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4 10:35:10

프수센네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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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제21왕조 제3대 파라오
프수센네스 1세
Psusennes I
파일:Golden_Mask_of_Psusennes_I.jpg
프수센네스 1세의 황금 마스크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프수센네스 1세(Psusennes I)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1001년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1047년 ~ 기원전 1001년
(약 46년)
전임자 아메넴니수
후임자 아메네모페
부모 아버지 : 피네젬 1세[1]
어머니 : 헤누타위
배우자 무트노지메트, 위아이
자녀 아메네모페
무덤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

1. 개요2.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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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제3중간기 제21왕조의 제3대 파라오. 재구한 고대 이집트어 이름은 파세바카엔누트(Pasebakhaenniet, 도시에서 뜨는 별이라는 뜻으로 상이집트의 중심지 테베를 의미한다)이며 프수센네스는 그리스어 표기이다. 4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재위했지만 남긴 업적은 특기할만한 것이 없으며 그의 재위기간 내내 이집트는 몰락했다. 한가지 특이한 점으로 그의 무덤은 파라오들 중 유일하게 무덤이 도굴당하지 않은 사례인데,[2] 하필이면 침수가 잘되는 장소에 무덤을 지어 심각하게 파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부장품도 별로 없는 초라한 무덤이어서 대중들에게 인지도는 거의 없다.

은의 파라오라고 불리기도 한다. 독특하게도 무덤 내부에 있던 그의 관이 순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고대 이집트에서는 은을 저멀리 시나이 반도나 외부에서 수입해와야 했기에 은의 가치가 굉장히 높았다. 따라서 비싼 은으로 관을 만들 여력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프수센네스 1세의 왕권이 다른 혼란기의 파라오들에 비해서 안정적이었다는 걸 의미한다.

2. 통치

파일:Psusennes-Gold-Mask-Side-View.jpg파일:tumblr_7d5e9fb2f151cae7063d24433730a175_aaf97021_500.jpg
황금 마스크 프수센네스의 은제 관
한때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이집트 신왕국람세스 2세 사후 차차 쇠락하더니 결국 제20왕조 들어서는 이상기후로 발생한 기근, 사회 불안정, 리비아인들과 누비아인들의 침입, 후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이로 인해 파라오의 권위와 권력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반면 상이집트의 테베를 중심으로 한 아문 대신관의 권력은 날로 강해졌다. 람세스 4세 재위 초에 아문 대신관 자리에 오른 람세스낙트는 람세스 9세 재위 초까지 아문 대신관을 맡으며 재정감사권과 징수권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유력 귀족 가문들과 혼인하여 그 권위를 굳혔다. 그 결과 신왕국의 마지막 파라오 람세스 11세시기에는 파라오가 거하던 하이집트마저도 아문 대신관의 아들로 추정되는, 제21왕조의 개창자이자 초대 파라오 자리에 오른 스멘데스의 손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람세스 11세가 30년간의 재위기를 마치고 사망하자 그의 장례를 집전한 스멘데스가 파라오에 즉위하니 제21왕조와 제3중간기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스멘데스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은 람세스 11세 생전에 그의 영역이었던 하이집트에 한정되었으며, 중부와 상이집트는 테베의 아문 대신관이 실질적으로 자치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집트의 파라오와 상이집트의 테베 아문 대신관은 혈연으로 이어진 집단이었기에[3] 본격적인 국가 분열로 진행되진 않았다.

스멘데스 1세가 죽자 아메넴니수가 잠깐 동안 재위했다가 바로 프수센네스 1세에게 왕위가 넘어갔다. 프수센네스 1세는 46년을 통치하였으나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나마 그의 재위기에 타니스 주변에 거대한 성벽을 둘러 요새화시키면서 이집트의 수도가 완전히 멤피스에서 타니스로 옮겨졌으며 테베의 카르나크 신전을 모방해 타니스에 아문 신전을 세우고 타니스의 아문 대신관을 맡았다는 것 정도다. 프수센네스 1세의 아버지가 테베 아문 대신관인 피네젬 1세의 아들이었고, 그의 무덤에 묻힌 여러 부장품을 아문 대신관이었던 스멘데스 2세가 기부했다는 기록이 있어 상이집트 지역에서도 권위를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프수센네스 1세가 그나마 유명한 이유는 파라오들 중 유일하게 단 한번도 도굴당하지 않은 무덤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슷하게 무덤의 발견으로 유명해진 투탕카멘과 달리 프수센네스 1세는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데, 첫째로 무덤의 위치가 나일강 하류 삼각주의 타니스에 있어서 오랜 시간 동안 무덤이 침수되었다가 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썩기 쉬운 목재 유물들과 벽화가 전부 손상되었다. 심지어는 하도 환경이 나쁜 탓에 미라들마저도 다 썩어서 관을 열었더니 뼈와 부장품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둘째로 신왕국의 전성기였던 투탕카멘과 달리 프수센네스 1세는 이집트의 국력이 줄어드는 제3중간기의 파라오여서 남은 부장품의 질도 그다지 좋지 못하며, 셋째는 이 무덤이 처음 발견된 시기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40년 1월이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40년에 카이로 대학교의 당시 해부학장인 더글라스 데리 박사가 미라를 검시했는데, 치아가 심하게 마모되어 있고 충치가 많았으며 입천장에 구멍을 남긴 종양이 있었고, 관절염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죽을 당시 노년이었으며 스스로 거동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1] 파라오가 아니라 테베의 아문 대신관이다.[2]투탕카멘의 무덤도 고대에 소규모로 몇 차례 도굴당했다.[3] 제21왕조의 역대 파라오들 중 아예 리비아 출신인 대 오소르콘, 출신이 명확하지 않은 시아문을 제외하면 초대인 스멘데스부터 아문 대신관의 아들이었거나 그 아들이 낳은 자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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