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3-03 02:03:37

백낙청

'''[[한국 문학|한국 문학사{{{#!wiki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erif'; display: i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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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colcolor=black,black> 고조선
삼국
남북국
(BC 4C~AD 936년)
<colbgcolor=#fff,#fff><colcolor=black,black> · 가요 [[고조선|
고조선
]]
파일:삼태극.svg 서정시: 공무도하가(저자미상)
[[신라|
신라
]]
파일:삼태극.svg 향가: 월명사(제망매가) · 충담사(찬기파랑가) · 처용(처용가) · 득오(모죽지랑가)
파일:삼태극.svg 한시: 최치원(추야우중)
파일:삼태극.svg 불교시: 의상(화엄일승법계도)
파일:삼태극.svg 향가집: 김위홍(삼대목)
[[고구려|
고구려
]]

파일:삼태극.svg 가요: 유리명왕(황조가)
파일:삼태극.svg 한시: 을지문덕(여수장우중문시)
[[백제|
백제
]]
파일:삼태극.svg 가요: 정읍사(저자미상)
파일:삼태극.svg 향가: 무왕(서동요)
[[가야|
가야
]]
파일:삼태극.svg 가요: 구지가(저자미상)
[[발해|
발해
]]
파일:삼태극.svg 한시: 양태사(야청도의성)
설화 · 소설 [[신라|
신라
]]
파일:삼태극.svg 단편 설화: 설총(화왕계)
산문 [[신라|
신라
]]
파일:삼태극.svg 불교: 원효(금강삼매경론 · 대승기신론소 · 판비량론)
파일:삼태극.svg 여행기: 혜초(왕오천축국전)
파일:삼태극.svg 상소문: 최치원(토황소격문)
파일:삼태극.svg 금석문: 진흥왕(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 임신서기석(저자미상) · 김○○&한눌유(문무왕릉비)
[[고구려|
고구려
]]

파일:삼태극.svg 역사학: 이문진(신집)
파일:삼태극.svg 금석문: 장수왕(광개토대왕릉비 · 중원고구려비)
[[백제|
백제
]]
파일:삼태극.svg 역사학: 고흥(서기) · 백제본기(저자미상)
파일:삼태극.svg 불교: 혜균(대승사론현의기)
파일:삼태극.svg 금석문: 미륵사지 금제사리봉영기(저자미상) · 정지원(금동정지원명삼존여래입상 금석문) · 사택지적(사택지적비)
[[발해|
발해
]]
파일:삼태극.svg 도교: 이광현(금액환단백문결)
파일:삼태극.svg 금석문: 정혜공주 묘비명 · 정효공주 묘비명
고려
(936~1392년)
· 가요 [[고려|
고려
]]
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가요: 청산별곡(저자미상) · 가시리(저자미상) · 동동(저자미상) · 쌍화점(저자미상) · 정서(정과정)
파일:고려 의장기.svg 불교: 경한(직지심체요절) · 나옹(나옹화상가송 · 청산은 나를 보고)
파일:고려 의장기.svg 불교 향가: 균여(보현십원가)
파일:고려 의장기.svg 서사시: 이규보(동명왕편)
파일:고려 의장기.svg 시조: 우탁(탄로가) · 이방원(하여가) · 정몽주(단심가)
설화 · 소설 [[고려|
고려
]]
파일:고려 의장기.svg 경기체가: 한림제유(한림별곡)
파일:고려 의장기.svg 가전체: 이규보(국선생전) · 임춘(국순전)
파일:고려 의장기.svg 설화: 최치원(저자미상) · 조신의 꿈(저자미상) · 김현감호(저자미상) · 김부식(온달 설화) · 일연(단군 신화 · 주몽 신화 · 만파식적)
산문 [[고려|
고려
]]
파일:고려 의장기.svg 역사학: 김부식(삼국사기) · 일연(삼국유사) · 각훈(해동고승전) · 이승휴(제왕운기)
파일:고려 의장기.svg 불교: 지눌(권수정혜결사문 · 원돈성불론) · 의천(천태사교의주 · 대각국사문집) · 혁련정(균여전)
파일:고려 의장기.svg 문집: 이규보(동국이상국집)
파일:고려 의장기.svg 비평: 이인로(파한집) · 최자(보한집) · 이제현(역옹패설)
조선
(1392~19세기)
· 시조 [[조선|
조선
]]
파일:조선 어기.svg 한시: 신사임당(유대관령망친령 · 사친) · 이매창(매창집)
파일:조선 어기.svg 경기체가: 김구(화전별곡)
파일:조선 어기.svg 서사시: 정인지(용비어천가)
파일:조선 어기.svg 가사: 정극인(상춘곡) · 정철(관동별곡 · 사미인곡) · 허난설헌(규원가) · 박인로(누항사) · 김인겸(일동장유가) · 정학유(농가월령가)
파일:조선 어기.svg 시조: 성삼문(이 몸이 죽어 가서) · 황진이(동짓달 기나긴 밤을) · 홍랑(묏버들 가려 꺾어) · 윤선도(어부사시사 · 오우가) · 김천택(청구영언) · 김수장(해동가요) · 사설시조(저자미상)
파일:조선 어기.svg 불교 가요: 세종(월인천강지곡)
소설 [[조선|
조선
]]
파일:조선 어기.svg 전기소설: 김시습(금오신화)
파일:조선 어기.svg 영웅소설: 허균(홍길동전) · 김만중(구운몽) · 최고운전(저자미상)
파일:조선 어기.svg 가정소설: 김만중(사씨남정기) · 조성기(창선감의록)
파일:조선 어기.svg 풍자소설: 박지원(허생전 · 양반전 · 호질)
파일:조선 어기.svg 군담소설: 임경업전(저자미상) · 유충렬전(저자미상) · 박씨전(저자미상) · 임진록(저자미상)
파일:조선 어기.svg 비극소설: 운영전(저자미상)
파일:조선 어기.svg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 · 심청전 · 흥부전 · 토끼전 · 전우치전
산문 [[조선|
조선
]]
파일:조선 어기.svg 언어학: 세종(훈민정음)
파일:조선 어기.svg 의학: 유효통(향약집성방)
파일:조선 어기.svg 교육서: 인수대비(내훈)
파일:조선 어기.svg 시문집: 서거정(동문선)
파일:조선 어기.svg 불교: 보우(권념요록) · 휴정(선가귀감)
파일:조선 어기.svg 유교: 이황(성학십도) · 이이(성학집요)
파일:조선 어기.svg 서한: 이응태 부인(이응태 묘 출토 편지)
파일:조선 어기.svg 수기: 류성룡(징비록) · 이순신(난중일기)
파일:조선 어기.svg 지리학: 이중환(택리지)
파일:조선 어기.svg 여행기: 박지원(열하일기)
파일:조선 어기.svg 수필: 혜경궁 홍씨(한중록) · 의유당(의유당관북유람일기)
파일:조선 어기.svg 실학: 박제가(북학의) · 정약용(목민심서 · 경세유표 · 흠흠신서)
파일:조선 어기.svg 도교: 홍만종(해동이적)
파일:조선 어기.svg 언해: 수양대군, 김수온 외 (석보상절) · 유윤겸 외(두시언해)
근대
(19세기 말~1945년)
· 가사 [[구한말|
조선
]]
파일: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제작 태극기.svg
창가: 이종원(동심가)
[[대한제국|
대한제국
]]
파일:대한제국 국기.svg
신체시: 최남선(해에게서 소년에게)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백조파: 홍사용(나는 왕이로소이다)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모더니즘: 김기림(바다와 나비)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저항시: 한용운(님의 침묵 · 조선불교유신론) · 심훈(그날이 오면) · 이육사(광야 · 청포도) · 이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서정시: 김소월(진달래꽃 · 초혼) · 윤동주(서시 · 별 헤는 밤) · 정지용(향수 · 유리창) · 김영랑(모란이 피기까지는)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초현실주의: 이상(오감도)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향토시: 백석(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관념시: 유치환(깃발)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카프 문학: 임화(우리 오빠와 화로)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동시: 이원수(고향의 봄 · 숲 속 나라) · 백석(집게네 네 형제)
[[이산문학|
이산문학
]]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고려인 문학: 조명희(짓밟힌 고려)
소설 · [[대한제국|
대한제국
]]
파일:대한제국 국기.svg
신소설: 이인직(혈의 누 · 은세계), 이해조(자유종), 안국선(금수회의록)
파일:대한제국 국기.svg
역사소설: 신채호(이순신전 · 을지문덕전)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계몽주의: 이광수(무정 · 단종애사)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동반자문학: 이효석(도시와 유령) · 유진오(여직공)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리얼리즘: 염상섭(삼대 · 만세전) · 현진건(운수 좋은 날 · B사감과 러브레터) · 채만식(태평천하 · 레디메이드 인생 · 탁류)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사회주의 리얼리즘: 강경애(인간문제) · 한설야(과도기) · 이기영(고향)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역사소설: 홍명희(임꺽정) · 박종화(금삼의 피)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자연주의: 김동인(감자 · 배따라기)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향토소설: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 · 김유정(동백꽃 · 봄·봄)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브나로드: 심훈(상록수) · 이무영(제1과 제1장)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초현실주의: 이상(날개)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모더니즘: 박태원(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천변풍경)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인생파: 계용묵(백치 아다다)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풍자극: 오영진(맹진사댁 경사)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신경향파: 최서해(탈출기)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탐미주의: 이태준(달밤 · 돌다리)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아동문학: 마해송(곶감과 호랑이) · 현덕(하늘은 맑건만)
산문 [[구한말|
조선
]]
파일: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제작 태극기.svg
견문록: 유길준(서유견문)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역사학: 신채호(조선상고사)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수기 · 수필: 김구(백범일지) · 여운형(조선독립의 당위성 · 동경기행) · 이태준(무서록) · 장준하(돌베게)
파일:대한민국 임시정부 국기.svg
평론: 김기진(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 · 최재서(문학과 지성) · 한효(사회주의리얼리즘 재검토 · 문학비평의 신임무)
현대
(1945년~)
· 가사 [[대한민국|
대한민국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청록파: 박목월(나그네) · 조지훈(승무 · 낙화) · 박두진( · 청산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정시: 서정주(국화 옆에서) · 이형기(낙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모더니즘: 김춘수(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천상병(귀천) · 나태주(풀꽃), 도종환(접시꽃 당신 · 흔들리며 피는 꽃) ·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 정호승(슬픔이 기쁨에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참여시: 김수영(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 · 신동엽(껍데기는 가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저항문학: 김지하(타는 목마름으로 · 오적 · 무화과) · 고은(만인보) · 신경림(농무 · 목계 장터) · 백기완(묏비나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노동문학: 박노해(노동의 새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포스트모더니즘: 허수경(혼자 가는 먼 집) · 황지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장정일(샴푸의 요정) · 기형도(입 속의 검은 잎) · 최영미(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승자(삼십세)
[[북한|
북한
]]
파일:북한 국기.svg 저항시: 반디(붉은 세월)
[[이산문학|
이산문학
]]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고려인 문학: 전동혁(박 영감)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 고려인 문학: 강태수(밭 갈던 아씨야 · 나의 가르노)
파일:미국 국기.svg 미주한인 문학: 박남수(사슴의 관 · 서쪽, 그 실은 동쪽) · 조윤호(강은 마음을 비운다) · 한혜영(검정사과농장)
[[외국인|
외국
]]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한국어 문학: 테레사 현(판문점에서의 차 한잔 · 평화를 향해 철마는 달린다)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한국어 문학: 사이토 마리코(입국 · 단 하나의 눈송이)
소설 · [[대한민국|
대한민국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전후문학: 하근찬(수난이대 · 흰종이 수염 · 야호) · 이범선(오발탄) · 손창섭(비오는 날 · 잉여인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관념소설: 이청준(당신들의 천국) · 장용학(요한 시집)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휴머니즘: 황순원(소나기 · 카인의 후예) · 조창인(가시고기) · 신경숙(엄마를 부탁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향토소설: 김동리(무녀도 · 역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모더니즘: 김승옥(무진기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풍자문학: 이강백(파수꾼 · 결혼) · 이문열(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분단 문학: 최인훈(광장) · 이호철(탈향 · 판문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리얼리즘: 윤흥길(장마 ·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현기영(순이 삼촌) · 황석영(삼포 가는 길) · 양귀자(원미동 사람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박완서(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역사소설: 박경리(토지 · 김약국의 딸들) · 황석영(장길산 · 황석영 삼국지) · 조정래(태백산맥) · 최명희(혼불) · 김훈(칼의 노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농촌소설: 한수산(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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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 오정희(중국인 거리 · 유년의 뜰) · 은희경(새의 선물) · 공지영(고등어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포스트모더니즘: 윤대녕(은어낚시통신) · 박상륭(죽음의 한 연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탐미주의: 이외수(꿈꾸는 식물 · 장수하늘소) · 마광수(즐거운 사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청년문학: 최인호(고래사냥 · 상도 · 해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SF: 복거일(비명을 찾아서) · 김초엽(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판타지: 이영도(드래곤 라자)[2] · 이우혁(퇴마록)[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장르문학: 김영하(살인자의 기억법) · 정보라(저주토끼) · 정유정(종의 기원, 7년의 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퀴어 문학: 박상영(대도시의 사랑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세대 문학: 장강명(표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성장소설: 손원평(아몬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증인 문학: 한강(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아동문학: 강소천(꿈을 찍는 사진관) · 권정생(강아지똥 · 엄마 까투리) · 김려령(완득이 · 우아한 거짓말) · 백희나(구름빵) · 이금이(너도 하늘말나리야) · 조흔파(얄개전)
[[북한|
북한
]]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문학: 김일성(꽃파는 처녀) · 홍석중(황진이) · 백남룡(벗)
파일:북한 국기.svg 저항문학: 반디(고발)
[[이산문학|
이산문학
]]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고려인 문학: 김준(십오만 원 사건) · 윤수찬(고지(告知))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 고려인 문학: 정장길(맷돌)
파일:러시아 국기.svg 사할린 한인 문학: 이정희
파일:중국 국기.svg 조선족 문학: 금희(세상에 없는 나의 집)
산문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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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수필: 윤오영(방망이 깎던 노인) · 이양하(신록예찬) · 피천득(인연) · 신영복(처음처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기행문: 유홍준(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신영복(더불어숲)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에세이: 법정(무소유) · 홍세화(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리영희(전환시대의 논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평론: 김현(한국문학사 · 행복한 책읽기) · 김윤식(문학사상방법론서설) · 백낙청(창작과비평)
[[이산문학|
이산문학
]]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 고려인 문학: 김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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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음사 오늘의작가상 수상, 일본 성운상 후보, 중국 성운상 수상, 한국과학문학상 수상, 구연정. (2024). 서구의 기술담론을 재맥락화하는 한국SF의 문학적 실험 :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중심으로. 스토리앤이미지텔링, 28, 13-37.[2] 태성 · 천재교육 교과서 등재[3] 중앙교육·대한교과서·지학사 교과서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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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은관문화훈장 약장.png
은관문화훈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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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박화성
소설가
1978
김환기
화가
1978
나운규
영화감독
1978
이중섭
화가
1978
현진건
소설가
1980
박수근
화가
1980
조치훈
바둑기사
1984
박두진
시인
1988
김광균
시인
1988
김중업
건축가
1988
이봉상†
화가
1989
조남철
바둑기사
1989
조훈현
바둑기사
1992
김영주
화가
1992
김춘수
시인
1992
장리석†
화가
1992
전광용
소설가
1992
한갑수
교수
1995
박노수
화가
1995
전왕영†
시인
1996
이창호
바둑기사
1998
김남조
시인
1999
박홍근†
아동문학가
2001
권영우†
화가
2001
박용철
시인
2001
박태현
작곡가
2001
신경림
시인
2001
유종호
문학평론가
2001
이지관
문화연구가
2001
최일남
소설가
2001
홍연택†
지휘자
2002
고은태[1]
시인
2002
김종하†
화가
2002
나춘호
출판가
2002
민경갑†
화가
2002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총재
2002
이수홍†
한국문화협회 이사장
2002
이오덕
아동문학가
2002
이형기
시인
2002
이호철
소설가
2002
정수봉†
교육인
2003
박봉석
사서, 국립도서관학교 교장
2003
신동엽
시인
2003
이종상
화가
2003
천상병
시인
2003
황병기
국악인
2004
김동혁[2]
연극인
2004
김사엽†
국문학자
2004
김서봉†
화가
2004
김충현†
서예가
2004
김희조
지휘자
2004
박연희†
소설가
2004
엄대섭†
도서관연구회장
2004
임동권†
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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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만화가
2005
김성구[3]
불교인
2005
김충실[4]
무용가
2005
전숙희
수필가
2005
이문열
소설가
2006
이규태
언론인
2006
임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
2006
한명희
국립국악원장
2006
홍기삼
교육인
2007
김주영
소설가
2007
이강덕†
종묘제례악 명예보유자
2007
안병희†
국어학자
2008
박광진
예술인
2008
오세영
시인
2008
최종태
조각가
2008
한백유[5]
화가
2009
이미자
가수
2010
김희진
무형문화재 매듭장
2010
레프 콘체비치
러시아인 한국학자, 훈민정음 해례본 러시아어 번역 공로
2010
백건우
피아니스트
2010
백성희†
연극배우
2010
장민호
연극배우
2010
전혁림
화가
2011
신영균
영화배우
2011
이수만
가수, 연예기획사 사장
2011
하춘화
가수
2011
이근배
시인
2011
해의만
국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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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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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가수
2013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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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김혜자[8]
가수
2014
김승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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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박정란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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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백[10]
희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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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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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2017
박근형
배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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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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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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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380><colcolor=#fff>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백낙청
白樂晴 | Paik Nak-chung
파일:백낙청교수.jpg
출생 1938년 1월 10일 ([age(1938-01-10)]세)
경상북도 대구부
(現 대구광역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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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본관 수원 백씨[1]
현직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사단법인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재단법인 시민방송 명예이사장
김대중평화센터 고문
창작과비평[2] 명예편집인
가족 아버지 백붕제, 어머니 최귀란
학력 서울재동국민학교 (졸업)
경기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브라운 대학교 (영문학 / 학사)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영문학 / 석사)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영문학 / 박사)
약력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창작과비평사 발간인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4. 비판
4.1. 창비와 백낙청의 기득권화4.2. 천안함 음모론 주장

1. 개요

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 정치 평론가. 본관은 수원(水原).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의 발간인이며, 1963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순수문학을 비판하고, 민족문학, 참여문학을 주창하며, 이에 대한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등 민족 문학의 폭을 넓히는데 이바지했다. 그가 제시한 민족 문학론, 분단 문학론은 대한민국 문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반독재, 반미[3] 운동 등 정치 운동에도 참여했다. 본인이 직접 나서기 보다 주로 배후에서 조정을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정치 평론, 논쟁 등에 참여하고 선거 때 후보 단일화를 주도하는 등 정치권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 생애

1938년 1월 10일 경상북도 대구부에서 고등문관시험 출신의 친일 관료였던 아버지 백붕제와 어머니 경주 최씨 최귀란(崔貴蘭)(최세진(崔世珍)의 딸) 사이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친가는 평안북도 정주군에 있었지만, 외가가 있던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 백붕제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당시에도 고위 친일 공직자였기 때문에 상당히 부유한 집안이었다.

1955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브라운 대학교 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어학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 고등학교 때 이미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경기고 재학 중 '뉴욕 헤럴드 트리뷴'이 주최하는 세계 고교생 토론 대회에 한국 대표로 선발되어 참가한 바 있다. 해당 영상은 1954년 당시 방송에 출연한 모습을 담고 있다. 여담으로 해외 네티즌들도 백낙청의 실력을 호평하고 있다.


1956년 UN이 주최한 만 17세 미국 교환 고등학생 4명 중 1명인 한국 대표로 출연했다.

브라운 대학교 졸업 당시 전체 졸업생을 대표하여 졸업 연설을 하였고,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석사를 마친 후 일시 귀국하여 군 복무를 마쳤는데, 친일명문가 자손, 미국 아이비 리그 출신이라는 남다른 배경 외에도 자진 입대한 것 때문에 지식인 사회에서 주목을 받았다. 유학이 합법적 군 기피 수단이었던 시절에 입대를 위해 귀국한 그의 사연은 1960년 한 일간지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다시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1963년 2월 4일 영문과의 이양하 교수가 타계하여 서울대에 교수 자리가 난다. 이에 귀국하여 1963년 25세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영문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현재는 없어진 제도이나 사실상 정교수가 보장된 자리이다. 197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 1월 당시 27세로 서울대 전임 강사이던 때에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태을다방 옆 문우 출판사 한 켠을 빌어 창작과비평 1호를 펴냈다. 130여쪽에 불과한 얇은 잡지에서 그는 순수문학을 “지배 계급의 오락과 실리에 이바지”하는 도구라고 폄훼, 비판하면서, 분단 현실을 극복하고 서민의 고통을 대변하며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문학과 지식인의 소명임을 선언했다. 그는 문인을 시대를 이끄는 지식인으로, 문학을 민중의 현실을 보듬는 손길이라고 주창했다.

그 후 '창작과비평' 편집인으로서 진보적 평론 활동으로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창비는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정황과 맞물려 민주화를 열망하던 지식인 사회의 통로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아르놀트 하우저가 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완역하였다.[4] 이 책은 한국의 진보 문학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1974년 10월 유신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해직되었다가 1980년 복직되었다.

1974년 11월 고은과 함께 진보 문인 단체인 '자유 실천 문인 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자유 실천 문인 협의회는 한국의 진보, 참여 문학계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잡았으며, 1987년 '민족 문학 작가 회의'로 확대 개편되었고 2007년 '한국 작가 회의'로 또다시 명칭을 바꾸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백낙청은 꾸준히 참여하면서 이사장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백낙청은 자신이 발행하는 창비와 작가회의 활동을 통해서 참여문학, 민중 문학계의 대표주자로 고은을 띄워주기 시작한다. 백낙청은 당시 성추문으로 얼룩져 있던 고은의 과오를 철저히 묻어둔 채 고은을 '우리 문학사의 우뚝한 존재, 미당 서정주를 쉽게 넘어선다.'고 찬양하여 고은을 한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문학가로 만들었다. 결국 이문열처럼 고은을 비판한 작가는 그로 인해 문인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었고 한국 문단에 백낙청과 고은을 중심으로 한 악성 파벌이 형성되어 2017년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나서야 백낙청과 고은의 오점이 재조명되었다. 그나마도 고은은 너무나 명확한 죄가 있기에 반쯤 매장당했으나, 백낙청의 경우에는 아직도 문예계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창비가 고수해온 민중ㆍ민족문학 기조는 거의 무너졌다고 보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선거 때마다 진보 지식인 사회를 대표하여 민주 개혁 진영 후보단일화를 주문한 것에 대해서도, 민주 개혁 진영이 보수 성향의 국민들로부터 오히려 외면을 받게 만든 것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일부 정치인들은 "선출되지도 않은 권력인 이른바 '진보 원로'가 왜 민주적 정당성도 없이 뒤에서 정치인들을 배후 조종하느냐"란 이의 제기를 하기도 하였다. 특히나 부친과 백부가 납북된 처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 보수로부터 받는 비판보다 진보로부터 받는 비판이 더 크다. 후보 단일화로 진보 진영을 민주당계의 '민주 개혁' 세력의 종속물로 만들고, 계급적 좌파 정치 세력보다 우파 정치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2002년 국내유일의 시청자 참여방송인 재단법인 시민방송 RTV의 이사장역할을 맡았다.(2007년까지)

2003년 교수직을 정년 퇴임하였고 현재는 명예교수이다.

정년 퇴임 이후에도 민족 문학론의 관점에서 통일운동 등의 일선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통일 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연방제 통일론'을 적극적으로 설파하여 '연방제 전도사'라고 불린다.[5]

2005년 6.15 공동 선언실천 남측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6년에는 북핵문제에 관해서 미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안전 보장을 해주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북한의 주장을 미국이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말기에 진보 좌파 계열에서 조차도 노무현 정부가 실패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노무현 개인의 스타일 때문이라는 투로 이야기했다. 그는 "참여정부에 모든 책임 있는건 아니다. 책임은 참여 정부에도 분명히 있고, 진보개혁세력에도 있고 보수적인 거대 야당이나 거대 언론에도 골고루 있다. 참여 정부의 책임 중에서도 정부의 정책 실패와 대통령 통치 스타일에 관한 부분 등을 구별해야 한다. (국민 지지도 하락에) 정부의 정책 실패도 있고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국민의 지지를 잃게 한 면도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때 범여권 후보 단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0년 서울특별시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후보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곽노현 후보로 단일화를 이끌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천안함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비판' 항목에 후술)

특히 2015년에는 신경숙표절 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표절인데도 '의도적 표절로 볼 수 없다.'며 무리하게 실드를 쳐주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다. 이때 백낙청과 창비에 대한 비판의 선봉에 선 사람이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 권성우 교수이다. #

2015년 11월 25일 창비 편집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아직도 창비 지분 31.1%를 보유한 최대 주주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데다 새 발행인, 주간, 부주간을 맡게 될 차세대 인사의 상당수가 그와 사제 관계 등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아직도 창비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그 후 공적인 자리에 등장하지 않았다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자살하자 시민대표로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제20대 대선 때에는 이재명을 지지했고#, 선거 후에도 오마이TV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이 김대중 이후의 최고의 정치지도자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퇴진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3. 가족 관계

백부가 백병원으로 유명한 백인제이다. 이복형은 인제대학교를 설립한 백낙환[6]이다.

먼 친척으론 12촌 지간의 시인 백석[7]백선엽,[8] 백종원이 있다.

원불교 여성회 초대 회장 및 사단 법인 한울안 운동의 대표를 맡은 한지현 前 광운대 교수가 부인이다. 백낙청 교수는 원불교 영어교전 번역을 주도하는 등 부인과 함께 원불교 내에서 많은 역할을 하였다. 공식적으로는 무교지만 원불교의 가르침에 매우 호의적이다.

장녀 백영경(白英瓊)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 창비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장남 백웅재(白雄在)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미식 평론가 및 전통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차남 백연재(白然在)는 호주국립대학교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4. 비판

군사정권의 서슬퍼런 칼날 속에서 저항한 공이 있으나 이와 별개로 많은 과오가 존재한다.

4.1. 창비와 백낙청의 기득권화

그가 설립한 창비는 남한의 군사 독재를 전면에서 비판하는 문학평론지로 민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북한의 세습 독재에 대해서는 분단의 모순이라는 기만적인 이론을 설파하며 합리화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이는 좌파 인사들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 때문에 비판점이라고 특정지어 표현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주로 안보 문제로) 논란과 사건사고를 일으킬 때마다 주로 다른 세력이 북한에 악영향을 준 것이라는 논점일탈을 고집하기만 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평론하는 데에는 앞장섰으나, 북한의 사회를 비판하는 것에는 함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북의 독재를 용인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은과 백낙청을 필두로 한 한국 문학계의 일부 세력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북한의 세습 독재를 옹호, 노골적인 반미주의, 동료 문인의 성추문 사건 등을 옹호함으로서 그가 평생을 추구해 왔다고 주장하는 문학의 자유화를 방해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한국 문학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또한 한국 순문학계에서 주변 문인들이 도서정가제를 강력히 추진할 동안, 백낙청은 도서정가제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입장을 표한 적이 없어 독자들의 도서정가제가 악법이라는 호소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생겼다.

신경숙 표절 사건이나 고은 성폭력 사건 파문에서 보여줬던 미온적이거나 노골적으로 문제 당사자를 편드는 태도는 백낙청 역시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4.2. 천안함 음모론 주장

천안함이 좌초 후 잠수함과 충돌했고 북한이 공격하지 않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2010년 천안함이 폭침하자 적극적으로 나서서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는 지금까지 나온 정부 발표는 모두 엉터리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안함의 침몰은 북한의 어뢰 공격 때문이 아니라 남북 대결 상태를 원하는 어떤 세력들이 침몰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일이 지시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그러한 정치적 결정을 내렸을 리가 없다며 일축했다. 천안함 사건 민군 합동 조사 결과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이 나고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가 발표되자 “이번 대통령 담화는 거의 초법적인 조치였다. (중략)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내놓은 7·7 선언 이래 남북 관계 22년의 성과를 단번에 없애버리는 것이다. 동시에 남북 관계의 발전과 맞물려 진행되어온 한국 민주주의를 다 뒤엎을 수 있는 엄청난 행위다. (중략) 박정희는 말하자면 일시불로 정변을 일으켰고, 전두환은 12.12와 5.17의 2회 할부로 헌정 질서를 뒤집었다. 이번 정권은 군사 쿠데타를 안하는 대신 5년 장기 할부제로 야금야금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라면서 일종의 쿠데타에 비유하며 극렬히 반발했다. 백낙청은 이후 각종 강연과 인터뷰에서 지속적으로 천안함 폭침의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1] 인주공파(仁州公派) 20세 낙(樂)◯ 항렬. 수원 백씨 32세.[2] 창비의 계간지[3] 정작 본인은 미국에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녔다...[4]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5] 하지만 연방제 통일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 통일반대론 참고.[6] 194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이과 을류(의예과에 해당)에 입학하여 1951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이다.[7] 여기는 같은 집성촌이다.[8] 백석과 더불어 조만식의 비서를 한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