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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10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토미 더글라스 | 테리 폭스 | 피에르 트뤼도 | 프레더릭 벤팅 | 데이비드 스즈키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레스터 피어슨 | 돈 체리 | 존 맥도널드 경 |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 웨인 그레츠키 | |
11위~50위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루이스 리엘 | 장 바니에 | 스톰핀 톰 코너스 | 닐 영 | 피터 지조우스키 | |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로미어 달레어르 | 스티븐 루이스 | 샤니아 트웨인 | 바비 오어 | 마이크 마이어스 | |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무명용사 | 해롤드 A. 로저스 | 모리스 리샤르 | 아서 커리 | 넬리 맥크룽 | |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노먼 베순 | 셀린 디옹 | 아이작 브록 | 짐 캐리 | 릭 핸슨 | |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피에르 버튼 | 마이클 J. 폭스 | 고든 라이트풋 | 할 앤더슨 | 로라 세코드 | |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어니 쿰스 | 테쿰세 | 마리오 르미외 | 브렛 하트 | 에이브릴 라빈 | |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존 캔디 | 샌포드 플레밍 | 윌프리드 로리에 | 매리 맥스웰 | 장 크레티앵 | |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레너드 코헨 | 존 디펜베이커 | 빌리 비숍 |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 릭 머서 | |
출처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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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짐 캐리 Jim Carrey | |
본명 | James Eugene Carrey 제임스 유진 캐리 |
출생 | 1962년 1월 17일 ([age(1962-01-17)]세) |
캐나다 자치령 온타리오주 뉴마켓 | |
국적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복수국적)[1] |
학력 | 앨더샷 고등학교[영문] (중퇴) GED (합격) |
직업 | 배우, 방송인, 음악가, 성우, 작가, 코미디언, 프로듀서 |
가족 | 딸 제인 캐리, 손자 잭슨 산타나(2009년생) |
신체 | 188cm, 84kg, 285mm |
종교 | 가톨릭 → 개신교(장로회)[3][4] |
링크 | |
서명 |
[clearfix]
1. 개요
I wish everyone could be rich and famous, so they would know that it is not the answer.
저는 모든 사람이 한 번 부자가 되어보고 유명해져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게 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테니까요.
저는 모든 사람이 한 번 부자가 되어보고 유명해져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게 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테니까요.
I have enough, I've done enough, I am enough.
저는 충분히 많이 얻었고, 충분히 많이 해냈습니다.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캐나다의 배우 겸 코미디언이다.저는 충분히 많이 얻었고, 충분히 많이 해냈습니다. 저는 충분히 만족합니다.
2. 상세
코미디 영화의 제왕으로 불리는 할리우드 톱 배우 중 하나로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특유의 얼굴 구기기와 과도한 몸짓 덕분에 한국에는 인기 코미디언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 <에이스 벤추라>부터 시작해서 <마스크>를 거쳐 <예스맨>까지 보여줬던 행보를 보면 코미디언으로 인식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짐 캐리는 코미디 외의 분야에서도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평범한 일반인이 매카시즘의 광기에 휩싸인 시대에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아둥바둥거리는 모습을 보여준 <마제스틱>에서는 웃음기를 뺀 정극 연기를 선보였고, <이터널 선샤인>에서는 진지한 멜로 연기를,[5] 스릴러인 <넘버 23>에서는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모두 날려버리고 편집증 환자 연기를 소름끼치게 선보여 엄청난 내공을 드러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미국에서는 짐 캐리를 연기파 배우로 인식할 것 같지만, 사실 대다수 미국인에게도 짐 캐리는 코미디의 제왕으로 인식된다. 연기력을 좀 더 인정받는 로빈 윌리엄스도 마찬가지. 윌리엄스는 아카데미 상을 수상할 정도로 훌륭한 배우이지만, 원래 코미디를 하던 코미디언이었고 대다수의 대중들은 그를 떠올리면 재미있는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한다.
3. 주요 활동
3.1. 코미디언 시절
짐 캐리는 1962년 1월 17일 캐나다 자치령 온타리오 주 뉴마켓에서 태어났다. 뉴마켓은 토론토 중심에서 약 50km 떨어진 소도시로, 지금은 위성도시로서 많이 커졌지만 1980~1990년대만 하더라도 상당한 농촌이었다. 노동직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녔으며, 15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실직을 하면서 짐 캐리는 16살이 되는 생일에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훗날 GED[6]를 통해 학력을 취득했다.짐 캐리의 코미디 커리어는 1979년,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것으로 시작된다. 데뷔하자마자 주목받는 신인 코미디언으로 뽑혀서 언론에서 인터뷰도 하는 등 커리어의 처음 시작은 순조로웠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할 당시 짐 캐리의 주요 레퍼토리는 유명인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것이었다. 짐 캐리는 어렸을 적부터 장난감이 없어서 거울을 보며 표정짓기하고 놀곤 했는데 그것이 특기가 되었다고 한다. 순수하게 얼굴 근육만으로 아지랑이로 일그러진 얼굴을 표현한다.# 참고로 짐 캐리의 스탠드업 코미디인 Unnatural Acts 영상은 꽤나 쉽게 구할 수 있는데, 파일로 퍼진 영상은 중간이 좀 잘린 영상이고 유튜브에 풀 버전이 수록되어있다. 풀 버전에는 유명 배우의 얼굴 묘사 씬이 들어있다.[7]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차츰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짐 캐리는 1983년에 본격적으로 활동 영역을 TV 방송으로 확장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짐 캐리를 높게 평가한 PD의 추천으로 난생 처음 주연을 맡아 1984년에 방영한 시트콤 <The Duck Factory>는 시청률 부진으로 1시즌 만에 종료되었고 1985년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시즌 11 (1985–86)의 고정 크루를 뽑는 오디션에서 탈락하는 등[8]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승승장구했던 것과 달리 짐 캐리의 방송 커리어는 순탄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긴 무명시절을 보낸다.
결국, 계속되는 무명생활에 지친 짐 캐리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당시 짐 캐리는 일거리가 없어서 노숙을 하거나 버려진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세수도 공중화장실에서 했으며, 햄버거 하나를 세 토막내 아침, 점심, 저녁을 때웠다고 한다. 당시 그는 꼭 스타가 되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스스로에게 천만 달러 짜리 수표를 써 주고, 지갑에 넣어 다니면서 3년 안에 꼭 천만 달러를 받는 배우가 되고 말리라는 다짐을 매일매일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9] 이는 이후 그가 <배트맨 포에버>에서 출연료로 천만 달러를 받게 되면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서프라이즈>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짐 캐리가 이렇게 노력한 이유는 아버지에게 1,000만 달러를 드리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게 되었을 때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
그러던 중 짐 캐리는 훗날 <무서운 영화> 시리즈로 유명해지게 되는 웨이언스 형제가 메인 크리에이터를 맡아서 1990년 4월 15일 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TV 코미디 쇼 <In Living Color> 에 고정 출연하게 되었고 쇼의 성공으로 비로소 인기를 얻기 시작하였다. In Living Color는 흔히 "흑인용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로 불리는 프로그램으로 크리에이터인 웨이언스 형제를 비롯해 대부분의 출연진이 흑인인데,[10] 짐 캐리는 주로 거만하고 멍청한 악당이거나 제정신이 아닌 백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Fire Marshall Bill이라는 과격한 안전강사 캐릭터가 큰 인기를 끌었다. 안전한 실생활에서 갑자기 Fire Marshall Bill이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화재 사고의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는 명목으로 일부러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다가 결국에는 해당 장소를 완전히 전소시킨다는 내용의 콩트이다. 유행어는 "Let Me Show You Something!".
1994년 5월 19일, <In Living Color>가 종영하고 같은 해 연이어 개봉한 <에이스 벤추라>, <마스크>, <덤 앤 더머>가 모두 흥행에 성공하면서 짐 캐리는 본격적으로 영화에만 집중하기 시작한다. <In Living Color>의 짐 캐리 출연본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기존의 짐 캐리 영화에서도 보기 드문, 그야말로 천재적인 개그감을 확인할 수 있으니 캐리의 팬이라면 한 번쯤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다만,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개그 스타일이 흑인과 여성 등 미국내 사회적 약자들의 스테레오타입이나 이들이 차별받는 모습을 비틀어서 웃기는 것인데 당시 시대적인 한계가 있어서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시청에 주의할 것. 요즘 시대에 나왔으면 빼박 뉴스감이었을 연기가 많다.
3.2. 영화 배우 시절
짐 캐리는 의욕적으로 도전한 방송일이 잘 풀리지 않자 푼돈이라도 벌기 위하여 1986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페기 수 결혼하다>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짐 캐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더티 해리>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추적자 (1988)>, < Earth Girls Are Easy (1989)>[11] 등 몇몇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했다. 이 시절 나온 영화는 짐 캐리가 유명해지자 그의 이름을 달고 다시 2차 매체에서 그가 주연인양 포스터를 새롭게 만들어 재출시되었다.<In Living Color>의 성공으로 TV에서 어느정도 얼굴을 알리는데 성공하자 짐 캐리는 1993년, 자신이 직접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12] <In Living Color>의 조연출로 일했던 톰 새디악을 감독으로 영입해서 워너 브라더스와 함께 1,500만 달러라는 저예산으로 <에이스 벤추라>를 제작한다.
1994년 2월에 소규모로 개봉을 시작한 <에이스 벤추라>는 북미 7,221만 달러, 해외 3,000만 달러 흥행을 거두었고 할리우드는 비로소 짐 캐리를 주목하기 시작한다.[13]
1994년 7월 29일 개봉한 마스크가 연이어 대성공을 거두며 짐 캐리는 확실한 흥행 보증 배우로 자리매김을 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마스크>의 경우 사실상 그의 애드리브를 통해 완성된 캐릭터이며, 극장 개봉 후 배급사인 뉴 라인 시네마에서는 관객이 ILM이 만든 현란한 SFX를 보기 위해 올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도 짐 캐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는 것에 쇼크를 먹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
1994년 12월 16일 덤 앤 더머가 개봉했고 이 역시 흥행하면서 짐 캐리는 순식간에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의 새로운 제왕으로 떠오른다. 덤 앤 더머의 감독이자 각본가 피터 패럴리, 바비 패럴리 형제는 덤 앤 더머가 자신들의 데뷔작이어서 영화가 반드시 흥행해야 된다며 노심초사 하고 있었는데 짐 캐리가 주인공 중 1명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짐 캐리에 대해 잘 몰라서 그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가 <에이스 벤추라>를 보고 "이 사람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라며 영화의 성공을 직감했다고 한다. 참고로 덤 앤 더머 제작과 동시에 <에이스 벤추라>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짐 캐리는 협상을 통해 덤 앤 더머의 출연료로 700만 달러를 받는데 성공했다.
1995년 짐 캐리는 <에이스 벤추라 2>와 블록버스터 영화 <배트맨 포에버>의 리들러 역에 캐스팅된다. 리들러 역으로 캐스팅된 짐 캐리는 천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았고, 해당 영화의 리들러는 짐 캐리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아예 캐릭터가 짐 캐리에 맞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죽하면 당시 같이 악당 투페이스 역으로 영화에 출연한 토미 리 존스는 "다음부터는 절대로 짐 캐리가 나오는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겠다."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14] <에이스 벤추라2>도 3,000만 달러로 만들어져 전세계에서 2억 1,300만 달러 흥행 대박을 거둬들였다. 에이스 벤추라 2 감독인 스티븐 오데커크는 짐 캐리의 친구로 에이스 벤추라의 캐릭터 형성에 도움을 주었으며 나중에 브루스 올마이티 각본을 쓰게 된다.
1996년 짐 캐리는 캐스팅 제의가 온 수 많은 각본 중 벤 스틸러 감독의 블랙 코미디 영화 <케이블 가이>를 선택, 2천만 달러에 출연하기로 계약하면서 당시 최고액수의 출연료를 받는 헐리우드 배우로 기네스북에 오른다. 하지만 짐 캐리 특유의 오버하는 캐릭터를 기대하고 온 관객은 기괴하고 어두운 짐 캐리의 모습에 실망을 받았고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15] 케이블 가이가 흥행에 실패한 반면 당시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짐 캐리가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의 호스트로 출연한 에피소드는 레전드로 칭송받는다.[16]
케이블 가이의 흥행 실패 후 짐 캐리는 에이스 벤츄라에서 함께 작업했던 감독 톰 새디악과 다시 의기투합하여 1997년 3월 21일에 개봉한 가족 코미디 <라이어 라이어> 에 출연했고 영화가 여름 시즌 콘 에어, 쥬라기 공원 2, 페이스 오프, 헤라클레스라는 경쟁작 사이에서도 3억달러라는 대흥행에 성공함으로서 다행히 커리어의 하락세는 막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지만 짐 캐리가 원톱 주연이라 사실상 짐 캐리 연기력의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다. 트루먼 쇼처럼 진지한 감정 연기와 익살끼가 섞인 가벼운 연기부터, <마스크>처럼 극단적인 표정 연기와 슬랩스틱이 섞인 하드코어 코미디 연기까지 포함해 현란한 원맨쇼가 펼쳐진다.
이후 짐 캐리는 1998년 6월 5일 개봉한 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에 출연했고 영화는 2억 6천만달러라는 대흥행을 거둔 것은 물론, 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평단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했다. <트루먼 쇼>는 익살끼와 정극 연기가 모두 가능한 짐 캐리 특유의 연기력이 매우 적절한 조화를 이룬 예로 짐 캐리의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로 손꼽힌다. 이 작품으로 짐 캐리는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9년 짐 캐리는 밀로스 포먼 감독의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의 전기 영화 <맨 온 더 문>에 출연하여 코미디언으로서가 아닌 정극 연기자로서의 능력을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영화는 8,200만 달러로 제작되어 전세계에서 7,000만달러도 벌어들이지 못했다.
2000년 패럴리 형제와 다시 의기투합하여 코미디 영화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을 찍었고[17] 동시에 그린치 영화판에 주인공 그린치 역을 맡았다. 그린치 촬영 때는 CIA 요원에게 무술 지도를 받은 동작을 가지고 연기했다고 한다.
2001년 짐 캐리는 "더 이상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며 정극 영화 마제스틱의 주연으로 출연한다. 짐 캐리의 연기 자체는 괜찮은 평을 받았지만 영화는 흥행과 비평 모두 혹평을 받았고 짐 캐리 팬들에게까지 "어울리지 않게 웬 정극이냐"고 욕을 먹자 캐리는 2003년 브루스 올마이티로 재기할 때 까지 공백기를 갖는다.
이후 2003년 브루스 올마이티가 월드 박스오피스 4억 8400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었고 2004년에 출연한 정극 이터널 선샤인도 연타석 흥행[18]을 거두면서 짐 캐리는 다시 흥행 배우로 재도약했다. 2005년에는 짐 캐리 본인이 직접 제작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한 뻔뻔한 딕 & 제인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2007년 짐 캐리는 조엘 슈마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스릴러 영화 <넘버 23>의 단독 주연을 맡으면서 다시 정극 영화에 도전한다. 그러나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았고 흥행에 실패했다. 짐 캐리의 연기력도 뭔가 어중간하다는 평을 받았다.
2008년 코미디 영화 예스맨에 출연하면서 다시 코미디 배우로 복귀했다.
2009년애는 퀴어 영화 필립 모리스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미국에서도 상당한 논란 끝에 개봉된 영화였는데, 1300만 달러 제작비로 흥행은 2100만 달러에 그치며 망했다.
이후 짐 캐리는 크리스마스 캐롤, 파퍼씨네 펭귄들 같은 가족 코미디에 연이어 출연했다.
2014년 <덤 앤 더머2>에 출연했고 월드 박스오피스 1억 6246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2016년 <다크 크라임>에 출연하면서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로튼 토마토 30여개 리뷰에서 신선도0%를 찍으며 처참하게 실패했다.
2020년에는 수퍼 소닉에 출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오죽하면 영화를 혹평하는 팬 중에서도 짐 캐리의 연기만큼은 입을 모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정도로 열연을 보여주었고 영화도 게임 소재라는 한계와 코로나 19 악재 속에서도 나름 후속편을 제작할 수 있을 정도의 흥행 성과를 거두었다.
짐 캐리의 Access Hollywood 인터뷰 |
Well I'm retiring, but... yeah probably... I'm being fairly serious, yeah... yeah... It depends. If the angels bring... some sort of script that’s... written in gold ink that says to me that it’s going to be really important for people to see, I might continue down the road, but I’m taking a break, yeah.
그렇지만 저는 은퇴할 것인데요.... 그렇죠 아마도요... 전 상당히 진지해요, 그렇죠... 그렇죠... 그건 사정나름이에요. 만약에 천사들이... 황금색 잉크로 써진 어떤 각본을 가져다주면서 사람들이 봐야 하는 정말로 중요한 영화일 거라고 말한다면 장래에 연기를 계속하겠죠. 하지만 저는 잠시 휴식을 취할 거에요. 그렇죠.
짐 캐리의 2022년 3월 31일 은퇴에 대한 언급[19]
그렇지만 저는 은퇴할 것인데요.... 그렇죠 아마도요... 전 상당히 진지해요, 그렇죠... 그렇죠... 그건 사정나름이에요. 만약에 천사들이... 황금색 잉크로 써진 어떤 각본을 가져다주면서 사람들이 봐야 하는 정말로 중요한 영화일 거라고 말한다면 장래에 연기를 계속하겠죠. 하지만 저는 잠시 휴식을 취할 거에요. 그렇죠.
짐 캐리의 2022년 3월 31일 은퇴에 대한 언급[19]
2022년 3월 31일 Accesss Hollywood 인터뷰에서 수퍼 소닉 2 닥터 로보트닉 역 이후 은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언급했다. 은퇴할 경우 제작 예정인 수퍼 소닉 3에서는 닥터 로보트닉이 등장할 수 없게 되는데[20] 자신이 읽을 각본이 정말로 사람들이 시청해야 할 중요한 영화의 각본이라면 계속 연기할 생각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24년 2월 2일 소닉 3에서 에그맨으로 복귀가 확정되었다.
4. 필모그래피
4.1. 영화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1983년 | 올 인 굿 테이스트 | ||
개그 스페샬 | 토니 모로니 | ||
1984년 | 덕 패밀리 | ||
1985년 | 나이스 보이스 | ||
1986년 | 페기 수 결혼하다 | 월터 게츠 | |
1988년 | 더티 해리 5 - 추적자 | ||
1989년 | 이지 걸 | ||
핑크 캐딜락 | |||
1992년 | 메이플가의 시련 | ||
1994년 | 저승사자 | ||
덤 앤 더머 | 로이드 크리스마스 | ||
마스크 | 스탠리 입키스/마스크 | ||
에이스 벤추라 | 에이스 벤추라 | ||
1995년 | 에이스 벤추라 2 | ||
배트맨 포에버 | 리들러 | ||
1996년 | 케이블 가이 | 케이블 가이 | |
1997년 | 라이어 라이어 | 플레처 리드 | |
1998년 | 사이먼 버치 | 성인 조 / 나레이터 | |
트루먼 쇼 | 트루먼 버뱅크 | ||
1999년 | 맨 온 더 문 | 앤디 카우프먼 / 토니 클리프턴 | |
2000년 | 그린치 | 그린치 | |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 | 찰리 베일리게이츠 / 행크 에반스 | ||
2001년 | 더 콘서트 포 뉴욕 시티 | 본인 | |
마제스틱[21] | 피터 애플튼 | ||
2002년 | 아메리칸 아이돌 | ||
2003년 | 브루스 올마이티 | 브루스 놀란 | |
2004년 | 이터널 선샤인 | 조엘 배리쉬 | |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 올라프 백작 | ||
2005년 | 뻔뻔한 딕 & 제인 | 딕 하퍼 | |
2007년 | 업 클로즈 위드 캐리 키건 | 게스트 | |
넘버 23 | 월터 스패로우 / 핑거링 | ||
2008년 | 예스맨[22] | 칼 앨런 | |
호튼 | 호튼 | ||
2009년 | 언더 더 씨 3D | 나레이터 | |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 | |||
필립 모리스[23] | 스티븐 러셀 | ||
크리스마스 캐롤 | 스크루지/과거-현재-미래 유령 목소리 | ||
2011년 | 파퍼씨네 펭귄들 | 톰 파퍼 | |
2013년 | 더 인크레더블 버트 원더스톤 | 스티브 그레이 | |
앵커맨2: 전설은 계속된다 | |||
킥 애스 2: 겁 없는 녀석들 | 스타스 대령 / 슈퍼 캡틴 | ||
2014년 | 덤 앤 더머 투 | 로이드 크리스마스[24] | |
2015년 |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40주년 스페셜 | ||
2016년 | 다크 크라임[25] | ||
더 배드 배치 | |||
2020년 | 수퍼 소닉 | 닥터 로보트닉/닥터 에그맨 | |
2021년 |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 | 스탠리 입키스/마스크 | 카메오 |
2022년 | 수퍼 소닉 2 | 닥터 로보트닉/닥터 에그맨 | |
2024년 | 수퍼 소닉 3[26] | 닥터 로보트닉/닥터 에그맨 제럴드 로보트닉 |
5. 수상경력
연도 | 시상식 | 수상 내역 | 작품 |
1994년 | 제14회 런던비평가협회상 | 신인상 | 마스크 |
블록버스터 엔터테이너 어워즈 | 신인배우상 | ||
코미디부문 남자배우상 | |||
1995년 | 니켈로디언 키즈 초이스 어워즈 | 가장 좋아하는 무비스타상 | |
쇼웨스트어워즈 | 올해의 코미디스타상 | ||
제4회 MTV 영화제 | 코미디연기상 | 덤 앤 더머 | |
최고의 키스상 | |||
1996년 | 제5회 MTV 영화제 | 최고의 남자배우상 | 에이스 벤추라 2 |
코미디연기상 | |||
니켈로디언 키즈 초이스 어워즈 | 가장 좋아하는 무비스타상 | ||
제22회 피플스 초이스 어워즈 | 코미디언상 | ||
1997년 | 제6회 MTV 영화제 | 코미디연기상 | 케이블 가이 |
최고의 악당상 | |||
니켈로디언 키즈 초이스 어워즈 | 가장 좋아하는 무비스타상 | ||
1998년 | 제7회 MTV 영화제 | 코미디연기상 | 라이어 라이어 |
블록버스터 엔터테이너 어워즈 | 코미디부문 남자배우상 | ||
1999년 | 제5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 | 트루먼 쇼 |
댈러스-포트워스 비평가협회상 | 남우주연상 | ||
제8회 MTV 영화제 | 최고의 남자배우상 | ||
제20회 보스턴비평가협회상 | 남우주연상 | 맨 온 더문 | |
2000년 | 제5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 뮤지컬/코미디부문 남우주연상 | |
제2회 틴 초이스 어워즈 | 여름영화부문 남자배우상 | ||
최고의 이미지변신상 | |||
2001년 | 제27회 피플스 초이스 어워즈 | 코미디언상 | 그린치 |
쇼웨스트어워즈 | 올해의 남성스타상 | ||
제12회 MTV 영화제 | 최고의 악당상 | ||
제3회 틴 초이스 어워즈 | 초이스 무비 히시핏상 | ||
니켈로디언 키즈 초이스 어워즈 | 가장 좋아하는 무비스타상 | ||
블록버스터 엔터테이너 어워즈 | 코미디부문 남자배우상 | ||
2003년 | 제5회 틴 초이스 어워즈 | 코미디부문 남자배우상 | 브루스 올마이티 |
초이스 코미디언상 | |||
니켈로디언 키즈 초이스 어워즈 | 가장 좋아하는 무비스타상 | ||
제29회 피플스 초이스 어워즈 | 코미디언상 | ||
2004년 | 샌디에고비평가협회상 | 남우주연상 | 이터널 선샤인 |
제6회 틴 초이스 어워즈 | 최고의 나쁜남자상 | ||
2005년 | 인터네셔널 사인필리 소셔티 어워즈 | 남우주연상 | |
제31회 피플스 초이스 어워즈 | 코미디언상 | ||
US 코미디아트페스티벌 | AFI 스타상 | ||
2006년 | 제15회 MTV 영화제 | MTV 제너레이션상 | |
2007년 | 제9회 틴 초이스 어워즈 | 최고의 공포연기상 | 넘버 23 |
2009년 | 제11회 틴 초이스 어워즈 | 최고의 목소리연기상 | 호튼 |
제18회 MTV 영화제 | 코미디연기상 | 예스맨 | |
2010년 | 제36회 피플스 초이스 어워즈 | 코미디언상 | |
니켈로디언 키즈 초이스 어워즈 |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목소리연기상 | 크리스마스 캐롤 | |
2011년 | 신 유포리아 어워즈 | 국제부문 남우주연상 | 필립 모리스 |
골든 글로브에서의 짐 캐리 |
운이 지지리도 없는지 캐리가 명연을 했을 때는 다른 배우의 연기도 짐 캐리에 못지않게 무시무시하거나 넘사벽일 경우가 보통. <트루먼 쇼> 때는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톰 행크스, <갓 앤 몬스터>의 이안 맥켈런과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에드워드 노튼이 넘사벽 연기를 하면서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 같은 코미디 출신으로도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빌 머레이가 훨씬 높은 평가를 많이 받았다. <맨 온 더 문> 때는 <아메리칸 뷰티>의 케빈 스페이시, 허리케인 커터의 덴젤 워싱턴, <인사이더> 의 러셀 크로우가 넘사벽으로 극찬을 받으며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지 못했다.[28] 이터널 선샤인 때는 <레이>의 제이미 폭스가 넘사벽이었고 그 뒤론 <에비에이터>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훨씬 좋은 평을 들었다.
어쨌든 빌 머레이와 같이 오스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캐리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던 로빈 윌리엄스[29]가 아카데미에 총 4번 노미네이트되어, 굿 윌 헌팅으로 남우조연상을 타고, 골든 글로브에서도 남우주연상을 4번씩이나 수상한 것을 감안하면 캐리는 진짜 눈물 나는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30]에 편집상 시상자로 나와서 "예, 제가 시상자입니다. 제 볼일은 그게 답니다."라고 자학 개그를 하다가 북받쳐서 울기도 했다.[31]
6. 여담
- 동시기[32]에 라이벌 코미디 프로그램[33]에서 비슷한 비중으로 출연하여 경쟁한 바 있고 영화의 미국 내 흥행도 비슷한 라이벌 애덤 샌들러와 달리 짐 캐리의 영화는 해외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여 국제적 인지도가 높다.
-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다. 예스맨은 물론이거니와 마제스틱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뽐냈다. 비틀즈의 'I Am the Walus' 커버곡도 있다. 라디오헤드의 'Creep'도 불렀다. 영화 케이블 가이에서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omebody to Love'를 우스꽝스럽게 불렀다.
- 딸이 상당히 이른 나이에 출산을 하는 바람에 지천명도 안 돼서 외할아버지가 됐다. 만일 천수를 모두 누린다면 살아서 증손주도 볼 가능성도 농후하다.
- 대체로 일반 소시민 배역일 때는 금융권 직업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37] 사실 이런 직업은 비단 이 사람만 이런 역을 맡는 게 아니라 영화에서 클리셰적으로 소심하고 제때 할말 못 하고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인물이 갖는 걸로 자주 나온다. 너드이면서 무시당하고,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짐 캐리는 큰 키와 잘 생긴 얼굴에도 평소에 손해보면서 다소 찌질한 역할을 잘 살리기 때문에 이런 역할을 주로 맡는 것.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기자도 기자 클리셰에 맞춘게 아니라 손해보는 성격의 소시민. 물론 워낙 마스크가 좋기 때문에 라이어 라이어처럼 잘 나가는 변호사 역할도 잘 한다. 그리고 코미디에선 이런 역할로 계속 가지 않고 중반부 이후 본격적으로 망가지면서 그 전 모습과 괴리를 보여준다.
- 결혼 생활에선 굉장히 굴곡이 많은데, 첫 번째 아내는 웨이트리스 출신이며 이혼.[38] 2번째 부인인 영화 배우 로런 홀리(1963년생)[39]와도 이혼했고 2000년 영화 배우 르네 젤위거와는 약혼까지 했으나 파혼했다.[40] 2006년부터 월간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 제니 매커시(1972년 11월 1일 생)를 사귀었다. 이후 2012년부터 미국 뉴욕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23세 연하 아일랜드 출신 카트리나 화이트(Cathriona White)[41]와 사귀고 있었다. 그녀는 안타깝게도 2015년 9월, 약물 과다 복용으로 30세의 나이에 LA 인근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짐 캐리는 그녀의 장례 비용을 모두 지불했으며, 장례식에서 그녀의 관을 직접 들었다. 그런데 화이트의 모친과 전 남편이 화이트의 죽음은 짐 캐리 때문이라고 소송을 걸었다.[42] 카트리나가 남긴 자필 편지들[43]에는 짐 캐리와 사망 4일 전에 헤어졌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으며, "그 남자(짐 캐리)는 지킬 박사가 아니라 하이드 씨였다. 그가 성병과 약물을 소개해 내 인생을 망쳤다. 짐이 내 몸을 더렵혔고, 나를 모욕당하게 했다. 그는 날 창녀라 불렀으며, 기회주의자였다. 성병은 나를 하자있는 물건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라고 쓰여있어,[44] 그녀가 성병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렸음을 짐작하게 했다. 짐 캐리는 이에 대해 "나는 성병을 옮기지 않았으며, 카트리나 가족의 이 같은 행동은 오직 돈 때문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는데, 법원에 제출된 그의 2013년 진료 기록[45]에는 그가 헤르페스 1형과 2형, 클라미디아, A형 간염을 보유한 것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카트리나가 이전에는 성병에 걸리지 않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뽑았던 2011년에 발급받은 의료기록서가 허위였다는 게 드러났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친구의 의료기록서를 자신의 것인 것처럼 꾸민 정황이 드러났으며 캐리는 무혐의로 결론났다.
- 그가 코난에 나와 캐나다 유머를 가르쳐줄 때 코난 오브라이언이 대머리라고 놀리자 화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진짜 정색한 것처럼 연기를 한 짐 캐리와 진심으로 당황한 코난의 모습이 꽤나 압권이다. 이 영상을 통해 그의 연기 실력을 알 수 있다.#
- 어릴 때부터 곤충류를 공포증에 가깝게 싫어한다. 에이스 벤추라2 촬영시 무대가 곤충이 우글거리는 정글인 탓에 영화사와 심한 마찰을 빚었었다. 결국 촬영장소를 방충망으로 도배해가면서 촬영을 끝마쳤는데 그 당시 국내 영화잡지에서는 이를 두고 "겨우 벌레 가지고 난리다. 잘 나가더니 까탈스러워졌다."고 비판조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런데 짐 캐리가 후일 이 당시 상황에 말하기를, 로케이션 장소에 도착해보니 비둘기만한 나방이 날아다니고 있었다고. 이 정도면 그냥 일반인도 공포를 느낄 수준이라서, 법적문제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방적인 계약파기도 생각했었다고 한다. 사실 어떤 사람의 혐오증 내지 공포증은 단순한 근성론으로 극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국내 더빙전담 성우는 김환진이나 오세홍이지만 대체로 김환진이 전담하고 있다. 트루먼 쇼가 MBC에서 방영될 당시 안지환이 더빙했던 것과 이터널 선샤인이 SBS에서 방영될 때 성완경이 연기했던 걸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짐 캐리 영화는 김환진이 더빙했다. 코미디 이미지에 맞춘 캐스팅인지 어째 짐 캐리가 정극을 맡을 경우엔 김환진을 기용을 안하는 듯. 어쨌든 김환진의 짐 캐리는 이정구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싱크로율이 완벽할 정도로 뛰어난 편이라고 성우팬에게 회자된다. 오세홍 성우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사실상 김환진이 전속 전담 격이나 마찬가지다.
- 무한 목춤 영상으로 유명한 What is Love 영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본 영상은 SNL의 과거 유명 스케치였던 'A Night At Roxbury'의 한 에피소드로, 크리스 커턴과 윌 페렐이 함께 나온다.
- 백신에 대해서 부정적이다.[46] 단순히 주장하는 수준이 아니라 미국 내 반백신 집회에 나가 연설을 할 정도다. 이런 반예방접종 지지자들 때문에 부모가 백신 접종을 안 해줘서 매년 사망하는 어린이가 굉장히 많다. 미국에선 이게 사회적 문제 수준이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신 접종을 반드시 해줄 것을 부탁하며 본인이 직접 백신 주사를 맞는 모습을 백악관 사진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그를 싫어하는 이들이 비판하고 유튜브에서도 "짐 캐리 그 색히는 지 자식 예방접종 안해 죽여놓고 이게 수은 주사 때문이라고 큰소리 칠 바보같은 놈이죠~"라고 까는 동영상도 있을 정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전세계 확산 때 이러한 면모가 지구촌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드러나면서 전세계적인 긍정적인 인지도를 전부 잃었다. 단 짐캐리는 강제적인 백신접종으로 아들이 자폐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을 믿는 쪽이라 본인의 의지로 접종하는 이들에게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보통 백신 반대론자와 안아키같이 "모두 백신을 맞지 말자"라기 보다는 "접종에 선택권을 주자" 같은 조금 유화적인 주장에 가까운 걸로 보인다.[47]
다만 대부분의 안티백서와 달리 정치성향은 진보에 가깝다. "보수는 가난한 자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여러 번 깠었고, 지난 선거 때는 "With Obama I'll pay more but I'll sleep well(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세금은 더 내겠지만 더 편하게 잘 수 있겠죠)."라고 하면서 오바마를 지지했다.[48] 기본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는 듯하지만,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SNL에 나와 조 바이든을 까는 등[49]자기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정치인은 이념 상관없이 가차없이 풍자한다. 아무래도 정치적인 지지와 실제로 그 정치인 개인에 대한 태도는 다른 듯.
- 짐 캐리는 2000년대 후반 들어서 2~3년 만에 얼굴이 폭삭 늙어버렸다. 2000년대 중반, 즉 40대 초반일 때까지는 동안 소리도 들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 짐 캐리가 투자에 실패한 게[50] 스트레스로 작용했다는 추측이 있다.
- 아스날 FC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등장인물 짐 레이너의 전체 이름인 제임스 유진 레이너는 짐 캐리의 본명인 제임스 유진 캐리에서 따왔다. 게임 내에서 짐 레이너는 유진이라는 미들네임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짐 캐리 본인이 어렸을 때 그래왔던 버릇과 일치하기도 한다. [51]
- 말하는 속도가 빠름에도 불구하고 발음이 좋아서 알아듣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는 편이다.
- 1990년대 당시 인기에 힘입어 그의 3대 히트작인 에이스 벤추라(1995~2000), 마스크(1995~2000), 덤앤더머(1995~1996)는 모두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시리즈로 방영되었다. 전부 짐 캐리에서 파생된 캐릭터인 데다 방영 시기가 비슷하다 보니 에이스 벤추라에 마스크가 출연하는 등 크로스오버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대해 천재적이고 완벽한 작품이라며 극찬했으며, 특히 엔딩 부분에서는 자신의 아버지 생각이 나서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밝혔다. 윗 글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는 아버지와 슬픈 사연이 있다.
최근, SNL에서 조 바이든으로 분장해 도널드 트럼프로 분장한 알렉 볼드윈과 함께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선 토론을 패러디했다. 짐 캐리 특유의 과장된 리액션을 빼면 분장한 모습이나 연기하는 말투가 거의 비슷하다.
해당 영상은 4개월만에 조회수 3,000만을 넘겼고 SNL 공식 유튜브 영상 중 조회수 9위에 등극했다. 그리고 이후 승리 확정 후 조 바이든으로 분장해서 나왔다.
바이든이 당선됨에 따라 SNL에 바이든 전담 배우로 정기출연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6주간의 단기 계약의 종료로 하차했다고 한다. 후임은 SNL 크루 멤버인 알렉스 모팻(Alex Moffat).
- 원피스의 1부 시절 프랑키의 디자인은 그를 모티브로 했다는 의혹이 있다.
- The Weeknd의 5번째 스튜디오 앨범 Dawn FM에 참여했다.
- 서울 경부선터미널에 짐캐리(수하물보관운송)라는 이름의 시설이 있다. 짐을 Carry(운반) 한다는 의미에, 영화배우 짐 캐리(Jim Carrey)를 의식한 것 같다.
7. 관련 문서
[1] 2004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미국, 캐나다 모두 이중국적을 허용한다.[영문] Aldershot High School[3] “Jim Carrey,” NNDB: Tracking the entire world, 2023년 1월 22일 접속함.[4] 유튜브에서 주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예수님의 얼굴을 크게 그린 것에 대한 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다.[5] 이 진지한 멜로 연기 와중에도 간간이 얼굴 개그를 하거나 어린아이처럼 구는 개그 연기를 선보였다.[6] 미국판 검정고시[7] 그 중 클린트 이스트우드 표정 표현은 훗날 짐 캐리의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도 선보인다.[8] 짐 캐리는 3번이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의 크루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봤지만 모두 탈락했다. 최초로 오디션을 본 것은 1981년이었고 1985년 오디션에서 탈락한 후 1986년 가을에 다시 오디션을 봤지만 또 탈락하고 말았다.[9] 이지성 저『꿈꾸는 다락방』에서 소개된 일명 'R=VD 공식'이며, 타이거 우즈, 아놀드 슈워제네거 등 수많은 유명인사들의 성공비결로 제시되고 있다.[10] 당시 <In Living Color>에서 함께 출연한 배우 중에는,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린 '레이'에서 레이 찰스 역을 맡아 각종 연기상을 휩쓴 배우 제이미 폭스도 있었다.[11] 이 영화에는 무려 지나 데이비스와 제프 골드브럼이라는 제법 인지도가 있던 배우가 나왔다. 이전에도 국내에 소리소문없이 개봉했었는데 1991년에 오아시스 비디오에서 <에이리언과 지구연인>이라는 유치한 제목으로 비디오로 낸 바 있다. 물론 비디오 표지 어디에서도 짐 캐리 이름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알려지지 못한 배우였다.[12] 짐 캐리는 훗날 인터뷰에서 "나는 '에이스 벤추라가 대중이 원하는 종류의 영화가 되지 않으면 이 영화로 인해 나의 커리어가 완전히 망가질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내가 영화에 관여하기로 결정하고나서 맨 처음에 한 것은 에이스 벤추라의 캐릭터가 로큰롤처럼 강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동물 탐정계의 007 같은 존재이고 나는 그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기를 원했다. 그리고 영화의 스탭들은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라고 말했다.[13] 극장 흥행도 성공했지만 특히 2차 시장에서 대박을 거둬들였다. 비디오 시장은 물론이고 1996년에는 7th Level 사에서 어드벤처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이 게임에서도 에이스 벤추라 목소리를 짐 캐리가 맡았다.) 다만 게임이 발매된 시기인 1990년대 중반은 어드벤처라는 장르 자체가 하락세에 치닫고 있던지라 흥행에는 실패하였다.[14] 물론 위트성 발언이였긴 하지만 토미 리 존스라는 배우에게 배트맨 포에버의 투페이스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었다. 원작의 투페이스는 인간의 양면성을 가진 광기 넘치는 악당인 반면 배트맨 포에버의 투페이스는 그냥 주책바가지. 물론 리들러라는 캐릭터도 주책바가지이긴 했지만 이런 배역은 짐 캐리에게는 맞춤 배역이라 당시 토미 리 존스는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었다.[15] 제작비 4,700만 달러 및 광고비까지 합쳐 6,000만 달러를 들여 1억 200만 달러를 벌어들였기에 손익분기점 1억 2천만 달러에 도달하지 못해서 손해를 보긴 했지만 쫄딱 망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연이어 대박중이던 짐 캐리 출연의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망한 편이었고 짐 캐리에게 거액의 출연료까지 내준 터라 이 영화 배급사인 콜럼비아 픽처스의 소유주인 소니는 콜럼비아 사장이던 마크 캔튼에게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고시킨다.[16] 왜냐하면 이 짤방이 탄생한 에피소드였기 때문.[17] 이 때 같이 주연을 맡은 르네 젤위거와 사귀기도 했으나 얼마 못 가 결별하고 만다.[18] 국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재개봉하여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19] 위 Access Hollywood 인터뷰 영상의 4:17부터 4:45 참조.[20] 수퍼 소닉 3의 원작인 소닉 어드벤처 2에서 닥터 에그맨은 매우 중요한 역할인 관계로 원작 팬들은 짐 캐리가 은퇴하면 영화에 지장이 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21] 짐 캐리가 다시는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하면서 선택한 작품일 정도로 애착을 가지며 찍은 영화였다. 짐 캐리의 연기 자체는 괜찮은 평을 받았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 혹평을 받고 팬들에게까지 어울리지 않게 웬 정극이냐고 욕을 먹자 캐리는 2003년 브루스 올마이티로 재기할 때 까지 공백기를 갖는다. 감독은 쇼생크 탈출로 알려진 프랭크 다라본트.[22] 만사에 부정적이던 남자가 트레이닝을 통해 모든 것에 'Yes!'를 외치는 긍정적인 사나이로 거듭나며 생기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 영화 자체는 무난한 코미디물이며, 캐리가 한국어 강습에도 그만 예스를 해 버려서 한국어를 배우며 하던 대사인 "청주 날쒸는 어때여?"가 조금 화제가 되었다. 일각에선 "정준하 씨는 어때요?"로 들린다는 반응도 있다.[23] 이완 맥그리거와 공동 주연한 게이 코미디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아이 러브 유 필립 모리스'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때문에 홍보물에 낚여 평범한 코미디물을 보러 왔다가 게이 코미디와 노골적인 정사 시퀀스에 식겁하거나 당황한 관객이 다수 있었다. 특히 커플 관객이 많이 당황하기도(...).[24] 두 주연 배우가 출연하는 20년만의 후속편. 흥행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평가에선 전작 팬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25] 오랜만의 스크린 복귀작었지만 로튼 토마토 30여개 리뷰에서 신선도0%를 찍으며 폭망, 제한 상영으로 개봉되었으나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리스 출신인 알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 감독 할리웃 데뷔작이지만, 이걸로 망해 다시 그리스로 되돌아갔다.[26] 짐 캐리의 마지막 출연작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27] 전자는 드라마 부문, 후자는 코미디 부문.[28] 이 부분은 맨 온 더 문의 감독인 밀로스 포먼도 깠다.[29] 코미디언으로 시작, 정극 배우 연기력, 좋은 필모그라피, 심지어 탁월한 노래 실력까지.[30] 이때가 바로 트루먼 쇼때이다.[31] 물론 연기고 개그다.[32] 90년대 초반[33] 짐 캐리는 In Living Color, 애덤 샌들러는 Saturday Night Live[34] 메이킹 필름에 나온 바로는 속성으로 해당 대사만 연습한 걸로 보인다. 진정한 한국어 실력은 미지수.[35] 참고로 책상 위엔 북한의 국기인 인공기가 있다.[36] 잘 들으면 진짜로 성우 김환진 목소리랑 약간 비슷하다. 짐 캐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짐 캐리가 연기한 주인공 캐릭터 브루스 놀란의 연기를 맡은 성우이며 후술되듯이 짐 캐리의 성우를 전담에 가깝게 맡아오고 있다.[37] 마스크의 은행원, 트루먼 쇼의 보험판매원, 예스맨의 대출은행원 등등.[38] 첫 번째 아내 사이에서 낳은 '제인 캐리(1987년생, 싱어송라이터)'가 있고 그 제인이 2009년 2월 26일 손자 잭슨을 낳아 47살의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다.[39] '덤 앤 더머'의 여주인공으로 또 다른 대표작은 NCIS의 제니 셰퍼드 국장 역할을 맡았다.[40] 두 사람은 코미디 영화로 유명한 패럴리 형제의 코미디 영화 '미 마이 셀프 앤드 아이린'에 같이 출연한 후 사귀다 헤어졌다.[41] Katrina(카트리나)의 아일랜드식 이름이다. 철자만 틀릴 뿐 발음은 같으며, Catriona라 적기도 한다. 영어권 화자도 헷갈려 하기 때문에 카트리오나, 캐트리오나 등으로도 읽곤 한다.[42] 정확하게는 과다복용한 약물은 처방 진통제인데 불법적으로 짐 캐리를 통해서 약을 얻었다는 내용의 소송이다.[43] 소송 당시 증거로 제출되었다. 여기에는 짐 캐리가 카트리나 화이트와 만날 당시 헤르페스 발병에 대해 거짓말을 한 후 그녀에게 옮겼다는 주장도 포함되어 있다.[44] 짐 캐리는 카트리나 화이트에게 헤르페스 1형과 2형, 임질 등의 성병을 옮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45] 짐 캐리는 성병을 치료하면서 Jose Lopez라는 가명을 사용했다.[46] “짐 캐리는 문제 소지가 없는 것을 이슈화하기 때문에 '안티 백신'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백신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기 때문에 안티 백신이에요.”[47] 정작 본인도 홍역 등 필수 접종은 모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48] 트위터를 통하여 이러한 발언을 한 바가 있다.[49] 여담으로 상대방 도널드 트럼프는 민주당원인 알렉 볼드윈이 연기했다. 이분은 트럼프 전문 배우 수준. 여담으로 짐 캐리와 알렉 볼드윈은 뻔뻔한 딕 & 제인이라는 영화에 같이 출연한 적이 있다.[50] 짐 캐리는 2000년대 중반까지 받았던 출연료와 보너스 등을 모아서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에 투자했다. 특히 메릴린치에 많이 투자했는데 금융위기 때 메릴린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주당 3달러에 매각됐다. 당연히 메릴린치 주식을 가지고 있던 짐 캐리는 사실상 재산이 홀랑 날아가버렸다.[51] 단, 전반적인 이름과 성격은 1991년 영화, 러쉬의 동명의 주인공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