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영화에 대한 내용은 서부전선(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서부에서 형성된 전선. 말 그대로 서쪽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전선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며, 한 개의 전선을 위치에 따라 나누어서 서부전선, 중부전선, 동부전선 하는 식으로 구분할 때 상대적으로 서쪽에 위치한 전선의 일부를 말하기도 한다.세계사에서 서부전선은 일반적으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당시 서유럽 지대에 형성된 전선을 일컫는다. 한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6.25 전쟁 당시의 서부전선을 뜻하고, 서양에서는 보통 1차 대전을 떠올린다.
2. 제1차 세계 대전
흔히 제1차 세계 대전 하면 떠올리는 참호전의 참상이 벌어진 곳이 바로 이 서부전선이다. 의외로 참호전은 서부전선, 그리고 어쩌면 이탈리아 전선의 예외적인 상황에 가까운데, 서부전선과 달리 세르비아 침공 및 동부전선은 기동전과 회전이 주된 양상이었다. 후자의 경우 독일 제국을 제외한 주요 참전국들[1]이 상대적으로 후진국이고, 전선이 넓은 동유럽 평원에 위치하며 그 길이는 서부전선보다 훨씬 긴 데 반해 배치된 병력은 상대적으로 적어서 병력 밀도가 낮아 전선 돌파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즉 동부전선은 회전이 더 자주 벌어질 수 있었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참호전을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서부전선의 경우 영국과 프랑스, 독일 제국 셋 다 산업화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인데다 슐리펜 계획마저 마른 전투에서 저지당하여 독일의 신속한 승리가 날아갔다. 게다가 동부전선과 달리 전선의 병력 밀도가 매우 높아서 전선 돌파나 기습을 하기 매우 어려웠고, 따라서 양측이 참호를 파고 기나긴 대치 상태에 돌입하면서 끔찍한 인외마경의 진흙탕 바닥의 생지옥으로 변하게 된다.[2]
참호전은 화력 팩터가 기동 팩터를 상대로 우위를 누리면서 일어난 전투양상이었다. 즉 후술할 전차나 비행기와 같은 참호를 돌파할 만한 무기와 그 무기를 사용할 전술의 부재가 빚은 전투양상이었던 것이다. 솜 전투마냥 적군 참호에 보병대를 어택땅시켜 들이부으면 기관총 앞에서 벌집이 되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고[3], 결국 영국-프랑스군과 독일군의 전술은 모두 참호 파고 버티기으로 일종의 수렴 진화를 겪었다. 특히 연합군의 참호는 독일군에 비해 참호가 상대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비만 오면 물바다가 되었고 심지어 익사할 정도로 물이 차 오르기도 했다. 위생 상태야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독일군이라고 나을 것도 없어서, 독일군은 본토에서 멀리 진격 나와 있는 상태인 데다 경제 상황이 심각해서 보급이 후달린 나머지 병사들이 그저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바닥을 치는 사기 앞에서 목숨 걸고 무의미한 희생을 내가며 연합군 참호를 뒤져 식량을 보이는 대로 싹싹 긁어 털어와야 했을 정도.
결국 양 진영이 국력을 참호선 요새에다 다 퍼붓는 이 막장스럽고 부조리의 끝을 보여준 미친 상황은 전차와 비행기 등의 새로운 무기와 전술의 등장, 그리고 미국의 참전으로 기존의 병력소모를 낸 영프연합군이 압도적인 병력, 인력자원과 사기를 보유한 미군에게 주도권을 주면서 충분한 병력의 양과 질을 보유하게 된 연합군이 우위에 서게 되면서 종결되었다.
후술하는 제2차 세계 대전과는 달리 전쟁의 종결은 서부전선에서 결정되었다. 다른 전선에서도 활발한 전투가 벌어졌고, 동부전선은 러시아 제국의 붕괴로 인해 전선 자체가 독일의 승리로 일단락되었으나, 결국 서부전선에서 독일의 최후 공세가 실패하면서 독일의 패배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개전 당시 프랑스는 독일의 국력의 3분의 2 수준이었는데, 인구수는 저출산으로 정체되었고 철광과 탄전이 부족하여 대규모의 공업을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농업과 식민지, 금융업과 사치품 산업으로 막대한 자금을 보유했지만 독일은 프랑스보다 산업이 발전되어 있었고 프랑스의 식민지를 뺀 본국은 인구 수에서 독일에 밀렸다(독일: 6,500만 / 프랑스: 3,980만). 또한 프랑스는 전쟁 초기 국경 전투의 패배로 북부의 곡창 지대를 죄다 독일에 빼앗기고, 수도인 파리에서 불과 50여km까지 밀리면서, 수도의 함락을 앞두기도 했다. 그러나 제1차 마른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반격하기 시작하더니, 1917년부터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군 병력이 프랑스에 상륙해 기진맥진하며 병력소모가 극심한 영프연합군의 바톤을 이어받아 백일 공세의 생미이엘 공세를 시작으로 뫼즈-아르곤 공세를 거치며 지친 독일군을 압박해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킬 군항의 반란으로 인해 독일군이 항복하면서 프랑스는 승리했다. 1940년과 달리 프랑스군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되갚아 줘야 한다는 이유(그리고 패전하면 프랑스가 사라질테니)로 사기가 높았으며 식민지 경험을 통해 실전경험 및 훈련도도 매우 높았으며, 인재 면에서도 역대 프랑스군 중 가장 우수했었다. 포슈, 조프르, 페탱 모두 이 시기 크게 활약한 장군들이며 프랑스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독일에 반격을 가해 전선을 고착화하는 데 성공하며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물론 이를 위해 군인/민간인 합쳐서 180만 명, 전체 인구의 4% 넘게 희생되었다.[4]
2.1. 주요 전투
3. 제2차 세계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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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과는 달리 1940년 나치 독일의 프랑스 침공으로 프랑스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면서 서부전선은 한동안 영국 혼자 외로이 독일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형국으로 진행되었다. 영국은 영국 본토 항공전을 수행하면서 끝끝내 버텨내는 데 성공했고 일본 제국이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면서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이후 지중해 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추축국 세력을 분쇄한 뒤 소련이 서유럽에서의 제2전선을 형성할 것을 요구했다. 윈스턴 처칠은 이탈리아 전선을 대충 열고는 발을 빼려 했지만 천조국 황상의 암묵적 지지를 받은 강철의 대원수의 집요한 요구와 격노에 결국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실행되어 프랑스가 해방되었다. 동부전선에서 모든 힘을 쏟아부은 독일은 마켓 가든 작전에서의 분투 등에도 불구하고 서부전선으로 진격하는 연합군을 막을 능력이 매우 부족했고 최후의 도박으로 아르덴 대공세를 시도했지만 망해 버렸다. 결국 독일은 항복했고 유럽의 제2차 세계 대전은 종결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명목상으로는 일본군도 이 전선에 참전했다. 일본이 티거 전차 두대와 판터 전차, 3호 전차 몇대를 독일로부터 구매했는데 일본까지 그걸 수송할 방법은 없고, 그렇다고 이미 지불한 대금을 도로 돌려달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래서 독일군이 그 일본군 전차들을 임대해서 서부전선에서 굴렸다고 한다. 즉, 일본군의 무기가 사용되어 일본군이 참전하게 되었다.
3.1. 전선의 성격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외에도 남프랑스의 독일군 섬멸을 위한 조공으로 1944년 8월 15일 용기병 작전이 실행되었다. 이 작전으로 툴롱이 해방되고 론 강을 따라 미 육군 제6집단군 사령관 제이콥 데버스 대장 휘하의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프랑스 남부를 해방시켰다.이들은 계속 북상하여 9월 4일에는 리옹을 해방하고 9월 12일 마침내 노르망디의 상륙군과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후 프랑스에서의 독일군은 거의 축출되고 됭케르크, 라 로셸 등지에서 잔존 병력들이 1945년 5월 8일까지 저항한다.[5]
승리의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독일은 최후의 올인으로 미군에게 아르덴 대공세라는 도박을 벌였지만 그마저도 미군의 압도적인 지상군과 부족한 연료보급, 압도적인 항공우세 앞에 돈좌되며 실패했고,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많은 독일 병사들은 소련군에게 유린되기 싫어 연합군에게 항복하는 쪽을 택했다.1945년 지크프리트 선이 뚫리고 독일 내 최고 산업 도시이던 루르 지대에서 '끝까지 싸우다 죽으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씹고 포위된 독일군 중 무려 30만 명이 영국군 앞에 장교부터 병사까지 무저항 항복하는 등 서부전선의 독일군의 사기는 이미 손쓸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압도적인 벽이 되어버린 연합군의 전력 앞에 바닥을 쳤다.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비록 나치 독일 자신들이 먼저 이념적으로 슬라브인 학살과 노예행, 약탈을 가장 중요한 전쟁 목표로 삼아 이를 이루기 위해 국가단위로의 계획적인 학살과 약탈을 시작했지만)' 이후 복수심과 손쓸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무자비하게 자항을 분쇄시키고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갖 잔학행위를 되돌려 주는 소련군으로부터 자국민을 지키기 위해 죽어라 맞서 싸울 명분이 있었지만, 서방 연합군은 별다른 잔학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고 포로들에 대한 대우도 소련에 비해 훨씬 관대했기 때문에 독일군의 저항 역시 미약한 편이었다.
사실 2차 세계 대전의 서부전선은 영프연합군의 패배와 프랑스의 항복 이후 노르망디 상륙 작전으로 다시 전선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영국과의 소규모 공중전이나 디에프 상륙 작전 같은 위력정찰, 코만도나 레인저대대들의 침투 및 특수작전 같은 소규모 특수작전이 대부분이었다.
전후 서방권에서 제작된 제2차 세계 대전(대독전 한정) 영상물의 경우 서부전선을 다룬 매체의 비중이 동부전선과 대등하거나 더 많다. 특히 냉전시기에는 소련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에도 애매했다.
지상전에서 제공권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처음 드러난 전쟁이 2차 대전이었고 그중에서도 서부전선이 압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동부전선에선 지상군의 진격을 보조해 주는 공격기들과 이들을 상대하는 전투기들이 전술적인 성격을 많이 지녔던 반면 서부전선에선 전략적인 성격을 지녔다. 서방연합군의 전략 폭격기들은 독일의 산업 기반 시설을 파괴해 독일군의 물자를 서서히 거덜냈고 독일군은 연합군의 항공기 때문에 항상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이 밀리면 밀릴수록 이 문제는 심해졌다. 오죽하면 나치 독일의 군수장관인 알베르트 슈페어는 자신의 회고록에 ''맑은 날에 도로에 나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고 써 놓을 정도였다.
3.2. 주요 전투
- 가짜 전쟁
- 프랑스 침공
- 됭케르크 철수작전
- 영국 본토 항공전
- 독일 본토 항공전
- 노르망디 상륙 작전
- 코브라 작전
- 팔레즈 포위전
- 용기병 작전
- 휘르트겐 숲 전투
- 마켓 가든 작전
- 아르덴 대공세
- 라인란트 전투
- 연합군의 독일 본토 침공
- 이터성 전투
4. 6.25 전쟁
시기상 구분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칼로 딱 끊는 것처럼 엄밀하게 서부전선 - 중서부전선 - 중부전선 - 중동부전선 - 동부전선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겹치는 지역이 항상 있었으며, 전선간의 병력 이동 및 교대도 활발하게 이어졌다. 따라서 분리된 전선이 아니라 전선의 일부 지역을 편의상 나눈 것이라고 보면 된다.개전 직전 | 38선중 독립 제17연대 - 제1보병사단 - 제7보병사단이 담당하던 옹진 - 청단 - 연백 - 개성 - 고랑포 - 동두천 북방 - 포천 북방 지역을 말한다. 황해도 - 경기도에 걸친 구간으로 당시 길이로는 약 130km 정도였다. 그리고 제6보병사단이 담당한 강원도 영서 지역은 중부전선, 제8기동사단이 담당한 동해안 지역은 동부전선이라고 구분한다. |
미군 참전 개시 | 경부선 철도를 기준으로 해서 서쪽 지역 전체와 철도 인근을 포함한 지역을 미군이 담당하면서 해당 지역을 서부전선으로 삼았다. |
대전 함락 이후 | 방어선 수립이 불가능한 전라도 지역은 대한민국 경찰청 및 잔여 부대에게 방어를 담당하고, 경부선 이남의 소백산맥에서 남해안까지를 지칭한다. 전선의 방향이 크게 바뀌었지만 서쪽인 것은 변함이 없다. |
낙동강 방어선 | 경상북도 왜관 지역의 경부선 철도를 기준으로 해서 남쪽의 낙동강 방어선 및 마산 서부의 산악 지대를 거쳐서 남해안까지의 방어선을 말한다. 주로 미군이 방어를 담당했다. |
인천 상륙 작전 성공 | 38선 이남 지역의 대부분을 급속탈환할 때는 전선의 구분이 명확치 않았고, 이후에는 아직 미수복한 개성 남쪽의 임진강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동쪽으로는 동두천 북부, 서쪽으로는 황해까지의 전선이다. |
북진 작전 | 황해도를 거쳐서 평안도 지역 전역을 서부전선으로 삼았다. 서부전선의 주력은 미8군. 동부전선은 따로 원산 상륙작전 이후 미10군단이 독자적으로 활동했으며, 낭림산맥의 험준함으로 인해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다. |
1.4 후퇴 |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를 기준으로 해서 황해까지의 전선을 말한다. 중부전선과 어느 정도 겹친다. |
서울 재탈환 후 교착 상태 | 황해에서 임진강을 거쳐 철원 근방까지를 잡는다. 물론 중부전선과 어느 정도 겹친다. |
휴전 이후 2020년 현재까지 | 서해 5도에서 철원 근방의 경기도 - 강원도 경계선 까지의 휴전선을 말한다. 현재 지상작전사령부의 위수지역. |
5. 서부전선 포격사건
자세한 내용은 서부전선 포격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6. 참고
[1] 러시아 제국, 세르비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그리스 왕국, 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 왕국[2] 이탈리아 전선의 경우 서부 전선에 비해 병력 밀도는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전선이 형성된 곳이 그 악명높은 알프스산맥이었으므로 마찬가지로 참호전이 벌어지게 된다.[3] 이 과정에서 병사들뿐만 아니라 장교도 우수수 죽어나갔다. 왜냐하면 이 장교들이 결국 병사들을 독려하고 앞장서서 이끌어야 했으니까. 통계에 따르면 일반 사병의 사망률은 1/8 정도였지만, 귀족 장교들은 1/5 가량이 사망하였다.[4] 말이 4%지 대부분이 청년층이라 그 피해는 훨씬 더 컸으며, 이 악영향은 전간기 때 히틀러의 위험한 불장난에 소극적으로 대처함과 동시에 마지노선에 매달리게 되는 그릇된 배경이 되었다.[5] 코브라 작전 이후 미군의 진격 과정에서 남겨진 수만 명의 독일군들로 대개 프랑스 연안의 요새화된 항구 도시에 고립되었다. 몇몇 항구 도시(Ex: 브레스트)는 미군이 무력으로 탈취했으나 사상자나 소요 시간 등의 문제로 추가 평정화 작전을 펼치긴 힘들었다. 프랑스가 해방되고 연합군의 진격이 독일 본토로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고립된 독일군은 연합군과 암묵적인 휴전 협정을 맺어 식량을 공급받고 포로 교환을 하는 등 항복하거나 무기를 버리진 않았으나 그들이 고립된 그 지역 내에서 사실상의 포로 수용소 신세로 지내다 독일이 항복하면서 정식으로 항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