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21:00:29

사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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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동 법정동
<colbgcolor=#009742> 왕십리도선동 도선동 상왕십리동 홍익동
왕십리2동 하왕십리동
마장동 마장동
사근동 사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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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행정동
사근동

沙斤洞 | Sageun-dong
<colbgcolor=#009742><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행정표준코드 3030044
관할 법정동 사근동, 행당동 일부
하위 행정구역 23통 175반
면적 1.10㎢
인구 12,000명[A]
인구밀도 10,909.09명/㎢
정치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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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 중구·성동구 갑

홍익표 (3선)
서울특별시의원 | 제4선거구

김달호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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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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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 사근동길 37 (사근동 223-22)
사근동 주민센터
1. 개요2. 역사
2.1. 남이장군 전설2.2. 치마바위 전설
3. 상세4. 관할 법정동
4.1. 사근동4.2. 행당동
5. 지리6. 교통
6.1. 도로6.2. 철도6.3. 버스
7. 주거
7.1. 공동주택
8. 상권9. 교육10. 시설
10.1. 의료
11. 출신 인물12. 기타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행정동. 서쪽으로 행당동, 북쪽으로 마장동과 인접해 있고, 청계천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용답동과 남쪽으로는 성수동1가와 마주하고 있다. 성동구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동 사근동은 법정동 행당동의 일부 구역을 관할하고 있다. 사근고개를 기준으로 사근고개 동쪽은 법정동 사근동이고, 사근고개 서쪽은 법정동 행당동이다. 두 지역의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른데, 사근고개 동쪽은 전형적인 주택가로 조용한 편이며, 사근고개 서쪽은 한양대학교왕십리역의 사이에 있어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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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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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고구려 북한산군(北漢山郡)
553 신라 신주(新州)
557 북한산주(北漢山州)
568 남천주(南川州)
604 한산정(漢山停)
660 한산주(漢山州)
757 한주 한양군(漢州 漢陽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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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고려시대
{{{#!wiki style="margin-top:-5px;margin-bottom:-11px"
995 관내도 양주목(關內道 楊州牧)
1018 양광도 양주목(楊廣道 楊州牧)
1067 남경(南京)
1069 경기 남경(京畿 南京)
? 양광도 양주목
1104 남경(南京)
1308 한양부(漢陽府)
1390 경기좌도 한양부(京畿左道 漢陽府) }}}}}}}}}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folding 조선시대
{{{#!wiki style="margin-top:-5px;margin-bottom:-11px"
1395 경기좌도 양주부(京畿左道 楊州府)
1413 경기도 양주부(京畿道 楊州府)
1424 한성부 남부 사근사리(漢城府 南部 沙斤寺里)
1721 한성부 남부 두모방
(漢城府 南部 豆毛坊)
보당리계
(補堂里契)
전관1,2계
(箭串一二契)
신촌리계
(新村里契)
1895 동서 인창방
(東署 仁昌坊)
남서 두모방
(南署 豆毛坊)
동소문외계 사근리
(東小門外契 沙斤里)
전관1,2계 전관동
(箭串一二契 箭串洞)
신촌리계 행당동
(新村里契 杏堂洞)
}}}}}}}}}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folding 일제강점기 ~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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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동은 파란색, 행정동은 분홍색
1910. 10. 1. 경기도 경성부(京畿道 京城府)
동서 인창방
(東署 仁昌坊)
남서 두모방
(南署 豆毛坊)
동소문외계 사근리
(東小門外契 沙斤里)
전관1,2계 전관동
(箭串一二契 箭串洞)
신촌리계 행당리동
(新村里契 杏堂里洞)
1911. 4. 1. 인창면 사근리
(仁昌面 沙斤里)
두모면 행당리 전관동
(豆毛面 杏堂里 箭串洞)
1914. 4. 1.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京畿道 高陽郡 漢芝面)
사근리 행당리
1936. 4. 1. 경기도 경성부
사근정(沙斤町) 행당정(杏堂町)
1943. 6. 10. 경기도 경성부 성동구
(京畿道 京城府 城東區)
사근정 행당정
1946. 10. 9. 서울특별자유시 성동구
(서울特別自由市 城東區)
사근동(沙斤洞) 행당동(杏堂洞)
1949. 8. 15. 서울특별시 성동구
(서울特別市 城東區)
사근동 행당동
1970. 5. 18. 사근동 행당1동
1980. 7. 1. 사근동 }}}}}}}}}
사근(沙斤)이라는 지명은 모래 사() 자에 도끼 근() 자를 쓴다. 본래는 도끼 근이 아니라 미나리 근()이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모종의 이유로 미나리 근 자가 도끼 근 자로 바뀌게 되었다.[2]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청계천변의 퇴적된 모래밭에 미나리밭이 펼쳐진 곳이었다. 신라 때 지금의 한양대학교 축구장 자리에 세워진 사근사(沙斤寺)라는 절에서 동명을 유래했는 설도 있는데, 이 절이 너무 오래 되어서 삭은절이라고도 불렀다고(...) 그래서 사근동은 삭아서 사근동이라고 불리는 거라 카더라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완전히 뻘밭으로 이루어진 시골 동네라서 미나리와 기타 채소를 많이 재배하던 동네였다고 한다. 성민교회 쪽은 1953년까지만 해도 염전이 있던 곳이었는데 전쟁 이후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사근동은 금세 주택가로 변모하였고, 청계천변에는 판자촌이 늘어섰다. 1989년에 하이츠아파트가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 땅에 밭이 아직 남아 있을 정도였다.

고려시대에는 양주목(楊州牧)에 속했다. 1067년(문종 21년)에 양주목이 남경(南京)으로 승격하자 그에 속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남경이 다시 양주목으로 격하되었다. 1104년(숙종 9년)에 다시 남경이 설치될 때에 그에 속해 쭉 유지되었다.

1395년(조선 4년)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에 한양도성 내부만 한성부가 되고 그 외 지역은 모두 양주군에 속하게 했는데, 지금의 사근동 지역도 양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1424년(세종 6년), 한양에서 떨어져 나온 지 29년이 지나서 다시 한성부 성저오리(城底五里)에 편입되어 동부 인창방(仁昌坊)에 예속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경도한성부 편에서는 마보단(馬步壇)·마조단(馬祖壇)·선목단(先牧壇)·마사단(馬社壇)이 모두 흥인문 밖 사근사리에 있다고 적혀 있다.

1721년(영조 27년)에는 마장리계(馬場里契)에서 속하였다. 성저오리가 만들어질 때에 사근고개 서쪽은 남부에 예속되었는데, 1721년에는 남부에 두모방(豆毛坊)을 신설하여 이에 속했고, 왕십리로 이북은 신촌리계(新村里契)로, 이남은 전관1,2계(箭串一二契)가 되어 지금의 성수동 지역을 관할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로 마장리계가 폐지되고 사근동은 지금의 마장동과 함께 인창방 동소문외계(東小門外契)에 속하게 되었다. 한편, 왕십리로 이북은 신촌리계 행당리동(新村里契 杏堂里洞)으로, 이남은 전관1,2계 전관동(箭串一二契 箭串洞)이 되었고, 1911년에는 행당리 전관동(杏堂里 箭串洞)으로 통합되었다가 1914년에 이르러 행당리가 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에 이르러서야 경성부 인창면에서 고양군 한지면(高陽郡 漢芝面)으로 편입되며 지금의 성동구 중 중랑천 이서지역이 모두 같은 행정구역 안에 놓였다. 이때 한지면은 지금의 이태원동, 한남동도 포함했다.

1936년 경성 대확장 때 다시 편입되어 사근정이 되었고, 1943년에는 신설 성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1980년까지는 이렇다 할 변동 사항 없이 계속되어 오다가, 행당동에서 경원선 이동 지역을 양도 받아 동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2.1. 남이장군 전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사근고개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는데, 남이 장군(1441~1468)이 이곳에 출몰하던 호랑이를 바위에 던져 때려 잡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로 이 지역 주민들은 사근동 190-2번지에 남이장군 사당을 차리고 제사를 지냈는데, 현재는 헐려서 공영주차장이 되었다.

2.2. 치마바위 전설

일제가 도로를 확장하려고 현 한양대학교 미술대학 자리에 있던 치마를 두른 모양을 한 치마바위를 폭파하자 붉은 피가 흘렀다는 전설이 있다.[3]

다른 이야기로 사근동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화산(火山)이 될 곳이라 하여 화기를 누르기 위해 바위에 검은 칠을 해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음양오행설에서 검은색은 물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상세

과거에도 청계천변에는 판자촌이 아주 많아서 지금까지도 서울에서 오래 사신 분들한테 사근동이라 하면 판자촌부터 떠올릴 정도로 빈민촌의 이미지가 강하다.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착공식 때 박정희 대통령이 사근동 쪽을 보고는 "도시 미관상 보기 좋지 않으니 철거하고 이주시키라"고 했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1976년 어린이대공원 개원 즈음하여 판자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사근동 주민들의 증언도 있다.

그렇게 판자촌이 사라진 후 약 10년 정도 청계천변은 모래밭으로 방치되어 있다가 80년대 후반부터 제방공사를 시작하여 1990년에 그 제방 위로 비로소 지금의 살곶이길이 개통되었다. 사근동을 잘 아는 사람들은 살곶이길을 흔히 뚝방길이라고 부르며 판자촌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판자촌이 없어진 이후에는 외부에 알려질 일이 잘 없어서 거의 잊혀진 동네가 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근고개를 넘어서 들어오는 버스에 사람이 꽉 찼다고 하는데, 판자촌이 없어지고 인구 유출도 심해지면서 한산한 동네가 되었다. 지형상 외지인이 사근고개를 넘어서 들어올 일도 웬만하면 없기 때문에 인지도도 거의 없는 편이고, 심지어 행당동민들 중에서도 사근동에 어디 붙어 있는 동네인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민들의 연령대는 크게 양분된 형태를 보인다. 사근동에 최소 40년 이상 터를 잡고 살아오신 어르신들과 대학생들이다. 학원가가 형성되지 않아 교육여건이 열악하여 자녀교육에 대한 불안감으로 중장년층이 없다보니 10대도 당연하게 없다. 서울사근초등학교는 입학생이 20명 남짓이다.

원래 주변 지역에 비해 재개발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해서 2010년대 들어 여기저기가 공사판인 성동구라지만 이곳은 워낙 주변 지형에 의해 고립된 지역에다가 교통편도 좋지 않아서, 재개발은 사실상 요원했었다. 사근동도 재개발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결국 좌초되었고 2019년 4월 서울시 도시재생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되며 재개발은 물건너가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 2022년 12월 성동구 사근동 293번지 일대가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2차 후보지로 선정되었다. 이 지역은 신속통합기획 1차 후보지로 선정된 마장동 382번지 일대와 주택재건축정비구역으로 선정된 마장동 세림아파트와 경계를 맞대고 있어 향후 10년 내 주거지로서의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 관할 법정동

4.1. 사근동

성동구법정동
사근동

沙斤洞 | Sageun-dong
<colbgcolor=#009742><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법정동코드 1120010600
소속 행정동 사근동
면적 0.67㎢
인구 6,766명[B]
인구밀도 10,098.50명/㎢
사근고개 동쪽 지역으로, 보통 사근동이라고 하면 이 지역을 말한다. 사근동주민센터가 이곳에 있다. 남쪽으로는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에 막혀 있고, 동쪽으로는 청계천에 막혀 있으며, 서쪽과 북쪽으로는 고지대가 있어서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특성을 보인다.

이 지역의 발전은 매우 더딘 편으로, 서울 중심부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고립되어 있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탓에, 사근동에 가면 서울이 아닌 어느 시골 읍내에 온 듯한 느낌, 혹은 198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중심도로인 사근동길은 2차선 도로이며, 서울 버스 4211을 타고 사근고개를 넘으면 정겨운 느낌까지 든다. 전 지역이 주택가이기 때문에 한적하고 조용하다. 오죽하면 편의점이 2010년에 생겼을까.[5] 그러나 2018년 이후로 한양대학교 상권이 사근고개를 넘어 이곳까지 확장되며 편의점, 카페, 식당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으며, 조금씩 변모하고 있기는 하다.

사근고개 서쪽에 비하면 유동인구가 적지만, 주민 인구는 근소하게 사근고개 동쪽이 조금 더 많다. 한양대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 자취생들 혹은 30, 40년 이상 터를 잡고 살아오신 노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원래는 압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된 동네였지만, 2010년 전후로 한양대 기숙사가 관내에 하나 둘 세워지며 현재는 한양대 학생들이 많이 유입되었고, 인구분포가 중간층이 없이 노년층과 청년층의 극과 극으로 양분된 상태이다.

따라서 여기로 들어오는 서울 버스 4211과 인근 용답역도 이용 인원이 많아졌다. 그에 따라 동네도 조금씩 활기를 띄는 모양이며, 여기에 도시재생구역으로 설정되어 소규모 상권이 발전하고 있는 지역이다.
[clearfix]

4.2. 행당동

성동구법정동
행당동

杏堂洞 | Haengdang-dong
<colbgcolor=#009742><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법정동코드 1120010700
소속 행정동 사근동
면적 0.43㎢
인구 5,158명[B]
인구밀도 11,995.35명/㎢
원래는 행당1동 관할 지역으로, 1980년 7월 1일에 사근동 관할 구역으로 이관되어 법정동과 행정동의 영역이 불일치하게 되었다. 사근고개 서쪽, 경원선 동쪽을 관할하는 지역으로, 왕십리역 앞으로 원룸촌이 밀집되어 대학생 인구가 많다.

사근고개 서쪽 지역도 사근동주민센터에서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지만, 주민센터에 갈 일이 없다면 사근고개 서쪽의 주민들은 주소를 쓸 때 행당동으로 쓰기 때문에 자신이 사근동 주민인 것도 모르고 산다. 사실상 행당동 주민이면서, 사근동 주민이라 어느 쪽으로 알고 있어도 틀린 건 아니다.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부지의 절반 가량이 이 지역에 걸쳐 있다. 행정동으로는 모든 부지가 행정동 사근동에 속하지만,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정문인 애지문이 법정동 행당동 영역에 있으므로 주소를 쓸 때는 행당동으로 쓴다. 마찬가지로 덕수고등학교 행당분교와 행당중학교도 이곳에 있다. 경의중앙선이 지나는 선로 동쪽으로 현재 성동소방서가 있는 행당도시개발구역도 이 지역에 속한다.

사근고개 동쪽과는 달리 번화가가 있어 변화가 빠르고 유동인구도 많은 편이다. 본 사근동과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서 보통은 이 지역을 사근동이라고 보지 않는 편이고, 행정적으로만 사근동에 소속되어 있을 뿐이다.
[clearfix]

5. 지리

청계천이 돌아나가는 곳에 퇴적된 모래 지형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따라서 사근동 저지대 지역은 본래 범람원 지역으로 사람이 살지 않고 미나리밭만 있었지만, 1960년대 이후로 서울의 인구가 폭증하면서 사근동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어 그 일대에 판자촌이 형성되고 말았다.

1990년대 초까지 홍수가 빈번하여 재산피해가 자주 발생했지만 2002년 이후로 홍수가 일어나진 않는다. 1970년대에 청계천이 복개되기는 했지만, 고산자교까지만 복개되고 그 이후의 하류 구간은 똥물이 흐르는 상태로 방치되었기 때문에 홍수가 나면 사근동 주민들의 고통은 더욱 심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는 사근빗물펌프장에서 어느 정도 제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장마철에 뚝방까지 물이 아슬아슬하게 차기는 하지만 동네로 넘쳐 흐르는 경우는 없다.

사근동은 말굽 모양의 산이 감싸고 있다. 남쪽에는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가 있는 행당산이 있고, 행당산 능선이 서북쪽으로 뻗어 마장동 방면으로 이어진다. 흔히 한대부고 뒷산은 오래 전부터 초록동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초록동산 옆으로 마장동과의 경계 지역에 달동네가 있다.

지형이 이렇기 때문에 마을 밖으로 통하는 도로가 몇 개 없을 정도로 고립되어있다. 왕십리역 방향으로는 사근고개라는 높은 고개를 지나야 하고, 용답역 방향으로는 사근용답간인도교를 통하거나 청계천 위로 놓인 용답나들목교를 통해 건너가야 한다. 제2마장교한양대역을 잇는 살곶이길이 놓여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방이 없었기 때문에 살곶이길이 놓이지 않았고, 사근용답간인도교도 1980년용답역이 개통하면서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마을 외부와는 오직 한 가닥 사근동길에만 의지하고 있었다. 가히 서울의 낙도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인근 상권이 사근동까지 들어오지 못 하고 지형상 장애물에 막혀 단절되게 된 것이다.

6. 교통

6.1. 도로

사근동을 동서로 관통하는 사근동길이라는 2차선 도로가 현재 사근동의 메인 스트리트이다. 이 길을 중심으로 주민센터를 비롯하여 사근동의 상권이 몰려 있다. 노상주차 때문에 거의 1차선 도로나 다름 없다. 이 길로 시내버스도 다니는데, 차끼리 마주치면 아주 좁은 틈으로 비껴가거나 아니면 한쪽이 후진해서 양보해야 할 정도. 특히나 한양대학교 면접이나 논술 시험 치는 날에는 주차공간을 물색하던 학부모들이 사근고개까지 밀고 들어와서 그때는 버스기사가 버스 몰다 말고 교통정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양지구대는 뭘 하는지 교통상황이 그 지경이 되도록 안 오고 있었다.

청계천 제방을 따라 살곶이길이 있다. 고산자교에서 시계 방향으로 마장동과 사근동을 끼고 한 바퀴 도는 노선이며, 한양대병원 교차로에서 끝난다. 교통량은 한산한 편이다.

사근삼거리에서 마장동 쪽으로 꺾으면 내부순환로 사근램프가 나오는데, 이름과는 달리 정작 사근동 쪽으로 나있지 않고 마장동 쪽으로 나있다. 마장동 쪽으로 가다가 유턴을 해서 이용할 수 있다.

성수대교 방면으로 빠르게 진출하려면 사근고개를 넘어서 왕십리로타리로 나가지 말고, 살곶이길을 이용해 성동교로 진출한 다음, 성동교를 건너 광나루로를 이용하는 쪽이 빠르다.

원사근동 밖으로 나가면 왕십리로마조로가 지난다.

6.2. 철도

행정동 사근동의 서쪽 경계로 왕십리역이 있고, 법정동 사근동의 동쪽에는 용답역이 있다. 왕십리역에 정차하는 노선의 수가 훨씬 많고, 같은 2호선이라고 해도 용답역은 성수지선이라 신설동역에서든 성수역에서든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므로 대개 용답역보다는 서울 버스 4211을 타고 나와서 왕십리역을 이용하는 편이다.

본래 서울 지하철 2호선은 왕십리역에서 분기해서 사근고개를 지나는 지선을 뚫어 군자차량기지 인입선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1970년대라는 시대적 특성상 기술력이 부족한 관계로 사근고개 밑을 뚫고 지나가는 노선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또, 그렇게 되면 사근동 주거지 밑을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대신에 성수역에서 분기하는 지금의 성수지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본래 용답역을 이용하고자 하면 높이가 꽤 높은 사근용답간인도교를 이용하여야만 했는데, 계단이 너무 많아서 노인들은 이용하기가 상당히 힘들었고, 젊은 사람들조차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사근동 쪽에서 다리로 올라갈 때에도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용답역 1번 출구로 들어가서부터는 엄청나게 많은 계단을 타고 또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뚝방 밑으로도 다리를 하나 놓아 용답역 대합실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장마철에 청계천 수위가 올라가면 폐쇄되기 때문에 그럴 때는 부득이하게 사근용답간인도교를 이용해야 한다.

6.3. 버스

원사근동 안으로 들어가는 버스 노선은 서울 버스 4211이 유일하다. 본래 원사근동을 경유하는 노선은 77-1번과 77-2번의 두 개가 있었는데, 77-1번은 강남까지 나가는 노선이고, 77-2번은 왕십리역까지만 가는 거의 사근동 전용 마을버스였다. 이후 응봉역까지 연장되며 도시형 버스로 전환되었다.

서울 시내버스 개편 이후 77-1번 버스는 서울 버스 2411로, 77-2번 버스는 서울 버스 2220으로 개편되었고, 2411은 이후 마장동으로 종점이 바뀌며 원사근동에는 응봉역까지만 가는 2220번 버스만 남게 되었고, 강남으로 가려면 무조건 왕십리역에서 환승을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게 되었다.

2014년에 2411번 버스와 2220번 버스가 통합되어 서울 버스 4211이 신설됨에 따라 10년 만에 사근동에서도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 강남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근동에서 4211번을 타고 강남까지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왕십리역까지 가는 인원들이다. 사근동에서 강남을 가려면 왕십리역에서 수인분당선을 타던지, 용답역에서 성수지선을 타고 성수역에서 2호선 본선으로 갈아타는 편이 훨 빠르기 때문이다.[7]

4211번은 본래 왕십리역 이후로는 꽤 한적한 노선이었지만, 사근동에 유입된 인구가 많아지면서 출퇴근시간에는 옛날처럼 사람을 꽉꽉 채워다니기도 한다.[8]

또한, 성동03-2번 마을버스가 한양대학교로 연장됨에 따라 한양대병원에서 승하차하여 골목길을 이용해 사근동으로 오고갈 수 있다.

이외에도 서울 버스 121, 서울 버스 302, 서울 버스 2012, 서울 버스 2013, 서울 버스 2014, 서울 버스 2016, 서울 버스 2222, 서울 버스 N62, 서울 버스 N73이 사근동을 경유하는데, 해당 노선들은 사근고개 바깥에서 왕십리로마조로를 경유하는 노선들이다.

7. 주거

대부분 낡고 오래된 주택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대개 1950년대에 마구잡이로 만들어진 것이라 매우 좁아 자동차가 집 앞까지 접근을 못 하는 곳들이 꽤 많다. 이런 사정 때문에 사근동길은 말이 2차선 도로지, 사실상 1차선 도로라고 할 만큼 가변에 주차된 차량들이 많다.

돈이 부족한 대학생을 상대로 한 방쪼개기 성행으로 언론에서 불명예스러운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사근동에 있는 꽤 많은 건물에서 겉으로 보기에 작은 다세대주택 건물 옆에 15개가 넘는 가스계량기가 붙어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건물들은 모두 불법 방쪼개기 건축물이다. 한 층에 4가구에서 5가구가 살고 면적은 5평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 한양대학교 쪽에는 달동네가 존재한다. 이 지역은 추후 한양대학교 기숙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외에도 한양대 기숙사가 사근동 여기저기 들어서는 중이다.

2022년 8월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2차 공모에 사근동 212-2번지 일대(1차 공모 탈락), 293번지 일대가 지원하였고 동년 12월 293번지 일대가 2차 대상지역으로 선정되었다.

7.1. 공동주택

주택명 건설사 입주 동수 세대수
사근동 벽산아파트[9] 벽산건설
이연건설
2000. 5. 1 133
사근동 중앙하이츠 중앙건설 1989. 9. 2 270
드림시드아파트 2001. 12. 1 20

8. 상권

소위 한대앞으로 불리는 지역이 이 지역이다. 마조로를 따라서 늘어선 상가는 왕십리역과 연계되어 상권이 커지고 있다.

한대부고 앞에서 꺾어들어가는 사근동길 입구는 한양대학교병원이 위치해 있어서, 약국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한양대병원 입구를 지나서 원사근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완전히 불모지로 남아있었지만 최근에는 한대앞 상권이 많이 성장하면서 사근동길을 타고 사근동 쪽으로 점점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이 파고드는 추세다. 한양대학교 기숙사가 사근동 내에 많이 만들어지면서 사근동에 사는 한양대 학생들도 많아졌는데, 그 영향으로 원 사근동 내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 많아지고 있다. 요즘은 점심시간에는 사근동의 식당들이 아예 꽉 찰 정도. 그렇지만 사근고개 안쪽과 바깥쪽(왕십리역 방면)의 상권이 사근고개에 의해 갈라져 있어서 완전한 연담화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원래는 사근시장과 사근동길 일원이 사근동의 생활상권을 이루었지만, 현재는 사근시장이 먹자골목 및 유흥가로 바뀌는 추세고, 사근동은 완전히 왕십리역 생활권으로 넘어갔다. 사근고개 안쪽은 식당 외의 상권이 다소 빈약하기 때문에 왕십리역 이마트까지 왔다갔다 해야하는데, 사근동의 어르신들이 장 보러 다니기 힘들다고 하신다.

9. 교육

대개 초등학생의 경우는 서울사근초등학교로 배정된다. 관내에 한양초등학교가 있긴 하지만 사립이기 때문에 사근동보다는 외지에서 많이 온다. 특히 사근초는 현재 초미니 학교로 한 학년에 20~30명 내외 밖에 되지 않는다.

중학교는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행당중학교, 동마중학교가 있다. 본래 한대부중과 행당중이 여중이었으므로[10] 남학생들은 성수동성수중학교경일중학교로도 많이 배정되기도 했으나 동마중학교가 생기고 행당중학교가 남녀공학으로 바뀐 후로는 성수동 소재 중학교로는 배정되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사근동 내 학령인구는 계속 줄어서 이제는 멀리 배정 보내지 않아도 가까운 학교에서 모두 수용 가능하기 때문. 현재 사근동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이라면 한대부중으로 배정된다.

고등학교는 관내에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덕수고등학교 행당분교가 있다. 한대부고는 자사고이기 때문에 일반고 배정을 할 경우에는 남학생들은 덕수고등학교나 성수동의 소재 성수고등학교경일고등학교로 배정되는 편이고, 여학생들은 무학여고나 성수고 등으로 배정된다. 한대부고도 본래 여고였지만, 자사고로 전환되면서 일반고를 지망하는 여학생들은 통학거리가 조금 늘어났다는 점이 아쉽게 되었다.

관내 대학교로는 한양대학교, 전문대학은 한양여자대학교가 있다.

10. 시설

10.1.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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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출신 인물

12. 기타

  • 사근삼거리에서 사근고개 방면으로 늘어선 은행나무가 꽤 예쁜 볼거리이다.
  • 사근용답간인도교에서 드라마 도깨비를 촬영했다. 여러 번 등장했는데, 작중 배경이 2050년대로 넘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째선지 용답역이 폐쇄되어 있었다.(...)

[A] 2023년 2월 주민등록인구[2] 당시에는 지명 한자 간소화 정책으로 이렇게 한자가 바뀌어 본래의 뜻을 잃어버린 곳이 많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동구의 옛 지명인 구천면(龜川面)도 거북이 구 자가 너무 복잡하다고 해서 아홉 구(九)로 바뀌어 구천면(九川面)이 되었다.[3] ...는데 한양대학교에는 미술대학이 없다. 사범대학 내에 응용미술교육과가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와전된 전설인듯 하다.[B] 2022년 10월 주민등록인구[5] 2010년만 해도 편의점은 하나도 없었고 동네 마트와 가게뿐이었다. 현재는 대학생이 많아지는 추세라 각종 먹을거리 가게가 많아지고 있다.[B] [7] 물론 3호선 압구정역 일대는 거리가 짧고 다른 방법으로 가기 불편해서 메리트가 있다. 단 학동역과 언주역, 역삼역은 분당선에서 환승을 하는 경우가 많다.[8] 한양대동문, 한양여대 방면의 통학 수요도 많다.[9] 본래 '사근동 벽산이연 아마빌레'라는 이름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벽산아파트로 단순하게 이름이 바꼈다.[10] 한양여중, 행당여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