 나간다면 일단 우려하는 경우가 많다. 2013년 전국체전에선 런던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선수가 연습도중 부상을 입으며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기도.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부상중에도 불구하고 결국 출전을 강행하여 난이도가 낮은 기술들만 썼으나 압도적인 실력차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전국체전 3연패를 이뤄냈다.

그리고, 이 전국체전이 세계무대의 벽에 막힌 기초종목의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 육상.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개최때문에 현시창 신세는 면해야 되지 않겠냐는 지적에 투자와 경쟁유도로 수십년 묵은 서말구의 100m 한국신기록을 김국영 선수가 깨긴 했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다. 정구처럼 아시안게임만 국제대회로 존재하는 종목의 경우는 어쩔수 없이 전국체전이 세계 2번째 권위의 대회가 되기도 한다. 물론 양궁같이 전국체전 수준이 세계무대를 아득히 능가하는 괴랄한 경우도 있다
사이클 도로 종목의 경우도 세계선수권이 개최되는 10월에 전국체전 일정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 출전권을 가지고도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고 있다. 유럽도시 위주로 개최되는 특성상 들어가는 파견 비용이나 준비 기간에 비해 선수나 연맹 차원의 이득이 거의 없다보니 어쩔수 없다고 하지만, 참가선수의 완주 자체가 힘들더라도 국내 유망주와 실력파 선수들이 세계 최정상급 무대를 경험할 값진 기회를 놓치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2014년도부터 e 스포츠 종목이 신설되었다. 종목은 리그오브레전드, 카트라이더, 스타크래프트2, 피파온라인3다. 다만 이것은 정식종목은 커녕 시범종목도 아닌 동호인 종목이다. 용무도라거나, 산악, 오리엔티어링, 브라질리언주짓수[7], 양궁 컴파운드 부문, 플로어볼, 마샬아츠, 족구, 패러글라이딩, 사회인야구 등으로 말하자면 생활체육인들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오래 있다가 메달산정에 합산이 되는 시범종목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단적으로 바둑이 이런 형태로 시범종목이 되었다. 다만 현시창인 것이 전국체전은 2016년부터 10개 이상 메달 산정종목을 줄일 것을 예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전 정식종목들도 줄줄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때문에 E 스포츠가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게 될 날은 아직 까마득하다고 할 수 있다.

7. 종목

검도 골프 국궁 근대5종 농구 당구 댄스스포츠 럭비
레슬링 롤러스케이트 바둑 배구 배드민턴 보디빌딩 복싱 볼링
사격 사이클 세팍타크로 소프트볼 수상스키 수영 스쿼시 스포츠클라이밍
승마 씨름 야구 양궁 역도 요트 우슈 유도
육상 정구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태권도
택견 테니스 트라이애슬론 펜싱 핀 수영 하키 핸드볼

8. 역대 개최지

회수(연도) 대회 명칭 개최지 우승 비고
제1회
(1920년)
전조선야구대회 경기도 경성부 배재고 - 사상 최초로 개최된 전국민 체육대회. 단 종목은 야구뿐이었다.
제2회
(1921년)
조선체육대회 - - 정구축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
제3회
(1922년)
-
제4회
(1923년)
-
제5회
(1924년)
-
제6회
(1925년)
- - 종합경기대회로 전환.
제7회
(1926년)
-
제8회
(1927년)
-
제9회
(1928년)
-
제10회
(1929년)
-
제11회
(1930년)
-
제12회
(1931년)
-
제13회
(1932년)
-
제14회
(1933년)
-
제15회
(1934년)
전조선 종합경기대회 - - 종합경기대회 방식 채택 및 명칭 변경.
제16회
(1935년)
-
제17회
(1936년)
-
제18회
(1937년)
- - 일제강점기 당시의 마지막 대회, 1938년 조선체육회 해체.
제19회 ~
제25회
(1938 ~
1944년)
대회 중단 경기도 경성부
(취소)
- 조선체육회 해체 및 총독부 금지령에 따라 광복 때까지 열리지 못함.
제26회
(1945년)
전조선 종합경기대회 경기도 경성부 - - 해방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대회.
제27회
(1946년)
경기도 경성부 -
제28회
(1947년)
서울특별자유시 - 경기도 경성부가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분리 이후 첫 참가.
제29회
(1948년)
전국체육대회 서울특별자유시 - - 대회명칭을 전국체전으로 변경, 대한민국 정부 공인대회로 승격.
제30회
(1949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31회
(1950년)
대회 취소 서울특별시(취소) - 6.25 전쟁 발발로 인해 대회 취소결정.
제32회
(1951년)
전국체육대회 전라남도 광주시 전라남도 - 6.25 전쟁 발발로 사상 최초로 전라남도에서 개최.
제33회
(1952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 전쟁 중 일부 경기 한정으로 개최.
제34회
(1953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35회
(1954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36회
(1955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 사상최초 성화봉송 시행.[8]
제37회
(1956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38회
(1957년)
경상남도 부산시 서울특별시 - 사상 2번째 지방개최, 지방순회개최 시작.
제39회
(1958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40회
(1959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41회
(1960년)
충청남도 대전시 서울특별시
제42회
(1961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되어 경상남도에서 승격분리 이후 첫 참가.
제43회
(1962년)
경상북도 대구시 서울특별시
제44회
(1963년)
전라북도 전주시 서울특별시
제45회
(1964년)
경기도 서울특별시
제46회
(1965년)
전라남도 광주시 서울특별시
제47회
(1966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 대한체육회가 직접 주관하는 체제로 변경.
제48회
(1967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49회
(1968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50회
(1969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51회
(1970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52회
(1971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 소년체전 별도 신설.
제53회
(1972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54회
(1973년)
부산직할시 서울특별시 - 직할시 승격 이후 첫 개최.
제55회
(1974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제56회
(1975년)
경상북도 대구시 서울특별시
제57회
(1976년)
부산직할시 서울특별시
제58회
(1977년)
전라남도 광주시 서울특별시
제59회
(1978년)
경기도 인천시 경기도
제60회
(1979년)
충청남도 서울특별시
제61회
(1980년)
전라북도 경기도 - 원래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개최하기로 하였으나, 5.18 민주화운동으로 인하여 개최지가 옮겨짐.
제62회
(1981년)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 대구, 인천이 각각 경상북도경기도에서 승격분리 이후 직할시 자격으로 첫 참가.
제63회
(1982년)
경상남도 서울특별시
제64회
(1983년)
인천직할시 서울특별시 - 직할시 승격 후 첫 개최.
- 대회 기간 중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고 발생. 이 때문에 폐회식은 '북괴만행규탄 체육인 궐기대회'라는 이름으로 개최.
제65회
(1984년)
대구직할시 서울특별시 - 직할시 승격 후 첫 개최.
제66회
(1985년)
강원도 서울특별시
제67회
(1986년)
서울특별시, 경기도, 부산직할시 경기도 - 광주전라남도에서 승격분리 이후 직할시 자격으로 첫 참가.
- 서울 아시안게임 예행연습.
제68회
(1987년)
광주직할시 서울특별시 - 직할시 승격 후 첫 개최.
제69회
(1988년)
전국 일원 - - 종목별 규모대회와 겸하여 종목별 종합 시상만 시행.
제70회
(1989년)
경기도 경기도 - 대전충청남도에서 승격분리 이후 직할시 자격으로 첫 참가.
제71회
(1990년)
충청북도 서울특별시
제72회
(1991년)
전라북도 경기도
제73회
(1992년)
대구직할시 서울특별시
제74회
(1993년)
광주직할시 경기도
제75회
(1994년)
대전직할시 경기도 직할시 승격 후 첫 개최.
제76회
(1995년)
경상북도
주 개최지 : 포항시
서울특별시 사상 최초로 도청 소재지가 아닌 곳이 주 개최지로 지정됨.[9]
제77회
(1996년)
강원도
주 개최지 : 춘천시
경기도
제78회
(1997년)
경상남도
주 개최지 : 창원시
경기도 사상 최초로 야간 개막식 개최.
울산경상남도에서 승격분리 후 광역시 자격으로 참가.
제79회
(1998년)
제주도 경기도 사상 최초로 제주도에서 개최.
제80회
(1999년)
인천광역시 경기도
제81회
(2000년)
부산광역시 경기도
제82회
(2001년)
충청남도
주 개최지 : 천안시
충청남도 충청남도 전국체전 사상 최초 종합 우승
그러나 이번 전국체전은 청탁과 편파판정으로 9개 시도 선수단이 폐막식에 대거 불참했다. 자세한 건 기사 참조.[10]
제83회
(2002년)
제주도 경기도
제84회
(2003년)
전라북도
주 개최지 : 전주시
경기도
제85회
(2004년)
충청북도
주 개최지 : 청주시
경기도
제86회
(2005년)
울산광역시 경기도 광역시 승격 이후 첫 개최.
제87회
(2006년)
경상북도
주 개최지 : 김천시
경기도
제88회
(2007년)
광주광역시 경기도 - 제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시기에 열렸던 대회.
제89회
(2008년)
전라남도
주 개최지 : 여수시
경기도
제90회
(2009년)
대전광역시 경기도 - 신종플루의 발병화로 인해 위생 및 보건향상 강화.
제91회
(2010년)
경상남도
주 개최지 : 진주시
경기도 - 천안함 폭침 이후와 연평도 포격 이전에 열렸던 대회.
제92회
(2011년)
경기도
주 개최지 : 고양시
경기도 - 사상 최초로 경기장이 아닌 일산호수공원에서 개막식 진행.
제93회
(2012년)
대구광역시 경기도 -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 이후 첫 참가.
제94회
(2013년)
인천광역시 경기도
제95회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 경기도
제96회
(2015년)
강원도
주 개최지 : 강릉시
경기도
제97회
(2016년)
충청남도
주 개최지 : 아산시
경기도
제98회
(2017년)
충청북도
주 개최지 : 충주시
경기도
제99회
(2018년)
전라북도
주 개최지 : 익산시[11]
경기도 - [12]
- 사실상 처음으로 성화대 없는 전국체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13]
제100회
(2019년)
서울특별시[14] - 서울 이랜드 FC는 잠시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경기를 치루게된다.
제101회
(2020년)
경상북도
주 개최지 : 구미시
제102회
(2021년)
울산광역시
제103회
(2022년)
전라남도
주 개최지: 목포시
제104회
(2023년)
경상남도
주 개최지: 김해시

9. 전국동계체육대회

겨울스포츠종목의 전국체전이다.

9.1. 종목

크로스컨트리 컬링 아이스하키 알파인 스키 스노보드 피겨스케이팅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바이애슬론 봅슬레이·스켈레톤 산악스키
진회색:시범종목

9.2. 역대 개최지

회수(연도) 개최지 우승 비고
제1회~제77회 추가바람
제78회
(1997년)
서울특별시·강원도·전라북도 서울특별시
제79회
(1998년)
서울특별시·강원도
제80회
(1999년)
제81회
(2000년)
제82회
(2001년)
서울특별시·강원도·경기도
제83회
(2002년)
서울특별시·강원도·경기도 경기도
제84회
(2003년)
서울특별시·강원도·대전광역시
제85회
(2004년)
전라북도
제86회
(2005년)
강원도·서울특별시·경기도
제87회
(2006)
강원도·서울특별시·경기도
제88회
(2007년)
강원도·서울특별시·경기도·경상북도
제89회
(2008년)
강원도·서울특별시·부산광역시
제90회
(2009년)
강원도·서울특별시·경기도
제91회
(2010년)
전라북도·서울특별시·강원도·경상남도
제92회
(2011년)
전라북도·서울특별시·강원도
제93회
(2012년)
제94회
(2013년)
서울특별시·강원도
제95회
(2014년)
제96회
(2015년)
제97회
(2016년)
제98회
(2017년)
제99회
(2017년~
2018년)
추가바람 -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에 따라 종목별 대회로 운영방식을 변경하여 운영하고 종합순위 및 MVP 미 운영
- 개·폐회식 행사 미운영
제100회
(2019년)
강원도경기도

10.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전국체전의 패럴림픽이다.

11. 전국동계장애인체육대회

동계체전의 패럴림픽이다.


[1] 한국야구사 p.23[2] A지역에서 20년, 30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을 예로 들면 영주권 등 합법 체류자격을 가지고 있고 한 지역에서 오래 거주해도 한국으로 귀화하지 않는 한 지역 대표로 참가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3] 대표적으로 여자축구, 여자사격이 있다. 안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군입대하는 경우. 물론 여군사병이 없는 대한민국의 특성상 당연히 부사관으로 입대다. 남자 선수들 중 아주 비인기 종목인 경우 소속팀 찾기 힘들어서 올림픽, 아시안게임 입상으로 예술체육요원이 될 자격을 갖춘 선수들이 그냥 상무 입대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4] 강원도 횡성[5] 이형택 소속팀인 삼성증권이 부산과 계약을 맺어서 삼성증권 선수들은 부산 소속으로 대회에 나왔다.[6] 전국체전=하계올림픽, 동계체전=동계올림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 동계올림픽과는 달리 동계체전은 별도의 횟수를 부여하지 않고 그 해의 전국체전과 같은 횟수를 부여한다. 그리고 소년체전은 별도로 없고 동계체전에서 초, 중학교부도 실시한다. 과거 실내수영장이 없었던 시절에는 수영 종목은 한여름에 했기 때문에 하계 대회와 추계 대회를 별도로 열었지만 현재는 통합되었다.[7] MMA 엘리트라는 이름으로 참가[8] 성화주자: 손기정[9] 기존에는 도청 소재지를 주 개최지로 하여 개/폐회식과 주요 종목을 편성하고 나머지 종목을 각 시군별로 분산개최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경북도청이 아직 대구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10] 위에서 언급했듯이 개최 시도의 단체 팀 및 개인 선수에게는 20%의 가산점이 붙기 때문에 충청남도가 종합 우승을 하기 위해 온갖 애를 썼다.[11] 여담으로 이 대회 개최 선정당시 지원한 유일한 지자체가 익산이었다.[12]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간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전국체전에 북한 선수팀 초청에 적극적인 민주평화당을 포함한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민중당이 익산전국체전에 북한 선수팀을 초청하자는 결의안을 발의했으나 무산됐다. 이 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하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북한 선수팀과 함께하는 체육대회가 될 것이다.[13] 전국체전 성화대 디자인 업체에서 디자인 도용으로 익산시 시장부터 시작해서 전국체전 관련자 전원을 고소했다. 자세한건 기사 참조.[14] 100회 대회라는 상징성 때문에 일찌감치 개최지로 내정되었다. 서울에서 전국체전이 열리는 것은 1986년 이후 33년만의 일, 단독 개최지로서 개최하는 건 1981년 이후 무려 38년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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