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22 10:34:05

투트모세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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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8대 파라오
투트모세 4세
Thumtmose IV
파일:800px-Thumtmoses_IV-E_13889-IMG_0034-gradient.jpg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투트모세 4세(Thutmose IV)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1391년/1388년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1401년/1397년 ~ 기원전 1391년/1388년
(약 10년)
전임자 아멘호테프 2세
후임자 아멘호테프 3세
부모 아버지 : 아멘호테프 2세
어머니 : 티야
배우자 네페르타리
이아레트
무템위야
자녀 아멘호테프 3세
무덤 왕가의 계곡 KV43

1. 개요2. 통치3.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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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8대 파라오. 별 존재감이 없는 파라오지만 기자의 대스핑크스를 모래 속에서 꺼낸 일화로 유명하다.

2. 통치

파일:sfinx-and-dream-stela-03_med_hr.png파일:073950a6-a86a-4e08-b6e0-292cef3a3838_d.jpg
꿈의 비석 라테라노 오벨리스크
투트모세 4세는 아멘호테프 2세와 티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였다. 그러나 날때부터 아멘호테프 2세의 장자나 왕세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는 장자 계승이 원칙이었던 고대 이집트에서 그의 통치 정당성이 부족했다는 뜻인데, 학자들은 아마 투트모세 4세가 반란을 일으켜 윗줄의 형들을 쫒아내고 왕위를 탈취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쿠데타로 즉위한 투트모세 4세가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그 유명한 대스핑크스 일화를 스스로 창작했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투트모세 4세는 왕자 시절 사냥을 하던 중 모래 던덕 위에서 잠들었다. 그런데 꿈 속에서 스핑크스가 나오더니, '나를 이 모래 속에서 꺼내준다면 너에게 왕위를 주겠다'라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투트모세 4세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인부들을 시켜 스핑크스 위에 두텁게 쌓여있던 모래들을 모두 치워주었고, 결과적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투트모세 4세는 파라오가 된 이후 스핑크스를 기리는 의미에서 그 일화를 새긴 비석을 스핑크스의 앞발 사이에 세워놓았고 이를 '꿈의 비석'이라 하여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학자들은 이 비석에 새겨진 내용이 아마도 그의 왕위계승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프로파간다 목적일 것이라고 본다.

그는 약 10년 동안 왕위를 지켰는데, 그의 재위 기간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그는 재위 8년차 되는 해에 누비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제압하였으며 비석에 스스로를 '시리아의 정복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특기할만한 싸움이나 전쟁은 치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그가 지휘했다는 전투들도 그저 국지적인 싸움이나 대규모 순찰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볼만한 점은 황금 광산으로 향하는 교역로를 지키기 위하여 누비아인들과 전투를 여러 차례 벌였다는 정도가 있다. 한편 투트모세 4세는 이집트의 전통적인 라이벌이었던 미탄니와는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아마르나 문서에 의하면 투트모세 4세는 미탄니의 공주와 결혼을 해 동맹을 맺기도 했다.

투트모세 4세는 제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건축광이었다. 카르나크 신전 동편에 높이 32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오벨리스크들을 세워놓았고, 이는 고대 이집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오벨리스크였다. 투트모세 4세는 이 오벨리스크를 '테켄 와티', 즉 '특별한 오벨리스크'라고 부르며 나름 아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오벨리스크는 357년 경 로마 제국콘스탄티우스 2세로마로 가져가버렸으며, 1588년에는 교황 식스토 5세라테라노 대성당 바로 앞의 한복판에 세웠다. 이 오벨리스크는 아직까지도 남아 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으며, 이를 '라테라노 오벨리스크'라고 부른다.

3. 미라

파일:thutmose-iv-tomb-luxor-050.jpg파일:tumblr_33930285d8a20cacabe734a3bb458c7f_a2b4d43e_1280.jpg
왕가의 계곡 KV43 투트모세 4세의 미라
투트모세 4세의 미라는 왕가의 계곡 KV43 무덤에 묻혔다. 그러나 이후 도굴꾼들에게 무덤이 파헤쳐진 것을 확인한 신관들이 미라를 다시 염한 뒤 그나마 상태가 괜찮았던 아멘호테프 2세의 KV35 무덤에 재안장했다. 이후 KV35 무덤이 1898년에 빅토르 로렛에 의해 발굴되면서 투트모세 4세의 미라도 함께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그의 미라를 분석해본 결과, 미라의 키는 대략 164.6cm였지만, 미라가 도굴꾼들 때문에 발이 부서져 버린 것을 고려하면 아마 생전에는 이보다는 훨씬 컸을 것이라 한다. 팔들은 오른팔이 위쪽에 오도록 가슴 위에 X자로 겹쳐서 올려져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약 16cm 정도의 길이였으며 어두운 붉은 기가 도는 갈색머리였다. 생전에 귀를 뚫어 귀걸이를 하고 다녔으며, 그가 죽을 때쯤 약 25세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2012년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연구팀에서 투트모세 4세, 투탕카멘 등을 포함한 제18왕조 파라오들의 사인을 분석한 결과, 측두엽에 뇌전증이 와서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다른 말로는 간질이라고도 하는데, 뇌신경 세포가 불규칙하게 흥분하여 가끔씩 이유없는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학자들은 투트모세 4세가 꿈속에서 스핑크스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도 간질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는 중이다.

2021년에 그의 미라를 다른 신왕국 파라오들의 미라와 함께 카이로 박물관에서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옮겨 재안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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