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9 17:36:38

문명 7/불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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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시리즈의 불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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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명 7에서 건설할 수 있는 불가사의 목록.

2. 특징

전작인 문명 6에서와 같이 특정 조건의 지형 위에만 불가사의를 건설할 수 있으며, 불가사의는 한 타일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앙코르와트는 강과 인접한 타일에만 건설이 가능하다.

이전 작들과는 다르게 불가사의는 각 시대에서만 지을 수 있어, 어떤 문명도 짓지 않아 남는 불가사의가 있어도 시대가 바뀌면 해당 불가사의는 다시 지을 수 없다.

각 불가사의가 특정 문명과 궁합 관계가 있는 것 또한 특징. 궁합 관계로 연결된 해당 문명은 특유 사회 제도 연구를 통해 관련 불가사의를 더 일찍 잠금 해제할 수 있고, 해당 불가사의를 건설할 때 30%의 생산량 보너스를 받는다. 예를 들어 앙코르와트는 크메르 문명과, 대석비는 악숨 문명과 궁합이 맞는 식이다.

전 작품들보다 다양한 시대와 문명에서 불가사의가 선정되었으며, 본 작품에 출연한 문명의 불가사의가 다수 등장하였으며, 전반적으로 불가사의의 생산력 요구치가 크게 감소한만큼, 불가사의의 효과도 전작에 비하면 다소 심심하게 변경되었다, 문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파격적인 효과를 가진 불가사의는 거의 없다.

전작의 불가사의 건설이 수십~수백프레임을 사용해 건축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것과 달리 본작은 불가사의의 건설과정이 5프레임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호불호가 갈리는 다른요소들과 달리 대놓고 다운그레이드 된 셈이라 욕을 얻어먹는중.

3. 고대 시대

문화 유산의 길에 불가사의 건설이 필요한 이유 때문인지 다른 시대보다 불가사의가 많은 편이다.

3.1. 거신상

파일:문명7_거신상.png
거신상
Colossuss
<keepall> 파일:거신상_문명7.png
"그는 세상이 좁다는 듯이 딱 버티고 있지. 우리 보잘것없는 인간은 그의 거대한 가랑이 밑에서 명예라고는 없는 무덤을 찾고 있을 뿐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태양신 헬리오스를 묘사하여 청동으로 만든 남자가 로도스의 항구에 서있습니다. 아니, 대중의 묘사는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항구 옆에 서있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거신상은 로도스섬의 힘과 번영을 상징했습니다. 로도스의 거신상은 현대 자유의 여신상과 맞먹는 크기로 30m가 넘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손인 마케도니아 군대의 공격에 맞서 도시를 지켜낸 것을 기념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승리한 방어군은 도망친 적들이 버린 무기를 팔아 얻은 수익으로 이 거상을 세웠습니다.

이 거신상은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306년, 이 건축물은 건설 된 지 불과 54년 만에 지진으로 무너졌습니다. 로도스인들은 델포이의 오라클에 헬리오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신탁을 듣고 거신상을 무너진 채로 남겨두었지만, 그 압도적인 규모의 동상은 관광객을 계속 끌어모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서기 653년, 이 땅을 정복한 아랍 군대에 의해 거신상의 폐허는 시리아의 한 상인에게 팔렸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숙련 직업.webp 숙련 직업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50
입지 조건 육지에 인접한 해안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금.webp 금 +3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자원 수용량 +3
경제 속성 점수 +1

3.2. 공중 정원

파일:문명7_공중 정원.png
공중 정원
Hanging Gardens
<keepall> 파일:공중 정원_문명7.png
"운하의 물은 위로부터 정원으로 쏟아지고, 향기는 산책로에 스며들며,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물줄기가 즐거움의 정원을 흐른다."
- 아슈르바니팔
정복을 마친 뒤 메소포타미아의 지배자들은 권력의 상징으로 정복한 곳의 풍경을 궁전으로 가져왔습니다. 사르곤, 센나케립, 네부카드네자르 및 여러 왕이 이러한 정원을 궁전에 만들었지만, 그 정수는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역사가들은 그 이름 외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도시에서 파괴되었거나 사라진 정원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센나케립의 궁전이었을까요? 아니면 이상적인 메소포타미아 정원이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불분명합니다.

기원전 700년경, 니네베의 센나케립 왕은 과수원과 정원에 물을 공급하고자 나선양수기 등을 이용하여 방대한 급수 시설을 만들었으며, 이 관개 시설로 높은 곳에 있는 정원에 물을 공급했기에 '공중'이라는 말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원은 사이프러스와 소나무 대추야자 나무, 배나무, 포도나무 및 기타 과일 나무 등이 가득했습니다. 메마른 이라크 풍경 한가운데 이런 정원은 시원하고 상쾌한 오아시스이자 정복의 기록이 되었을 것입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관개.webp 관개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275
입지 조건 강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농장에서 파일:문명7_식량.webp 식량 +1
모든 도시의 성장률 +10%
팽창주의 속성 점수 +1

전작과 마찬가지로 도시 성장률이 붙어있으며 이번 작에선 농장에 식량이 증가하는 부가 능력이 추가되었다.
전작에서는 초반엔 체감하기 힘든 효과지만 후반에 가면 좋은 원더로 평가되었는데, 이번작에선 식량 증가 효과가 추가되어 초반에도 쓸만해졌다.

3.3. 날란다

파일:문명7_날란다.png
날란다
Nalanda
<keepall> 파일:날란다_문명7.png
"안락함을 원하는 자 배움을 포기하라. 배움을 원하는 자 안락함을 포기하라."
- 나가르주나
최초의 기숙형 대학교인 날란다의 불교 수도원은 적어도 5세기부터 인도 동부에 서 있었지만, 그 뿌리는 훨씬 더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적절하게도 인도의 비하르 지역은 석가모니, 그리고 전설에 따르면 그곳에 수도원의 기초를 놓았다는 불교 황제 아소카의 기원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날란다의 수도원은 전 세계 불교학자가 모여드는 거대한 교육 기관을 그곳에 지은 굽타 제국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기에 다녀간 학자에는 불교 기록을 되찾기 위해 인도를 다녀오고 대서사시 서유기에 영감을 준 중국 수도승 삼장이 있습니다. 한국과 자바, 스리비자야(수마트라), 티베트 등에서도 순례자가 왔으며, 이러한 순례자들은 날란다의 활발한 학술 토론에 참여하기를 원했습니다. 날란다는 철학적인 나가르주나부터 비전의 탄트라 밀교 학교까지 불교 안에서 다양한 신학 토론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노섬벌랜드 해안에서 마찬가지로 승려와 그들의 지혜는 약탈자의 검에 취약했습니다. 서기 1200년경, 페르시아의 장군 무함마드 박티야르 칼지가 날란다를 공격하여 파괴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마침내 무함마드 장군이 날란다의 보물을 발견했을 때, 그 보물이 몽땅 책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책의 의미를 설명해줄 사람을 찾았지만, 그런 사람은 모조리 학살당한 후였습니다. 이후 수 세기 동안 날란다와 불교는 비하르에서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았지만, 결코 예전만큼 중요한 기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문해력.webp 문해력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50
입지 조건 평원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과학.webp 과학 +3
불가사의 효과 고문서 1개 획득
고문서 슬롯 2개 제공
과학 속성 점수 +1

3.4. 대석비

파일:문명7_대석비.png
대석비
Great Stele
<keepall> 파일:대석비_문명7.png
"주의 권능으로 어떤 적도 나를 대적하지 못하게, 어떤 적도 나를 따르지 못하게 하소서."
- 악숨 왕국 비문
악숨의 오벨리스크는 조각상, 가짜 문으로 장식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24m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입니다. 서기 4세기에 세워져 1500년대 지진으로 무너지기 전까지 수 세기동안 서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지역을 점령한 이탈리아군이 오벨리스크의 돌을 로마로 가져갔습니다. 그 돌은 이후 2005에 에티오피아로 반환되었습니다.

이러한 비석은 왕의 매장지를 표시하는 초기 누비아의 관습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벨리스크 아래 누가 잠들어 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에자나 왕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 비석을 세우는 행위가 금지되었다는 점(자신의 비석을 세우기 전에는 아니지만)을 감안할 때, 이 유적지는 종교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기독교가 에티오피아 민족주의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기에 비석에 대한 구체적인 믿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종교적 관습은 본래 아라비아 남부에서 유래했으며, 고대 악숨인들은 전쟁의 신 마흐람을 왕처럼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큰 빛인 태양과 달 금성 등을 숭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문자.webp 문자 또는 파일:문명7_악숨 사회 제도.webp 에리트레아 해의 페리플러스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275
입지 조건 평지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악숨.webp 악숨
불가사의 산출 -
불가사의 효과 이 불가사의를 포함하여 이 정착지에서 불가사의 건설 시 파일:문명7_금.webp 금 200 획득

전작 아파다나의 효과를 골드 버전으로 치환해 부여한듯한 불가사의, 악숨이 아니더라도 수도에 자원을 집중해 불가사의를 집중적으로 짓는 문명, 혹은 고대 시대 문화 유산의 길을 노리는 문명이라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3.5. 두르 사르킨

파일:문명7_두르 사르킨.png
두르 사르킨
Dur-Sharrukin
<keepall> 파일:두르 사르킨_문명7.png
"오늘부터 당신의 명령은 철회되지 않을 것이며, 지위를 높이고 낮추는 일이 당신의 권한 아래 있을 것이오."
- 에누마 엘리시
두르사르킨은 하나의 불가사의가 아닙니다. 이는 기원전 706년 이전, 지금의 이라크 북쪽에 건설된 사르곤 2세 치하 아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건축 자재도 제한되어 있으며, 주변 토지도 구축해야 했던 이 도시 건설은 엄청난 공학적 위업이라 할 만합니다. 3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도시는 150개가 넘는 탑으로 이루어진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호화로운 궁전, 사원, 지구라트, 정교한 라마수와 셰두(아시리아의 신성한 짐승)의 조각상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또한 두르 사르킨에는 사르곤이 정복한 모든 땅의 나무로 이루어진 거대한 정원이 있었습니다. 이 정원은 니네베에 있는 센나케립 정원, 바빌론의 공중 정원, 페르시아의 파이리다에자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사르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두르 사르킨은 버려졌고, 이 도시는 신화속 도시가 되었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서서히 묻힌 이 도시 위에는 이제 코르사바드라는 현대 도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유적지는 1843년, 1928년, 1957년에 고고학자 팀에 의해 재발견되어 탐사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2015년 ISIS 그룹이 이곳을 파괴하고 유물을 약탈했다고 자인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규율.webp 규율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275
입지 조건 특수지구와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
불가사의 효과 점령해야 하는 요새화된 특수지구 역할을width$0 함
모든 정착지의 요새화된 특수지구 전투력 +3

추후에 출시될 예정인 아시리아 문명의 특화 특수지구로 추정된다. 후술될 만국의 문의 하위호환에 가까운 성능 때문에 평가가 그리 좋지는 않은 불가사의다.

3.6. 만국의 문

파일:문명7_만국의 문.png
만국의 문
Gate of All Nations
<keepall> 파일:만국의 문_문명7.png
"평화보다 전쟁을 더 열망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평화로울 때는 아들이 아비를 장사 지내지만, 전시에는 아비가 아들을 장사 지낸다."
- 리디아크로이소스
알렉산드로스 대왕고대 그리스 역사의 형성기 당시 주적이었던 제국의 예식용 수도, 페르시아어로 파르시라고 하는 페르세폴리스에 들어 갈 때의 기분을 상상해 보세요. 페르세폴리스는 라이벌 국가의 가장 성스러운 곳이자 제국의 심장부였으며, 페르시아 제국의 금과 은이 가장 많이 모였던 곳이고, 학문과 예술 면에서는 최고로 두각을 나타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페르세폴리스에 진입한 뒤 이 도시를 약탈하고, 깡그리 불태우고, 눈에 띄는 사람은 모조리 죽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파르사를 파괴한것이 후회스럽다고 했지만, 이 도시는 폐허가 된 채로 남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파르사는 영구적으로 거주하기 위한 도시가 아니라 궁전이나 의식을 위한 장소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예술과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넓은 장소였습니다. 크세르크세스가 기원전 5세기에 지은 만국의 문은 4개의 기둥으로 지탱되고 황소와 수염 난 남자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라마수로 장식된 넓은 입구였습니다. 이 공간은 방문객이 현재 제국의 통치자와 마주하기 전, 크세르크세스 대왕의 얼굴을 바라볼 때 그 위엄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규율.webp 규율 II 또는 파일:문명7_페르시아 사회 제도.webp 사트라피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275
입지 조건 특수지구와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페르시아.webp 페르시아
불가사의 산출 -
불가사의 효과 모든 전쟁에서 지원 +2

아무 조건 없이 전투력 +2 및 상대방에게 전쟁 피로도를 부여할 수 있으므로, 2025년 2월 기준 최상급 티어에 해당하는 불가사의로 평가받는다. 군사적인 문명이어도 조건없이 전투력을 +2 획득할 수 있고, 내정 문명이어도 전쟁을 상당히 억제할 수 있다.

3.7. 몽크스 마운드

파일:문명7_몽크스 마운드.png
몽크스 마운드
Monks Mound
<keepall> 파일:몽크스 마운드_문명7.png
"언덕보다 오래된 이가 여기 잠들다."
- 지트칼라 사
서기 9세기에 현대 일리노이 주에 거대한 도시가 건설되었습니다. 후대 주민들은 이를 카호키아라고 불렀으며, 이곳은 미시시피 사회의 중심지이자 권력, 조직, 건설의 상징이었습니다. 도시는 신중하게 계획된 구역을 따라 방위에 맞게 배치되었습니다. 다양한 홀, 사원, 주택이 수많은 인공 토루 위에 지어졌습니다.

카호키아 중심부의 넓은 광장 옆에는 몽크스 마운드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바구니에 담아 운반한 흙과 점토로 지어진 이 구조물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선사 시대 토목 구조물로 남아 있으며, 그 기단은 기자의 가장 큰 피라미드 보다 더 큽니다. 원래의 토루는 20년 이내에 빠르게 지어졌지만, 수 세기에 걸쳐 확장되어 주변 경관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수 세기에 걸쳐 확장되어 주변 경관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4개의 테라스는 평평한 꼭대기에 있는 홀로 방문객을 안내합니다. 꼭대기 홀은 길이가 약 30m, 폭이 약 15m에 달하는 목조 구조물로,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사원이나 족장의 거주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상업.webp 상업 또는 파일:문명7_미시시피 사회 제도.webp 토공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50
입지 조건 강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미시시피.webp 미시시피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식량.webp 식량 +3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자원 수용량 +4

3.8. 문도 페르디도

파일:문명7_문도 페르디도.png
문도 페르디도
Mundo Perdido
<keepall> 파일:문도 페르디도_문명7.png
"내 빛은 위대하다. 내 눈은 금속이요 내 이빨은 보석으로 빛나니 나는 길이며 나는 사람들의 발판이다."
- 포폴 부
스페인어로 '잃어버린 세계'를 뜻하는 문도 페르디도는 마야의 도시 티칼에 있는 중앙 복합 단지로 서기 300년경 종교와 천문학을 위한 장소로 건설되었습니다. 문도 페르디도는 현재의 과테말라 열대우림 한가운데에 지어졌으면 높은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세 개의 사원이 연결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단지는 메소아메리카 정치의 다문화적 특성에 대한 증거로, 멕시코의 비마야 테오티우아칸 유적지의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마야 천문학의 종교적 중요성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별의 움직임은 신의 성품을 읽은 단서였기에, 이를 읽을 천문학적 장소는 신을 직접 뵙고 제물을 바칠 수 있는 희생과 예배의 장소였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금성이라고 부르는 아침 하늘의 밝은 별은 마야인들에게 지옥처럼 뜨거운 땅을 덮고 있는 아황산가스 덩어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땅에서 하늘로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쿠쿨칸의 눈이었습니다. 즉, 이는 무대가 필요한 직접적인 의사소통이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신비주의.webp 신비주의 II 또는 파일:문명7_마야 사회 제도.webp 캘린더 라운드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275
입지 조건 열대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마야.webp 마야
불가사의 산출 -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모든 열대 지형에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1, 파일:문명7_과학.webp 과학 +1

3.9. 미앙궁

파일:문명7_미앙궁.png
미앙궁
Weiyang Palace
<keepall> 파일:미앙궁_문명7.png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유구해도 다할 때가 있으나, 이 한은 끝이 없어 다할 날이 없으리라."
- 백거이
한나라는 권력과 명성을 모두 이용하여 통치했습니다. 한나라는 주 왕실의 전통적 권위와 진나라의 공격적인 군국주의를 결합하여 황제의 전제정치 아래 방대한 행정을 실시했습니다. 이런 행정 업무에는 일할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궁전이라고 하면 보통 호화로운 저택과 온갖 미술 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떠올리고는 하지만, 장안의 미앙궁은 대부분 사무실 건물이었습니다. 동시에 인상적인 궁전이기도 했습니다. 이 궁전은 지금까지 건설된 것 중 최대 규모입니다. 거의 5 제곱킬로미터에 달하여 후기 자금성보다 훨씬 크고, 동쪽에는 황실 관료의 전용문을, 북쪽에는 일꾼을 위한 전용문을 두고 있었으며 행정과 국가를 감독하는 데 전념하는 광범위한 계층의 관료를 수용했을 것입니다.

미앙궁은 당나라가 적국의 침략을 받던 중 파괴되어 현재는 폐허만 남았습니다. 미앙궁의 뜻은 '아직 반에도 이르지 못한 행복'과 같은 의므로,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국가의 초기 행정부 중 하나에 적절한 이름입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시민권.webp 시민권 또는 파일:문명7_한나라 사회 제도.webp 군자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375
입지 조건 초원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한나라.webp 한나라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영향력.webp 영향력 +6
불가사의 효과 -

3.10. 병마용

파일:문명7_병마용.png
병마용
Terracotta Army
<keepall> 파일:병마용_문명7.png
"전투가 끝나고 수많은 새 유령이 울부짖는다."
- 두보
백성이 없는 왕이 왕일까요? 아무도 권위를 인지하지 않는다면 권위가 무슨 소용일까요? 그리고 죽음이란 삶에서 얻은 모든 영광을 빼앗는 것 외에 또 무엇일까요? 고대 중국 지도자의 시신과 함께 묻힌 진흙 도기 병사인 병마용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도 지위에 집착하는 욕망의 증거입니다.

진나라는 본래 주나라의 제후국이었습니다. 스스로 황제를 칭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왕은 '삼황오제'에서 칭호를 가져와 스스로를 진의 초대 황제, 즉 진시황으로 칭했습니다. 진시황은 주나라를 전복시켜 전 세계에 모든 의려적 장식이 군국주의를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원전 210년경, 진시황은 죽기 전에 저승 정복에 쓸 용도로 자신이 지휘할 대규모 흙인형 군대의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1만명에 이르는 이 병사들 가운데에는 진흙 말이 끄는 전차와 지원군도 있었으며, 실제와 같은 얼굴과 갑옷, 무기를 들고 집결하여 진시황과 함께 묻혔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전술.webp 전술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375
입지 조건 초원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생산력.webp 생산력 +2
불가사의 효과 무료 군단장 획득
군대 경험치 +25%

3.11. 비르사[세계의교차로]

파일:문명7_비르사.png
비르사
Byrsa
<keepall> 파일:비르사_문명7.png
"특정한 도시 벽의 폐허는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 레오 아프리카누스
카르타고 중심부의 언덕 꼭대기에는 비르사 성채가 카르타고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이름의 정확한 기원은 알기 어려운데, 디도의 전설에 따르면 디도가 카르타고가 될 땅을 획득한 수단인 소가죽을 뜻하는 그리스어 '비르사(byrsa)'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요새를 뜻하는 페니키아어 '바르사트(barsat)'의 변형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비르사는 카르타고 군대의 심장부였으며, 성채와 똑같이 비르사라고 불리는 이 언덕에는 주요 정치 및 종교 기관들도 있었습니다. 카르타고가 함락된 후 로마반달족, 비잔틴 등이 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를 재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주요 고고학 유적지입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항해.webp 항해 또는 파일:문명7_카르타고 사회 제도.webp 선박 정비창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375
입지 조건 해안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카르타고.webp 카르타고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금.webp 금 +2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에서 시작한 교역로는 약탈당하지 않음
이 도시에서 해안과 인접했으며 성벽을 건설할 수 있는 모든 타일에 성벽이 지어짐

3.12. 산치 스투파

파일:문명7_산치 스투파.png
산치 스투파
Sanchi Stupa
<keepall> 파일:산치 스투파_문명7.png
"모든 종교는 모든 곳에 존재하야 한다. 모두가 절제와 마음의 순결을 원하기 때문이다."
- 아소카
아소카 대왕은 위기의 순간에 불교로 개종하고 마우리아 인도 전역에 종교의 촉진을 위한 여러 건축 프로젝트를 의뢰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산치의 복합 단지는 개중에서도 인상적인 곳입니다. 스투파(사리탑)는 그 내부에 성유물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를 말하는데, 가장 유명한 스투파 안에는 화장된 석가모니의 유해가 있습니다. 스투파는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다르마의 진리를 방송하는 라디오 송신탑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투파는 승려와 사미승이 머물 승방을 갖춘 큰 사원의 일부일 뿐이며, 공동체 모임과 교육을 위한 장소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산치는 아소카가 모두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곳으로도 유명한 아소카의 기둥 중 하나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치에서 아소카는 석가모니 자신의 역사 및 그의 가르침과 더불어 불교의 핵심을 형성하는 불교 학자 공동체 승가의 통일을 촉구했습니다. 산치의 인상적인 문은 석가모니가 고타마 싯다르타로 다시 태어나기 전의 삶인 자티카 이야기를 나타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산치가 있는 지역인 마다야 프라데쉬와 인도 대부분 지역에서 불교가 쇠퇴했지만, 산치는 이 지역 역사의 중요한 기념비로 남아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시민권.webp 시민권 II 또는 파일:문명7_마우리아 사회 제도.webp 만트리파리샤드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375
입지 조건 평원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마우리아.webp 마우리아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2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잉여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5마다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1

3.13. 앙코르와트

파일:문명7_앙코르와트.png
앙코르와트
Angkor Wat
<keepall> 파일:앙코르와트_문명7.png
"존재의 바다에 빠져든 모든 이를 이 선행의 미덕으로 건져낼 수 있기를."
- 자야바르만 7세
앙코르와트, 단순히 '사원의 도시'라는 이름을 지닌 이곳은 현대 캄보디아에 있는 방대한 복합 단지입니다. 원래 비슈누의 거주지로 건설된 이 복합단지는 힌두교에서 대승불교에 이어 소승불교까지 다양한 종교적 해석을 거쳤지만, 19세기 프랑스 탐험가들에게 '발견'되기 전에도 이곳은 캄보디아인(또는 크메르인, 두 단어는 같은 말임)의 예배 장소로 남아 있었습니다. 중앙 사원 기념비는 네 개의 다른 블록 중앙의 메루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으로, 힌두교-불교의 천국을 모델로 하여 사암 벽돌로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기념물입니다.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사원 복합 단지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앙코르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앙코르와트와 같은 곳은 왕의 권세와 위엄을 주변의 전원 지역으로 발산하는 안테나로 여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복자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도 강력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앙코르는 식민 지배 기간에는 프랑스 인도차이나의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시암이 캄보디아를 점령했던 기간에는 방콕 왕궁에 사원의 모형이 추가되었으며, 크메르 루주 시절부터 지금까지 캄보디아 국기에도 앙코르와트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철학.webp 철학 또는 파일:문명7_크메르 사회 제도.webp 암낙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50
입지 조건 강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크메르.webp 크메르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3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전문가 한도 +1

3.14. 에밀레종

파일:문명7_에밀레종.png
에밀레종
Emile Bell
<keepall> 파일:에밀레종_문명7.png
"눈 가운데 전 왕조[2]의 빛이 보이고, 차디찬 종소리에 옛 나라의 소리 들리네.[3]"
- 황진이
한국에서 가장 큰 종인 성덕대왕신종은 한국 역사상 신라 시대였던 771년에 청동으로 주조되었습니다. 원래는 봉덕사에 걸기 위해 만든 범종으로, 그 소리는 스님들에게 기도할 때를 알리고 시각을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은 종 상단의 음통 덕에 그 특유의 울림이 발생하며, 풍부한 소리가 납니다. 이러한 소리가 이 종에 대한 다소 불길한 전설의 근원입니다. 대장장이가 처음 봉덕사의 종을 만들 때, 주조한 모든 종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수도승이 종에서 소리가 나려면 희생이 필요하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바로 어린아이를 쇳물에 넣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설 때문에, 오늘날 종을 치면 종소리가 '어머니'를 부르는 에밀레처럼 들린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이 전설은 후대에 기록된 반 불교적 창작물이거나 현대에 만들어진 괴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대 성덕대왕신종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법전.webp 법전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275
입지 조건 거친 지형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
불가사의 효과 두 지도자의 수도에 식량을 제공하는 특유 외교 노력인 파일:문명7_외교 노력.webp 인삼 협정 획득
외교 속성 점수 +1

영향력을 소모하여 인삼 협정(...)을 체결, 식량을 서로 얻을 수 있는 불가사의이다. 짓고 나면 에밀레종 관련 전설의 내용을 모티브로 가져온, 종이 인간 제물을 원한다내용의 이벤트가 뜬다. 지배할 권리 확장팩에서 고대 시대 문명으로 신라가 등장할 예정인지라 신라 문명에 건설 보너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어 인용문은 "In the midst of the snow, the light of Goryeo[4][5] hovers; An icy temple bell resounds echoes of the old kingdom."이다.

3.15. 오라클

파일:문명7_오라클.png
오라클
Oracle
<keepall> 파일:오라클_문명7.png
"나는 해변의 모래알을 세고 바다를 측량하며, 벙이라의 말을 알아듣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는다."
- 피티아
재앙이 될 수도, 복이 될 수도 있는 결정을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이 책임을 신중하게 대하곤 합니다. 신이나 미래에서 들려오는 외부의 목소리는 어려운 선택에 대하 고찰하고, 행동의 결과를 평가할 수단이 될수도 있습니다. 헬레니즘 그리스에서 이러한 목소리는 사원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 '지나침이 없게 하라', 그리고 '확신 파멸을 가져온다'는 문구를 따르는 델포이 아폴로 신탁인 퓌티아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대지의 여신 가이아파이톤이라는 용을 낳았다고 합니다. 제우스의 외도를 질투한 헤라는 파이톤을 보내 어린 아폴로를 쫒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폴로는 가이아의 성소에서 파이톤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신탁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졌습니다. 모든 해답을 자연에서 구하려는 사람들은 화산의 가스 방출과 그로 인한 환각 효과를 통해 퓌티아의 횡설수설을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황홀경과 예언적 발언은 많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문화적 현상이라는 설명이 더 유력합니다.

델포이의 신탁은 수수께끼와 같을 때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퓌티아는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인 필리포스에게 '은창으로 그대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으리라' 고 했는데, 이 말은 필리포스가 은을 교활하게 사용하여 그리스 도시 국가를 전복한 행위의 전조로 여겨집니다. 페르시아가 그리스 해군에 패하기 전에, 신탁은 바람을 '그리스의 강력한 아군'으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공직.webp 공직 또는 파일:문명7_그리스 사회 제도.webp 심마키아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375
입지 조건 거친 지형
관련 문명 파일:문명7_그리스.webp 그리스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2
불가사의 효과 내러티브 이벤트에서 보상을 얻을 때 시대당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10 추가 획득

3.16. 콜로세움

파일:문명7_콜로세움.png
콜로세움
Colosseum
<keepall> 파일:콜로세움_문명7.png
"콜로세움이 서 있는 동안 로마도 서 있으리라. 콜로세움이 무너지면 로마도 무너지고, 로마가 무너지면 세계도 함께 무너지리라."
- 베다 베네라빌리스
'죽음을 앞둔 이들이 그대에게 손을 흔든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입식 원형 극장으로 남은, 로마 콜로세움에서 겨루는 검투사들의 구호였습니다.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인들의 스포츠 경기장이었습니다. 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스포츠는 상당히 잔혹해질 수 있는 것들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투사 간의 결투, 혹은 야생 동물과의 전투가 있습니다. 야생 동물 간 전투의 예로 사자를 들 수 있는데, 실제로는 기후 변화와 인구 팽창이 더 큰 이유겠지만, 로마의 지중해에서 사자가 멸종한 이유로 검투사 시합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콜로세움에서는 대중연설과 처형, 연극 상연도 진행됐으며, 원형 경기장 바닥을 물로 채워야하는 해전까지 재현하는 등 치명적인 경기 이상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검투사 시합은 일반적으로 제국 주변 국가의 다양한 무기로 무장한 전사들 간의 싸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삼니테스 검투사는 긴 방패와 날카로운 로마군의 검인 글라디우스로 무장했고, 트라키오 검투사는 짧은 단검과 방패를 들었고, 레티아리우스 검투사는 그물과 삼지창을 휘둘렀습니다. 검투사 시합의 투사들은 가장 합리적인 무기로 무장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스포츠를 위한 무기로 무장했습니다.

콜로세움은 황제와 대중이 같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콜로세움은 특히 원로원의 영향력과 중요성이 감소했던 제국의 정치에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엔터테인먼트.webp 엔터테인먼트 또는 파일:문명7_로마 사회 제도.webp 세나투스 포풀루스큐 로마누스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50
입지 조건 특수지구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로마.webp 로마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3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구역에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2

3.17. 태양의 피라미드

파일:문명7_태양의 피라미드.png
태양의 피라미드
Pyramid Of The Sun
<keepall> 파일:태양의 피라미드_문명7.png
"전사의 피가 물처럼 흘렀고 웅덩이에 고였다."
- 톡스카틀의 멕시코 기원담
아즈텍이 제국을 건설하기 전, 현대 멕시코 지역에서는 또다른 문명이 번성했습니다. 테오티우아칸은 동시대 문명이었던 마야와 훨씬 후대에 등장한 아즈텍의 위엄을 보여주는 청사진 역할을 했습니다 . 테오티우아칸의 예술과 무역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환경적 요인보다는 테오티우아칸의 쇠퇴가 마야의 쇠퇴로 이어졌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테오티우아칸 문명은 반란 및 사회불안으로 인해 내부에서 붕괴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유산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아즈텍인들은 여기에 태양의 피라미드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테오티우아칸식 이름은 시간 속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공간에는 재규어와 뱀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전성기였던 서기 200년경, 멕시코의 건조지대에는 76m 높이로 솟은 가장 높은 곳에 사원이 있었습니다.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테오티우아칸 여전히 인상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수학.webp 수학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50
입지 조건 특수지구에 인접한 평지 지형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3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구역에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2

3.18. 테오도리쿠스 영묘

파일:문명7_테오도리쿠스 영묘.png
테오도리쿠스 영묘
Mausoleum of Theodoric
<keepall> 파일:테오도리쿠스 영묘_문명7.png
"그 어떤 이라도 친구를 애도하는 것보다 친구의 복수를 하는 것이 낫다."
-베오울프
서로마 제국 몰락 이후의 혼돈 속에서 후계국들을 통치한 건 보통 '야만인' 왕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동고트족의 테오도리쿠스(테오도리크)가 대표적입니다. 고트족은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현대에서 '악귀를 닮았다'는 의미의 '고딕(gothic)'이라는 표현은 이탈리아인이 고트족을 깎아내리기 위해 사용한 표현에서 유래했으며, 이 표현은 추후 18~19세기 공포 문학의 후속 장르인 중세 유럽 건축 양식(가고일과 지지대 등)을 폄하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테오도리쿠스 영묘는 고대 고딕 건축 양식의 한 예입니다. 테오도리쿠스 유해를 안치하는 단순한 환상열석 구조로 되어 있으며, 예배용으로 쓰는 하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묘는 서양의 큰 전환기였던 이탈리아 중세 초기의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조직된 군대.webp 조직된 군대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50
입지 조건 해안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생산력.webp 생산력 +3
불가사의 효과 약탈로 얻는 체력과 생산량 +100%
군사 속성 점수 +1

3.19. 페트라

파일:문명7_페트라.png
페트라
Petra
<keepall> 파일:페트라_문명7.png
"정착생활은 문명의 목표다. 이는 생명의 끝을 알리고 부패를 예고한다."
-이븐 할둔
아라비아 하면 이슬람교를 떠올리곤 하지만 아라비아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등장하기 전에도 그 근방에서 오랜 역사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조지아 지역에 살며 아람어를 사용했던 나바테아문명이 그중 하나입니다. 그들의 도시인 라크무(현재는 페트라)는 경이로운 석공 기술의 결정체입니다. 자연석을 깎아내어 도시 전체를 만들었기에 '장미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은 나바테아 왕의 영묘였던 보물 창고라는 뜻의 알카즈네(Al-Khazneh)입니다.

나바테아 문명은 사막에 생명이 번성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물이 흐르는 수로를 만들었고 황무지 한가운데 숨겨진 오아시스를 만들었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도시는 오늘날 요르단의 상징이자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법전.webp 법전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375
입지 조건 사막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금.webp 금 +2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사막 지형에서 파일:문명7_금.webp 금 +1, 파일:문명7_생산력.webp 생산력 +1

3.20. 피라미드

파일:문명7_피라미드.png
피라미드
Pyramid
<keepall> 파일:피라미드_문명7.png
"병사들이여, 이 피라미드 위에서 사천 년의 역사가 그대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피라미드(이집트어로 '미르')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오래된 고대 왕을 위해 세운 거대한 무덤입니다. 이 건축물들은 기원전 2560년에 세워졌는데, 이는 연도를 헤아려 보자면 클레오파트라가 피라미드 건설 시기보다는 현대와 더 가까운 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석실분묘, 아랍어로 '마스타바'라고 하는 전통적인 이집트 무덤은 깊은 매장 갱도 위에 길고 낮은 석조 구조물을 세운 것입니다. 건축가가 이러한 형태를 포개어 더 크고 더 높은 마스타바를 만들면서 이러한 건축은 이윽고 피라미드라는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대피라미드의 건축가로 추정되는 헤미우누 같은 후기 건축가들은 이렇개 포개 올린 더미를 거울 같은 석회암으로 덮고 무덤 위에는 관석을 얹었습니다. 이 관석이 금으로 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도굴꾼이 너무 많이 몰리기에 그랬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근 한 채석장에서는 블록, 비소를 섞어 만든 구리 끌, 밧줄이 보존된 상태로 발견되어 피라미드를 건설한 당시 풍경을 잘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약 27년 동안 13,000~40,000여 명의 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대중문화의 묘사와는 달리 피라미드는 노예가 건설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고대 외계인이나 아틀란티스인이 건설한 것도 아닌, 고용된 숙련공이 건설했습니다.

건설 중 피라미드 주변에 형성된 도시에는 파라오를 신으로 숭배하는 사원 단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모든 복합 단지는 하나의 생활 공간이자 이집트 신들을 향한 숭배, 그리고 중앙 집권화와 나일강에 대한 헌신을 강화하는 신들에 대한 숭배를 지향하는 헌신의 장소이자 사원이었습니다. 피라미드는 여기가 사막의 황무지 가장지리에 있는 비옥한 마지막 '검은 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징표가 되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석조기술.webp 석조기술 또는 파일:문명7_이집트 사회 제도.webp 아문-라의 빛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275
입지 조건 깊은 강 타일에 인접한 사막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이집트.webp 이집트
불가사의 산출 -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얕은 하천 및 깊은 강 타일에서 파일:문명7_금.webp 금 +1, 파일:문명7_생산력.webp 생산력 +1

3.21. 하아몽가아 마우이

파일:문명7_하아몽가아 마우이.png
하아몽가아 마우이
Ha'amonga 'a Maui
<keepall> 파일:하아몽가아 마우이_문명7.png
"나는 강이요, 강이 곧 나다."
- 왕가누이의 말
먼 옛날 영웅 마우이는 배의 현외부에 거대한 돌을 싣고 통가로 항해하여 그 돌들을 왕좌로 삼았습니다. 누구도 그 돌을 들어 올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돌은 바다 밑에서 하와이섬을 들어 올릴 정도의 힘이 있어야만 들 수 있는 돌이었습니다. 통가에서 이 돌은 후세의 왕들이 잠재적 암살자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볼 수 있고, 요격도 가능한 안전한 앉을 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역사가들은 13세기에 통가 왕 투이타투이가 이 아치를 건설했다고 봅니다. 통가는 초기 폴리네시아 왕국으로 거의 2,500년 동안 사람이 거주했고 현재도 폴리네시아 왕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많은 폴리네시아 사회와 마찬가지로 통가는 해상 항해술과 왕의 개인 권력인 마나의 배양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러한 행위는 종종 마우이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아몽가아 마우이와 같은 기념비는 마우이를 기억하고 왕의 권력에 대한 개념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항해술.webp 항해술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375
입지 조건 해안에 인접한 초원 또는 열대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2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어선에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1, 파일:문명7_식량.webp 식량 +1

4. 대항해시대

4.1. 노트르담

파일:문명7_노트르담.png
노트르담
Notre Dame
<keepall> 파일:노트르담_문명7.png
"우리의 영광과 패배의 메아리가, 승리와 재앙의 메아리가 항상 저 묘지 아래에서 울려 퍼졌다"
- 앙드레 샹송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 중심의 시테섬에 있습니다. 화려한 장식과 가고일로 꾸며진 고딕 건축의 걸작이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그 밝은 구조입니다.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은 무거운 석조지붕을 지탱하기 위한 육중한 벽과 기둥이 필요했지만 노트르담은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있는 빛의 공간입니다. 노트르담은 공중 지지대(버팀도리, 플라잉 버트레스), 리브 볼트, 뾰족한 아치를 사용하여 무게를 분배해 놓고 얇은 석조 벽들을 지탱한 덕분에 이러한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163년부터 1261년까지 거의 100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제와 건축가가 감독했습니다. 2019년에 끔직한 화재로 첨탑이 무너지고 지붕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성당의 벽과 창문은 멀쩡했고 성당 복원을 위한 성금이 쇄도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사회 계급.webp 사회 계급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550
입지 조건 강과 특수지구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4
불가사의 효과 기념 행사 기간에 모든 전문가의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3
이 불가사의가 건설되는 즉시 기념 행사 시작

행복도와 문화에 큰 도움을 주는 불가사의. 현재 대항해시대 불가사의 중 둘뿐인 관련 문명이 없는 불가사의다. 추후에 만약 중세 프랑스가 나온다면 전용 불가사의가 될 법하다.

4.2. 릴라 수도원[세계의교차로]

4.3. 마추픽추

파일:문명7_마추픽추.png
마추픽추
Machu Pikchu
<keepall> 파일:마추픽추_문명7.png
"폭풍우 구름 속, 높은 천상에 사는 이시여, 우리의 제물을 받으소서"
- 비라코차에게 바치는 잉카의 기도
안데스 저 높은 곳에 계단식 테라스로 둘러싸인 돌의 도시인 '늙은 봉우리' 마추픽추가 있습니다. 1450년에 사파 잉카 파차쿠티가 왕실 휴양지로 지은 이 시설에는 제국 전역에서 온 노동자와 수행원 천여 명이 머물 수 있었습니다. 신성한 태양의 화신이라는 사파 잉카의 역할을 고려할 때, 이 복합 단지에는 정치적 숙박 시설은 물론 아니라 사원과 의식용 장소도 있었습니다.

1450년은 안데스에 새 제국을 세우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스페인이 이곳에 도래하기 전부터 유럽에서 탄생한 전염병이 이 지역에 퍼지면서 괴멸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마추픽추는 건설된지 100년도 채 안 되어 버려졌고, '잃어버린 도시'가 과거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도시 계획.webp 도시 계획 또는 파일:문명7_잉카 사회 제도.webp 미타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550
입지 조건 산악 열대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잉카.webp 잉카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금.webp 금 +4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자원 수용량 +2
이 불가사의에 인접한 모든 건물에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4, 파일:문명7_금.webp 금 +4

4.4. 보로부두르

파일:문명7_보로부두르.png
보로부두르
Borobudur
<keepall> 파일:보로부두르_문명7.png
"공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즐지도 않는다."
- 반야심경
인도네시아의 주요 섬인 자바섬은 섬 중 최대 크기는 아니지만, 8세기 보로부두르의 경우 이슬람교와 힌두교, 불교까지 다양한 신앙의 본거지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불교 사원인 보로부두르는 14세기 자바에서 힌두교와 불교가 쇠퇴하면서(힌두교 전통은 발리에서 계속되지만) 폐허가 되었습니다. 보로부두르는 9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500개 이상의 불상이 있는데, 대승불교 전통에서 이러한 불상은 석가모니를 의미하는 부처가 아닌, 성불한 다양한 개인을 의미하는 부처를 나타냅니다.

또한, 보로부두르는 이 지역의 국제적 영향력도 반영합니다. 사원을 건축한 샤일렌드라 왕조는 인도의 자원을 사용하여 문화와 종교를 발전 시켰으며, 중국에 교역 대표단을 파견했고 크메르 독립과 크메르 제국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관료주의.webp 관료주의 또는 파일:문명7_마자파힛 사회 제도.webp 가믈란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75
입지 조건 해안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마자파힛.webp 마자파힛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3
불가사의 효과 구역에서 파일:문명7_식량.webp 식량 +2,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2

4.5.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파일:문명7_브리하디스와라 사원.png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Brihadeeswarar Temple
<keepall> 파일:브리하디스와라 사원_문명7.png
"인간은 누구나 옥수수처럼 익고, 다시 옥수수처럼 자라난다."
- 카타 우파니샤드
인도 남부는 주로 타밀족과 같이 다른 지역의 인종이나 언어가 다른 집단의 고향입니다. 타밀족은 힌두교를 믿지만 나름의 특유한 전통을 발전시켰고 서기 제 1천년기와 제 2천년기 초반에 걸쳐 있는 촐라 왕조 치세에 국제적인 명성과 권력을 얻었습니다. 브리다하디스와라 사원은 타밀족의 풍성한 문화와 부, 힘에 대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남쪽의 메루(힌두 신화의 성스러운 산)'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은 순례자들이 답사할 수 있도록 설계된 대규모 단지 위에 펼쳐저 있습니다. 사원 중심에는 비마나가 있습니다. 비마나는 조각으로 장식된 피라미드 모양의 탑으로, 힌두 사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원이 정교하게 칠해졌지만, 브리하디스와라의 비마나가 칠해졌는지, 혹은 칠해야 했는지는 현대의 논쟁거리입니다. 현재 이 비마나는 모래빛의 주황색 돌로 어루어져 있어 장식물과는 상관없이 인상적입니다.

이 사원은 파괴의 신으로 널리 알려진 시바에게 헌정된 사원이지만, 시바는 훨씬 더 다양한 면모를 지닌 신입니다. 많은 지역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시바의 실제 아이콘을 제작하고 있는데, 타밀 지역에서는 시바를 주로 춤을 추는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적어도 이 신의 발이 내려와 이 세상의 시대가 끝날 때까지 활발하게 움직임을 상징합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외교부.webp 외교부 또는 파일:문명7_촐라 사회 제도.webp 몬순의 바람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75
입지 조건 깊은 강 또는 얕은 하천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촐라.webp 촐라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영향력.webp 영향력 +3
불가사의 효과 모든 건물이 깊은 강에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1 인접 보너스 획득

4.6. 서펀트 마운드[테쿰세]

파일:문명7_서펀트 마운드.png
서펀트 마운드
Serpent Mound
<keepall> 파일:서펀트 마운드_문명7.png
"우리 창조자는 바람과 흐르는 물속에서, 새의 노래 속에서, 아이의 웃음 속에서 우리에게 노래하고 우리에게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 텐스콰타와
오늘날 오하이오 고원의 고대 분화구 자리에 토착민들이 거대한 뱀 모양의 길고 구불구불한 언덕을 세웠습니다. 기원전 320년부터 서기 1400년까지 천 년 이상 다양한 민족이 이곳을 건설하고 만들었으며, 이곳을 선택한 것은 특이한 지형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언덕은 땅을 휘감은 채 풍경의 형태로 자리 잡았으며, 그 머리 부분은 뱀의 입이 달걀(또는 사원 부지) 같은 타원형 물체를 삼키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이 언덕의 정확한 목전은 당시 기록이 부족한 까닭에 여전히 수수께끼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언덕을 만들어왔으며 거대한 뱀에 대한 개념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시시피 문화(뱀 언덕과 관련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고, 서펀트 이전의 문화)가 카호키아의 거대한 고분 건축물로 유명하고 쇼니족과 다양한 신화에 뿔 달린 뱀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천문학.webp 천문학 또는 파일:문명7_쇼니 사회 제도.webp 위예히 시메코피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550
입지 조건 초원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쇼니.webp 쇼니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영향력.webp 영향력 +4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모든 고유 시설에서 파일:문명7_과학.webp 과학 +3, 파일:문명7_생산력.webp 생산력 +2

4.7. 슈웨다곤 파고다

파일:문명7_슈웨다곤 파고다.png
슈웨다곤 파고다
Shwedagon Zedi Daw
<keepall> 파일:슈웨다곤 파고다_문명7.png
"나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끝만을 가르친다."
- 석가모니
황금용의 탑, 슈웨다곤 제디 다우, 줄여서 간단히 슈웨다곤 파야라고도 하는 슈웨다곤 파고다는 미얀마 양곤의 스카이라인 위로 18m나 솟아 있는 금으로 덮인 스투파입니다. 여기에는 구류손불의 석장, 구나함모니불의 거름천, 가섭불의 가사 고타마(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석가모니)의 머리카락 가닥 같은 과거 칠불의 유물이 있다고 합니다. 전통에 따르면 스투파는 거의 2500년 전인 석가모니의 생에 동안 지어졌지만, 서기 14세기까지 스투파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슈웨다곤 파고다는 미얀마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동남아시아 본토와 스리랑카 소승불교에서 중요한 곳입니다.

건축 당시 미얀마는 몬족이 지배하고 있었고 아마도 슈웨다곤 파고다를 건설한 인물은 몬족의 왕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스투파는 몬족, 나중에는 미얀마인에게 있어 중요한 유물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이윽고 전 세계 불교도의 성지순례 대상이 되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교육.webp 교육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550
입지 조건 호수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과학.webp 과학 +4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가 1 이상인 모든 교외 타일에서 파일:문명7_과학.webp 과학 +2
와일드카드 속성 점수 +1

4.8. 아스키아의 무덤

파일:문명7_아스키아의 무덤.png
아스키아의 무덤
Tomb of Askia
<keepall> 파일:아스키아의 무덤_문명7.png
"그대가 어디에 있든 죽음은 그대를 따라잡으리라. 하늘 높이 솟은 탑 안에 있다 하더라도."
- 쿠란
가장 위대한 송가이 황제인 아스키아 모하마드 1세는 현재 말리의 기념비적인 피라미드형 건축물 아해 안치되어 있습니다. 이 무덤은 17미터 높이의 흙벽돌과 어도비 회반죽으로 된 건물로, 측면에 튀어나온 나무 기둥으로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어 고슴도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무덤은 당대의 사헬 건축 양식을 정의하게 되는 초기 사례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스키아 무덤의 모든 건설 자재는 메카에서 수입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했던 경제적 이유는 없지만, 종교적 장소이자 정치적 장소라는 기념비에 어울리는 행위였습니다.

마마르 커세이라고도 알려진 아스키아 모하마드(1493~1528)는 서아프리카 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여 아미나의 유명한 하우사 국가들을 정복하고 서사하라 교역로를 지배했습니다. 제국의 확장 지역도 아스키아 사후 수십 년 동안 장비에서 밀린 송가이가 아랍 국가들과 그들의 무기에 지배당하면서 몰락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중상주의.webp 중상주의 또는 파일:문명7_송가이 사회 제도.webp 사막의 배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00
입지 조건 사막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송가이.webp 송가이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금.webp 금 +2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자원 수용량 +2
이 정착지에 할당된 자원 하나마다 파일:문명7_금.webp 금 +2, 파일:문명7_생산력.webp 생산력 +1

4.9. 에르덴조 사원

파일:문명7_에르덴조 사원.png
에르덴조 사원
Erdene Zuu
<keepall> 파일:에르덴조 사원_문명7.png
"오, 그대 정복자들과 그대의 아들들이여.. 오, 그대 구루와 천신들이여... 그대들의 위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소서."
- 티베트 사자의 서
몽골 종교의 역사는 길고 복잡합니다. 초기 몽골 제국의 종교는 권력 축의 정점에 텡그리 신이 자리하여 개인의 영혼이 신성과 직접 소통하는 일종의 무속신앙이었습니다. 불교, 특히 티베트 불교가 기원전 약 500년, 석가모니 사후 몇 년 만에 몽골에 전래된 이후 이 지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인기는 무속신앙과 함께 변화를 거듭하였다 몽골이 정착한 도시에서 번성했고, 몽골이 다시 초원으로 흩어졌을때 쇠퇴했습니다.

에르덴조 사원은 몽골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불교 사원으로, 티베트 염주인 자파말라를 본떠 사원을 만들려는 야심 찬 계획에 따라 고대 수도 카라코룸의 돌로 1585년 축조됐습니다. 현재도 때때로 무속신앙 의식을 행하는데, 이를 통해 이 지역의 관습은 일반적으로 통합적, 혼합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제국주의.webp 제국주의 II 또는 파일:문명7_몽골 사회 제도.webp 야사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550
입지 조건 평지 사막, 평원 또는 툰드라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몽골.webp 몽골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4
불가사의 효과 기병 유닛 생산 시 생산 비용의 25%에 해당하는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획득

4.10. 엘에스코리알

파일:문명7_엘에스코리알.png
엘에스코리알
El Escorial
<keepall> 파일:엘에스코리알_문명7.png
"법은 권력을 행사하는 주권자의 명령에 불과하다."
- 장 보댕
스페인 왕의 거처인 산로렌소 데 엘에스코리알 왕궁은 국왕 펠리페 2세(1556~1598)가 20년에 걸쳐 건설한 도시입니다. 행정 건물, 왕실 거주지의 기능 외에도 이 안에는 수도원과 대성당, 도서관, 대학교 등 다양한 시설이 있습니다. 이 복합 건물 단지는 왕관과 십자가가 하나의 영광스러운 건물에 통합되어 있어, 스페인 제국 권력의 종교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엘에스코리알이 건설되었을 때 이곳은 스페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왕궁은 새로운 종교, 상업, 팽창주의 제국의 행정 중심지이자 왕들의 안식처이자 성유물과 중요한 문서가 보관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스페인은 이곳에서 위대한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계획했고 누가 그 길을 가로막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식민주의.webp 식민주의 II 또는 파일:문명7_스페인 사회 제도.webp 신세계의 부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75
입지 조건 거친 지형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스페인.webp 스페인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3
불가사의 효과 성유물 슬롯 3개 제공
정착지 한도 +1
이 불가사의 7타일 이내에 있는 도시에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4

4.11. 자금성

파일:문명7_자금성.png
자금성
Forbidden City
<keepall> 파일:자금성_문명7.png
"과거는 보물이며 시간은 보물의 은닉처다."
- 게일 마주르
원나라 통치 기간 동안 몽골인들은 수도의 중심부에 중국어로 '다두(한자로 대도(大都))' 또는 몽골어로 '칸발릭'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원나라의 통치는 비교적 짧았지만, 이후 명나라영락제가 수도를 이 고대 유적지로 옮기고 유르트가 있던 자리에 광대한 행정 복합 단지를 건설했습니다. 자금성 건설은 1406년에 시작되었으며, 청나라 말기까지 황궁 겸 겨울 거주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거대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지어졌으며 네 개의 문이 있는 이 공간에는 궁전, 사원, 행정 건물 등 인상적인 목조 건축물이 들어섰습니다. 중국의 다채로운 역사를 증명하듯 내부 사찰에는 불교, 도교, 만주족의 무속신앙 사당이 포함되어 있지만, 각 사찰은 안팎으로 천명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권위.webp 권위 II 또는 파일:문명7_명나라 사회 제도.webp 대명률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00
입지 조건 특수지구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명나라.webp 명나라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2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모든 요새 건물에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2, 파일:문명7_금.webp 금 +2

4.12. 지혜의 집

파일:문명7_지혜의 집.png
지혜의 집
House of Wisdom
<keepall> 파일:지혜의 집_문명7.png
"진실을 거짓과 혼돈하지도 말며 진실을 알면서도 숨기지 말지어다."
- 성스러운 쿠란 42절
아랍의 깃발 아래 그리스와 페르시아, 인도, 중국의 지식을 통합하여 아바스조 칼리파국은 학문과 과학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중심지라는 개념은 8세기에 개인 도서관으로 확고히 다져졌고, 9세기에는 공립 아카데미가 된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아바스조 세계의 중심에 있으면 번영할 수도 있지만, 재앙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이 도서관은 1258년에 몽골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당대 학자들의 작품으로만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자료를 보면 이 도서관은 과학자와 의사, 학자들이 고대의 작품뿐 아니라 당대 전 세계의 작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였다는 묘사가 등장합니다. 지혜의 집은 콘스탄티노플과 그 너머의 여러 지역을 뒤지며 번역 및 해석을 위해 오래된 문헌을 찾아다니는 책 사냥꾼들을 환영했으며 천문학자들은 별의 움직임을 연구했습니다. 이 모든 위업은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페르시아의 일 칸국을 세운 훌라구 칸의 손에 의해 티그리스강에 가라앉게 됩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사회.webp 사회 II 또는 파일:문명7_아바스조 사회 제도.webp 알자브르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75
입지 조건 특수지구와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아바스조.webp 아바스조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과학.webp 과학 +3
불가사의 효과 성유물 3개 획득
성유물 슬롯 3개 제공
걸작에서 파일:문명7_과학.webp 과학 +2

4.13. 할레 오 케아웨

파일:문명7_할레 오 케아웨.png
할레 오 케아웨
Hale o Keawe
<keepall> 파일:할레 오 케아웨_문명7.png
"땅에서의 삶은 의로움으로 끊임없이 계속된다."
- 카메하메하 1세
하와이의 종교적인 장소는 왕과 신성한 물체, 신성한 장소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이고 물리적인 힘인 마나가 구현된 곳입니다. 하와이의 빅아일랜드 서해안에 있는 할레 오 케아웨는 그런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이곳은 신성한 집은 중앙 할레 포키, 신성한 신의 이미지인 일련의 키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왕이 죽은 뒤에도 그 왕의 마나가 오랫동안 하와이를 도울 수 있도록 이 집 안에는 하와이 왕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마나가 존재하는 곳에는 외부인의 접근이 금지되었으며, 이는 올바른 카푸를 관찰하는 것이 사람의 마나 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원주민의 카푸(터부) 체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원은 19세기 초 하와이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파괴되고 왕들의 뼈는 치워졌지만, 20세기에 복원되어 현재 국립공원관리청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영감.webp 영감 또는 파일:문명7_하와이 사회 제도.webp 헤에날루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400
입지 조건 해안에 인접하되 툰드라에는 인접하지 않은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하와이.webp 하와이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2
불가사의 효과 해안 지형에 건물 건설 시 건설 비용의 50%에 해당하는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획득
성유물 슬롯 3개 제공

4.14. 화이트 타워

파일:문명7_화이트 타워.png
화이트 타워
White Tower
<keepall> 파일:화이트 타워_문명7.png
"왕이 되어 왕관을 쓰는 것은 그 무게를 짊어진 자보다 보는 이에게 더 영광스러운 법이다."
- 엘리자베스 1세
1066년에 노르만족이 영국 해안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앵글로색슨족과 노르드족, 켈트족 등 다양한 부족과 맞딱뜨렸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나무 방벽과 허스칼과 같은 정예 보병이 지키는 요새로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르만족은 유럽 본토의 기술, 즉 기마 기사와 돌로 만든 탑을 들여왔습니다. 이러한 요새는 최근 정복한 지역민을 통제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런던탑은 원래 돌로 만든 탑이 아니었습니다. 정복왕 윌리엄은 먼저 나무 건물을 지었으며, 이 탑의 일시적인 방어 기능을 사용하여 정복 후 12년이 지난 시점에 돌로 된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런던탑의 가장 오래된 부분인 화이트 타워는 왕족의 주거지와 군사 요새, 감옥, 교회 등, 동시에 모든 역할을 했습니다. 영국의 혼란이 가라앉으면서 화이트 타워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하얗게 칠해진 외관으로 더 호화로워졌습니다. 왕실은 결국 다른 곳, 즉 더 넓은 궁전으로 이사갔지만, 이 탑은 오늘날까지 영국의 강인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자주권.webp 자주권 II 또는 파일:문명7_노르만 사회 제도.webp 둠스데이 북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550
입지 조건 시청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노르만.webp 노르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4
불가사의 효과 정책 슬롯에 장착된 전통마다 이 정착지에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4

5. 근대시대

5.1. 도고 온천

파일:문명7_도고 온천.png
도고 온천
Dogo Onsen
<keepall> 파일:도고 온천_문명7.png
"싸늘한 추위, 우리에게는 술과 온천이 있네."
- 마사오카 시키
온천만큼 건강을 회복하는 데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마쓰야마시에 위치한 도고 온천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실내 온천 중 하나입니다. 1894년에 대중 목욕탕으로 건축된 이 3층짜리 온천은 일반 시민부터 황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이 휴양지로 사용했습니다. 목욕탕은 성별에 따라 구분되어 있으며, 유신덴은 본관 동쪽에 위치한 황실 전용의 별채 목욕탕입니다. 도고 온천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있는 장소이며, 보통 초저녁 무렵부터 붐빕니다.

도고 온천에는 온천수의 치유력과 연관된 전설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다리를 다친 백로가 이곳에서 목욕을 한 후 다 나아 날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신도교의 신 스쿠나비코나가 온천에서 목욕을 한 후 병이 나았고, 힘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돌 위에서 춤을 췄다는 이야기입니다. 도고 온천에는 지금도 이 돌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사회 문제.webp 사회 문제 또는 파일:문명7_메이지 일본 사회 제도.webp 문명개화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000
입지 조건 해안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메이지 일본.webp 메이지 일본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4
불가사의 효과 기념 행사가 시작될 때마다 이 정착지의 인구 증가

현재로써는 축제가 시작할 때마다 모든 정착지가 인구 1을 얻는다. 벨런스 붕괴

5.2. 도이수텝

파일:문명7_도이수텝.png
도이수텝
Doi Suthep
<keepall> 파일:도이수텝_문명7.png
"빗줄기가 낡은 초가지붕을 뚫고 들어오듯, 열정은 성숙하지 못한 마음을 뚫고 들어온다."
- 삼장
태국 북부의 도이수텝은 태국 북부 치앙마이시 바로 밖에 있는 봉우리의 이름입니다. 수텝산 꼭대기에는 소승불교 사원이자 북부의 상징인 왓 프라탓 도이수텝이 있습니다. 오늘날 도이수텝은 태국(과거의 시암)에 있지만, 이 사원은 시암의 사원이 아닙니다. 이 사원은 타이족라오족과 비슷한 고유의 전통과 언어를 유지하고 있는 과거 독립국이었던 란나 왕국의 콘 무앙 사람들이 건설했습니다.

이 사원의 이야기는 1368년, 석가모니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뼈를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란나의 왕은 이 뼈를 구매하여 일부는 도시에 안치하고, 나머지는 하얀 코끼리의 등에 묶은 뒤 정글에 풀어주었습니다. 그 코끼리는 현재 도이수텝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 갑자기 죽음으로써 이곳이 그 뼈를 안치할 곳이라는 걸 점지했습니다. 1935에 대중의 인기를 얻은 수도승 크루바 스리위차이가 치앙마이시와 도이수텝을 연결하는 대규모 운동을 조직하여 부족민과 콘 무앙 사람들이 함께 산위로 구불구불한 도로를 건설했습니다. 무르익고 있던 란나 독립운동과 결합된 이 조직에 시암 당국은 겁을 먹고 크루바 스리위차이를 방콕으로 불러들여 수도원에서의 지위를 포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도이수텝 사원은 구름 속에 잠긴 도시 위의 고요한 장소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교 사원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정치 이론.webp 정치 이론 또는 파일:문명7_시암 사회 제도.webp 만다라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000
입지 조건 거친 지형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시암.webp 시암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영향력.webp 영향력 +4
불가사의 효과 종주국인 도시국가마다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5, 파일:문명7_금.webp 금 +5

5.3. 무지부 아잘라 응팡가

파일:문명7_무지부 아잘라 응팡가.png
무지부 아잘라 응팡가
Muzibu Azaala Mpanga
<keepall> 파일:무지부 아잘라 응팡가_문명7.png
"왕자들은 비단뱀과 같아 서로를 삼켜버린다."
- 우간다 속담
부간다 왕들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반구형 초가집에 안치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왕과 함께 드럼과 창, 방패, 메달 등, 부간다 카바카(왕)의 힘을 강화하는 물건도 안장되었습니다. 카바카의 후손들은 이무덤을 사용하여 조상과 교감했지만, 현재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왕들만 들어갈 수 있던 곳에 관광객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0년 파괴적인 화재를 통해 배웠듯 초가지붕은 꾸준한 관리와 화재 방재가 필요합니다.

이 무덤은 나무와 풀다발로 지어진 혁신적인 바간다 건축물의 예입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산의 증거로 이곳은 과거 군주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어, 그들의 영향이 아직 시들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자연사.webp 자연사 또는 파일:문명7_부간다 사회 제도.webp 은날루바알레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000
입지 조건 호수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부간다.webp 부간다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식량.webp 식량 +4
불가사의 효과 모든 호수 타일에서 파일:문명7_식량.webp 식량 +2
이 정착지의 호수 타일에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2,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2
근대시대 불가사의인데 초가집이다...

5.4. 배터시 발전소[세계의교차로]

파일:문명7_배터시 발전소.png
배터시 발전소
Battersea Power Station
<keepall> 파일:배터시 발전소_문명7.png
"언젠가 배터시를 기억하느냐 물으셨죠? 지금은 기억합니다."
- 수잔나 클라크
1929년, 템스강 북쪽 강변의 런던 배터시에서 석탄 화력 발전소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테오 J. 할리데이와 영국의 유명한 빨간색 전화박스를 디자인한 길스 길버트 스콧이 설계한 이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은 하나의 건물에 두 개의 발전소가 들어설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1955년 완공 당시, 배터시 발전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벽돌 건물이었습니다. 101m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조종사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으며, 1977년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애니멀스(Animals)"의 표지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배터시 발전소는 오래 운영되지 않았고 1975년과 1983년에 발전소가 각각 해체되었습니다. 30년 넘게 비어 있던 이 랜드마크는 최근 쇼핑 및 주거 센터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전기.webp 전기 II 또는 파일:문명7_대영제국 사회 제도.webp 팍스 브리타니카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000
입지 조건 해안에 인접한 육지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대영제국.webp 대영제국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생산력.webp 생산력 +4
불가사의 효과 해상 유닛을 건조할 때마다 한 척 더 건조함

5.5. 부다나트[세계의교차로]

5.6. 붉은 요새

파일:문명7_붉은 요새.png
붉은 요새
Red Fort
<keepall> 파일:붉은 요새_문명7.png
"세계는... 우리가 죽어서 진짜임을 증명하는 곳이다."
- 살만 루슈디
인도는 무너진 제국들이 겹겹이 쌓인 곳입니다. 델리에만 해도 아소카의 기둥 중 하나인 델리 술탄국의 유적과 무굴 제국의 여러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유적들은 힌두교불교, 그리고 영국 신앙이 항상 평화롭게 공존하지는 않았더라도 어떻게 나란히 존재해왔는지 보여줍니다. 무굴제국의 중심에는 붉은 요새와 공작왕좌가 있었고. 황제들은 이곳에서 가장 부유하고 생산적인 문명 중 하나를 통치했습니다. 영국은 식민 통치 기간에 이곳을 점령했으나. 거대한 복합단지와 그 안에 흐르는 부는 권력을 장악하려는 모든 이가 탐내는 요새였습니다. 때문에 이곳은 끊임없이 불안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타지마할로 유명한 샤 자한이 지은 이 요새는 샤 자한이 아그라에서 델리에 도착한 후인 1639년에 건설 의뢰를 받은 건축물입니다. 여기에는 진주 모스크와 관련 목욕탕, 시장, 알현실, 계단식 우물이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였습니다. 붉은 요새는 아마도 타지마할에 이어 두번째로 무굴 인도 자체의 가장 잘 알려진 델리의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군사 과학.webp 군사 과학 또는 파일:문명7_무굴 사회 제도.webp 만사브라디 제도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000
입지 조건 특수지구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무굴.webp 무굴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금.webp 금 +4
불가사의 효과 점령해야 하는 요새화된 특수지구 역할을 함
이 타일과 모든 도심부의 체력 +50

5.7. 브란덴부르크 문

파일:문명7_브란덴부르크 문.png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
<keepall> 파일:브란덴부르크 문_문명7.png
"오늘날의 위대한 질문은... 연설이 아닌 철과 피로 결정될 것이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
베를린은 유럽 역사의 심장부에 있습니다. 베를린은 자유주의군국주의, 민주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을 목격했고 베를린 시민들은 대대적인 파괴와 점령, 제국과 폐허, 그리고 다양한 가면을 쓴 지배의 망령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속 각각의 순간은 도시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브란덴부르크 문은 이러한 변화를 견뎌내고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1791년에 건설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브란덴부르크 문은 신성 로마 제국시대에 같은 이름을 지닌 후국의 수도인 브란덴베르크로 가는 길의 시작을 나타냈습니다. 이 문은 도시를 둘러싼 성벽의 단절을 의미했지만, 이후에는 상징으로서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은 문의 일부를 해체했고, 카이저통치 기간에는 제국의 상징이 되었으며, 나치 시대에는 파시스트의 상징이 되었고, 동서 베를린 분할 기간에는 소련 국기가 전시되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고르바초프 수상에게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고 호소할 때, 레이건은 그 말에 앞서 '이 (브란덴부르크) 문을 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장벽이 무너졌을 때 이 문은 유럽의 자유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으며, 지금도 자유와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군국주의.webp 군국주의 II 또는 파일:문명7_프로이센 사회 제도.webp 엠스 전보 사건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400
입지 조건 특수지구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프로이센.webp 프로이센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생산력.webp 생산력 +6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는 전쟁 피로도로 인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패널티를 받지 않음
정복한 정착지의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5

5.8. 에펠탑

파일:문명7_에펠탑.png
에펠탑
Eiffel Tower
<keepall> 파일:에펠탑_문명7.png
"그 탑에 오른 자는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탑 위에서 꿈을 꾸고, 밥을 먹고, 주변풍경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세상과 단절되었지만, 세상의 주인이 된 기분을 느끼리라."

- 롤랑 바르트
에펠탑 건설 직후, 기 드 모파상알렉상드르 뒤마 주니어 등의 예술가 집단은 에펠탑을 '빛의 도시'를 가로질러 뻗어 있는 '볼트로 고정된 이 역겨운 금속 기둥의 역겨운 그림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에펠탑은 근대의 상징이자 살롱카페는 물론, 산업과 철강으로 이루어진 파리의 이미지를 나타내는데, 최근 몇년 사이 살롱과 카페의 상징이 된 건 큰 아이러니라 할 수 있습니다. 반발이 너무 심해서 에펠탑은 1909년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라디오 기술이 출현하면서 안테나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된 덕분에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에펠탑은 1889년에 구스타브 에펠이 건설했습니다. 1930년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이 건설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으며, 거대한 철제 기둥으로 만들어져 철의 여인(la dame de fer)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그 높이는 300m가 넘습니다. 프랑스 작가 롤랑 바르트는 에펠탑은 기념비가 아니며, 오히려 탑에서 보는 도 시 그자체가 기념비라고 적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라디오.webp 라디오 또는 파일:문명7_프랑스 제국 사회 제도.webp 프랑스 민법전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200
입지 조건 특수지구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프랑스 제국.webp 프랑스 제국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5
불가사의 효과 이 정착지의 구역에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2,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2

5.9. 예르미타시 미술관

파일:문명7_예르미타시 미술관.png
예르미타시 미술관
Hermitage
<keepall> 파일:예르미타시 미술관_문명7.png
"모든 열정은 혼돈과 맞닿아 있지만, 수집가의 열정은 기억의 혼돈과 맞닿아 있다."
- 발터 벤야민
상트페테르부르크네바강둑에 있는 세계 최대의 미술관인 예르미타시 미술관은 단순히 예술과 문화의 육성과 수집에 초첨을 맞춘 군주제의 예술 취향에 대한 증거인 '예카테리나의 컬렉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762년 러시아의 차리나였던 예카테리나 대제는 베를린 미술상에게서 미술품을 구입하여 겨울 궁전 근처 건물에 전시했습니다. 이 컬렉션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원래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를 위해 모은 작품들이었지만, 그는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카테리나는 수집가에게서 점점 더 많은 작품을 구입했고 컬렉션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결국 컬렉션을 전시하는 건물에서 컬렉션을 관리하고, 로마노프 왕실의 삶을 기념하는 화려한 축제를 주최하기 위해 거의 천명에 가까운 직원을 고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차르 치하에서 예르미타시 미술관은 오늘날과 같은 공공 미술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된 건 러시아 혁명이후이며, 역설적이게도 이 미술관은 러시아 귀족 컬렉션을 국유화함으로써 컬렉션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예르미타시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미술관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근대화.webp 근대화 또는 파일:문명7_러시아 사회 제도.webp 러시아 관등제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000
입지 조건 툰드라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러시아.webp 러시아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4
불가사의 효과 걸작이 전시된 도시의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10%
유물 슬롯 3개 제공

5.10. 옥스퍼드 대학교

파일:문명7_옥스퍼드 대학교.png
옥스퍼드 대학교
Oxford University
<keepall> 파일:옥스퍼드 대학교_문명7.png
"옥스퍼드에서 꿈꾸고 기억하는 것 외에 무언가 하는 사람이 있긴 할까?"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교욱 기관은 사회에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계획할 공간과 시간을 제공합니다. 교육에 투자하지 않는 사회는 선조가 저지른 잘못을 빠르게 반복하게 됩니다. 옥스포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는 아니지만(볼로냐 대학이 더 오래되었음), 1096년 설립 이래 천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옥스포드는 오늘날에도 권위 있는 고등 교육기관으로, 디지털 자료를 포함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학술지와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는 설립 이후 유럽과 영국 간의 갈등으로 인해 해외 유학이 금지되었던 학생들을 끌어들여 성장했습니다. 1878년에는 여성을 입학시키기 시작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7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와 50명이 넘는 세계 지도자를 배출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아카데미.webp 아카데미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000
입지 조건 특수지구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과학.webp 과학 +4
불가사의 효과 무료 기술 2개 제공
와일드카드 속성 점수 +1

근대 시대 문명 중 타지마할과 함께 관련 문명이 없는 둘뿐인 불가사의이다. 무료 기술에 와일드카드 점수까지 더해주니 과학 승리를 노린다면 필수. 그렇지 않은 문명도 게임 전반적으로 상당히 유용하다.

5.11. 자유의 여신상

파일:문명7_자유의 여신상.png
자유의 여신상
Statue of Liberty
<keepall> 파일:자유의 여신상_문명7.png
"지치고 가난한 이들을,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을 내게 보내라... 나 황금의 문 곁에서 드높이 등불을 들리라."
- 엠마 라자러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미국으로 온 많은 이민자들에게 상징적인 광경인, 구리 재질의 '세계를 밝히는 자유'는 1886년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것이었습니다. 수석 디자이너는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와 자신의 이름을 딴 탑으로도 유명한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이었습니다. 이 기념비는, 자유에 대한 양국 공동의 약속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미국 혁명 이후 존재해 온 프랑스와 미국의 우호적인 관계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 동상의 원래 색은 초록빛이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구리가 자연스럽게 산화하며 녹청색이 되었습니다. 또한, 흔히 인용되는 "지치고 가난한 이들을,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을 내게 보내라"라는 구절은 원래 이 여신상에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1903년에 당시 유럽 이주민들이 몰려오던 때, 이들이 볼 여신상을 재정의하기 위해 엠마 라자러스의 시를 새긴 것입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자본주의.webp 자본주의 II 또는 파일:문명7_미국 사회 제도.webp 전시 제조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400
입지 조건 육지에 인접한 해안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미국.webp 미국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6
불가사의 효과 이주민 4명 생성

아메리칸 드림을 반영하여 이주민 4기를 지급받는다.

5.12. 청더 피서산장

파일:문명7_청더 피서산장.png
청더 피서산장
Chengde Mountain Resort
<keepall> 파일:청더 피서산장_문명7.png
"얼어붙은 아름다움 속에 느리고 고요히 흐르는 물결, 서리로 반짝이는 대나무에 깃든 끝없는 경이로움."
- 사영운
자금성이 청나라 황제의 겨울 별궁이었다면, 피서산장은 여름 별궁이었습니다. 이 산악 휴양지는 황제의 거주지 주변에 건설된 대규모 행정 건물 단지와 같은 기능을 했습니다. 피서산장은 주변 자연경관을 특별하게 제작한 덕분에 특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각 황실 사원은 중국 소수 민족 중 하나의 스타일로 지어져 있으며, 이는 중국이 단순히 한족의 국가가 아니라(실제로 만주족 청나라 지배자는 이런 발언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임), 하나의 왕권 아래 뭉친 다양한 민족 집합체라는 개념을 강화했습니다. 전문 정원사들은 이곳의 풍경을 따라 중국 풍수 전통, 특히 피서산장이 있는 붉은 흙과 가파른 절벽의 단샤 풍경을 반영하여 이 지형을 억누르는 대신 더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정원을 꾸몄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헤게모니.webp 헤게모니 II 또는 파일:문명7_청나라 사회 제도.webp 변경 안정화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400
입지 조건 산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청나라.webp 청나라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금.webp 금 +6
불가사의 효과 우리 문명과 교역로가 있는 다른 문명 하나마다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5%

5.13. 타지마할

파일:문명7_타지마할.png
타지마할
Taj Mahal
<keepall> 파일:타지마할_문명7.png
"사랑할 때만큼 고통에 무방비할 때가 없으며, 사랑하는 대상이나 그 사랑을 잃었을 때만큼 불행에 무력할 때가 없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10]
종종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히는 타지마할은 사실 무덤입니다. 타지마할은 델리의 붉은 요새를 비롯하여 여러 인상적인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한 무굴 황제 샤 자한이 1631년 세웠습니다. 이곳에는 정원과 모스크가 있으며, 황제가 가장 사랑했던 아내 뭄타즈 마할의 시신과, 마치 나중에 생각한 듯하지만 샤자한 본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독특한 무굴 양식으로 설계된 이 건물은 페르시아와 힌두교 디자인을 결합한 형태로 무굴 사회 전반의 이원적 영향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대리석 재질의 거대한 양파 모습의 돔 덕분에 이 건물을 알아 보는 사람은 많습니다.

타지마할은 오늘날 인도의 상징입니다. 많은 힌두교인이 무굴 시대에 대해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지마할은 사랑과 상실, 그리고 우리의 생이 끝난 뒤에도 아름다움은 남을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민족주의.webp 민족주의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200
입지 조건 평원 타일
관련 문명 없음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금.webp 금 +5
불가사의 효과 기념 행사 지속 시간 +50%
와일드카드 속성 점수 +1

인도(무굴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지만 무굴제국 관련 불가사의 자리를 붉은 요새에게 빼앗겼다.

5.14. 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르테스

파일:문명7_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르테스.png
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르테스
Palacio de Bellas Artes
<keepall> 파일: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르테스_문명7.png
"날아갈 날개가 있다면 발에 무슨 쓸모가 있을까?"
- 프리다 칼로
국가에는 박물관이 필요합니다.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에 따르면 현대의 국가 정체성은 민족적 기반의 거대한 이야기 결과이든('스웨덴 사람들') 이념적인 원칙의 정점으로서이든(미국의 맥락에서의 '자유') 불가피한 결과라고 합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이 됐든 한 국가의 상상력을 구체화하는 방식이 됐든, 예술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르테스는 멕시코의 문화중심지입니다. 교회의 토대 위에 지어졌으며, 본래 이 토대는 아즈텍 유적지의 토대였습니다. 현재 우리가 아는 건물은 멕시코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1904년에 발주되었으나 1934년이 되어서야 아르누보 양식으로 완공되었습니다. 이곳은 멕시코에서 가장 권위있는 연극 공연 장소로, 멕시코 토착 문화와 스페인 풍습의 결합을 기념하는 작품이 전시되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요구 조건 파일:문명7_세계주의.webp 세계주의 II 또는 파일:문명7_멕시코 사회 제도.webp 플라네스 폴리티코 II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200
입지 조건 특수지구에 인접한 타일
관련 문명 파일:문명7_멕시코.webp 멕시코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문화.webp 문화 +5
불가사의 효과 걸작에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2
이 정착지에서 파일:문명7_행복도.webp 행복도 +10%
유물 슬롯 3개 제공

5.15. 맨해튼 프로젝트

파일:문명7_맨해튼 프로젝트.png
맨해튼 프로젝트
Manhattan Project
<keepall> 파일:맨해튼 프로젝트_문명7.png
"나는 죽음이자,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 바가바드 기타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사막에 작은 태양이 나타났습니다. 일반적인 폭팔물에 의해 강제로 뭉쳐진 플루토늄 원자들이 서로에게 중성자를 쏟아내며 핵을 분열시키고, 이로 인해 연쇄 반응이 일어나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방출했습니다. 즉 핵폭발이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하여 '나는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 물리학자는 핵폭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간략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러면 죽음 또는 부활에 닿는 것인가' 라며 존 던의 시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핵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민간인에게 투하되었고, 이는 1945년 일본 제국의 항복으로 이어졌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자체는 미국이 영국과 캐나다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일련의 방사성 물질 실험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20세기를 정의한 것은 대부분 핵무기의 급격한 증가와 세계 멸망에 대한 원시적인 공포였습니다. 이는 전쟁만이 아니라 경제 자체가 파괴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이었습니다.
불가사의 상세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1200
입지 조건 -
불가사의 산출 파일:문명7_과학.webp 과학 +5
불가사의 효과 플레이어에게 핵무기 제공

핵무기 사용과 군사승리를 하기 위한 특수 불가사의.

발매 초기 기준으로는, 안타깝지만 핵무기는 하등 쓸모가 없다. 전쟁을 하기 위해 핵무기를 만드는 건데 이미 전쟁을 많이 해서 점령지가 많아야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는 모순도 문제지만, 맨해튼 프로젝트를 완료해도 바로 다음 단계인 아이비 작전을 완료하는 순간 게임을 승리하므로 핵을 모으고 사용할 시간 자체가 얼마 없기 때문.

5.16. 세계 박람회

파일:문명7_세계 박람회.png
세계 박람회
World's Fair
<keepall> 파일:세계 박람회_문명7.png
"필요하면 주방 스토브를 팔아서라도 오세요. 이 박람회는 꼭 보셔야 합니다."
불가사의 상세
생산 비용 파일:문명7_생산력.webp 3000
입지 조건 -
불가사의 산출 -
불가사의 효과 문화 승리 달성

근대 시대 문화 유산의 길 완료 후 문화 승리를 하기 위한 특수 불가사의로, 짓는 순간 문화 승리로 게임이 종료된다.
[세계의교차로] 세계의 교차로 확장팩[2] 내레이션에서는 고려라고 말한다. 영어에서는 고려라고 나오지만, 한국에서는 고려가 신라 이후 시대인 것을 알기에 어색해할까봐 원본 시조의 문구인 '전 왕조'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3] 원래 시조는 황진이의 '송도'라는 한시로, 雪中前朝色(설중전조색)/寒鐘故國聲(한종고국성)/南樓愁獨立(남루수독립)/殘廓暮烟香(잔곽모연향)라는 5언절구 한시이다.[4] 문명 7의 역사 전문가로 참여하는 앤드류 존슨 박사의 말에 의하면, 이 한시가 고려에 대한 것임을 이미 알았지만, 종에 대한 어떤 인용구보다도 이 시가 마음에 들어서 이를 사용했다고 한다.[5] 참고로 영어 내레이션 성우는 이를 위해 ㅕ와 ㅛ 발음의 차이에 대해 코칭을 따로 받았다는 후문.[세계의교차로] [테쿰세] 테쿰세와 쇼니족 팩 DLC[세계의교차로] [세계의교차로] [10] 타지마할에 대한 인용구가 아니라 아내를 잃고 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에 대한 인용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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