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 57[1] |
1. 개요
부가티가 1934년부터 1940년까지 총 710대를 생산한[2] 그랜드 투어러. 부가티의 전설적인 차종으로, 부가티의 설립자 에토레 부가티와 그의 아들 장 부가티[3]가 개발했다.차량의 엔진은 장 부가티가 타입 49를 기반으로 상당수를 개량한 3,257cc DOHC 엔진이 들어가며, 타입 57은 크게 타입 57과 타입 57s/57sc로 나누어진다. S는 프랑스어 'Surbaissé'에서 온 차체 따위가 매우 낮은이라는 뜻의 두문자어고, C는 프랑스어로 슈퍼차저를 뜻하는 Compresseur에서 온 두문자어다.
2. 모델 구분
2.1. 타입 57
2.1.1. 타입 57T
2.1.2. 타입 57C
2.1.3. 타입 57C 탱크
2.2. 타입 57S/57SC
2.2.1. 1935년식 타입 57 에어로리테 섀시 번호 57331 프로토타입
1935년 영국 국제 모터쇼에 전시된 모습 |
이 차의 이야기의 안타까운 점은 기본적으로 타고 다니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거의 실험용 차량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5] 이 차는 런던에 계속 있다가 1936년에 다시 부가티 공장으로 옮겨져서 아래의 부가티 타입 57s/sc 애틀랜틱을 만들 구성품들을 확보하는 목적으로 분해 해버림으로써 결국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6]
2.2.1.1. 복원
하지만 2008년 부터 총 5년간에 걸쳐, 캐나다의 클래식카 복원 업체인 'Guild of Automotive Restorers'에서 에어로리테의 정보들과 원본 부품들을 최대한 활용해 거의 완벽하게 복원했다.[7]2.2.2. 타입 57 S/SC 애틀랜틱
Bugatti type 57s/sc Atlantic[12] |
<colbgcolor=#000><colcolor=#fff> Bugatti Type 57SC Atlantic | |
생산지 | 프랑스 알자스 몰스하임 |
전작 | 1935 부가티 타입 57 에어로리테 |
전장 | 4,521 mm |
전폭 | 1,676 mm |
전고 | 1,470 mm |
휠베이스 | 2,980 mm |
앞 윤거 | 1,349 mm |
뒤 윤거 | 1,349 mm |
엔진 | 직렬 8기통, 주조 철 블럭, 드라이 섬프 |
과급 방식 | 슈퍼차저 |
밸브계통 | 기통당 2밸브, DOHC |
카뷰레터 | 스트롬버그 UUR-2 카뷰레터 |
배기량 | 3,257 cc |
보어 | 72 mm |
스트로크 | 100 mm |
압축비 | 8.5:1 |
최대 출력 | 210 bhp @ 5,500 rpm |
회전 한계 | 5,500 rpm |
변속기 | 4단 수동변속기 |
구동방식 | 앞 엔진 세로배치 후륜구동 |
조향 장치 | 웜 앤 섹터 롤러 |
전륜 서스펜션 |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 |
후륜 서스펜션 |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 |
전륜 브레이크 | 드럼 |
후륜 브레이크 | 드럼 |
전륜 | 18 x 5.5 인치 |
후륜 | 18 x 6.5 인치 |
공차중량 | 953kg |
디자이너 | 장 부가티, 조셉 월터 |
출처 | # |
이 때문에 차체 한가운데엔 경계선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것이 의외로 대중들에게 독특하고 멋있는 디자인으로 평가받게 되어, 굳이 리벳을 쓸 필요가 없는 알루미늄 차체를 사용한 애틀랜틱에게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현재의 부가티 베이론 16.4과 부가티 시론의 차체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세로라인의 원조 또한 바로 에어로리테와 애틀랜틱이다.
애틀랜틱이라는 이름은 장 부가티의 친구였던 장 메르모의 이름에서 따 왔다. 비행기로 남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그는 1936년 12월 그의 팀원들과 비행 도중 엔진 고장으로 숨졌고, 장 부가티는 초기 생산분 2대까지 쓰였던 '쿠페 에어로'라는 이름을 그를 기리고자 애틀랜틱으로 바꾸었다.
전간기~2차 세계대전 동안의 부가티에 관한 기록은 부정확했기에 애틀랜틱은 2대 아니면 3대만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처음 생산될 적에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생산일자도 유사해서 57453번 차량과 57473번 차량은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2004년 부가티 역사가 피에르-이브 로지에가 그의 책 '부가티: 르 57 스포츠'에서 각 차량의 내역을 상세히 묘사하며 두 개체의 차이점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서는 아직까지도 정확한 정보는 알기 어렵다.
2.2.2.1. 1936년식 타입 57S(+C) 쿠페 에어로 섀시 번호 57374
2018년 페닌슐라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어워드 수상 |
그 사이 피터는 사망하기 전, '피터 멀린'이라는 수집가에게 해당 차량을 팔았고, 피터 멀린은 이 차량을 약 3600만 달러, 한화 약 463억원이라는 값에 구매했다. 그 후 2018년에 페닌슐라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어워드 상을 받았다.[19]
이 후 미국 캘리포니아의 '멀린 자동차 박물관'에 오랫동안 전시되었고, 2022년 5월에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부가티 타입 35와 함께 전시되었으며[20] 시론 슈퍼 스포트 중에도 해당 차량을 오마주한 차량이 있다.
2.2.2.2. 1936년식 타입 57SC 쿠페 에어로 섀시 번호 57453
1937년 니스 모터쇼에 전시되었던 57453의 모습 |
타입 57S/SC 중 두 번째로 생산된 차량으로, 검은색 차체에 짙은 브라운 가죽/베이지 직물 인테리어를 지녔으며 장 부가티가 만들어낸 4대의 타입 57SC 애틀랜틱 중 장 부가티가 소유한 유일한 차량이다. 생산된 후 1년 만에 행방이 묘연해졌으며, 현재도 이 차량의 행방은 알려져 있지 않다.
57453은 출고될 때부터 슈퍼차저를 장착한 유일한 SC[22] 차량이 되었으며, 1936년 10월 3일 완성되었다. 이 차는 주로 장 부가티가 몰고 다녔으며, 레이서 윌리엄 그로버 윌리엄스와 그의 아내 이본느도 자주 애용했다. 1937년에는 니스/리옹 모터쇼에 전시되었으며, 부가티 홍보 카탈로그에 실리기도 했다.[23]
몰스하임으로 돌아와서 장 부가티는 이 차량을 자주 타고 다녔지만, 1937년 7월 르망 24시에서 로베르 베누이스트가 우승하자 그에게 차를 선물했다. 로베르는 그의 팀메이트 드라이버 윌리엄 그로버 윌리엄스와 그의 아내 이본느와 친한 사이여서 셋과 함께 부아튀르 누아르를 몰곤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윌리엄스 일가는 영국으로 피난을 갔으며, 1940년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에 항복하자 베누이스트도 영국으로 몸을 피한다.
이 과정 속에서 윌리엄스나 로베르 둘 중 하나가 1939년 장 부가티가 사고로 죽기 전 몰스하임 부가티 공장에 차를 되돌려 놓았다. 한편으로 이 차는 등록상 차대 번호가 자주 바뀌었는데, 가장 처음의 번호인 본래의 차대번호는 57453에 번호판 5800 NV 3[24] 이었고, 나중엔 2번째 차대번호인 57222에 번호판 9219 NV 2,[25] 마지막으로 3번째 차대번호인 57454에 1521 NV 4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26] 오직 엔진명이 2SC로 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엔진명을 보고 이 차의 대략적인 행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차가 사진으로 남은 것은 1939년 부가티 공장의 '미캐닉 알폰스 메이어'가 허니컴 라디에이터를 장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일요일까지 일하다 남긴 것이 마지막으로, 1521 NV 4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27] 이후 에토레 부가티는 나치가 이 차에 손댈 것을 우려해 이 차를 보르도에 보내기로 했다. 이는 1941년 2월 18일 열차를 통해 보르도의 루 알프레드 데니로 보내기로 되어 있던 자동차 목록에 등장하는데, 엔진 2SC, 차대번호 57454에 '1244 W5' 번호판을 달고 있던 것이 라 부아튀르 누아르의 행방이 마지막으로 기록된 것이었다.
이후 보르도에 도착하지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이 차의 행방에 대해 전쟁 중 파괴되었다던지, 나치에 의해 압류당했다던지, 누군가에 의해 도난되었다던지, 어딘가에서 방치되고 있다던지, 또는 아예 어딘가에 매장했다던가 하는 둥 온갖 추측이 많고, 심지어는 57453이 아래 서술할 57473으로 변형되었다는 설까지 나왔지만 그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다.[28]
다음으로 이 차량을 재해석한 차량 3대가 있는데, 첫 번째는 2013년에 부가티 레전드 프로젝트인 부가티 베이론 장 부가티 에디션이고, 두 번째는 앞에서 말한 2019년 110주년을 기념해 만든 원오프 모델 부가티 라 부아튀르 누아르, 부가티 시론의 스페셜 에디션인 부가티 시론 누아르가 57453에 영감을 받아 만든 차량들이다.
위의 57453에 얽힌 이야기와 큰 의미 덕분에 이 차는 자동차 역사에서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 차가 발견만 되어도 최소 가치를 약 1억 1,400만 달러, 한화 약 1,467억 원으로 평가했다. 현재 경매 거래를 포함한 가장 비싸게 팔린 차량은 1955년형 벤츠 300SLR 울렌하르트 쿠페로, 2022년 5월 5일 미국의 소더비 경매에서 약 1억 4300만 달러, 한화 약 1897억 원에 낙찰되었다.[30] 만약 이 57453 차량이 경매에 나온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량의 타이틀을 바로 갱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31]
대부분의 클래식 부가티의 소유주와 행방이 잘 알려진 것에 비해 완전히 소멸한 수준인 57453의 행방을 찾고자 많은 이들이 시도하고 있으며, 57453이 발견될 시 소유주는 누가 될지, 부가티 본사가 57453을 구입할지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거론되고 있다.[32] 그렇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다.
2.2.2.3. 1937년식 타입 57S 애틀랜틱 쿠페 섀시 번호 57473
파괴된 57473의 잔해 |
이후 1965년, 이 차를 찾아내고 알아낸 폴 앙드레 베르송이 이 차를 가져갔다. 그는 차체의 손상된 부분을 떼어 내고 복원했으며, 없는 부품은 직접 만드는 식으로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차를 복원했다.
1977년 베르송은 복원을 마쳤으며, 유명한 수집가 니콜라 세두에게 57473을 판매했다. 하지만 복원이 이상하게 된 탓에, 어쩔 수 없이 니콜라 세두는 다시 앙드레 르코크에게 재복원을 맡겼는데, 문제들이 베르송이 57s에서 떼어낸 대시보드와 트림 조각, 엔진 블럭 등으로 레플리카로 만들어버린것이 이유가 되어 결국 재복원은 무산되었다.
그러나 2000년, 'Villa d'Este concours'라는 전시장에서 이 차량이 전시되었고, '폴 러셀' 이라는 수집가가 이 차량을 사들인 뒤 피고니가 튜닝한 것 그대로를 복원하기 위해 2차 복원에 나선다. 그 때까지 이 차를 소유하고 있는 익명의 소유주가 니콜라 세두의 차량과 베르송의 레플리카 부품을 사들여 폴 러셀의 작업장이 있는 메사추세츠 에식스에 모았으며, 러셀과 함께 원본 차량의 패널을 최대한 유지해 르네 샤타르가 탔던 사양과 완전히 동일하게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베르송이 가지고 있던 대시보드 패널에선 가죽 커버의 색상을 알아내 원래 색으로 인테리어를 복원하는 데 방향을 잡았으며, 세두의 차에 있던 계기판의 나무로 원본 애틀랜틱의 차체에 쓰인 나무를 알아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33]
그리고 마침내 2010년, 57473은 2차 복원작업을 마쳤고 '페블 비치 콩쿠르 엘레강스'라는 전시장에 전시를 하기도 하였다. 원래 이 전시는 상이 목적이었는데, 이 57473은 레플리카 차량으로 분류되어 그 어떤 상도 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위 57453과 닮았었던 해당차량은 주인 수 명을 거치며 재도색이 이루어져 원칠인 검은색을 잃었고, 피고니가 코치빌딩하는 과정에서 뒷 범퍼도 추가되는 등 원본 애틀랜틱과는 꽤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또한 원본 부품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애틀랜틱들과 달리, 여러 번 복원을 거치며 원본 부품 대신 재생품, 복제품을 사용했기에 여타 애틀랜틱보다는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차량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4개의 애틀랜틱에서 유일하게 슈퍼차저가 단 한번도 달리지 않은 애틀랜틱이다.
2.2.2.4. 1938년식 타입 57S(+C) 애틀랜틱 섀시 번호 57591
57591의 순정상태[35] |
그 뒤 복원은 1990년에 마무리 되었으며, 해당년도에 '페블 비치 콩쿠르 드 엘레강스'에 EXK 6이라는 번호판을 단 채로 전시되었다.[36] 전시된 이후 57591은 '베스트 오브 쇼'라는 상을 수상했고, 가격 경매에서 약 4000만 달러, 한화 약 515억 원에 낙찰되었다. 그 후의 전시는 여러 곳에서 두루 전시되었다. 그 때문인지 애틀랜틱 중에서는 인지도가 가장 높은차량이 되었다.
2.2.2.4.1. 미디어에서
이에 대한 내용은 Grand Theft Auto V/이동 수단/스포츠 클래식 문서 참고하십시오.
2.3. 타입 57 S/SC 아틀란테 섀시 번호 57502
2.4. 타입 57G 탱크 섀시 번호 57335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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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부가티와 부가티 애틀랜틱. 작화이다.[2] 파생 모델까지 전부 합친 생산량.[3] Jean Bugatti (1909~1939)[4] 나머지 2%는 알루미늄, 합금 정도가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5] 위 사진을 보면 여닫이 창문은 물론이고 환기구 하나조차도 없다.[6] 그래서인지 인상적인 사건들은 일어나지 않았다.[7] #공식 사이트 링크[8] 현실적으로 클래식카를 일상에서 실제로 타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며 보통 자신의 개인차고에 놓아 두거나, 전시장에 전시해 놓은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에어로리테는 원래 시제품이었기 때문에 실용성은 영에 수렴하고, 마그네슘 소재 때문에 사고라도 나면 대형 화재가 일어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더더욱 타고 다니기 곤란하다.[9] 참고로 에어로리테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만 1년이 걸렸다.[10] 타이어에 새겨져있는 글씨와 문양은 수제라고 한다.[11] 처음에는 색상이 은색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정보들을 모아보니 녹색을 띄었었다고 한다.[12]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57374, 57473, 57591, 57453.[13] 마그네슘-알루미늄 합금의 일종으로 소량의 아연, 규소, 카드뮴 등을 섞어 제작한다. 320~400도의 온도에서 봉, 관, 피스톤 등의 압축가공이 가능한 합금.[14] '슈퍼차저'를 뜻한다.[15] 한화 약 7700만원.[16] [17] pebble beach concours[18] 최우수상이다.[19] 2018년 최고의 차량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윌리엄슨 부가티' 라고도 부르기도 하였다.[20] 전시 소식.[21] 프랑스어로 검은 마차를 의미한다. 원래 이 이름이 처음 붙여진 대상은 바로 이 차다.[22] 슈퍼차저가 프랑스어로 'compresseur'이기 때문에 슈퍼차저 장착형에는 C라는 서브네임이 붙는다.[23] [24] [25] 차대번호 57222일 적 찍은 사진.
[26] [27] 사진은 바로 위 26번 각주 참고.[28] 1950년 57453이 발견되었다가 또 잃어버렸다는 익명의 기사가 올라왔으나 이 기사는 신뢰성이 없는 기사로 사실상 마지막 공식기록은 1941년의 기록인 셈이다.[29] 차라리 57453보다는 아래에 서술되어있는 57591에 가깝다.[30] 2023년 현재 한화 기준.[31] 사실 300SLR 울렌하르트의 가격도 처음부터 이런 어마어마한 가격이 붙은 게 아닌 최종 낙찰가이다. 다만 유의할 점은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57453은 최종 낙찰가가 아닌 경매 시작가가 한화 1467억원 가량일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32] 참고로 부가티는 이 차를 부가티 역사상 최고의 영광으로 제정했다. 하지만 가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기에 그 폭스바겐 그룹이라도 과연 구입이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33] 여담으로 당시 부가티 애호가들은 피고니가 튜닝 한 것으로 복원하는 것이 아닌 장 부가티가 디자인 한, '순정상태'로 복원하길 원하는 쪽도 있었다.[34] '포프'라는 발음이 마치 교황의 영어단어처럼 들려 교황이 소유자였던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교황은 이 차를 소유한 적이 전혀 없다.[35] 1973년 4월 14일에 촬영된 사진이다.[36] 수십 년 동안 번호판이 한번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37] 다만 온라인에서는 95만 달러로 10배 이상 가격이 줄어들었다.[38] 이 자동차 박물관은 부가티의 레이싱카들이 많이 전시돼있는 곳으로 유명하다.[39] 한화 46억 8842만 5008.50원.
[26] [27] 사진은 바로 위 26번 각주 참고.[28] 1950년 57453이 발견되었다가 또 잃어버렸다는 익명의 기사가 올라왔으나 이 기사는 신뢰성이 없는 기사로 사실상 마지막 공식기록은 1941년의 기록인 셈이다.[29] 차라리 57453보다는 아래에 서술되어있는 57591에 가깝다.[30] 2023년 현재 한화 기준.[31] 사실 300SLR 울렌하르트의 가격도 처음부터 이런 어마어마한 가격이 붙은 게 아닌 최종 낙찰가이다. 다만 유의할 점은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57453은 최종 낙찰가가 아닌 경매 시작가가 한화 1467억원 가량일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32] 참고로 부가티는 이 차를 부가티 역사상 최고의 영광으로 제정했다. 하지만 가격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기에 그 폭스바겐 그룹이라도 과연 구입이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33] 여담으로 당시 부가티 애호가들은 피고니가 튜닝 한 것으로 복원하는 것이 아닌 장 부가티가 디자인 한, '순정상태'로 복원하길 원하는 쪽도 있었다.[34] '포프'라는 발음이 마치 교황의 영어단어처럼 들려 교황이 소유자였던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교황은 이 차를 소유한 적이 전혀 없다.[35] 1973년 4월 14일에 촬영된 사진이다.[36] 수십 년 동안 번호판이 한번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37] 다만 온라인에서는 95만 달러로 10배 이상 가격이 줄어들었다.[38] 이 자동차 박물관은 부가티의 레이싱카들이 많이 전시돼있는 곳으로 유명하다.[39] 한화 46억 8842만 5008.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