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10:13:09

대만 프로야구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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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프로야구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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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NPB CPBL
대만의 야구 리그
구분 명칭
프로 중화 직업봉구
실업 대만 실업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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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중화민국 프로야구 리그
영문명칭 CPBL(Chinese Professional Baseball League)
주관단체 중화직업봉구대연맹(中華職業棒球大聯盟)
커미셔너 우즈양(吳志揚)[1]
리그 참가팀 중신 브라더스, 퉁이 라이온스
라미고 몽키스, 푸방 가디언즈
관련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공식 페이스북
리그 창설 1989년 10월 23일
최다 우승팀 퉁이 라이온스(9회)
최근 우승팀 라미고 몽키스(2018년)

1. 개요2. 역사
2.1. 타이완메이저리그(TML, 臺灣大聯盟)
3. 왜 이렇게 승부 조작이 만연한가?4. 리그 수준5. 시즌 운영
5.1. 페넌트레이스5.2. 플레이오프5.3. 타이완 시리즈
6. 인프라
6.1. 경기장 목록
7. 신인드래프트8. 2군 운용9. 외국인 선수
9.1. 2019 시즌 외국인 선수9.2. 한국인 선수9.3. CPBL 출신 대만인 KBO 선수
10. 현재 존재하는 팀
10.1. 과거에 존재했던 팀
11. 일본 프로야구 정기 교류전12. 기타13. 역대 우승팀14. 팀별 우승 횟수15. 관련 문서

1. 개요

대만프로야구 리그. 중화직업봉구대연맹이 관리하고 있는 대만의 프로리그이다. 엄밀히 말하면 조직 이름임과 동시에 프로야구 대회 이름으로 볼 수 있을 듯. 일단 본 위키에서는 '대만 프로야구 리그'라는 제목으로 문서를 작성한다. 현재 대만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 스포츠 리그다.

승부조작으로 리그의 존폐 위기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실례. 자세한 내용은 후술

2. 역사

대만 프로야구 리그/역사 문서 참고.

2.1. 타이완메이저리그(TML, 臺灣大聯盟)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존속했던 CPBL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별도의 리그. 심지어 양리그간 통합챔피언결정전이나 올스타전 같은 친선경기조차도 없다가 CPBL과의 경쟁에서 패해 문을 닫았다.

리그 시작부터가 막장끼가 다분했다. 니엔따이(TVIS) 방송국은 원년부터 CPBL 중계에 참여하였고, 리그 인기가 늘어나면서 대박 행진을 이어 나갔지만 1995년 중계권을 빼앗긴다. 또한 CPBL에 참여를 타진했던 SAMPO(셩바오)전자는 96년 이전의 현대그룹처럼 계속해서 리그 참여를 거절당했다.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던 양측의 주도로 아예 리그를 만들기로 한다!!![2]

셩바오와 니엔따이 방송국이 합자로 나루완[3]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리그 사무국이 구단을 소유하고 선수를 보유한 형태로 운영되었다. 미국 프로축구인 MLS와 호주 프로야구 ABL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중이다. 다만, MLS나 ABL은 리그 기반이 취약함을 인식해서 리그 사무국이 구단과 선수를 보유하는 방식이었다면, TML은 이익을 특정 회사가 독점할 목적으로 구단과 선수 보유권을 독점했다.

구단을 리그가 소유하고 있으니 구단명도 CPBL과 차별을 두고자 했다. 리그 참여팀은 台北太陽(타이베이 연고), 台中金剛(타이중 연고), 嘉南勇士(자이+타이난 연고로 자이를 홈구장으로 사용), 高屏雷公(가오슝+핑둥 연고로 가오슝을 홈구장으로 사용) 4개팀이다. 리그의 태생부터가 CPBL에 대한 적대감으로 시작했던지라 CPBL 소속 선수들의 계약을 파기시키고 빼오는 형태로 리그의 세를 키워나갔다. 마침 1997시즌 CPBL에서 승부조작이 터지면서 TML의 인기도 상승하였다.

미디어그룹이 운영하는 리그 답게 로고 사용권이나 명명권을 마구 팔아제끼면서 현재 KBO의 히어로즈처럼 팀명을 계속 바꿀 수 있게 했다. 타이중 진강의 경우 台中金剛(1997)-台中中纖金剛(1998)-台中金剛(1999)-台中媚登峰金剛(2000-2001)-台中宏碁金剛(2002)로 거의 매해마다 팀명을 바꿨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에 기록된 구단명 변천 과정 참고. 사실 초반에는 스폰서가 잘 붙지 않아서 리그 주관사인 니엔따이가 3년간 자난 루카(嘉南勇士)의 스폰서로 참여했다. 또 다른 주축이었던 셩바오는 4년간 타이베이 타이양(台北太陽)의 스폰서로 참여하다가 리그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후 타이베이 타이양을 스폰서 한 팀은 후에 청타이 코브라스를 창단하는 청타이은행이었다.

선수들의 계약 또한 개별팀이 아닌 리그 사무국에 묶여 있었고 전력 균형을 이유로 리그내에서 자유롭게 팀을 이적하지 못했다. 6시즌 동안 3개팀이 우승을 맛보았고, 우승하지 못한 가오핑도 준우승만 3번한 팀이었다. 팀명도 자주 바뀌고 명문구단도 없이 고만고만한 팀들만 모인 리그의 인기가 좋을리가 없었다.

이 당시 인구 2300만의 대만 프로야구팀은 무려 11개나 되어 과당경쟁 형태가 됐고, 인기나 수익 측면에서 밀린 TML 측이 먼저 손을 들었다. 사실 평균관중수는 TML이 많았지만 그래봐야 경기당 3,000명 수준, 97년 블랙이글스스캔들로 넉다운된 CPBL의 관중이 1/4로 급감해버린 경기당 1,500명 수준의 리그와 비교는 의미는 없어보인다.

4개팀은 나루완 타이양과 제일은행 진강의 팀으로 합병하여 CPBL에 2003시즌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이 후 양팀은 마코토 코브라스라뉴 베어스로 명백을 이어가다 마코토를 인수한 디미디어는 인수 1년만에 해체를 하면서 라미고 몽키스만이 그나마 지금의 라미고가 TML이 꿈꾸었던 이상에 가장 가깝다고 해야할런지 TML의 흔적을 겨우 겨우 보존하고 있다.

3. 왜 이렇게 승부 조작이 만연한가?

우승팀에서 최하위 팀까지 모두 짜고 쳤고, 치고 있고, 앞으로도 칠 예정이고, 팬들도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다(…). 참으로 괴이한 신뢰 관계 ㅎㅎ

대만은 인구가 약 2370만으로 한국의 절반에 불과한 데다가, 경제개발 과정에서 대기업 보다는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했기 때문에 한국,일본과는 다르게 자국 브랜드의 소비재 대기업이 적다. 그나마 오너가 혐한으로 알려진 포모사폭스콘 같은 몇 안되는 대기업들도 스포츠단 운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실업축구나 농구도 경제 규모에 비해 리그 참가팀이 적다. 대기업이 홍보목적으로 스포츠팀을 운영하는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언급한대로 대만의 대기업들은 B2B 생산재 기업(TSMC 등)이여서 개인상대 브랜드홍보를 할 필요가 없던가, 소비재 기업이라도 외국브랜드로 사업하는 경우[4]가 많아서이다. 한국에서도 삼미그룹프로야구팀 운영했다가 매각한 것 또한 개인상대 홍보가 필요 없는 B2B 기업이라 투자 대비 효과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중소기업이 주요 스폰서인 CPBL의 특성상 연봉은 KBO의 1/3 정도 규모 밖에 안 된다. 선수들 유니폼에는 포뮬러 1처럼 스폰서가 덕지덕지 붙어있는건 기본이고, 슝디 엘리펀츠가 중신 그룹에 매각되기 전까지 메인 스폰서는 놀랍게도 타이페이에 있는 슝디호텔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그냥 넥센, 쌍방울, 말기 현대, 해태보다 못하다고 보면 된다. 이건 그냥 실업야구 수준. 한희민의 증언에 따르면 원룸에서 숙소 생활을 했다고 한다.

2010년 기준 연봉이 한화 1억 원 이상인 선수가 판웨이룬(퉁이), 천진펑(라뉴) 2명 밖에 안 된다. 참고로 2017년 KBO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는 무려 158명. 주전급의 연봉이 아무리 높게 잡아도 4~8천만원 대에서 형성. 대만의 이치로라고 불리며 국제 대회에서 한국을 상대로도 맹타를 휘두르고 통산 타율이 3할5푼인 강타자 펑정민도 연봉 1억이 안 된다. 게다가 대만의 물가가 낮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집세는 결코 싸지 않다. 이런 구조 덕분에 선수들이 승부 조작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 밖에 없다고 분석되기도 한다.

2019년 대만 리그에서 잠깐 뛴 헨리 소사는 대만 리그에서 받던 돈은 한국 리그의 1/4 수준이었고 숙소도 한국 모텔급이라고 한국에 뛰다가 대만에서 뛰자니 너무나도 인프라가 차이가 났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만 사회에 깊게 개입하고 있는 삼합회의 존재는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1997년에 터졌던 검은 독수리 사건으로 제명된 선수들이 삼합회에 입회한 뒤 브로커(숙주)가 되어, 이전의 동료 선수들을 다시 끌어들이는 악순환의 연속이다.[5] 이런 이유로 선수들이 묵는 호텔에 경호원들이 상주하여 외출을 통제한다. 통행금지

또한, 2007년에는 타이완 국민당의 거물급 정치인인 우젠바오가 뇌물 수수혐의로 수사를 받던도중 승부조작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포착해 이를 조사한 이후 구속을 시켰는데 심지어 정치인까지 이러한 승부조작에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괜히 승부조작항목에 과거, 현재, 미래가 암울하다고 나온 게 아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조작이 있을수 없는데다가 타 국가 프로야구팀에서 뛰는 천웨이인[6]이나 왕젠민[7], 궈홍치[8]과 같은 선수들이 있어 전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국가대표야구의 인기는 도리어 상승했다. 문제는 이 선수들의 팀이 안놓아줘서 문제이지... 당연한지는 몰라도 대만의 야구 그 자체로써의 인기는 상당히 높기 때문에 MLBNPB의 인기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2008 올림픽에서 중국에게 패배한 뒤에 국가 차원에서 승부조작 의혹이 나타난걸 보면 국가대표 야구도 승부조작의 안전지대는 아닌 듯하다. 안에서 깨진 바가지가 밖에서 안 깨질리가 없다고, 해외리그의 몇몇 선수 제외하면 다들 국내리그에서 승부조작에 노출되어 있었던 선수들이니... KBO는?

심지어 대만에서 열린 2013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호주의 캔버라 캐벌리 팀이 조작 세력으로부터 매수 시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승부조작이 만연하다 보니 대기업들도 이미지가 실추될까봐 리그 참여를 꺼리는 편. 대만의 승부조작 세력은 전직 프로선수나 전직 야구 프런트가 주도했고 이 사람들을 화교 네트워크를 통한 범지구적 범죄조직들인 삼합회 조직들이 몽땅 흡수해버렸기때문에, 대만의 행정력으로도 다 잡는게 어렵다시피하다.

다행히도 리그 평균 관중수도 늘고 있고 대기업이라고는 20대 기업에 속하는 원년 참가팀 퉁이그룹만 있었지만 지금은 대기업들도 속속 참여하고 있다. 2014년 10대 그룹에 드는 중신금융지주의 참여(슝디호텔이 모기업이었던 엘리펀츠를 인수)[9], 2017년에는 대만 5대 그룹에 드는 푸방금융지주가 리그에 참여(가오슝 기반 중견그룹 e-united가 모기업이었던 라이노스 인수)하여 이제는 대기업들이 참여하는 리그가 되었다.

결국 2018년 호주리그 총재 켐 베일이 호주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5구단으로 참여시키는 공식 제안을 했다. 이에 대해 대만 프로야구 리그는 논의를 거쳐 최근 2020-21년 경 대만 2군 리그에 호주 팀을 참가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와 별개로, 질롱 코리아 처럼 대만 선수들로 이루어진 호주 리그 팀을 창단하여 2019년 이후 호주 리그에 참여하는 것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 한자리수이긴 하지만 다수의 대만 선수가 호주 리그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성사 가능성이 높다.

또한 2019년에는 웨이취엔 드래곤스가 재창단을 발표하며 2020년 2군 진입, 2021년 1군 진입을 발표했다. [10] 4월 말까지 공식 서류가 접수되면 본격적으로 창단 준비가 될 듯 하다.

4. 리그 수준

어째 다른 방면으로 더 유명해졌지만, 사실 CPBL의 리그 수준도 높은 편이 아니다. 1994년 당시 한국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CPBL에 진출한 한희민에 따르면 초창기 한국프로야구보다 좀 더 아래.[11] 시스템 자체도 엉망이었고 타 팀에 대한 정보 수집 및 전략 분석의 개념이란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모르지만 용병들 중 선수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지피기 위해 대만 리그로 진출하는 선수[12]들도 상당수 많다.

현재 대만 야구의 수준은 아주 단적으로 말해서 AA 급에서 밀려난 투수가 1~3선발이 되는 리그이다. 예를 들어 1군에서 뛰어본 적이 없던 KT 창단멤버[13] 마이크 로리, KBO에서 3선발 수준의 투수였던 지크 스프루일, 배팅볼러 수준으로 중간에 퇴출당한 닉 에디튼 등이 정상급 투수가 되었고, 삼성에서 후반기 데드암 징후를 보이며 재계약에 실패한 알프레도 피가로 등이 CPBL에 스카우트되어 뛰기도 했다. 최근에도 고령으로 더이상 팀을 찾기 어려운 앤디 밴 헤켄 역시 2018년 CPBL에 진출했고 2019년에는 헨리 소사가 대만으로 향했다. 이외의 다른 외국인 투수들 역시 A~AAA 레벨에서 더 이상 팀을 찾지 못하고 애틀랜틱 독립 리그와 같은 A~AA 수준의 독립 리그에서 괜찮은 활약을 한 후, 선수 생활의 마지막 돈벌이로 택하게 되는 리그가 되어버렸다.

대만 태생의 선수 중에서도 한 때 마이너리그에서 뛰었고, 메이저리그를 한 번쯤 밟았던 선수들이 나이를 먹어서 돌아오면 리그 최고 수준 선수가 된다. 2000년대 중후반의 서재응, 봉중근 같은 케이스가 좀더 극단적인 수준으로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 다저스 메이저를 밟았던 후친렁, 궈홍츠, 대만 계투로 가장 이름을 날린 전직 메이저리거 니푸더 등이 아직도 주요 타자나 마무리 투수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의 평에 의하면 싱글A 수준이라고 하는 듯.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을 참고해볼때 비교적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KBO 리그/리그 레벨차 논쟁에 약간이나마 더 자세한 내용이 있으니 참고.

4.1. 아시아 시리즈

그런데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이상하게 한국과의 전적이 좋다. 2006년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삼성 라이온즈가 라뉴 베어스에 패하고[14], 2008년 아시아 시리즈에서에서는 퉁이 라이언스가 SK 와이번스정대현을 10-4로 이기는 바람에 야갤에선 우주최강 퉁이 라이온즈라고 칭송받았다.

거기에 2010년 대만/한국 챔피언쉽에서는 슝디 엘리펀츠가 다시 SK와 송은범을 끝내기 안타로 패배시켰다. 하지만 이틀동안 슝디 마운드에는 대만 투수는 한명도 올라오지 않았다. SK 선수들이 대만팀하고 상대를 한건지 대만타자들로 구성된 중남미 팀하고 겨룬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을 정도. 그 덕분에 대만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에 진출하고 싶어서 잘 치고 잘 던진다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15] 당장 위에 예시로 설명해놓은 케니 레이번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 경우였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위의 송은범이 끝내기 안타를 맞고 진 날 슝디 엘리펀츠의 선발 투수였던 올랜도 로만은 결국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하여 일본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타자들이 끈질기게 투수를 잘 공략하고 시프트를 잘 짜놓았던 것을 보면 이번 경기만큼은 그래도 전력분석이란 걸 한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CPBL에서 SK 와이번스의 데이터를 슝디 엘리펀츠에게 건네줬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에서 열린 2012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라미고 몽키스가 삼성 라이온즈를 3:0으로 완봉패시켰다. 그런데 6년전 이 대회에서 패배를 안겨준 옛 라뉴 베어스가 바로 이 라미고 몽키스이다. 이 때 마이크 로리 선수의 완투가 주목받기도 했다. 제2의 케니 레이번? 참고로 로리는 2011년 넥센 히어로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낙방된 선수였지만 2014년 KT 위즈의 외국인 선수로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대만 클럽 전체로 보면 아시아 시리즈에서 콩라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가 5대회만인 2011년에 한국 클럽으로서는 최초로, 동시에 비(非) 일본 클럽으로서도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으면서 대만 클럽들에게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겨 주었으나, 이듬해 삼성을 꺾고 결승에 올라온 라미고가 일본 대표로 나선 요미우리 자이언츠한테 3:6으로 패배하며 또 다시 우승 실패, 2년만에 또 자국에서 열린 2013년 대회에서 EDA 라이노스(구 싱농 불스)는 2전 전패로 조별예선에서 광탈하였고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가 조 2위로 준결승에 오른 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꺾고 결승에 올라 전날 삼성을 연장 끝에 꺾고 올라온 캔버라 캐벌리(호주)를 만나며 대만 클럽의 사상 첫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으나, 캔버라의 돌풍은 결승에서도 거세게 불어닥쳤다. 4:3으로 이기고 있다가 7회와 8회에 거하게 털리며 4:14로 대패하면서 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이로써 대만 클럽은 아시아 시리즈에서 우승 없이 준우승만 벌써 4번째.

이 와중에 대만의 승부조작 세력이 캔버라 선수들에게 접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명불허전 다행히 승부조작 제의를 받은 선수들이 조작을 하지 않고 대만 경찰 측에 신고하면서 진상이 밝혀졌다.관련기사

5. 시즌 운영

5.1. 페넌트레이스

연도 진행 방식
1990년
~1992년
전, 후기로 시즌을 나눠[16] 전후기 각각 원년 리그 참가팀 4구단[17]이 팀간 15시합을 치뤄 모두 45시합, 전후기 총합 90시합을 치룸.
1993년
~1994년
리그 참가팀이 6구단으로 늘어나면서[18] 전, 후기 각각 팀간 9시합을 치뤄 모두 45시합, 전후기 총합 90시합을 치룸.
1995년
~1996년
전, 후기 각각 팀간 10시합을 치뤄 모두 50시합, 전후기 총합 100시합을 치룸.
1997년 리그 참가팀이 7구단으로 늘어나면서[19] 전, 후기 각각 팀간 8시합을 치러 모두 48시합, 전후기 총합 96시합을 치룸.
1998년 전후기리그 제도에서 단일리그 제도로 규정이 변경되었으며, 스바오 이글스작년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1년간의 리그 참가정지 처분을 받아 리그 참가팀이 6구단으로 줄어들면서[20] 팀간 21시합을 치뤄 총합 105시합을 치룸.
1999년 상술했듯이 스바오 이글스가 1998년 9월 해산하면서 리그 참가팀이 정식으로 6구단이 되었으며, 팀간 20시합을 치뤄 총합 100시합을 치룸.
2000년
~2002년
다시 전후기리그 체제로 규정이 변경되었으며, 리그 참가팀이 4구단으로 줄어들면서[21] 전, 후기 각각 팀간 15시합을 치뤄 모두 45시합, 전후기 총합 90시합을 치룸.
2003년
~2008년
리그 참가팀이 6구단으로 늘어나면서[22] 전, 후기 각각 팀간 10시합을 치뤄 모두 50시합, 전후기 총합 100시합을 치룸.
2009년
~현재
리그 참가팀이 4구단으로 줄어들면서[23] 전, 후기 각각 팀간 20시합을 치뤄 모두 60시합, 전후기 총합 120시합을 치룸.
2009 시즌 이후로는 팀별로 주중 2경기, 주말 3경기를 치룬다. 주중 경기는 화요일, 목요일 2연전 혹은 수요일, 목요일 2연전 경기로 편성하고 주말 경기는 금, 토, 일 3연전 편성한다. 리그 전체로는 화요일과 수요일에 한 경기, 목요일에서 일요일은 두 경기씩 편성된다. 우천 연기가 많아 전기리그는 6월 중순에 연기된 경기를 편성하고 후기리그는 10월에 연기된 경기를 편성한다.

과거에는 일본프로야구처럼 잡다한 출장 경기가 많았으나, 마케팅 문화가 조금씩 자리잡으면서 홈구장에서의 경기가 거의 대부분으로 바뀌는 추세다. [24]

5.2. 플레이오프

1998년
~1999년
시즌이 전/후기로 나뉘지 않고 단일시즌으로 치뤄진 유일한 시기이며, 시즌 승률 2, 3위 팀이 2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뤄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시즌 승률 1위 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룬다.
2005년
~2008년
전/후기 우승팀이 다를 경우, 전/후기 우승팀 중 시즌 승률이 낮은 팀과 전/후기 우승팀 이외의 팀들 중에서 시즌 승률이 가장 높은 팀(와일드카드 획득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뤄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 중 승률이 높은 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루며, 전/후기 전부 같은 팀이 우승했을 경우엔 시즌 승률 2, 3위 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뤄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2009년
~현재
전/후기 우승팀이 다를 경우, 그 중 한 팀이 시즌 승률 1위일 경우엔 전/후기 우승팀이 타이완 시리즈에 출장해 최종승자를 겨루며, 어느 팀도 시즌 승률 1위가 아닐 경우[25]엔 전/후기 우승팀 중 시즌 승률이 낮은 팀과 시즌 승률 1위 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뤄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 중 승률이 높은 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전/후기 전부 같은 팀이 우승했을 경우, 시즌 승률 2, 3위 팀이 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뤄 플레이오프 우승팀이 전/후기 우승팀과 타이완 시리즈에서 격돌해 최종승자를 겨룸. 이때 전/후기 우승팀에겐 타이완 시리즈에서 1승 어드밴티지를 준다.

역대 플레이오프 개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승패 현황의 기호는 우승팀을 기준으로 한다. 참고로 아직까지 플레이오프에서 무승부가 나온 적은 없다.
연도 우승팀 패전팀 전적 승패 현황
1998 웨이취엔 드래곤스 퉁이 라이온즈 2 - 1 XOO
1999 웨이취엔 드래곤스 퉁이 라이온즈 2 - 1 XOO
2005 청타이 코브라스 퉁이 라이온즈 3 - 1 OXOO
2006 퉁이 라이온즈 싱농 불스 3 - 0 OOO
2007 퉁이 라이온즈 청타이 코브라스 3 - 0 OOO
2008 슝디 엘리펀츠 라뉴 베어스 3 - 0 OOO
2017 중신 브라더스 퉁이 라이온즈 3 - 1 OXOO
2018 퉁이 라이온즈 푸방 가디언즈 3 - 1 OXOO

5.3. 타이완 시리즈

타이완 시리즈의 자세한 설명에 대해선 항목 참조.

타이완 시리즈는 전/후기 우승팀끼리 맞붙을 시에는 7판 4선승제이고 한 팀이 싹슬이해서 플레이오프를 치를 시에는 싹쓸이한 팀에게 1승을 부전승으로 준다.[26] 즉 라미고가 전기/후기 리그를 다 우승한 2017 시즌같은 경우는 6판 4선승제. 구장의 경우는 전/후기 우승팀 끼리 맞붙을 시에는 승률이 높은 팀이 1/2/6/7차전 홈구장 자격을 갖는다. 한 팀이 싹쓸이 한 경우는 그 팀이 1/2/5/6차전에서 홈 경기 개최권을 가지며 플레이오프 승리팀은 3/4차전 홈 경기 개최권을 갖는다. 홈경기 개최권을 가졌다고 홈구장에서 경기하는건 아닌데 항목 참고.

6. 인프라

2000년대까지 국내에는 대만야구장 인프라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실상 2000년전까지만 해도 20,000석 이상은 커녕 프로구단 홈구장 좌석 수는 15,000석이하였다.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정규야구장은 딸랑 하나에 그나마 14,000석의 타이베이시립야구장이 전부였다. 이 야구장도 2000년에 사라지면서 타이베이 시내에는 야구장이 전무한 상태가 됐다. 타이베이시 홈팀 경기는 타이베이현(현.신베이시)에 있는 7,200석 규모의 신좡야구장[27]과 원래 아마추어 용도의 6,000석으로 계획된 텐무야구장[28]에서 분산 개최되었는데, 티엔무는 목동야구장처럼 주변이 주거지라 주말에만 경기가 열리는 등 프로야구에 쓸만한 구장이 태부족이다.

한국 언론에서 대만의 야구장 인프라를 집중 찬양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2014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 전까지다. 대만이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연달아 5개의 야구장을 신축하는 동안, 우리는 안전성마저 의심되는 노후화된 야구장을 프로야구 메인 홈구장으로 삼았다. 국제정세상 올림픽월드컵 등 국제대회를 유치할 수 없었던 대만은 아시아야구연맹 본부를 유치하고 각종 국제 야구대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1999년 가오슝, 2006년 타이중, 2010년 타오위안에 20,000석 규모의 야구장을 개장했다. 대만에서는 약 5년 간격으로 신규 야구장을 개장하는 동안 우리는 약 15년 간격으로 신규 야구장을 개장하다 보니(1985년 부산 사직, 2002년 인천 문학, 2014년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 당시 대만의 잇따른 야구장 신축을 부러운 시선으로 봐야만 했다.

하지만, 이 시절 만들어진 5개 야구장(1997년 신좡야구장, 2005년 더우류 야구장 포함)의 특징은 국제대회를 위해 만들다보니 모든 구장이 중앙은 400ft, 좌우는 330ft로 동일한 쿠키커터 야구장이다. 국제 경기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대전야구장보다 못한 편의시설, 잠실야구장 수준의 좌석 간격과 배치를 보여 프로야구 홈구장에는 최적화가 되어있지 않다.[29] 관중석도 20,000석 넘는 구장이 없어 큰 경기시에는 표를 구하기 쉽지 않은 단점도 있다. 2014년 이후로 우리도 새로운 야구장들을 다수 개장하면서 한국 언론들은 더 이상 대만 야구장의 인프라를 띄우지 않는 편이다.

2018년부터 KBO 리그에서 뛰는 왕웨이중 덕분에 KBO 리그에 관심이 큰 대만 야구 팬들이 KBO 리그 경기를 인터넷으로 시청하면서 쓴 글만 봐도 경기장 시설이나 이렇게 고화질로 중계하는 한국에 견주면 우리 대만 야구리그가 참 인프라가 개판이라는 걸 알겠다고 한탄할 지경이다. 미국이나 일본이야 넘사벽이지만, 한국을 이렇게 보니 한국조차도 넘사벽이라고 할 지경.그런데 왕웨이중은 CPBL에서 뛴 적이 없다 더웃긴건 그 좋다는 야구장이 2018년 가장 낙후된 야구장중 하나인 마산야구장.

물론 순수 야구장 인프라 자체는 대만이 단연코 우월하다. 초등학교도 야구장을 갖춘 곳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12,000석 이상의 야구장은 6개로 한국보다 열악하다. 심지어 매해 정규리그 경기가 열리는 화롄야구장은 5500석의 관중석 만을 갖추고 있다.

6.1. 경기장 목록

A급 구장(국제경기 및 정규경기용)
B급 구장(프로경기 및 실업경기용)
경기장 등급은 2016년 대만 교육부 체육서에서 분류한 것이다. 2016년 새로운 분류에 대해 팬들은 왜 텐무 야구장이 A급으로 지정되고, 더우류 야구장이 B급으로 지정되었는지 의문을 표한다. 위에 서술된 8개 야구장 외에도 신주왕정치야구장, 자이현립야구장, 핑둥야구장, 화롄야구장, 타이둥야구장에서 매해 10경기내의 정규리그 경기가 편성된다.

7. 신인드래프트

KBO 리그와 비슷한 시기에 드래프트를 한다. 해외 계약예정자 등은 제외하고, 일본처럼 신청자에 한해서 드래프트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31]

어느 해에는 14명을 지명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해에는 겨우 6명밖에 지명 안하는 해도 있다. 팀 마다 지명자 수도 다르며, 획일적이지 않다. 특정 라운드에서 팀이 지명 종료를 자체적으로 선언할 수 있다. 단적으로 2018 드래프트에서는 4개 팀이 각각 10, 8, 7, 7 라운드까지 지명하였다.

순서는 한국처럼 성적 역순으로 지명하며, 1차 지명부터 바로 성적 역순으로 순차적으로 지명한다. 지역구 내에서 자유계약 형식으로 1차지명을 하는 한국이나 중복지명이 가능해서 중복지명 시 추첨으로 결정하는 일본프로야구와의 차이. 그래서 만약 대어가 들어오면[32] 1픽을 가진 구단에게는 좋은 일이 된다. 해외파 출신이라고 해서 따로 페널티는 없는데, 예를 들어 2018년에는 바로 몇일 전 마이너리그에서 퇴단한 C.C.Lee(리첸창)이 드래프트장에서 2라운드에 지명을 받기도 했다.

KBO와는 다르게 2013년부터야 고졸이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게 됐고[33] 드래프트 참가자들을 보면 3/4정도는 여전히 대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졸 출신의 유망주들이 바로 프로에 진입하고 있으며, 이 선수들이 최근 CPBL의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어 향후 경향은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자국 리그의 규모가 프로리그지만 작은 편이고, 승부조작 등으로 자국 야구리그보다 해외 야구나 국가대표 야구가 더 인기많은 대만 특성상 지명을 거부하고 해외로 나가는 선수가 꽤 많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뛰는 쏭지아하오. 원래 2015년 드래프트에서 퉁이 라이온즈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았지만 지명을 거부하고 육성선수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진출했다. 그리고 2017년 정식선수로 승격하는데 성공하면서 1군을 밟았다. 다만 최근 들어 양질의 대만 선수들의 진로가 다변화되고, 이에 맞춰 타이완 구단들의 계약금 역시 소폭 상승하여, 역시 경향은 바뀔 수 있다.

또다른 특징으로는 9월에 한 학년이 시작하는 대만 특성상 9월부터는 드래프트된 선수가 바로 1군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7년 드래프트에서는 쌍둥이 선수가 같은 팀에 지명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중 한 선수는 1차 1라운드, 즉 전체 1순위로 뽑혔다. 계약금은 역대 최고급 중 하나인 3억 5천만원이라고 한다.[34]

8. 2군 운용

다소 특이한 방식의 2군 리그 운용을 하고 있다.

2006년 6개팀 중 라뉴 베어스와 퉁이 라이온스의 2개 팀 2군과 실업팀들이 2군 리그에 참여하면서 2군 리그가 시작됐다. 유일하게 전용 연습구장을 가지고 있던 슝디 엘리펀츠도 2008년에서야 2군 참여를 시작하였고, 2009년부터는 아마추어팀 참여 없이 2군 리그가 진행되었다. 전국을 순회하며 다녔던 1군 처럼 홈구장에 정착하지는 못한채로 경기를 가졌다.

그러다 2014년 부터 전 팀 모두 타이완 남부 지역에 모여 훈련하는 것을 골자로 2군 리그 전 경기를 남부지방에서 치르고 있다. 핑둥시에 있는 핑둥야구장을 주 경기장으로 하고, 보조구장은 핑둥야구장에서 가까운 중신 브라더스 소유의 야구장인 중신공익파크로 하여 2군 경기의 절반 이상을 소화하고 있다. 나머지 경기는 현재 연고 구단이 없는 가오슝과 퉁이 라이온즈 1군이 사용 중인 타이난시립야구장에서 소화하는 형태로 운용하고 있다. 2015시즌 이후 리그 전체로 보면 2군 경기는 매주 6경기, 즉 하루에 딱 1경기만 열리는 셈. 즉, 각 팀은 일주일에 3경기씩만 치루며 구단별로 시즌 72경기를 치룬다.

2군의 출범은 많이 늦었고 구단들 또한 구단 전용 연습장을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지만[35] 대만 2군 연합팀, NPB 2군 연합팀, KBO 2군 연합팀 등이 경기를 치르는 아시아 윈터 베이스볼 리그를 의욕적으로 주도하는 등 2군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는 중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2019 시즌에는 호주 연합 팀이 참가하여 5팀이 리그에서 경기를 한다.

9. 외국인 선수

외국인 선수 쿼터가 NPB와 비슷하다. 2군에는 무제한 보유가 가능하며, 1군에는 그중 3명만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용병을 많이 영입하여 2군에도 외국인 선수가 상당수 있는 NPB[36]와는 달리 CPBL에서는 외인을 3~4명만 영입하고 그 3명을 계속 1군에서 돌리는 방식의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다.[37] 이 이유는 대만프로야구의 규정 때문이다. 대만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를 1군에 올릴 때 등록 절차를 거친다. 이렇게 등록 절차를 거친 선수는 한 시즌에 두 번 까지 2군에 내릴 수 있다.[38] 그리고 구단이 1군에 처음 등록한 3명의 선수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가 생겨서 대체 용병을 1군에 올리고자 할때는 3명 중 한 명을 '등록 취소' 해야하는데 대만프로야구 규정상 외국인 선수의 1군 등록 취소는 방출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대만프로야구는 외국인 선수가 맘에 안 들면 2군 보유량이 무제한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방출하고 대체용병을 영입하는 것. 그래서 외국인 선수를 많아봤자 4명만 영입하는 것.

또한, 투수 몰빵 영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2018년 현재 타자 용병은 1명도 없고, 모두 선발 투수 만으로 외국인 쿼터를 운영하기 때문에 투수 랭킹 1~10위 안에는 1~2명을 제외하고는 항상 외국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2019년에 중신 브라더스가 타자 용병(에릭 우드)을 영입하면서 3년 만에 대만프로야구에 타자 용병이 생겼다. 이 에릭 우드는 감독과의 불화 문제로 개막하자마자 팀을 떠났으나, 에릭 우드의 대체용병 역시 타자 용병이었고, 라미고 몽키스에서도 로저 버나디나를 영입하면서 다시 타자용병이 부활했다.[39]

리그 수준 차이 때문인지[40], NPB와 KBO는 대부분 최소 메이저리그 데뷔 경험이 있는 선수를 주로 뽑는 경향이 큰데, CPBL은 주로 붙박이 마이너리거나 독립 리그, 멕시칸 리그 선수를 많이 뽑는다.[41] 심지어는 AAA조차도 못 밟은 선수를 데려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신 브라더스에서 2017년에 뛴 릭 티슬리A+도 못 밟았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들도 있기는 하나, 그런 선수들은 대개 NPB나 KBO에서 실패해서 미국에 가도 다시 메이저에 갈 가능성이 없는 선수들. 근데 올스타급 메이저리거가 와서 뛰었던 적도 있다. 2013시즌에 매니 라미레즈가 3개월간 뛰었다. 퇴출된 건 아니고 계약이 딱 3개월. 재계약 제의를 받았지만 본인이 거부했다.

그래서 선수들 연봉도 일반적으로 15만 달러 안팎에서 형성된다. 예를 들어 2019년 리즈, 소사 등 미국과 한국에서 적절한 실적을 거두었던 선수라도 월봉 2-3천만원대, 즉 연봉 20만달러 이내라고 한다.[42] 60~70만 달러는 기본으로 받고 그 이하를 받는 용병이 오면 한숨 쉬는 KBO와, 즉전감 용병들은 못해도 100만 달러는 받는 NPB와 비교하면 액수가 매우 초라하다.하지만 도미니카같이 물가가 싼 나라 용병들은 대만에서 1년만 뛰어도 자국에서 수십년 일해야 벌 돈 버는게 함정[43] 또한 다른 리그와 다르게 월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잘 하던 외국인 선수가 갑자기 시즌 중 다른 나라 리그로 가버리기도 한다. 2015년 세든, 2017년 애디튼, 2019년 소사의 경우가 이런 경우.

KBO 리그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는 외국인 선수가 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의 경우 리그의 수준차이 때문에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44] 2019년에는 로리, 애디튼, 소사, 리즈, 지크 등 5명이나 되는 KBO 경험자가 뛰게 된다. 리그 전체 용병의 거의 절반이 한국 경험자인 셈.

반대로 외국인 선수들이 KBO에서 성공해서 NPB로 가거나 NPB에서 망해서 KBO로 가는 것처럼 대만에서 성공한 선수가 KBO나 NPB로 가거나 KBO나 NPB에서 실패한 선수가 대만에 오기도 한다. 2018 시즌 기준 KBO 출신의 지크 스프루일, 마이크 로리, 닉 애디튼, 앤디 밴 헤켄이 대만에서 뛰고 있다. 2017년에도 크리스 세든, 알프레도 피가로, 스캇 맥그레거, 코리 리오단, 스캇 리치몬드 등의 KBO 출신 선수들이 뛰었다. 2018년에도 마이크 로리, 지크 스프루일, 앤디 밴 헤켄이 뛰었으며 NPB 출신은 아니지만 일본인 투수 치넨 코야도 뛰었다. 특히 KBO에서 어중간한 성적을 내서[45] 퇴출당한 선수는 상당한 주목을 받는다. 물론 NPB에서 실패한 선수가 몸값 때문에 KBO에 못 가는 것 처럼[46] 에릭 해커더스틴 니퍼트처럼 이미 KBO에서 상당한 커리어를 남겼기에 몸값이 비싸져 대만에 못 가는 경우도 있다.

2019년 텍사스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비벤스-덕스가 대만리그로 이적하였고, KBO에서 헨리 소사가 이적하는 등 외인선수의 수준은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9.1. 2019 시즌 외국인 선수

2019년 시즌 기준 각 팀의 외국인 선수는 다음과 같다.
(KBO 리그의 외인 항목처럼 시즌 전에 계약한 선수는 굵게 표기하며, 시즌 도중에 방출 혹은 웨이버 공시된 선수는 취소선으로 표기한다.)
1. 지크 스프루일 (선발투수, 재계약) : KBO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전직 기아 타이거즈 선수. 대만 리그를 지배했던 [47] 2017년, 어깨 문제로 조금 고생한 2018년에 이어 3시즌째 뛰게 된다. 하지만 7번의 선발등판 동안 고작 31.2이닝을 소화, 0승 1패, 평균자책점 6.82의 초라한 성적을 찍고 5월 20일 방출되었다. 대체선수는 전 기아 출신 타자 로저 버나디나.

2. 마이클 닉스 (선발투수, 재계약) : 마이너리그와 독립 리그를 전전하던 35세의 베테랑 투수로 애틀랜틱 독립리그에서 뛰던 2017년 아시아로 건너왔다. 올해 대만에서 3년차를 맞이한다. 작년 142.2이닝 ERA 3.72 2.01WAR를 기록하며 재계약에 성공했다.

3. 레다메스 리즈 (선발투수, 신규영입) : LG에서 뛰었던 그 리즈 맞다. 2016년 라쿠텐에서 방출당한 후 2017년에는 한 시즌 쉬었고 2018년에는 AAA에서도 통하지 않음을 보여주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대만에 진출한 것 같다.

4. 로저 버나디나 (외야수, 신규영입) : 타율 .256에 OPS .742에 그치며 썩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전기리그 일정이 마무리 된 직후 방출되었다.

5. 매튜 그림즈 (투수/신규영입)

1. 닉 애디튼 (선발투수, 재계약) : 롯데 자이언츠를 잠시 거쳐가서 한국 팬에게도 알려진 선수. 대만에서는 2016년 이후 4년째 [48] 시즌을 맞이한다. 브라더스와는 2년째. 하지만 부진에 어깨 부상이 겹치며 7월 9일 퉁이전 등판을 끝으로 방출됐다. 최종 성적은 5승 4패, 6.26

2. 미치 라이블리 (선발투수, 재계약) : 85년생 베테랑 투수로 메이저 경험이 없다. 2015년 6월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대체 용병으로 와서 중간계투로 16경기 출장하고 시즌 종료 후 방출당했고, 2017년에는 멕시칸리그에서 뛰었다. 이후 여름에는 대만리그, 겨울에는 멕시코 겨울리그에서 뛰고 있다. 브라더스와 2년차.

3. 에릭 우드 (3루수/1루수/우익수, 신규영입) : 피츠버그 파이리츠 마이너리그 선수로 3루수, 1루수, 좌/우익수 등에서 모두 뛰어 본 선수이다. AAA에서 최근 2년간 27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메이저리그 승격에는 부족했으며, 당시 팀 내에 콜린 모란, 프리즈(현 다저스) 등 3루/1루가 가능한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마이너리그 7시즌을 보내고 FA를 선언하였다. 이후 만 26세의 젊은 나이로 대만 진출을 하였다. 2018년 피츠버그 AAA에서 타율.269 11홈런 OPS.808 기록. 참고로 펠릭스 피에 이후 3년 만에 등장한 CPBL의 타자 용병이다. 시범경기에서 19타수 7안타 9타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기대하게 했으나 정규시즌 첫 두 경기에서 9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뒤 방출당했다. 스콧 버드너 감독과 갈등을 빚은 끝에 방출당한 것으로 보인다.[49]

4. 브루스 컨 3세 (선발투수, 신규영입) : 라미고 몽키스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재계약 제의를 못 받고 중신 브라더스의 백업 용병으로 이적했다. 2016년, 2017년에 중신 브라더스에서 뛰었으나 두 번 다 시즌 중 방출당한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1군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한채 우드와 함께 방출당했다.한 팀에서 3번 방출...[50][51]

5. 알렉스 리디 (3루수/1루수, 신규영입) 에릭 우드 대신 영입한 타자용병. 타율 .243에 7홈런 20타점 OPS .766을 기록하고 시즌 중 방출.

6. 엘리 비야누에바 (투수/신규영입) : 작년에 중신에서 백업 투수 용병으로 들어왔다가 후반기에 뛰었다. 성적은 평자 5점대로 좋지 않았으나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면서 한 팀에서 노히트 노런 투수가 한 시즌에 두 명이 나오는 진기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하여 방출당했다가 브루스 컨을 대신해 보험용 투수로 돌아왔다.

7. 케이시 하만 (투수/신규영입)
1. 라이언 버듀고 (선발투수, 재계약) : 31세 좌완투수로서 작년 148.1이닝 ERA 4.31 2.89WAR를 기록했으며 CPBL 역사상 첫 퍼펙트 게임을 기록하였다. 2019년 재계약에 빠르게 성공하였다.

2. 치넨 코야 知念広弥 (선발투수, 재계약) : NPB 경험이 전혀 없는 일본 독립리그 출신 선수로서 작년 대체 용병으로 2군에서 대부분을 뛰었다. 막판에 1군 데뷔까지 성공했다. 이후 올해에도 재계약에 성공하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보답받았다. 29세 좌완투수이다. 이미 1군 용병 TO 3명은 나머지 셋으로 거의 정해진 상황이라 내년에도 부상 등의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면 2군에서 뛸 가능성이 높은 것이 아쉽다. 그러나 라이언 버듀고의 부상으로 인해 개막 엔트리에 들었고, 결국 버듀고가 5월 6일 복귀하면서 두 번째 방출을 당했다.

3. 조쉬 로에니케 (선발투수, 재계약) :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 메이저리그 통산 190경기 220.1이닝을 출전한 메이저리그 불펜투수이다. 이후 실력이 급감하여 AAA에서도 6점대 불펜투수였다. 그래도 경력은 어디 가지 않아서 작년 156이닝 ERA 3.17 3.64WAR의 성적을 기록했다.

4. 오스틴 비벤스-덕스 (선발투수, 신규영입) : 텍사스 레인저스의 불펜으로 활약하면서 한국 MLB 팬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졌을 선수. 만 32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늦깎이로 데뷔해 2년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선수로서 활용되었지만 많아지는 나이 때문에 아시아 행을 택했다. 2017년 부터 대만 리그에서 영입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작년 성적은 MLB 45이닝 ERA 6.20, AAA 82.1이닝 ERA 5.68. 6월말 텍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미국으로 리턴하며 대만을 떠나게 되었다.
(작년의 앤디 밴 헤켄은 재계약 제의를 받지 못했다.)

5. 알렉 애셔 (투수/신규영입)
1. 마이크 로리 (선발투수, 재계약) : CPBL 7시즌 째의 대만리그의 니퍼트라 할 수 있는 선수. KBO KT 위즈에서 뛰었지만 실패한 경력도 있다. 작년 만 34세의 나이로도 161이닝 3.47ERA 4.09WAR(투수 1위)를 기록했다. 이면 다년 계약으로 묶여있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2018/19시즌 외인투수 중 가장 빠르게 재계약에 골인했다.

2. 브라이언 우달 (선발투수, 재계약) : CPBL 5시즌 째의 32살 우완투수로 169이닝 ERA3.25 4.04WAR로 로리와 막강한 원투펀치를 형성하였다.

3. 헨리 소사 (선발투수, 신규영입) : KBO에서 커리어의 많은 부분을 보낸 베테랑 강속구투수. KBO 7시즌 통산 1197이닝 ERA4.32를 기록한 선수였으나 재계약 제의를 받지 못하자 대만행을 택했다. 6월 3일 브록 다익손의 대체 용병을 구하던 SK와 총액 52만 달러에 계약하며 다시 KBO로 리턴했다.

4. 라이언 볼링거 (선발투수, 신규영입) : 입단 테스트를 거쳐 입단한 보험용 투수용병. 트리플 A 경험은 있으나 주로 독립 리그에서 뛰었다. 저번 시즌에는 호주 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작년의 타일러 조던은 재계약 제의를 받지 못했다.)

5. 트래비스 밴와트 (투수/신규영입)

9.2. 한국인 선수

대만프로야구에 진출해서 뛴 한국 선수들은 한희민, 김대우, 김용운 등 총 16명이다. 관련 글을 참조. 2017 시즌 이후에 김광수와 김경언이 대만프로야구 진출을 시도했으나 김경언은 타자인데다가 임팩트있는 활약을 한국에서 한 적이 없다는 이유로 끝내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했고 김광수는 입단이 합의되었으나 계약 직전에 본인이 대만에서 뛰고 싶지 않다고 포기하고 은퇴했다.

9.3. CPBL 출신 대만인 KBO 선수

결론부터 말하면 2018시즌 현재까지는 없다. 판웨이룬의 사례에서 보듯이 CPBL 출신의 자유계약선수를 데려오려면 원적 구단에 이적료와 보상비를 지급해야 한다. 배보다 배꼽이 커서 데려올 수가 없다. NPB에서 뛰는 대만 선수들은 많은데라는 의문을 갖겠지만, 대부분은 양다이강처럼 일본 고교 졸업자이거나 형인 양야오쉰처럼 프로 입단부터 NPB에서 한 케이스들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수한 선수들은 이미 입도선매식으로 고교나 대학 졸업 후 일본 구단에서 데려가기 때문에 CPBL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선수에 별로 관심이 없다.[54] 따라서 CPBL 출신 NPB 선수도 손에 꼽을 정도다. 서비스 타임의 반도 채우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간 왕보롱이 매우 특이한 사례에 해당된다[55].

왕웨이중은 CPBL이 아닌, 미국에서 뛰다가 NC 다이노스에 온 거라서 판웨이룬과는 케이스가 다르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나서, 아시안 게임 선발 투수 판웨이룬, 그리고 야수 펑정민린즈셩에 우완투수 양젠푸 4명이 내년 시즌 기회가 된다면 한국프로야구에서 뛰고 싶어한다는 게 보도되었는데 이를 두고 우리와 상관없던 태권도 관련 혐한을 한 주제에 천안함을 거론하며 응원하던 대륙간컵때의 그것과 맞물려 혐대만 감정이 나와 한국 2군이나 뛰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팽배하다. 실력으로 놓고 본다면 충분히 국내에서도 통할 듯 보이지만, 이미 그거하곤 별개로 국제적인 문제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부터 통하는게 현실. 그 중 판웨이룬은 SK 와이번스에서 영입 의사를 보였다. #

판웨이룬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대만프로야구 규정에 따라 올 시즌 해당 선수 연봉의 2.5배를 구단에 이적료로 지불하고, 1.5배 이상을 선수에게 보상해 줘야 한다는 CPBL의 규정 때문이다. 즉, 최소 4배 이상이다.FA보다 보상금이 세다 따라서 지난해 연봉이 약 2억 3,000만원이었던 판웨이룬을 데려오려면 최소한 9억 2,000만원이 든다. 결국 SK 구단은 판웨이룬 영입을 전면 포기했다. CPBL의 규정이 바뀌기 전까지는 대만 선수들의 한국 진출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뭐 돈만 낸다면야 상관없겠지만, 저 돈이라면 북중미의 꽤 수준급 선수를 영입할 수 있으니까... 거기에 판웨이룬이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기사까지 나오면서*** 이 보도를 두고 대만 측은 부정하면서 반한 감정이 또 생긴다고 보도되는 판국이다.### 그러나, 정작 온다던 판웨이룬은 오지 않고 케니 레이번의 사례와 비슷하게 짐 매그레인이 SK로 오게 되었다... 어?

CPBL 소속 선수로 KBO에 진출한 대만인 선수는 없고 대신 두 명의 유명한 대만 출신 선수가 한국에서 뛴 적은 있다. 한 명은 왕웨이중이고 한 명은 쉬성밍(서생명). 쉬성밍(徐生明) 전. EDA 라이노스 감독은 당시 속해있던 웨이취안 야구단[56]과 자매 관계에 있던 한국화장품 실업야구단에 입단하여 5시즌(1984~1988) 동안 활약한 바 있다.[57]

10. 현재 존재하는 팀[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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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구단
파일:2sMKv4B.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ions_Logo.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lamigo1.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fubonguardians.png 파일:DrsjoGg.png
중신 브라더스 퉁이 라이온스 라미고 몽키스 푸방 가디언즈 웨이취엔 드래곤스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10.1. 과거에 존재했던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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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구단)
파일:MP8W3wJ.png 스바오 이글스 파일:dm1jK98.png 싼상 타이거스
파일:HO5s3N9.png 웨이취엔 드래곤스 파일:7gEkhv7.png 디미디어 티렉스
파일:R1Bmdwz.png 중신 웨일스     ­
◀ 현재 참가하고 있는 구단 보기


11. 일본 프로야구 정기 교류전

2012년2013년 동일본대지진 복구 지원 자선 대회를 시작으로 매해 정기적으로 대회를 펼치고 있다. 양 리그간 프로대표팀의 친선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는 것이 특징. 대만은 CPBL과 대표팀 유니폼을 혼용하여 입고 출전한다.
2012년 3월 도쿄돔 CPBL(1패) - NPB(1승)
2013년 11월 타이베이 티엔무, 신장 일본(2승1패) - 중화타이베이(1승2패)
2016년 3월 나고야돔, 오사카돔 CPBL[59](2패) - 일본(2승)
2017년 3월 후쿠오카 돔 CPBL(1승1패) - 일본(1승1패)
2018년 11월 후쿠오카 돔 중화타이베이(1승) - 일본(1패)

12. 기타

  • 식민지 시대 대만의 베이스볼은 물론 ‘야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1949년 이후 대만의 야구는 ‘봉구’가 된다.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는 이해 이른바 ‘국부천대’로 근거지를 대만으로 옮긴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항일과 반공을 정체성으로 했다. 국민당은 ‘탈대만화ㆍ중국화’ 정책으로 일제 잔재를 일소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야구 용어도 대폭 ‘탈일본화’됐다. 그래서 지금 대만의 프로야구 기구 이름은 중화직업봉구연맹(CPBL)이다.
  • 모든 팀의 연고지가 대만 서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란(宜蘭), 화롄현(花蓮), 타이둥(臺東) 현에는 팀이 없다는 소리. 그쪽에는 인구가 적잖아[60]
  • 2015년 정규리그 240경기 관중 합계 1,327,250명, 평균관중은 경기당 5,530명. 작년 대비 8.37% 증가하였다. 2017시즌에는 총관중 1,318,275명으로 리그 평균관중 5,493명이었다.[61]
  • 타고투저가 굉장히 심하다. 거의 KBO 퓨처스리그보다 더 심한 수준. 2016 시즌을 보면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ERA 3점대 투수가 1명, ERA 4점대 투수가 3명이었다 ERA 5.28의 브루스 빌링스가 평자 탑 5에 들어갈 정도. 그로 인하여 4할 타자도 둘이나 있다. 왕보롱[62](0.414)과 쟝즈시엔(0.402). 2018년 시즌은 홈런왕이 홈런 23개밖에 못 친 데다 20홈런을 넘긴 선수가 겨우 한 명에 그칠 정도로 타고투저는 많이 완화되었다. 또한 4할 타자가 맨날 나오는 리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왕보롱쟝즈시엔이 대만프로야구 창립 이래 최초의 4할 타자이다. 왕보롱이 2년 연속 4할을 치면서 대만프로야구의 4할 타자는 딱 4번 나왔다.
  • 2000년대 들어서 현대 유니콘스가 모기업의 문제로 경영난을 겪게 되자 한때는 CPBL의 운영방식이 현대 유니콘스의 대안으로 잠시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중소기업이 중심이 되어 스폰서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구단 운영비를 절약하며 수익을 내는 모델이 위기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 것.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만 모델을 한국에 적용시키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전에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위에도 설명했지만 대만 리그의 승부조작 문제는 야구 팀 운영구조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점이 파악되자마자 그냥 깨끗하게 잊혀졌다. 사실 모기업이 약한 숑디 엘리펀츠의 경우 타기업 광고가 대부분이었지만 퉁이 라이온스나 싱농 불스의 경우 계열사나 자사 브랜드 광고패치를 붙여서 스폰서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지금은 대기업이 돈 크게 싸들고 참여해서 그런지 CPBL 유니폼이 훨씬 더 깔끔한 편이다. 디자인은 ... 점점 나아지는 것같긴 하다.
  • 여담으로 각 팀들의 치어리더들이 경기 중간 공연을 할 때, 한국의 대중가요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1, #2, #3. 2015년 올스타전이 열릴 당시에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EXID의 '위아래' 로 공연을 펼쳤고##, 최근에는 타이난 출신인 쯔위의 영향으로 트와이스의 노래들도 사용되고 있다.##이쯤되면 한국 야구장인지 대만 야구장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 하지만 시내에서도 라디오에서도 한국 노래는 간간이 들을 수 있으니 야구장만 특별한게 아니다. 작성자가 몇 년전 라미고 홈 경기에서 예전 박석민 응원가 멜로디에[63] 잠시 흠칫하긴 했다. 이제 신경현 응원가만 수출하면 된다.
  • 한국에서 중계를 보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일단 KBO 리그와 MLB는 TV에서 중계를 해주고, NPB는 토토 덕분에 토토 관련 사이트에서 일본 방송으로 볼 수라도 있지만, CPBL은 그런 게 없어서 CPBL 사이트에서 돈을 내고 중계를 보던가, 무료로 보기 위해서는 각 팀이 자신들의 홈 경기만 따로 중계해 주는 것을 봐야 한다. 문제는 한국에서 Lamigo TV와 중신 브라더스 TV는 어찌된 이유인지 재생이 안 된다. 결국 어둠의 경로를 어떻게 찾아내지 않는한 푸방 가디언즈퉁이 라이온스의 홈 경기만 한국에서 볼 수 있다.
  • 지속적으로 팀을 늘리자는 떡밥만 무성한 가운데[64] 2017년 대만 집권여당 민주진보당 소속 우빙루이(吳秉叡) 입법위원(국회의원에 해당)이 이 논의에 초를 치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만 팀 개수를 오히려 2개로 줄이고 일본프로야구(NPB)에 가입시키자는 흠좀무한 주장을 내놓은 것.# 민진당은 본래 타이완 독립운동 정당이고(단, 민진당에서 현재는 이 부분을 '동결'시킨 상태이긴 하다)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들이 일본에 우호적인 경우가 많음을 감안하더라도 대만 야구팬들의 자존심을 박박 긁는 발언이었던 것 같다. 당연히 최대 야당인 국민당에서 이 발언을 비판했다.
  • 2018년 공식적인 미국과의 포스팅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3년차에 포스팅 권한을 얻도록 리그 규약이 개정된 이후 첫 포스팅 권리 획득자인 왕보룽과 첸 윤웬이 나왔는데, 왕보룽의 경우 일본 구단과 포스팅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일본 사이에도 공식적 규약 없이 임대 형식의 포스팅이 이루어진다.) 을 진행하였지만 첸의 경우 소수의 미국 팀에서 관심을 보인 바 있으나 MLB와 협약된 포스팅 제도 자체가 없어 포스팅이 무산된 바 있다.
  • 2018년 이후 호주리그 팀의 참가나 웨이취엔 드래곤즈 재창단 등 5-6구단 창설에 좀더 진지한 수준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둘 모두 단순한 떡밥 수준이 아니며 공식 서류 등이 접수된 상태. 특히 총통이 직접 나서 임기 중 반드시 5, 6구단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정부 전체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지만 창단엔 걸림돌이 많다. 일단 연고지역 기업이 움직여야 하고, 여의치 않을 땐 시민구단 창단을 고려해야 한다.

13. 역대 우승팀

  • 라뉴 베어스=라미고 몽키스
  • 슝디 엘리펀츠=중신 브라더스
  • 싱농 불스=EDA 라이노스=푸방 가디언즈
    연도 우승

    1990 웨이취엔 드래곤스

    1991 퉁이 라이온즈

    1992 슝디 엘리펀츠

    1993 슝디 엘리펀츠

    1994 슝디 엘리펀츠

    1995 퉁이 라이온즈

    1996 퉁이 라이온즈

    1997 웨이취엔 드래곤스

    1998 웨이취엔 드래곤스

    1999 웨이취엔 드래곤스

    2000 퉁이 라이온즈

    2001 슝디 엘리펀츠

    2002 슝디 엘리펀츠

    2003 슝디 엘리펀츠

    2004 싱농 불스

    2005 싱농 불스

    2006 라뉴 베어스

    2007 퉁이 라이온즈

    2008 퉁이 라이온즈

    2009 퉁이 라이온즈

    2010 슝디 엘리펀츠

    2011 퉁이 라이온즈

    2012 라미고 몽키스

    2013 퉁이 라이온즈

    2014 라미고 몽키스

    2015 라미고 몽키스

    2016 EDA 라이노스

    2017 라미고 몽키스

    2018 라미고 몽키스

14. 팀별 우승 횟수

15. 관련 문서


[1] 한국어로는 오지양. 타오위엔현의 현장(도지사)로 재직했던 인물로 2015년 1월 1일부로 대만프로야구연맹의 커미셔너로 재임하게 되었다.[2] 이전 서술에 TVBS에서 중계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영문 위키피디아에 잘못 서술된 내용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3] 대만 원주민 중 한 부족의 이름이기도 함.[4] 이 경우는 브랜드 소유 본사가 국제적 일관성을 이유로 홍보대행[5] 프로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삼합회가 스폰서를 선다는 이야기가 있다. 게다가 이미 승부조작으로 퇴출된 선배들이 앞장을 서는 형편이니...[6] 마이애미 말린스 소속[7]뉴욕 양키스 소속[8]LA다저스 소속, 궈홍즈라고 불리기도 한다.[9] 중신금융지주는 이미 중신 훼일스를 운영한 바 있고, 리그 철수시에도 승부조작으로 해체한 게 아니라 많은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10] 대만리그 규정상 신규 창단 팀으로 취급되며 이 경우 2019년 드래프트에는 참여하더라도 2군에서 1년을 보내야 하며, 또한 상당 규모의 재정을 확보하고 1900만달러 수준의 참가비를 내야 한다.[11] KBO가 1982년에 출범했으니 당시의 시점으로 15~20년 정도 뒤쳐친 셈이다. 더구나 그 격차도 갈수록 커진다. 정작 한희민은 2년 동안 꼴랑 6승 16패를 기록했다. 하락세였어도 너무 초라한 전적이다.[12] 앞에서 설명한 한희민같은 케이스가 있지만 대개는 다카쓰 신고틸슨 브리또, 미키 캘러웨이와 같이 국내에서 방출된 용병들도 진출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이 용병들은 마지막 한국에서 뛰었던 성적과 비교해보면 거의 회춘 수준으로 기록이 상승해버린다. 자세한건 다카쓰 신고틸슨 브리또 항목 참조. 매니 라미레즈도 선수 생활 말기에 일본프로야구에서조차도 입단을 거부당할 정도로 실력이 떨어지자 대만프로야구로 진출해서 3개월 정도 뛰었는데 이미 다 퇴물이 된데다가 나이도 40대로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OPS 9할 7푼대로 대만을 폭격했다.[13] 사실 마이크 로리는 한국에서 뛰었던 시즌에 팀이 1군이 없었고 2군만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14] 이때의 활약으로 라뉴 베어스의 좌완 에이스 우스요우는 치바 롯데 마린즈에 진출했으며 우스요우가 팀에 안겨준 이적료로 팀이 적자를 메꿨다고 할 정도로(...) 이적료도 엄청 받았다. 그러나 2년 동안 2경기 2선발 0승 0패 ERA 2.25로 뛴 경기에서는 좋았지만 부상 등으로 거의 뛰지를 못했으며, 2년만에 방출당해 대만으로 돌아오자마자 승부조작에 가담하는 바람에 흑역사가 되고 영구제명당했다(...)[15] 한국에서 뛰는용병들이 일본으로 진출하면 버는 돈이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2~3배까지 올라가는데, 대만 용병들도 한국으로 진출하면 2~3배로 버는 돈이 뻥튀기된다. 2017년 초에 대만에서 뛰다가 대체 외인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닉 애디튼의 경우, 중신 브라더스에서 그에게 1년간 주기로 한 돈은 2년차에 고작 12만 달러였다. 심지어 롯데에서 준 돈은 3배가 넘는 50만 달러. 계약파기로 인한 위약금을 지불한 뒤에도 대만에서 뛰는 것보다 두 배는 버는 것이다. 또 유니 라이온스의 에이스 브루스 빌링스는 2016 시즌때 팀 에이스임에도 불구하고 18만 달러밖에 못 받았다. KBO 리그의 팀 에이스들이 150~200 달러를 받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매우 심하다. 물론 빌링스의 경우는 첫 해라서 적게 받은 것도 있지만.[16] 이후 단일시즌 제도로 치룬 1998~1999년도 시즌을 제외하고 이 전후기리그 제도를 계속 유지한다.[17] 싼상 타이거스, 웨이취엔 드래곤스, 퉁이 라이온즈, 슝디 엘리펀츠[18] 스바오 이글스, 쥔궈 베어스가 새로 참가.[19] 허신 웨일스가 새로 참가.[20] 스바오 이글스는 결국 이해 9월 해산을 선언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1998년 시즌을 징계로 날렸으니 사실상 1997년 시즌이 스바오 이글스의 마지막 시즌이었다.[21] 웨이취엔 드래곤스싼상 타이거스가 1999년 시즌 종료 후 해산.[22] 경쟁 리그였던 대만대연맹(TML)이 2002년 시즌 종료 후 폐지되면서, 이 과정에서 당시 TML에 참가했던 4구단이 2구단씩 서로 합병하는 방식으로 2개의 신구단을 창단해 대만 프로야구 리그에 참가하기로 결정. 이때 창단된 청타이 코브라스, 라뉴 베어스가 새로 참가.[23] 디미디어 티렉스중신 웨일스가 2008년 시즌 종료 후 해산.[24] 2018 시즌에는 출장 경기가 대부분 정리되고, 역사와 전통의 동부 화롄 시리즈, 타이베이 시내의 유일한 구장인 티엔무 시리즈, 연고팀이 없는 제2의 도시 가오슝 시리즈로 단 3곳에서 각각 10경기 미만의 출장 경기만 편성됨.[25] 즉, 승률 1위 팀이 전/후기 어느 쪽도 우승하지 못했을 경우.[26] 일본프로야구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규정과 같다.[27] 이후 12,500석으로 증축하였으며 WBC와 프리미어12에서도 사용되었다.[28] 현재는 10,000석 규모의 구장으로 프리미어12에서 한국팀이 경기를 가진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한 구장이다. 야구장 옆에 위치한 타이베이시립체육대학이 관리중이다. 여담으로 2002년 5월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오릭스 블루웨이브가 정규시즌 2연전 경기를 이곳에서 벌이기도 했다.[29] 간단한 예를 들어 신좡야구장의 경우 개장 이후로 줄곧 홈구단이 있었지만 푸방 가디언스가 홈구장을 위탁경영하면서 컵홀더가 있는 관중석으로 교체하였다. 가오슝 청칭후는 구장만 크지 컵홀더도 없다.[30] 2020년부터 사용된다.[31] 참고로 한국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는 외국 프로 팀과 계약하지 않는 이상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32] 해외유출이 심한 대만 특성상 전직 마이너리거나 일본 리거가 드래프트에 나오는 일은 매년 다반사로 있고, 메이저리거 출신도 종종 나온다.[33] 그 전에는 고졸은 군필자만 가능했다.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가 제대해야 대학 안 가고 드래프트에 나올 수 있었던 것. 근데 이제 대만은 모병제니까 뭐...[34] 한국 환율 기준[35] 2010년대 후반 한국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구단 전용 연습구장이 어떻게 없을 수 있나 싶겠지만 우리도 프로 출범 25년이 되는 시점까지도 구단 전용 연습구장을 갖춘 구단이 두산, 삼성, LG, 현대로 절반에 불과했다. 상동 야구장이 생긴게 불과 2007년의 일이다. 다만 한국은 리그 초반부터 구단 전용 연습구장을 만든 선도적인 구단들이 있었다.[36] 이들은 대부분 육성선수나 보험용 계약이다.[37] 또한, 일본과 다르게 외국인 선수를 2군에 내린 후에 시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그냥 방출해버린다. 외국인 선수가 2군에 있는 경우는 대부분 퇴출 예정 용병이 아직 쫓겨나지 않아서 1군에 올라갈 수가 없어서 퇴출 시기까지 대기를 하는 경우거나 이런 경우를 예상하고 땜빵용으로 아주 낮은 수준의 선수 한명을 추가로 두는 정도이다.[38] 그러나 두 번 2군에 내린 선수는 그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1군에 못 올라온다.[39] 이는 아마 2015-2017까지 CPBL이 끝판왕 타고투저였다가 2018년부터 홈런 갯수가 이전의 1/2 이하로 급감하면서 이전에 비해서 투고타저로 변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 듯. 다른 지표는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닌데 공인구에 손을 댄 것인지 이전의 30홈런 타자가 15-20홈런밖에 못 칠 정도로 홈런이 줄어들었다. 홈런왕 역시 23홈런밖에 못 쳤다.[40] KBO 리그의 수준에 대해서 AA라는 평가와 하이싱글 A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데, CPBL의 수준은 보통 싱글 A 취급받는다고 한다.[41] 일반적으로 대만프로야구에서는 트리플 A, KBO, NPB, 그리고 독립 리그인 애틀랜틱 리그 출신의 선수를 선호하며 멕시칸 리그 선수는 후순위라고 한다.[42] 헨리 소사는 월봉 3만 달러로 연봉 20만 달러는 넘긴다. 이게 리그 특급 대우라고 한다. 단, 포스트시즌 경기에 출장할 시 추가 수당이 나오며 인센티브도 조금 더 붙어있다고 한다. 단적으로 2017년 마이크 로리는 총액 26만 달러의 계약을 했는데 이 때 4~5만 달러 정도는 옵션이었다.[43] 허나 AAA에서조차도 붙박이가 못 되고 AA를 왔다갔다하는 선수들이 주로 가는 CPBL 특성상 그 정도 받아도 감지덕지다. 애초에 AAA에서 풀 시즌으로 있어도 잘 해야 10만 달러 정도인데 CPBL에 오는 선수는 AAAA리거만 돼도 상급 용병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로 용병 명단을 보면 메이저리그에서 1경기라도 뛴 선수가 절반도 안 된다. 메이저리그 경험만 있어도 일단 상급의 커리어인 셈.[44] 대표적으로 마이크 로리. KBO에서는 kt wiz 2군에서만 뛰고 방출당했으나 대만에서는 15년, 16년 시즌 2년 연속으로 평균자책점 1위와 다승왕을 기록하였고, 탈삼진도 15년 시즌에 1위, 16년 시즌에 2위를 기록했다. 특히 16년 시즌에서는 대만야구의 타고투저가 끝판왕에 달해 ERA 4점대 이상인 선발 투수가 겨우 4명이었는데, ERA 3점대를 찍은 투수는 그가 유일했다. 그야말로 대만판 더스틴 니퍼트.[45] 지크 스프루일같이 완전히 못 써 먹을 수준은 아니지만 용병으로써는 기준 이하인 선수들.[46] 특히 2019 시즌부터 KBO에서 몸값 100만달러 제한을 걸면서 더욱... 당장에 닛폰햄에서 실패한 오스왈드 아르시아 같은 선수는 100만 달러 제한만 없었어도 KBO에서 영입 시도를 했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47] 172.1이닝 ERA 2.56, WAR 4.90[48] 2017 시즌에는 한 경기만 뛰고 한국 이적[49] 번트 시켰다고 감독과 싸웠다고 한다.[50] 이런 한방세는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박휘성 같은 사례가 있긴 있었다.[51] 여담으로 라미고에서 재계약 제의를 못 받은 것은 팔꿈치 부상보다는 인성 문제가 컸다고 한다. 성격이 좀 감정적이어서 과도한 감정표현으로 팀워크를 해친 일이 몇 번 있었다고.[52] 가장 외국인 선수 선발에 공을 들인다. 메이저리그 출신을 꾸준히 영입하는 팀[53] 가장 KBO 리그 출신을 좋아하는 팀. 4팀 중 가장 꾸준히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2017년에도 현재까지 뛰는 로리뿐만 아니라 크리스 세든, 스캇 맥그레거, 코리 리오다, 스캇 리치몬드 등 한국을 거친 선수들이 뛰었다.[54] 외국인 선수 보유가 무제한인 것과는 무관하게 전술하듯 타 국적이더라도 일본에서 학교를 다닌 뒤 드래프트에 참여할 경우 국내 선수로 인정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았어도 CPBL을 거치기 전에 일본에서 저렇게 데려가기도 하지만.[55] CPBL의 FA제도는 KBO와 유사하나 해외 진출의 경우는 3년의 서비스타임을 채우면 구단의 동의하에 시도할 수 있다.[56] 대만의 식품회사 실업야구단이자 웨이취안 드래곤스의 전신[57] 1986년 시즌부터 뛴 것으로 된 자료도 많은데 1984년 시즌에 뛴 것이 몇 몇 자료에서 확인된다.[58] 한국과 비슷하게 대부분 구단명에 지역명이 없다.[59] 이 해에는 CHINESE TAIPEI 유니폼에 중화민국 국기를 붙이고 출전하여 대만 내에서 말이 많았다. 중화 타이베이 참고[60] 이란 현은 458,777명, 화롄 현은 333,392명, 타이둥 현은 224,470명으로 3개 현을 합쳐야 겨우 100만 명이 나온다.[61] 구단별로는 라미고 7,596명, 중신 5,559명, 퉁이 4,493명, 푸방 4,321명[62] 1993년생 라미고 몽키스 소속 선수로, 대만 최고의 호타준족 슈퍼루키 외야수. 16시즌에 4할 1푼을 넘긴 타율에다 29홈런-24도루로 데뷔 2년만에 20-20까지 찍었다. 2018시즌 이후 니혼햄 파이터즈로 이적[63] 엄연히 말하면 비너스라는 팝송이다. 번안하며 새로 만든 멜로디가 아니다.[64] 떡밥으로만 치면 현재 6개팀이 사이 좋게 리그에서 뛰고 있어야 한다. 팀 창단 관련 떡밥이 한국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데 너무 진지하게 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