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제2중간기 17대 파라오 제드케페레우 Djedkheperew |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제드케페레우(Djedkheperew)[2] | |
| 부왕 | 호르로 추정 | |
| 선대 | 세켐레쿠타위 카바우 | |
| 후대 | 세제파카레 혹은 세브카이 | |
| 묘지 | 불명 |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 기원전 1772년~기원전 1770년[라이홀트] 재위기간 ?개월[베이커] 기원전 1760년대, 재위기간 7개월[베르너] 기원전 1732년[슈나이더] | ||
1. 개요
이집트 제2중간기 13왕조의 17대 파라오이다. 토리노 파피루스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해당 부분이 소실되어 안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위 사진에 있는 오시리스의 침대와[7] 누비아 지역에서 발견된 인장밖에 없다.2. 입증
2.1. 당대의 입증 자료
제드케페레우의 치세는 누비아의 제2 급류지대에 위치한 이집트 요새들에서 출토된 인장 11점으로 뒷받침된다. 이 가운데 10점은 우로나르티(Uronarti)[8]에서 발견되었으며, 세켐레쿠타위 카바우와 마이브레 셰시의 인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출토되었다. 나머지 1점은 미르기사(Mirgissa)[9]에서 확인되었다.인장 외에도, 제드케페레우는 오시리스의 침상(Bed of Osiris)으로 불리는 거대한 현무암 조각상으로도 확인된다. 이 조각은 상여 위에 누운 오시리스를 묘사하며, 고대 이집트인들이 오시리스의 무덤으로 인식했던 1왕조의 파라오 제르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 조각은 현재 이집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레이히(Leahy)는 한때 이 유물을 13왕조의 파라오 켄제르에게 잠정 귀속시켰으나, 이후 비문을 다시 해석한 결과 원래는 제드케페레우의 이름을 새겼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제드케페레우의 노멘[10]은 고대에 지워졌으나, 일부가 대충 지워져 여전히 읽을 수 있는 흔적이 남아 있다.
2.2. 토리노 파피루스
제드케페레우는 람세스 시대 초기에 편찬된 왕명표이자 제2중간기 연구의 기준 문헌으로 쓰이는 토리노 파피루스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라이홀트(Ryholt)는, 제드케페레우의 통치를 쓴 부분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11]3. 가계와 통치
라이홀트에 따르면, 제드케페레우는 선임 파라오인 세켐레쿠타위 카바우의 형제이자 호르 아위브레의 아들이다. 이 결론은 우로나르티에서 출토된 인장들과 오시리스의 침상에 근거한다. 인장들은 카바우와 제드케페레우가 시간적으로 매우 근접해 통치했음을 보여주며, 오시리스의 침상에 남아 있는 제드케페레우의 이름 흔적은 그의 노멘이 “hrw”로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이는 제드케페레우의 노멘이 호르(Hor)와의 혈연을 표시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카바우가 호르의 뒤를 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드케페레우는 카바우의 형제이자 후계자였다는 추론으로 이어진다.[1] 1왕조 제르의 묘실에서 발견되었다.[2] Djedkheperu라고도 불린다.[라이홀트] [베이커] [베르너] [슈나이더] [7]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켄제르의 것으로 알려져있었다.[8] 수단 북부에 위치한 요새[9] 수단 북부에 위치한 요새. 당시에는 이켄(Iken)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누비아 지역에서 제일 큰 요새였다.[10] 출생명[11] 그의 선대 파라오인 세켐레쿠타위 카바우와, 후임 파라오들인 세브카이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