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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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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5ba6,#59b3ff><colbgcolor=#f0f0f0,#191919> 후보 | <colbgcolor=#fff,#1c1d1f>대권주자 · 경선 (더불어민주당 / 후보 · 국민의힘 / 후보 · 개혁신당 · 진보당 · 민주노동당) · 최종 후보 |
여론조사 | 후보 확정 전 여론조사 (가상대결) · 후보 확정 후 여론조사 (비정기) · 출구조사 |
변수 | 변수 (지역별 · 정당별 · 세대별) · TV 토론회 |
결과 | 개표 결과 (지역별 · 정당별 · 세대별) |
지역별 (수도권 · 강원도 · 충청권 · 호남권 · 대경권 · 동남권 · 제주도 · 재외선거) | |
정당별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힘 · 개혁신당 · 진보당 · 민주노동당) | |
기타 | 타임라인 · 이재명-김재연 단일화 ·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김문수-국민의힘 지도부 갈등) · 내란종식 원탁회의 ·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 반명 빅텐트 |
대한민국의 주요선거 |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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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 대통령 후보 | 대통령 후보 |
김문수 (승리캠프)[1] | 한덕수 (여러분의 캠프) |
1. 개요
2025년 제21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의힘 후보 경선 기간 중부터 거론되어온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후보간의 단일화 논의를 서술한 문서.2. 전개
2.1.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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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시 후보 적합도 (출처: 채널A)[2] |
이런 한덕수 대망론이 본격화되던 4월 7일, 한덕수는 한덕수 권한대행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 논란을 일으키며 한덕수 2차 탄핵론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탄핵이 한덕수에게 사퇴와 출마의 명분을 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이를 유보하였고,# 결국 사퇴 시기를 놓친 한덕수는[3] 국민의힘 입당을 통한 경선 참가가 불가능해졌다. 이로부터 국민의힘 경선 내내 한덕수와 최종 선출 후보 간 단일화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게 된다. 그 사이에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은 진행되어 4월 22일에 1차 컷오프, 4월 29일에 2차 컷오프(진출자: 한동훈, 김문수)가 이루어졌다.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의힘 경선이 진행되던 시기 한덕수가 국민의힘의 어느 후보와 단일화를 하더라도 후보 적합도가 우위에 있는 것으로 집계된 여론조사가 여럿 나왔다.
4월 30일, 국민의힘은 국무총리직을 사퇴하는 대로 착수할 수 있게 단일화 여론조사용 가상번호를 미리 받아둔 것으로 확인됐다. #
2.2. 2025년 5월 1주차
이후 한덕수는 5월 1일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서 사퇴한 이후, 5월 2일 제21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화하며 국민의힘 최종 후보와의 단일화를 예고했다. 단일화 룰에 대한 부분은 국민의힘 측에서 제시하는 안을 따를 것임을 밝혔다.5월 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김문수가 한동훈을 꺾고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김문수는 경선 후보자 시기부터 한덕수와의 단일화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자신이 대선 후보가 되면 한덕수와의 단일화를 진행할 것임을 예고했기 때문에, 김문수 당선 오피셜이 뜨기 무섭게 단일화가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김문수 선출 이후 한덕수가 전화를 걸어 10분 간 당선 축하 인사를 했으며, 한덕수 후보 캠프 측 인사인 이정현 여러분의 캠프 대변인은 "시간이 촉박하기에 빠른 시일 내에 접촉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 하지만 김문수 후보가 당 지도부를 만나 사무총장을 친단일화파인 현직 이양수 의원에서 장동혁 의원으로 교체하겠다는 인선안을 통보하면서 갈등의 조짐을 알렸다.
5월 4일, 국민의힘이 당 선거대책위원회 내에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하는 기구를 설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후보가 부처님오신날인 5월 5일에 조계사에서 열리는 봉축법요식에 참석하여 단일화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지만 김문수는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 #
2.3. 2025년 5월 2주차
2.3.1. 5월 5일
5월 5일, 두 후보가 조계사에서 만났다. 그러나 한덕수가 김문수에게 직접 "오늘 중으로 김문수 후보가 원하는 대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나자"고 3번 정도 제안한 것에 비해 김문수 측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는 잠시 조우해 서로 인사와 "곧 다시 만나자"는 덕담을 주고받았지만 그 외 발언은 없었다"고 보도자료를 내어 다시금 서로간의 온도차를 드러냈다. # 오후에 김문수 후보 캠프에서 비서실장을 맡은 김재원 전 최고위원이 보수 진영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김문수 후보 외에 한덕수 후보의 이름은 이번 대선의 투표용지에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이양수 총장은 언론 공지를 통해 "후보자의 전권을 인정하는 경우도, 후보의 말과 뜻이 당헌·당규를 뛰어넘는 경우도 없었다"며 "김 후보 측은 당헌·당규 위에 군림하려는 행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
오후 12시경, 장동혁 의원이 김문수로부터 사무총장에 내정된 지 사흘 만에 고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5월 5일, 리얼미터의 '단일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한덕수의 지지율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계사에서 일정이 겹쳤는데도 인사만 하고 넘어갈 만큼 단일화 진행이 미진하자 당내에서 김문수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권성동, 권영세 등의 중진들이 단일화 촉구 발언을 하거나 원내의원들이 의총을 요구하며 행동에 나서고 있다.# 김문수가 당을 탈취하려 든다#, 해당행위를 한다# 등 비난이 이어지고 후보 교체론까지 언급되고 있다. 당일 저녁에는 긴급 의원총회까지 소집되어 압박에 들어갔고, 김문수 측은 당까지 나서서 단일화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결국 5월 5일 국민의힘 긴급 의원총회에서 김문수의 조건을 일부 수용했으나, 이후 5월 10일에서 5월 11일 사이에 제6차 전당대회를 소집했다. 또한 비상대책위원회의도 열어 선대위 구성안을 의결했다. 갈등의 핵심인 단일화추진본부장에는 유상범 의원을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김문수가 자신의 동의 없이 사실상 멋대로 전당대회를 소집했다고 반발했다.#
2.3.2. 5월 6일
한덕수는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김문수 후보와의 단일화는 반드시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질 것"이라며, "단일화를 실패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큰 배신이고 배반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 그러면서 김문수를 향해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잘 판단할 거라 믿는다"며 단일화를 촉구했다. 반면 김문수는 당 지도부를 향해 입장문을 내고 "후보에 대한 적극 지원을 약속했으면서 후보를 배제한 채 일방적 당 운영을 강행하는 등 나를 사실상 당의 공식 대선후보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반발하였다. 아울러 8~9일 열리는 전국위원회와 10~11일 열리는 전당대회는 당헌·당규 개정을 위한 절차로 판단된다며, 당당하게 전국전국위와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이유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밝혀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문수의 입장문 발표 이후 이양수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전국위원회와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이유에 대해 한덕수 후보로 단일화될 경우를 대비해 실무적으로 준비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양수 총장은 "단일화 과정이 만일 생겨서 그것도 한 후보가 된다면 그럴 경우 전당대회 소집을 해놓지 않으면 단일화 후보를 뽑아놓고도 이 분이 우리 당의 대통령 후보가 안 돼서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며, "그래서 만에 하나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예상해 미연의 후보 등록을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 해서 5일 전인 어제(5일) 전당대회 소집을 기대해 의결을 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14시, 국민의힘에서 비공개 의원총회를 열었다. 의총 결과 권영세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두 지도부가 김문수를 만나러 김문수가 유세 중이던 대구광역시로 향하고[4], 나머지 의원들은 결과를 기다리며 밤샘 비상대기하기로 결정되었다.[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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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지도부는 제6차 전당대회보다 앞선 6일~7일에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선거 단일화 관련 전 당원투표를 실시하기로 했으나, 이 당원투표를 갑자기 설문조사로 바꾸었다. 박수민 원내대변인은 이에 대해 "당원 전체에게 단일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당원 전체 의견을 최종 점검하는 과정을 받기로 했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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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후보 캠프의 핵심 관계자는 "김 후보가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를 보이고 있다"며, "당 기득권으로부터 피해자 코스프레로 정당성을 확보하고, 조직을 해체하는 전형적인 좌파적 노선 투쟁"이라고[8] 강경하게 비판했다. #
권성동 원내대표와 김기현·박덕흠 등 중진 의원들은 밤 10시에 김문수의 봉천동 자택에 방문해 김문수를 설득할 방침이었다. # 그러나 이들은 김문수를 만나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서울행 열차에 김문수 후보가 탑승한 이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상태다.[9] 이후 집 앞 현장에서 권성동 원내대표는 내일 김문수-한덕수 회동에 대해 "만남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1. 후보는 내일 18시 한덕수 후보를 단독으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후보가 제안했다. 단일화와 관련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은 없어야 한다. ※ 장소는 18시에 공개 예정 2. 함께 경선에 참여했던 모든 후보들을 따로 만나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3. 당무우선권 발동 - 내일 실시 하겠다고 발표한 불필요한 여론조사는 당의 화합을 해치는 행위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 - 당 지도부는 더 이상 단일화에 개입하지 말고, 관련 업무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이 시각부터 단일화는 전적으로 대통령후보가 주도한다. - 당은 즉시 중앙선대위를 중심으로 대통령 후보를 보좌하여 선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5월 6일,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공식 입장문 中[10] |
2.3.3. 5월 7일
김문수 후보는 전 당원 대상 단일화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면서 "정당한 대통령 후보인 나를 강제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하였다.# MBN의 단독취재 결과 김문수는 여론조사를 거쳐 단일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 아닌, 한덕수 후보가 사퇴하는 방식의 단일화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당원 여론조사는 시간이 아주 급박하다. 당원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 운영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진행하겠다"며 당원 대상 여론조사를 5월 7일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에 김문수 측은 법원에 전국위원회와 전당대회 개최 중단 가처분을 신청했다. #
오후 4시 30분, 한덕수가 서울 여의도 대선 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을시 대선 본후보에 등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비슷한 시각 국민의힘 상임고문단은 단일화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오후 6시에 김문수와 한덕수가 서울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 한식당에서 단일화 관련 회동을 가졌다.#
김문수 측 김재원 비서실장이 "오늘 오후 5시에서 5시 반 사이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황우여 전 선관위원장을 찾아가 '김 후보와 한 후보의 회동은 결렬될 것이 명확하니, 오늘 저녁에 선관위를 다시 열고, 내일은 후보자 토론, 모레부터 여론조사를 실시해 후보를 정하는 절차를 진행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당이 원하는 대통령 선거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가슴이 찢어지는 마음으로 (이 사실을) 알린다"고 주장했다. # 이에 대해 황우여는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추가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선관위를 새로 꾸려서 해야 한다"고 했고, 호준석 전 선관위 대변인도 "현재 선관위 소집된 바 없고 저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부인했다.#
결국 오후 7시 15분경 회동은 다시 만나자는 약속조차 없이 결렬되었다.# 회동을 전후로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단일화 협상에 진척이 없을 시 11일 전까지 당이 나서서 강제로 단일화 절차에 돌입하는 안을 검토 중'임을 발표하고 # 김문수는 김문수대로 "이것이야말로 내란 쿠데타"라며 "지도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등 양측이 완전히 정면 충돌하는 모양새이다.#
단일화가 사실상 결렬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자 국민의힘은 오후 9시부터 국회에서 비상의원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권성동 원내대표는 단식 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했다. #
한편 김문수 측은 "단일화의 불씨를 이어가기 위해 한덕수에 8일 추가회동을 제안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 이에 한덕수 측은 "기존 일정을 조정해 내일 김 후보 만날 것"이라고 화답했다. #
당원 설문조사 결과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응답이 82.82%, 그 중 '선관위 후보등록 이전에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응답이 86.7%로 조사되었다. # 이에 따라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단일화 작업에 착수할 전망이다. 시기상 단일 후보 선출 경선이 유력한 제6차 전당대회 룰은 당규대로 당원 50%·국민 50%가 적용된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밤 9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오늘 선거관리위원회와 비대위를 열어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과 여론조사 실시를 의결할 생각이다. 전화면접으로 당원 50%·국민 여론조사 50%를 하려고 한다"고 밝히며 결국 단일화를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당헌 제74조의2[13]에 따라 무소속 한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후보 교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지도부의 설명이다. # 국민의힘 지도부는 또한 11시 심야 긴급 비대위에서 "내일 토론이 성사되지 않아도 단일화 여론조사를 실시한다"고 선언해 무리수를 두는 한이 있어도 11일까지 단일화를 완수할 의지를 천명하였다. # 이를 방증하듯 선관위원장직에서 단일화 추진에 미온적이었던 황우여가 사퇴하고 단일화파인 이양수 사무총장을 위촉한다고 밝혔다.# 지도부의 이와 같은 결정에 의총에서 김기현 의원이 "무리한 방식으로 당헌·당규에 명시되지 않은 것을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나경원 의원 또한 "단일화를 강요하면 안 된다. 한 후보가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아) 사퇴하든 말든, 우리를 지지하고 연대하게 해달라고 (설득)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주호영 의원은 "김문수 후보가 가처분을 신청한다면 당이 자칫 후보를 내지 못할 수 있다."고 했으며 윤상현 의원은 "절차적 정당 민주주의에 위배되며, 당이 법적공방으로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등 강제 단일화에 대한 우려가 터져나왔다.
이에 김문수는 즉각 페이스북에 지난 5월 3일 국민의힘 홈페이지에 게시된 제21대 대통령후보자 선거 당선인 공고를 올리며[14] 지도부의 뜻에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임을 피력하였다. 김 후보 측 관계자 역시 "김 후보가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토론 등) 행위를 즉시 중지하라고 지시할 것"이라며 "토론회도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
의원총회 이후 신동욱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통해 단일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내일 토론회를 진행하고 모레부터 여론조사를 실시해 김문수로든 한덕수로든 단일 후보를 선출한다는 방침이다. 후보 둘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한다면 토론회는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며, 토론을 진행하지 않을 뿐 단일화에 쓰일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는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2.3.4. 5월 8일
국민의힘 당헌 74조 (후보자의 지위)
대통령후보자는 선출된 날로부터 대통령선거일까지 선거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
대통령후보자는 선출된 날로부터 대통령선거일까지 선거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
김문수 후보가 오전 8시 30분 기자회견을 예고했으나, 20분 가량 늦은 8시 50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15] 기자회견에서 김문수는 당헌 74조에 따라 대통령 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하여 당 지도부의 선거운동 개입을 멈출 것을 요구하였으며, 당 지도부가 요구한 후보 등록 기한 11일 이전의 단일화를 거부하였다.# 그 대신 김문수와 한덕수 후보가 각각 1주일간 선거 운동을 진행하고 14일 TV 토론, 15~16일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당 지도부의 단일화 압박은 위법행위이며 당무우선권을 통해 이를 멈추겠다는 뜻을 전했다.
한덕수 측은 이에 대해 11일까지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는 건 단일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라며 일축했다. # 이정현 여러분의 캠프 대변인은 "(오전 긴급 기자회견은) 단일화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며, "당원들의 86.7%가 후보 등록 이전에 단일화를 해야 한다라고 하는 여론이 이미 공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주에는 되는 게 왜 오늘은 안 되는지 묻고 싶다"라고 지적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당내 설문조사 결과를 명분으로 김문수의 긴급 기자회견을 "당원들의 명령을 무시한 채 그 알량한 대통령 후보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 비판하며 "우리당 정치인인지 의심된다", "정말 한심한 모습"이라며 호통을 치는 어조로 강경 발언을 이어나갔다.# #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 기자회견과 무관하게 여론조사, TV 토론 일정을 잡으며 단일화를 그대로 강행하겠다 밝혔으며 후보 교체까지 시사하며 초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김문수는 위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언급할 가치도 없다"면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김문수 후보를 향해 "11일까지 (단일화를) 안 하면 후보를 포기하겠다는 사람과 11일부터 단일화 절차를 밟겠다는 얘기는 거의 뭐 이재명 식(아니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
국민의힘은 이양수를 국민의힘 새 중앙당선거관리위원장으로 위촉했다. 김문수는 이양수를 사무총장직에서 경질시키려 했었기에 이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문수 후보의 측근인 차명진 전 의원이 한덕수 후보의 일정 문서를 공개했다. 거기서 일정 중에 하나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촬영'에 아래에 '당 홍보국'이 담당한다고 적힌 내용이 문제가 되었는데, 김재원 후보 비서실장은 "김문수 후보와 같은 시간과 바로 옆 장소, 같은 홍보 기획사에서 촬영하는 것"이라며 "이는 공직선거법 제88조[16]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 "한덕수 측의 일정 문서"[17]라며, "당일 동시간대에 촬영이 진행되었으며, 당 홍보국은 김문수 후보의 촬영을 도왔다"라고 해명했다. #
한덕수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 방문 이후 기자회견에서 김문수를 향해 "대통령 선거 출마에 대한 이유를 밝혔음에도, 나를 향해 '왜 대통령 후보로 나왔냐'고 하는 건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것 아니냐"고 저격했다. # 또한 전날 회담에서 김문수가 단일화 관련 어떤 대안도 없이 당을 비판하는 말을 많이 했다며, 김문수가 경선 당시 후보가 되면 즉각 단일화 논의를 시작하겠다 했던 약속을 지키라고 이야기하겠다 밝혔다.# 반면 김문수 측은 전날 회담 직후 나름대로 생각하는 단일화 방안을 말했으나 한덕수 측이 모든 것을 당에 맡기겠다고 해서 의미 있는 진척이 없었다고 말했던 바 있다.#
김문수는 관훈토론회에서 "한덕수 그분이 동네 구의원 선거라도 한번 해봤나", "반기문 총장 어떻게 됐나. 훌륭한 유엔 사무총장이었지만 (2017년 대선) 선거판에 들어와서 며칠 만에 그만뒀다"면서 "이 판은 난장판이다. 이 판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분이 이 판에 와서 아주 무도한 이재명 후보 상대로 이길 보장이 있다면 제가 업고라도 모셔오겠다"라고 했다. # 그러면서 당 지도부가 단일화를 강행하는 것에 대해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강도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김 후보는 "경선 과정 이전에 미리 짜인 본인들의 각본에 의한, 한덕수 후보 추대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단일화도 아니다. (그간의) 경선과 참여한 모든 국민, 당원, 후보들은 뭐가 되나"라며 "이것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문수는 관훈토론회 종료 이후 기자회견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한 권성동 원내대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 말고 이재명 후보와 싸우는 단식을 하라"며 권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
8일 국민의힘은 7일 예고했던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토론회가 결국 무산됐다면서 김문수 후보가 불참 의사를 밝혔다고 알렸다. # 토론회 무산 소식이 알려지자 한덕수 후보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김문수 후보를 향해 "11일까지 단일화해야 기호 2번을 사수한다"며 "약속을 지켜라"고 촉구했다. #
김문수 후보가 국민의힘 당사가 위치한 서울 영등포구를 관할하는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자신의 대선 후보자 지위를 인정해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을 신청했다. # 한편 같은 날에 전당대회 개최 가처분 신청 심문기일도 열렸다.
- 김 후보 측은 "전대와 전국위 개최 목적이 형식적으로는 김 후보와 무소속 한덕수 예비후보와의 단일화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당 지도부에서 김 후보의 지위를 박탈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당이 전대 소집을 공고하는 과정에서 대의원 요건 등 절차를 지키지 않았고, 전국위에 상정된 안건 역시 대선 후보 교체와 관련된 것으로, 당헌·당규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 반면 국민의힘 측은 "경선 초기 때부터 김 후보 측은 한 후보와 적극적으로 단일화하겠다고 수차례 말했고, 이에 대한 지지를 얻어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며, "그렇다면 즉각 단일화 절차를 진행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 지도부가 '한 후보로 단일화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고, 이는 신청인 측의 주관적인 의심"이라며 "절차 역시 당헌과 당규에 따라 적법했다"고 주장했다.
김문수 캠프 관계자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내일 한덕수 후보와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를 공직선거법 제230조 위반으로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김문수-한덕수 후보가 오후 4시 30분에 국회 사랑재에서 2차 단일화 논의 회동을 가졌다. # 일반적인 회동과는 다르게 외부에서 진행되어 이례적으로 생중계로 회동을 진행했다.
- 한덕수는 논의에서 "단일화가 잘 된다면 국민의힘에 입당하겠다. 우리가 협상을 미룰 여유가 있나"며, "단일화는 국민의 명령이므로 연기하면 안 된다. 당장 오늘, 내일에 결판을 내자. 모든 방법은 다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할 것이다"라고 단일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 김문수는 한덕수를 향해 "출마를 결심했다면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단일화를 늘 생각했다. 단일화를 한 번도 안한다고 한 적이 없다. 단일화가 안되면 후보 등록을 안한다는 말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덕수를 향해 단일화 전에 국민의힘에 입당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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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회동 결렬 후 회동 장소를 떠나는 김문수와 한덕수 |
국민의힘은 예정대로 여론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또한 11일 오전 11시에 전국위원회를 열기로 확정했고, 지속적으로 김문수 후보가 버텨 단일화가 결렬될 시 아예 대선 후보 등록을 하지 않는 방향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덕수 후보는 11일까지 단일화가 되지 않는다면 본선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기에, 이대로 간다면 양측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
2.3.5. 5월 9일
3. 예상 효과: 확장성이 있는가?
보수 결집 외의 단일화 명분 중 하나는 '한덕수 후보가 호남(전북 전주)·관료 출신이니 국민의힘 약세 지역과 중도층 표심 흡수에 강점이 있지 않겠느냐'였는데, 정작 호남 지역과 중도층에서 한덕수의 지지율은 그리 높지 않게 나오고 있다. 한덕수의 지지율은 주로 보수층,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높게 나오고 있는데,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김문수와 한덕수가 "지지층을 나눠 갖는 관계"라면서 확장성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실제로 경쟁력의 척도인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 김문수든 한덕수든 대부분 비슷한 격차로 이재명에게 밀리고 있다는 것.하지만 "한덕수든 김문수든 별 차이가 없다"고 만은 할 수 없는 게 바로 '역선택' 문제인데, 뉴스1에서도 '역선택의 함정'이라고 지적했듯이 진보 진영에서 김문수 선호도가 월등히 높게 나온 것이 반영된 것임을 감안하면 한덕수 지지율이 실제로는 더 높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자는 김문수 31%·한덕수 65% 지지였던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김문수 45%·한덕수 19%로, 조국혁신당 지지자는 김문수 67%·한덕수 14%로 나왔다.#
한덕수의 대선 출마가 확실시된 후 처음으로 진행된 5월 1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경향이 확인된다. 한덕수가 이재명/이준석과의 3자대결 가정 시 김문수에 비해 약 8% 포인트 높은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나, 정작 이재명의 지지율에는 거의 변화를 주지 못하고 일부 무당층을 흡수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호남권에서의 지지율 역시 20%를 밑돌고 있다. # 다만 해당 조사의 전체 유권자 대상 ‘단일 후보 적합도 조사’ 여론조사에서 한덕수 30%, 김문수 21.9%로 한덕수 우위였는데, 이에 대해 리얼미터 측은 "한덕수 후보가 중도 확장성을 김문수 후보보다 좀 더 갖췄다는 평가에 따라 단일화 여론이 한 후보 쪽으로 좀 더 앞서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
반면 MBC와 코리아리서치의 5월 4일 여론조사에서는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했을 때 오히려 한덕수가 김문수보다 밀리는 결과까지 나왔다. # 중앙일보와 한국갤럽이 5월 3~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3자 대결 시 김문수 33%, 한덕수 36%로 나왔다.# 김문수 측으로서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직이 없는 한덕수와의 여론 차이를 좁힐 수 있다는 판단도 가능할 상황이다.
일단 김문수 후보가 새미래민주당 측까지 빅텐트에 포함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상, 한덕수와의 단일화가 이점이 없지는 않다. 반명 빅텐트 문서에 서술되어 있듯이 새미래측은 한덕수와의 단일화 의지는 밝힌 상황이지만 국민의힘에 변화를 요구하는 등 국민의힘과 직접적인 단일화는 꺼리고 있다. 물론 이 방안도 새미래측의 이낙연의 22대 총선 광산구 을 득표율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호남에서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필승 전략까지는 아니고 잘해봐야 없는 것 보다는 나은 플러스 알파 정도의 효과가 예상되지만 그 정도라도 해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판세이다.
두 선택지 모두 결국에 질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어차피 지니까 똑같다'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대선 끝난다고 해서 정치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단순 승패 결과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이기고 지냐도 굉장히 중요하다. 19대 대선에서 17%차로 참패한 홍준표와 20대 대선에서 1% 미만의 득표차로 석패한 이재명의 선거후 위세가 어떻게 달랐는지 비교해보면 알기 쉽다. 그 외에도 작은 차이로 패배한 김영삼, 김대중, 이회창, 문재인과 큰 차이로 패배한 정동영만 봐도 답이 나온다. 당 전체의 입장에서도, 정권을 빼앗길 때 빼앗기더라도 가능한 한 아슬아슬하게 져야 보수 진영이 차기 정권을 견제할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현실적으로 보수 진영이 빅텐트를 통해 노릴 수 있는 이점도 여기에 있다.
또한 반명 빅텐트 문서에 서술되었듯이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등 구 민주계 인사들도 한덕수 지지 의사를 밝혔는데, 물론 지나간 인물들이기는 하지만 일부 표심이라도 끌어오는 데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김상욱, 권오을[18], 윤여준, 이석연, 이인기, 조갑제, 정규재[19] 등 보수층 인사까지 포섭하고 있는 상황이다.[20]
문제는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는 어디까지나 양측의 (반)자발적인 합의를 통해 단일 후보가 선출되었을 때에나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단일화는 당원들과 당 지도부가 대놓고 한덕수로의 단일화를 김문수에게 강요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어 김문수 본인부터 관계자나 지지자들이 단체행동까지 나서며 반발하고 있는데 #, 이런 상황에서 어거지로 당 지도부가 한덕수 단일화를 성사시킨다 해도 김문수나 그 지지층이 한덕수를 지지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 비록 김문수가 단일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당선되기는 했으나, 아래 김문수 문단에서 보듯 그것이 김문수에 표를 준 모두가 한덕수로의 단일화에 찬성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석패한 이낙연이 마지막까지 이재명을 사실상 비토하며 표를 깎아먹은 사례가 재현될 수도 있다. 태생이 호남-민주당 출신으로 적어도 20대 대선 이전까지는 탈당 한 번 안 했던 이낙연조차 이러했는데, 김문수는 노동운동가에 민중당 출신 전향자라는 점은 둘째치더라도 민자당 입당 이후에도 탈당 이력이 있으며[21] 오랫동안 정치권 외곽으로 밀려나 있던 원외 인사로서 잃을 게 없는 입장이라 수틀리면 아예 국민의힘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지어 김문수는 단일화도 단일화였지만 사전투표제도 폐지, 계엄 옹호, 부정선거론 등 강성 발언을 내세워 표심을 끌어모아 당선되었는데,[22] 이는 '중도 확장성'을 무기로 내세운 한덕수 측에서 쉽게 수용하기 어렵고,[23] 이 경우 김문수 지지층은 투표를 보이콧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4. 각 후보의 입장
4.1. 김문수
김문수는 대선 후보 선출 이후 한덕수와의 단일화와 관련하여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오늘 후보가 됐는데 바로 단일화를 논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답하였고, 그 외에 "25일까지 단일화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등[24] 경선 후보 시절에 적극적으로 단일화를 논하던 것과는 다소 달라진 태도로 한덕수 측과의 온도 차를 보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김문수가 순순히 국민의힘 대선 후보 자리를 한덕수에게 내주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만일 실제로 단일화가 늦어지게 될 경우 불리한 쪽은 전적으로 무소속인 한덕수 측이기 때문에 김문수 측에서 시간 끌기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도 점쳐지는 편이다. 앞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김문수는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서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협상에 나섰으나 끝내 결렬된 전례가 있다.당 지도부는 한덕수와의 단일화를 선관위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5월 11일까지 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였고, 김문수 후보 측은 여론조사 등의 방법을 통한 후보 단일화 방식에 반대하면서 "한덕수 예비후보에 대한 예우를 최대한 갖춰 후보 자진 사퇴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단일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
참고로 김문수 캠프 내에서도 단일화 주도권에 대한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박수영 의원은 애초부터 한덕수를 밀었으며 여전히 시급히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김재원 캠프비서실장은 김문수가 단일화 후보가 돼야 한다면서 한덕수는 투표지에 이름도 못 올릴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캠프 내에서도 알력이 있는 상태이다. 실제로 김문수 캠프 내부의 단일화파인 박수영 의원은 "김 후보 측은 자신들이 피해자고 당내 기득권이 우리를 탄압한다. '쌍권'(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과 한덕수 전 총리는 '딥 스테이트'(비공식 권력) 하수인이란 식의 언설과 선동을 통해 자신들이 후보 중심의 정의로운 당권 투쟁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사실 김문수는 단일화를 공언하기는 했지만 그게 한덕수로의 단일화라고 한 적은 없으며, 위에서도 보듯이 '합당한 방법으로'라는 단서를 달았다. 단일화를 한다 해도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자당에서 경선을 통해 당원들과 국민들의 지지로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기본 상식임을 생각하면 당내에서 5월 11일 이전까지 단일화를 종용하는 것은[25] 김문수 입장에선 오히려 해당행위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문제다. 이는 당헌 위반 소지까지 안고 있다.[26] 과거 후보 단일화 협의회나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의 후보 교체론처럼 당내 비주류가 단일화나 경선에서 뽑힌 후보를 교체하자 주장한 적은 있어도, 당 지도부 차원에서 경선으로 뽑인 후보에 대한 교체나 단일화를 추진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다른 정당의 대선후보들은 모두 경선이라는 경쟁을 거쳐 선발되는데, 한덕수는 전직 국무총리라는 프리미엄을 내세우며 이런 경쟁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경선 우승자와 단일화 논의를 하겠다는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이것은 한덕수 지지층을 제외하면 김문수 측뿐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정치 세력들에게 있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89%라는 공전절후의 표 독식을 이뤄낸 이재명이든, 개혁신당의 단독 후보로 출마한 이준석이든[27] 형식적으로라도 당 내의 지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정통성을 확보했다. 지난 대선에서의 이낙연 또한 전직 국무총리라고 프리미엄을 내세우기는커녕 일단은 경선에 입후보하여 경쟁을 거쳤다.[28] 타 정당에서 김문수를 옹호하고 여론조사에서 김문수가 한덕수에 대해 의외로 선전하는 것은 역선택의 문제도 있지만, 한덕수의 무임승차가 정당정치의 원리에 비추어 대단히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선례 자체를 용납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김문수는 2025년 2월부터 4월까지 진행된 대부분의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보수 진영 후보 중 1위였다. 4월경 한덕수 대망론이 부상하여 3~4자 가상대결에 한덕수가 포함된 시점부터의 가상 득표율이 한덕수에게 밀린 것이다. 즉, 후자를 근거로 한덕수를 우선하는 당 지도부와 달리 전자를 근거로 김문수 입장에서는 명백히 한덕수가 갑툭튀한 외부 세력인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김문수가 경선에서 한동훈을 크게 앞선 것은 한덕수와의 단일화에 대한 당원들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게 승리 당시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김덕수' 언급 등 경선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단일화를 피력한 후보였던 것은 사실이고, 김문수 개인이 아니라 국민의힘을 우선하는 당원의 경우 가상 득표율이 더 높은 한덕수로의 단일화로 이해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한덕수로의 단일화'를 암시하지 않았다기에는 그럼 다른 경선 후보들인 한동훈, 홍준표, 안철수가 '한덕수가 자기 밑으로 들어오는 것'에도 소극적이었겠냐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김문수는 반기문의 사례를 들며 반박하는데, 지금의 한덕수 지지율이 과연 공정하게 집계된 지지율이냐는 것이다.# 즉 반기문이 그랬듯 한덕수의 지지율 역시 노출되지 않아 거품이 낀 수치이며, 이미 3차에 걸친 경선 토론을 통해 난타전을 주고받으며 장점과 단점이 모두 노출된 자신과, 그동안 대선 출마 의사 한 번 제대로 안 밝히다가 이제 출마 선언 1주일 남짓 된, 심지어 무소속 후보등록조차 안 한 한덕수의 지지율을 단시간 내에, 그것도 여론조사로 평가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김문수의 주장을 긍정해보자면 당 지도부는 5월 11일에 맞춰 4~5일 간의 선거운동+토론과 1~2일의 선출기간 정도를 제시했다면 김문수 측의 반발을 어느정도 잠재울 수도 있었을 것인데, 아래에서 소개하듯 5월 3일에 곧바로 당 지도부가 5월 4일 토론, 5월 5일 여론조사라는 빡빡한 일정을 요구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당 지도부 입장을 긍정해보자면 선거공보물 인쇄 시작 시점인 5월 7일까지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지도부는 판단했을 것이다.
5월 3일, 김문수 후보는 한덕수뿐만 아니라 "이낙연 전 총리,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29]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빅텐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재차 이어진 한덕수와의 단일화를 좀 빨리 해야 하지 않냐는 질문에는 여기가 한덕수 당이냐고 받아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날 국민의힘에서는 단일화를 두고 갈등을 보였는데, 익명을 요구한 한 중진 의원은 한덕수와 단일화하겠다는 말이 없었으면 김문수는 4강 안에 들기도 쉽지 않았을 만큼 단일화의 불발은 온 당원을 대상으로 한 사기극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사람이 단일화 협상의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건 상식", "김 후보에게 무조건적인 단일화를 압박해선 안 된다"고 했다. #
5월 4일 오후 2시경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양수 국민의힘 사무총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김문수 캠프를 찾아 한덕수와의 단일화 논의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김문수 후보 측은 "선대위 구성이 우선이다. 단일화의 시기와 방식을 논의해 보겠다"는 입장을 완고히 밝히며 조속한 단일화를 촉구하는 국민의힘 지도부 및 한덕수 측의 입장과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속도 조절에 나섰다.
5월 4일 이루어진 국민의힘 지도부와 김문수 캠프의 회동에서 한덕수와의 단일화 회동이나 방식 등에 대해선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선거 공보물 인쇄와 같은 대선 준비 일정을 고려했을 때 2025년 5월 7일까지는 한덕수와의 단일화가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김문수 캠프 측은 전반적으로 이러한 국민의힘 지도부 및 한덕수 캠프 측의 입장과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5월 5일, 김문수 캠프 측은 단일화 대상은 한덕수 후보뿐만 아니라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까지 폭넓게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국민의힘의 지휘권자는 김문수고, 단일화 협상 역시 김문수가 주도할 것이라면서 한덕수는 국민의힘 당비 한 번 낸 적 없는 분이라며 주도권 싸움에서는 밀리지 않겠다는 모습을 내비쳤다. #
5월 6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제6차 전당대회 공고가 올라오자, 김재원 후보 비서실장은 "당이 날짜도 특정하지 않고 밤늦게 전국위원회와 전당대회 소집 공고를 띄운 건 결국 나를 후보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 아닌가라고 의구심과 걱정을 하셨다"면서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30] 게다가 현재 국힘 지도부는 김문수에 대해 후보 임명장도 최고회의 시 백드롭 설치도 거부하고 오히려 한덕수와 홍보물을 제작하고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김문수 캠프 측의 박수영 의원은 “마지막까지 후보님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며 김문수를 향해 조속한 단일화를 재차 촉구하면서 동료 의원들에게 사과를 했다. 박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김문수 후보님은 진실한 분이라 단일화 바로 하실 분이니 도와달라고 부탁드려 많은 의원들이 김 후보를 지지했는데, 적어도 어제까지는 제 판단이 틀린 상태라 사죄의 말씀을 올린 것”이라고 했다. #
한편 같은 날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이 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 지도부는 5월 3일 김문수가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이 되자마자 6시경 김문수를 찾아간 상견례 자리에서 대놓고 단일화 이야기부터 내놓았으며, 당 공식 후보방은 페트병이 나뒹굴고 백드롭에 1차 경선 8명의 후보 사진이 그대로 붙어있는 등 애초부터 김문수를 공식 후보로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심지어 지도부가 내놓은 단일화 일정은 5월 4일 토론회, 5월 5일 여론조사를 통한 5월 5~6일 사이 후보 확정으로, 외부 단일화라기보다는 당내 4차경선에 가까웠다.# 게다가 권성동 원내대표가 5월 4일 첫 선대위 회의에서 자신보다 9살이나 많고 정계에 13년이나 더 일찍 입문한 선배이며 최종 경선에서 승리한 대선 후보 김문수에게 "일로 앉아"라며 반말을 하는 모습까지 여과없이 나타났다.## 즉, 단일화에 대한 입장과 별개로 김문수의 감정이 있는 대로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5월 6일 밤, 김문수는 "내일 오후 6시와 한덕수와 단독 회동한다. 단일화에 불필요한 논쟁 없어야 한다.", "내일 여론조사, 즉각 중단해야 한다. 당 화합 해치는 행위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서 지닌 당무우선권을 발동하여 이 시간부터 단일화는 후보가 주도한다며 한덕수와 직접 만나 당의 개입이 없이 후보끼리 의견을 조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5월 7일 김문수 캠프측은 단일화 파열음이 나는 건 김문수를 후보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당 지도부 책임이 크다고 쏘아붙였다.#
5월 7일 국민의힘 책임당원 설문조사 결과 '단일화를 해야한다'는 응답이 82.82%, 그 중 '선관위 후보등록 이전에 단일화를 해야한다'는 응답이 85.7%로 나왔다.# 이에 밤 9시 국민의힘 지도부는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선거관리위원회와 비대위를 열어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과 여론조사 실시를 의결할 생각이다. 전화면접으로 당원 50%·국민 여론조사 50%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5월 8일 김문수 후보가 토론회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토론회가 결국 무산됐다. #
4.2. 한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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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한덕수 대망론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직을 사퇴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지만, 동시에 준비 기간 없이 출마를 강행한 탓에 뚜렷한 지지 세력도, 충분한 자금도 없는 상황이다. 한덕수가 김문수보다 앞서는 건 지속적인 여론조사로 확인되는 더 높은 지지율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상대로 한 본선 경쟁력 뿐이다. 단일화에 있어서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됨으로써 당무 우선권을 지니게 된 김문수 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출마에 앞서 정치권에서는 한덕수가 무소속 출마한 후에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 해야한다는 의견들이 많이 있었다. 보수 논객 전원책은 '한덕수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무소속 출마 후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었고[31] 김문수의 스승이자 전 여의도연구원 원장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도 "한 전 총리가 여당에 입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빅 텐트를 치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며[32] 정대철 헌정회장도 한덕수가 국민의힘 입당이 아닌 무소속 출마 후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33]
아쉬운 것은 한덕수 측일 가능성이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는 완주했을 경우 무소속 후보로서 금전적인 문제와 정치적인 책임 문제에서 한덕수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대선은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재벌이 아닌 이상 개인의 자금으로 선거 운동을 진행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이재명 양강 후보는 400억 원대 비용을 지출했는데, 한덕수의 자산은 2025년 기준으로 80억 원대이며 예금액은 50억 원대이다.# 지난 대선을 거의 완주했던 안철수가 70억 원 수준으로 지출하긴 했고 제3후보로 출마하는 수준이라면 이 정도로 갈음할 수도 있겠지만, 한덕수가 보수 단일후보로 출마한다면 당연히 양강 수준의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15% 이상 득표한다면 선거비용 전액을 국가에서 보전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정당 차원의 모금이 불가한 무소속의 경우 후원금 법정 한도인 약 29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그 전까지 전 재산과 거액의 대출로 충당해야 한다. 또한 그 정도의 득표율로 표를 갈라먹는다면 그게 이재명-김문수 간 표차보다 클 경우 그야말로 20대 대선에서 심상정이 받았던 비판보다 더욱 강한 책임을 물으려고 할 것이다.
물론 두 후보의 동상이몽 속에 단일화 협상이 결렬되어 각각 따로 대선 후보로 나올 경우, 본인의 당선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는 것은 김문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김문수 측이 마냥 유리한 상황도 아니다. 단일화 실패 시 과거 이회창-이인제 사례와 같은 보수 공멸의 결과의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단일화 룰을 어떻게 도출하냐에 따라 양 후보간의 유불리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5월 7일 한덕수 후보는 김문수 후보와 단일화 회동을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선 본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라는 공식입장을 내놨다.한덕수, 단일화 기한 11일 못 박았다…무산시 불출마(종합2보) 이어 "저는 이미 단일화 방식에 대한 모든 결정을 국민의힘에 일임했다."[34], "결정하시고, 바로 실행하시면 된다. 저에게 물으실 것도 없다."라고 말하며 김문수와의 단일화 및 앞으로 있을 대선에 대해 굉장히 소극적으로 변한 입장을 표명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김문수에 비해 무소속 후보인 한덕수는 여러 면에서 불리한 조건이 많아 한덕수 측에서 먼저 양보를 할 것이라는 예상은 있긴 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되면 좋고 아님 말고식의 발언을 회동 이후도 아닌, 회동 전 기자회견에서 발표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무임승차 하려다 돈 때문에 대선을 포기하는 것이냐는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4.3. 양 측의 유불리
4.3.1. 김문수 측이 유리한 점
사실 애초부터 한덕수가 국민의힘 경선이 다 끝나고 단일화를 한다는 구상은 김문수 후보가 버티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경선이 끝나고 단일화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으며, 당 경선에 참여하면 그 것은 더 이상 단일화가 아니기도 하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나 18대 대선의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도 당연히 정몽준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안철수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위 한덕수 문단에서 서술됐듯이 정치권 다수 인사들이 한덕수가 무소속으로 나와서 이후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하는 것이 세력을 키우는데 더 좋다는 의견들이 있었다.어쨌든 상기 언급했듯 단일화에 시간이 끌리면 끌릴수록 한덕수 측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한덕수가 문제없이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진행하려면 국민의힘 선거공보물 인쇄 시작 시점인 5월 7일까지 단일화 협상에 성공해 국민의힘 소속 후보가 되어야 하며, 아무리 늦어도 후보 등록 마감 시각인 5월 11일 17시 59분까지는 단일화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이 시간이 넘을 때까지 단일화에 실패하면 한덕수는 21대 대선에서 절대 기호 2번을 달 수 없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온갖 원외정당 후보들보다도 낮은 최하 순위에 준하는 기호를 받고 선거 운동을 해야 한다. 그나마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이회창처럼 기호가 낮아도 여론조사만 높으면 TV 토론회에는 나올 수 있다.
반면 김문수 측은 대선 투표용지 인쇄 시작 전날인 5월 24일까지 단일화에 성공하면 선거에 크게 지장이 없다. 인쇄 전에 사퇴한 후보는 '사퇴'라는 표시가 남은 채로 인쇄되기 때문에 투표일에 선거권자는 해당 후보가 사퇴한 후보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퇴 글씨 위에다 표를 찍는 무효표가 매 선거마다 없진 않아 24일을 넘기면 괜한 무효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김문수 입장에서도 부담이 아예 없지는 않다.[35]
한덕수 입장에서 악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당선을 목표로 하는 대권주자라면 무소속 + 낮은 기호 순번도 충분히 부담스러운 페널티지만 막대한 선거 비용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덕수보다 훨씬 큰 대망론을 업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했던 반기문이 끝내 출마를 포기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귀국 후 보름 남짓 동안 최소 2억 원이 들어간 막대한 선거 비용 때문이었다.[36] # 17대 대선 당시 무소속으로 완주한 이회창은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3개월 만에 160억 원이 넘는 빚을 졌다.[37] # 그나마 이회창은 선거비용을 보전할 수 있는 15% 득표율을 간신히 넘겨서 빚쟁이가 되지는 않았다.
한덕수는 2025년 3월 기준, 재산 87억 39만 원을 보유한 자산가지만, 대통령 선거운동으로 발생하는 선거 비용은 순수하게 현금성 자산인 만큼 2012년 당시, 재산 2조 원, 예금액으로만 264억 원을 신고한 정몽준 전 의원 정도가 아닌 이상 한덕수 후보를 포함한 대다수의 정치인들에게는 큰 부담이다.[38] 앞선 이회창 사례에서 보듯, 수백억 원의 채무를 떠안아야 하는데 심지어 17대 대선보다 물가가 많이 올라 최소 100억, 지난 대선처럼 양강 구도로 간다면 상술했듯 400억 내외의 자금을 사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문수 측은 100만 명에 가까운 국민의힘 책임당원이 지불한 당비와 대선 캠프에서 모금한 선거 자금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담이 덜하다. 물론 김문수도 경선 기간 동안 약 3억 정도의 비용[39]을 본인의 자산으로 부담했지만, 후보로 뽑힌 이상 이후의 비용은 당비로 나가기 때문에 추가적인 부담은 덜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3억 원을 사비로 쏟아부은 이상 이걸 돌려받을 수는 없으므로 이게 아쉬워서라도 단일화를 주저할 수 있다.[40] 이에 대해 홍준표는 쌍권과 친윤 지도부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단일화 등이 이뤄질 경우엔 김문수와 자신을 비롯한 모든 경선 후보들이 선거 과정에서 낸 기탁금을 당이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른 경선주자들 역시 단일화에 적극적이었던 나경원까지도 김문수를 옹호하고 있다. 물론 기탁금을 내야하긴 하지만 동시에 '정치후원금 제도'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기도 하다. 이번 경선에서 한동훈 후보는 29억을 11시간 만에 모았다고 한다.
만약 한덕수로 단일화 될 경우 후폭풍도 큰게 이미 국민의 힘 경선서 김문수가 한덕수 출마시 단일화 하겠다고 강력 어필하여 경선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3차에 걸친 경선을 통해 선정된 입장이다. 그런데 경선도 참여하지 않은 한덕수가 쌍권이 김문수를 축출하고 국민의 힘 후보로 단일화 후보로 나올 경우 절차도 없이 국민의힘 지도부에 의해 옹립되어 후보가 되었기에 민주주의적 절차가 결여되어 야당의 선거 공격 거리가 될게 분명하고 친윤이 아닌 중도보수들도 정당성이 없다며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한덕수가 무소속 후보라는 점도 선거 비용에 대한 부담을 크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한덕수 입장에서는 후보자 등록 이후로나마 김문수가 단일화를 해준다 해도 선거 비용 대납을 조건으로 단일화를 하면 공직선거법 제232조(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 위반이 되기 때문에 그때까지 쏟아부었던 3억 원의 기탁금 + 막대한 선거 비용을 절대 돌려받을 수 없다.[41][42]
정치권 대망론을 업고 나오는 후보의 공통점은 대망론이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지지율이 가장 높고 막상 단일화에 근접했을 때가 저점을 찍는다는 것이다. 이는 2002년 정몽준, 2012년 안철수, 2017년 반기문이 모두 겪은 공통사항이기도 하다. 언론에서 단독으로 출마해도 경쟁력이 있다고 불을 지펴서 대선에 나오고, 막상 단일화를 하려고 하니까 대망론으로 쌓여있던 지지도가 이미 기성 양대 정당 주요 후보 측으로 죄다 옮겨간 것이다.[43] 김문수는 국민의힘 내 자기 계파 당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할 수 있지만, 한덕수는 여론조사로만 집계되는 연성 지지자들을 동원할 수도 없어 단일화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기 힘들다.
4.3.2. 한덕수 측이 유리한 점
여론조사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오고 국민의힘 내의 지지 세력이 김문수보다 더 많다는 장점 딱 하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위에서 서술됐듯이 김문수 측에서 여론조사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장점이 아니게 된다. 추가로 김문수와 달리 새미래민주당이나 손학규, 정대철 등 구민주계 인사들이 지지 의사를 밝힌 점도 장점이 될 수 있지만 큰 영향력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그러나 김문수 후보 측도 마냥 버티기로만 일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직선거법상 대선후보 등록의 주체는 후보 본인이 아니라 당이기 때문. 즉, 이 사태가 극한의 치킨게임으로 흐른다면 이른바 옥새런이라 불리는 당대표(현재는 권영세 비대위원장)의 당무 거부로 김문수가 국민의힘 후보로 등록하지 못하게 될 수가 있다.# 현재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11일까지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사퇴를 공언한 상황이라 최악의 경우 '기호 2번'이 사라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론 정권 획득이 목적인 공당, 그것도 원내 2당이 다른 선거도 아니고 대선후보를 배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엄청난 후폭풍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18대 대선의 박근혜조차 가보지 못한 여론조사 과반수까지 차지하는 이재명 후보가 재판 연기로 사실상 사법리스크까지 해소된 상황에서, 국힘 대선후보 지위는 차기 대통령으로써의 가치는 거의 없으며 당무우선권을 통한 차기 당권 장악이 진짜 가치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성동 원내대표가 알량한 대통령 후보 자리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고#, 김문수 측이 가처분신청에 이어 당 지도부와 한덕수에 대한 선거법 위반까지 경고하는 등 기호 2번이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당권을 두고 극한 대립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5.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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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김문수-국민의힘 지도부간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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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7. 관련 문서
7.1. 다른 국내 대선 단일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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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의 전신이나, 후술할 김문수-국민의힘 지도부 갈등으로 사실상 분열된 상태다.[2] 국민의힘 후보 경선 기간 중에 조사된 여론조사로, 여기서 본선 후보로 선출된 김문수 후보와의 적합도 차이가 29.1%p로 가장 적게 조사되었다. 단, 해당 화면의 여론조사는 전체 응답자 대상이 아닌 단일화에 찬성한 응답자들 대상의 표본을 떼낸 조사다. 이 조사는 채널A가 여론조사업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025년 4월 26일 전국 성인 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1:1 전화면접조사로 실시됐고, 표본오차는 95%로 신뢰수준에 ±3.1%p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3] 국민의힘 후보 등록 마감 시한은 4월 15일까지였다.[4] 두 사람은 오후 5시 반쯤 대구에 도착해 7시쯤 김문수와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5] 여담으로 해당 의총에는 비윤계 의원들을 포함해 국민의힘 전 의원의 절반 정도가 불참하였다. 오죽하면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인데 다 어디 갔나"라는 성토까지 나왔을 정도. #[6] 대선 후보 임명장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다.[7] 동대구행 KTX를 타고 대구로 가다 대전역에서 중도 하차해 다시 서울행 KTX를 탔다.[8] 김문수 후보가 과거에 강경한 운동권 활동을 한 적이 있음을 고려하여 말한 비판으로 보인다.[9]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선 이러다가 제3의 옥새파동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하고 있다.[10] #[11] 국민의힘 당헌 제5장 대통령후보자의 선출 제74조 (후보자의 지위): '대통령후보자는 선출된 날로부터 대통령선거일까지 선거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12] 다만 모호한 표현 탓에 해석 여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이 대선후보자의 당무우선권 발동으로 발생한 유사 사례가 바로 지난 대선 때 발생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당무 거부 사건이다.[13] 대통령후보자의 선출 규정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는 대통령후보자선거관리위원회가 심의하고, 최고위(비상대책위원회)의 의결로 대통령후보자 선출에 관한 사항을 정할 수 있다.[14]
[15] 후보의 등장이 늦어지자 캠프 관계자의 모두발언으로 당 지도부의 행위는 당헌당규를 위반하는 것을 넘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갔으나, 후보가 등장함으로 일단락되었다.[16] 후보자,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회계책임자, 연설원, 대담ㆍ토론자는 다른 정당이나 선거구가 같거나 일부 겹치는 다른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다만, 정당이나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함에 있어서 그 일부가 다른 정당이나 후보자의 선거운동에 이른 경우와 같은 정당이나 같은 정당의 추천후보자를 지원하는 경우 및 이 법의 규정에 의하여 공동선임된 선거사무장 등이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17] 국민의힘에서 작성한 게 아니라 한덕수 측에서 작성한 문서라는 것이다.[18]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안동시 갑에서 당선된 바 있다. 민주당계 정당 소속 정치인이 경상북도 지역 총선에서 당선된 유일한 경우이다. 하지만 통합민주당은 이후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으로 통합되었다.[19] 정규재·조갑제와 만찬 회동한 이재명[20] 윤여준은 상임총괄선거대책 위원장을, 권오을과 이인기는 국민대통합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게 되었다.[21] 자유통일당/자유공화당-기독자유통일당. 심지어 자유한국당을 탈당해서 자유통일당을 창당해놓고 자유공화당 합당 이후 다시 탈당해 기독자유통일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즉, 탈당만 세 번 한 끝에 국민의힘에 복귀한 것이다.[22] 사전투표 폐지는 4강 중 한동훈이 최종적으로 찬성하긴 했지만, 계엄 옹호와 부정선거론은 4강 중 김문수와 함께 강성으로 분류되던 홍준표조차 물지 않은 떡밥이다.[23] 특히 한덕수는 윤석열을 비판하는 입장은 아니면서도 본인이 계엄에 반대했다고 적극 주장하고 있는데, 태생적으로 계엄을 옹호할 수가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직을 상실하면서 조기대선이 열리게 된 이유가 계엄인데 그 계엄 때문에 윤석열 및 공모자들이 내란죄로 재판받고 있는 마당에 윤석열 정부의 2인자였던 한덕수가 계엄을 옹호했다가는 대권주자는커녕 내란공범으로 추락할 판이다. 역설적으로 김문수가 마음껏 계엄을 옹호하며 날뛸 수 있는 것은 그가 계엄과 관련하여 별다른 혐의점이 없기 때문이다.[24] 후보 등록 마감일은 11일, 투표용지 인쇄 시작일은 25일이다. 11일을 넘길 시 한덕수가 기호 2번을 달고 나오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둘 중 어느 쪽이 사퇴하더라도 추후 투표용지에 사퇴 글자가 인쇄된 채 나오며 25일을 넘기면 어느 쪽이 사퇴하더라도 투표용지에는 사퇴 표기 없이 투표소 앞 안내문을 통해서만 사퇴가 공표되므로 사표가 생길 위험이 커진다.[25] 김문수의 말처럼 김문수로의 단일화가 전제라면 5월 25일 선거용지 인쇄 전까지만 단일화가 성사되면 문제가 없으나, 5월 11일을 굳이 시한으로 못박는 것은 사실상 한덕수로의 단일화와 입당을 전제로 한다는 것과 같다.[26] 국민의힘 당헌 제69조 2항: 대통령후보자당선자는 대통령 선거인단 유효투표결과 50%, 여론조사결과 50%를 반영하여 산정한 최종집계결과 최다득표자로 한다. 다만, 후보자로 등록한 자가 1인이거나 선거기간 중 중도사퇴 등의 사유로 후보자가 1인이 된 경우에는 대통령후보자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후보자에 대한 투표를 실시하지 아니하고 전당대회에서 그 후보자를 대통령후보자로 지명할 수 있다.#[27] 국민의힘 또한 위 각주에서 제시한 당헌당규 상 후보자가 1인이면 별도의 경선 과정 없이 무투표 당선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후보 간 경쟁이 없다고 비판할 수는 있어도 후보가 1인인 이상 절차 자체는 타 정당과 비교해봐도 문제가 없다.[28] 다만 이낙연은 경선 시점에서 이미 국회의원이었다.[29] 다만 이준석의 경우 이미 단일화를 안 하고 완주할 것임을 여러 차례에 걸쳐 공표한 바 있다.#[30] 위에서 지적한 당헌당규 위반 논란을 전대에서 당헌당규를 개정함으로써 해결한다는 것이다.[31] 조선일보[32] 중앙일보[33] 중앙일보[34] 즉 곧 있을 김문수와의 회동은 본인 의사와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35] 사실 그런 상황의 무효표가 만약 사퇴 표시 없이 단일화가 이루어졌을 경우 오롯이 단일화 후보에게 갈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실수로 사퇴자에게 찍은 것일 수도 있지만, 단일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은 단일화에 대한 불만 등의 이유로 자기가 원하는 사람한테 찍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관찰 결과는 없지만 후자의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36] 자신과 아내가 타고 다닐 국산차 2대 구입비 7,000만 원 + 서울 마포의 한 주상복합빌딩에 집무실 및 캠프 사무실을 마련할 보증금과 월세로 3,400만 원 + 그 외 운전기사와 수행비서 월급 및 캠프 사무실 운영비 등등 대선 캠프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 비용만으로도 하루에 천만 원이 깨졌다고 한다. 정식 후보 등록 전에 불출마를 선언하고 등록을 포기했는데도 이 정도이다.[37] 2007년 12월 17대 대선 출마 당시 이회창의 재산 신고액은 43억여 원이었으나, 2008년 3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 등록 당시 신고액은 -120억 5천 143만 원이었다. 이회창은 이에 대해 "선관위로부터 130억 원의 선거보조금을 받고 채무의 상당 부분을 변제해 현재 20억 원 가량의 채무를 지고 있으며, 여기에 현재 부동산과 예금 등 28억여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어 실제로 재산은 10억 원 안팎의 플러스 상태"라고 해명했으나, 이 말이 사실이어도 결국 3달 만에 재산이 43억에서 10억으로 30억 넘게 줄어든 것이다.[38] 이는 대선 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지방선거 등도 마찬가지.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 4선 의원인 김민석 의원은 31세에 국회에 입성하고,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해 40%가 넘는 득표율을 올리기도 했지만 16대 국회의원 이후 21대 국회의원에 다시 당선되기까지 무려 18년을 원외에 있었고 이 기간 동안의 정치 활동으로 인해 개인 채무가 쌓여 21대 총선 당시 -5억 7천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39] 경선을 통과할 때마다 예비후보들은 1억 원의 기탁금을 당에 지불해야 했다. 김문수는 최종 후보 경선까지 경선을 총 세 번 치렀으니 기탁금도 세 번 냈으므로 3억 원이 된다. 기탁금만 이 정도고 이런저런 경비를 고려하면 지출은 그보더 더 불어나게 된다.[40] 2025년 3월 기준, 김문수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재산을 10억 7,061만 원으로 신고했다. 기탁금 3억 원에 기타 비용까지 더하면 이미 본인 재산의 1/3 이상, 심하면 절반 이상을 이번 선거에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문수는 나아가 본인이 당에 낸 특별당비가 20억에 달하고 이조차도 다른 후보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며 당에 돈 한 푼 안 낸 한덕수가 무임승차를 시도한다고 비난하고 있다.[41] 만약 한덕수가 소속 정당이 있었다면 선거 비용 부담 완화에 대해 편법이 가능했었을 수도 있다. 20대 대선을 예로 들면 새로운물결의 김동연 후보는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서 약속대로 더불어민주당으로의 합당과 함께 선거 비용 관련 부채를 더불어민주당이 대신 냈다. 국민의당의 안철수 후보 역시 윤석열과 단일화를 하면서 국민의힘으로의 흡수합당을 조건으로 걸었기에 그간 국민의당이 지출했던 선거 비용을 국민의힘이 대납했던 것이다. 이 두 경우는 단일화 조건이 그동안의 선거 비용 대납이 아니라 당의 흡수합병이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선거 비용을 단일화의 조건으로 떠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한덕수가 무소속이므로 이런 편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덕수는 김문수가 단일화를 해준다고 해도 그동안 썼던 선거 비용을 회수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42] 한덕수가 단일화 없이 무소속으로 완주를 해서 득표율 15%p를 넘기면 선거 비용 반환은 가능하겠지만, 만약 김문수와 한덕수의 득표율의 합계가 이재명의 득표율보다 높게 되면 한덕수는 그 즉시 1997년의 이인제에 버금가는 역적으로 역사에 남아버리게 되므로 정치적 생명이 끝난다는 부담이 큰 건 매한가지다. 보수 원로 대접을 받는 중인 현재의 이인제도 강력한 정치적 체급(충청권의 지역적 기반 + 새천년민주당과 합당) +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만 49세라는 젊은 나이라는 상당히 큰 호재들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수도권에서의 정치적 기반을 완전히 상실하고 고향인 충남 논산 지역구만으로 버티고 있는 마당에, 한덕수의 경우 그런 정치적 기반이 있지도 않은 것은 물론 이번 경선을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 홍준표보다도 5살이나 많은 등 정반대의 악재들만 안고 있다.[43] 2002년 정몽준은 갈수록 지지율이 노무현으로 넘어가서, 2012년 안철수는 갈수록 지지율이 문재인으로 넘어가서, 2017년 반기문은 반문재인 빅텐트 선두 주자가 점점 안철수가 되어가서 결국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그나마 안철수는 다음 대선까지 유의미한 영향력을 유지하여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현재까지도 그럭저럭 살아있지만 정몽준이나 반기문은 얼마 못 가 정치적 영향력을 잃어버렸다.[44] 다만 선거일 전날 밤 정몽준 측에서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일이 일어났으나 결과적으로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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