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4 17:28:23

세티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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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제2대 파라오
세티 1세
Seti I
파일:2a721e66909fdb3e1e4ed57b2dbeaf5e.jpg
세티 1세의 무덤 KV17에 그려진 벽화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세티 1세(Seti I)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1279년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1294년/1290년 ~ 기원전 1279년
(약 15년)
전임자 람세스 1세
후임자 람세스 2세
부모 아버지 : 람세스 1세
어머니 : 시트레
배우자 투야
자녀 람세스 2세
신장 170cm[1]
무덤 세티 1세의 무덤

1. 개요2. 통치
2.1. 시리아 원정
3. 무덤4.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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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의 2대 파라오. 기원전 1294년부터 기원전 1279년까지 약 15년[2] 정도 고대 이집트를 다스렸다. 아케나텐 이래 벌어진 신왕국의 혼란을 완전히 수습하고 시리아의 카데시 지방까지 진출하는 등 이집트의 옛 강역들을 회복한 명군이었으나, 하필이면 아들이자 후계자가 그 유명한 람세스 2세여서 후대에 와서는 묻혔다.

'세티'라는 이름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파괴와 사막의 신 세트를 섬기는 몸이라는 뜻이었다. 그리스어로는 '세토스 1세'라고 불렀다. 주로 '세티 1세'라는 이름이 유명하지만 5개의 이름을 갖는 파라오여서 다른 이름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의 정의를 세운 자'라는 뜻의 '멘마아트레', 아니면 '프타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의 '세티 메렌프타'라는 칭호도 있었다.

2. 통치

세티 1세가 등장하기 이전, 이집트 신왕국아케나텐의 급작스런 종교 개혁 때문에 일어났던 혼란에서 막 벗어나고 있던 시점이었다. 제18왕조의 파라오 아케나텐은 즉위하자마자 기존의 아문 신앙을 부정하고 태양신이자 유일신 아텐 신앙을 내세웠다. 당연히 기존의 신관 계급과 기득권층들은 극렬히 반발했다. 결국 아케나텐의 죽음 직후 아텐 신앙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파라오는 기록말살형에 처해졌다. 이집트는 아케나텐의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과거로 회귀했고, 이후 투탕카멘, 아이의 짧은 재위기를 거치며 제18왕조는 날이 갈수록 흔들렸다. 아케나텐의 후계자 투탕카멘은 이른 나이에 요절했고,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아이는 이미 나이가 지나치게 많았다. 아이는 몇 년만에 노환으로 사망했고 군사령관 호렘헤브가 파라오직을 꿰찼다. 호렘헤브는 강력한 리더십과 군권으로 혼란스러운 이집트를 다잡았고, 덕분에 한창 흔들리던 이집트는 다시 안정되었다. 호렘헤브는 파라오가 된 이후 군사령관 시절의 측근들을 기용했다. 이 호렘헤브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측근들 중 하나였던 람세스 1세가 왕위에 오르니 이를 제19왕조의 시작으로 본다.

제19왕조를 연 람세스 1세는 오래 살지 못했다. 그나마 호렘헤브의 정책을 이어 왕조 교체기의 불안정한 이집트 사회를 안정시키려 노력했던 것이 업적이라 말할 수 있다. 람세스 1세가 즉위할 즈음 이미 중동과 서아시아에서는 신흥 강대국 히타이트 제국이 한창 떠오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실 히타이트의 발흥 자체는 아케나텐 시절부터 서서히 싹수를 보여왔지만, 이집트는 아케나텐이 불러일으킨 종교 개혁의 파장으로 워낙 내부가 어지러웠기에 외부의 히타이트 따위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덕분에 히타이트는 이집트의 견제 없이 쑥쑥 자라났고, 람세스 1세와 세티 1세의 시기 즈음에 이르자 이미 이집트와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국력을 가진 강대국으로 성장해 있었다. 람세스 1세는 즉위한 지 1~2년 만인 기원전 1294년[3]에 그대로 사망했고, 왕세자 신분으로 공동 통치를 하던 세티 1세가 완전한 이집트의 파라오로 즉위했다.

2.1. 시리아 원정

세티 1세는 즉위하자마자 본격적으로 히타이트 군대와 맞서 싸워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아케나텐 시절부터 방치해온 히타이트 문제를 도저히 방치해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티 1세는 즉위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서아시아리비아, 누비아 등 다양한 전장에서 몸소 무기를 휘두르며 군대를 이끌어야 했다. 그는 즉위 원년에 대군을 이끌고 '호루스의 길'을 따라 가나안 지방으로 향했다. 파라오는 시나이 반도에서 베두인 유목민들과 전투를 치렀고, 대군을 이끌고 무력을 과시하며 인근 소국이나 도시들로부터 공물을 받아내고 봉신으로 삼았다.[4] 예노암과 베스-샨 등 저항하는 도시들은 쉽게 평정했다. 세티 1세는 이 원정을 통해 아시아에게 이집트가 서서히 레반트, 그리고 소아시아 지방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음을 알리면서 본격적으로 히타이트와 충돌할 것임을 예고했다.

세티 1세의 최대 군사 업적은 바로 시리아 지방의 카데시를 점령하고 인근의 아무루 지방을 히타이트에게서 빼내어 이집트의 봉신국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카데시 지방은 본디 정복군주 투트모세 3세 시절 이래 이집트의 영향권에 속해 있었으나, 아케나텐 이래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면서 히타이트에게 빼앗겼던 땅이었다. 투탕카멘, 호렘헤브 등의 파라오들이 다시 되찾고자 염원했으나 실패했던 영토였기에 세티 1세의 공적은 더더욱 부각됐다. 세티 1세는 농성하는 히타이트 군대를 가볍게 제압하고 카데시로 진입해 자신의 공덕을 기리는 석비를 세웠다. 그러나 카데시는 너무나 히타이트의 본진과 가까웠기에 이집트는 이 지방을 오래 쥐고 있지 못했고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뺏겼다. 참고로 이 때 바로 후계자였던 람세스 2세가 세티 1세와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한창 혈기가 넘치던 람세스 2세는 군대가 카데시에 입성하는 이 순간을 잊지 못했고, 이는 결국 람세스 2세가 다시 카데시를 점령하기 위해 시리아 원정길에서 지나치게 서두르며 히타이트 군대에게 막대한 병력을 잃는 결과를 낳았다.

이집트인들은 친히 대군을 이끌고 이집트 제국의 옛 강역을 회복하는 업적을 세운 세티 1세에게 환호했다. 세티 1세는 당당히 개선식을 치르며 이집트로 귀환했고, 시민들은 파라오에게 열광했다. 이집트인들은 세티 1세를 투트모세 3세 이래 다시 등장한 정복 군주로 여겼다. 또한 세티 1세가 아케나텐의 아텐 신앙을 철저히 억누르고 기존의 아문 신앙을 숭상하는 정책을 펼쳤기에 신관 계급들까지 그를 지지했다. 세티 1세는 내치면 내치, 외정이면 외정 이렇게 여러 모로 뛰어난 군주였다. 비록 후계자 람세스 2세가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먼치킨이었던지라 약간 묻힌 감이 크긴 하지만, 독립적으로 놓고 따져보았을 때에는 상당히 능력이 탁월한 군주였다는 것. 세티 1세는 제18왕조 시대에 약화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이는 후임 람세스 2세가 안정적인 통치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었다.

3. 무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세티 1세의 무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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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haraoh_Seti_I_-_His_mummy_-_by_Emil_Brugsch_(1842-1930).jpg 파일:kv17_11827.jpg
세티 1세의 미라[5] 세티 1세의 무덤 KV17 내부
많은 업적을 남기며 안정적으로 이집트를 다스렸던 세티 1세는 기원전 1279년에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왕가의 계곡의 KV17 무덤에 묻혔다. 세티 1세의 무덤 KV17은 역대 신왕국 파라오의 무덤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긴 136m에 달하는 길이와 깊이로 유명하다. 그의 무덤은 1817년에 이집트 고고학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이탈리아인 모험가 조반니 바티스타 벨조니에 의해 발굴되었다. 모든 통로와 방들이 정교한 벽화로 장식되어 있으며, 안에는 보물과 값진 부장품들이 가득했다. 특히 기둥에 새겨진 사랑의 여신 하토르와 세티 1세의 벽화는 이집트 벽화들 중에서도 백미로 평가받기도 한다. 관은 거대한 암석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들었고, 하늘의 여신 누트를 새겨 매우 아름다운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용케도 망가지지 않아 1824년에 존 소안(John Soane)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당시 런던의 엄청난 공해와 습기 때문에 결국 색이 변색되어 칙칙한 검은색으로 변하며 훼손되고 말았다. 관 안쪽의 회반죽은 모조리 떨어져 나갔고 푸른빛 염료는 어두운 검은색으로 변했다.

세티 1세의 미라는 유난히 보존이 잘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자들의 부검 결과 파라오는 죽었을 시점 약 40대 정도의 나이였을 것이며, 상당히 급작스런 죽음을 맞았을 것이라 한다. 그가 전대의 호렘헤브나 람세스 1세의 나이와 비교해보면 짧은 생을 살다간 건 확실하지만 그의 미라에서 별다른 외상이나 상처가 발견되지 않은 걸 보아 그냥 자연사한 것으로 추측된다.[6] 참고로 그의 미라는 목을 포함해 사지가 절단된 적도 있다. 이집트인들은 미라의 붕대 속까지 황금 부장품과 보물들을 곳곳에 끼워넣었는데, 이를 잘 알고 있던 도굴꾼들이 마구잡이로 미라를 파헤치면서 오체분시를 당한 것. 후일 파라오의 미라가 절단당한 것을 보고 경악한 아문 신관들은 미라를 정성스레 다시 이어붙이고 붕대를 새로 감아 재안장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가슴 왼쪽에 있어야 할 파라오의 심장이 오른쪽에 놓여졌는데, 이유는 모른다. 학자들은 세티 1세가 살아있었을 당시 그의 키가 대략 170cm, 고대인의 기준으로서는 상당한 장신이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현대 포토샵 기술로 얼굴을 복원한 영상

4. 창작물

아들인 람세스 2세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묻히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아버지이다 보니 람세스 2세를 다루는 창작물에서 곁다리로나마 등장하는 경우는 많다.

애니메이션인 이집트 왕자에서는 아들 람세스가 성경 탈출기의 파라오이자 모세의 의붓형으로 설정되어서 세티 1세 또한 모세의 의붓아버지로 등장한다. 작중 히브리 영아들을 학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만 단순한 악역으로는 묘사되지 않는다. 히브리 아기들을 학살한 것도 군주로서의 책임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행하였을 뿐 그 자체가 잘못된 행동임은 자각하고 있으며, 람세스와 모세를 진심으로 아끼는 아버지로 모세가 학살 사건을 알고 괴로워하자 이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라에몽 생일 스페셜 수수께끼의 피라미드 이집트 대탐험에서는 왈에헤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명군이 아니라 암군으로 등장한다.

[1] 미라 조사 결과에서 나온 키이다.[2] 11년이라는 설도 있다.[3] 기원전 1290년이라는 설도 있다.[4] 이 모든 이야기들은 테베의 카르나크 신전 열주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5] 죽은 지 몇천년 된 시체치고는 콧대가 살아있는 등 굉장히 보존 상태가 준수하다.[6] 심장 질환으로 죽었다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