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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일강 النيل | Nile Riv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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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일강은 아프리카 동북부를 흘러 지중해로 유입하는 강이다.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등 여러 나라에 걸쳐 흐르며 유역 면적은 340만 ㎢이다. 아랍어로는 닐강(النيل)이라 한다.
백나일강은 부룬디의 산악 지대에서 발원해[1] 르완다와 탄자니아 서북부를 거쳐 빅토리아호로 흘러들고 우간다와 남수단에 이른다. 과거에는 탕가니카호에서 시작된다는 설도 있었다.[2] 청나일강은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하는데 두 지류가 수단 공화국의 수도 하르툼에서 합쳐지며 이후 사하라 사막을 지나 이집트를 지나고 최종적으로 지중해로 흘러나간다.
2. 길이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여겨지고 있다. 길이는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약 6,650km이다. 대개 어린이용 과학 서적에는 1위가 나일강, 2위가 미시시피강, 3위가 아마존강으로 나오지만, 미시시피강의 경우 본류인 미시시피강 자체는 2위는커녕 10위권 안에 드네 마네 하는 수준이고, 지류인 미주리강의 발원지인 로키산맥의 분수령[3]에서 뉴올리언스의 삼각주까지 잰 거리다. 그래서 요즘은 아마존강을 세계 2위로 쳐주기도 하는 듯하다. 참고로 아마존강은 여러 조사 기록의 평균이 6,296km인데 최장 기록은 2008년 브라질 국가지리통계국(IBGE)의 위성 사진 촬영에 의한 것으로, 나일강은 6,853km고 아마존강은 그보다 139km가 더 긴 6,992km라고 한다. 아무래도 아마존강은 정글 지대다 보니 수원을 명확하기 짚기 어렵다는 점이 반영된 듯하다. 다만 본류의 길이에서 논란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유량이나 지류의 총 길이, 유역 면적까지 포함시키면 강이 훨씬 복합적으로 형성된 아마존강이 훨씬 거대한 강이다. 이쪽은 애초에 순상지 사이의 해협이 강이 된 것이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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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완 근처 필라이 섬의 신전 | 나일강 삼각주의 변천사 |
이름인 '나일'은 고전 이집트어로는 나일강을 이테루(jtrw)[4] 또는 하피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냥 '강'이라는 뜻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나일강이 아는 강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후 이 단어는 크다는 뜻의 '아(ꜥꜣ)[5]'가 붙은 이테루-아(jtrw-ꜥꜣ)의 형태로도 쓰이다가 콥트어에서 이아로(ⲓⲁⲣⲟ)로 변형되었는데 나일강은 남성형 정관사 "프"가 붙어 피아로(ⲡⲓⲁⲣⲟ/ⲫⲓⲁⲣⲟ. "The River")라고 불렸다.[6]
주(州)의 동북쪽에 큰 나라가 있는데 ‘액일다(厄日多, 이집트)’라 한다. 그곳은 천만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또한 구름 기운도 없었다. 나라에 큰 강이 하나 있는데 ‘니록하(泥琭河, 나일강)’라고 하며 강물이 매년 한 번씩 범람하는데 오월부터 시작하여 점차 불어난다.
토착민들은 강물이 얼마나 불어나는가를 보아 풍년과 흉년의 징후로 삼는다. 대략 강물이 가장 크게 불더라도 2장 1척을 넘지 않으며 가장 적게 불더라도 1장 5척을 넘지 않는다. 1장 5척이면 흉년이며 2장 1척이면 큰 풍년이다. 대체로 물이 불어나는 날은 40일에 불과한데, 그 물에는 비옥한 성분이 있어 물이 끝닿은 곳에 비옥한 성분이 흙에 붙어 있고 질척거리지 않기 때문에 땅이 매우 비옥해져서 온갖 곡식과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 강물이 넘칠 때는 성곽이 대부분 물에 잠긴다. 그 나라 사람들은 강물이 넘치기 전에 미리 문을 잠그고 배에 집안 살림을 옮겨 피신하는데,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면 물 또한 이르지 않는다.
예전에 국왕이 가뭄과 홍수를 구할 방법을 찾다가 아이기묵득(亞爾幾墨得, 아르키메데스)이라는 지혜가 뛰어난 선비를 알게 되었다. 그는 물 기계(水器, 물을 퍼 올리는 기계)를 만들었는데 때때로 물을 댈 수 있어 편리하기가 비할 데 없었으니 바로 오늘날의 용미차(龍尾車, 관개할 때 물을 퍼 올리는 기계)이다. 나라 사람들은 기지가 매우 뛰어나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궁극에 도달하는 학문을 공부하기 좋아하며, 천문에 정통하였다.
- 조선 후기 학자 이의봉(1733~1801)이 저서 "북원록"에서 서술한 나일 강과 이집트의 생활상#
토착민들은 강물이 얼마나 불어나는가를 보아 풍년과 흉년의 징후로 삼는다. 대략 강물이 가장 크게 불더라도 2장 1척을 넘지 않으며 가장 적게 불더라도 1장 5척을 넘지 않는다. 1장 5척이면 흉년이며 2장 1척이면 큰 풍년이다. 대체로 물이 불어나는 날은 40일에 불과한데, 그 물에는 비옥한 성분이 있어 물이 끝닿은 곳에 비옥한 성분이 흙에 붙어 있고 질척거리지 않기 때문에 땅이 매우 비옥해져서 온갖 곡식과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 강물이 넘칠 때는 성곽이 대부분 물에 잠긴다. 그 나라 사람들은 강물이 넘치기 전에 미리 문을 잠그고 배에 집안 살림을 옮겨 피신하는데,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면 물 또한 이르지 않는다.
예전에 국왕이 가뭄과 홍수를 구할 방법을 찾다가 아이기묵득(亞爾幾墨得, 아르키메데스)이라는 지혜가 뛰어난 선비를 알게 되었다. 그는 물 기계(水器, 물을 퍼 올리는 기계)를 만들었는데 때때로 물을 댈 수 있어 편리하기가 비할 데 없었으니 바로 오늘날의 용미차(龍尾車, 관개할 때 물을 퍼 올리는 기계)이다. 나라 사람들은 기지가 매우 뛰어나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궁극에 도달하는 학문을 공부하기 좋아하며, 천문에 정통하였다.
- 조선 후기 학자 이의봉(1733~1801)이 저서 "북원록"에서 서술한 나일 강과 이집트의 생활상#
다만 나일강은 533만년 전만해도 지금의 그랜드 캐니언보다 거대한 대형 협곡이었는데, 이는 당시 지중해의 메시나절 염분 위기로 인해 해수면이 1.8km 정도나 낮아졌었기 때문이다. 약 60만년간의 침식의 작용으로 현재의 카이로가 위치한 곳은 지금의 지표면보다 1.6km나 낮았었다. 또한 당시 현재의 아스완이 위치한 곳 즈음에 지구상 최대형 폭포가 존재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지브롤터 해협이 열리면서 지중해의 수면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회복하였고, 나일강 협곡에도 해수가 들어와차 수몰었고 이후 수백만년간 나일강을 타고 온 퇴적물이 쌓여 현재의 나일강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즉 지금의 나일강과 나일강을 따라 형성되어있는 비옥한 농토와 도시들은 최대 1.8km에 달하는 퇴적층 위에 형성되어있는 것이다.
나일강은 일반적인 다른 강에서는 찾기 힘든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바로 정기적으로 범람한다는 것이다. 강이 가끔 범람한다는 것이야 비가 많이 오면 당연히 생길 법한 일이지만 나일강은 '정기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범람의 이유는 에티오피아 고원 지대의 계절성 폭우 때문인데 봄철에 에티오피아에 폭우가 내리면 5월경부터 청나일강 상류에 홍수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 홍수는 6월에 수단 하르툼에 도달하고 9월 아스완, 10월 카이로에 도달한다. 11월이 되면 수위가 낮아지면서 갈수기에 접어드는데 갈수기의 수량은 홍수기의 6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런 범람은 영양소가 풍부한 부엽토, 부식토를 하류 이집트에 가득 옮겨주고 홍수에 잠겼다가 드러난 땅은 지력이 매우 높아진다.[7] 나일강의 범람 시기는 인간이 확실하게 예측이 가능하므로 사람이 사는 곳은 물이 많아져도 닿지 않는 쪽에 만들고 강물이 늘었다가 다시 줄어들면 잠겼던 땅에 농사를 지으면 작물이 쑥쑥 잘 자란다. 7월에 작물을 수확하면 빈 농지에는 다시 홍수가 내려와서 지력을 보충해 준다.
범람은 다른 이득도 있다. 나일강 유역은 비와 같은 강수량 자체는 적어서 농사를 하려면 물을 끌어다가 쓰는 관개 농업이 필요한데 관개 농업을 장기간 행하면 지력 소모뿐만 아니라 토지에 소금이 쌓이는 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강물 자체는 민물이지만 그래도 미량의 소금기를 비롯한 미네랄(무기 염류)이 녹아있다. 애초에 바닷물이 짠 것도 강물의 유입으로 무기 염류가 계속 들어오는데, 한번 바다로 들어온 물은 다른 곳으로 흘러나가지는 않고 증발하기만 하므로 그 무기 염류의 농도가 계속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물을 끌어다 논밭에 공급하는 관개 농업 역시 그 물은 농작물에 의해 소모되거나 증발하고 토양에는 소금기가 계속 쌓여 염해로 이어지기 쉽다. 그나마 비가 많이 오는 기후라면 빗물에 의해 염분이 씻겨나가지만 토양은 비옥해도 강수량이 적어 관개에 의존하는 경우, 특히 그 지역에서 수천년 이상 인류가 자리잡고 농경하며 문명을 발전시켜온 경우라면 이는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한때 나일강 유역만큼이나 번성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현대에는 사막이 된 이유가 이것이다.
반면 나일강 유역은 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면서 토양에 쌓인 소금기 자체를 씻어내기 때문에 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런 농사짓기 좋은 환경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이집트 문명이 발달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세 4세가 군대를 이끌고 최초로 이집트 영역을 벗어나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원정을 했을 때 메소포타미아에 도착한 이집트인들이 보고 가장 놀란 것은 거꾸로 흐르는 이테루였다. 남에서 북으로만 흐르는 이테루(강)만 봤으니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유프라테스강은 비상식적인 존재였다.
이와 같은 강의 흐름 방향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세계관에서 아주 중요하다. 북쪽이 위쪽으로 표기된 지도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상/하 이집트 개념을 북쪽이 상이집트, 남쪽이 하이집트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남쪽이 상이집트, 하류인 북쪽이 하이집트다. 즉, 나일강이 흐르는 방향은 현대의 나침반처럼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지리적 방향의 척도였다. 심지어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리적 방향 개념은 상류 방향(남쪽)/하류 방향(북쪽)의 두 방향뿐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는 이집트의 지리적 특성상 강 유역은 농업이 가능한 비옥한 땅이지만 강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거주가 불가능하고 통과도 극히 곤란한 사막이 시작되니 지리적 차원에서는 동, 서 방향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간주된다. 심지어 나일강에는 주로 북풍이 불기 때문에 돛을 올리면 바람을 타고 나일강 상류로 가고, 돛을 내리면 자연스레 물살을 타고 나일강 하류로 가니 이집트는 천혜의 수운조건을 가진 곳이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집트 역사에서는 이집트가 메소포타미아와 중동, 아나톨리아 지역까지 지중해 동부 지역과 교류하거나 분쟁을 벌이는 부분이 많아서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 이집트 역사 초기의 수천 년간은 실질적으로는 외부와 교류가 없었거나 그나마도 나일강 유역을 따라 있는 누비아 지역과 교류가 많았고 사막을 건너야 하는(그나마도 거리가 짧은 동쪽 사막이지만) 중동 지방과 교류하는 일은 이미 이집트가 수천 년 역사를 거친 후기에 주로 있었다. 그 전 수천 년간은 종종 이민족이나 대상의 접근은 있더라도 단순히 '외부인'으로만 생각하지 동서 지역을 생활영역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옥한 땅에 폐쇄적인 환경으로 오랜 기간 안정적인 문명을 일군 것도 오늘날까지 많은 유물과 기록을 남긴 한 가지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집트/역사와 고대 이집트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기적으로 범람하면서 막대한 퇴적토를 나일강 하류 연안으로 옮겨 왔기 때문에 농업 생산력이 높아져 고대 이집트 문명을 번영시켰다. 강의 주기적인 범람을 예측할 필요성이 크게 작용하여 이집트 천문학과 역학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주기 예측과 범람으로 인한 토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측량술[8]과 수학을 발전시키는 데도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나일강의 신인 하피가 인간이 수학을 하게 만들었다고도 한다.[9] 비록 이집트만큼 영향력이 크진 않았지만 수단과 에티오피아에서 이른 시기에 문명과 국가가 발흥한 것도 (이집트의 영향도 있지만) 나일강의 덕이 컸다.[10]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해 강가에 쌓이는 퇴적토는 굉장히 비옥했으며 농부들은 범람이 끝난 후 씨앗을 대충 뿌린 후 소와 돼지를 풀어 씨를 밟아 심게 하였다. 게다가 기온마저 원체 따뜻한 지역이라 대충 심기만 해도 엄청난 양의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일강의 농민들은 사실상 씨를 뿌리고 수확만 하면 되었으므로 다른 지역의 농민들에 비해 굉장히 일이 쉬웠고 수확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이러한 잉여 기간 동안 농민들은 국가의 각종 건축 사업 등에 참여하여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집트는 피라미드를 비롯해 규모가 압도적인 유적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이런 나일강의 중요성은 현대에도 여전하다. 아래에 언급하듯이 이집트는 나일강의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과거처럼 범람을 이용하는 방식은 아니고 대신 아스완 하이 댐을 비롯한 여러 댐을 건설하여 수원지로 사용한다. 현대 이집트의 인구 분포도 거의 대부분이 나일강 유역과 해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같은 면적당 터무니없이 벼가 많이 생산되기로 유명하다. 아프리카의 강 주변에서 평균적으로 헥타르당 3톤씩 벼가 수확되는데 여기선 9.3톤이나 생산된다. 문제는 이 좋은 곳에 주민이 1억 명이나 몰려 살기 때문에 이집트는 식량수입국이 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나일강의 범람은 같이 범람하는 강인 중국의 황하와 양쯔강과 비교되는데, 주기적으로 범람해서 예측이 가능하고 피해도 거의 없었던 나일강에 비해서 양쯔강과 황하는 언제 범람할 지 예측할 수 없었고, 특히 황하는 그 특성상 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중화 문명은 예로부터 강을 다스릴 수 있으면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중화 문명은 강을 이용하기보다는 통제하는 쪽으로 발전하는 등, 이집트와 중국의 문명의 시작은 양극단을 보여준다.
4. 인근 국가 관계
나일강에 대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는 이집트이며 수단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남수단, 우간다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콩고, 르완다, 부룬디, 탄자니아, 케냐 등도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4.1. 아스완 댐 문제
이집트의 아스완 댐은 1889~1902년 영국에 의해 건설되었고 증축 공사가 1910년, 1942년 두 번 더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댐이 된 것은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가 교묘한 양팔 정책으로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얻어내면서였지만 1956년 중동 갈등으로 미국의 지원은 철회되었다. 그리하여 1960년에 들어서야 현대적 의미의 댐 건설이 비로소 시작됐으며 11년 뒤인 1970년 7월 21일에 공사가 완공된다. 완공되기 전인 1964년부터 수원 저장을 시작해서 1976년 수원 한계량을 채우게 되었다.아스완 댐은 아스완 로우(low) 댐과 아스완 하이(high) 댐으로 나뉘는데 로우 댐은 영국이 지어놓은 것이고 하이 댐이 나세르 시절 이집트가 건설한 것이다. 근자에는 아스완 댐이라고 하면 하이 댐을 일컫는데 이 댐이 상당히 규모가 커서 건설 후 수십 년간 세계 최대의 댐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길이만 3,830m이며 넓이는 기본 구조물로만 980m이다. 중심축의 넓이는 40m, 길이 111m 이다. 최대 11,000m3의 수원이 매 초 내보내질 수 있으며[11] 추가로 5,000m3의 수원 방출구가 있다.
하지만 아스완 하이 댐의 건설로 인해 아부심벨 대신전과 팔레 신전 등의 문화 유적이 물에 잠길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유네스코가 주도하여 국제협력으로 문화재 구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아스완 하이 댐 건설 지원을 철회한 미국조차도 이 프로젝트만은 지원을 철회하지 않고 계속하였다.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小)신전은 조각내 해체한 뒤 인근의 65m 고지대로 들어올려 재조립해 놓았고 작은 신전들은 미국, 스페인 등 프로젝트 협력국가들로 옮겨 박물관에 설치해 놓았다. 아스완, 아부심벨 대신전 문서에 관련 내용이 서술되어 있으니 참조하자.
한편으로 아스완 하이 댐이 지어지자 나일강의 수량 문제로 이웃나라들과 이집트의 관계가 매우 나빠졌는데 심지어 이집트 대사관이 짱돌로 공격받은 일도 있었을 정도다. 건설 직후에는 아스완 하이 댐이 담수를 시작하면서 생긴 나세르 호수가 수단 국경 너머까지 유역을 확장하여 일부 국토가 수몰된 데 대한 반발이 일어났으며 이후에도 이 수자원을 둘러싼 여러 문제로 바람 잘 날 없는 상황이다. 나일강은 하류를 관장하는 이집트뿐만 아니라 청나일강과 백나일강을 놓고 벌어지는 수단, 남수단, 에티오피아 등의 분쟁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특히 남수단에선 백나일강 근처 소유권을 두고 부족 갈등이 장난이 아니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이집트와 수단 공화국 사이의 국경선은 과거에는 아스완에 있는 수단 영사관이 비자 업무를 봤지만 현재는 완전히 닫혀 있다시피 하다.
4.2.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 문제
에티오피아가 나일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면서 나일강 하류 국가들과 분쟁을 빚고 있다. 자세한 건 그랜드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 문서 참조.5.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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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폭이 넓어지는 나일강 하류 부분 | 나일강 위의 유람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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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일강 하류의 어부 | |
지금은 관개 목적과 치수 사업을 위한 댐 건설로 인해 범람을 못해서 하류의 비옥한 농토가 조금씩 상황이 악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1년 2작으로 효율 1.8정도 된다. 그러나 강이 자연적으로 배출하던 광물 성분은 사라졌고 되려 소금기가 농작지와 고대 유적들로 스며들어 염해 피해를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중해 연안 어업은 댐 건설 이후 나일강의 미네랄이 줄어들면서 극히 안 좋아졌다. 무엇보다 나일강 농업이 19세기 이집트 인근 면화 사업의 융성으로 주목받게 된 탓에 댐은 환경이나 농경민의 생활의 고려가 적었던 산업적 차원에서 건설되었다. 그 결과 이집트는 댐에 대해서 별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황이다.
나일강은 장강이나 아마존강처럼 강 폭이 넓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넓은 곳은 약 300m 정도이고 좁은 곳은 약 100m 정도로 매우 좁다.[12] 이는 폭이 넓은 곳은 1km는 되는 상류[13]에서 하류로 흐를 때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비가 그나마 오는 삼각주의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비해 조금 더 상류에 있는 멤피스나 카이로 같은 지역은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지류도 없으니 강물이 유입될 요소가 없기에 때문 그런 것이다. 따라서 좁기도 좁거니와 상류로 갈수록 폭도 좁아진다.
6. 관련 문서
- 이집트 문명
- 이집트-에티오피아 관계 - 양국은 나일강 수자원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 에티오피아-수단 공화국 관계
- 아누케트 - 나일강의 여신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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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display:inline; padding:0 10px; border-radius:4px; background:#DECD87; color:#000} [1] 르완다의 산악지대에서 발원한다는 설도 있다. 르완다-부룬디 양국이 은근히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조사를 하고는 있지만 양쪽에서 측정한 나일강의 길이가 거의 엇비슷해서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2] 영국의 탐험가였던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경이 주장했던 이론이였다. 이 '탕가니카호 발원설'은 존 해닝 스피크의 '빅토리아호 발원설'과 대립했는데, 결국 존 해닝 스피크의 이론이 맞았음이 후대에 증명되었다.[3] 미주리강 탐험대가 넘어간 그곳 맞다.[4] 현대의 이집트어 표기 관행에 따름. 학계에선 신왕국 전까지는 야트라우(jatɾaw), 민중 이집트어 시기에는 야으르(jaʔɾ)로 발음했으리라 추정한다.[5] 원래 아르(ʕaʀ)였다가 민중어 시기에 아으(ʕaʔ)로 발음되었으리라 추정된다.[6] 비슷한 경우로, 강을 지칭하는 한자 '河'는 본래 황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였다가 낙양 - 장안 지역의 무리한 개발로 토사가 강에 대대적으로 유입된 당 왕조 이래 바뀐 강물 색을 따라 '황하'로 불리게 되었다. 중국에 다른 강도 많았으므로 이후 '河'가 강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널리 쓰였지만 원조는 황하라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江'자도 원래는 장강(양자강)만을 의미했으나 일반적인 강을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확장된 글자다. 즉 '하', '강' 모두 river이지만 황하를 황강, 양자강을 양자하로 부르는 경우는 없다.[7] 강바닥의 진흙은 영양이 풍부해서 조선 시대엔 이를 퍼내서 밭에 뿌리기도 했다. 나일 범람은 그런 천연 비료를 생으로 퍼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8] 이 범람으로 인해 정적분의 기원이 생겨나기도 했는데 나일강의 범람은 지력을 공급하는 고마운 존재지만 그 대가(?)로 농지를 엉망진창으로 뒤섞어 버리기 때문에 지주들끼리 병림픽의 장이 되었을 정도이고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곡선을 간단한 도형으로 근사시키는 측량법이 생겨났다.[9]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즉, 나일강이 있었기에 이집트 문명이 발흥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10] 달력의 1월 1일도 사실은 태양과 시리우스가 같이 뜨는 날로 이날부터 나일강의 범람이 시작되어서 정한 것이라고 한다.[11] 참고로 서울 청계천의 하루 수량이 약 40,000m3이다.[12] 오히려 한국인에게 익숙한 한강이 1km로 더 넓다. 수중보가 있는 영향도 있지만 한강 자체가 세계적으로 폭이 넓은 강이다. 한강도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완공되기 전에는 약 800m, 좁은 곳은 300m 정도로 지금보다는 조금 더 좁았다. 1966년 한강이 범람하고 그 여파로 지류들이 역류하여 서울에 물난리가 나자 정부와 서울시가 여의도를 개발하며 100년 단위 홍수를 막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행주대교에서 미사리까지 한강 폭을 1300m로 일괄 준설한 것이다.(이 과정에서 밤섬도 폭파되어 한강 본류를 넓혔다.)[13] 청나일, 백나일. 각각 아비시니아 고원과 빅토리아호에서 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