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22 10:11:06

투트모세 1세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DB76B 0%, #DECD87 20%, #DECD87 80%, #BDB76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A0522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하이집트 <colbgcolor=#fff,#1f2023>헤주호르 니호르 흐세큐 카유 티우 테시 네헵 와즈너 하트호르 니네이스 | 메크 더블팔콘 워시
상이집트 | 핑거 스네일 피시 엘리펀트 스톡 전갈왕 1세 크로커다일 아이리 호르 전갈왕 2세 나르메르 메네스
제1왕조 나르메르 메네스 호르아하 제르 제트 메르네이트 아네지브 세메르케트 카아 스네페르카 호루스 바
제2왕조 헤텝세켐위 네브라 니네체르 누브네페르 호루스 사 웨네그 와제네스 세네지 세트 페리브센 세케리브 페렌마아트 네페르카레 1세 네페르카소카르 후제파 카세켐위
제3왕조 조세르 세켐케트 사나크테 네브카 카바 세제스 카하제트 후니
제4왕조 스네프루 쿠푸 제데프레 카프레 비케리스 멘카우레 솁세스카프 탐프티스
제5왕조 우세르카프 사후레 네페리르카레 카카이 네페레프레 솁세스카레 니우세르레 멩카우호르 제드카레 우나스
제6왕조 테티 우세르카레 페피 1세 메렌레 1세 페피 2세 메렌레 2세 니토크리스 네체르카레 네페르카 네퍼
제7왕조 멩카레 네페르카레 2세 네페르카레 3세 제드카레 셰마이 네페르카레 4세 메렌호르 네페르카민 니카레 네페르카레 5세 네페르카호르
제8왕조 네페르카레 6세 네페르카민 아누 카카레 이비 네페르카우레 네페르카우호르 네페리르카레 와지카레 쿠이케르 쿠이 이체누
제9왕조 케티 1세 네페르카레 7세 네브카우레 케티 세투트 임호텝
제10왕조 메리하토르 네페르카레 8세 와카레 케티 메리카레
제11왕조 멘투호테프 1세 인테프 1세 인테프 2세 인테프 3세 멘투호테프 2세 멘투호테프 3세 멘투호테프 4세
누비아 왕조 세게르세니 카카레 이니 이이브켄트레
제12왕조 아메넴헤트 1세 세누스레트 1세 아메넴헤트 2세 세누스레트 2세 세누스레트 3세 아메넴헤트 3세 아메넴헤트 4세 소베크네페루
제13왕조 소베크호테프 1세 손베프 네리카레 세켐카레 아메니 케마우 호테피브레 이푸니 아메넴헤트 6세 세멘카레 네브누니 세헤테피브레 세와지카레 네제미브레 소베크호테프 2세 렌세네브 호르 세켐레쿠타위 카바우 제드케페레우 세브카이 세제파카레 웨가프 켄제르 이미레메샤우 세헤테프카레 인테프 세트 메리브레 소베크호테프 3세 네페르호테프 1세 시하토르 소베크호테프 4세 메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카호테프레 소베크호테프 와히브레 이비아우 메르네페르레 아이 이니 1세 상켄레 세와지투 메르세켐레 이네드 세와지카레 호리 소베크호테프 7세 이니 2세 세와헨레 세네브미우 메르케페레 메르카레 세와자레 멘투호테프 세헤켄레 산크프타히
제14왕조 야크빔 세카엔레 야아무 누부세르레 카레흐 아아호테프레 셰시 네헤시 카케레우레 네베파우레 세헤브레 메르제파레 세와지카레 3세 네브제파레 웨벤레 아위브레 2세 헤리브레 네브센레 셰케페렌레 제드케레우레 산키브레 2세 카케무레 네페리브레 카카레 아카레 아나티 제드카레 베브눔 아페피 누야 와자드 셰네흐 셴셰크 카무레 야카레브 야쿠브-하르
제15왕조 샤렉 셈켐 아페라나트 살리티스 사키르-하르 키얀 야나시 아페피 카무디
제16왕조 제후티 소베크호테프 8세 네페르호테프 3세 멘투호테피 네비리라우 1세 네비리라우 2세 세멘레 베비앙크 세켐레 셰드와스트 데두모세 1세 데두모세 2세 몬투엠사프 메란크흐레 멘투호테프 세누스레트 4세 페피 3세
아비도스 왕조 세네브카이 웨프와웨템사프 판트제니 스나아이브
제17왕조 라호테프 네브마아트레 소베켐사프 1세 소베켐사프 2세 인테프 5세 인테프 6세 인테프 7세 세나크텐레 아모세 세케넨레 타오 카모세
제18왕조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2세 하트셉수트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2세 투트모세 4세 아멘호테프 3세 아케나톤 스멘크카레 네페르티티 투탕카멘 아이 호렘헤브
제19왕조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메르넵타 아멘메세스 세티 2세 십타 투스레트
제20왕조 세트나크테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람세스 5세 람세스 6세 람세스 7세 람세스 8세 람세스 9세 람세스 10세 람세스 11세
제21왕조 스멘데스 1세 아메넴니수 프수센네스 1세 아메네모페 대 오소르콘 시아문 프수센네스 2세
제22왕조 셰숑크 1세 오소르콘 1세 셰숑크 2세 타켈로트 1세 오소르콘 2세 셰숑크 3세 셰숑크 4세 파미 셰숑크 5세 오소르콘 4세
제23왕조 하르시에세 A 타켈로트 2세 페디바스테트 1세 셰숑크 6세 오소르콘 3세 타켈로트 3세 루다멘 이니
제24왕조 테프나크트 바켄레네프
제25왕조 피이 셰비쿠 샤바카 타하르카 타누타멘
제26왕조 네코 1세 프삼티크 1세 네코 2세 프삼티크 2세 와히브레 아흐모세 2세 프삼티크 3세
제27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캄비세스 2세 바르디야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2세 소그디아누스 다리우스 2세
제28왕조 아미르타이오스
제29왕조 네파루드 1세 하코르 프삼무테스 네파루드 2세
제30왕조 넥타네보 1세 테오스 넥타네보 2세
제31왕조
(아케메네스 왕조)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아르세스 카바쉬 | 다리우스 3세
아르게아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3세 필리포스 3세 알렉산드로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32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 아르시노에 2세 프톨레마이오스 3세 · 베레니케 2세 프톨레마이오스 4세 · 아르시노에 3세 프톨레마이오스 5세 · 클레오파트라 1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 클레오파트라 1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복위) · 프톨레마이오스 7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클레오파트라 2세 프톨레마이오스 8세 (복위) · 클레오파트라 2세 · 클레오파트라 3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9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클레오파트라 4세 프톨레마이오스 10세 · 클레오파트라 3세 · 베레니케 3세 프톨레마이오스 9세 (복위) 베레니케 3세 · 프톨레마이오스 11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 클레오파트라 5세 베레니케 4세 · 클레오파트라 6세 프톨레마이오스 12세 (복위) 프톨레마이오스 13세 · 클레오파트라 7세 · 아르시노에 4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 ·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5세 · 클레오파트라 7세
세소스트리스 · 아이깁투스 · 사산 · 정통 칼리파
우마이야 · 아바스 · 파티마 · 아이유브
맘루크 · 오스만 · 무함마드 알리 · 대통령
}}}}}}}}}}}}}}}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3대 파라오
투트모세 1세
Thutmose I
파일:ThutmoseI.jpg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투트모세(Thutmose)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1493년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1506년 ~ 기원전 1493년
(약 12년)
전임자 아멘호테프 1세
후임자 투트모세 2세
부모 아버지 : 아멘호테프 1세
어머니 : 센세네브
배우자 아흐모세
무트노프렛
자녀 투트모세 2세, 하트셉수트
무덤 왕가의 계곡 KV20[1]

1. 개요2. 통치

[clearfix]

1. 개요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3대 파라오. 활발한 정복 전쟁을 펼친 파라오이자 최초로 왕가의 계곡에 묻힌 파라오였다.

2. 통치

투트모세 1세의 아버지가 정확히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마 선대 파라오인 아멘호테프 1세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인 센세네브는 왕가의 혈통이 아니었기에 정실 왕비가 아니라 후궁이나 첩실일 가능성이 크다. 투트모세 1세는 아흐모세 1세의 딸이자 아멘호테프 1세의 이복누이였던 아흐모세 왕비와 결혼했고, 이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부족한 정통성을 보강하려 시도했다. 투트모세 1세가 즉위하자마자 남쪽의 누비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투트모세 1세는 바로 군대를 끌고 내려가 누비아 반란군들을 격퇴했고 심지어 누비아의 쿠시 왕국 왕을 죽이면서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승리를 이끈 파라오는 배의 고물에 누비아 왕의 잘린 목과 몸을 내걸고 위풍당당하게 테베로 개선했다. 재위 3년차에는 또다시 누비아로 원정을 떠나 나일 강의 제1폭포 즈음에 운하를 파서 더욱 이동이 용이하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서 누비아의 이집트화 속도가 빨라졌다고 전해진다.

투트모세 1세는 단순히 누비아에 군대를 보내는 것 뿐만 아니라 요새를 축조하고 길을 닦아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등 알박기 작업에도 나섰다. 제3폭포 인근 톰보 지방에 요새를 지었으며 곳곳에 초소와 연락 기지를 지으며 누비아에서의 반란 시도 자체를 아예 꺾으려 했다. 다만 재위 2년차부터는 누비아 뿐만 아니라 시리아 지방에서도 대대적인 군사 원정을 계획하며 누비아에만 관심을 쏟을 수가 없었다. 투트모세 1세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시리아로 나아가 심지어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가는 등 그 이전의 어떠한 파라오들도 도달하지 못한 지역까지 멀리 진출했다.[2] 이 원정을 통해 수많은 시리아계 소국의 왕들이 이집트에 충성을 맹세하고 공물을 바칠 것을 약속하였으나, 정작 투트모세 1세가 이집트로 돌아간 이후에는 공물도 보내지 않고 오히려 후일 침략을 대비해 요새를 강화하는 등 이집트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이집트인들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나일 강만 보아왔던지라 반대로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을 보고 굉장히 신기해했다.[3]

투트모세 1세는 정복 작업 뿐만 아니라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여러 건물들을 남겼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테베의 카르나크 대신전이다. 투트모세 1세 이전까지만 해도 카르나크 신전은 별로 중요한 신전이 아니었다. 그냥 그럭저럭한 종교 중심지들 중 하나로 사원 몇 개가 모여있는 중형 신전에 불과했는데, 투트모세 1세가 탑문과 신전들을 대거 건설하고 신전의 영역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면서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신전으로 확 뛰어오른 것이다. 그는 백향목의 모습을 본딴 열주들을 세운 홀들을 연이어 설계했고 주변에는 상하 이집트의 이중관을 쓰고 있는 투트모세 1세의 모습을 새긴 거상들을 배치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개의 오벨리스크들도 카르나크 주변에 설치했는데, 이 중 몇몇 개는 50여 년이 지나고 투트모세 3세 시대 이전까지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았다고 한다. 투트모세 1세는 카르나크 신전 외에도 아비도스엔네아드들의 석상을 만들거나 멤피스, 에드푸 등에 여러 신전들을 세웠다. 또한 투트모세 1세는 처음으로 왕가의 계곡에 묻힌 파라오로 알려져 있다. 선선대 파라오인 아흐모세 1세까지만 해도 피라미드를 지어 그 안에 묻혔는데, 투트모세 1세 시대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피라미드를 버리고 땅에 석굴을 파 그 안에 묻히는 형식을 채택하게 된다.

이렇게 많은 업적들을 남겼던 투트모세 1세는 죽은 후 왕가의 계곡 KV20에 묻혔다. 1844년 즈음에 KV20 무덤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이전까지 이 무덤은 통로와 매장실을 포함해 모든 곳들이 자갈과 모래가 꽉꽉 들어차 있던 상태였다. 1903년에 2년에 걸친 발굴 작업 끝에 겨우 무덤의 자갈과 모래를 모두 치워냈다. 하지만 이미 무덤은 도굴꾼들에게 털린 지 오래라 그 안에서 발견된 보물이라하면 조잡한 화병 2점, 그리고 도자기 조각들 몇 점만이 발견되었을 뿐이다. 참고로 이 곳에서는 하트셉수트의 석관이 발견되었다.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지만 하트셉수트의 미라나 유해는 안치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여왕이 마음을 바꾸어 다른 무덤을 쓰기로 결정하며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투트모세 1세 본인의 미라는 데이르 엘 바하리에서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2세, 투트모세 3세,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람세스 9세 등의 미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 그의 미라는 어떠한 표식도 없어서 처음에는 투트모세 1세의 것인지 몰랐으나, 고고학자들이 투트모세 2세 등 다른 파라오들과 유전자를 조사해본 결과 투트모세 1세의 미라임이 확인되었다.
[1] 후일 KV38로 재안장되었다.[2] 선대의 아흐모세 1세가 한 번 유프라테스 강까지 가보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3] 그래서 투트모세 1세에게 주어진 칭호들 중 하나는 '역류를 건넌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