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제21왕조 제7대 파라오 프수센네스 2세 Psusennes II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 프수센네스 2세(Psusennes II) | |
출생 | 미상 | |
사망 | 기원전 943년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967년 ~ 기원전 943년 (약 24년) | ||
전임자 | 시아문 | |
후임자 | 셰숑크 1세 | |
부모 | 아버지 : 피네젬 2세[1] 어머니 : 이세템켑 D(Isetemkheb D) | |
배우자 | 불명 | |
자녀 | 마아트카레 B(Maatkare B) | |
무덤 | 본래의 무덤은 타니스 왕실묘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 타니스 왕실무덤 3(NRT 3,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에 재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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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제3중간기 제21왕조의 제7대이자 마지막 파라오. 하이집트의 파라오와 상이집트의 테베 아문 대신관을 겸직하여 본의 아니게 이집트 전체를 통치했다.2. 가족 관계
아버지는 시아문 재위 시기에 테베의 아문 대신관이었던 피네젬 2세이며, 어머니는 그의 여동생인 이세템켑 D이다. 친동생으로는 아문의 가희 직을 맡았던 Her-weben-khe, 아문 신의 아내였던 헤누타위(Henuttawy)가 있었으며, 이복동생으로는 남자 2명과 여자 2명이 있었다. 그의 딸 마아트카레 B는 제22왕조의 2대 파라오인 오소르콘 1세의 아내이자, 후계자를 낳은 위대한 왕의 아내(Great Royal Wife)였다.3. 통치와 재위 기간
신왕국 말기에 중부와 상이집트를 장악하여 사실상 지배했던 테베의 아문 대신관의 권력은 제21왕조 중반(아메네모페 치세부터)에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프수센네스 2세는 현직 아문 대신관의 신분으로 파라오에 즉위했다. 이는 아버지인 피네젬 2세가 시아문의 재위 10년차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 성직을 계승하여 유지하다가 파라오에 즉위했기 때문인데 죽을 때까지 아문 대신관 직을 사임하지 않았다. 그가 파라오와 아문 대신관을 겸직했다는 증거는 세티 1세 시절에 아비도스에 건설한 신전의 벽에 새겨진 명문인데 티에톄케레 세테펜레 파세바카엔누트 메리아문(Tyetkheperre Setepenre Pasebakhaenniut Meryamun)이라는 왕명을 쓰는 왕을 '아문 대신관이면서 군총사령관'이라고 적었는데 이 왕명이 프수센네스 2세의 것이다.마네토의 이집트 역사에서는 판본에 따라 14년, 혹위 35년을 재위 기간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다클라 오아시스에서 출토된 비문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재위 기간을 24년으로 수정했다. 이 비문의 내용은 셰숑크 1세 치세 5년차에 셰숑크 1세가 상이집트 지역의 오아시스 지배권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마 부족 출신의 대리인인 와이헤세트(Wayheset)에게 오아시스의 지사이자 군주라는 직함을 주고 파견했는데, 와이헤세트가 니스-바스테트(Nysu-Bastet)라는 남성의 용수권을 '파라오 프수센네스'의 재위 19년차 토지문서를 참조해 그의 어머니가 그 당시에 용수권을 허가받았기에 그도 용수권이 있다고 분쟁을 조정했다는 것이다. 과거에 이집트학 연구자들은 이 프수센네스를 46년간 재위했던 프수센네스 1세로 추정했으나, 파라오라는 단어를 왕명 앞에 붙여 직함으로 쓰는 용법은 프수센네스 2세의 전 파라오인 시아문치세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나오면서 이 비문에서 언급하는 '파라오'는 프수센네스 2세로 확정되었다.
남성 후계를 남기지 못해, 유일하게 본 자식인 마아트카레 B의 장인이자 수석 고문과 군 총사령관을 겸직했던 셰숑크 1세가 프수센네스 2세의 장례를 집전한 뒤 전통에 따라 다음 파라오로 즉위했다.
4. 무덤
프수센네스 2세의 본래 무덤은 제21왕조 선대 파라오들의 행적을 따라 타니스의 왕실묘지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끊임없이 물이 찼다가 빠지는 최악의 환경이라 소실되었고, 그나마 주변의 무덤들 중 상태가 그나마 나았던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에 미라를 재안치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여기도 환경이 좋지 못해 목재 관과 그 안에 안치된 미라는 오래전에 소실되었고, 프수센네스 2세의 이름이 새겨진 샤브티만이 출토되어 이장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1] 테베의 아문 대신관. 시아문 치세 10년차에 사망했고 프수센네스 2세가 신관직을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