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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화/심리/서브컬처
patricide[1]고대의 신화에서 시작되어 현대에도 많은 서브컬처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서사구조 중 하나다.
많은 신화들은 아버지 살해의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오이디푸스이며 둘은 각각 자의적으로/운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를 어린 남자아이의 유아적 환상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아이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처음으로 자각하는 이성이며, 아버지는 첫 번째 경쟁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의 환상 속에서, 아이는 결국 경쟁자를 물리지고 이성을 획득한다. 부모의 보호 하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쟁취하는 것이다.[2]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서브컬처(만화, 드라마, 영화, 기타 등등)에서 등장하는 아버지 살해는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유년기의 종말)라는 뉘앙스를 짙게 깔고 있으며, 서양 문학에서는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간단한 예로, 스타워즈에서도 이 구조가 세 번이나 되풀이되는 것을 볼 수 있다.(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오비완 케노비. 다스 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 한 솔로와 벤 솔로/카일로 렌)
아버지는 아이(주인공)보다 신체적/정신적으로 강하며,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아이를 방치하거나, 혹은 책임을 다해 아이를 돌봐주는 존재(얼핏 보기에 두 상반된 모습이 존재하는 것이 이상할 수 있다. 방치의 경우 아버지를 경쟁상대로 보는 아이의 환상에서, 돌봄의 경우 아이가 처한 현실의 위치에서 기인한다)이다. 이 구도에서 아버지가 차지하는 위치는 이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다른 존재로 대체/확장될 수 있다.
드물게 어머니 같은 존재가 이런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다(ex.용자경찰 제이데커, 아이작의 번제).
넓게 볼 경우, 직접 살해하는 것 이외에도 주인공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경우, 혹은 주인공 때문에 간접적으로 살해당하는 경우[5]도 포함된다. 이렇게 변주된다고 해도 의미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단 실수나 어쩔 수 없이 살해하는 경우는 자식에게 죄책감이나 트라우마를 심어주기 위한 장치나 부모와 싸울 수 밖에 없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부친 살해가 오래된 역사와 효과적인 상징성을 가진 구도라는 것은 분명하나, 구도가 강렬한(=직설적인) 만큼[6] 잘못 사용하거나 남발할 경우 작품의 분위기를 경박하게, 소위 중2병계 작품으로 몰아갈 위험성이 존재한다. 이야기를 합리화시키 위해 주인공이 냉정한 반사회적 인물로 설정한다면 자칫 잘못하면 패륜아 소리를 듣거나 래리 수의 전철을 밟기도 쉽기에, 자주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경우를 보기 힘든 구조이기도 하다. 물론 역으로 악역의 반사회성과 사악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버지나 어머니를 거리낌없이 죽이게 만들기도 한다. 소드 아트 온라인의 가브리엘 밀러와 워크래프트의 아서스가 부와 권력을 위해 인륜마저 져버린 대표적인 예시다.
철학을 '아버지 살해의 역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선대의 철학자들의 의견을 반박하고 비판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철학의 역사라고 보는 사람도 있기 때문. 이와 비슷한 말로 임제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살불살조살부살모(殺佛殺祖殺父殺母)]
[7]"가 있다.드물지만 일부 창작물에서는 자식이 부모의 지위를 계승하는 법칙이 결투 등으로 부모를 살해하는 것으로 규정된 문화권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게 일반화된 곳이면 부모 살해에 대한 거부감은 커녕 오히려 자식에게 죽는 부모마저 자신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자식이 훌륭하게 컸다면서 좋아하는 묘한 상황이 나오기도 한다. 다만 역시 친족을 죽인다는 점이 거슬려서인지, 모종의 이유로 부모와 자식이 먼저 대립한 후 사악한 부모가 정의로운 자식의 손에 죽게 되자 '역시 내 자식이다', '제대로 컸구나' 하고 감탄하는 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1.1. 관련 개념
- 일본에서 자주 반복되는 형제 살해 모티프도 있다. 현대 작품에서 '주인공보다 믿음직하고, 모두의 의지가 되는 강한 형'을 죽이는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 배신하는 딸도 있다. 여러 이유로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게 된 자녀가 직접 아버지(혹은 부모)를 죽이게 되거나 죽음/몰락으로 유도하게 되거나 하는 것.
1.2. 반대 설화
국내 설화에서는 정반대로 부모가 자기 자녀를 죽이는 자녀 살해 모티프가 있다.[8] 여기서는 장차 큰 위인 혹은 역적이 될 것으로 우려되는 신비스런 존재를 낳은 부모가 그 신비스런 존재를 남몰래 죽이려 들거나, 외압[9]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죽이게 되는 구도이다. 결과적으로 서양에서 볼 수 있는 '초월적 영웅' 의 존재가 사전에 차단되고 현실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굉장한 비장미를 준다. 똑같이 부자간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발상과는 정반대인 것이, 국내 설화의 경우 보통 아버지가 자녀를 죽이는 데 적극적이고, 어머니는 뜯어말리려 하지만 아버지에 의해 설득 혹은 묵살된 후 괴로워하는 어중간한 포지션이다. 저 유명한 아기장수 우투리가 이 클리셰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이다.[10]한국 고전설화에선 주로 충과 효를[12] 중시하는 부분이 많이 보이며, 여기서 나타나는 자녀 살해 모티브 속엔 '부모는 팔다리와 같고 아내, 자식은 의복과 같다.' 즉 '부모는 다시 얻을 수 없지만 자식은 다시 얻을 수 있다' 는 식의 논리가 깔려있다.[13] 그리고 공동체와 기존 질서와 기존 가치관을 위해 자식을 배제하려 하거나 배제하는데 성공한 부모는 기존 질서를 수호한 것에 대한 보상을 얻기도 한다.
그 예시가 《동자삼》 설화. 노모를 위해 자식을 죽이려고 한 부모가 아이를 솥에 넣었더니 솥 안에 든 것은 커다란 삼이었고, 아이는 살아돌아온다는 설화로, 여기서 아이를 죽여 노모를 살리려는건 기존 질서의 수호, 부모에게 죽임당할 뻔한 아이가 살아돌아오는건 기존 질서를 수호하려한 부모가 받는 보상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하게 《손순매아》 설화에선 자식이 노모의 밥을 뺏어먹자 부부가 자식을 묻으려 했다가 보물을 발견, 자식 죽이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설화로 역시 부모를 위해 자식을 죽이기로 했다가 보상을 받는 구조가 반복된다. 두 설화를 비롯해 많은 자식 살해 모티프를 차용한 전설은 진짜로 아이를 완벽하게 죽여버리는 식으로 끝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떤 효자비 설화에선 시아버지가 실수로 아이를 죽게 만들자[14] 며느리는 자식을 묻어주고 시아버지를 질책하는 대신 아이는 또 낳으면 된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감복한 남편은 일하고 돌아올 때마다 부인에게 절한게 계기가 되어 효자비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아기장수 설화에서처럼 기존 질서를 고수하길 선택한 부모가 자식을 죽인 다음엔 그냥 애만 죽였을 뿐 딱히 어떠한 보상을 얻지 못하는 식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여하튼 자녀 살해 후 보상을 얻든 보상을 얻지 못하든, 자녀 살해 모티프는 부모 살해/형제 살해로 나타나는 유년기의 탈피, 새로운 질서의 확립, 새로운 사회로의 개변을 거절하는 보수적인 가치관과 기존 질서의 수호를 강조한다.
이렇게 해당 모티프에선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새로운 변화로의 가능성을 막음으로써 기존 질서의 수호를 긍정하기 때문에, 해결 안 되는 현실의 모순에 순응하거나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를 배제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기도 한다. 한편 이것에 대해 일부에선 '부모의 불안을 반영했다' 라고 보기도 한다.[15] 다른 측면에선 전근대에 높았던 유아 사망률 뒤의 유아 유기나 유아 살해를 반영한 모티프라고 보기도 했다.[16][17]
외국 설화에서도 자녀 살해의 시도는 발견되는데, 서양 오이디푸스 설화만 해도 아버지가 자녀 살해를 시도하려다가 실패하고 역관광당해 결과적으론 아버지 살해가 된 스토리이다. 성경에서도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시험 때문에 자식인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 했다가 하느님이 취소해줘서 이사악이 죽지 않게 된 사례가 있을 정도다. 이 두 설화 모두 자녀 살해 모티프가 지니는 부분들을[18] 어느 정도 드러낸다.
현대 서브컬쳐물에서도 직접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게 문자 그대로 성공해버리는 방향으로는 별로 잘 쓰이는 설화가 아니다.[19][20] 그러나 아버지 살해/형제 살해의 '과정' 으로써 부모/손윗형제 역할의 캐릭터가 자녀/형제살해를 (위장이든 본의든) 시도하려다가 실패하는 사례는 어느 정도 병행되는 편이다.[21]
2. 예시
ㄱ,ㄴ,ㄷ 순서로 작성해주세요. 2회 이상 모티브가 반복되는 작품일 경우 강조해주십시오. |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거나 아버지의 인격이나 신념을 부정하는 경우는 ☆를 표시해 주십시오. |
3. 관련 문서
[1] 같은 조어법으로 어머니 살해는 matricide. 토플 기출단어다. 형제 살해는 fratricide, 비속살해는 filicide.[2] 물론 현대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완벽한 헛소리다. 그러나 신화를 비롯한 인류의 서사문학에서 중요한 구조로 반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프로이트 자신이야말로 아버지 살해의 전형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묵묵히 가정을 지켜온 아버지를 존경했으나 그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시자 아버지에게 더욱 잘해드렸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고 이것이 그의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한편으론 알프레드 아들러, 칼 융, 오토 랑크 등 한때 프로이트의 후계자로 유력시되던 제자들이 한결같이 프로이트를 떠나 자신의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구축해 버렸으니... 단, 아들러, 융은 제발로 프로이트 문하에서 뛰쳐나간 반면, 랑크의 경우는 프로이트에 의해 파문되었다. 그래서 프로이트 학파 내에서 아들러나 융은 간혹 언급되는 경우가 있긴 해도 랑크는 거론하는 것조차 터부시되었다.[3]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예시가 있다. 2009년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선덕여왕"의 문노와 비담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4] 역사기록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칭기즈 칸에게 자무카는 스승, 소꿉친구, (의)형제 모두에 해당되는 경우라고 볼 수도 있겠다.[5] 주인공의 친지라는 이유, 혹은 주인공의 실수. 아니면 부모가 모종의 이유로 세뇌당해서 어쩔 수 없이 살해.[6] 애초에 유아적 상상에서 기원한 것이다.[7] 깨달음을 밖에서 구하지 말라는 뜻으로, 사물화된 붓다나 조사에 대한 철저한 타파를 의미한다. 즉 부처나 스승(조사)를 넘어선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8] 이것과 유사하나 조금 순화된 버전으로는 '기아((棄兒) 모티프' 가 있다. 아이가 남다른 존재로 태어나자 불안을 느끼거나 외압을 받은 부모가 아이를 버리지만 아이는 장성해서 영웅이 되는 설화구조를 말한다. 대표적인게 고주몽. 이 설화는 집단이 기존의 것과 다른 이질적인 것을 위험요소로 간주해 배제하려는 정치적 징후를 드러냄과 동시에 아이는 '버려짐' 으로써 기존 세계에서 떠나 새로이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식으로 흘러간다. 참고논문[9] 임금 혹은 임금이 보낸 포졸이 대표적.[10] 이런 자녀 살해의 모티프에 대해 '부모에 대한 효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자식을 희생시킨 부부의 이야기가 공동체의 존재와 공동체적 가치의 무게를 증언하는 대표적인 표상으로서 전면에 내걸린 셈이다. ‘부친살해’의 주체가 새로운 규범과 가치를 만들어내 자신들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과 달리 ‘자식살해’의 주체는 현존하는 규범과 가치를 엄격히 준수하는 모범으로서, 기존 질서를 수호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라고 설명한 논문도 있다. (출처 : 한국 구전서사 속 ‘부친살해’ 모티프의 역방향 변용 탐색)[11] 실제로 우투리는 성공했다면 오이디푸스처럼 기존 왕을 치우고 왕 자리에 앉을 수도 있을 존재였다. 즉 부모 = 지배계층이라 본다면 기존 지배계층이 신진세력에게 자리를 내주고 그로 인해 개인의 변화든 사회적인 변화든 변화를 맞이하는것을 강력하게 거절하려드는게 우투리 설화 속에 숨겨진 사회상이라 볼 수 있다.[12] 그 중에서도 효.[13] 이는 사실 전근대에 세계적으로 만연한, 어린아이의 인권 경시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14] 부부가 시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겼는데 시아버지는 술에 취해 잠들었고 그 사이 아이가 화로에 들어갔다가 타죽어버린 것.[15] 이 불안이란 부모로써 자식이 자신을 떠나 성장하고 독립하는 것에 대한 불안(≒ 빈둥지 증후군), 부모자식간의 위계서열이 흔들릴 것에 대한 불안, 부모가 자식을 과거처럼 마음대로 수단처럼 간주할 수 없는것에 대한 불안 등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부모의 자식 예속화(시도)나 부모가 저지르는 아동학대 합리화, 부모자식 간의 과한 유착관계의 원인들에 속한다.[16] 불우한 환경을 버틸 수 없는 부모가 아이를 버리거나 죽이는 것도 자녀 살해라는 설화로 반영된 것이라는 점.[17] 일본의 마비키 사례처럼 외국에서도 힘들 때 부모가 아이를 현실에서 극단적인 방식으로 저버리는게 없던건 아니다.[18] 기존 사회 질서나 기존 기득권층에 방해되는 자를 배제하려는 의도 / 부모가 기존 질서나 규범이나 외압 등에 순응하거나 굴복해 자녀를 살해하려는 것[19] 물론 현대 서브컬쳐임에도 스토리 내에서 (자녀가 이미 장성한 경우까지 포함해서) 부모의 자녀살해가 진짜 성공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황후화 같은 작품이 그 예시. 다만 이런 부모의 자녀 살해는 성공한다 해도 보통 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보단 비극성이나 비장미가 강조된다.[20] 일단 현대는 아이들의 인권이 전근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올라간 것도 있거니와, 특히 가족간 살해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부터가 반인륜적이고 충격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하물며 부모가 자기 아이를 상대로 해서 살해를 저지르거나 시도하는건 문자 그대로 범죄이며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그 반인륜성이 배가 된다. 결정적으로 이 모티프는 창작물에서 여러 방향으로 자주 쓰이는 '성장서사' 에 전면적으로 반하는 성장거부 서사이며, 어찌보면 보수성의 극을 달리는 모티프이기도 하다.[21] 그리고 현대는 구시대에서 강조하는 부모를 위한 희생까지 요구하는 절대적인 효심이나 부모 봉양에 대해 오히려 사람들이 회의적이거나 반발하는 추세다. 오히려 요즘엔 자녀가 부모에게 자길 낳아준것에 감사하기보단 아예 부모에게 자길 낳길 택한 책임을 요구하거나 반출생주의를 보이는 등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또한 요즘 사람들은 현실의 불합리나 부조리, 모순 등을 품고 밑의 사람들을 억압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에 무조건 순응하는 걸 당연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22] 저연령층이 주로 보는 지브리 애니의 특성 덕분에 이 부분이 문제가 되어 국내 상영시엔 '아버지를 죽였다.'는 대사가 자막판에선 '사람을 죽였다.'로 더빙판에선 '왕을 죽였다.'로 바꿔서 나왔다. 그런데 원작에서 아렌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 스토리 전개 상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원작에서도 넣지 않은 패륜적인 아버지 살해를 도대체 왜 넣은건지는 정말 의문. 감독은 욕을 많이 먹었다. 이런 원작파괴 때문에 원작가 어슐러 르 귄은 크게 실망해서 "이것은 내 책이 아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23] 크레타의 왕족. 아버지를 해적으로 착각해서 죽였다. 결국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걸 알게 되자 신들에게 기도해 땅 속으로 사라졌다.[24] 이쪽은 양자가 양부를 죽인 경우.[25] 텐코의 개성이 폭주할 때 다른 가족들은 사고였지만 코타로만큼은 텐코가 직접 죽였다.[26] 이 쪽은 엘렉트라 컴플렉스가 겹쳐진 케이스[27] 지크마이어 및 지클린의 이벤트를 전부 수행해야한다.[28] 슈퍼 드래곤볼 히어로즈 한정. 사실 쿠우라가 극장판 캐릭터라 비정사이긴 하다. 이 때 트랭크스에게 살해될 때와 유사한 구도로 살해당했다.[29] 자궁에서 결국 어머니의 심장을 파괴한다.[30] 굉장히 많이 반복된다. 작품 내의 인간관계 중 반 이상이 아버지-아들과 같은 구도를 취하고 있다.[31] 아버지가 흑막에게 예토전생 당해서 어쩔 수 없이 싸웠다.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흑막에게서 사쿠라를 감싸고 사망.[32] I'll kill my father.[33] 악마성 전설, 월하의 야상곡, 창월의 십자가 총 3회에 걸쳐 알루카드는 아버지를 죽인 셈이 된다. 그나마 자기 혼자서 죽인건 월하의 야상곡이며 악마성 전설은 동료들과 함께 아버지를 쓰러뜨렸으며, 창월의 경우는 배드 엔딩에서 이어지는 if 루트[34] 이름부터가 가르치는 자[35] 막나가는 아들내미를 죽이려다가 역관광당한다.[36] 아킬레스에게 확인 받아서 헤이덤이 아버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헤이덤이 코너의 탄생 전에 지오를 떠났기도 하고. 오히려 그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준 것은 아킬레스 데븐포트에 가깝다. 그러나 훗날 헤이덤의 일지(어쌔신 크리드 포세이큰)을 발견하고 헤이덤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자신을 교수형에서 구해준 게 사실 헤이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워싱턴의 진실을 믿지 않을까 봐 일부러 말을 안 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코너는 헤이덤 초상화 밑에 Sakataterihwáhten라고 써 놓았다. 모호크 어로 해석하자면 '저는 실수하였습니다. 용서해주세요.'[37] 작중 검사심의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증거 조작, 증인 매수는 기본에 심지어 순진한 자기 아들을 이용해 먹는 비정한 모습을 보인다.[38] 반사이의 친자로, 자칭 천재 검사.첫 등장 때는 자만심에 쩔어 일류라는 명성에 집착하고 아둔한 추리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범죄가 들킬까 전전긍긍하던 반사이에게 폭언을 듣고 부하들의 실수로 납치감금된 일을 계기로 성장하여 자기를 장기말로 쓰던 아버지를 주인공 미츠루기 레이지와 함께 감방에 집어넣는다.[39] 위 인물과 동일인. 위쪽은 양부모, 이쪽은 친부모를 죽인 사례.[40] 이 경우는 쟈코우가, 아게하 남매를 만들 적에(아게하 남매는 '가루다'라는 인공생명체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제공했기에 자신을 그들의 아버지라 칭하는 것이라, 생부친 살해라 볼 수 있을 지는 미지수. 게다가 실제로 아게하 남매를 만든 자는 '히오도시'라는 연금술사이다.[41] 프리퀄 시리즈인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커버넌트. 구작 시리즈도 약간의 함의는 가지고 있다.[42]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이다. 즉 "로봇공학의 위대한 어머니 VS 유우타에 의해 성장한 초AI 로봇들"의 대립구도라 볼 수 있다[43] 이 문서의 대표주자[44] 아서스의 스승이다.[45] 립은 백인 우월주의자에 인종차별 및 나치 지지 성향을 보이나 윌리엄(B.J)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나치를 적대한다.[46] 공식적인 이름은 불명[47] 진실은...[48] 정확히는 봉인당한 것.[49] 언급으로만 나왔다.[50] 엄밀히는 직접 죽인 게 아니라 마레 측에 밀고하여 죽게끔 만들었으며 미수로 그쳤다. 하지만 엘런 크루거에 의해 그리샤가 진격을 계승받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음이나 다름없는 무지성 거인화를 당했을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부친 살해나 마찬가지.[51] 이쪽은 어렸을 때 놀다가 실수로 죽였다.[52] 둘은 이복형제로서 드미트리는 표도르의 적장남, 스메르쟈코프는 사생아이다. 스메르쟈코프는 실제로 표도르를 살해한 뒤 현장을 조작하여 드미트리가 혐의를 뒤집어쓰도록 만들었고, 드미트리는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진 않았으나 죽이고 싶은 마음을 품었던 것은 사실이기에 자신이 실제로 죽인 거나 다름없다고 인정했다.[53] PC판 진엔딩 한정이다.[54] 본인이 원해서 죽인 게 아니라 게닛츠의 농간으로 폭주하는 바람에 죽였다. 이로 인해 그녀는 기억을 봉인하고 사랑하는 부모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