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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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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 }}}}}}}}} |
{{{#!wiki style="margin: -1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240><tablebordercolor=#DDE7E7> 綾城 具氏 (綾州 具氏) 능성 구씨 (능주 구씨) | }}} | |
관향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 ||
시조 | 구존유(具存裕) | ||
집성촌 | 대구광역시 북구 인천광역시 강화군 경기도 광주시, 하남시 충청북도 보은군, 음성군, 옥천군 충청남도 공주시, 당진시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열읍 와리 전라남도 화순군 경상북도 김천시 경상남도 진주시 | ||
인구 | 172,243명(2015년) | ||
대종회 | 능성구씨대종회 |
[clearfix]
1. 개요
능성 구씨(綾城 具氏)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1]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2] 시조 구존유(具存裕)는 고려 왕조의 공신으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냈다. 능성 구씨는 고려와 조선에 걸쳐 유력 가문이었으며, 문신과 무신 중에서도 특히 무관으로 유명한 무신(武臣) 가문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관직에 진출했고, 조선 왕실의 인척이기도 했다. 현대에도 여러 고관대작과 대재벌가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2. 역사
2세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었던 구민첨(具民瞻), 3세는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을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연(具珚), 4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 5세는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영검(具榮儉)[3], 6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문정공(文貞公) 구위(具禕)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낸 구흥(具興) 및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구의(具義)가 있다. 고려 말 좌시중(左侍中) 7세 문절공(文節公) 구홍(具鴻)은 조선의 개국에 협력하지 않고 은둔하여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능성 구씨는 무인가문들의 명가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낸 구사직(具思稷), 훈련대장 등을 지낸 구굉(具宏), 어영대장인 구인후(具仁垕), 총융사(摠戎使)인 구인기(具仁墍), 어영대장인 구문치(具文治), 총융사인 구감(具鑑), 훈련대장이었다던 구성임(具聖任), 훈련대장인 구선복(具善復) 등이다. 이 중 구굉·구인후·구인기는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또한 세조 때에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지낸 구치관(具致寬),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낸 구치홍, 성종 때 상주목사를 지낸 구치명, 경상우도절도사를 지낸 구겸, 중종반정(中宗反正)의 정국공신(靖國功臣)인 구현휘(具賢暉)·구수영(具壽永),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인 능원군 구문신(具文信) 등이 있다. 중종의 부마 구사안(具思顔), 인조의 외조부이며 이조판서·좌찬성·숭록공신(崇祿功臣)에 오른 구사맹(具思孟), 시문에 뛰어나고 관찰사·참판·대사헌을 지낸 구봉령(具鳳齡) 등등이 있다. 조선의 왕족으로는 원종의 비 인헌왕후(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어머니)가 있다. 능성 구씨는 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조선 왕조 권력의 핵심에서 가문의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정조 대 구선복이 임오화변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처형당하고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빼앗기면서 가문의 세력이 줄어들었다.
《능성구씨사료집》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총 562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는데, 그 가운데 진사 144명, 문과 55명, 무과 363명으로 무과 출신이 65%를 차지한다. 이를 파별로 보면 도원수파 359명, 판안동파 72명, 좌정승파 42명으로 역시 이들 3파가 전체의 84%를 차지한다. 무과 출신 가운데 영조 때까지 종2품의 장신급(將臣級)이 9명이나 배출되었는데, 이는 그때까지의 장신 총수의 12분의 1에 해당한다.
<rowcolor=#006666>존유 存裕 | |||||||||||
민첨 民瞻 | |||||||||||
연 珚 | |||||||||||
의 宜 | 천용 天容 | 예 藝 | |||||||||
해 㧡 | 식 軾 | 영검 榮儉 | |||||||||
서진 瑞珍 | 록 祿 | 의 禕[4] | 흥 興 | 의 義 | |||||||
현좌 賢佐 | 현로 賢老 | 영량 英良 | 홍 鴻 | 성량 成亮 | 성로 成老 | 성덕 成德 | 현보 賢輔 | 현기 賢器 | 충로 忠老 | 성미 成美 | 원립 爰立 |
판사파 | 전서파 | 시랑파 | 좌정승파 | 판안동파 | 도원수파 | 재신파 | 낭장파 | 감무파 | 임천군수파 | 참판파 | 문천군수파 |
3. 기원
능성 구씨의 시조 구존유라는 자가 1224년 주잠과 함께 중국에서 도래했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으나, 중국에 있는 신안 주씨의 기록에 구존유는 고려인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1224년 이전부터 호남 지방에 토착 구(具)씨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후백제가 멸망한 뒤 나주(羅州)에서 포로로 잡힌 후백제 장군 구도(具道)의 아들 구단서(具端舒)가 있고, 궁예의 태봉국 시중(侍中)이었던 구진(具鎭)이 918년(태조 1) 나주도(羅州道) 대행대(大行臺)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며, 1101년(고려 숙종 6년)에 탁라(乇羅) 성주(星主)인 배융부위(陪戎副尉) 구대(具代)가 유격장군(遊擊將軍)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고려사》(高麗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즉, 구씨(具氏)가 예로부터 나주(羅州)나 능성(綾城) 지역의 토착 성씨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로 기록하고 있다.
대종회에서는 역사서를 근거로 중국 도래설을 반박하고,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라는 의견들을 제시했다. 첫째, 고려 이전에도 호남 지방에 토착 구씨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둘째, 본문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역사서에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로 기록된 점이다. 셋째, 중국 측 주씨의 기록에는 구존유가 고려인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에 편찬된 신안 주씨의 족보를 토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임을 주장하는 일각의 주장은 역사 사실과 맞지 않다. 넷째, 현재 중국에는 구(具)씨 성을 가진 씨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라는 주장은 모화사상에 기초하여 중국과의 관련성을 부각하고자 했던 시도로 보는 것이 설득력있다.
3.1. 대성팔족과의 관계
의령 옥씨로 성씨를 바꾼 개성 왕씨나 신라의 백제 정벌을 계기로 대성팔족 가운데 하나였던 목씨(木氏)가 개성(改性)한 것으로 추정되는 나주 임씨 여타 다른 임씨들처럼, 능성 구씨의 구씨(具氏) 또한 백제의 대성팔족에 뿌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능성 구씨의 관향이 구 백제 쪽 영토에 위치하고, 과거 구씨들이 후백제에서 출사했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망국의 옛 왕족이나 귀족들이 성씨의 획을 바꾸거나 추려서 비슷하고도 전혀 다른 성을 이름으로 삼았듯이, 구씨(具氏) 또한 백제 대성팔족 중 하나이자 유명한 외척 가문인 진씨(眞氏)에서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5] 오늘날 한국의 백씨(白氏)들이 백제 대성팔족 귀족 계통인 백씨(苩氏)에 사실상 뿌리를 둔 것으로 강력하게 추정되는 것처럼 말이다.4. 항렬
대략적으로 근현대에 분포하고 있는 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무척 유명한데 보통 26~30세손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많다.[6] 특히 자(滋), 본(本)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아서, 성이 '구본', '구자'씨인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거의 관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형제, 자매 관계로 오해를 받는 경우도 많고, 동명이인도 많다.'회', '모' 로 끝나는 것 그리고 '자', '본', '교' 로 시작하는 글자들이 모두 구씨가 많은 이유가 그 항렬 탓이다.[7] 24세손인 '연' 으로 시작하거나 25세손인 '서' 로 끝나는 글자는 많지만, 오늘날에는 일부 노년층들을 제외하면 이 항렬자를 쓰는 경우는 흔치 않고, 26세손인 '회' 자의 항렬도 중장년 이상에서 주로 보일 뿐, 젊은 층에서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8] 27세손인 '자' 부터는 세대를 불문하고 많이 보이며, 29세손인 '모' 가 30대 초반 이하에선 가장 흔히 보인 항렬자다. 간혹 31세손 '우' 로 끝나는 항렬도 존재하지만 이러한 이름은 구씨가 아니라도 흔하므로 딱 트이지는 않는다.
물론 아무리 항렬자를 철저하게 지키는 능성 구씨의 남자들도 항렬자를 쓰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는 중노년층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본 항렬 대신 예비항렬을 쓰는 경우도 있다. 보통 예비항렬이 본 항렬자 보다 무난한 이름을 쉽게 지을 수 있으니
짝수 세손은 가운데 글자에 항렬을 적용하고, 홀수 세손은 뒤 글자에 항렬을 적용한다. 단, 26세손과 27세손은 그 반대이다.
이렇게 항렬을 정한 근거로는 다음과 같다.
7세에서 처음으로 분파가 되었는데, 각파의 항렬이 같지 않으며 23세까지 그러하다. 때문에 항렬을 쓰지 않고 다만 대수만 써 놓았다. 시조로부터 연(然)자 항렬에 이르기까지 마땅히 항렬을 나란히 써서 소목[9]의 서차를 밝혀 놓아야겠으나 다만 항렬이 일정하지 않아서 능히 다 쓸 수가 없고 또한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쓸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1세부터 23세까지는 다만 대수만 적고 24세 연(然)자 항렬부터 33세 림(林)자 항렬까지는 동일하기 때문에 비로소 항렬자를 나열하고 대수를 써 넣어서 고징(考徵)에 이바지한다.
이번에 항렬 10자는 은은히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까닭에 삼가 이를 연역[10]하여 그 의의를 밝혀 둔다. 또 우리 구씨가 대성의 종족으로서 이번에 족보를 같이 하고 항렬을 합해 놓았으니, 그 화후[11]한 정의와 돈목한 기풍이 더없이 극진하게 되었으니, 이를 준수하여 행하면 우리 종족이 다시 진흥할 것이다.
공자 말씀에 '내 문하의 제자들이 비연(斐然)[12]히 문장이 성취했다'고 하였으니, 우리 종중의 선비들이 비연(斐然)히 문장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고로 처음에 연(然)자로 하고, 비연하기를 바라면 독서수신(讀書修身)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는 고로 연(然)자 다음에 서(書)자로 하고, 독서수신한 다음에 가회합례(嘉會合禮)[13]하는 고로 서(書)자 다음에 회(會)자로 하고, 가회합례함으로써 덕을 심는 것이 불어나는(滋) 고로 회(會)자 다음에 자(滋)자로 하고, 덕을 심는 것이 불어나려면 반드시 근본(根本)을 배양해야 하는 고로 자(滋)자 다음에 본(本)자로 하고, 진실로 근본을 배양하려면 오직 성현의 훈모(訓謨)를 바탕으로 해야하는 고로 본(本)자 다음에 모(謨)자로 하고, 성현의 훈모가 어떤 것인가 하면 수도의 교훈(敎訓)이 그것이라 모(謨)자 다음에 교(敎)자로 하고, 신의를 실천하고 공손함을 생각하는 것이 성현의 가르침으로서 그 효응(效應)[14]이 하늘로부터 복(祐)을 받는데 이르는 고로 교(敎)자 다음에 우(祐)자로 하고, 복을 받아 중생들에게 미치게 함은 마땅히 혈구(絜矩)[15]의 가지런함(齊)이 있어야 하는 고로 우(祐)자 다음에 제(齊)자로 하고, 림림총총(林林蔥蔥)[16]의 번성함이 실로 일족의 추진력에 기인함이라 고로 제(齊)자 다음에 림(林)자로 하였다.
이것은 가까운데서 먼데로 친족(親族)에서부터 여러 백성(百姓)에게까지 이르는 순서일 것이니, 그런 뒤에야 문중의 운수가 형통하고 하늘에서 복을 받아 세월이 유구할수록 더욱 창성하여 바야흐로 냇물이 흘러내림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비단 오늘의 여러 종인들에게만 축원할 것이 아니라 또한 후세자손들에게까지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 여러 종인들은 후손에게 이르기까지 이름자를 생각하고 그 뜻을 새겨 다 같이 지키며 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7세에서 처음으로 분파가 되었는데, 각파의 항렬이 같지 않으며 23세까지 그러하다. 때문에 항렬을 쓰지 않고 다만 대수만 써 놓았다. 시조로부터 연(然)자 항렬에 이르기까지 마땅히 항렬을 나란히 써서 소목[9]의 서차를 밝혀 놓아야겠으나 다만 항렬이 일정하지 않아서 능히 다 쓸 수가 없고 또한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쓸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1세부터 23세까지는 다만 대수만 적고 24세 연(然)자 항렬부터 33세 림(林)자 항렬까지는 동일하기 때문에 비로소 항렬자를 나열하고 대수를 써 넣어서 고징(考徵)에 이바지한다.
이번에 항렬 10자는 은은히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까닭에 삼가 이를 연역[10]하여 그 의의를 밝혀 둔다. 또 우리 구씨가 대성의 종족으로서 이번에 족보를 같이 하고 항렬을 합해 놓았으니, 그 화후[11]한 정의와 돈목한 기풍이 더없이 극진하게 되었으니, 이를 준수하여 행하면 우리 종족이 다시 진흥할 것이다.
공자 말씀에 '내 문하의 제자들이 비연(斐然)[12]히 문장이 성취했다'고 하였으니, 우리 종중의 선비들이 비연(斐然)히 문장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고로 처음에 연(然)자로 하고, 비연하기를 바라면 독서수신(讀書修身)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는 고로 연(然)자 다음에 서(書)자로 하고, 독서수신한 다음에 가회합례(嘉會合禮)[13]하는 고로 서(書)자 다음에 회(會)자로 하고, 가회합례함으로써 덕을 심는 것이 불어나는(滋) 고로 회(會)자 다음에 자(滋)자로 하고, 덕을 심는 것이 불어나려면 반드시 근본(根本)을 배양해야 하는 고로 자(滋)자 다음에 본(本)자로 하고, 진실로 근본을 배양하려면 오직 성현의 훈모(訓謨)를 바탕으로 해야하는 고로 본(本)자 다음에 모(謨)자로 하고, 성현의 훈모가 어떤 것인가 하면 수도의 교훈(敎訓)이 그것이라 모(謨)자 다음에 교(敎)자로 하고, 신의를 실천하고 공손함을 생각하는 것이 성현의 가르침으로서 그 효응(效應)[14]이 하늘로부터 복(祐)을 받는데 이르는 고로 교(敎)자 다음에 우(祐)자로 하고, 복을 받아 중생들에게 미치게 함은 마땅히 혈구(絜矩)[15]의 가지런함(齊)이 있어야 하는 고로 우(祐)자 다음에 제(齊)자로 하고, 림림총총(林林蔥蔥)[16]의 번성함이 실로 일족의 추진력에 기인함이라 고로 제(齊)자 다음에 림(林)자로 하였다.
이것은 가까운데서 먼데로 친족(親族)에서부터 여러 백성(百姓)에게까지 이르는 순서일 것이니, 그런 뒤에야 문중의 운수가 형통하고 하늘에서 복을 받아 세월이 유구할수록 더욱 창성하여 바야흐로 냇물이 흘러내림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비단 오늘의 여러 종인들에게만 축원할 것이 아니라 또한 후세자손들에게까지 교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 여러 종인들은 후손에게 이르기까지 이름자를 생각하고 그 뜻을 새겨 다 같이 지키며 폐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계묘보 제정 항렬 10자 중 51세 재(宰)자를 용(鏞)자로 53세 주(柱)자를 집(集)자로 각각 정자(訂字)하였음.
- 병인보 제정 복수항렬 28자 중 37세 문(汶)자를 홍(泓)자로 정자(訂字)하였음.
<rowcolor=#006666> 세손 | 기본항렬 | 복수항렬 |
24세 | 연(然) | |
25세 | 서(書) | |
26세 | 회(會) | 선(善) |
27세 | 자(滋) | 윤(潤) |
28세 | 본(本) | 동(東) |
29세 | 모(謨) | 휴(烋) |
30세 | 교(敎) | 재(在) |
31세 | 우(祐) | 호(鎬) |
32세 | 제(齊) | 원(源) |
33세 | 림(林) | 빈(彬) |
34세 | 희(熙) | 훈(薰) |
35세 | 규(奎) | 배(培) |
36세 | 종(鍾) | 전(銓) |
37세 | 수(洙) | 홍(泓) |
38세 | 상(相) | 진(秦) |
39세 | 섭(燮) | 렬(烈) |
40세 | 균(均) | 강(康) |
41세 | 진(鎭) | 일(鎰) |
42세 | 영(泳) | 호(浩) |
43세 | 근(根) | 표(杓) |
44세 | 병(炳) | 형(炯) |
45세 | 중(重) | 곤(坤) |
46세 | 경(庚) | 현(鉉) |
47세 | 택(澤) | 한(漢) |
48세 | 락(樂) | 영(榮) |
49세 | 환(煥) | 휘(輝) |
50세 | 기(起) | 준(埈) |
51세 | 용(鏞) | 흠(欽) |
52세 | 승(承) | 태(泰) |
53세 | 집(集) | 걸(杰) |
5. 인물
5.1. 전근대 인물
5.2. 24세손(然)
5.3. 25세손(書)
5.4. 26세손(會/善)
- 구논회 - 정치인, 前 학원인.
- 구두회 - 기업인. 구인회와 구태회와 구평회의 동생.
- 구명회
- 구상회
- 구성애[18] - 사회운동가, 성교육 강사.
- 구영회 - 미식축구 선수.
- 구예진[19] - 유튜버.
- 구인회 - 기업인. LG그룹 창업주. 범 LG가 참고.
- 구준회 - 가수, iKON 멤버.
- 구중회
- 구창회
- 구태회 - 기업인. 구인회의 동생.
- 구평회 - 기업인. 구인회와 구태회의 동생.
5.5. 27세손(滋/潤)
- 구윤철 - 공무원.
- 구자경 - 기업인. 구인회의 아들이자 LG그룹 2대 회장.
- 구자균 - 기업인.
- 구자근 - 정치인
- 구자룡 - 축구선수.
- 구자명 - 가수.
- 구자민
- 구자범 - 지휘자.
- 구자영 - 경찰공무원.
- 구자열 - 기업인.
- 구자열(정치인)
- 구자옥
- 구자용 - 기업인.
- 구자욱 - 現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야구선수.
- 구자운(시인) - 시인.
- 구자운(야구) - 야구선수.
- 구자철 - 축구선수.
- 구자춘 - 정치인.
- 구자혁
- 구자현 - 검사
- 구자형 - 성우. 배우
- 구자형(투수) - 야구선수.
- 구자호
- 구자홍 - 기업인.
- 구자훈(소설가) - 소설가.
- 구준엽[20] - 가수.
5.6. 28세손(本/東)
- 구본근(교육기관단체인)
- 구본근(농구) - 전 농구선수.
- 구본근(소방공무원) - 소방공무원.
- 구본길 - 펜싱 선수.
- 구본능 - 기업인, 구자경의 아들
- 구본무 - 기업인, 구자경의 아들이자 구본능의 형. LG그룹 3대 회장.
- 구본범 - 야구선수.
- 구본상 - 축구선수.
- 구본선 - 검사.
- 구본승 - 멀티 엔터테이너.
- 구본승 - 위 27세손인 구자운(야구)의 아들로 본자 항렬을 써서 연예인 구본승과 같이 동명이인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구본수
- 구본영 - 정치인, 前 천안시장.
- 구본웅 - 미술가.
- 구본암 - 베이시스트
- 구본준 - 기업인. 구자경의 아들이자 구본무, 구본능의 동생.
- 구본찬 - 양궁 선수.
- 구본철 - 정치인.
- 구본충
- 구본태
- 구본택 - 프로게이머.
- 구본항
- 구본혁 - 야구선수.
- 구본홍
- 구본흥 - 기업인.
- 구성재[21] - 기자, 정치인.
- 혁 - 가수, TEMPEST 멤버, 본명 구본혁
5.7. 29세손(謨/烋)
- 구광모 - 기업인, LG그룹 회장[22]
- 구범모 - 정치인.
- 구승모
- 구인모 - 정치인, 現 거창군수.
- 구재모 - 프로게이머.
- 구준모 - 뮤지컬배우.
- 구창모 - 現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선수.
- 구창모 - 가수.
- 구현모 - 기업인, KT 대표이사 사장
- 구홍모 - 군인.
- 정모 - 가수, CRAVITY 멤버. 본명 구정모.
- 창모 - 래퍼. 본명 구창모.
5.8. 30세손(敎/在)
5.9. 31세손(祐/鎬)
5.10. 33세손(林/彬)
5.11. 34세손(熙/薰)
5.12. 35세손(奎/培)
5.13. 대수 미상
- 건일 - 가수, Xdinary Heroes 멤버
[1]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전라남도 능주군이었다.[2] 그래서 화순군 쪽 집성촌 사람들이 항렬이 낮다. (항렬이 낮다는 건 통계적으로 종가와 가깝다는 말이다.)[3] 출처: 《고려사》 권 114, <열전> 27.[4] 근대 이후에 발간된 족보엔 컴퓨터로 이 글자를 입력하기가 쉽지 않아서, 모양이 비슷한 위(褘)로 되어있다.[5] 眞은 약자인 真으로도 대체해서 많이 사용했다.[6] 시랑파는 33~36세손이 많다. 당장 이 문서 하단의 인물을 보아도, 낮은 항렬의 인물은 거의 시랑파이다.[7] 다섯 글자 모두 이름에 흔하게 들어가는 글자는 아닌 탓에 다른 성씨에서는 많지 않으나, 구씨 한정으로는 흔한 글자이다. 다만 '자' 로 시작하는 이름의 경우 구씨가 아니라도 어느정도 보이며, '자' 로 끝나는 글자는 환갑이 넘은 할머니들에게 매우 흔한 글자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창씨개명이 시행되면서 子로 끝나는 일본식 이름이 한국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다.[8] 다만 2008년 이후 출생자 중 '회' 로 끝나는 사람이 약 500명 정도 된다. 능성 구씨의 인구를 감안하면 이들은 약 2만 2~3천명, 남자는 약 1만 1~2천명 정도가 된다. 물론 모두 다 구씨인 것은 아니므로 약 4% 정도가 26세손으로 보인다.[9] 조상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차례.[10] 한 가지 일로 다른 일을 추론함.[11] 화목하고 돈후함.[12] 문채가 있는 모양.[13] 즐겁게 모이고 예에 합당함.[14] 효과와 반응.[15] 자로 잼. 즉 사람을 생각하고 살펴서 바른 길로 향하게 하는 도덕상의 규칙.[16] 수풀이 우거지듯 많이 모여 서 있는 모양.[17] 본명은 구상준(具常浚)이다. 항렬자를 쓰지 않지만 능성구씨종보 제157호에 전 대종회 고문이라고 써져 있으며, 27세손 자(滋)자 항렬을 쓴 야구선수 구자욱(具滋昱)이 종증손(從曾孫, 자기 형제의 증손자.)이라고 문화일보 기사에 써져 있다. 그러므로 구상은 24세손이다.[18] 아버지의 이름이 25세손 서(書)자 항렬을 써서 구광서(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이름의 한자가 具廣書라고 써져 있으며,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이름의 한자가 具光書라고 써져 있다.)다. 그러므로 구성애는 26세손이다.[19] 남동생의 이름이 26세손 회(會)자 항렬을 써서 같은 문단에 후술할 구준회(具俊會)다. 그러므로 구예진은 26세손이다.[20] 항렬자를 쓰지 않았지만 족보를 보면 아버지의 이름이 구명회(具明會)이며, 둘째아버지의 이름이 구민회(具珉會)이므로 구준엽은 27세손이다.[21] 항렬자를 쓰지 않지만 아버지의 이름이 27세손 자(滋)자 항렬을 써서 27세손 문단에 전술한 구자춘(具滋春)이다. 그러므로 구성재는 28세손이다. 그리고 족보에 다른 이름으로 본주(本珠)라는 이름도 있다고 써져 있다. 출처: 《능성구씨족보》 구성재편.[22] 구본능의 아들이지만, 구본무의 양자로 입적.[23]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본래는 시랑파 30세 교(敎), 재(在)자 항렬이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영록(具英祿) 15세 구흥의(具興義), 16세 구충(具冲), 17세 구종학(具從學), 18세 구인정(具仁貞), 19세 구사민(具士敏), 20세 구응두(具應斗), 21세 구신업(具信業), 22세 구이기(具爾起), 23세 구천수(具天壽), 24세 구윤장(具潤章), 25세 구양욱(具陽旭), 26세 구정직(具廷稷), 27세 구항록(具恒祿), 28세 구본신(具本愼), 29세 구삼모(具三謨), 30세 구흥남(具興南) 순으로 이어진다.[24] 나이에 비해서 항렬이 매우 낮기는 하나 일단은 시랑파 31세 우(祐)자 항렬을 쓴 것이 맞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항무(具恒茂), 15세 구득인(具得仁), 16세 구용연(具龍淵), 17세 구정(具綎), 18세 구두남(具斗南), 19세 구현경(具玄慶), 20세 구선(具善), 21세 구종전(具宗荃), 22세 구석관(具碩寬), 23세 구삼락(具三樂), 24세 구훈(具壎), 25세 구택현(具宅鉉), 26세 구인원(具仁源), 27세 구상직(具相稷), 28세 구본신(具本信), 29세 구병모(具秉謨), 30세 구교일(具敎一), 31세 구봉우(具鳳祐) 순으로 이어진다.[25]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본래는 시랑파 31세 우(祐), 호(鎬)자 항렬이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영록(具英祿) 15세 구흥의(具興義), 16세 구충(具冲), 17세 구종학(具從學), 18세 구인정(具仁貞), 19세 구사민(具士敏), 20세 구응두(具應斗), 21세 구신업(具信業), 22세 구이기(具爾起), 23세 구천수(具天壽), 24세 구윤장(具潤章), 25세 구양욱(具陽旭), 26세 구정직(具廷稷), 27세 구항록(具恒祿), 28세 구본신(具本愼), 29세 구기모(具琪謨), 30세 구교복(具敎福), 31세 구용상(具龍相) 순으로 이어진다.[26] 나이에 비해서 항렬이 매우 낮기는 하나 일단은 시랑파 31세 우(祐)자 항렬을 쓴 것이 맞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항무(具恒茂), 15세 구득인(具得仁), 16세 구용연(具龍淵), 17세 구정(具綎), 18세 구두남(具斗南), 19세 구현경(具玄慶), 20세 구선(具善), 21세 구종전(具宗荃), 22세 구석관(具碩寬), 23세 구삼락(具三樂), 24세 구훈(具壎), 25세 구택현(具宅鉉), 26세 구인원(具仁源), 27세 구상직(具相稷), 28세 구본수(具本修), 29세 구익모(具翼謨), 30세 구교창(具敎昌), 31세 구철우(具哲祐) 순으로 이어진다.[27]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본래는 시랑파 31세 우(祐), 호(鎬)자 항렬이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항무(具恒茂), 15세 구득인(具得仁), 16세 구용연(具龍淵), 17세 구정(具綎), 18세 구두남(具斗南), 19세 구현경(具玄慶), 20세 구선(具善), 21세 구종전(具宗荃), 22세 구석관(具碩寬), 23세 구삼락(具三樂), 24세 구훈(具壎), 25세 구택현(具宅鉉), 26세 구민원(具敏源), 27세 구상홍(具相弘), 28세 구본환(具本煥), 29세 구행모(具行謨), 30세 구교석(具敎碩), 31세 구충곤(具忠坤) 순으로 이어진다.[28] 족보에 33세 림(林)자 항렬을 써서 은림(恩林)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본명인 은수(恩洙)는 자(字)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나이에 비해서 항렬이 매우 낮기는 하나 시랑파 33세인 것은 확실하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영록(具英祿) 15세 구흥의(具興義), 16세 구충(具冲), 17세 구문(具紋), 18세 구이첨(具爾瞻), 19세 구천우(具天祐), 20세 구사정(具四定), 21세 구운명(具雲命), 22세 구궤상(具樻常), 23세 구길서(具吉瑞), 24세 구순엽(具順燁), 25세 구인성(具仁成), 26세 구세도(具世道), 27세 구영일(具永一), 28세 구낙수(具洛洙), 29세 구희관(具羲觀), 30세 구교인(具敎仁), 31세 구홍우(具弘祐), 32세 구제황(具齊黃), 33세 구은림(具恩林) 순으로 이어진다.[29] 나이에 비해서 항렬이 매우 낮기는 하나 일단은 시랑파 35세 규(奎)자 항렬을 쓴 것이 맞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원부(具元富), 15세 구흥인(具興仁), 16세 구연(具沿), 17세 구덕수(具德壽), 18세 구학산(具鶴山), 19세 구장(具璋), 20세 구영무(具英武), 21세 구체민(具體閔), 22세 구오성(具五星), 23세 구인문(具仁文), 24세 구광석(具光碩), 25세 구욱(具昱), 26세 구신해(具莘海), 27세 구병운(具柄雲), 28세 구봉채(具鳳采), 29세 구용해(具龍海), 30세 구만팔(具萬八), 31세 구원우(具元祐), 32세 구제항(具齊恒), 33세 구태림(具泰林), 34세 구희영(具熙永), 35세 구복규(具福奎) 순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