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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세르보크로아트어, 크로아티아어, 보스니아어, 몬테네그로어: Titoizam
- 세르보크로아트어, 세르비아어, 보스니아어, 몬테네그로어: Титоизам
- 알바니아어: Titoizmi
- 슬로베니아어: Titoizem
- 영어: Titoism
요시프 브로즈 티토에서 유래한 사상.
2. 상세
공산주의 국가들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는 티토의 노선은 티토주의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었는데 워낙 공산 국가들 사이에서도 독특하고 독자적인 노선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특징은 노동자 자주관리, 비동맹노선, 중공업 편향적 산업화 지양, 탈권위주의 등이 있다.다만 이러한 정책과 그에 기반한 노선들이 하나의 '사상'으로 분류될 만큼 이론적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티토의 독특한 정치외교 노선이 나름 훌륭한 성과를 이뤄낸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그것만 가디고 독립된 정치 사상으로써 '주의'라고 부르기는 어렵다.[1]
예를 들어 '비동맹노선'과 실리주의적인 등거리 외교 정책은 동유럽의 공산 국가이면서도 소련의 통제를 받는 위성국의 입장에서 벗어나려 했던 정치외교적 입장에 기인한 것이다. 그냥 무작정 "소련 나가라! 우린 자주노선!" 이라고 하면 일단 국제적 협력상대가 되어 줄 대부분의 우방국을 상실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여러 수단으로 철저히 보복하여 유고슬라비아를 굴복시키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공산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의 특성상 서구 진영에 합류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동구권 국가들과도 교류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으면서 거기서 부족한 부분을 서구권 국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보충하는 비동맹주의적 등거리 외교 노선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냉전 시대의 국제 정세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이러한 외교노선이 '양대 열강이 주도하는 양대 진영에 합류하여 위성국화되는 것'을 원치 않던 제3세계 국가들에게 좋은 전형이 되었기 때뭉에[2] 티토의 유고슬라비아가 자연스럽게 제3세계 비동맹진영의 대표국가 중 하나로 인식된 것이다.
'중공업 편향적 산업화 지양' 역시 마찬가지다. 유고슬라비아가 중공업 중심의 산업화 노선이 아니라 농업, 경공업, 중공업이 균형을 이룬 산업화를 지향한 이유 역시 '비동맹주의적 외교 노선으로 인한 동구권에서의 이탈' 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의 동구권은 (후일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제한 주권론에 이르는) 소련의 강력한 영향력과 통제력 아래 있었는데 이러한 소련의 영향력은 경제 분야에도 강하게 미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산주의 진영의 <국제 분업론>으로, 전 세계의 형제 공산 국가들은 (자본주의 진영의 생산력에 맞서기 위해) 경제적으로도 통일된 진영을 이루어 각자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산업영역을 담당, 진영 차원의 분업화를 통해 최고의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유고슬라비아가 소련의 위성국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곧 이 동구권의 경제블록에서 이탈한다는 뜻이기도 했고, 이는 긍정적으로 보면 자국의 입장을 가장 우선시하여 스스로 경제적 노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타국과의 협력이나 교류 없이 자국의 역량만으로 모든 경제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며 당시 제2세계의 종주국이던 소련의 자본 및 기술적 지원 없이 스스로 경제발전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실 중공업 편향적 산업화 대신 1차산업에서 경공업, 중공업까지 균형잡힌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 듣기는 좋지만... 반드시 좋은 선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자국 내에 균형잡힌 산업 기반을 갖추는 만큼 다양한 위기상황에 대한 대응력이 좋아진다는 강력한 장점도 있지만[3] 당장 한국의 사례에서도 확인 가능한 것처럼 빠른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한 가지 산업에 순차적으로 중점을 두는 노선이 훨씬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즉, 중공업 편향을 지양하는 경제성장 역시 정치외교적 독자노선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노동자 자주관리'와 '탈권위주의' 노선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정부와 관료가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생산을 포함한 사회 전반을 통제하는 소련식 모델은 일단 '소련과는 다른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정치적 입장 때문에라도 지양할 수 밖에 없었고 진영 단위가 아니라 국가 단위로 비교적 자급적인 경제구조를 먼저 꾸려나가야 하는 상황, 인구 2천 수백만의 그리 크지 않은 나라인데도 구성국만 6개에 달하는 연방국가라는 사회적 구조상으로도 전혀 효율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과 특성을 반영한 대안으로 각 생산단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노동자 자주관리 제도가 도입되고 무의미한 권위주의의 지양이 일어났다.
결론적으로 티토의 정치외교 노선은 당시 세계에서는 나름 독특했고 그 성과 역시 상당히 훌륭한 편이었으나 이는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입장'에서 각 사안에 대하여 제시된 대안들의 집합이지 것이지 일관적인 사상적, 이론적 체계로부터 나온 결과물은 아니다. 티토의 노선을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표현 역시 폭압적인 스탈린과 소련의 내정간섭에 질린 동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이 탈스탈린주의, 탈소련화라는 기치를 내걸 때 광범위하게 사용한 표현이며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을 이끌던 알렉산데르 둡체크의 슬로건으로 훨씬 유명하다.
인상주의처럼 티토주의라는 표현 자체가 티토의 노선을 높이 평가하는 의도보다는 멸칭으로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 집권한 공산당들이 보기에 꼴보기 싫은 놈인데 차마 트로츠키주의자라고까지는 부르기 뭐한 반대파를 티토주의자라고 부른 격이다.[4] 이 말의 원조는 이웃나라의 독재자이자 한때 티토와 함께 파시스트와 싸운 알바니아의 엔베르 호자였다. 엔베르 호자는 티토가 알바니아를 유고 연방에 강제합병시키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국가와 당선전기관을 이용해 티토를 비난했다.
3. 기타
티토의 경제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경제민주화, 노동자 자주 관리 문서 참고.[1] 간단히 말해서 '티토의 통치'는 어떤 철학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닌 '어쩌다보니' 특이한 형태가 된 것에 가깝다는 의미다.[2] 갓 식민지에서 독립한 저개발 국가가 많던 다른 제3세계 국가들에 비해 유럽 국가인 유고슬라비아는 나름 산업화의 역사가 긴 공업국이라는 장점도 있었다.[3] 예를 들어 일본의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증언에 따르면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경제제제로 인해 사실상 국제교역이 끊겨 난방용 등유 한 통을 사기 위해 한 겨울에도 몇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의 심각한 물자난이 발생한 상황에서도 유고슬라비아 국내에 충분한 농업 기반(특히 석유에 의존하는 기계식 산업화 농업이 아닌 가족 단위의 자영농 중심 농업 기반)이 있었던 덕분에 어쨌건 굶은 사람은 없었다고 할 정도다. 이와는 반대의 사례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범유행 사태 초반인 2020년에 여러 선진국들을 강타한 심각한 마스크 품귀 사태가 있다. 평소라면 마스크 따위 한뭉탱이씩 집어서 코풀고 버려도 상관이 없었을 선진국에서는 마스크 제조 따위 돈도 안되는 경공업은 그냥 개발도상국에 맡기고 수입해서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지만, 전염병 범유행으로 각 국가가 모두 자국에서 사용할 마스크의 확보를 최우선시하면서 국제 거래가 중단되자 그깟 마스크를 구할 수 없어서 쩔쩔매는 사태가 벌어졌다.[4] 간단히 요약하자면 같은 진영이 아닌 상대를 욕하고 싶을 때는 "파시스트" 혹은 "부르주아지" 등으로 부르면 되고, 같은 공산 진영 내의 상대를 욕하고 싶을 때에는 불구대천이라 화해고 용서고 필요없다, 기회 되는대로 끝장을 봐야겠다 싶은 상대면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부르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얄밉고 싫어서 굴복시키고 싶은 상대라면 "티토주의자"라고 부르면 되는 식이다. 그냥 욕설에 가까운 표현이라 실제 트로츠키나 티토의 노선과는 별로 상관 없지만 그래도 굳이 맥락을 찾아보자면 종교에서 이단을 배척하듯 '네 주장은 단 한마디도 인정해주지 않겠다. 싸우자.' 싶은 상대는 트로츠키주의자라고 부르고, 그 정도로 극단적인 적대관계는 아니지만 주류의 입장에서 '말 안 듣는 소수파'에 해당하는 상대를 욕할 때는 티토주의자라고 부른다고 보면 대강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