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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하나 시티즌/역사/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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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기본 문서 모기업 하나금융그룹
연고지 대전광역시
구단 대전 하나 시티즌
유소년 18세 이하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 15세 이하 대전 하나 시티즌 U-15 | 12세 이하 대전 하나 시티즌 U-12
주요 인물 현재 황선홍 감독 | 선수단
역대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역대 주요 선수 | 프랜차이즈 선수 | 임시 결번
18
김은중,
21
최은성
시설 관련 문서 홈구장 1군 대전월드컵경기장 | 2군 대전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
이전 홈구장 1군 한밭종합운동장 | 2군 보은공설운동장
클럽 하우스 덕암축구센터
역사 구단 역사 대전 시티즌 시절 | 대전 하나 시티즌 시절 | 역대 시즌 | AFC 챔피언스 리그
기록 역대 엠블럼 | 역대 유니폼 | 역대 등번호 | 레전드 베스트 일레븐
K리그2
파일:K_League_Challenge_Trophy.png
2014
FA컵
파일:대한민국 FA컵 트로피.svg
2001
현재 시즌 2025
팬덤 관련 문서 팬덤 규모와 인기 | 서포터즈 대전 러버스 | 유명인 팬
응원 응원가 | 응원단
팬 커뮤니티 빵집넷
라이벌전 파일:수원 삼성 블루윙즈 로고.svg 축구 수도 더비
논란 및 사건 사고 사건·사고
마스코트 대전이 | 사랑이 | 자주
기타 대대강광 | It's Daejeon 축구대회 | 하나플레이컵 | DH.C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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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전 시티즌 로고(방패형).svg
대전 시티즌
Daejeon Citizen
정식 명칭 대전시티즌프로축구단
영문 명칭 Daejeon Citizen Football Club
법인명 ㈜대전시티즌
구단 형태 시민 구단
소속 리그 K리그2
창단 1997년 3월 12일([age(1997-03-12)]주년)
매각 2020년 1월 4일([age(2020-01-04)]주년)
최초 경기 1997년 4월 26일 VS 안양 LG 치타스 (안양)
최종 경기 2019년 11월 9일 VS 광주 FC (대전)
연고지 대전광역시
홈구장 변천 한밭종합운동장 (1997~2001 / 17,371석)
대전월드컵경기장 (2002~2019 / 43,535석)
상징색 자주색, 짙은 남색, 밝은 노랑색
영구 결번 18, 21
마스코트 대전이, 사랑이, 자주
웹 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파일:대전 시티즌 로고(방패형).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매각 당시 주요 인물
구단주 허태정 (대전광역시장)
대표이사 최용규
감독 이흥실
주장 안상현
우승 기록
K리그2
(1회)
2014
FA컵
(1회)
2001

1. 개요2. 시즌별 일람3. 역사
3.1. 첫 발자국
3.1.1. 김기복 감독
3.1.1.1. 1997~2000 시즌
3.2. 사상 첫 우승과 시민구단으로의 전환
3.2.1. 이태호 감독
3.2.1.1. 2001~2002 시즌
3.3. 축구특별시로 거듭나다3.4. 흔들리는 대전
3.4.1. 김호 감독3.4.2. 왕선재 감독
3.4.2.1. 2009~2010 시즌3.4.2.2. 2011 시즌
3.4.3. 유상철 감독
3.4.3.1. 2011 시즌3.4.3.2. 2012 시즌
3.4.3.2.1. 시즌 전3.4.3.2.2. 최은성 방출 파문3.4.3.2.3. 시즌
3.4.4. 김인완 감독
3.4.4.1. 2013 시즌
3.5. 축구특별시의 부활
3.5.1. 조진호 감독
3.5.1.1. 2013 시즌3.5.1.2. 2014 시즌3.5.1.3. 2015 시즌
3.6. 대전의 잃어버린 5년3.7. 변화, 그리고 기업구단으로의 재탄생
3.7.1. 이흥실 감독
3.7.1.1. HIV 감염 선수 영입 및 아웃팅 논란3.7.1.2. 시즌 후반기3.7.1.3. 하나금융그룹 매각3.7.1.4. 대전 하나 시티즌의 탄생
3.7.2. 황선홍 감독
4. 2019 시즌 코칭 스태프 명단5. 2019 시즌 선수 명단6. 역대 감독7. 유니폼8. 마스코트9. 색상 일람10. 결번11. 사건사고12. It's Daejeon 축구대회13. 여담14. 같이보기15. 관련문서16. 역대 주요 선수17. 논란의 선수18. 클럽 기록19. 유소년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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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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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전광역시를 연고로 창단한 과거 K리그2 소속의 프로 축구단이다.

1997년 대전/충남 연고 기업인 계룡건설, 동아건설, 동양백화점, 충청은행의 컨소시엄 형태로 기업구단으로 창단되었다. 하지만 1998년 IMF 경제위기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기업들 중 동아건설, 동양백화점, 충청은행이 파산하였다. 그리고 2006년 구단 운영의 재정적 한계로 인해 계룡건설이 구단을 대전광역시에 매각하면서 시민구단으로 전환되었다. 2020년 하나금융그룹이 대전광역시로부터 구단을 인수하면서 다시 기업구단이 되었다.

2003년 김은중, 이관우, 최은성의 활약으로 크게 선전하면서, 단일 경기 역대 최다 관중수 43,770명이 입장하여 축구특별시 대전이라는 슬로건을 걸게 되었다.

2. 시즌별 일람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9b2743> 파일:대전 시티즌 로고(방패형).svg대전 시티즌
시즌별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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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리그 FA컵 ACL CWC
디비전 리그 순위 경기 승점
1997 1부 한국프로축구대회 7 18 3 7 8 21 25 -4 16 16강 - -
1998 K-리그 9 18 6 0 12 20 35 -15 14 16강 - -
1999 K-리그 8 27 9 0 18 41 53 -12 24 16강 - -
2000 K-리그 8 27 10 0 17 26 40 -14 24 1라운드 - -
2001 K-리그 10 27 5 10 12 25 36 -11 25 우승 - -
2002 K-리그 10 27 1 11 15 17 40 -23 14 4강 조별 리그 -
2003 K-리그 6 44 18 11 15 50 51 -1 65 8강 - -
2004 K-리그 11 24 6 8 10 18 26 -8 26 4강 - -
2005 K-리그 8 24 6 12 6 19 20 -1 30 16강 - -
2006 K-리그 10 26 7 10 9 28 32 -4 31 16강 - -
2007 K-리그 6 27 10 7 10 34 29 +5 37 16강 - -
2008 K-리그 13 26 3 12 11 18 35 -17 21 32강 - -
2009 K-리그 9 28 8 9 11 29 38 -9 33 4강 - -
2010 K리그 13 28 5 7 16 27 50 -23 22 16강 - -
2011 K리그 15 30 6 9 15 31 59 -28 27 16강 - -
2012 K리그 13 44 13 11 20 46 67 -21 50 8강 - -
2013 K리그 클래식 14 38 7 11 20 39 68 -29 32 32강 - -
2014 2부 K리그 챌린지 1 36 20 10 6 64 36 +28 70 32강 - -
2015 1부 K리그 클래식 12 38 4 7 27 32 72 -40 19 16강 - -
2016 2부 K리그 챌린지 7 40 15 10 15 56 52 +4 55 16강 - -
2017 K리그 챌린지 10 36 6 11 19 41 60 -19 29 16강 - -
2018 K리그2 4 38 16 8 14 48 47 +1 53 3라운드 - -
2019 K리그2 9 36 8 11 17 31 47 -16 35 3라운드 - -

3. 역사

3.1. 첫 발자국

파일:대전 시티즌 엠블럼 (1997-1999).png

3.1.1. 김기복 감독

취임 기간 : 1996. 11. 21 ~ 2000.10.25
재임 시즌 : 1997~2000
3.1.1.1. 1997~2000 시즌
파일:2019010201000118800002712.jpg

구단 창단 작업은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프로축구가 출범하고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1985년 1월 대전에서도 지역 축구인들이 모여 창단 준비 위원회를 발족한 바 있다.

1996년 10월 주식회사 대전시티즌이 창설로 본격적인 창단 작업을 시작, 이듬해인 97년 3월 12일 국내 프로축구 제10 구단인 대전 시티즌이 창단식을 하고 공식 출범했다. 당시 국내 축구계는 대한축구협회를 중심으로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전 시티즌의 출범은 월드컵 유치전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대전 시티즌의 주주는 향토기업인 계룡건설과 동아건설, 동양백화점, 충청은행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했다. 당시 4개 기업이 모인 관계로 팀명에 기업의 명칭보다는 지역 연고를 강화하자는 의견이 모였고 '대전시민(Taejeon Citizen)'이라는 영문 해석을 기반으로 해 '대전 시티즌'으로 확정했다.

김기복 감독을 초대 감독으로 선임한 대전 시티즌은 1997시즌부터 리그에 참여했다. 리그 경험이 부족한 신인들이 대부분이었던 대전은 젊은 패기와 빠른 템포의 공격력을 앞세워 당시 K리그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연고 지역 팬들에게는 패기 넘치는 경기운영으로 강한 이상을 남겼다. 순위는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1997시즌과 1998시즌 2년 연속 페어플레이상을 받았고 1998시즌 아디다스컵 A조 4위, 필립모리스컵 6위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나타냈다.

창단 이듬해인 1998년 대전 시티즌은 첫 번째 위기를 맞았다. IMF 외환위기 사태가 지역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면서 대전의 주주였던 동아건설, 동양백화점, 충청은행이 파산했다. 유일하게 계룡건설이 홀로 남아 대전 시티즌에 재정 지원을 했으나 수십억에 달하는 구단 운영비를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3.2. 사상 첫 우승과 시민구단으로의 전환

파일:대전 시티즌 로고(2000~2002).svg

3.2.1. 이태호 감독

취임 기간 : 2000.10.26 ~ 2002.12.30
재임 시즌 : 2001~2002
3.2.1.1. 2001~2002 시즌
파일:external/www.kfa.or.kr/20121017184410.jpg

재정적인 압박 속에서 2001 시즌 대전 출신 이태호 감독이 새롭게 팀에 부임하였고, 당해 대전월드컵경기장으로 홈구장을 이전했다.

대전 시티즌에는 1997년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팀의 외로운 에이스 역할을 소화하던 '샤프' 김은중이 있었는데 그 전까지 미드필더진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하면서 혼자 골문 앞에서 악전고투하던 김은중에게 꿀같은 패스를 쏙쏙 잘 넣어주던 이관우는 최고의 조력자였다. 이 둘의 활약으로 대전 시티즌은 2001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FA컵 우승을 하기도 하는 등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1] 참고로 이 경기는 FA컵 역대 최다관중인 40,000명이 입장하였다. 당시 리즈 시절이었던 포항의 이동국과 대전의 김은중의 대결로 주목을 받았다. 링크 참조

김은중은 16강 강릉시청 축구단전, 8강 안양 LG 치타스전, 4강 전북 현대 모터스전, 결승 포항 스틸러스전에 모두 출전하여 골을 터뜨렸다. 대전이 FA컵에서 우승하며 넣은 골은 총 6골인데 그 중 4골을 김은중이 책임졌다. 나머지 두 골은 정영훈파파 오마르 콜리가 한골씩 넣었다.

FA컵 우승 자격으로 사상 처음으로 참가한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작은 성과를 보였는데, 조별 리그에서 가시마 앤틀러스와 상하이 선화를 꺾은 것이었다. 그러나 타이의 BEC 테로 사사나에 밀려 2위에 머물러 토너먼트에는 진출하지 못하였다.

2002년에 일어난 또다른 변화는 IMF 위기 때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계룡건설이 대전에 대한 후원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타이거풀스의 인수 얘기도 돌았으나 무산됐고, 위기의 상황에서 다행스럽게도 대전광역시청이 대전 시티즌에게 재정적 후원을 약속함에 따라 이듬해에도 계속 리그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태호 감독이 부임하는 2년동안 대전은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고, 특히 2002시즌 대전은 리그에서 단 1승밖에 못거두는 최악의 부진을 거두면서 결국 이태호 감독은 사임하였다.

긍적적인 평가와 비판이 공존하는 명암이 매우 뚜렷했던 시기였다.

3.3. 축구특별시로 거듭나다

3.3.1. 최윤겸 감독

취임 기간 : 2003.01.08 ~ 2007.06.30
재임 시즌 : 2003 ~ 2007

2002년에는 대내외적 악재에 시달렸지만 2003년 당시 구단주였던 염홍철 대전시장의 지원 및 최윤겸 감독의 지도로 팀을 추슬러 반등에 성공하며 그야말로 리즈시절을 누렸던 해였다. 공격형 미들 이관우를 비롯하여 좌우 날개에 공오균, 김종현, 알리송 등 빠른 발을 가진 선수들과 최전방 김은중으로 이어지는 공격라인에 주승진, 최윤열 등의 노련한 수비진과 최은성이 버티고 있는 골문 등 역대 대전 전력 중 가장 조직력과 짜임새를 갖춘 시즌이 2003 시즌이었다.전년도 단 1승에 머물렀던 팀이 그야말로 환골탈태하여 팀 연승 기록을 갈아치우며 홈승률 77.3%, 평관 1만 9천, 주중 최다관중 4만 3천 7백명을 기록한다. 그야말로 대전의 전성기. 구단도 시민들도 행복했던 시간이었다.[2] #

또한 2006년 신인으로 입단한 배기종이 좋은 활약을 보이며 축구팬들이 뽑은 '2006년 가장 기대되는 최고 신인선수'에 선정되는 등 염기훈과 함께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급부상하였다. 하지만 그 해 여름 전남 드래곤즈와 사전접촉을 했다가 적발되었고, 이에 대전 구단은 처벌 대신 배기종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의 이적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배기종이 이를 거절하면서 대전 구단은 그 해 12월 1일에 그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하면서 배기종은 신인상을 놓쳤고, 팬들로부터 '배신기종'이라는 별명을 얻는 등 큰 비난을 받았다.

2007년에는 3월 최윤겸 감독이 이영익 코치를 폭행하여 중상을 입힌 불미스런 사건을 일으켜 사임 의사를 표명하였지만, 대전 구단 측에서 6개월 감봉의 징계를 내린 뒤 이영익 코치와 화해시켜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6월 폭행 혐의로 이영익 코치가 최윤겸 감독을 고소하면서, 결국 최윤겸 감독과 이영익 코치 둘다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다. 이에 최윤겸은 대전 구단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고, 2007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최윤겸 감독에게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2년, 축구교실 사회봉사 80시간의 처벌을 받았다.

3.4. 흔들리는 대전

3.4.1. 김호 감독

취임 기간 : 2007.07.13 ~ 2009.06.26
재임 시즌 : 2007 ~ 2009

최윤겸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 참가했었던 김호가 사령탑에 올랐다. 최윤겸이 사임할 당시 순위는 11위였으나, 데닐손과 김호의 애제자 고종수의 활약으로 7위까지 올라섰다. 이후 2007 시즌 정규리그의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FC 서울이 승점 37점을 기록하고 있었고, 대전은 34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FC 서울의 마지막 경기 상대는 12위의 대구 FC, 대전의 마지막 상대는 2위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였다. 절대적으로 서울이 유리한 라운드에서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다. 대구가 서울을 1-0으로 꺾었고, 대전이 수원을 1-0으로 꺾은 것이다. 대전과 서울의 승점은 동일하였고, 심지어는 득실차까지 +7로 똑같은 상황에서 대전이 다득점을 통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 울산에 패배했지만, 사상 첫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였고, 2008 시즌에 13위를 차지하여 총 팀 숫자와 무관하게 기록상으론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부진한 성적 이외에도 김호는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구설수에 올랐고, 결국 2009 시즌 중반 성적 부진 문제와 더불어 구단과의 마찰로 사임했다.

자세한 내용은 김호/비판 및 논란 문서 참조

3.4.2. 왕선재 감독

대행 기간 : 2009.06.27 ~ 2009.10.26
취임 기간 : 2009.10.27 ~ 2011.07.02
재임 시즌 : 2009 ~ 2011
3.4.2.1. 2009~2010 시즌
김호의 사임으로 수석코치를 맡고 있던 왕선재가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둬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2010시즌 개막전부터 2-5로 신나게 털리더니 3라운드 대 강원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거 외에는 전패를 기록했으며, 3월 28일 역시 최하위권인 대구와의 이른바 '매직 매치'에서도 1-2로 패배, 이제 더 내려갈 곳이 없는 듯 여겼으나.

역시 대구와 마찬가지로 라이벌인 수도권 모 팀이 밑바닥을 책임져주고 있어 그나마 11위를 찍고 있다는데 위안을 삼고 있다. 덤으로 수도권 모 팀과 똑같이 막장을 달리고 있는 경북의 모 팀에게선 원정경기를 뛰러가서 승점까지 뜯어왔다. 참고로 수도권 모 팀은 2010년 5월 현재 리그 꼴지. 그러나 그 모 팀은 후반기 감독을 바꾸면서 치고 올라가 7위로 마쳤고, 대전은 그냥 저냥 평범한 하위권으로 마무리했다.
3.4.2.2. 2011 시즌
파일:news1306717562_249281_1_m.jpg
신뢰로 거듭나겠습니다.

권집은 중국으로 떠났고, 임대와서 활약한 어경준의 완전 영입도 실패했다. J리그로 임대갔던 박성호가 돌아왔지만, 그걸로 끝. 무엇보다 팀의 상징이던 우승제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가버렸다. 그리고 과거 팀의 상징이던 이관우는 끝내 영입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전력보강 차원에서는 암울함 그 자체. 이 정도면 초반은 포기하는 게 나을 정도로 암담한 상황.

하지만 이번 시즌 브라질에서 데려온 용병 박은호[3]가 시즌 초반 맹활약을 펼쳐주고있다. 특히 개막전 울산과의 경기에서 보여준 2방의 프리킥은 정말 해외에 내로라하는 프리키커 부럽지않은 프리킥 골이었다. 더구나 서울과 경기때도 상대 수비 실수를 틈타 선제골을 넣어 1:1로 비기는데 큰 공헌을 했다. 이후 2경기에서도 모두 이기며 예상을 뒤엎고 당당히 1위 등극

그리고 4월 10일 작년 시즌 준우승팀인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중간에 선수 1명이 경고누적에 의한 퇴장을 당해 숫적으로 불리하게 되었으나 최선을 다한 결과 무승부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리그 1위도 수성.

이후에 많은 승점을 챙기지 못해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아직 무패다. 얇은 선수층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우승은 힘들지 몰라도 6강은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성적. 그러나 중반부터 DTD의 법칙 때문인지 연패하여 지금은 더 막장인 성남강원 바로 위인 14위.

6월, 승부조작 관련으로 8명의 선수가 영구제명되었고 감독과 사장을 포함한 모든 프런트가 사표를 냈다.[4]

7월 2일, K리그 전남전을 앞두고 왕선재 감독이 신임 사장으로부터 전남전을 마지막으로 경질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고, 다음날 왕선재 감독은 사임했다.

7월 6일 왕선재 감독의 후임으로 유상철 춘천기계공고 감독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편 최윤겸 감독도 유력하다는 보도도 나왔다.

나름 여러 후보를 염두에 둔 듯 보이나 가뜩이나 퍅퍅한 시민구단 형편에 승부조작 여파로 팀이 박살난 상태인데도 별반 비전 없이 아무 감독이나 막 찔러보는 모양새라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현재 무직 상태인 최윤겸, 김학범 감독이야 그렇다고 쳐도, 현직 부산 아이파크 김인완 코치를 빼오려 드는 건 대체 뭐하자는 플레이인지..

이렇게 팀이 망가지고 기세가 망가지며 초반의 기세는 밥말아 먹었는지 포항에게 7:0으로 발리고 경남에게도 7:1로 떡실신.
대행 기간 : 2011.07.03 ~ 2011.07.16
재임 시즌 : 2011

3.4.3. 유상철 감독

대행 기간 : 2011.07.20 ~ 2012.12.01
재임 시즌 : 2011 ~ 2012
3.4.3.1. 2011 시즌
7월 17일, 유상철 춘천기계공고 감독을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선임했다.

여담으로, 대전 골키퍼 최은성(1971)은 유상철과 동갑이자 같은 2002년 월드컵 멤버였다.

7월 18일, 우려했던 사태가 터졌다. 유상철 신임 감독의 계약안 가운데 사장이 계약해지를 할 수 있는 옵션을 삽입했음을 사장 스스로 밝힌 거다.

이전부터 축구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된 문제인데, 김광희 현 대전 사장은 전직 행정공무원 출신으로, 축구와 무관한 낙하산 인사라는 것. 더구나 아직까지 클럽하우스조차 없을 만큼 형편없는 지원을 받고 있는 시민구단인 만큼, 유상철 감독의 앞날은 가시밭길… 아니, 안 봐도 비디오일 듯 싶다.

더구나 2013년부터 승강제 도입과 함께 대구 FC가 긴급 체제로 전환, 클럽하우스 건립과 전용구장 신축 등까지 언급하며 필사적으로 승강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과 대비된다.

그러나 강원과의 단두대 매치에서 1:0으로 승리. 이후 휴식기를 맞이했는데 그 휴식기 동안 '미친왼발' 이상협을 제주에게서 임대 영입하였다. 그러나 수원에게 4:0으로 떡실신당하고 제주와 무승부.

결국 최종 성적은 6승 9무 15패에 리그에서는 15위로 2011 시즌을 마무리했다.
3.4.3.2. 2012 시즌
3.4.3.2.1. 시즌 전
2011 시즌이 끝나고 잠시동안 조용하다 승부조작으로 파탄난 팀을 그나마 먹여살린 박성호가 포항의 이슬기와 김동희랑 1:2로 트레이드되고 한재웅은 전남이랑 1:2 트레이드, 그리고 김성준이 성남으로 이적, 게다가 외국인 선수들은 바바만 남겨두고 박은호와 백자건은 방출.(박은호는 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스르로 입단하며 떠났다.)

그러나 강원에서 정경호를 영입하고 전북에서 '형컴' 김형범을 임대. 하지만 여름 이적시장 때 김한섭과 트레이드해서 얻어온 김영빈이 상주 상무로 입대해버렸지만 성남에서 장신 공격수 한그루를 영입했고 또 벨기에 출신의 장신 공격수 케빈 오리스 K리그 활약장면를 노리고 있었는데 진짜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또다른 용병으로 멕시코 출신의 토레스를 영입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래도 경남에서 공격수 한경인과 골키퍼 김선규를 데려왔고, 또 브라질 출신의 단신 공격수 레우징유를 영입했다.

이렇게 준비가 잘 되어간다 싶었는데…
3.4.3.2.2. 최은성 방출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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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성의 인터뷰를 보면 대전 사장이 자신을 벌레 취급을 했다고…. 3월 22일자로 최은성은 전북 현대 모터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이 사태에 빡친 팬들은 경남 FC와의 원정 개막전과 전북 현대와의 홈개막전에서 응원용 현수막은 거꾸로 걸고 최은성 사태를 개탄하는 현수막과 피켓만 똑바로 들고 시위를 펼쳤다. 그리고 홈개막전에선 전반전 21분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며 김광희 사장과 담당 전력강화팀장의 사임을 요구하였고, 결국 최은성 사태에 책임을 지고 김광희 사장은 물러났고 후임은 전국공모로 뽑는다고 한다.
3.4.3.2.3. 시즌
3월 21일 현재 대전은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데 경남 FC에겐 3:0으로 졌고, 전북 현대에게 1:0으로 아쉽게 졌으며, FC 서울과도 잘 버텼으나 2:0으로 졌다.

24일엔 인천으로 원정을 떠나서 단두대 매치를 벌였으나 역시 1-2로 졌지만 허범산이 팀의 올시즌 첫골을 기록한걸로 위안을 삼자...가 문제가 아니라 경기가 끝나고 난뒤 대전 서포터즈가 인천의 두루미 마스코트 유티를 폭행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유티가 먼저 도발은 했지만... 폭력은 정당화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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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인해 홈 2경기 동안 서포터석 폐쇄라는 징계를 받게 되었으며, 해당 서포터즈는 1년간 대전 시티즌 경기 관전 금지 징계를 받게 되었다.

4월 1일 경기에서도 제주를 홈으로 불러들였으나 0-3으로 져버렸다. 그리고 함께 가는듯 하던 부산 아이파크에게 홈에서 져버리며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 이때까지 무려 6전 6패 1골 11실점.

다행히 4월 11일 상무와의 경기에서 2-1로 이기면서 시즌 첫승을 거두었으나 14일 성남과의 홈경기에서 0-1로 지면서 아직 홈 첫 승과 첫 골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그리고 22일 전남과의 원정경기에서도 김형범이 골을 넣었으나 1-3으로 졌다.

28일 울산전에서도 마라냥에게 두 골을 내줘서 졌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 수원을 홈으로 불러들여서는... 케빈 오리스가 두 골을 넣으면서 드디어 홈 첫 골과 홈 첫 승을 동시에 이루었다!! 수원전을 기점으로 케빈은 완전히 부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구, 경북 원정 2연전에서 각각 포항과 대구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면서 3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리더니 5월 28일 14라운드 광주와의 홈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84일만에 꼴찌 탈출에 성공했다. 이 시기에 전종구 목요언론인클럽 회장을 제 12대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그 와중에 희소식으로 드디어 클럽하우스가 건립된다! 9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내년 상반기중으로 완공할 계획이라고.

6월달 첫경기에서 강원을 3:0으로 이겼으나 전남에겐 아쉽게도 1:0으로 졌다. 그러나 성남을 3:0으로 잡고 대구와 2:2로 비기면서 상승세를 이어나가는듯 했으나...

부산에게 또 1:3으로 지고 또 강원과 제주에게 연속으로 0:3으로 지면서 상승세가 한풀 꺾여버렸다. 서울전에서도 역시 0:2로 졌으나 상무와는 2:2, 울산과는 0:0으로 비겼다.

그 와중에 7월 이적시장에서 레오와 김슬기를 떠나보내고 이정열,김병석, 테하, 정연웅, 노용훈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강화했고, 8월 첫경기 전북원정에서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이루어냈다. 비록 인천에게 0:2로 졌지만 경남과는 1:1로 비겼으며 광주를 상대로 또 2:1로 이겼다. 수원 원정에서 2:1로 이길뻔 했다가 후반 막판에 동점골을 내주고 2:2로 비겼고 스플릿 전 마지막 경기 포항전에서 1:0으로 져서 13위로 하위 스플릿 리그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초반에 유력한 강등후보였다가 지금은 만만히 볼수없는 팀이 됐다고 봐도 되려나...?

하위 스플릿 첫경기 성남 원정경기에서 지경득과 케빈의 골로 2:1로 이겼다. 인천을 불러들인 홈경기에선 1:1로 비겼고, 9월 26일엔 10년만에 한밭종합운동장에서 경기를 치렀는데, 전남을 상대로 김병석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이 경기에서 옛 대전의 스타들이 한밭종합운동장을 찾아주었다. 김기복 초대감독, 정성천 현 U-20 감독, 이관우, 장철우, 신진원, 성한수 등의 스타가 방문했는데, '시리우스' 이관우는 아직도 대전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있다고 했다. 게다가 대전 구단에선 서비스 차원에서 경기장 광고판에 이관우가 운영하던 식당인 '이관우 낙지마당' 광고를 새겨주기도 했다.

아무튼 9월 27일 현재 하위 스플릿에선 대전이 대구, 인천과 더불어 제일 잘 나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10월 7일 강원 FC와의 경기는 양팀 모두 해트트릭 기록 선수가 나오는 난타전 끝에 5:3으로 승리.

11월 28일 43라운드 경기에서 광주가 2부리그로 떨어지면서 일단 내년 시즌 K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11월 30일 유상철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축구팬 반응은 좀 미묘하다. 앞서 서술한 김은중, 최은성 말고도 대전에 몸 담았다 떠난 이들이 대부분 뒤끝작렬했던 것을 보면 프런트가 끝마무리를 개념없이 하기 때문에, 처음 유상철 감독이 부임할 때도 '적당히 단물 빠지면 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나마 해임이 아닌 재계약을 하지 않는 쪽으로 최소한의 모양새를 갖춘 것만도 다행이라는 평. 또한 대전의 열악한 환경과 재정상태, 종잇장 스쿼드를 감안했을 때, 감독 하나 바뀐다고 강등권 벗어날 수준인가유상철 감독만 믿고 가기엔 불안하다는 상반된 현실론을 내세우고 팬들끼리 의견 충돌을 빚고 있다.

3.4.4. 김인완 감독

취임 기간 : 2012.12.05 ~ 2013.10.02
재임 시즌 : 2013
3.4.4.1. 2013 시즌
3월 31일 인천을 맞아 승리하여 첫 승리를 4경기만에 가져가면서 나름대로 선전하는 듯 했으나, 8월 24일 강원을 맞아 승리하기까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면서 바닥을 기었다. 그래서 꼴찌로 가장 먼저 하위 스플릿 확정. 풀 리그가 끝났을 때 대전의 전적은 2승 8무 16패 (승점 14), 22득점 52실점.

3.5. 축구특별시의 부활

3.5.1. 조진호 감독

대행 기간 : 2013.10.03 ~ 2014.05.08
취임 기간 : 2014.05.08 ~ 2015.05.20
재임 시즌 : 2014 ~ 2015
3.5.1.1. 2013 시즌
스플릿 리그에서도 영 신통찮다. 강원과 대구가 강등권을 탈출하려 애를 쓰는 와중에도 대전은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사실상 강등이 확정된 분위기. 11월 9일 강원과의 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일단은 한 숨 돌렸으나 그 뒤로 3경기가 더 남아있어 강등 탈출은 어려워 보인다. 11월 16일 강원이 경남을 2:1로 이기며 승점 3점을 보탰고 11월 17일 지면 강등인 상황에서 성남에게 승리하며 강등확정은 짓지 않았지만 그 경우의 수는 매우 복잡하다. 시즌말미에나 폭풍의 4연승행진 중이지만 자력 생존은 이미 물건너간 상황이다. 하지만 이 절박한 상황에서 극적인 잔류를 팬들은 염원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어수선한 와중에도 클럽의 미래를 위한 클럽하우스는 1차 완공되었고 2014년 초에 선수단이 입주할 예정이다.

결국 막판 불꽃투혼에도 2013년 11월 27일 경남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강등이 확정되었다. 반면 경남은 잔류경쟁에서 사실상 승리하면서 강등걱정은 덜게 되었다.[5] 하지만 대전은 2013 리그 마지막 홈경기인 전남과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고 40라운드 베스트팀으로 선정되면서 시즌 내내 응원해 준 팬들의 성원에 유종의 미로 보답했다. 리그 최종 전적은 7승 11무 20패로 14위. 꼴지로 마무리 지었지만 시즌 막판의 투혼을 생각하면 스플릿 1라운드에서 단 2승 밖에 못 거두었던 것이 너무나 뼈아팠다.

2012년 광주에서 강등을 겪었던 주앙 파울로는 이번에는 대전에서 강등을 겪게 됐다. 그러나 35경기에 출장해 150번의 슈팅을 날려 딸랑 6득점을 성공시킨 미친 활약[6] 때문에 동정을 사긴 커녕 강등 청부사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2014시즌엔 인천으로 갔다. 이번엔?)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면 대전의 르네상스를 함께했던 비운의 스타 김은중이 뒤늦게 포항 스틸러스에서 2013시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는 것. 특히, 똑같이 대전에서 포항으로 이적한 박성호도 포항 소속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는데 골수 대전팬으로서 만년 하위권팀인 대전을 떠나 그래도 대전에서 뛰었던 선수들이 은퇴 직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중.
3.5.1.2.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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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구단 최초의 K리그 챌린지 우승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3.5.1.3. 2015 시즌
승부조작 관련 선수 영입시도, 돈을 주고 영입 발표한 선수가 메디컬 테스트 탈락[7], 지난시즌 합리적 경영으로 희망을 보여준 김세환 대표이사의 사퇴까지 뭔가 심상치 않은 시즌의 시작이다. 그나마 시티즌 팬들의 희망은 클럽하우스덕암축구센터 조성완료지난해 득점왕 아드리아노의 재계약이 확정되었다.참고자료

3월 1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2015시즌 유니폼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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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웨이 키퍼 유니폼, 홈 유니폼, 어웨이 유니폼, 홈 키퍼 유니폼 순이다.

이번 홈 유니폼은 대전의 상직색인 자주색과 남색을 세로 줄무늬로 넣어 마치 바이에른 뮌헨을 보는 듯하다.

2015 시즌 2라운드까지 마친 현재 대전은 2년전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며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다. 무득점에 경기내용까지 좋지 않아[8] 대전의 팬들은 아드리아노와 짝지어줄 장신 공격수를 원하고 있지만 양쪽 미드필더로 남은 두 명의 용병을 채우며 팬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중. 그리고 결국 3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5:0으로 대패하여 대전 시티즌 팬들은 맨탈분쇄 중.

4라운드 성남 FC와의 홈경기에서는 아드리아노가 선취골을 기록하며, 4라운드만에 클래식 첫 골을 기록했지만 그 댓가로 성남의 김두현에게 커리어 첫 해트트릭을 선사해주며 1:4로 또 완패했다. 대전 편파방송 중계에서조차 해설이 중계내내 계속 구단, 시장, 사장, 감독, 선수를 극딜한건 덤.[9]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5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에서 1: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일단 승점 1점을 얻어서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바로 2경기 연속으로 서울, 포항을 만나 0:1, 0:2로 지며 굳건히 최하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대전이 또 돌아왔다.

26일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8라운드 경기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수비수들의 맹활약과 아드리아노의 멀티골로 2:1 승리로 이번시즌 첫 승리를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로 기록했다. 경기내용만 보면 슈팅을 20번이나 허용했지만, 유효슈팅이 6번이였고(대전은 5번), 나머지는 전체적으로 짠물 수비로 승리를 가져가면서 다음 경기들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세를 몰아 FA컵 32강전에서 광주 FC에 1:0 승리를 거둬 지난 패배의 설욕을 한다.

그런데 9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2:1로 아쉽게 패배했다. 후반전에 아드리아노, 서명원을 교체한게 큰 패배 요인이였다. 10라운드에서 전남 원정에서 0:0 고급 무재배를 한다. 11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 원정에서 아드리아노가 선제골을 뽑아내며 혹시 이기는가 싶더니 2골을 내주며 역전패한다.

결국 극심한 성적부진으로 인해 조진호 감독이 자진 사퇴하였다.
취임 기간 : 2015.05.21 ~ 2015.05.31
재임 시즌 : 2015

3.6. 대전의 잃어버린 5년

3.6.1. 최문식 감독

취임 기간 : 2015.05.28 ~ 2016.11.09[10]
재임 시즌 : 2015 ~ 2016
3.6.1.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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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승 7무 25패! 구단과 감독은 책임져라!"[11]
"둔산에서 '홈런' 치지 말고 노은에서 '골'을 넣자!"[12]
극심한 부진이 이어지는 와중에 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한 날 대전 선수 몇 명이 둔산동 나이트 클럽에 갔다가 적발된 후 선수단의 해이해진 정신 상태를 비판하기 위해 대전팬들이 걸었던 걸개 내용
"최문식 감독님! 어떻게 이렇게 못해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못해요? ㅅㅂ!"
9월 9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전반에만 대량 실점을 허용하며 무기력하게 끌려가자 보다못한 대전 콜리더가 응원단석에서 확성기로 한 말이다. 이렇게 말한 후 경기장 내 쓰레기통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걷어차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렸다.[13][14][15]
너희는 #소통 우리는 #분통!
대전 시티즌 일부 선수들이 경기에 패배한 날에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자신의 SNS에 카페에서 커피 먹고 찍은 셀카를 올리자 해이해진 선수단의 정신 사태를 비판하기 대전팬들이 걸었던 걸개 내용

항목 참조
3.6.1.2. 2016 시즌
해당 항목 참조

3.6.2. 이영익 감독

취임 기간 : 2016.11.09 ~ 2017.8.31
재임 시즌 : 2017
3.6.2.1. 2017 시즌
파일:대전 시티즌 20주년 기념로고.svg 파일:대전 시티즌 20주년 기념로고(2).svg
<rowcolor=#ffffff> 20주년 기념로고
"이게 뭐예요? 최문식 때보다도 못하는 거잖아요!"
8월 27일 성남전 패배 후 버스를 가로막던 팬 한 명이 구단 직원에게 한 말

대전의 전성기였던 2007년에 수석코치였던 이영익 경남 수석코치가 대전의 10대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대전 팬들은 과거 논란의 중심이었던 인물의 복귀에 찬반이 나뉘고 있다.

이영익은 경험있는 선수들 위주의 선수단을 선언하며 2014시즌 대전의 승격주역인 장원석을 영입함과 동시에 AFC 튀비즈의 레반 셍겔리아를 임대해왔으며, 국가대표 출신으로 월드컵에도 출전했던 김진규를 영입해 주장으로 선임했으며, 이영익 감독의 전 소속팀인 경남에서 지난 시즌 득점 2위와 도움 1위였던 크리스찬과 이호석도 영입했고, 제주로부터 골키퍼 전수현을 영입하며 군입대한 박주원의 공백을 메꾸었다.[16]

3월 4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안산 그리너스 FC 창단 첫 경기이자 리그 첫 경기를 통해 이영익은 감독으로서 데뷔전을 가졌고, 대전은 전반 막판 나시모프에게 선제골을 허용하였지만, 후반 시작과 동시에 이호석이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대전의 시즌 첫골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이후 불안한 수비와 공격의 한계를 드러내며 극장골을 허용, 2:1로 패배, 불안한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이후 성남과의 홈개막전에서 나름대로의 준수한 경기력을 보이며 1:1로 비겼고, 3월 18일 서울 이랜드와의 홈경기를 통해 시즌 첫승을 기록하였으며, 이는 구단 199승이였다. 이때까지는 나름대로 괜찮았다.

3월 30일 갑자기 윤정섭 대표이사가 돌연 사표를 제출하며 정치적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고,사표 제출 하루만에 사표가 반려되며 윤정섭 대표이사는 대표이사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경기력은 나쁜 것 같지 않다는 평가를 받은 이영익 감독이었지만 4월 22일부터 6월 5일까지 7연패를 기록하며 부진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고, 5월 14일 경남전 패배 이후로 계속 꼴지 행진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 FIFA U-20 월드컵 개최 문제로 한달 가까이 홈경기장과 클럽하우스를 사용하지 못하며 대회 기간 동안 임시로 보은에서 지내야하는 불편까지 겪어야만 했다.

6월 13일 수원 FC전 4:3 승리를 통해 리그 2승을 거두며 연패를 끊어냄과 동시에 구단 통산 200승을 거두었다.

시즌 도중인 6월 19일, 경남 FC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박주성전상훈을 영입하였고 대신 강승조를 경남으로 보냈다. # 또한 2014시즌 대전의 승격의 주역인 김찬희가 소집해제 후에 복귀했고,[17] 기존 외국인 선수였던 페드로를 내보내고 브루노를 영입하였으며, 조예찬, 남윤재, 김정주를 모두 경주 한수원으로 임대보냈다.

네명의 새로운 선수들은 7월 3일 FC 안양과의 홈경기를 통해 처음 기용되었고, 모두 다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김찬희와 브루노가 나란히 한 골을 기록하며 2:0 승리를 거두었으며, 8월 5일 수원 FC와의 홈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대략 3개월만에 리그 최하위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곧바로 수원 FC가 부천을 상대로 거주며 대전은 다시 꼴찌로 추락하였다고, 8월 들어 경남과 성남과의 연이은 두경기 서 4골씩, 총 8골을 실점하는 등 다시 부진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8월 31일 이영익 감독이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김종현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잔여 시즌을 지휘하게 되었다.
취임 기간 : 2017.08.31 ~ 2017.11.29
재임 시즌 : 2017 ~

9월 3일 부산전을 통해 김종현이 감독 대행으로서 첫 경기를 치렀으나 수비의 잦은 실책으로 붕괴되면서 2:4로 패했지만, 9월 10일 아산전에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였다.

당시 대전은 전반에만 장준영이 부상으로 나가고, 박재우가 퇴장당하는 등의 안좋은 분위기 속에 전반에 한골을 허용하며 끌려다니는 상태였다. 이에 김종현은 장준영과 교체투입되어 올시즌 첫 경기를 소화하는 센터백인 문진용을 전진에 배치하는 사실상의 도박을 감행하였고, 이는 신의 한수였다. 문진용은 세트피스 상황시 제공권을 바탕으로 위협적인 헤딩을 시도함과 더불어 위협적인 슈팅을 기록하는 등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후반 막판 김찬희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였다. 이후 후반 추가시간에 황인범이 역전골까지 성공시키며 김종현 감독 대행 부임 후 첫승과 시즌 첫 원정승을 거두었다.

이후 연이은 경기에서 김종현은 아산전에서의 기적을 다시 한번 선보였다. 9월 16일 리그 1위 경남과의 홈경기서 대전은 전반에 장원석이 퇴장당하고 한골을 허용하는 등 아산전과 똑같이 전반을 끝냈으나, 후반들어 두골을 기록하고 특히 두번째골은 후반 추가시간에 기록하며 두경기 연속으로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 속에 극장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시즌 첫 연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9월 23일 수원 FC전에서 3:2로 패하면서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입이 좌절되었고, 이후 4경기 연속 무승을 거두며 꼴찌 탈출 역시 희미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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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과거 대전 시티즌을 이끌고 K리그 챌린지 우승과 승격을 이끌었던 부산 아이파크 조진호 감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많은 대전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대전 구단 역시 SNS를 통해 조감독의 사망에 대해 애도를 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윤정섭 사장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장직에서 사임하였다.

10월 22일 성남 FC와의 원정 경기서 1:1 무승부를 거두면서 잔여 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2017시즌 K리그 챌린지 최하위가 확정되며 K리그 챌린지 우승 경험팀으로서의 자존심을 구겼다.

안산과의 리그 폐막전에선 1:0으로 지고 있다가 후반 막판 극장골로 가까스로 무승부를 연출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면서 그나마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켰다.

3.6.3. 고종수 감독

취임 기간 : 2017.11.24 ~ 2019.5.20
재임 시즌 : 2018~2019.5
3.6.3.1. 2018 시즌

이런 팀을 응원할 수 없다.
2018시즌 홈 개막전에서 대전팬들이 내걸은 걸개 내용
우리 집 개 이름은 김호라지요!
김호가 누구야
김호가 누구야
김호가 누구야
우리집 개이름!

2018년 4월 14일 아산 무궁화 FC와의 홈경기에서 대전 서포터즈들이 개사해서 부른 노래이다.
"오늘 경기 승패와 상관없이 4위 확정짓고 플레이오프 진출했지만 이걸로 다 잘되었다고 할 수 없다. 경기장에 많은 팬들이 찾아와주셨지만 소리내어 응원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다. 답답한 상황이다. 이들의 내재된 갈망을 풀어주어야 한다. 구단이 귀를 열고 팬들과 소통해야 한다. 이번 시즌 얻은 성과는 순수하게 고종수 감독과 선수들이 해낸 것이지 구단은 도운 게 없다."
김영철 CMB 해설위원[18]
"저희 대전을 너무 사랑해서 잠시 팀을 멀리 하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염치 없지만 다가오는 플레이 오프만큼은 열심히 땀흘리며 준비하고 노력한 선수들을 위해 한 목소리로 응원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황인범

2017년 11월 1일 과거 대전 시티즌을 감독으로 이끌었던 김호가 대표 이사로 선임되었으며, 김호와 용인시축구센터에서 함께해 온 이기범 신갈고등학교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내정했다.

하지만 일단 김호는 과거 감독 시절 에이전트 비리 등의 불미스러운 일로 대전 구단을 떠났으면서, 용인시축구센터에서도 불미스러운 일로 사퇴 압박을 받은 사람이였으며, 이기범 감독 역시 김호와 마찬가지로 용인시축구센터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음과 더불어 프로 감독 경력은 고사하고 프로팀 코치 경력조차 제대로 없는 초짜 감독이였으며, 팬들의 어떤 동의도 없이 이루어진 감독 선임이여서 많은 팬들의 반발을 샀다. 또한 프로팀 지도 경력이 전혀 없는 이기범이 사실상 김호의 바지 감독이 될 것으로 예측하며 많은 대전팬들이 이 둘의 선임에 크게 반발하였다.[19]

이후 김호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기범은 대전의 2군팀이나 유소년팀 감독이 될 것이라며 이기범 감독 부임설을 일축했고 사실상 과거 수원 삼성 감독 시절 지도한 제자들 중 한명이 새 감독이 될 것으로 점쳤으며, 11월 24일 과거 대전 시티즌의 선수 출신이자 김호의 애제자이기도 한 고종수 수원 삼성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내정하였다. 포털 사이트 댓글이야 당연히 환영 일색이지만, 고종수의 지도 능력과는 별도로 이것 역시 김호가 능력을 보고 뽑았다기 보다는 자기 말을 잘듣는 사람을 뽑은 것, 즉 자기 사람 심기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또한 일부 팬들은 단지 고종수가 이기범보다 선수 커리어가 더 화려할 뿐이지 고종수나 이기범이 둘 다 감독 경력 제대로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똑같고, 뭐가 어찌됐든 2015시즌부터 2017시즌까지 3년 연속으로 경험 없는 신인 감독으로 인해 폭망했는데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랍시고 또 신인을 감독으로 뽑았다는 이유로 고종수 선임 역시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12월 1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취임식을 통해 고종수는 공식적으로 대전 시티즌 감독직에 취임하였는데, 문제는 고종수가 인터뷰에서 김호 대표이사에게 많은 걸 배워야겠다는 생각이며, 전술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런 걸 다른 감독님들께 묻는 건 옳지 않기에, 김호와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돼 대전 감독직 제안을 받아들였으며,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대표님이 있으니 그 장점을 최대한으로 배우겠다고 말했다.

프로축구팀의 감독 자리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자리지 배우는 자리가 아닌데, 그런 감독이라는 직책을 맡고 대표이사에게 배우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고종수 역시 사실상 김호의 바지 감독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리고 고종수 감독은 자신을 보좌할 수석 코치로 김진우를 선임했는데, 문제는 김진우 역시 수원 삼성 레전드 출신이라는 것이다. 대전 구단의 사장부터 감독, 코치까지 모든 사람이 수원 삼성 출신 인물로서 자칫 대전 구단이 수원 삼성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대전팬들은 우려하고 있으며, 감독 뿐 아니라 기존의 사무국장을 내보내고 사무국장 신규 채용공고를 특정 구인사이트에만 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무국장 역시 김호의 사람으로 뽑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으며, 전지훈련 용역업체 역시 자신의 측근 인사가 운영하는 업체를 선정하는 등 막장 행정을 선보였으며, 결국 이번 감독과 대표 이사 선임 문제 등과 더불어 요 몇년새 성적이나 구단 운영이나 발전은 고사하고 퇴보하면서 비상식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대전 시티즌 구단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 난 팬들이 대전시티즌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사태로 까지 번졌다.

한편 2018시즌을 앞두고 브라질인 페드로를 영입하며 첫 영입을 알렸는데, 문제는 이번 페드로 영입 발표 과정에서 선수의 나이를 잘못 보도하며 현재 대전 구단 상황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임을 다시 한번 드러냈으며, 사무국장으로는 예상대로 자신의 측근 인사를 임명하였는데, 문제는 기존 황의경 국장이 김호의 퇴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약된 2월까지 근무할 뜻을 피력했고, 새로 임명된 사무국장도 올부터 출근을 시작하면서 현재 대전시티즌은 2명의 사무국장이 근무하는 기이한 조직이 돼 버렸으며, 2018시즌까지 뛰는 것으로 계약을 연장한 브루노에게 일방적인 방출 통보를 날리면서 이에 브루노 측은 FIFA의 선수 보호 규정에도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반발하였으며, FIFA에 제소를 비롯해 계약된 올 시즌까지의 잔여 연봉을 요구한다는 계획임을 밝히면서 김호의 독불장군식 운영과 혈세 낭비 자초가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으며,# 또한 김호는 감독 시절과 마찬가지로 신인 선수들을 20명 가까이씩이나 영입하며 선수단을 싹 갈아엎었고, 선수단 규모를 무려 50명 대로 늘리는 무리수를 두었다.[20] 또한 브루노뿐 아니라 다른 일부 선수들에게도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계약 해지를 강요하고 숙소 입소와 훈련 등에 배재하면서 7,8명의 대전 선수들이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에 제소를 하면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

한편 2월 들어 대전 시티즌 비상대책위원회는 정상화 추진 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대전 구단에 김호와 고종수의 과거의 사건을 비롯한 일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소명 요청서를 서면으로 제출하며 본격적으로 단체 행동에 들어섰는데,# 이에 김호는 '반대는 하지 않지만 책임질 사람이 나와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은 안된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묻는 팬들에게 오히려 역으로 책임을 물으며 책임을 회피함과 동시에 언론플레이를 펼치며 대전팬들에게 협박하고 나섰다.

3월 3일 부천 FC 1995와의 홈경기에서 대전은 2:1 패하며 불안한 시작을 알렸는데, 이날 경기에서 대전팬들이 과거 사건들을 비롯해서 해명할 간담회 개최를 요구하자 오히려 법적 책임을 운운하면서 팬들을 고소할 것인 것 마냥 협박하였고, 이에 대전팬들은 부천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응원을 하지 않는 보이콧과 동시에 "수원 레전드", "간담회를 개최하라", '해명하랬지 고소하랬냐?', "이런 팀을 응원할 수 없다." 등의 김호를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도 내걸었다.

이후 이기범 2군 감독의 아들인 이지호를 영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었고, 3월 7일 박인혁을 추가로 영입하며 선수가 무려 56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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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3월 11일 안산 그리너스 원정 경기를 앞두고 전 대전 시티즌 구단이 구단에 반하는 행동을 한 팬 한 명을 대전 구단이 원정 버스에 탑승하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이 밝혔지며 논란이 일었고, 이날 경기 역시 대전 팬들은 응원을 하지 않는 보이콧을 펼쳤는데, 간담회 개최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가 대전 구단 프런트들과 대립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팬 원정 탑승 거부 사태에 대해 대전 시티즌의 서포터즈인 대저니스타는 원정 버스 탑승 거부 및 원정 응원 거부 보이콧을 선언하였으며, 이 사태에 대한 구단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하였다.#

이후 대전 시티즌의 일부 선수와 구단 관계자의 제보에 따르면 전지 훈련 때부터 김호가 선수단 훈련에 상당히 관여했으며, 에이전트 K씨가 선수단 전지 훈련에도 동행하면서 워낙 구단 일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구단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대부분이 그를 구단 주무인 줄 알았다고 하며, 새로 대전에 합류한 물리 치료사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며, 무엇보다 대전의 선수들 중 김호 지인의 아들들이 선수단 중 꽤 많으며, 심지어 이 선수들은 약 3~5년 정도 장기 계약을 맺은 선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한편 안산전 때의 사태 이후 대전 구단이 유성경찰서에 경찰병력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또다시 논란이 일었다. 사실상 팬들을 폭도처럼 취급한 셈.[21]

이러한 김호와 대전 시티즌의 막장 행정과 그로 인한 세금 낭비가 청와대 청원에 올라오기도 하였다. #

4월 14일 아산 무궁화와의 경기 종료 후에는 김호가 심판에게 욕설을 퍼붙고 심판실에 난입해 고성을 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다시 논란이 일었고, 징계와 처벌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김호는 한국 축구계의 만년 야당, 비주류 인사로서 과거에서부터 이어진 한국 축구의 잘못된 관습, 문화 등에 대하여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원로 축구인이였는데, 정작 본인은 과거에나 있을 법한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남발하는 내로남불식 태도를 선보였기에 이번 사태에 있어 큰 비난을 받고 있다.

한편 이번 사태로 인해 김호는 제재금 2000만원이라는 무거운 징계를 받게 되었다. 과거에도 4차례나 경기 지연과 심판 대상 난폭 행위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전과가 있는게 요인인 듯.

하지만 클럽의 운영책임자 등 임원 및 직원이 심판 판정에 대한 과도한 항의나 난폭한 불만 표시 행위를 할 경우, 해당 클럽에 대하여 제재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상벌위 규정에 의해 김호 개인이 아닌 대전 구단이 제재금을 물게 되면서 또다시 혈세 낭비를 자초하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팬들의 지속된 항의에 간담회를 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는데, 문제는 정추위 대표가 거부한 날짜에 간담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하였으며, 이에 소통하기 위한 자리를 소통 없이 결정한다며 비난을 받아야만 했고, 이에 정추위는 간담회 불참을 선언하며 갈등은 더 깊어져만 갔다.#



이러한 구단과 정추위의 갈등에 구단이 정추위에게 구단에 대한 압박을 멈추어달라고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하였다.#

한편 시즌 후반기 들어 기적의 11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리그 4위권 내에 진입, 승격에 대한 희망이 생겼고, 준플레이오프 진입을 확정지었다.

또한 시즌 중반 황인범이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조기전역해 팀에 합류했으며, 성인대표팀에도 선발되며 김형범 이후 6년만에 국가대표 차출이라는 쾌거를 누렸다.

하지만 황인범이 부상의 여파로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광주 FC와의 준플레이오프는 승리했지만 부산 아이파크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승격은 또다시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다.

시즌 막판 김호와 유착 관계인 특정 에이전트를 통해 외국인 선수 전원이 입단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구단 직원 월급 줄 돈이 없다고 대전시가 시의회에 6억을 요구했다는 사실 등이 대거 밝혀지고, 대전 시티즌의 이사회 상당수가 대거 퇴진하고 김호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준수한 성적 때문에 한동안 잠잠했던 김호와 대전 구단의 방만한 행정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시즌 막판 다시 조성되었다.#

비록 승격은 실패했지만 리그에서 분명 좋은 성적을 내긴 했지만 예상보다 팬들과 구단의의 갈등이 지속되고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서포터즈들의 응원 보이콧이 시즌 종료 시점까지 장기화된 것에 대해서는 대전 구단이 2019시즌을 앞두고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22]
3.6.3.2. 2019 시즌
2018 시즌 막판 대전 시티즌 이사회 직원들이 대거 사퇴하는 등 김호의 방만한 구단 운영은 다시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대전 시의회 행자위원들은 '김호 책임론'을 꺼내며 1억 7천만 원을 삭감, 예결위에 올렸으며, 김호가 개혁방안을 대전시에 보고하기로 예정됐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차 갑자기 태도를 바꿔 오는 13일 이사진을 상대로 '경영개선계획'을 설명을 계획하고 또 선수 모집에 나서면서 사실상 시의회하고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결국 대전 시의회는 예결특위[23]를 개최해 대전 시티즌이 요청한 추가경정예산 6억 원을 전액 삭감했으며, 시의회 차원에서도 김호의 사퇴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결국 경영쇄신방안을 통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58명인 선수단 규모를 35명 내외로 축소하는 한편, 사무국 운영비 절감 및 자생력 강화 방침 등을 담았지만 김호는 예산심사를 진행 중인 대전시의회를 비롯한 팬들로부터 전혀 신뢰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박준혁, 윤준성 등 계약 만료 선수를 비롯한 20명의 선수를 방출하면서 선수단 축소에 나섰다.

한편 황인범은 대전에서 등번호 6번을 배정받으며 대전에 잔류하는 듯 했지만, 아시안컵이 8강에서 탈락 직후 MLS 밴쿠버 화이트캡스 FC로 이적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이적료는 20억원 안팎이고 보훔은 6억, 함부르크는 10억을 불러서 대전이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일부 팬들은 황인범이 유럽 무대에 진출하지 않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1월 31일 대전 구단 측에서 황인범의 밴쿠버 이적을 공식 발표하였다. 밴쿠버 구단 측에서도 향후 황인범이 유럽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방침이다. #

하지만 이후 한국 축구 전문 영문 웹사이트 '태극 워리어스'가 단독으로 황인범 이적에 대해 충격적인 내용을 보도했다.#

내용에 따르면 대전 구단과 특정 에이전트가 황인범의 의사는 무시한 채 유럽이 아닌 금전적으로 조건이 더 좋은 밴쿠버 이적을 추진했다고 한다.

안산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3:2 승리를 거두면서 8년만에 개막전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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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황연석, 이정래, 황재원 코치가 코치로서 필요로 하는 자격증이 없는 관계로 벤치에 없었을 뿐더러 자격증이 있는 이기범 코치마저 건강 상의 이유로 경기에 불참하면서 길레미 피지컬 코치와 고종수 감독 단둘만 벤치에 앉아 있는 촌극을 빚었으며, 뚜르스노프가 제대로 된 유니폼이 아닌 매직으로 엉성하게 쓴 이름표를 붙인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뛰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전 구단의 아마추어식 행정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고, 이후 스포츠조선이 이 사실을 일면으로 장식하면서 제대로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또한 대전 시티즌 신인 선수 공개테스트 불법 행위 논란까지 터지면서 고종수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들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사실상 사장으로서의 수명이 완전히 끝장난 김호는 3월 11일 공식 사임하였다.#

하지만 이후 권헌규 사무국장이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며 회계 규정을 어긴 것으로 드러나며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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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랜드와의 홈 개막전에서도 서포터즈들은 응원 걸게를 거꾸로 걸고 구단 문제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허태정 구단주와 구단을 비판하는 내용의 걸개 등을 내걸면서 지금 대전 구단은 단순히 김호 한명만 나간 것일 뿐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가는 것을 보여주었다.

3월 26일 새로운 대표이사를 선임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대전 시티즌이 후임 대표이사 숙고에 들어가면서 당분간 박일순 대전시체육회 사무처장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게 되었다.[24]

4월 10일 새 대표이사로 서울신문 광고국장을 지낸 최용규가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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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최용규 신임 대표이사가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과거 팬 원정 버스 탑승 거부를 비롯한 일들에 대한 사죄의 뜻을 전했다.

이후 김종천 시의회 의장이 직접 고종수 감독에게 통화를 해 특정 선수를 추천하면서 그 선수 점수가 고쳐진 정황이 포착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25]

또한 5월 5일 부산 아이파크전에서 5:0 참패를 비롯한 5경기 연속 무승으로 순위가 9위로 추락하는 부진이 이어지자 최용규 사장은 성적 저하와 선수선발 공개테스트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에 연루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것에 대한 징계 차원으로 고종수 감독 경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되었다.#

결국 5월 21일 대전 시티즌 감독직에서 전격 경질되었다.#

애초에 최용규 사장이 고 감독에게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기회도 여러차례 준 것으로 알려줬고, 실제 경질 통보 당시에도 사퇴 의사를 물었지만, 고 감독은 잔류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지면서, 구단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만큼 직무정지와 경질 사이에서 고민하던 최용규 사장은 결국 경질 카드를 꺼낸 것이었다.

또한 권헌규 사무국장에도 대기발령 처분을 내렸다. 아무래도 권헌규 사무국장 역시 김호 전 대표가 데려온 인물로서 특정 에이전트와 함께 각종 의혹에 연루돼 있는 상황이기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쇄신의 일환으로 보인다.#
취임 기간 : 2019.05.21 ~ 2019.06.30
재임 시즌 : 2019

또한 감독 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도 전원 교체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일부 대전 구단 직원이 근무 시간을 조작해 수당을 몰래 챙기다가 적발되며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5월 29일 구단 쇄신안을 공개했으며, 우선 '선수단 운영 위원회'를 신설해 입체적인 선수 선발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으며, 대전시 보조금 의존 비율이 높은 수입구조를 개선하고 팬 소통 강화와 선수단·사무국 혁신 등 구단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후 박철 대행 체제에서 2무 7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한편 김세윤이지솔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 대표팀에 차출되어 대회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3.7. 변화, 그리고 기업구단으로의 재탄생

3.7.1. 이흥실 감독

취임 기간 : 2019.7.1 ~ 2019.12.31
재임 시즌 : 2019

7월 1일 대전 시티즌의 12대 감독으로 이흥실 감독을 선임하였으며,# 2007년 이후 12년만에 K리그 감독 경력자를 선임하였다.[26][27]

취임식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팀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 서서히 강팀으로 만들어갈 생각이라며 활기차고 빠른 템포의 축구를 구상 중임을 밝혔다.

FC 안양과의 리그 18라운드를 통해 이흥실은 대전 감독 데뷔전을 치렀으나 1:2로 패했다.

한편 대전 시티즌은 브라질 1부리그 포르탈레자, 플루미넨시 구단과 국제 교류 협약 체결했으며, 브라질 국적의 마테우스 알레산드루의 영입을 통해 구단 간 성공적인 협약을 위한 첫발을 내딛는 듯 했으나.....#
3.7.1.1. HIV 감염 선수 영입 및 아웃팅 논란


알렉산드로가 HIV 양성 반응을 보이면서 입단 하루만에 계약을 해지당했다. #

애초에 플루미넨시 구단 측이 알레산드로의 HIV 보유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국제 교류 협약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사실을 대전에 전하지 않고 선수를 보낸 것이라고 알려지면서 선수단 운영위원회는 출범 초기부터 삐걱대며 불안한 시작을 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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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문제 된 것은 대전 시티즌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위와 같은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선수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HIV 감염 사실을 만천하에 아웃팅했다는 것이다. 스포츠조선 기사에 따르면 HIV 감염 아우팅은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제7조에 따르면 감염인을 진단한 사람 등은 감염인 동의 없이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되며,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등의 형사처벌도 가능한 사안이라고 한만큼 대전 구단 역시 이번 사건에 있어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또한 이번 일은 해외 언론에서도 주목하며 The Sun#,Fox Sports 호주판# 등에서 보도되었다.

결국 7월 22일 최용규 대표이사가 이번 사태에 공식 사죄했지만,# 이후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와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 커뮤니티 ‘알’에서 외국인 선수의 HIV 감염 사실을 무단으로 공표하고 이 선수를 퇴출한 프로축구단 대전시티즌 측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대해 대전시티즌 측은 “구단 측의 실수로 일어난 문제에 대해 죄송하다. 해당 선수와는 원만하게 계약해지를 하고 선수가 고국으로 돌아가 축구선수로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원 소속구단에서 새롭게 출발하기로 예정이 됐으며 선수 본인이 더 이상 이 문제가 이슈화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에이즈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과 편견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에이즈에 대한 무지와 인권에 대한 무딘 감수성을 보인 것은 대전시티즌 구단이었으나,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도 무책임하기는 뒤지지 않았다. 일부 매체는 해당 선수의 이름과 사진까지 내걸었고, 대부분 이를 ‘해프닝’처럼 보도하는 데에 그쳤다.#
3.7.1.2. 시즌 후반기
이흥실 감독은 데뷔전 패배 이후 19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전에서도 2:0으로 패하며, 무승 행진을 끊지 못했고, 이후 이인규, 박민규, 김찬, 김태현을 영입했으며, 7월 21일 수원 FC전에서 이흥실 감독은 부임 후 홈 첫 경기를 치렀으나 2:4로 패했고, 특히 이날 경기에서는 세트피스에서만 3골을 허용하며 세트피스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7월 26일부로 대전 시티즌 정상화추진위원회는 대략 1년 반만에 응원 보이콧을 철회했다.# 하지만 보이콧을 철회했을 뿐 응원 재개를 단정짓기 않았기에 응원이 재개되는대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전시티즌 정상화 추진위원회(이하 정추위)입니다.

정추위의 요청으로 지난해(2018년) 3월 3일 대전시티즌의 홈 개막전부터 시작된 응원 보이콧은 현 시각부터 해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응원 보이콧 해제’는 ‘응원의 재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정추위는 보이콧 요청을 철회한 것일 뿐 응원을 하고 말고는 모든 팬 각자의 자유입니다.

응원 보이콧 해제는 정추위 모든 위원들의 투표로 결정되었으며 최용규 사장을 비롯한 구단의 사과와 개혁 의지의 진정성을 충분히 느꼈기 때문에 결정될 수 있었습니다. 정추위의 요청에 뜻을 함께해 주신 모든 팬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이것이 완벽한 정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구단이 야심차게 준비했던 ‘선수단 운영 위원회’는 시작하자마자 용병 계약과 이를 공표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구단의 명예를 실추시킨 이 사건은 작은 일이라 할 수 없으나 우리 팬들은 한 번 더 신뢰를 보내겠습니다. 이제 대전시티즌은 정말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신중히 그리고 과감히 개혁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팬들은 더 이상 오래 기다릴 여력이 없습니다.

정추위는 당장 올해 또는 내년의 높은 성적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의 바람은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아 우리의 노력이 쌓여 무너지지 않는 진정 끈끈한 ‘100년 가는 팀’을 만드는 것입니다. 구단은 당장의 성적을 바라는 외압에 무릎 꿇지 않기를 바랍니다. 팀이 정상적으로만 운영된다면 우리 팬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그 외압을 막겠습니다. 정추위가 부당했던 구단과 싸웠던 것처럼 구단의 외압과 싸우겠습니다.

우리 정추위는 내부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협의해 보고 다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추위가 끝나는 날까지 관심 부탁드립니다. (www.dcfc119.kr)

다시 한번 정추위의 요청에 응답해주신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최용규 사장과 대전시티즌 모든 구성원 그리고 모든 팬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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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아산 무궁화와의 홈경기에서는 Daejeon Citizen without fans is nothing이라는 메시지가 전광판에 나오기도 했다.

9월 15일 서울 이랜드와의 홈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서포터즈들의 응원이 재개되었고, 이날 경기 대전은 1:0 승리를 거두면서 이흥실 감독 부임 이후 홈 첫승을 거두었다.
3.7.1.3. 하나금융그룹 매각
10월 허태정 대전시장이 돌연 대전 시티즌을 기업에 매각을 검토한다고 밝히면서 연간 100억 원에 이르는 구단 운영비 투입에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10월 16일 허태정 시장은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통해 "국내 굴지 대기업과 대전 시티즌을 기업구단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힌데 이어 "기업이 구단 운영의 주도권을 갖는다"며 "대전을 연고로 하고 대전이라는 브랜드를 쓰는 데는 명확히 합의했지만 선수와 스태프, 시설 사용 등 세부적인 논의 과정이 남았다"고 말하면서 연고지는 쭉 대전 광역시로 유지할 것임을 밝혔다.#

시는 대전 시티즌의 단순 매각이 아니라 프로축구단의 일반적인 운영방법인 대기업의 투자유치를 통한 기업구단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측도 현재 수준의 대전 시티즌을 단순히 유지하는 목적이 아니라 더 많은 투자를 통해 대전 시티즌을 국내 최고의 프로축구단으로 만들겠다는 의향을 가진 것으로 전해져 성사 가능성은 높다는 전망이다.

허나 시는 현 단계서 해당 기업에서 이름을 밝히는데 부담스럽다고 난색을 표해 기업의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지역언론은 이 대기업을 신세계로 추측하고 있다.[28] 신세계는 이미 2010년 당시에도 현재와 비슷한 내용과 조건의 인수설이 나돌았었으나 한차례 엎어진바 있다. 이 때문에 시나 기업측 모두 이름을 밝히는 것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 뿐만 아니라 한화도 언급되긴 하나 이미 한화는 같은 연고의 야구단을 운영하고 있고 축구단 운영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신세계같이 대전시에 추진하려는 사업도 없다.

전반적으로 기업구단 전환에 있어서 여론은 긍정적인 목소리가 더 많고, 분명 기업구단으로 전환되면 금전적인 문제 등에 있어서는 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만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운영 의지가 결여된 기업의 인수이라던가 인수 기업이 기존의 대전 시티즌의 역사를 부정한다면 기존 팬들에게 나와 관계없는 팀을 응원해달라고 말하는 셈으로서 결코 매각이 옳다고 볼 수 없으며, 지역 공동체를 결집시키고 프로축구 관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매개체로서의 존재 의의가 있기에 매각을 한다면 과감한 투자와 일관되고 장기적인 안목의 구단 운영이 전재 하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만 과연 그것이 잘 이루어질지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유력한 후보로 언급되는 신세계는 이미 한차례 운영중이던 여자 프로농구팀인 부천 신세계 쿨캣을 해체하려다 인수 기업이 나타나 매각한 사례가 있다. 샐러리캡이 있어 운영비가 제한적인 농구팀도 매각한 마당에 현재 신세계의 핵심 계열사인 이마트가 막대한 적자를 입으면서 자금 유동성 등 위기상황에 직면한 상태인데 이 시기에 농구단보다 운영비가 많이 들어가는 축구단을 자발적으로 인수하려 한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이에 앞서 5월에 신세계가 대한축구협회와 스폰서 협약을 맺으며 100억을 후원하긴 했지만 국가대표팀은 그만큼의 광고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후원을 한 것이고 프로팀은 사정이 다르다. 대전 시티즌이 1부 리그에 속하거나 성적이 잘 나가는 팀도 아니고, 관중 유치도 어려운 등 기업 입장에서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며 인수할 가치를 못 느끼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 시측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팀을 떠안게 된다 한들 기업에서 운영의 의지가 없으면 현재 같은 K리그2에서 하위권을 전전하는 서울 이랜드 FC의 모습이 될 게 분명하다. 그렇게 시측과 계약 기간이 끝나게 되면 기업에서는 그나마 팀을 운영할 의지를 보인다면 관중 확보가 용이한 수도권으로 연고이전을 한다거나 최악의 경우 팀 매각 또는 해체의 상황까지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시 입장에서는 해체에 대한 책임질 이유나 명분도 없고 기업 입장에서도 잠깐 욕먹고 끝날 일이고 결국 고통받는건 팬들이다.

시 측에서 사업권을 빌미로 기업에 구단을 매각하려는 이유도 명분은 구단의 발전을 논하지만 실제로는 100억원의 혈세 낭비로 인해 해체가 하고 싶은데 여의치 않으니 기업에 넘겨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더 크며, 시장 부임 전 간공원 특례사업 등 쟁점사업에 대한 가부를 결정하며 시민 공론화라는 제도를 도입, 숙의민주주의를 실천했다고 자처했으나, 일반 시민이 주주로 참여한 시민구단인 시티즌 매각을 추진하며 전체 시민 또는 주주에 대한 공론화 없이 진행하는 이른바 '독재적 행정운영’을 펼치면서 숙의민주주의를 실천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 역시 나오고 있다.#
특히 사이언스 콤플렉스 허가권으로 대전광역시와 계약에 있어 딜 여지가 있는 신세계가 유력한 만큼 사실성 이번 매각에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더불어 허태정 시장 본인에게 있어 대전 시티즌이 선수 선발 불법행위나 검찰 조사, 에이즈 감염 선수 아웃팅 등의 잡음 등의 사건 사고로 본인의 정치적 이미지에 있어 악영향만 주니까 본인의 시장 부임 이후 일어났던 사건 사고나 잡음들은 자기 책임이 아닌 거처럼 책임을 회피하면서 오히려 업적 세우기용으로 너무 졸속으로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 역시 나오고 있다.[29]

대전 시티즌 팬들의 의견 역시 기대 반 우려 반인데, 대전시티즌 정상화추진위 관계자는 "시티즌의 기업구단 전환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는 입장"이라며 "다만 구단 창단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역사와 구단의 정체성이 반드시 이어져야 하며 안정적인 구단 운영이 보장된다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히는 등 정추위 내부적으로 집계한 기업구단 찬반투표에서도 찬성이 주를 이뤘으며, 서포터즈 퍼플크루 김무권 회장은 "대전 시민의 구단이라는 자부심이 팀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였지만 시민의 혈세가 운영되는 것 역시 한계가 있지 않겠냐"며 "잇단 구설수로 팀 이미지가 실추된 상황에서 기업구단 운영에 조금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기업구단 전환이)시티즌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결정"이라며 "팬과 구단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절차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19년 10월 24일 KEB하나은행인수겸 투자를 유력시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AFC 클럽 라이센스 자격을 얻기 위해 프로축구단은 법인화가 필수고 대전 시티즌 역시 법인화가 되어있는데, KEB하나은행은 은행 고유의 업무와 관련이 없는 수익 사업을 못하도록 규정해 놓은 은행법의 존재로 프로축구단의 완전 인수가 불가능하다. 과거 고양 KB국민은행이 실업리그인 내셔널리그 우승으로 K리그 승격 자격을 얻었으나 거부한 이유도 이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만약 KEB하나은행으로 결정된다면 KEB하나은행을 필두로 한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키움 히어로즈처럼 네이밍 스폰서의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수설이 나오자 하나은행 측은 곧바로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으며, "하나은행은 현재 대전 시티즌을 인수할 정도의 재정적 여력이 부족하다”고 인수설을 재차 부인했다.#

파일:0002473785_001_20191106075845305.jpg

그러나 11월 5일, 인수설을 부인했던 하나금융그룹으로의 인수가 확정되었다. 문제가 되었던 은행법의 경우 재단법인의 형태로 구단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다만 언론 기사에 대전 연고가 당분간 유지된다는 말이 있어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전시와 연고 협약이 끝나면 상황에 따라 연고이전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으로 받아드릴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KEB하나은행이 과거 충청은행을 인수해 현재 대전시 제1시금고은행으로 있다고는 하지만, 하나은행의 뿌리 자체가 대전, 충청 지역과는 연관이 없는 게 문제. 물론, 연고지와 모기업간의 관련이 없는 기업구단들도 있다.[30] 하나은행이 처음부터 대전시에 창단을 한 것이 아니라 대전시를 연고로 하는 팀을 인수하는 것이라 모기업이 원하는 연고지는 아니었기에 위에서 언급했듯이 기업에 인수된 이상 상황에 따라 연고이전의 가능성은 있을 수 밖에 없다. 거기에 대전 시티즌 매각을 추진하고 지원을 약속한 현 대전시장 허태정이 물러나 시장이 바뀌게 되면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나마 하나금융그룹이 현재 대한축구협회와 K리그의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는 등 한국 축구계의 기여도나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100% 자발적 인수라고 보기는 힘들겠으나 대전시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여지고 KEB하나은행은 앞서 여자농구팀인 부천 신세계 쿨캣을 인수해 연고지를 옮기지 않고 현재까지 운영중이기에 앞으로 대전시와 큰 문제가 없다면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3.7.1.4. 대전 하나 시티즌의 탄생
광주 FC와의 리그 폐막전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시민구단으로서 마지막 시즌을 마무리했고, 본격적으로 구단 인수 작업에 돌입했다.

2020시즌을 앞두고 내년 초 베트남 빈증성으로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었지만 하나금융 측의 반대로 전격 취소하며 구설수에 올랐다.#

2019년 12월 16일, 대전 시티즌을 2019년 안으로 해체하고 재창단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대로라면, 대전시티즌의 내부 인사부터 선수단 까지 대폭 물갈이가 될 예정이며, 하나금융그룹 산하의 신생 재단이 운영하는 신생팀으로 창단한다고 하며, 이미 황선홍 감독과 강철 코치가 구단에 합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단의 팀컬러부터 역사, 문화, 이름 모든 것이 물갈이되면서 구단의 정체성이 훼손될 것에 팬들은 큰 우려를 표했으며, 이러한 매각 상황에 대해 대전 시티즌 정상화추진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강력히 규탄하였다.# 물론 역사를 잇겠다고 이미 회생 불가능 수준으로 물갈이가 불가능한 구단의 상태를 무시하고 그대로 인수해 버린다면 기업한테도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그대로 해체 후 재창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31]

무엇보다도 하나금융그룹에서 대전 연고를 '당분간' 유지한다는 문장이 기사에 나오면서 자칫 하나금융그룹의 대전 시티즌 인수 목적에 부합하고, 대전을 떠나 연고지를 옮길 조건이 발생하면 연고지 이전도 할 수 있다고 점쳐지기 때문에 팬들이 큰 우려를 가지고 있다.[32]

12월 24일 부로 이사회가 열려 구단 해체를 의결하였다. 법인은 2020년 5월까지 유지되지만 구단 청산을 위한 유지라 의미는 없다. 하나금융그룹과의 계약은 2020년 1월 4일 예정으로, 양수 대금은 7억원, 프론트는 2명을 제외한 대부분 고용 승계, 선수단은 41명중 22명 방출, 19명은 재계약 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2020년 1월 4일, 하나금융그룹에서 정식으로 대전 하나 시티즌이라는 이름으로 재창단했다. 재창단 이후는 대전 하나 시티즌 항목에 서술되어 있다.

3.7.2. 황선홍 감독

한편 구단의 감독으로 황선홍 감독을 새로 내정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고, 이후 황선홍 감독은 아직 확실한 것이 없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에 대전의 현직 감독인 이흥실은 인터뷰를 통해 “시 고위층과 기업이 협상해 기업 구단을 유치하는 거야 찬성이다. 좋은 현상이 아닌가. 하지만 감독에 관한 이야기는 다르다. 구단이 기업구단으로 바뀌면서 코칭스태프를 새로 꾸려야겠다면, 나는 그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론화되기 전에 내게 먼저 얘기해야 하지 않나? 절차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가 얘기를 접했다."라고 언급하며 이번 사태에 대한 씁쓸함과 당혹감을 드러냈다.#

기업구단 출범 이후 감독을 바꿀 수는 있으나, 계약기간이 2년이나 남은 상태인 이흥실 감독에게 구단이 미리 통보를 하거나 양해를 구하거나 계약 문제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 후 차기 사령탑 선임 작업을 공론화시켜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지만, 문제는 아직 시즌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그런 통보조차 하나 없었고, 이흥실 감독 입장에서는 시즌 중반 부임해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추스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즌이 끝나지 않은 와중에 언론 보도로 새로운 감독이 내정됐다고 알게 된만큼 거의 토사구팽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허탈하고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과거 유상철 감독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감독에게 예의 없는 행동을 반복한 대전 시티즌 구단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단순히 황선홍 감독 선임 여부를 떠나, 대전 구단과 구단을 인수하기로 한 하나금융그룹은 먼저 이흥실 감독에 대한 예우부터 먼저 보여야 하며, 미리 정해놓고 계약을 해지하게 되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는 건 협의가 아닌 예의 없는 통보일 뿐이다. 또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개혁하지 않은 채 단순히 대전 시티즌이 기업구단화만 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감독 선임 문제 등에 있어서 대전 시티즌 구단이 배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 역시 나오고 있다.

4. 2019 시즌 코칭 스태프 명단

대전 시티즌 2019 시즌 코칭스태프 명단
직책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국적 생년월일
감독 이흥실 Lee, Heung Sil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1년 5월 28일
수석 코치 백승우 Back, Seung Wo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3년 5월 28일
코치 이창원 Lee, Chang Won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5년 7월 10일
골키퍼 코치 권찬수 Kwon, Chan soo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4년 5월 30일

5. 2019 시즌 선수 명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9b2743><tablebgcolor=#9b2743> 파일:대전 시티즌 로고(방패형).svg대전 시티즌
2019 시즌 스쿼드
}}} ||
1 박주원 · 2 김예성 · 3 황재훈 · 4 김태현 · 5 윤경보 · 7 안토니오 · 8 박수창 · 9 박인혁 · 10 하마조치
11 김승섭 · 12 박민규 · 13 신학영 · 14 윤성한 · 16 고준희 · 17 장주영 · 19 김세윤 · 20 안상현 (C)
22 윤신영 · 23 김진영 · 25 문용휘 · 26 김지훈 · 27 키쭈 (VC) · 28 황재정 · 30 이인규 · 31 김태양
32 유진석 · 34 황도연 · 38 강한빛 · 39 이호빈 · 40 안동민 · 42 이정문 · 44 이지솔 · 45 김찬 · 66 박수일 · 77 서우민 · 99 안주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허정무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최용규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황선홍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강철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철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영근

대전 시티즌 2019 시즌
<rowcolor=#ffe900,#ffe800>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신체 조건 비고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박주원 Park Ju-won 1990년 10월 19일 191cm, 77kg
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김예성 Kim Ye-sung 1996년 10월 21일 170cm, 69kg
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황재훈 Hwang Jae-hun 1990년 11월 25일 178cm, 73kg
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김태현 Kim Tae-hyeon 2000년 9월 17일 186cm, 82kg [a]
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윤경보 Yoon Kyeong-bo 1995년 8월 16일 183cm, 78kg
7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안토니오 Matheus Antonio Souza dos Santos 1995년 6월 8일 185cm, 72kg [b]
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박수창 Park Su-chang 1989년 6월 20일 174cm, 71kg
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박인혁 Park In-hyeok 1995년 12월 29일 187cm, 77kg
10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하마조치 Ramazotti 1988년 8월 9일 193cm, 83kg
1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김승섭 Kim Seung-sub 1996년 11월 1일 178cm, 72kg
1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박민규 Park Min-gyu 1995년 8월 10일 175cm, 69kg [c]
1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신학영 Shin Hak-young 1994년 3월 4일 175cm, 64kg
1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윤성한 Yoon Sung-han 1998년 1월 18일 179cm, 77kg
1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고준희 Ko Joon-hee 2000년 2월 28일 186cm, 78kg
1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장주영 Jang Joo-young 1992년 9월 2일 177cm, 75kg
1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김세윤 Kim Se-yoon 1999년 4월 29일 173cm, 66kg
2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안상현 An Sang-hyun 1986년 3월 5일 181cm, 78kg 주장
2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윤신영 Yoon Shin-young 1987년 5월 22일 184cm, 80kg
2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김진영 Kim Jin-young 1992년 3월 2일 195cm, 87kg
2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문용휘 Moon Yong-hwi 1995년 6월 7일 186cm, 78kg
2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김지훈 Kim Ji-hoon 2000년 6월 26일 177cm, 68kg
27 파일:루마니아 국기.svg FW 키쭈 Aurelian Chițu 1991년 3월 25일 181cm, 71kg 부주장
2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황재정 Hwang Jae-jung 1998년 7월 6일 180cm, 70kg
3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이인규 Lee In-kyu 1992년 9월 16일 184cm, 78kg
3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김태양 Kim Tae-yang 2000년 3월 2일 187cm, 75kg
3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유진석 Yoo Jin-seok 1996년 2월 17일 173cm, 70kg
3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황도연 Hwang Do-yeon 1991년 2월 27일 183cm, 74kg
3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강한빛 Kang Han-bit 1993년 7월 20일 175cm, 72kg
3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이호빈 Lee Ho-bin 1993년 7월 20일 175cm, 72kg
4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안동민 Ahn Dong-min 1999년 5월 11일 177cm, 67kg
4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MF 이정문 Lee Jung-moon 1996년 2월 17일 173cm, 70kg
4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이지솔 Lee Ji-sol 1999년 7월 9일 185cm, 78kg
4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김찬 Kim Chan 2000년 04월 25일 189cm, 82kg [d]
6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DF 박수일 Park Soo-il 1996년 2월 22일 175cm, 70kg
7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서우민 Seo Uoo-min 2000년 3월 20일 171cm, 65kg
9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FW 안주형 An Ju-hyeong 1999년 1월 2일 175cm, 70kg
<colbgcolor=#9b2743> 구단 정보
대표이사: 최용규 / 감독: 이흥실 / 홈구장: 대전월드컵경기장
출처: 대전 시티즌 웹사이트

[a] 울산 현대에서 임대[b] 플루미넨시에서 임대[c] FC 서울에서 임대[d] 포항 스틸러스에서 임대

6.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0 -10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rowcolor=#ffffff> 1대 2대 3대 4대
김기복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7~2000)
이태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2002)
최윤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2007)
김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2009)
감독 대행
왕선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9)
<rowcolor=#ffffff> 5대 6대 7대
왕선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9~2011)
감독 대행
신진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
유상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2012)
김인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
감독 대행
조진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2014)
<rowcolor=#ffffff> 8대 9대 10대
조진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4~2015)
감독 대행
마이클 김
파일:캐나다 국기.svg
(2015)
최문식
(최문식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5~2016)
이영익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
감독 대행
김종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
<rowcolor=#ffffff> 11대 12대 13대
고종수
(고종수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2019)
감독 대행
박철
(고종수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이흥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
황선홍
(황선홍호(1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감독 대행
강철
(황선홍호(1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rowcolor=#ffffff> 13대 14대 15대
감독 대행
조민국
(황선홍호(1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이민성
(이민성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2024)
감독 대행
정광석
(이민성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황선홍
(황선홍호(2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 K리그1 우승 / : K리그2 우승 / : 코리아컵 우승 / : AFC 챔피언스 리그 엘리트 우승
}}}}}}}}}}}} ||
대전 시티즌 역대 감독
국적 이름 기간
1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기복 1997 ~ 2000
2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태호 2001 ~ 2002[33]
3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최윤겸 2003 ~ 2007
4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호 2007 ~ 2009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왕선재 2009
5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왕선재 2009 ~ 2011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진원[34] 2011
6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유상철 2011 ~ 2012
7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인완 2013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진호 2013 ~ 2014
8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진호 2014 ~ 2015[35]
대행 파일:캐나다 국기.svg 마이클 김 2015
9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최문식 2015 ~ 2016
10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영익 2017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종현[36] 2017
11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고종수[37] 2018 ~ 2019
대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철[38] 2019
12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흥실 2019

7.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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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스코트

파일:external/s20.postimg.org/dcfcmascot1.png
대전 시티즌의 마스코트는 대전이와 사랑이라는 이름의 계룡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곰이며, 스페인어로 자줏빛 승리의 곰 이란 의미인 뿌비오라고 불리기도 한다.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푸근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파일:FB_IMG_1519634739273.jpg
한편 2018년 새로운 이미지의 마스코트를 공개했으며, 추가로 대전이와 사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곰인 자주라는 이름의 새로운 마스코트 역시 공개했다.

9. 색상 일람

상징색 Pantone CMYK
Bloody Purple Pantone 194c C44 M96 Y70 K7
Dark Navy Pantone 282c C100 M96 Y60 K37
Neon Yellow Pantone 803c M10 Y90

10. 결번

대전 시티즌 결번
No.21 최은성 No.18 김은중

대전의 레전드 김은중이 은퇴와 함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영구결번은 아니지만 또 다른 레전드 최은성구단 사장과 프런트의 삽질로 전북 현대 모터스로 갔지만 대전 팬들의 열화같은 요구로 최은성의 등번호 21번이 21년간 기간결번으로 지정되었다.

11.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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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It's Daejeon 축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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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담

  • 2001년 FA컵 우승 후 대전이 FA컵 우승한 이야기가 KBS 인간극장에서도 다뤄졌고, 이걸 보고 대전팬이 된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극장 때문에 대전 시티즌이라는 구단이 사람들에게 만년 꼴찌팀에 맨날 지는 팀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하게 인식됐다는 평가하는 사람 역시 적지 않다.[39]
  • CMB대전방송과 퍼플방송(대전 시티즌 자체 인터넷중계)에서 대전 시티즌의 전 경기를 생중계해주고 있다.[40] CMB에선 대전지역 MC 유종화씨와 임용혁 배재대 축구분석학 박사가 캐스터와 해설을 맡아 중계를 하고 있으나 가끔 캐스터가 바뀌기도 한다. 퍼플방송에선 정영교씨가 혼자 중계를 하고 있는데, 정영교씨는 2000년부터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개인장비를 들고 경기장을 찾게 되었고, 그러다가 2008년부터 구단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으면서 기자석에서 중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시티즌이 만드는 구단, 대전시티즌 인터넷으로 Daum, Afreeca에서도 중계를 해주니 관심있는 시티즌 팬들은 매번 경기를 챙겨볼 수 있다. 그리고 CMB대전방송은 다른 지역 방송과는 다르게 정말 중립적인 해설을 하고있다. 대전사는 사람으로써 절망에 +a를 더해주는 경우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 대전은 2012년 부터 원정, 홈 가리지 않고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서포터즈들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전통이 생겼다. 2013년 2경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10번 미만의 사진을 찍었지만 이 전통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2014 K리그 챌린지에서는 깡패노릇을 하며 사진을 미친듯이 계속 찍고있었다. 그리고 2015시즌 딱 네장 찍었다
  • 2014년 골 잔치가 벌어진 덕분에 매년 시즌 말미에 나오는 구단 응원영상도 골장면이 많이 늘어났다. 대부분이 아드리아노의 득점이긴 하지만 멋진 골 장면이 많은편이다.[41] 2013시즌 승리후 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이 10장 미만에 홀수라 화면을 다 채우지 못하던 암담함과는 다르다. 그리고 2015 시즌에 그 암담함이 더욱 악독하게 재현되고 말았다..[42]
  • 디자이너 장부다가 디자인한 구단 엠블럼의 방패 모양은 밭 전(田)자, 양 쪽의 칼을 들고 말을 탄 황금색 장군은 계백 장군을 형상화하였다. 하지만 엠블렘이 전체적으로 대전이 아닌 충남의 백제 유적을 상징하는 요소가 대부분이라는 점에 있어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다.[43]
  • K리그에서 대전은 외국인 용병 잘 뽑기로 소문난 구단, 자칭 용병 사관학교이다. 케빈 오리스아드리아노가 가장 대표적인 예지만 과거에도 유명 외국인 용병 선수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데닐손, 슈바, 브라질리아, 스테반, 바벨, 알레 등이다.
  •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 대전 시티즌을 선택해서 플레이해보면 게임사의 무심함을 볼 수 있다. 선수들의 능력치가 엉망인 것[44]은 둘째치더라도 포지션마저 새 게임을 할 때마다 바뀌는 정도, 유럽의 명문구단들의 선수들의 능력치와 포지션이 정밀한 수준임을 비교하면 안타까운 수준.
  • 대전을 연고로 하는 다른 3과는 달리 혹사 언급이 없다. 현재까지 대전 시티즌만 유일하게 혹사 관련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러모로 실력이 안 좋은 건 이 팀도 보다시피 마찬가지여서 괜히 대전광역시를 프로 스포츠와 명감독의 무덤이라는 별칭을 붙였겠는가.[45][46]
  • 2013년 1, 2부리그 제도로 나눠진 첫 시즌 이후 단 한번도 상주 상무와 같은 리그에서 만난 적이 없다. 2013년에는 대전이 클래식, 상주가 챌린지에 있었지만 대전이 클래식 최하위, 상주가 챌린지 1위로 자리를 바꿨고 그 다음 해에는 둘이 또 자리를 바꾸고(상주 클래식 최하위, 대전 챌린지 1위) 2015년에도 또 자리를 바꾸면서(대전 클래식 최하위, 상주 챌린지 1위) 5년째 상주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심지어 FA컵에서도 만난 적이 없다.) 2016년에는 둘 다 잔류를 하면서 2017년에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2017년의 경우 대전이 승격이 좌절되고 상주 역시 승강 플레이오프에 간 만큼 내심 챌린지에서의 만남이 기대하는 듯 했지만 상주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잔류를 하는 바람에 2018년에도 FA컵 아니면 볼 수 없게 되었다. 2018 시즌 역시 12월 1일 같은 날 상주가 FC 서울을 이기며 10위로 잔류에 성공했고, 대전 역시 2부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아이파크에게 3:0으로 지면서 승격하지 못해 2019년에도 FA컵 외에는 볼 수 없게 되었다. 2019 시즌에도 상주는 7위로 일찌감치 잔류에 성공하고, 대전도 9위로 일찌감치 승격이 좌절되면서 2020 시즌에도 두 팀은 리그에서는 만날 수 없게 되었지만, 상무가 2021시즌을 앞두고 김천으로 연고 이전을 하면서 2부 리그로 강등됨에 따라 대략 9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파일:naver_com_20120324_091313.jpg
  • 대전의 레전드인 최은성은 팔뚝에 대전 시티즌 엠블렘을 문신으로 세겼다.

14. 같이보기

링크는 대전 시티즌과 관련된 외부페이지 링크나 대전 시티즌과 관련 항목에 대한 링크이고 인물은 대전 시티즌을 거친 선수들 중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선수들입니다.(추가나 작성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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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관련문서

16. 역대 주요 선수

☆는 구단에서 지정한 공식 레전드, †는 현재 고인.

17. 논란의 선수

18. 클럽 기록

클럽 기록
최다 득점 선수 김은중 (56골)
최다 도움 선수 장철우 (22도움)
최다 공격포인드 선수 김은중 (59개)
최다 출장 선수 최은성 (463경기)
팀 최연소 득점 황인범 (18세 253일 , 2015.5.30)
팀창단 첫 득점 김정수 (1997.3.22 vs 울산 현대)
팀창단 첫 도움 정성천 (1997.3.26 vs 수원 삼성)
팀창단 첫 승 vs 전북 현대 (1992.4.12)
리그 최다 연승 5연승 (2007.10.14 / 2014.4.27)
리그 연속 무패 14경기 (12승 2무, 2014.6.21)
리그 원정 연속 승리 5연승 (2014.5.18)
리그 홈경기 연속 무패 13경기 (2016.9.25)
리그 원정 경기 연속 무패 6경기 (2014.6.21)
리그 최고 순위 1위 (2014, K리그 챌린지)
FA컵 최고 순위 1위 (2001)
K리그 강등제 시행전 최고 순위 6위 (2003[47], 2007[48])
최다 골차 승리 대전 5 : 0 안산무궁화 (2016.8.28)
최다 골차 패배 포항 7 : 0 대전 (2011.7.9)
한경기 최다 골 대전 6 : 4 부산 (2004.7.18)

19. 유소년 시스템

유소년 시스템
U-18 팀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U-15 팀 유성중학교
U-12 팀 대전 시티즌 U-12


[1] 이관우 문서에서 발췌[2] 이관우 항목에서 발췌.[3] 원래 이름은 바그너인데 등록명을 박은호로 했다.[4] 하지만 이 사표 퍼레이드는 매우 형식적인 것이었다.[5] 하지만 이후 이날 경기는 경남이 심판을 매수한 경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6] 25번을 차야 한 골이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기록이다.[7] 그래도 나중에 영입은 했다[8] 3라운드 제주전 후반에서야 유효슈팅을 2번 날렸다. 즉 앞의 두 경기와 제주전 전반까지 유효슈팅이 아예 없었다는 것.[9] 심지어 이날 폭우로 관중은 1441명만 왔는데 비가 와도 경기장에 들어와주신 관중들에게 개똥같은 경기력을 선사했다. 덕분에 모처럼 경기 내내 서포터 퍼플크루와 일반석 대전아재들 입에서 온갖 쌍욕이 그치지 않았다.[10] 이영익 감독 선임일로 실제론 시즌 끝나자마자 사임을 표했고 시티즌에서는 금방 수용했다.[11] 2015시즌 대전의 총 전적은 4승 7무 27패다.[12] 홈런 친다는 것은 클럽이나 감성 주점 등에서 남자가 여자를 꼬셔서 모텔같은 곳에서 같이 잠자리를 가지는 것을 성공하는 것을 보고 속된 말로 이르는 말이다.[13] 파일:PicsArt_12-03-08.11.34.jpg[14] 참고로 콜리더가 쓰레기통을 발로 차던 그 순간이 중도일보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15] 이날 경기에 출장했던 상당수의 선수가 들었다고 한다.[16] 전수현 영입 과정에서 대전의 창단 20주년 엠블렘이 조기 유출되며 논란이 일었다.[17] 부상으로 인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을 이행하면서 K3리그 포천시민축구단 소속으로 실전 감각을 다져왔다.[18] FC 안양과의 2018시즌 리그 폐막전 중계 중에 한 말이다.[19] 프로팀 코치 경력 풍부한 이영익도 감독 경험 부족의 한계를 드러내고 폭망했는데 아직도 정신 못차린듯 싶다.[20] 물론 김호가 부임하기 전부터 대전 구단은 매 시즌마다 상주 상무급으로 선수단을 갈아엎었다. 상주 상무가 군팀이라는 특수성이 있음을 감안하면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 지 알 수 있다. 2018년에는 R리그에 참가한다는 명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심하다고 봐야한다. 2018년 공공연히 트레블을 천명하는 전북이 40명 남짓한 규모의 선수단을 운영한다.[21] 물론 강성 팬들의 사건사고 또한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팬들 만나기가 두려워서 경찰에게 차출을 요청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유례를 찾기가 힘든 일이다.[22] 좋은 성적이라는 것에도 의견이 엇갈리는데, 참고로 대전 시티즌의 2018시즌 예산은 2018시즌 시민 구단 중 최다 예산이었으며 1부 리그 준우승 팀이었던 경남 FC보다도 더 많았기 때문에 예산과 쓴 돈을 감안하면 그렇게 잘한 것도 아니라는 평도 상당하다.[23] 2018년도 제2차 대전시 추가경정예산안을 다룬다.[24] 대전시체육회는 대전 시티즌 대주주다.[25] 해당 정치인은 좋은 선수가 있어 감독에게 추천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전 시티즌이 훌륭한 선수를 영입해 좋은 구단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김 의장이 시민구단인 대전 시티즌 지원 예산 편성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점 등에 비춰 그의 선수 추천이 압력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26] 2010년대 이후 처음이다.[27] 전임 고종수 감독 뿐만 아니라 대전 구단은 201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신인 지도자를 감독으로 선임했다가 조진호 감독을 제외한 대부분의 감독들이 성적이 부진했기 때문에 신임 최용규 사장이 문제 의식을 느끼고 한 선임으로 보인다.[28] 신세계는 엑스포 과학공원 부지에 대전 사이언스콤플렉스 사업을 진행하고 대전신세계라는 지역법인을 만드는 등 대전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어서 유력한 인수기업으로 관측되고 있다.[29] 결국 신세계는 K리그 인수를 포기하고, 2년 뒤 KBO 리그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SSG 랜더스를 창단하며 결국은 프로스포츠 구단을 보유하게 되었다.[30] 인수한 은행으로 연관을 짓는다고 한다면 축구계와 연관이 전혀 없는 충청은행보다 서울은행과의 연관성을 더 고려해야 한다. 서울은행이 하나은행에 인수되기 전 대한축구협회의 스폰서로 FA컵 메인 스폰서를 맡고 있었고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하면서 이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대한축구협회와 FA컵 스폰서를 하는 등 하나은행을 축구계로 끌어들인게 서울은행이다. 거기에 서울은행은 실업 축구단을 운영하기도 했다.[31] 차라리 과거 성남 일화같이 상위권이 아니더라도 과거 커리어가 뛰어나면 모를까 대전의 커리어는 그렇게 역사를 이어갈만큼 메리트도 없는게 비참한 현실. 야구로 치면 해태 타이거즈쌍방울 레이더스가 정 반대의 상황을 겪은 것 과도 비슷하다. 문제는 지금 하나은행이 재창단을 한다지만 역사는 그대로 가져가는 식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태도이다. 기존 대전의 팀 컬러와 기존 역사, 전통은 죄다 부정하면서 신생팀 언플을 하고있지만 2001년 FA컵 우승 커리어나 이후 축구특별시라는 시티즌 시절의 좋은 것만 솎아내서 가져가려는 태도를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 이 태도는 KBL에서 울산 현대모비스, 부산 KT, 원주 DB, 전주 KCC등 여러 팀들이 인수 후 보여주는 행태와 똑같은데 이러한 태도는 KBL의 대표적 문제점 중 하나로 비판받는다.[32] 다만 하나금융그룹 자체가 대전충청권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그룹이다 보니 실질적인 연고 이전 가능성은 떨어진다. 애초에 하나은행이 대전충남권을 주 고객층으로 삼던 충청은행을 인수한 후 세가 불어났고, 하나금융 측도 이런 배경 때문에 대전시의 시티즌 구단 인수 제안을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존재하기 때문에 연고이전설은 '당분간'이라는 표현이 부른 오해로 보는 쪽이 맞을 것이다. 대전 지역 교통카드 및 지역화폐 등 굵직한 지역 내 금융사업을 하고 있는 하나금융이 대전시와의 약속으로 인수한 지역 구단을 타 지역으로 이전시킨다는 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떨어진다.[33] 2001 서울은행 FA CUP 전국축구선수권대회 우승.[34] 구단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대행.[35]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챌린지 우승 및 K리그 클래식 승격.[36] 구단 선수 출신 감독대행.[37] 구단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 원래는 이기범 감독이 내정됐으나 팬들의 반발 등으로 이기범 대신 고종수를 선임했다. 하지만 김호 대표이사가 감독 역할에 과도하게 개입하여, 고종수 감독은 바지감독이고 김호가 실질적인 감독이라는 내부고발이 터져나왔다.[38] 구단 선수 출신 감독대행.[39] 대전 구단이 97년도에 창단돼 20년이 넘도록 리그에서 꼴찌를 기록한 것은 단 4번뿐이다.[40] 수원은 티브로드 수원방송, 대구는 티브로드와 아프리카TV, 부산은 CJ헬로비전에서 중계를 해준다. 하지만 홈경기 한정[41] 2014시즌 전까지만 해도 구단 홍보용 하이라이트 영상에 골 장면이 없는 때도 있었다.[42] 2013년엔 승을 두 손으로 셀 정도의 승수였지만 2015년에는 한 손으로 셀 정도다.[43] 대표적인 것이 금동대향로인데, 금동대향로는 충청남도 부여군에 있는 유물이다.[44] 실제 선수들의 능력과 다르게 설정되었다.[45] 아직까지 대전 시티즌에 명감독이 온적이 거의 없다. 기껏해봤자 최윤겸이나 김호 정도이지 대부분은 다 경험 없는 신인 지도자들이다. 그나마 신임 감독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은 조진호 한 명 뿐이다.[46] 원래는 배구팀인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는 한국 프로배구를 호령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했지만, 최근들어 몰빵 배구의 한계를 드러내며 추락하고 있다.[47] 12개 팀 中 6위.[48] 14개 팀 中 6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