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제2중간기 32대 혹은 37대 혹은 38대 파라오 메르카우레 소베크호테프 Merkawre Sobekhotep |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메르카우레 소베크호테프(Merkawre Sobekhotep) | |
| 부왕 | 불명 | |
| 선대 | 세와지카레 호리 | |
| 후대 | 불명 | |
| 묘지 | 불명 | |
| 자녀 | 베비(Bebi)♂[추정] 소베크호테프(Sobekhotep)♂[추정] |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 재위기간 2년 ?개월[3] 3~4일 | ||
1. 개요
이집트 제2중간기 13왕조의 37대 파라오이다. 이후 파라오는 토리노 파피루스의 공백으로 불분명하다.2. 생애
2.1. 재위
소베크호테프 7세는 2년 정도의 짧은 통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파라오에 대해서는 상이집트의 테베의 카르나크 신전에서 발견된 몇몇 자료 외에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이 유물들은 그가 카르나크를 직ㅈ버 다스렸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약탈당히 카르나크로 옮겨졌을 수도 있다.한 유물은 테베 지역의 신인 아문을 언급하고 있으며, 다른 한 유물은 좀 더 남쪽에 있는 네켄(Nekhen)[4]의 대변자 직책을 언급한다. 또한 카르나크 파라오 목록에서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점을 보아 그는 후대에도 테베 지역에서는 완전히 잊힌 파라오는 아니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계승 순서는 명확하지 않다. 소베크호테프 7세는 자신의 정통성[5]을 뒷받침할 만한 추가적인 유물을 남기지 않았다.
2.2. 가계
남아있는 기록에는 파라오의 아들로 불리는 두 사람이 언급된다. 이들은 실제로 소베크호테프 7세의 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들은 여러 관직과 칭호를 가진 성인으로 보이는 인물들이다. 소베크호테프 7세의 재위 기간이 매우 짧은 점을 고려하면, 이들은 원래는 왕족이 아니였다가 나중에 왕자 칭호를 받았거나, 다른 파라오로부터 그 칭호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3. 왕호
소베크호테프 7세의 호루스 이름, 네브티 이름, 황금 호루스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즉위명은 메르카우레로, 이 이름은 남성형으로 "사랑받는"이라는 뜻인 "메르"와 "영혼"을 뜻하는 "카우"[6], 태양신을 뜻하는 "라"가 합쳐진 것으로 해석되며, 즉 "라의 영혼들이 사랑받는 자", "라의 사랑받는 영혼들" 정도의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이 이름은 12왕조의 카카우레 세누스레트 2세(Khakaure Senusret II)의 즉위명과 비교할 수 있다. 즉 "카우-레" 구조를 세누스레트 2세와 공유한다.
출생명(노멘)은 소베크호테프이다. 이 이름은 악어신 "소베크"와 평화 혹은 만족이라는 뜻의 "호테프"를 합친 것으로, "소베크는 만족한다." 혹은 "소베크에게 안식/평화를" 정도로 해석된다. 소베크호테프라는 이름은 12왕조 시기부터 일반 인명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13왕조에서 여러 파라오의 이름으로도 채택되었다.
4. 비문 및 사료
소베크호테프 7세는 주로 상이집트의 테베 지역에서 확인되는 소수의 유물로만 알려져 있다. 또한 네켄에서도 유물이 소량 발견된다.4.1. 동시대 사료
소베크호테프 7세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스캐럽 인장으로 확인된다.또한 아문에게 봉헌된 두 점의 좌상에서도 소베크호테프 7세가 확인된다. 이 조각상들은 원래 카르나크 출토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하나는 이집트 박물관에, 하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조각상들은 소베크호테프 7세와 함께 두 아들 베비(Bebi)와 소베크호테프(Sobekhotep)를 묘사하고 있으며, 이 둘은 모두 파라오의 아들이자 궁정 관리라는 칭호를 가진 것으로 적혀있다.
4.1.1. 루브르 박물관 소유 좌상, E 7824
카르나크에서 발굴된 분홍색 화강암 재질의 좌상. 이 조각상에는 소베크호테프 7세의 왕명이 새겨져 있다.4.1.2. 카이로 박물관 소유 좌상, JE 43599
카르나크에서 발견된 화강암 재질의 좌상으로, 아문에게 봉헌된 것으로 보이며 메르카우레 소베크호테프라는 왕명이 적혀져 있다. 이 조각상에는 그의 아들로 추측되는 베비와 소베크호테프가 새겨져 있다. 베비는 다른 유물[7]에서도 진정한 국왕의 아들로 불린 것으로 보아 상당한 위상을 가졌음을 시사한다.4.2. 비동시대 사료
신왕국 시기에 작성된 목록들에서도 소베크호테프 7세의 이름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투트모세 3세 시기에 제작된 카르나크 파라오 목록, 람세스 2세 시기에 제작된 토리노 파피루스가 있다.4.2.1. 카르나크 파라오 목록
카르나크 파라오 목록 항목 42[8]에서 메르카우레(Merkaure)라는 이름이 언급된다. 주변에는 메르세켐레와 세켐레 세우세르타위 등의 이름이 함께 적혀져 있다. 이 목록은 이집트 여러 파라오들의 이름을 나열하지만, 연대기적 순서로 정리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일부 파라오들만 수록되어 있으며, 이름은 가로줄 형태로 4명 또는 5명이 묶여 있다. 또한 항목 번호 역시도 번호 매기는 방식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4.2.2. 토리노 파피루스
토리노 파피루스 8열 8행에는 "두 땅의 주인 메르카우레 소베크호테프, 재위 2년 x개월 4일"이라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목록에서 소베크호테프 7세는 세와지카레 호리의 뒤에 나오며, 그 다음의 항목은 소실되어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소베크호테프 7세 이후의 부분은 토리노 파피루스의 거대한 소실로 인해 4명에서 7명 정도의 파라오의 이름이 소실되어 있다.특이한 점은 이 목록에서 그의 즉위명과 출생명이 모두 적혀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인물의 즉위명과 출생명이 함께 전해지는 비교적 명확한 사례이다.
5. 연구와 해석
소베크호테프 7세가 13왕조 내에서 어느 위치에 오는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이는 13왕조 초기 파라오들의 순서 자체가 매우 불명확한데다가, 사료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대럴 베이커(Darrell Baker)는 소베크호테프 7세를 13왕조의 37대 파라오로 본다. 킴 라이홀트(Kim Ryholt)는 그를 제 38대 파라오로 본다. 위르겐 폰 베케라트(Jürgen von Beckerath)는 그를 13왕조의 32대 파라오라고 본다. 즉, 학자마다 계승 순서를 다르게 본다.
소베크호테프 7세는 기원전 17세기 중반 무렵, 대략 기원전 1664년부터 기원전 1663년까지 중이집트와 아마도 상이집트를 다스렸을 것이다. 다른 견해로는 독일의 이집트학자 토마스 슈나이더(Thomas Schneider)가 제시한 연대가 있다. 슈나이더는 이 짧은 재위를 기원전 1646년부터 기원전 1644년까지로 본다.
[추정] [추정] [3] 킴 라이홀트(Kim Ryholt)는 6개월이라고 주장했다.[4]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로도 불린다.[5] 즉, 왕위 계승권[6] 복수형일 경우 우가 붇는다.[7] Bologna EG 1927[8] 혹은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