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2 09:49:22

국가보훈부/문제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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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격상 전 문제점 및 논란
2.1. 필사적인 보훈인정 거부2.2. 셀프 국가유공자 등록2.3. 국가유공자에 대한 부당대우2.4. 내부 비리와 산하 단체들과의 유착2.5. 보훈 기준에 대한 논란2.6. 정권에 따라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정치적 성향2.7. 이명박 정부 당시 선거 개입2.8. 2021년, 천안함 추모식 전날에 카톡 초대장 발송 논란2.9. 5.18 계엄군 사진 사용 논란
3. 격상 후 문제점 및 논란4. 기타 사건사고
4.1. 격상 전4.2. 격상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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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가보훈부의 문제점 및 논란을 담은 문서이다.

이 문서는 국가보훈부로 격상되기 이전부터의 문제점 및 논란을 담고 있으며, 당시 부처의 명칭인 국가보훈처(약칭 보훈처)를 사용하기도 한다.

2. 격상 전 문제점 및 논란

2.1. 필사적인 보훈인정 거부

국가보훈부는 "국가유공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보훈, 제대군인의 보상·보호, 보훈선양에 관한 사무를 관장"을 하는 부서임에도 오히려 기를 쓰고 보훈 인정을 안 해주려 드는 경우가 많았다.
  • 별의별 핑계를 대며 죽어라고 보훈 인정을 거부하다가, 대법원에게 까이고 강제로 보훈 인정을 하는 한심한 사례도 있다. #
  • 육군 병사가 작업 중 왼쪽 눈에 기름이 튀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으나, 부대는 오히려 해당 병사를 문책하면서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외출을 허가하지 않았고, 결국 해당 병사는 왼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사건이 발생했다. 여기에도 갖가지 핑계를 대며 보상해주지 않았다. #

그렇다면 국가의 수호 및 안전보장과 직결되는 전투임무 수행 중에 피해를 입었다면 잘 처리해주는지 묻자면, 그것도 아니다.
  •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제대로 보훈 인정을 못 받고 있는 사례는 너무나 유명하고 천안함 피격 사건이 터진 지 10년도 넘었는데 국가유공자로 고작 10명 지정하고 보도자료 뿌리며 생색이나 낸다. 연평도 포격전이나 서해교전의 전상 군인들은 아예 상이등급을 받지도 못한 군인들도 있고, 소송까지 가서야 등급인정이 된 사례도 있다.
  •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에서도, 이 사건의 피해자인 하재헌 중사에 대해 하다못해 육군조차 전상 판정을 낸 걸 보훈처는 공상 판정을 냈다. 그 이유랍시고 든 게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하 중사의 부상을 '전상'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명확한 조항이 없다."였다. 군인이 최전방에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의 지뢰에 의해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는데 전상 판정을 거부한 것이다. 이것이 언론에 보도 되면서 정말 가루가 되도록 비난을 받고 결국 대통령까지 이 일을 거론하자 마지 못해 재심의에서 전상으로 인정했다.[1]
  • 2018년에 석면으로 인한 폐암이 발병한 유호철 대위가 상이연금을 지급해달라고 소송을 냈으나 보훈처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소송까지 갔다. 유호철 대위는 결국 사망했는데 이것이 언론화 되면서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유가족들에게 "빨리 신청해라."고 독촉했다고 한다. 해당 변호인이 쓴 글을 참조. 급기야 법원의 군 책임 인정 판결도 무시해버리며 과연 대한민국 최고의 명불허전 부처임을 또 다시 과시했다. #
  • 심지어 부산보훈청에서는 유공자 심사에서 탈락시키려고 공문서 조작까지 시전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굵직한 몇 가지 사례들에 불과하고, 그 외에도 이런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소송을 포기한 피해자들의 경우 언론보도조차 안 될 것이므로 실질적인 피해자들은 더욱 많을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에 간간이 올라오는 피해 경험담들을 보면 군복무 당시 작전이나 훈련 수행 중 사고로 손발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보훈처는 정말 단 10원 한 푼도 보상하지 않으려 든 건 양반이며, 심지어 받은 급수도 소송을 제기하여 다시 뺏으려고 하기 일쑤라는 말이 많다. 평시에도 이 따위인데 만약 전쟁이 터져서 수많은 전사상자들이 양산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막막할 따름이다.

이러면서 자기들끼리는 문턱에 걸려 넘어져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짓이나 하고 있다. 이런 보훈처의 문제점들은 한국군의 의료체계 문제점과 가히 환상적인 막장 시너지를 일으키며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보훈 지정 기준도 매우 빡세다는 말이 아직까지도 있다. 2020년 6월 18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사례가 대표적인데, 명백한 상이군경임에도 보훈 지정을 받지 못한 사례[2]가 올라오면서, 보훈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는 비판이 매 정권마다 나오고 있다.[3]

사실 폭언, 폭행으로 인한 정신과적 병증이 생기는 사례 또한 매 국회에서 보훈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매년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류되다가 폐기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여럿 있었다. 이에 대해서,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2020년부터 '다치면 느그아들 방지법'[4]을 발의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있다.[5] #

반면, 살인, 강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국가 유공자의 지위 회복에 대해 뉘우침 제도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 즉 살인을 저질러도 국가보훈처가 스스로 '반성'한다는 의사가 충분하고 확인된다면 살인, 강간등 강력 범죄자에 대해 국가 유공자 지위를 다시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사실상 열어준 셈이다. #

2.2. 셀프 국가유공자 등록

위의 문단을 보면 알겠지만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은 임무 수행 중 영구장애를 입거나 사망해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기가 한없이 어렵다. 그러나 보훈 인정을 이 악물고 거부하는 보훈처는 정작 자기 부처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느슨한 기준으로 국가유공자를 선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이 한번 족치거나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라도 하면 가라로 등록된 보훈처 직원 국가유공자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사유들을 보면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서, 퇴근 중 눈길에 미끄러져서, 체육행사에서 등산하다 넘어져서, 체육행사에서 배구 중에 공 맞았다고, 체육행사에서 족구하다 넘어져서 등 말도 안되는 이유로 국가유공자로 등록이 된다.

실제로 국정감사 결과, 보훈처 재직자 중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자는 42명이지만 이 중 근무로 인해 다친 사람이 30%인 13명 정도에 불과하고, 더욱이 이 중 교통사고와 안전 사고를 제외한 순수 근무 중 다친 이는 7%인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당하게도 자체 체육대회나 출퇴근 중 다쳤답시고 국가유공자 된 사람이 무려 30%나 된다. 참고로 이들이 국가유공자로 받는 혜택은 7급 기준으로 매월 30만 9천 원, 자녀들 수업료가 대학까지 면제, 대부 지원 혜택, 자녀들 기업체 채용 혜택, TV수신료 면제, 전화비 감면, 국내 항공 50% 감면 등 상당하다.
  • 국가보훈처 차장 허위 국가유공자 등록 사건 #
    2004년 6월 국가보훈처 차장이던 정일권은 책상을 나르다가 허리디스크가 터졌다는 이유로 유공자 신청을 해서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 대학생이던 두 자녀의 학자금 수천만원을 전액 지원받았고 이들은 유공자 자녀 특혜를 받아 공기업에도 취업했다. 그러나 2007년 11월 허위로 등록자 신청을 했음이 감사원에 의해 적발되면서 정일권은 사의를 표명했고 같은 달에 사표가 수리되었다. 또한 2008년 1월 국가유공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2008년 10월 15일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 결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및 사회봉사명령 240시간이 선고됐으며 형이 확정될 경우 이미 지원받은 보훈급여 1천여만원이 모두 환수될 예정이라고 한다.[6][7]
  • 가짜 국가 유공자로 등록된 보훈처 직원 24명 유공자 박탈
    2008년 10월 27일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전.현직 국가보훈처 직원 92명에 대한 재심사를 벌여 그 중 24명에 대한 유공자 자격을 박탈했다. 다만 이들에게 지원된 자녀 학자금 등은 위법성과 부정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환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1, #2 아울러 현행 제도상 퇴직 후에만 전·공상군경으로 등록할 수 있는 군인과 경찰처럼 공상공무원도 동일하게 퇴직 후에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할 수 있도록 '국가유공자 예우법'을 개정하는 등 제도개선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2.3. 국가유공자에 대한 부당대우

언젠가부터 독립운동가6.25 전쟁 참전용사 본인 그리고 그 후손들이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 많이 알려지면서 이런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보훈처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룰 바라보는 국민들은 "이런 꼴을 보자니 애국심으로조차 옹호할 수가 없다"고 분노를 표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결과가 그 꼴이니 애국심이 생겨날 리가" 또는 "그러면서도 정부와 여당은 허구헌날 애국심과 노력타령만 한다"라는 한탄과 자국 혐오적인 여론도 들끓게 된다.

이게 왜 심각한 문제냐 하면, 훈장 찾아주기 운동을 전후 반세기가 지난 후에 생색내면서 하는 것은 물론, 그나마도 몇 분 사진 찍고 홈페이지 올리고 하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런 것까지 가지 않더라도, 단순한 참전기록 조회나 참전사실 증명에도 매우 까다롭게 군다.[8]

이러한 많은 문제점을 보여주는 굵직한 사례를 두 가지 들자면 하나는 6.25 참전용사에 대한 보상금 논란이고 하나는 국가보훈처의 2016년도 예산 소동이다.
  • 6.25 참전용사에 대한 보상금 논란
    국가보훈처는 2011년에 한국전쟁 참전 용사의 유족이 군인사망보상금을 신청하자 이를 거부했다. 유족이 불복하여 법원에 행정소송을 걸어 국가보훈처는 "보상금을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얻어 냈고 보훈처는 마지못해 보상금을 지불했는데 놀랍게도 그 보상금이 5,000원이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5,000만원이 아니라 5,000원이다. 그 당시의 보상금을 화폐가치 환산조차 안하고 그대로 2011년에 때려넣은 것이다. 차라리 주지 않느니만도 못한 조롱 수준이다. 애초에 가난하던 시절의 한국에서 규정한 보상금을 그대로 주는 것도 웃기지만 당시 5,000원을 그대로 현재 가치로 환산해도 380만원이다. 누가 봐도 감히 짜증나게 소송이나 건 유족들 엿이나 먹으라는 심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보다못한 행정심판위에서 이에 대해 부당하다고 제동을 걸었다.
  • 2016년 예산 소동
    2015년에는 국가유공자 보상금 등과는 관계없는 나라사랑 추진 관련 예산을 전년 20억원대에서 2016년 6,000억원대로 확대 요구했다. 6.25에 참전한 분들을 예우한다고 해 놓고는 동상이나 기념비를 짓겠다는 예산만 잔뜩 요청한 것이다. #. 보훈처가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만들어 놓은 호국영웅 기념비 앞을 6.25 전쟁 참전유공자 당사자가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며 걸어가는 아이러니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나라의 보훈 예우의 기준이, 일부 이견의 여지가 없는 애국지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공적보다는 상이등급 위주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참전유공자보다 군대가서 일반 훈련중에 크게 다친 상이군경이 훨씬 더 많은 보상금을 받고 있다. 상이등급이 없는 참전유공자의 경우 참전명예수당과 기타 타법지원 혜택 정도가 주어지지만, 상이등급 1등급인 상이군경의 경우 매달 최소 600만원 이상의 보훈연금을 수령한다. 결국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어느 쪽의 지원에 더 중점을 둘지의 문제라는 것도 분명히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2.4. 내부 비리와 산하 단체들과의 유착

국가보훈처 관련 비리가 상당히 많다는 점도 문제다. 조금만 찾아보면 관련 비리 기사는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게다가 보훈단체들이 각종 비리로 얼룩지는 가운데 보훈처가 앞장서서 단체장의 간선제를 요구하는 점에서 아직 민주주의가 멀었다는 느낌을 준다.

보훈처 산하 단체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부터 수익사업으로 보훈대상자들을 지원한다는 명목하게 여러가지 특혜를 받고 있는데, 이것이 오랜 세월 지속되면서 온갖 비리 의혹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들 단체를 장악한 간부들은 수익사업을 통한 돈벌이에 집중하면서, 정작 회원들을 위한 복지는 내팽개친 모양새다.

2.5. 보훈 기준에 대한 논란

대한민국의 보훈 대상자는 크게 4가지 부류이다.
  • 첫째,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독립운동가
  • 둘째, 한국전쟁 참전용사
  • 셋째, 베트남전 참전용사
  • 넷째, 그 외 공무중 사망 혹은 부상당한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 교정공무원 등

그러나 정권에 따라서 이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사회주의, 좌파 계열은 무조건 배제했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2005년에야 몽양 여운형을 시작으로 대규모로 서훈하였다. 하지만 보수, 우파 세력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큰 논란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일체 배제했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투철한 독립운동가였지만 해방 이후 북한 정권에 참여한 김원봉의 서훈 문제와 일제강점기 시절 간도특설대로 활동했지만 한국전쟁에서 국군 지휘관으로 무수한 전공을 세운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문제를 둘러싸고 또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이렇듯 국내의 첨예한 이념 갈등이 보훈처의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애꿏은 보훈처 직원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때문에 매우 복잡하다. 당시의 인물들은 35년간의 일제강점기와 그 뒤의 미/소 군정기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일본군 혹은 만주군에 자원입대해서 일본군에 활동했지만, 해방 이후 국군 장교로 6.25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사람도 있고 반대로 투철한 독립운동가였지만 해방 이후 북을 선택해서 남에 총부리를 들이댄 사람도 있다. 당장 전자는 백선엽[9], 후자는 김원봉을 생각하면 된다. 가치관에 따라서 이 두명에 대한 판단은 정말 확연하게 달라진다. 또한 일제강점기가 35년씩이나 되다 보니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10] 어느 것을 더욱 중요시 할 것인가? 어느 시대의 활동을 먼저 볼 것인가? 등등. 이것은 20세기 우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념갈등이 불거질 수 밖에 없고, 보훈처는 그 전선의 한복판에 서있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베트남전 참전용사 중에서도 고엽제 피해자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그들도 김대중 정부 들어서야 피해가 인정되고, 지원법률도 제정되었지만, 정작 피해자 조사와 지원은 지지부진하다. 고엽제전우회가 보훈처 산하 단체로 존재하지만, 여기는 피해자 지원보다 거의 극우정치깡패에 준하는 활동에나 열을 올리는 중이라서 오히려 비판을 받는 상황이다.[11]

2018년 들어서는 구한말동학농민운동까지 보훈 범위를 넓히면서 기준이 뭐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언제까지 할꺼냐는 비판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보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나오지, 조선을 계승한다는 문구는 없다.[12]

2019년 2월 26일 유관순 열사의 서훈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격상되자 서훈 등급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도 결코 낮은 서훈이 아닌데다가, 인기와 지명도가 없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제치고 인기와 지명도가 높은 유관순이 서훈이 격상된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신천지 교주 이만희박근혜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았다. # 이후 문재인 정부의 보훈처에서도 이만희가 국가유공자로 적격하다고 밝혀, 정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참전 사실만 확인되면, 추가 절차가 없이 참전유공자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

2.6. 정권에 따라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정치적 성향

대한민국의 보수정당민주당계 정당 정부에 따라 성향이 크게 달라져 때문에 정권에 아부한다는 소리가 매년 나온다. 한국의 이념 갈등 자체가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다 보니, 구 일본군 소속이었지만 후에 대한민국 국군의 편에서 북한에 맞서 싸웠거나 독립군 소속이었지만 후에 인민군 소속으로 남한을 공격하는 등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았다. 거기에다가 일본 치하에 있었던 기간이 30년이 넘어가기 때문에 친일에 대한 기준자체도 무척 모호한 경우가 많아 관점에 따라 그 기준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이러한 과정을 거친 서구의 경우 기준이나 공감대가 잡혀있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의 경우 아직 정식 정부가 들어선 지 100년도 채 되지않는 데다가 이념 논쟁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

보수 정권 시대에는 미래 교육에서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부마민주항쟁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폭동이라는 늬앙스로 말해 논란이 있었고, 야권 인사와 시위 참가자들을 '빨갱이'라 가르치는 등의 색깔론을 펼치거나 공산주의종북주의, 좌파가 동의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 이와는 반대로 문재인 정부 때는 과거에 "6.25 전쟁미국의 철저한 계획 하에 시작된 전쟁이다."라고 주장했던 강사를 데려다 강의시켜 논란을 빚기도 했다. #

2017년에는 자유총연맹 대변인이자 태극기 집회 참가자인 양일국 강사가 어느 초등학교에서 통일교육, 나라사랑교육이랍시고 2008년 촛불집회 까는데 20분 가량 할애하다가 교사의 항의를 받고 중단된 사건도 있었다. #

이들 논란이 빚어질 때마다 보훈처에서 내놓는 입장은 '보훈처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보훈처가 스스로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주장하던 '이념 대결에서의 승리'는 정작 국가보훈처와 관련된 어느 법령에도 주요 업무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부랴부랴 나라사랑교육지원 관련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입법예고 했으나 3년 넘게 보류되었다.

2018년부터 나라사랑교육은 폐지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

2.7. 이명박 정부 당시 선거 개입

이명박 정부 당시 보훈처는 국가정보원, 국군사이버사령부와 함께 안보교육을 빙자해서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훈처장이 공개적으로 야권을 '대한민국 전복 세력'으로 규정하며 여권을 지지할 것을 호소한다든가, 당시 보훈처가 주관한 안보 강연(나라사랑교육)에서 새누리당박근혜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이 이어지는가 하면, 민주-진보 정권인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를 비방하고 보수 정권인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 이명박 정부를 칭송하는 내용을 담은 표준교안을 만들어 배포하기까지 하였다.

2.8. 2021년, 천안함 추모식 전날에 카톡 초대장 발송 논란

국가보훈처가 2021년 3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에 '서해 수호의 날' 행사(3월 26일) 초대장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내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주관하는 중요 행사의 초대장을 행사 하루 전에, 그것도 공식 문서나 인편이 아닌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 전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

2.9. 5.18 계엄군 사진 사용 논란

2023년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을 추모하기 위해 올린 트윗에 올라간 사진이 계엄군 시각에서 본 시민의 구도로 찍힌 사진이여서 논란이 생겼다. # 또한, 원본인 흑백사진을 저작권자인 5.18기념재단의 허락 없이 저작권법을 어겼다는 논란이 나왔다. #

그러나 해당 사진은 5.18 기념재단에서 제공한 사진으로, 과거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5.18 관련 SNS 게시물에 사용했던 사진과 동일한 사진으로 밝혀졌다. #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계엄군이 주인공인 이런 사진을 굳이 2023년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보훈처의 5·18 기념 이미지로 우리가 봐야 하나"라며 비판하자,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해당 사진은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오늘의 한 장'이라는 주제로 올린 배경 사진과 똑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 말대로라면 문재인 (전)대통령이 계엄군의 편에서 계엄군을 주인공으로 삼았단 말입니까"라며 꼬집었다. #

3. 격상 후 문제점 및 논란

3.1. 박민식 장관 발언 논란

해당 항목 4.7~9문단 참조.

3.2. 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자 홀대 논란

이 글에 따르면, 국가보훈부최원일 前 함장 본인을 홀대했다고 한다.

10월에는 지난 현충일 행사 이후 VIP에게 유공자증을 받을때 화면에 "2010년 3월 26일 북한 어뢰 공격으로 좌초"[13] 라고 적혀서 나와 당황하고 이를 항의했으나 장관은 자신의 일정을 다 소화한 이후에야 전화를 줘서 화가 나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이후에 전화를 하지 않았음에도 계속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꼬투리를 잡거나 유가족의 항의와 사과 요구에도 제대로된 사과를 하지 않고 이후 열린 강연에서 이를 지적하자 보훈부 국장들은 사과도 없이 강연 내용만 지적했다고 밝혔는데 이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국군의 날 행사에서 만났으나 이때도 연락을 받지 않는다며 따지는 말만 했다고 한다.

최원일 前 함장은 이러한 국가보훈부의 행보가 천안함 비하로 상처를 준 더불어민주당[14]과 뭐가 다르냐며 국방부와 국가보훈부, 그리고 보훈부장관을 비판했다.

3.3. 낙성대경제연구소장 독립기념관 이사 임명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낙성대경제연구소장 독립기념관 이사 임명 논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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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근대화론을 설파해온 단체 낙성대경제연구소의 박이택 소장을 독립기념관의 이사로 임명해 논란이 되었다.

4. 기타 사건사고

4.1. 격상 전

  • 2006년 보훈처에서 만든 군가 리메이크 음반 프로젝트인 <Remember U> 트랙리스트에 혈청지원가가 있었고, 해당 군가는 혈서지원이라는 친일 가요를 개사한 것이었다. # 다만 가사는 6.25 관련이라 문제가 없었고 항목에 나오듯 독립군이 일본군 군가를 개사해 써먹는 일도 꽤 있었다.
  • 2015년 2월 23일, 국가보훈처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남녀노소, 빈부귀천, 종교를 뛰어 넘어 한말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을 2015년에 재현한다"며 2015년 국채보상운동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이 이벤트는 실제로 국민들에게 기부를 동참하라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2015년 당시 내수부진으로 서민경제가 어려운 상태였고, 일본에 진 빚을 갚은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적 맥락과 2015년 당시의 상황도 전혀 달랐기에 국민들에게 경제난을 떠넘기는 듯한 느낌을 준 국가보훈처 이벤트에 네티즌들은 공분을 쏟아냈다. #
    파일:external/www.gobalnews.com/13359_23836_3218.jpg
  • 국가보훈처가 2015년에 전국 15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나라사랑의식지수 조사'라는 국민들의 안보의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는데, 설문조사의 문항과 결과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다. 보훈처는 20여 문항을 통해 나라사랑의식 점수를 매기고 호국의식에 대하여 평가를 하였는데, 해당 조사에 대한 보고서에서 자영업자, 블루칼라, 전업주부, 학생들 중 "화이트칼라의 안보의식이 부족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내용을 2016년 5월 16일 국회 상임위 국가보훈처 업무보고에서 "고학력, 화이트칼라인 사람일수록 안보의식이 낮은데, 이런 부분이 심각한 사회갈등의 원인이고 그래서 호국정신 함양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고로 고학력 지식인 집단에게 안보 의식,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편견은 권위주의, 파시즘 정권에서 가지기 쉬운 편견이다. 좋은 예가 일본 제국. #1, #2
  • 2016년 5월 18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보훈처 한 간부가 4·3항쟁 유가족의 자리를 요청하던 오월어머니집 노영숙 관장에게 "자리가 없으면 내 무릎에라도 앉으면 되겠네"라고 성희롱적 발언을 하여 논란을 빚었다. #
  • 2016년 6월 25일에 있을 호국 보훈행사 중, 광주광역시 행사는 구 전라남도청 앞에서 제31보병사단제11공수특전여단이 퍼레이드를 하는 것으로 기획되어 논란이 되었다. 제11공수특전여단이 5.18 민주화운동에서 시민을 학살한 부대이며, 구 전라남도청 앞은 계엄군이 애국가에 맞춰 시민 56명을 학살한 곳이라는 점이다. 특히나 임을 위한 행진곡 공식 추모곡 거부로 지탄을 받은 마당에 이런 정신나간 계획을 계획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광주지방보훈청, 11여단은 물론, 31사단과 경찰까지 부적절한 행사라고 판단하여 행사불참 선언을 하였다.
    • 하지만 국가보훈처에서 일방적으로 "참여 여부는 자신들이 결정할 것"이라고 하여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정의당은 국가보훈처장 해임촉구결의안을 공동 발의했다. 국무위원은 해임건의안을 발의할 수 있으나 국가보훈처장은 국무위원이 아니므로 해임촉구결의안을 낼 수 밖에 없다. 해임건의안이라면 바로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나 해임촉구결의안은 상임위를 거쳐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보통은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통과하면 대통령도 부담을 느끼고 수용하는 편이지만, 해임건의안이나 해임촉구결의안이나 법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과 여론을 무시한다하면, 해당 결의안에 대해 실행하지 않아도 법적으로는 문제없다. #
  • 2018년 건국훈장을 추서받고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5명이 잘못 서훈된 것이 밝혀지면서 서훈 취소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 2019년 '6·25 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의 연설문을 맘대로 고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
  • 2020년 6.25 전쟁 70주년 계기 홍보물에 나치 철모 이미지를 사용해 큰 논란이 됐다.[15][16] 이 홍보물 외에도 6.25 전쟁 당시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지도 않았던 최신 무기의 실루엣을 홍보물에 사용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
  • 2021년 정기감사에서 국가보훈처가 살인·성폭행 등 중대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고, 범죄 경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보훈급여금 등을 지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4.2. 격상 후



[1] 사실 이 문제는 단순히 보훈처가 막장이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저 법률 시행령 자체가 굉장히 문제가 많다. #[2] 훈련 중 크레모아 격발 사고로 인해, 손가락 한 마디가 날아갔는데, 수술 후에도 의병제대 요건 미달로 만기제대한 것은 물론, 제대 후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최하 급수인 7급 지정도 비해당 판정을 받았다는 사례이다.[3] 사실 이 부분은 징병검사와 어느정도 일맥상통한다. 하물며 손가락이 잘려 나가 보훈 신청을 하더라도, 보훈처에서 신청자의 불편한 부분을 찾아주는 것이 아닌 신청자가 직접 여러차례에 걸쳐 누적된 병원 진료 및 치료 기록을 제출해야 한다. 즉 신청자가 직접 어디가 불편한지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4]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느그 아들, 죽으면 누구세요?에서 가져온 것이다.[5] 21년 3월 9일에 발의됐고, 8월 20일에는 군인 재해보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의 통과 촉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6] 공무원연금법 제 64조, 공무원연금법시행령 55조2항 등에 의해 공무원이 재직 중의 사유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탄핵 또는 징계에 의해 파면된 경우, 금품 밎 향응 수수, 공금의 횡령 밎 유용으로 징계 해임된 경우 등에는 연금을 절반으로 깎이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7] 다만 불법적인 특혜로 공기업에 취업한 자녀들에 대한 처분은 확인되지 않았다.[8] 가짜로 자신이 국가 유공자라고 속이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엄격하게 한다고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 엄격한 등록법 때문에 되려 국가 유공자로 등록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나기도 한다.[9] 당시 정규군사교육을 받은 인물이 드물었기 때문에, 실전경험이 있는 일본군과 만주군 장교 출신들이 자연스레 전공을 세우면서 고속진급을 하게 된다.[10]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논란도 결국 이런 문제이다.[11] 한국토지주택공사 사무실에 쳐들어가 협박을 하는 등의 조직폭력배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는 등 가해자가 된 피해자로 전락하면서 이미지가 굉장히 안 좋아졌다.[12]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출범할때 헌법에 해당하는 임시 헌장 8조에 "구 황실을 우대한다."는 조항을 포함한 적이 있지만, 이 마저도 1925년 개정때 사라졌다.[13] 좌초는 배가 암초에 얹힘 이라는 뜻으로 천안함은 북한 어뢰 공격에 침몰 등으로 표현하는게 맞다. 북한 어뢰 공격에 좌초 라고 하면 북한 어뢰 공격을 맞고 암초에 얹혀 좌초 당했다고 읽히게 된다.[14] 글에서는 모 정당으로 표현[15] 다만 실제로 나치가 사용했던 장비 등을 보급받은 부대가 있긴 했다. 2차대전 후 미군이 수거한 것들을 보급용으로 사용했던 것. 하필 무장친위대의 옷을 준 탓에 소련이 왜 하필 무장친위대 거냐고 경기를 일으키며 항의한 적도 있다.[16] 철모의 형태가 슈탈헬름이긴 하나 실제로는 저렇게 짧고 처진 챙을 가진 다자인의 슈탈헬름은 없다. 나치독일의 철모를 사용하려는 의도는 없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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