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2:59:53

건문제

명혜제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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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명 제2대 황제
건문제 | 建文帝
출생 1377년 12월 13일
남경 응천부 황궁
(現 장쑤성 난징시 쉬안우구)
즉위 1398년 7월 8일
남경 응천부 황궁
(現 장쑤성 난징시 쉬안우구)
실종 1402년 7월 13일 (당시 25세)
남경 응천부 황궁
(現 장쑤성 난징시 쉬안우구)
능묘 없음[1]
재위기간 명 황태손
1392년 10월 6일 ~ 1398년 7월 8일
제2대 황제
1398년 7월 8일 ~ 1402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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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성씨 주(朱)
윤문(允炆)
부모 부황 흥종 강황제
모후 황태후 여씨[2]
형제자매 5남 4녀 중 차남
배우자 효민양황후
자녀 2
작호 황태손(皇太孫)
묘호 혜종(惠宗)[3]
시호 혜황제(惠皇帝)[4]
사천장도성의연공관문양무극인독효양황제
(嗣天章道誠懿淵功觀文揚武克仁篤孝讓皇帝)[5]
공민혜황제(恭閔惠皇帝)[6][7]
연호 건문(建文, 1399년 ~ 1402년)[8] }}}}}}}}}
1. 개요2. 생애3. 조선과의 관계4. 평가5. 가족6. 여담7. 대중매체에서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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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명나라의 제2대 황제.

황태손으로 태조 홍무제의 뒤를 이었지만 숙부에게 제위를 빼앗기고 실종된 비운의 황제이다.

명나라에서는 오랫 동안 묘호가 없었고, 시호는 혜황제(惠皇帝), 약칭 혜제로 되어 있었다.[9] 휘는 윤문(允炆)이었고, 연호는 건문(建文)이었는데, 1399년부터 1402년까지 사용되었으나, 사실상 건문제를 쫓아내고 즉위한 영락제가 이 연호를 무효화하여 이 시기의 연도를 이전의 연호인 홍무(洪武)로 표기하도록 했고[10] 그 다음 해인 1403년부터 영락의 연호를 쓰도록 했다. 건문이라는 연호는 훗날 만력제 때인 1595년(만력 23년)에 복구되었다.[11] 조선에서는 정종 원년부터 태종 2년까지 건문 연호를 사용했다.

훗날 남명의 안종 홍광제 때 추존되어, 묘호를 혜종(惠宗), 시호를 사천장도성의연공관문양무극인독효양황제(嗣天章道誠懿淵功觀文揚武克仁篤孝讓皇帝)[12]로 올렸다. 청나라는 남명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남명 정권에서 정한 묘호와 시호 또한 인정하지 않고, 계속 남명 이전에 쓰였던 '혜제'나 '건문제'로 불렀다. 그러다가 고종 건륭제 때 건문제가 명나라 때 받은 시호 앞에 딱 두 글자를 추가하여 공민혜황제(恭閔惠皇帝)로 높였고[13] 묘호를 따로 올리지는 않았다.

2. 생애

명나라를 세운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장손으로, 아버지인 의문태자 주표[14]와 형인 우회왕 주웅영이 일찍 죽자, 황태손이 되어 제위에 오르게 되었다. 건문제는 아버지 주표처럼 성격이 얌전하고 유순했다.

조부인 홍무제는 막판에 어마어마한 숙청을 진행했다. 특히 자신을 도와 싸웠던 공신들과 일족을 대규모로 모조리 숙청했고, 전한고조 유방처럼 자신의 일족과 황자들을 차례대로 번왕에 봉했다. 이때 각 지역에 보낸 번왕들은 통치권을 갖진 않았으나 장수들 대신 각 지역의 군권을 가지는 형태였다. 그런데 이것이 큰 실책이었다. 홍무제로서는 황실의 정통성을 위해 적장자 계승 원칙을 지켜 황손인 주윤문을 후계자로 정했다.[15] 황손을 황태손으로 봉할 때 홍무제는 65세였고, 황손은 10살이었다. 당연히 황자들은 대개 당당한 청년, 혹은 중년이었다. 어린 황태손을 후계자로 하면서 황자들을 번왕으로 내보내 군사 지휘권을 준 것은 이후 후계 갈등 문제의 불씨를 만들어놓은 것과 같았다.

즉위 후 건문제는 군사력을 가진 숙부들에게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홍무제에게는 무려 26명의 황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 전원이 번왕이었으니 이것이 앞날의 화근으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특히 북변에 주둔한 연왕 주체는 가장 큰 경계 대상이었다. 주체는 당시 명나라 최북방 지역에서 몽골족의 침입을 막으며, 무인으로 성장 중이었고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홍무제가 붕어한 직후부터 신료들은 각지 제왕의 세력을 진압할 것을 간언했고 건문제는 몇 차례 망설이다가 결국 삭번을 단행하게 되니 이것이 화근이었다.(삭번정책)

건문제는 지방에서 각자 큰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일족들의 영지를 삭감해 중앙에 편입시켰다. 정책 자체로는 적절하다고 볼 수 있었으나[16], 문제는 건문제 스스로도 어리고 문약하며, 주변 신하들 역시 정치적 역량이 뛰어난 자는 모두 숙청당한 마당이라 이들 모두 번왕들의 반발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식으로 번왕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실시하지는 못하고, 불시에 번왕들을 습격해서 한 명씩 잡아 가두고 번왕에 대한 처분을 사후에 발표하는 식으로 반발할 틈을 주지 않는 방법을 사용했다.

삭번정책으로 인한 첫 번째 희생자는 연왕 주체의 동복 아우인 주왕 주숙이었다. 이어서 민왕 주편, 상왕 주백 등 여러 제왕들이 유배를 당하거나 제거되었다. 번왕들을 잇따라 투옥시키고 평민으로 격하시키거나 추방하니, 건문제의 처단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왕도 있었다. 이런 방법은 당장 한 사람, 한 사람의 번왕을 처리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었지만 중앙 정부의 신뢰도를 추락시켰고, 반란의 좋은 명분이 되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습격하려면 마땅히 가장 세력이 큰 (燕王) 주체부터 제일 먼저 처리해야 했지만, 연왕의 세력이 큰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우선 세력과 능력이 약한 왕들부터 처리하는 무능함을 보였다. 다른 왕들이 기습당하는 것을 본 연왕은 곧 자기 차례가 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반란을 준비하게 되었으므로 기습으로 반발할 틈을 주지 않은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또한 당시 수도인 남경에는 연왕의 아들들이 체류하고 있다가 서둘러 연경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는데, 연왕을 기습하려면 그를 방심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아들들을 인질로 잡지 않고, 무사히 돌아가도록 방치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결국 이전부터 황제의 꿈을 가진 연왕이자 숙부인 주체가 황제 주변에 있는 간신들한테서 미숙한 황제를 구출하는 것이 숙부인 자신의 도리라고 선언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역사상 정난의 변이라고 한다.

황제인 건문제의 군대는 초반에는 수와 세력으로 연왕의 정난군을 압도했으나, 연왕은 탁월한 군사적 능력과 결단력으로 최단 시간 내에 전력으로 남경으로 직행하여 함락시킨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몇몇 전투에서 패배하더라도 위축되지 않으며, 전략적인 목표를 하나하나 달성해 나가고 있었다. 반면 건문제와 그 친위 세력들은 군사적으로 무능해서 어떤 작전으로 연왕을 요격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채 우왕좌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대한 군사력을 효율적으로 동원하지 못했다. 특히 건문제 자신의 연왕에 대한 우유부단한 태도 때문에[17][18]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는 데 실패했으며 나아가 연왕이 세력을 회복하는 여유를 허용해 버려 점차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19]

결국 결정적인 연왕의 남경 진격전에서, 사전에 내통한 궁정의 환관들[20]이 성문을 열어 수도 남경이 함락되었고 건문제는 불타는 궁궐 속에서 행방불명 되었다.

일설에는 그때 자살했다고 전해지나, 난전 중에 불에 타 죽었다고도 한다. 불을 끈 후 건문제의 아내인 효민양황후 마씨의 시체는 환관에 의해 확인되었으나, 그의 시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전설이 나돌게 되었다. 민간 전설 중에는 홍무제가 건문제에게 상자 하나를 전해주면서 위기에 처했을 때 열어보라고 했는데, 그 안에서 홍무제가 탁발승 시절에 쓰던 목탁과 바리떼가 나와 승려로 변장을 하고 도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외에도 건문제가 실은 살아서 도망쳤다는 전설은 많이 있지만, 살았건 죽었건 간에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생사여부는 도저히 알길이 없다. 그런데 남경에서 1978년, 명나라 시대의 황궁 자리 근처에서 건물을 신축하려고 공사하던 중에 지하 통로를 발견했다. 때문에 건문제가 여기를 통해 도주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진실은 저 너머에.

건문제의 행방은 명나라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되었고, 영락제는 생전에 만약 건문제가 살아 있다면 다시 반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심복들을 곳곳에 파견해 건문제를 찾게 하니 그중 하나가 바로 정화의 대원정이라는 설이 있다.[21] 또 영락제가 장삼풍을 초빙한 것도 실은 건문제를 찾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22] 반대로 건문제가 이미 죽은 것을 알면서도 찾지 못한 척했을 것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건문제를 살려 두는 것은 위험하지만 황제이자 조카인 건문제를 대놓고 죽이는 것 역시 정치적인 부담이 상당하므로 건문제를 비밀리에 죽였거나, 건문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행방불명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궁궐 바깥의 삶에 익숙하지 않은 건문제가 마땅히 도와줄 사람도 없이 명나라의 촘촘한 행정체계에 발견되지 않고, 도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리라는 주장이다.

3. 조선과의 관계

원래 홍무제 시절 명나라조선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명나라는 조선의 건국과 태조 이성계의 즉위 자체를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는 않고, 사후 추인하면서도 정작 태조 이성계에 대한 고명과 인신은 주지 않아 책봉을 하지 않았다. 고명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국왕 책봉 문서였으며, 인신은 '조선국왕'(朝鮮國王)이라고 새긴 도장이었다. 즉 공식적인 책봉의 표시였다. 조선은 원나라에서 외교적인 용도로 발급한 '고려국왕' 도장을 반납했지만 명나라는 조선국왕 도장을 새로 내리지 않았다. 명나라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국호 변경을 승인했음에도 여전히 조선에서 외교 문서에 국왕이 아니라 권지국사라고 칭하는 행위를 오히려 비난했다. 하지만 역성혁명으로 왕조를 개창한 조선의 입장에서는 정당성 확보를 위해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정식 책봉을 원했다. 그런데 명나라는 국왕 칭호를 일부러 쓰지 않는 것을 가지고 혹시 딴마음을 먹는 것 아니냐는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으면서도 정작 정식 책봉은 피했다. 새 왕조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일종의 거리두기 내지 밀당을 한 셈이다. 명나라는 초기만 해도 딱히 조선을 도와주거나 이롭게 해주는 일은 거의 없고, 뭐든 핑계를 잡아 들들 볶아대는 일이 많았는데, 이는 신생국 길들이기 측면도 있었다.

그러다 조선의 입장에서 한번 제대로 기회를 잡은 것이 바로 건문제와 이 정난의 변 때였다. 연왕보다 표면적으로 병력의 수는 많았지만 군사력의 내실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던 건문제는 내전에 필요한 군마를 조선에 요구했다. 이때 조선에서는 명나라에 인신을 요청했다. 건문제의 입장에서 조선은 연왕의 후방에 있는 나라다 보니 해당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정종에게 고명과 인신을 주고, 이방원을 후계자로 정식 승인했다. 홍무제도 이미 죽었기 때문에 특별히 트집잡지 않고 요청하는대로 군말없이 응했다. 그러나 이때는 명나라의 수도가 남경이어서 왕복 거리가 너무 멀었고, 전란 중에 교통도 어지러운 상황이었으므로 외교 사절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정종이 왕위를 태종에게 넘겨주었다.

명나라에서 태종에게 고명을 가지고 잠시 밀당을 한 것은 정종에게 보낸 고명도 도착하지 않았는데 다시 태종의 고명을 보내달라고 하는 조선의 행위에 대한 짜증과 함께 승계 과정에 대한 의문을 표시한 것으로, 홍무제 당시의 책봉 갈등과는 관련이 없었다. 결국 명나라는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태종의 고명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책봉 절차에 있어 홍무제가 유독 인색했을 뿐 건문제에게 특별히 빚질 것은 없었기 때문에 태종 이방원은 승계를 인정받고도 어느 한 쪽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는 건문제에게 일부러 나쁜 군마를 보낸 관료를 보호했고, 건문제가 참패하여 연왕이 영락제로 즉위하고 '건문' 연호 사용이 무효화되어 건문 연호가 찍힌 기존 공문서의 효력이 정지되자, 절차상 건문제의 명의로 받은 고명과 인신을 반납하고, 새로운 황제의 명의로 다시 내려줄 것을 요청했을 뿐이었다.

4. 평가

한국의 경우엔 아무래도 숙부로써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조선 세조의 예가 악명높다 보니 영락제를 세조와 같은 과로 보고, 건문제를 조선 단종과 비슷하게 봐서 동정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도 영락제를 '역적 연왕'이라고 비하하고, 건문제를 진정한 명나라의 황제로 추켜 세우는 《여선외사》라는 고전 소설이 전근대에도 나온 바가 있어서 건문제가 예나 지금이나 꽤나 동정받았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23]

하지만 아예 통치의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채 왕위를 강탈당한 조선의 단종에 비하면 건문제의 통치 행위는 그냥 본인의 정치적인 자살로 볼 여지가 많다. 영락제 주체가 당태종 이세민이나 수양대군 이유 마냥 졸렬하게 기습으로 건문제의 목을 날렸다면, 사실 건문제는 유능한 수성군주가 아니었을까? 하면서 if놀이라도 가능했을텐데 실상 건문제는 할아버지 홍무제가 쥐어준 100만 명의 대군을 가지고도, 절대적으로 우세를 점했던 숙부를 상대하여 어리석은 짓을 해서 대업을 말아먹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건문 연간에 중앙의 힘이 약했냐고 한다면, 명나라의 번왕들에게 주어진 봉지는 주로 북원을 막는 변방이라 국경 지역 찌끄래기 좀 떼어준 정도로는 티도 안 났다. 그렇다고 군대의 기강이 헤이해졌나라면 당시 명나라군은 홍무제가 육성한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로, 몽골을 상대하여 카라코룸바이칼호까지 진출했던 전성기였다. 또한 군대를 이끌 명장이 없었느냐고 한다면 홍무제가 숙청을 쎄게 돌리긴 했어도, 경병문이나 곽영 등의 명장이 있었다. 두 사람 다 홍무제 초기의 거병 멤버들이었던 호주 24기(濠州二十四騎)에 속했으며, 특히 경병문은 홍무제가 배후를 맡길 정도로 신임했던 장수였고, 곽영 또한 중원과 남방의 군벌들을 줘패고 다녔던 숙장이었다. 그리고 영락제의 건문제 참수 작전이 신속하게 가능했던가 한다면 장강이라는 자연 방벽, 힘 좀 쓴다 싶은 번왕들은 죄다 변경으로 보내버려 생긴 물리적 거리로 인해 매우 어려웠다. 또 건문제가 어려서 제대로 된 판단이 불가능했나 하면 즉위 당시 건문제의 나이는 21세로, 젊긴 하지만 아예 통치가 어려울 정도로 어린 군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경병문에게서 군권을 뺏아 이경륭이라는 명나라판 조괄에게 줬다가 전황을 말아먹고, 수 차례나 패배했지만 그냥 체급으로 주체를 압살하려는 찰나에 '짐이 숙부를 죽였다는 오명을 사게 하지 말라'라는 쓸데없는 명령을 내려서 풀어줘 버리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우유부단했으니 이건 진짜 홍무제 탓이 아니라 건문제의 정치적인 자살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정난의 변의 원인이 되었던 번왕 숙청도 제대로 한 것이 없었다. 숙청할거면 이왕 칼을 뽑은 이상 끝까지 철저하게 다 하던가, 영락제의 형제들은 때려 잡아놓고 정작 영락제는 꾀병을 부리니 불쌍해서 봐줬으며, 인질로 잡아둔 영락제의 아들들을 풀어주는 식으로, 홍무제처럼 숙청을 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버지 주표처럼 너그럽고 관대한 것도 아닌 애매한 태도만을 고수하다가 정난의 변이라는 사단을 만든 것이었다. 차라리 이건 번왕들을 안 건드리고 가만히 있는 것만 못한 일이었다. 주씨 황족을 다 죽이면 주변에서 정권을 농단하는 권신들한테 위협을 가할 대상이 없어 건문제가 관대한 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이나, 명령에 일관성이 없었으니 운에 맡기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기록의 윤색을 차치하더라도, 건문제의 경우 객관적인 정황만 봤을 때 워낙 정치적으로 유리한 고점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 어리석은 판단으로 깡그리 다 말아먹은 정황이 너무나 잘 드러나서 옹호의 여지가 없는 축에 속한다.

5. 가족

6. 여담

  • 일본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를 '일본 국왕'에 책봉한 황제가 바로 건문제였다. 흔히 영락제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요시미츠가 일본 국왕에 책봉된 것은 1401년으로 건문 연간이었다.
  • 실록이 편찬되지 못한 세 명의 명나라 황제 중 한 명이었다. 독자적인 실록이 편찬되지 못하고, 대신 숙부인 영락제의 실록인 《태종실록》에 건문제 재위 기간의 기록이 포함되어 편찬되었다.[26] 나머지 두 황제는 대종 경태제와 의종 숭정제인데, 경태제는 이복형인 영종 정통제에 의해 폐위되어 정통제의 실록인 《영종실록》에 재위 기간의 기록이 포함되어 편찬되었고, 숭정제는 명나라가 멸망하는 바람에 실록이 편찬되지 못했다.

7. 대중매체에서

  • 2006년 드라마 <주원장>에서는 완전 만년의 주원장과 함께 나오는데 이 점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너무 어리게 나온다. 1377년생인데 주원장이 1398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완전 만년이라면 20살 내외인데 나오는 모습은 10살 내외이다.
  • 2009년 드라마 <정화하서양>에서는 즉위하고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가혹한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표명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숙부들을 처단하기 시작한다. 결국 내전이 일어나고 전쟁에서 영락제의 군대가 이기게 되자 중으로 변장하여 배를 타고 도망치는 걸로 퇴장한다.
  • 2011년 드라마 <홍무삼십이>에서는 중이 아니라 평민으로 변장하여 도망쳤다.
  • 2015년 드라마 <대무당>에서는 무당산의 도관에서 수행하다가 33살에 죽는다.
  • 2019년 드라마 <영락대제>에서 건문제는 칼로 자살하려고 했으나 황후가 만류했고 건문제는 황후에게 '내가 죽는게 싫소? 연왕에게 잡혔으면 좋겠소? 포로가 되어 고통받다가 죽길 바라오?'라고 말했다. 다시 칼로 자살하려고 하자 신하들이 만류하며 황궁을 불태워서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도망치자고 건의했다. 건문제가 궁이 포위되어서 어차피 도망갈 수 없다고 말하자 내관이 태조가 남긴 상자가 있다고 말하고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에는 황궁비밀지도, 승복, 은자들, 이발용 칼이 들어 있었다. 건문제는 스님으로 변장해 도망쳤고 연왕은 모든 스님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려 건문제도 잡혔으나 재치로 도망쳤다. 영왕(주권)의 도움으로 영왕의 군영에 숨어 있었다. 영왕이 연왕에게 패해 건문제는 연왕을 만나게 되었고 처형되려는 순간 지원군의 도움으로 다시 도망쳤다. 건문제는 자신의 행색이 스님이라서 자운사에 숨기로 했다. 내관이 건문제를 도우려다가 미행당해서 건문제는 또 잡혔다. 하지만 연왕은 건문제를 죽이지 않고 절에 유폐시켰다. 건문제는 진심으로 불문에 귀의하게 된다. 마지막화에서 백발이 된 영락제와 흰 수염의 스님 건문제가 대화를 나누며 드라마는 끝난다.
  • 2019년 드라마 <대명풍화>에서는 중으로 변장하여 도망쳤다는 설을 채택했다.
  • 2022년 드라마 <산하월명>에서는 어릴 때부터 금의위 수장인 숙부 주체를 싫어한다. 금의위를 신하들을 억압하는 독재의 수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자가 되어 북평을 시찰할 때 장군들이 태자의 말을 듣지 않고 숙부의 말만 듣는 것을 보고 그럴 수도 있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혼자 있을 때는 표정에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북평의 장군들은 조정을 무시하고 연왕에게만 충성한다고 할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 방효유를 아들의 스승으로 삼았다. 숙부들을 괴롭히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홍무제가 승하했는데 홍무제의 숨이 끊어지자마자 건문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번왕이 국경을 지킨다라는 홍무제의 정책과 반대되는 삭번을 추진한다. 서휘조가 홍무제의 뜻에 반대된다고 이야기했으나 그런 소리말고 어느 숙부부터 제거하는게 좋을지 의견이나 내라는 말을 들었다. 불법행위를 대놓고 많이 저지른 주왕, 제왕, 대왕, 민왕같은 번왕부터 제거했다. 상왕은 조카에게 수치를 당할바에야 차라리 미리 죽겠다며 분신자살했다. 사실상 건문제 때문에 분신자살한건데 건문제는 오히려 신하들을 탓했다. 상왕에게 상려()왕이라는 수치스런 이름을 하사했다. 철현이 번왕이 잘못했을 때만 벌하고 평소에는 가족처럼 지내는 게 옳다고 간언했는데 건문제는 철현이 간언을 못하도록 승진이라는 명분으로 지방에 보냈다. 연왕은 불법행위가 없었기에 건문제는 연왕의 수하들을 범죄자로 몰아 손발을 묶어버릴 계획이었는데 결국 참지 못한 연왕이 8백명의 병사로 간신처단과 선황의 명령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거병하게 된다. 서휘조가 연왕을 공략할 전략을 올려도 연왕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 제태, 황자징만 가까이에 두고 국정을 논했고 다른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전황이 너무 좋지 않아서 병사들의 탈영이 이어지고 결국 곡왕과 조국공 이경륭까지 배신을 하게 된다. 연왕군이 남경에 들어오자 건문제는 직접 칼을 들고 반역자라고 말하며 신하들을 찔러 죽였다. 영락제는 정화에게 사라진 건문제를 수색하는 일을 맡겼다.
  • 2024년 드라마 <금의야행>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군사를 보유한 숙부들을 두려워하여 선황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말라는 도리에 어긋난 명령을 내렸다. 황자징, 제태, 방효유 등 극소수의 신하만 가까이 했다. 건문이 악인이라서 숙부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최측근들이 번왕들의 거병에 대한 가짜정보를 만들어서 건문이 번왕들을 죽일 수 밖에 없도록 부추긴 것으로 묘사된다. 연왕과 내통한 죄로 서증수의 목을 직접 베었다. 40만이 넘는 병력이 연왕에게 투항해버리자 연왕에게 명나라의 반을 주겠다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연왕이 입성하자 모든 궁인을 순장시켜 연왕에게 오명을 씌워야 한다고 말했지만 황후가 만류했고 평민의 옷을 입고 황궁을 탈출했다. 이후 스님으로서 여생을 보낸다.
  • 한국 무협소설 《황제의 검》에서는 사실 홍무제가 영락제가 반역을 일으킬 것을 알고, 생전에 무림인 몇 명을 고용해 건문제를 보살펴 달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이들 덕분에 건문제는 얼굴을 성형하고 '파천'으로 이름을 바꾼 후 무림인으로 살아간다.
  • 한국 무협소설 《한백무림서》에서도 죽었다고 알려진 것과 다르게 생존해 있다. 천잠비룡포에 어떻게 된 것인지 나오는데 당시 환관이 미리 준비해 둔 승복을 입고 도주했으나 왼손 손등과 오른발 발등, 등, 오른팔, 양 허벅지에 화상을 입었다. 자신이 황제로 있을 당시 호위를 맡고 있던 무명[27]이 궁무예에게 공격받고 사망하는 것을 본 후 시신이 떨어진 곳과 자신의 할아버지인 주원장의 묘에 합장한 후 떠나려고 했으나 결국 자신을 위해 목숨도 바치고자 했던 무명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다시 길을 떠나는 것으로 나온다.
  • 한국 무협소설 《신승》에서는 절세신마가 홍무제를 고문하도 살해하자 오열하더니 무림인들에게 절세신마, 정각을 잡아 죽이라는 명을 내린다. 사실 정각은 홍무제를 죽이지 않았지만 절세신마의 부하였고 당시 다른 황궁 고수들과 싸웠으므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둘이서 같이 죽인 거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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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영 · 양진 · 왕효 · 주상문 · 마방 · 하경 · 심희의 · 석방헌 유대유 · 척계광 · 유현(劉顯) · 이석 · 장원훈
213권 「서개등전(徐階等傳)」 214권 「양박등전(楊博等傳)」
서계 · 고공 · 장거정 양박 · 마림 · 유례건 · 왕정(王廷) · 갈수례 · 근학안
215권 「왕치등전(王治等傳)」
왕치 · 구양일경 · 주홍조 · 첨앙비 · 낙문례 · 정이순 · 진오덕 · 왕문휘 · 유분용
216권 「오산등전(吳山等傳)」
오산 · 육수성 · 구경순 · 전일준 · 황봉상 · 여계등 · 풍기 · 왕도(王圖) · 옹정춘 · 유응추 · 당문헌 · 이등방 · 채의중 · 공내 · 나유의 · 요희맹 · 허사유 · 고석주
217권 「왕가병등전(王家屏等傳)」 218권 「신시행등전(申時行等傳)」 219권 「장사유등전(張四維等傳)」
왕가병 · 진우폐 · 심리 · 우신행 · 이정기 · 오도남 신시행 · 왕석작 · 심일관 · 방종철 · 심확 장사유 · 마자강 · 허국 · 조지고 · 장위 · 주갱
220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1권 「원홍유등전(袁洪愈等傳)」
원홍유 · 왕정첨 · 곽응빙 · 경정향 · 왕초 · 위시양 · 학걸 · 조참로 · 장맹남 · 이정 · 정빈
222권 「만사화등전(萬士和等傳)」
만사화 · 왕지고 · 오백붕 · 유응절 · 왕린 · 필장 · 서화 · 이세달 · 증동형 · 신자수 · 온순 · 조세경 · 이여화
223권 「성응기등전(盛應期等傳)」 224권 「엄청등전(嚴清等傳)」
성응기 · 주형 · 반계순 · 만공 · 오계방 · 왕종목 · 유동성 · 서정명 엄청 · 송훈 · 육광조 · 손농 · 진유년 · 손비양 · 채국진 · 양시교
225권 「장한등전(張瀚等傳)」 226권 「해서등전(海瑞等傳)」
장한 · 왕국광 · 양몽룡 · 양외· 이재(李戴) · 조환 · 정계지 해서 · 구순 · 여곤 · 곽정역
227권 「방상붕등전(龐尚鵬等傳)」
방상붕 · 송의망 · 장악 · 이재(李材) · 육수덕 · 소름 · 가삼근 · 이이 · 주홍모 · 소언 · 손유성 · 사걸 · 곽유현 · 만상춘 · 종화민 · 오달가
228권 「위학증등전(魏學曾等傳)」 229권 「유대등전(劉臺等傳)」
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첨이선 · 탕개원 · 성용 · 진룡정
259권 「양호등전(楊鎬等傳)」
양호 · 원응태 · 웅정필 · 원숭환 · 조광변
260권 「양학등전(楊鶴等傳)」
양학 · 진기유 · 웅문찬 · 연국사 · 정계예 · 정숭검 · 소첩춘 · 여응계 · 고두추 · 장임학
261권 「노상승등전(盧象昇等傳)」 262권 「부종룡전(傅宗龍等傳)」
노상승 · 유지륜 · 구민앙 부종룡 · 왕교년 · 양문악 · 손전정
263권 「송일학등전(宋一鶴等傳)」
송일학 · 풍사공 · 임일서 · 채무덕 · 위경원 · 주지풍 · 진사기 · 용문광 · 유가인 · 유지발
264권 「하봉성등전(賀逢聖等傳)」
하봉성 · 남거익 · 주사박 · 여유기 · 왕가정 · 초원부 · 이몽진 · 송사양 · 마희 · 왕도순 · 전시진
265권 「범경문등전(范景文等傳)」
범경문 · 예원로 · 이방화 · 왕가언 · 맹조상 · 시방요 · 능의거
266권 「마세기등전(馬世奇等傳)」
마세기 · 오인징 · 주봉상 · 유이순 · 왕위(汪偉) · 오감래 · 왕장 · 진량모 · 진순덕 · 신가윤 · 성덕 · 허직 · 김현
267권 「마종빙등전(馬從聘等傳)」 268권 「조문조등전(曹文詔等傳)」
마종빙 · 장백경 · 송공 · 범숙태 · 고명형 · 서견 · 녹선계 조문조 · 주우길 · 황득공
269권 「애만년등전(艾萬年等傳)」
애만년 · 이비 · 양구주 · 진우왕 · 후량계 · 장령 · 맹여호 · 호대위 · 손응원 · 강명무 · 우세위 · 후세록 · 유국능
270권 「마세룡등전(馬世龍等傳)」 271권 「하세현등전(賀世賢等傳)」
마세룡 · 하호신 · 심유용 · 장가대 · 노흠 · 진양옥 · 용재전 하세현 · 동중규 · 나일관 · 만계 · 조솔교 · 관유현 · 하가강 · 황룡 · 김일관
272권 「김국봉전(金國鳳等傳)」 273권 「좌양옥등전(左良玉等傳)」
김국봉 · 조변교 · 유조기 좌양옥 · 고걸 · 조관
274권 「사가법등전(史可法等傳)」 275권 「장신언등전(張愼言等傳)」
사가법 · 고홍도 · 강왈광 장신언 · 서석기 · 해학룡 · 고탁 · 좌무제 · 기표가
276권 「주대전등전(朱大典等傳)」
주대전 · 장국유 · 장긍당 · 증앵 · 주계조 · 여황 · 왕서전 · 노진비 · 하개 · 웅여림 · 전숙락 · 심진전
277권 「원계함등전(袁繼鹹等傳)」
원계함 · 김성 · 구조덕 · 심유룡 · 진자룡 · 후동증 · 양문총 · 진잠부 · 심정양 · 임여저 · 정위홍
278권 「양정린등전(楊廷麟等傳)」
양정린 · 만원길 · 곽유경 · 첨조항 · 진태래 · 왕양정 · 증형응 · 게중희 · 진자장 · 장가옥 · 진방언 · 소관생
279권 「여대기등전(呂大器等傳)」
여대기 · 문안지 · 번일형 · 오병 · 왕석곤 · 도윤석 · 엄기항 · 주천린 · 장효기 · 양외지 · 오정육
280권 「하등교등전(何騰蛟等傳)」
하등교 · 구식사
281권 「순리전(循吏傳)」
진관 · 방극근 · 오리 · 요흠 · 고두남 · 여언성 · 사성조 · 오상 · 사자양 · 황신중 · 하승 · 패병이 · 유맹옹 · 만관 · 엽종인 · 왕원 · 적부복 · 이신규 · 손호 · 장종련 · 이기(李驥) · 왕영 · 이상 · 조예 · 조등 · 증천 · 범충 · 주제 · 범희정 · 유강 · 단견 · 용사언 · 정적 · 전탁 · 당간 · 탕소은 · 서구사 · 방숭 · 장순 · 진유학
282·283·284권 「유림전(儒林傳)」
범조간 · 사응방 · 왕극관 · 양인(梁寅) · 조방 · 진모 · 설선 · 호거인 · 채청 · 나흠순 · 조단 · 오여필 · 진진성 · 여남 · 소보 · 양렴 · 유관 · 마리 · 위교 · 주영(周瑛) · 반부 · 최선 · 하당 · 당백원 · 황순요 · 진헌장 · 누량 · 하흠 · 진무열 · 담약수 · 추수익 · 전덕홍 · 왕기(王畿) · 구양덕 · 나홍선 · 오제 · 하정인 · 왕시괴 · 허부원 · 우시희 · 등이찬 · 맹화리 · 내여덕 · 등원석 · 공희학 · 안희혜 · 증질수 · 공문례 · 맹희문 · 중어폐 · 주면 · 정접도 · 정극인 · 장문운 · 소계조 · 주천 · 주서(朱墅)
285·286·287·288권 「문원전(文苑傳)」
양유정 · 호한 · 소백형 · 왕면 · 대량 · 위소 · 장이녕 · 조훈 · 서일기 · 조총겸 · 도종의 · 원개 · 고계 · 왕행 · 손분 · 왕몽 · 임홍 · 왕불 · 심도 · 섭대년 · 유부 · 장필 · 장태 · 정민정 · 나기 · 저권 · 이몽양 · 하경명 · 서정경 · 변공 · 고린 · 정선부 · 육심 · 왕정진 · 이렴 · 문징명 · 황좌 · 가유기 · 왕신중 · 고숙사 · 진속 · 전여성 · 황보효 · 모곤 · 사진 · 이반룡 · 왕세정 · 귀유광 · 이유정 · 서위 · 도륭 · 왕치등 · 구구사 · 당시승 · 초횡 · 황휘 · 진인석 · 동기창 · 원굉도 · 왕유검 · 조학전 · 왕지견 · 애남영 · 장부
289·290·291·292·293·294·295권 「충의전(忠義傳)」
화운 · 왕개 · 손염 · 모로 · 왕강 · 왕의(王禕) · 웅정 · 역소종 · 금팽 · 황보빈 · 장영(張瑛) · 왕정 · 만침 · 주헌 · 양충 · 오경 · 곽은 · 손수 · 허규 · 황굉 · 송이방 · 왕면 · 진문시 · 왕부 · 전순 · 주부 · 손당 · 두괴 · 황천 · 왕덕 · 왕일중 · 소몽양 · 장진덕 · 동진륜 · 공만록 · 관양상 · 서조강 · 희문윤 · 주만년 · 장요(張瑤) · 하천구 · 반종안 · 장전 · 하정괴 · 고방좌 · 최유수 · 정국창 · 당환순 · 이헌명 · 장춘 · 염생두 · 왕조곤 · 손사미 · 교약문 · 장병문 · 언윤소 · 길공가 · 형국새 · 장진수 · 등번석 · 장혼방 · 장윤등 · 장광규 · 이중정 · 방국유 · 하승광 · 방유 · 윤몽오 · 노겸 · 공원상 · 왕신 · 사기언 · 양지인 · 왕국훈 · 여홍업 · 장소등 · 왕도(王燾) · 장가징 · 서상경 · 완지전 · 학경춘 · 장극검 · 서세순 · 무대열 · 전조징 · 성이항 · 안일유 · 반홍 · 진예포 · 유진지 · 이승운 · 관영걸 · 장유세 · 왕세수 · 허영희 · 이정좌 · 노세임 · 유인 · 하섭 · 조흥기 · 하통춘 · 진미 · 심길신 · 노학고 · 진만책 · 허문기 · 곽이중 · 최문영 · 서학안 · 풍로운 · 채도헌 · 장붕익 · 유희조 · 왕손란 · 정양주 · 황세청 · 양훤 · 당시명 · 단복흥 · 간인서 · 사오교 · 도임 · 축만령 · 진빈 · 왕징준 · 정태운 · 하복 · 장나준 · 김육동 · 탕문경 · 허담 · 왕교동 · 장계맹 · 유사두 · 왕여정 · 윤신 · 고기훈 · 장요(張耀) · 미수도 · 경정록 · 석상진 · 서도흥 · 유정표
296·297권 「효의전(孝義傳)」
정렴 · 서윤양 · 전영 · 요비 · 구탁 · 최민 · 주완 · 오홍 · 주후 · 유근(劉謹) · 이덕성 · 심덕사 · 사정가 · 권근 · 조신 · 국상 · 왕준(王俊) · 석내 · 사오상 · 주오 · 정영 · 부즙 · 양성장 · 사용 · 하경 · 왕원(王原) · 황새 · 귀월 · 하린 · 손청 · 유헌 · 용사언 · 유자(兪孜) · 최감 · 당엄 · 구서 · 장균 · 왕재복 · 하자효 · 아기 · 조중화 · 왕세명 · 이문영 · 공금 · 양통조 · 장청아
298권 「은일전(隱逸傳)」
장개복 · 예찬 · 서방 · 양항 · 진회(陳洄) · 양인(楊引) · 오해 · 유민 · 양보 · 손일원 · 심주 · 진계유
299권 「방기전(方伎傳)」
활수 · 갈건손 · 여복 · 예유덕 · 주한경 · 왕리 · 주전(周顚) · 장중 · 장삼봉 · 원공 · 대사공 · 성인 · 황보중화 · 동인 · 오걸 · 능운 · 이시진 · 주술학 · 장정상 ,유연연,
300권 「외척전(外戚傳)」
진공 · 마공 · 여본 · 마전 · 장기(張麒) · 호영(胡榮) · 손충 · 오안 · 전귀 · 왕천 · 주능 · 왕진(王鎭) · 만귀 · 소희 · 하유 · 진만언 · 방예 · 진경행 · 이위 · 왕위(王偉) · 정승헌 · 왕승 · 유문병 · 장국기 · 주규
301·302·303권 「열녀전(列女傳)」
정월아 · 제아 · 정금노 · 노가랑 · 탕혜신 · 묘총 · 만의전 · 왕묘봉 · 당귀매 · 양태노 · 정은아 · 두묘선 · 초낭맹 · 호귀정 · 오길고 · 서아장 · 양옥영 · 우봉랑 · 예미옥 · 고형와 · 항숙미
304·305권 「환관전(宦官傳)」
정화 · 김영 · 왕진(王振) · 조길상 · 회은 · 왕직(汪直) · 양방 · 하정 · 이광 · 장종 · 유근 · 장영(張永) · 곡대용 · 이방 · 풍보 · 장경 · 진증 · 진구 · 왕안 · 위충현 · 왕체건 · 최문승 · 장이헌 · 고기잠 · 왕승은 · 방정화
306권 「엄관전(閹黨傳)」
초방 · 장채 · 고병겸 · 최정수 · 유지선 · 조흠정 · 왕소휘 · 곽유화 · 염명태 · 가계춘 · 전이경
307권 「영행전(佞倖傳)」
기강 · 문달 · 이매성 · 계요 · 강빈 · 육병 · 소원절 · 도중문 · 단조용 · 공가패 · 호대순 · 전옥 · 왕금 · 고가학 · 성단명 · 주융희
308권 「간신전(奸臣傳)」 309권 「유적전(流賊傳)」
호유용 · 진녕 · 진영 · 엄숭 · 주연유 · 온체인 · 마사영 이자성 · 장헌충
310권 「호광토사전(湖廣土司傳)」
311·312권 「사천토사전(四川土司傳)」
313·314·315권 「운남토사전(雲南土司傳)」
316권 「귀주토사전(貴州土司傳)」
317·318·319권 「광서토사전(廣西土司傳)」
320·321·322·323·324·325·326·327·328권 「외국전(外國傳)」
조선(← 고려) · 안남(대우후여조막조후여조) · 일본 · 유구(삼산유구) · 여송 · 합묘리 · 미락거 · 사요 · 계롱 · 파라 · 마엽옹 · 고마랄랑 · 풍가시란 · 문랑마신 · 점성 · 진랍 · 섬라 · 과왜 · 삼불제 · 발니 · 만랄가 · 소문답랄(팔석아제) · 수문달나 · 소록 · 서양쇄리 · 람방 · 담파 · 백화 · 팽형 · 나고아 · 여벌 · 남발리 · 아노 · 유불 · 정기의 · 파나서 · 불랑기 · 화란 · 고리 · 가지 · 소갈란 · 대갈란 · 석란산 · 방갈랄 · 소납박아 · 좌법인 · 목골도속 · 불랄왜 · 죽보 · 아단 · 알살 · 마림 · 홀로모사 · 유산 · 비날 · 남무리 · 가이륵 · 감파리 · 급란단 · 사리만니 · 저리 · 천리달 · 실랄비 · 고리반졸 · 알니 · 하랄비 · 기랄니 · 굴찰니 · 사랄제 · 팽가나 · 팔가의 · 오사랄척 · 감파 · 아왜 · 타회 · 백갈달 · 흑갈달 · 불름 · 의대리아 · 달단(북원) · 와랄 · 올량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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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종된 이후 언제 사망했는지도 미상이고,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서 능을 조성할 수 없었으므로 능호도 없다.[2] 명나라 황태자 주표의 후궁이다. 원래 황태자비가 상우춘의 여식인 효강황후 상씨인데 태자비 시절에 죽었기 때문에 태자비 자리가 비었다. 그러나 여씨가 황태자비가 된 적은 없다. 1399년에 황태후로 올랐으나 1402년 정난의 변으로 인해 황태자비 신분으로 격하되었으며, 이후 황수의문황태자비(皇嫂懿文皇太子妃)의 호를 받았다.[3] 남명의 안종 홍광제가 추증한 묘호로 남명 이전의 명나라청나라 기준으로는 묘호가 없다.[4] 명나라의 성조 영락제가 올린 시호이며, 혜제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이후 남명은 새로운 시호를 올렸고, 청나라때는 두 글자를 더한 공민혜황제가 되었는데, 약칭은 종전과 똑같이 혜황제 또는 혜제였다.[5] 남명의 안종 홍광제가 추증한 시호로, 약칭은 양황제 또는 양제이다.[6] 청나라의 고종 건륭제가 추증한 시호로, 약칭은 혜황제 또는 혜제이다.[7] 단, 《명사》(明史)에는 공민제(恭閔帝)로 서술되어 있다.[8] 영락제 즉위 이후 이 연호를 사용했던 것 자체가 취소되었다가 신종 만력제 때 복구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본문을 참고할 것.[9] 정난의 변 직후, 신종(神宗)의 묘호와 효민황제(孝愍皇帝)라는 시호를 올리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영락제가 거부했다. 태묘에 건문제의 위패를 모시고, 묘호를 올리면 태묘에 제사를 지낼 때마다 조카에게 절을 해야 하므로, 영락제로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묘호를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태묘에 위패를 모셨다는 뜻이다) 그래도 금나라해릉양왕이나 조선연산군처럼 황제나 왕이었던 사실 자체를 부정하진 않아서 혜황제라는 시호를 올린 것이다. 참고로 신종은 훗날 만력제의 묘호가 되었다.[10] 이에 따르면 1402년은 홍무 35년이 된다. 이렇게 정통성의 문제로 새 연호를 쓰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개원이나 황제의 붕어 등으로 대체된 기존 연호를 일부러 계속 쓰는 것을 전문 용어로 습용(襲用)이라고 한다. 다른 예시를 들자면, 삼국시대때 위왕 조조가 연초에 죽고, 몇 달 뒤 후한-조위 선양이 일어난 220년에 건안 연호가 폐기되었는데, 촉한과 동오는 220년에 연호를 바로 바꾸지 않고, 습용했다.[11] 건문제라는 호칭은 그가 사용한 연호인 건문을 따서 부르는 것이다.[12] 약칭 양(황)제이다. 이 사람이 아니다[13] 물론 약칭으로 부르면 종전과 똑같이 혜(황)제가 된다.[14] 흥종 강황제로 추존되었다.[15] 사실 홍무제도 4남인 연왕 주체를 황태자로 삼는 것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으나, 계승 원칙을 지킬 것을 주장하는 신하들의 반대와 주체를 태자로 삼을 경우 주체의 두 형이 반발하여 내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포기하고 황손을 후계자로 삼았다.[16] 훗날 청나라의 강희제 역시 삼번을 철번했다. 비록 그 때문에 전쟁을 벌이긴 했지만 그래도 하지 않으면 안 됐고 결국 성공적으로 철번했다.[17] 결정적인 승리의 상황에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채, "절대로 숙부를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던가 하는 식의 애매하고 나약한 명령을 내렸다.[18] 반란을 일으킨 시점에서 연왕은 그저 반역자일 뿐이었기에 죽일 명분은 충분했고, 오히려 극형에 처해져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연왕이 전사하거나 혹은 나중에 연왕을 처형한다고 해서 건문제가 비판받을 일은 사실상 전혀 없었다. 정 숙부를 죽였다는 비난을 피하고 싶었다면 아들들을 제외한 나머지 일족들은 연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19] 건문제는 휘하의 제태와 황자징이 항상 의견이 갈려서 두 명 중 한 명의 의견을 선택해야 했는데, 맨날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은 선택지를 고른 데다가 이경륭의 경우, 황자징의 추천을 받아 정난군을 진압하러 나섰지만 연전연패하자 결국 황자징이 이놈을 죽여야 한다고 청하는 지경이 이르렀지만 건문제는 살려줬다. 하지만 이 이경륭은 막판에 건문제를 배신했다.[20] 홍무제가 개국 후에 중점적으로 족친 계층이 공신들과 환관이었다. 환관이 글을 아는 것이 발각되면 살가죽을 벗겨 죽이는 등 과거 왕조들이 겪은 환관으로 인한 화를 최대한 막고자 했으나, 정난의 변 당시엔 이러한 정책이 역효과를 부른 것이었다. 반대로 정권을 잡은 영락제는 환관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했고, 이로 인해 '동창'으로 대표되는 환관 세력의 비대화를 초래해 명나라 막장의 단초를 제공했다.[21] 정화의 대원정을 다룬 중국 드라마 <정화하서양>에서는 이 설을 채용했다. 정화가 맨 처음 항해에 나섰을 때 중국과 동남아시아 사이의 열대 섬에서 건문제의 흔적을 찾았고, 항해에 능숙한 건문제의 신하를 잡아 그를 기용해 대항해를 했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22] 절대로 숙부를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는 애매하고 나약한 명령을 내린 건문제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에 살아서 나간 것을 알고도 모른 척 해줬다는 설도 있다.[23] 다만 이 소설은 영락제 같은 사람이 황제가 되는 바람에 명나라가 멸망했다는 다분히 정신승리용 소설의 성격이 강하긴 하다.[24] 당시 6살이었는데 건문제처럼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어머니 마황후처럼 불에 타서 죽어 시체가 완전히 불에 탔거나, 도망쳤다는 설이 있는 건문제가 데리고 탈출했다는 설이 있다.[25] 당시 1살이었는데 영락제가 아기까지 차마 죽일 수는 없어 살려주기는 했지만, 이후 56년 동안 유폐되었다. 잔혹한 행태이지만 영락제 입장에서는 정통성을 유지하자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인데 반란 세력들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주문규는 1457년 그의 7촌 조카였던 영종 천순제 덕에 풀려났으나 갓난아기 때부터 평생을 유폐당해서인지 바깥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유의 몸이 된 지 얼마되지 않아 죽었다.[26] 조선은 폐위되어 비정통으로 간주된 왕이라 하더라도 일기라는 제목을 사용하되 실록의 양식을 따라 해당 왕의 재위 기간의 기록물을 별도로 남겼으나, 명나라는 쫓겨난 황제의 재위 기간을 다음 황제의 실록에 기록했다.[27] 황제의 호위로 어렸을 때부터 키워져 이름조차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황제의 최측근 호위 무장만 입을 수 있는 태천 갑주를 입고 있는 것이나 황제의 도주 때 미리 준비되어 있던 가사가 3벌이라는 것을 볼 때 당시에는 연왕이었던 주체의 자객들이 따라오지 않았더라면 이후에도 함께 도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며 마지막까지 함께 한 것을 볼 때 당시 건문제의 측근 무장 중에서는 무공의 경지가 가장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반쯤 미쳐있는 상태에서도 엽단평막야흔을 지법으로 제압하고 도주한 것으로 볼 때 상당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