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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반란/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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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개
2.1. 계엄사령관 체포 계획2.2. 작전 개시2.3. 작전 성공

1. 개요

12.12 군사반란의 전개를 정리한 문서.

2. 전개

파일:전두환두환쿠데타.jpg
<rowcolor=white> 12.12병력이동상황(13일)
파일:역사저널 그날 로고.png파일:역사저널 그날 로고(화이트).png
<rowcolor=white> 암호명 ‘생일집 잔치’ - 12.12 군사 반란
(2021년 1월 26일 방송분)

2.1. 계엄사령관 체포 계획

절대로 그냥 당할 생각이 없었던 전두환하나회정승화 총장보다 한 발 빨리 움직여서 정승화가 박정희 암살 사건 현장에 있던 것을 구실로 정승화를 제거하고 군부를 장악할 계획을 세운다. 전두환은 10.26 사건 당시 정승화가 김재규와 한패였다고 주장하면서 정승화를 체포할 구실을 만들었고, 하나회 조직원들과 함께 모여서 1주일 만에 12월 12일에 작전을 실행하기로 결의한다.[1]

전두환과 하나회 측은 12.12 군사반란이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어 절대 권력자가 된 정승화의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벌어진 사건이라고 주장하였다. 10.26 사건 당시 정승화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본에 갔으며, 육군본부에 도착한 이후 저격에 의한 대통령 피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국방부장관에게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으니 자세한 경위는 중앙정보부장에게 물어보라"고 말하는 등 김재규의 정권 장악 시도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10.26 사건의 수사 선상에 오르는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반란에 앞서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 보안사령관 본인이 직접 발표한 중간 수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합동수사본부도 스스로 정승화에 대한 무혐의 판단을 공식화한 상태였고, 심지어 "정승화 총장이 초기에 김재규를 신속하게 체포할 것을 명령하여 김재규의 중앙정보부에게 농락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2][3] 그러나 전두환은 아무 근거도 없이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집어 정승화와 김재규가 사전에 공모하였다는 것이 추가 조사 결과 드러났다고 우기며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한다.

설령 반란군 주장대로 정승화의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가 아무리 유신헌법 하의 비상계엄 하라고 한들, 혐의자를 합동수사본부로 소환하여 조사하려면 당시의 법률에 의하더라도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임의 동행에 의하는 것이 원칙이고, 강제로 연행하려면 검찰관이 청구하여 관할관이 발부한 구속영장이 있어야 했다.[4] 만에 하나 긴급한 사유로 사후영장을 받는다고 해도 검찰관의 정식 지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당시 반란군 측은 절차를 거쳐 관할관의 영장을 발부받기는커녕 검찰관의 긴급구속 지휘를 받지도 못한 상태였고, 계엄사령관은 자신들의 상관이므로 군 지휘 체계에 따른 명령에 의해 출석을 강제할 수도 없었다. 결국 반란군은 무장한 헌병대 병력으로 한남동 공관촌을 점거하고 허삼수 보안사령부 대령을 위시한 합동수사본부 수사관들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진입해 정승화에 대한 강제 연행을 시도하면서 계엄사령관의 상관인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동시에 받아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월간조선 1995년 9월호 부록으로 제공된 녹음 테이프 자료. 다만 육성과 자막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이 훗날 작성한 수기 전재본
영화 서울의 봄이 대유행을 일으킨 뒤 MBC 측이 한 번 더 자료를 공개했다.
  • MBC NEWS - "지X하고 있어 다 쏴죽인다" "장태완 너!" 이것이 실제 통화(2023년 12월 5일 공개분) 영상(MBCNEWS)

당시 정승화 총장의 전속부관 이재천이 당시 상황을 기록한 회고록을 출간했고, 일부 내용을 블로그에 공개하고 있다.#

2.2. 작전 개시

드디어 1979년 12월 12일 저녁, 전두환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한 하나회 소속의 주요 장교들은 각자 준비를 마친 후 경복궁 옆 구 일본 육군 헌병 주둔지[5]에 위치한 장세동 보병 대령이 단장이던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에 집결하였다. 당시 30경비단과 33경비단은 서울 방위의 정예부대로, 수경사 소속이기는 했지만 수경사령관도 무장 출입은 불가할 정도로 독립적인 부대[6]였기 때문에 이들이 몰래 모이기에는 딱 좋았다. 이날의 작전명은 '생일집 잔치'. 이들의 본래 계획은 보안사의 합수부 수사관들과 육군 수경사의 헌병들을 동원하여 참모총장 공관에서 정승화를 납치해서 합수부로 데리고 가는 동시에, 전두환은 대통령에게 가서 정승화의 추가 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합수부로의 체포에 대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이 체포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일단 보안사령부 인사처장이자 합동수사본부의 핵심 브레인이었던 허삼수 육군 보병대령[7]은 합수부 수사관들 및 수경사 33헌병대와 함께 정승화의 관저를 찾아가서 김재규에 동조했다는 혐의에 대한 진술 조사를 해야겠다는 명목으로 정승화의 신병 확보를 시도한다. 공관에 진입한 반란군은 정승화에게 강제 연행에 관하여 대통령의 있지도 않은 재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고, 대통령의 승인 여부를 전화로 확인하려는 정승화 측 인원에게 총격을 가하고 공관 내부를 제압한 뒤 외부에서 대기하던 병력이 공관 창문을 깨고 진입해 자신들의 상관인 계엄사령관 정승화의 뺨에 총구를 갖다댄 채 승용차에 태워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로 납치하는 초법적 만행을 저질렀다.[8][9]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정승화 납치와 동시에 정승화 체포수사에 대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던[10] 원래 계획이 대통령의 재가 거부로 인해 실패했다는 것이다. 당시 최규하는 전두환의 단순 진술로는 절대 정승화의 체포에 동의할 수 없으며, 합동수사본부의 상급자에 해당하는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과 상의를 한 후에야 재가를 검토하겠다고 버텼다.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전두환 측은 국방장관을 사전에 확보해놓지 않았었고, 국방장관 공관에 있던 노재현은 인근의 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소리가 나자 무슨 일인지 확인조차 안 한 채 가족들과 도망가 버려서 찾을 수 없었다.

노재현의 구체적인 도망 행적을 보면 먼저 근처 단국대학교 교내로 가족과 함께 피신했다가 부하의 집에 가족을 맡긴 뒤 육본 B-2 벙커로 가서 상황을 보고받은 뒤 다시 미국 육군 제8군 영내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로 이동했다가 국방부의 장관집무실로 갔는데 이때 국방부로 쳐들어온 반란군에게 체포당한다. 다만 노재현이 단순히 피신만 한 것이 아니라 공관에서 도망치고 난 직후 노재현은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예하 부대에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예하 부대 단속을 지시하는 한편 전시와 평시 모두 부대 이동 권한이 있었던 한미연합사에 야전부대를 이동시켜 쿠데타를 방지하고자 동의를 구하려 한 것이였다. 그러나 이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한미연합군사령관 존 위컴 장군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긴박했던 정 총장 연행 과정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2일 밤에 정 총장 연행을 위해 허삼수 대령이 이끄는 보안사의 합수부 수사관들이 보안사 승용차 2대에 타고 한남동의 참모총장 공관으로 출발했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수경사 33헌병대원들이 마이크로 버스에 탑승하여 뒤따라 갔다. 총장에게 급히 보고드릴 게 있어서 방문하겠다고 미리 연락하여 방문 약속을 잡아놨던 합수부 수사관들은 공관 정문을 통과해서 곧바로 총장 관저로 들어갔다. 뒤이어 33헌병대를 태운 마이크로 버스도 정문에 도착했고 헌병들이 몇 명 내려서 정문 경비를 서는 해병대 경비병들에게 다가가 우리는 정문 경비임무를 교대하러 온 육군 헌병들이라고 하자 경비병들이 그런 지시는 못들었다며 상부에 확인해 보겠다고 하는 순간 헌병들이 기습적으로 해병대원들을 제압하여 무장해제 및 포박한 뒤 초소 안에 감금시켰다. 그렇게 33헌병대원들은 정문을 장악한 뒤 총장 관저건물 주변 등에서 사주 경계를 섰다.

한편 합수부 수사관들과 함께 관저 안으로 들어간 허삼수와 우경윤은 정승화 총장에게 박정희 시해 사건과 관련된 의혹과 혐의에 대해 자세한 조사를 할 게 있다며 보안사 합수부로의 동행을 요구하자 정총장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허삼수는 임의동행을 거부한다면 수사를 위해 강제로라도 연행할 수 있는 재가를 대통령에게 이미 받았다고 주장하며[11]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정승화 총장은 대통령의 연행 승인 재가가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해 봐야겠다며 전속부관이재천 육군 보병소령(육사 26기)에게 전화로 확인해 보라고 지시했고, 이 소령이 청와대에 전화를 걸려고 하자 이를 제지하고 협박하기 위해 합수부 장교가 권총을 발사해서 이 소령은 총상을 입었다. 그러자 참모총장 경호장교인 김인선 육군 보병 대위(육사 29기)가 합수부 수사관들을 향해 권총을 뽑아들었고, 그 순간 수사관 장교들이 총을 발사해서 김 대위 역시 총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33헌병대를 데리고 온 같은 편인 우경윤 헌병대령도 유탄으로 인한 총알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정승화 총장을 강제로 끌어내어 승용차에 태운 후 두 승용차는 공관을 떠났고, 정승화를 보안사의 서빙고 분실로 데려갔다. 그러나 데리고 온 헌병대를 직접 지휘해야 할 우경윤 헌병대령은 오발로 중상을 입은 뒤 업혀 나가서 정신이 없었고 합수부 수사관들도 탈 많고 요란했던 정승화 연행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관저 건물 밖에 있던 33헌병대원들에게 우리 뒤를 따라 철수하라는 명령을 누구도 내리지 않고 깜빡한 채 자기들만 떠나버렸다. 아무 지시도 받지 못하고 공관 내에 남겨진 33헌병대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어리둥절해 있다가 결국 자기들도 철수하기로 하고 마이크로 버스에 탑승하였다.

한편 연행을 위해 합수부와 정승화 총장 측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공관 관리관 반일부 육군 준위가 몰래 공관 밖으로 탈출하여 공관 인근에 주둔한 해병대 경비대 막사로 달려가 괴한들이 침입해서 총장을 납치하려 한다고 알렸다. 반 준위의 급박한 신고를 받은 경비대는 공관으로 출동하여 공관 정문 초소를 탈환하고 정문을 봉쇄했다. 그리고 아직 공관 영내에 있던 마이크로 버스를 포위하고 그 버스에 타서 막 출발하려고 하던 헌병들에게 사격을 가해서 헌병들은 그 마이크로 버스 안에 그대로 갇혀있게 된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정승화를 연행한 합수부 차량은 이미 공관을 떠난 후였다. 정승화를 태운 합수부 차량이 공관 정문을 떠난 지 약 10여 분 후에 공관 경비대 병력이 정문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총성으로 인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공관 쪽 총성을 듣거나 보고를 받고 출동한 해군본부의 기동타격대와 공군본부 기동타격대, 국방부와 수경사의 5분대기조[12], 그리고 33헌병대가 따라나오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은 하나회 측이 가서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려서 출동한 30경비단 5분대기조 병력 등이 캄캄한 밤에 공관 정문에서 피아식별도 안 되고 대체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그저 벙찐 상태로 대치하는 혼잡한 상황이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들 중에서 총성을 듣거나 총장이 납치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병력들도 이게 북한 무장공비의 짓인지, 누가 적이고 누가 우리 편인지 등을 아직 파악조차 못한 혼란한 상태였다. 아침 5시 30분경에 국방부차관이 공관 측에 전화를 걸어 거기 있는 병력은 모두 아군인 국군들이고 다 해결됐으니 출동한 부대들은 대치 상황을 끝내고 모두 원대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모두 이에 따르면서 이 일은 일단락된다.[13]

한편 혹시 저항할지도 모르는 친(親)정승화 계열의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 그리고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 준장은 연희동의 비밀 연회장으로 미리 초대하여 보안사 참모장 우국일 준장이 대신 접대하도록 유인해 두었다. 이때 수경사 헌병단장이던 조홍 대령도 있었는데, 당시 조홍은 하나회 소속이 아니었지만 정병주, 장태완, 김진기 장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와 있던 것이었다.

이날 회식의 의미가 매우 중요한데, 장태완의 저서 <12·12 쿠데타와 나>를 보면 전두환이 장태완에게 12월 5일에 김장값 하라며 1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비서실장 허화평 대령을 통해 보내주었고[14], 이어 12월 8일에는 다시 전두환이 조홍 대령을 메신저로 하여 12월 12일 회식 약속을 잡은 것이다. 이것은 12·12가 12월 5일 전부터 계획되었으며 정확한 거사 날짜는 12월 8일 전에 정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전두환을 좌천시키려 했기 때문에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말도 있으나, 정승화 총장이 노재현 장관과 일요일에 골프 치며 보안사령관 교체 문제를 논의한 것은 12월 9일이었다.[15]

직속 부하인 헌병단장이 연회장에 있는 것에 장태완이 "허락도 없이 여긴 왜 와있느냐?"라고 호통을 치자 조홍은 "전두환 장군이 저한테 준장 진급주를 산다고 해서 왔다"라고 답했고, 장태완은 혀를 차며 "그걸 오란다고 오는 네놈이나 직속상관은 건너뛰고 술을 사주겠다는 전 장군이나 똑같이 문제다."라고 면박을 주었다. 이를 보다 못한 정병주는 "이번에 조 대령이 준장으로 진급했으니 겸사겸사 축하나 해주자."라고 장태완을 달래어 조홍은 연회에 동석할 수 있었다. 사족이지만 당시 이 연희동 연회장은 일반 술집이 아니라 가정집으로, 전두환이 연회를 부탁한 '민 마담'의 여동생 집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하나회 회원들이 반란를 모의하기도 했고, 이후에 이곳은 제5공화국 요정정치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평범한 민가로 재건축되었다.[16]

어쨌든 이들은 전두환 대신 우국일 보안사 참모장의 접대를 받으며 저녁 7시까지 전두환을 기다리면서 먼저 식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국일은 하나회 출신이 아니어서 완전한 정보 통제가 되지 않았고[17], 그러던 중 김진기 헌병감에게 총리 공관에서 총격이 발생했고 참모총장이 납치되었다는 전화가 오자[18] 그 셋은 자리에서 일어나 복귀했다. 이때 장태완은 수경사로, 정병주는 특전사로, 김진기는 육군본부로 갔다.

그리고 같이 연회장에 있던 조홍은 사령관을 따라 수경사로 복귀하던 도중에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뉴데일리에서는 "연회에서 술을 마신 장태완 장군이 술에 취해 앞뒤 분간 못하며 즉흥적으로 명령을 내렸다."라고 하며 반란군을 강력하게 진압하라는 장태완의 명령이 취중에 잘못된 판단에서 내려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당시 장태완을 비롯한 일행들은 전두환을 기다리다 보니 술은 단 한 잔도 마시지 않았었다. 그래서 기다리다 지친 정병주 사령관이 "전두환 장군이 늦을 것 같은데, 그냥 우리끼리 먼저 한 잔 하죠?"해서 막 한두 잔 마실 찰나에 상황을 알게 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정병주의 저 발언 이후 일행이 사태 소식을 접했던 때까지의 시간이 10분 내외이다. 말 그대로 술 한 잔 마실 시간. 본인들의 회고에 따르면 술 한 잔을 비우는 둥 마는 둥 하고 곧바로 튀어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매우 강직하고 고지식한 성품의 소유자들이다. 아무리 전두환이 자신들의 후배라지만 자신들을 초대한 주빈인 전두환이 오기도 전부터 곤드레 만드레 취해있을 정도로 몰상식한 행동을 할 이들이 아니었다. 육군본부 측은 정승화의 부인이 건 전화에 의해 처음으로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정승화를 납치한 사람들이 누구인지조차 알 길이 없어서 처음에는 북한 공비들의 짓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혼란에 빠져있었다. 물론 곧 납치 세력이 합동수사본부, 즉 보안사 소속임이 확인되고 여타 정황들이 종합되면서 전두환 측이 벌인 일임을 확인하였고, 전군에 비상을 걸고 대응에 들어갔다. 1993년 9월에 국회에서 이뤄진 노재현 전 국방장관,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 김진기 전 육군본부 헌병감의 증언은 링크 참조. 영상(비디오머그 - VIDEOMUG)

수경사령부로 가면서 장태완은 참모장 김기택 준장을 통해 헌병부단장 신윤희 중령에게[19] 경장갑차 2대, 헌병특공대 1개소대, 부상자 구조를 위한 구급차 1대로 기동타격대를 꾸려 총장공관으로 급파하라는 작전 지시를 내린다. 이후 장태완은 사령부로 복귀한 뒤 김기택 준장으로부터 30경비단에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일당들이 모여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20] 30경비단장 장세동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신 전화를 받은 선배인 황영시와 유학성이 "알 만한 친구가 왜 이렇게 흥분하는가? 30경비단으로 와서 우리랑 얘기해 보면 정승화 총장 체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라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장태완은 펄펄 뛰면서 "마! 너거한테 선전포고다, 인마! 난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21]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드라마 제5공화국과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황영시-유학성 순으로 통화하는 것으로 묘사됐으나 실제 통화에서는 유학성-황영시 순으로 이뤄졌다. 이에 30경비단에 모여있던 일당들은 장태완이 공격해올 것을 걱정하며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두환은 하나회를 통해 자신이 장악하고 있던 대통령경호실 소속 병력[22]으로 최규하가 있던 국무총리 공관을 확보하였다.

대선은 이미 12월 6일에 끝났으며, 특히 10.26 사건으로 인한 보궐선거였기에 비록 12월 21일 취임식을 하긴 했어도 최규하는 12.12 군사반란 당시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인수인계와 공관 이전 절차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최규하는 국무총리 시절 이용했던 총리공관에 있었다. 원래 총리공관 경비는 육군본부 헌병대[23]가 맡고 있었다. 이 때문에 헌병감 김진기에 의해 전두환 체포 명령이 내려왔으나 재가를 받기 위해 전두환이 총리 공관에 더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게 되자, 임기응변으로 대통령경호실 병력을 보내 헌병대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총리 공관을 장악한 것이다.

이후 최규하를 총리 공관에 구금하다시피 조치한 전두환은 정승화 총장 체포에 대해 사후 재가를 계속 요구했지만, 최규하는 노재현 국방장관의 동의 없이는 체포를 허가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숨어버린 국방장관을 찾기 위해 하나회는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게 되었고, 육군본부 측에서는 그들이 장관을 찾아서 재가를 받기 전에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하나회는 보안사 감청망 활용을 통해 이미 정보력에서 육군본부를 앞서고 있었고, 조직도 넓게 분포해 있었다. 원래 보안사 자체가 군을 위한 정보기관이다. 그런데 이들이 배신했으니 육군본부는 정보를 얻을 곳이 없어진 셈이다. 전두환 측은 육군본부에 화해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척하면서 정상적인 국군 명령 체계를 완전히 무시한 채 병력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강직한 군인인 장태완은 이에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합동수사본부[24] 측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해 수도권의 충정부대를 대상으로 병력 출동을 독촉하고 있었다.

전두환 측은 장태완의 병력 동원 시도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정승화 총장의 연행을 기정사실화하고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즉 겉으로는 신사협정을 맺어서 육군본부의 병력 출동을 가능한 한 오래 저지하면서, 한편으로 자기 측 병력을 본격적으로 동원하여 수뇌부를 무너뜨리겠다는 작전이었다. 애초에 작전에 앞서 전두환은 1, 3, 5공수여단장들에게 잇달아 지시를 내렸었다. 경복궁 30경비단 모임에 참석했던 이들 여단장 가운데 3공수여단장 준장 최세창과 5공수여단장 준장 장기오는 비상령이 떨어진 후, 자신들의 부대를 장악하기 위해 부대로 돌아갔고 1공수여단장 박희도 준장은 한 발 늦게 행주대교로 우회해서 귀대해 있었다. 30사단 관할이던 행주대교를 제외한 모든 한강 다리는 수경사의 통제하에 있었기 때문. 아무튼 각 부대에 내려진 지시는 다음과 같다.
  • 1공수여단[25]을 동원해 국방부와 육군본부 점령
  • 3공수여단[26]으로 3공수여단 영내에 있는 특전사령부 본부 건물을 습격하여 정병주 특전사령관 체포
  • 5공수여단[27]효창운동장으로 출동, 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그리고 하나회 소속 장교들[28]을 이용해 수경사 헌병단을 장악, 수경사로 지휘부를 옮긴[29] 진압군 측 주요 인사들을[30] 제압하려 하였다.

전두환 측은 공수여단 외에도 사단장 노태우가 이끄는 9사단 29연대[31]와 30연대[32] 소속 1개 대대, 30사단의 90연대[33], 제2기갑여단의 1개 전차대대[34]도 중앙청으로 출동하라고 지시했다. 9사단은 당시에는 물론이고 현재도 우리나라 최전방 예비사단으로 활약 중이며, 특히 당시엔 평시작전통제권까지 주한미군측에 있었기때문에 최전방 부대 병력의 동원이 필요할 경우 '한미군사동맹' 협정에 의거해 한미연합군사령관[35]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반란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한미연합군사령관 존 위컴이 격렬하게 화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박정희의 암살로 엄청난 혼란 상태였고 암살범 김재규는 체포했지만, 김재규가 북한의 사주를 받고 암살을 했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언제 북한이 남침할지 모른다는 위기까지 팽배해 있을 때 중대한 병력의 절반 가까이를 반란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한 이러한 행위는 당연히 불법인 동시에 매국노짓이나 다를 바 없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이게 얼마나 엄청난 미친 짓인지 잘 보여주는 대사가 장태완 장군의 "저놈아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전방 병력까지 출동시키진 않겠지…?"이다.

그리고 노태우의 9사단 예하 1개 연대 무단 병력 동원은 노태우가 하나회 세력에서 전두환 다음으로 2인자 자리에 오르는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작용한다. 노태우는 12.12 군사반란 당시 병력 동원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요한 순간에 남침까지 무릅쓰고 자신의 전방 병력을 동원한 덕분에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장관 및 여당 대표를 두루 거치면서 결국 대통령까지 올라서는 확실한 전두환의 후계자로 올라선다. 물론 기존 제5공화국의 헌법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직선제 대선에서 이겨서 된 것이기는 했지만, 전두환이 자신의 퇴임 이후 안위를 위해서 노태우 당선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엄청난 지원을 해줄 수밖에 없었기에 사실상 전두환의 후계자가 맞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에서 이렇게 최전방을 지키는 부대를 제멋대로 빼돌려 서울로 진격시켜서 쿠데타로 악용한 사례는 이때가 처음이 아니라 5.16 군사정변 때도 이미 육군해병대에 의해 저질러진 전례가 있었다. 바로 철원 축선을 지키던 제5보병사단과 김포, 강화를 지키던 해병대 제1여단[36] 병력을 각각 사단장 육군준장 채명신과 여단장 해병대 준장 김윤근이 빼돌려 쿠데타에 동원했던 것. 이때도 만약 북한이 알아챘다면 북한군이 철원이나 김포를 지나 서울까지 일사천리로 접수할 뻔했다.

2.3. 작전 성공

그때 인천에 있던 제9공수특전여단[37] 육군특수전사령관 정병주의 지시로 서울을 향해 출동했다는 급보가 보안사 합수부 측에 전해졌다.[38] 이에 전두환 측 장성들은 대경실색했다. 9공수여단이 경인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 이내로 서울에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측이 9공수특전여단을 포섭해놓지 못한 이유는 9공수여단장 준장 윤흥기[39]와 참모장 대령 신수종이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갑종간부후보생 출신이어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연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전두환 측의 공수여단 병력들은 이들을 지휘할 여단장이 아직 부대에 도착하지 않았거나 행주대교 등의 검문소를 통과하는 데에 잠시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40][41] 9공수여단이 훨씬 먼저 서울에 도착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9공수여단의 1차 공격 목표는 다름아닌 자신들이 모여있는 보안사령부와 경복궁 30경비단일 것은 더더욱 뻔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보안사령관실에 모여 있던 전두환 측 장성들은 제각기 전화통을 붙잡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9공수여단 출동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반란군 측인 중장 유학성과 중장 황영시육군본부 측에 전화를 걸어 "서울 한복판에서 아군인 국군끼리 전쟁을 벌이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 우리도 더 이상의 무력 동원은 안 할 것을 약속할 테니 진압군 측에서도 9공수를 원대복귀시켜라"라는 내용의 상호 신사협정을 제안했다. 그리고 육군본부 수뇌부들 사이에서는 전두환 측이 정말로 그 신사협정을 지킬 것으로 믿어보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실은 꼭 믿었다기보다는 그들이 전두환의 신사협정에 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남침의 절호의 기회를 맞은 김일성을 눈앞에 두고 같은 국군 병력들끼리, 그것도 서울 도심지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를 벌이는 위험천만한 참극만은 피하자는 이유 때문이었다.[42][43]

물론 상식 선에서 생각하면 이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해당 상황은 반역이라는 최악의 비상식적 사태였다. 당시 하나회가 처한 처지를 생각하면 응할 가치가 없는 협정이었다. 협정 이전에 장태완 소장이 반란군이라며 펄펄 날뛴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육본 측에서는 하나회와 전두환 측의 움직임이 명백한 쿠데타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나회 측에서 그렇게 군대를 움직이고 난리법석을 떨며 정승화를 납치하는 등 노골적인 반란의 움직임을 보였는데, 그래도 몰랐다고 한다면 당시 육본 간부 전원이 무능을 이유로 총살당해도 할 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육본 측에게 반란군으로 찍힌 상황에서 하나회 입장에서는 북한이 쳐들어오든, 육본 측의 승리로 사태가 수습된 후 반란군으로 몰리든 어차피 죽는 상황이었다. 즉 이러나 저러나 죽기는 매한가지였고, 하나회 입장에선 신사협정을 지켜봐야 득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하나회의 시각에서 보면 육본이 이기는 것보다 북한이 내려오는 편이 나았다면 나았는데, 육본이 이기면 운이 아주 좋아도 군에 평생 발을 못 디디게 되며 보통은 내란를 이유로 그냥 총살당했을 것이다.[44] 그러나 북한군이 남침하게 될 경우 미국도 있으니 자기들이 군권을 장악해 잘 막아낼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적어도 육본 측에게 진 후 살아남을 확률보다는 높을 것이다. 육사 11기를 포함한 하나회 세력은 공수여단장, 전방사단장, 보안사령관 등 북한군과 최전선에서 싸우게 될 부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렇기에 남침 상황에서의 혼란을 틈타 군에 붙어있게 될 확률도 없지 않았다.

결국 간단한 앞뒤 사정만 따져봐도 하나회 입장에선 신사협정으로 일단 코앞의 위기는 넘기고, 그 후로는 신사협정을 무시하고 전방사단이든 공수여단이든 투입해서 군부를 장악해 버리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었기 때문에 배반할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다. 육본 측이 저지른 실수는 상대의 의도도 파악하지 못하고 '협상'의 기본조차 어긋난, 그야말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음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또한 육본 측에서도 신사협정을 어기면서 할 핑계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비겁이고 뭐고가 어디 있는가? 설령 협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도 수경사로 이동할 게 아니라 방어에 더 적합한 육군본부 B2 벙커를 마지막까지 사수했어야 했다.[45]

또한 이는 주한미군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전두환 정부를 인정하기는 했으나 반란이 하루 만에 성공해서 전두환이 순식간에 권력을 잡게 되어 전두환이 대세가 된 후라 끌어내리기에는 좀 늦기도 했고, 전두환이 대통령에 오른 이후 적극적으로 핵 포기를 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준 것이다. 따라서 진압군은 제압당하지 않은 채 우주방어를 구사하며 시간만 끌어도 무조건 이기는 것이었다. 당시 한미연합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인 존 위컴이 이후 보인 태도만 봐도 진압군을 적극적으로 도왔을 가능성이 크며, 지미 카터 대통령이 딱히 전두환을 인정할 이유도 없었다.

거기에 아침까지 시간이 끌리면 국민과 재야 시민 사회 여론도 전두환에 대한 반발 심리가 컸기에 쿠데타 반대편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매우 컸고, 하나회가 군 핵심을 장악했다곤 하나 하나회를 고깝게 보는 군 내부 세력 또한 만만치 않게 많았기에 해군, 공군해병대, 하나회 편이 아닌 전방 타 부대들, 2군 소속 후방 부대들도 진압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컸다. 무엇보다 최규하 대통령이 끝까지 재가를 거부하고 있었기에 하나회는 수경사 및 재경부대 일부만 가지고 대다수의 비하나회 육군 + 해공군 + 국민 여론 + 대통령과 정부 + 주한미군까지 이르는 반대파와 맞서야 했을 것이고 시간을 번 육본 측이 끝내 하나회 손이 닿지 않는 전방 일부 부대 혹은 후방 부대를 투입했다면 그대로 끝장났을 것이다. 하나회 및 보안부대 소속임에도 보안사 측의 부대장 회유, 방해 명령을 무시하고 끝까지 진압군 측에서 사령관을 보좌한 3군사령부 보안부대장 김부연 대령이나 하나회 회원인 3군사령부 헌병대장 조명기 대령[46] 같은 케이스들도 있었던 만큼 하나회 내부에서도 이탈자가 생겨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쿠데타 특성상 시간이 늘어지면 결국 실패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제 와선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노재현 국방장관의 책임도 컸다. 자신과 자기 가족만 살리겠다고 밤새 도망다니다가 은근슬쩍 육본에 나타난 노재현은 "이곳엔 직할 병력이 충분치 않으니 실병력이 보다 많이 있는 수경사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 육본 측에는 최소한의 경계와 방어를 할 경비대, 헌병대 정도 외엔 직속 실병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다른 부대의 병력이라도 끌어와서 그곳에서 방어할 생각을 해야지, 진도 8 이상의 강진에도 버틸 수 있는 철옹성인 육본 B2 벙커를 버리고 수경사 사령부로 이동하라고 명령한 것은 이미 그 순간 패배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47]

결국 하나회의 낚시에 걸린 육본 수뇌부는 쌍방간에 상호 병력을 동원하지 말자는 신사협정 제안을 수락한다.[48] 이에 따라 반란군 진압의 실질적인 최고지휘관이었던 육군참모차장 중장 윤성민[49]은 9공수여단장 준장 윤흥기에게 부대로 복귀할 것을 지시하였고, 윤흥기는 이 명령에 따라 9공수여단 병력을 부천IC 부근에서 회군시킨다.[50]

그리고 곧 진압군 측 수뇌부는 반란군 측의 신사협정 제안을 순진하게 믿고 수락해버린 어리석은 판단의 대가를 확실하게 치르게 된다. 국방부와 육군본부는 1공수여단 병력에 의해 순식간에 점령당하였다. 진압군 측이 국방부 청사 옥상에서 20mm 발칸포를 발사하면서 저항을 시도하였으나, 대지용이 아닌 대공용으로 설치된 것을 눕혀서 발사한 것이기에 제대로 된 각도가 나오지 않아 반란군 측의 실사상자는 거의 없었다.[51] 또한 소수의 방어 병력으로 정예 병력의 기습 공격을 견뎌내는 것은 애초에 한계가 있는 일이었다.[52]

한편 사령관 정병주가 있는 거여동 특전사령부 본부는 최세창의 3공수여단 병력에 의해 순식간에 점령되었다. 당시 특전사령부 본부 건물은 바로 3공수여단의 영내에 위치해 있었으며, 사령부 본부 건물 내엔 행정병과 인원들만 있어서 사령관 정병주가 직접 움직일 수 있는 무장 병력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 부하들의 하극상으로 수도권의 1, 3, 5여단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데다가, 자체 직속 무장 병력도 없는 상태에서 반란 부대인 3공수여단 영내의 사령부 본부 건물에 있던 정병주는 독 안에 든 쥐처럼 무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최세창의 명령을 받은 예하 15대대장 중령 박종규[53]에 의해 정병주는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고, 이 와중에 특전사령부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은 단신으로 정병주를 지키려 권총으로 사격하며 저항을 하다가 반란군의 총에 사살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도망다니던 노재현은 하필이면 하나회 쪽 병력이 국방부를 치기 직전에 국방부로 털레털레 왔다가 바로 하나회의 손아귀에 떨어졌고, 이때부턴 비굴하게 반란군에게 협조했다.

한편 당시 장태완은 마지막으로 반란 수괴들을 체포할 작전을 준비하고, 김기택 참모장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 전차를 선두로 수경사 내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을 전투조로 구성한다.
  • 목표는 경복궁과 보안사령부로 하며, 공격 개시선은 아스토리아 호텔[54] 앞이다.
  • 출발은 내가 선도하며, 중앙청 부근에 적절한 진지를 잡아 전차포, TOW 대전차포[55], 106mm 무반동포, 3.5인치 로켓포로 2개 목표를 동시에 타격 후 역모자들을 사살 또는 포획하고 반란을 진압한다.

이걸 듣고 놀란 윤성민 참모차장은 장태완을 말리며 마지막으로 이건영 3군사령관에게 병력 동원이 가능한지 물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26사단과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은 출동이 불가하다는 답변만 돌아왔고, 장태완은 병력들이 집결한 연병장으로 향하여 준비 태세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전차 대열에 다가가는 그때, 비서실장 김수택 중령이 나타나 "사령관님, 제가 지금 저 앞의 전차소대 쪽에 갔더니, 30경비단 편에 있는 전차대대 본부에서 사령관님을 사살하라는 무전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셔서 사령부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희의 최후 공격 주력이 저 전차 4대뿐인데 저놈들이 저러니 나머지 병력들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다 끝난 것 같습니다. 사후정리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장태완은 곧 전차 무전에 귀를 귀울여본다.[56] 이를 들은 장태완은 결국 허탈해하며 병력들을 해산시키고 사령부로 돌아온다.

그리고 노재현이 전화해서 장태완에게 "말로 하란 말이야. 피를 흘려서는 안 돼. 병력을 철수시키고 상황을 끝내도록 해."라며 상황 종료를 명령하고, 바로 수경사 헌병단[57] 부단장 중령 신윤희가 헌병대를 이끌고 장태완과 수경사로 피난왔던 육본 지휘부를 모두 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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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white> 쿠데타 성공 후 광화문 앞에 진주한 신군부 측 병력
(1979년 12월 13일 촬영분)
[58]
하나회는 반란 초기에 경호실 병력을 동원해 최규하를 구금하다시피 했고, 참모총장인 정승화는 반란군의 손아귀에 있었으니 당시 상황에서 정상적인 명령 체계를 동원해 반란 진압을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국방장관 노재현뿐이었다. 그 때문에 반란군도 진압군도 노재현의 행방을 찾고자 했고, 최대한 자의적으로 병력을 움직이려 한 장태완을 육본 측에서 말릴 때도 이유가 "국방장관이 있어야 된다."였다. 하지만 노재현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그냥 도망쳐 다닌 끝에 정상적인 명령 체계를 지키려던 이들이 정상적인 명령 체계를 무시한 반란군의 행동에 끌려다니다 반란군에게 제압당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붙잡힌 노재현은 눈치껏 정승화 체포 동의안에 서명했고, 최규하에게 "옳지는 않지만 사태가 더 악화되고 군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서명을 할 것을 부탁했다.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재판 당시 노재현은 이러한 이유를 변명이랍시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 결국 최규하는 정승화 체포 동의안에 재가 서명을 했는데, 이때 동의안 표지에 재가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59] 이 때문에 체포 당사자들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두환 측의 행위가 재가를 받고 나서야 체포해야 하는 당연한 절차를 어긴, '선체포 후동의'라는 명실상부한 불법행위라는 확실한 증거가 남았다.

이렇게 작전 개시 약 10시간 만에 반란은 성공하였다.


[1] 전두환은 군사반란 혐의로 재판받을 당시 숫자 짝을 좋아해서 12월 12일에 결행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12월 12일이면 그동안 장성 진급심사가 끝나 하나회 요인들의 일정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며 동시에 이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로 인한 개각 등 정부의 대규모 인사 변동이 일어나기 전에 일을 해치우기 위한 의도였다.[2] 당시 정승화에 대한 수사 결과 발표 내용은 이곳을 참조[3] 정승화는 민주화 이후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재심이 이루어졌을 때 결국 내란방조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는다.[4] 당시 영장을 발부할 권한이 있는 관할관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본인 또는 노재현 국방부장관이었다.[5] 현재 경복궁 태원전 자리[6]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이 자신의 라인으로 관리하던 곳이였다. 비록 배속은 수경사였으나 대통령경호실의 통제를 받던 곳이기에 이런 행위가 가능했다. 훗날 민주화 이후 두 부대는 축소 통합되어 제1경비단이 된다. 지금도 제1경비단은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이나 실제로는 대통령경호처가 관리하다시피 한다.[7] 전두환의 직속 오른팔이었던 허삼수가 방문한다고 하면 의심받을 것이기에 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 육군 보병대령을 사칭해서 권 대령이 총장님을 잠깐 방문하겠다고 연락했다. 그래서 사태 초기에는 정보처장이던 권 대령이 진압군 측으로부터 욕을 먹었다. 권정달은 이후 5.17 내란의 계획을 작성함으로써 신군부의 정권 장악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8] 다만,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수사한 서빙고분실의 책임자에 해당하는 보안사령부 대공처장인 남웅종 준장은 직책이 대공처장이나, 보안사령부 참모장인 우국일 준장을 패싱하고 그의 역할을 보안사령부 보안처장인 정도영 대령이 대신한 케이스처럼 직속부하인 대공수사과장 이학봉 중령이 직속상관 남웅종을 패싱하고 정승화 고문수사를 주도하였기에 남웅종 준장은 12.12 군사반란에 대하여 사전에 알지 못하였다.[9] 일부 반란군 옹호자들은 반란이 아닌 정당한 법 집행이라고 반란군을 옹호하는 경우가 있으나, 당시의 유신헌법과 계엄법, 군법회의법 등 어떤 법률조항에 의하더라도 당시 보안사령부에서 계엄사령관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도 않고 한밤중 총격전 끝에 납치한 행위는 정당화될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이러한 옹호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미 대법원은 이 행위를 명백한 반란 행위라 결론내려 사법적 판단도 끝났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재판 참조.[10] 이런 식으로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것 역시 군법회의법에 따른 적법절차를 준수한 강제수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12.12 재판에서 법원도 지적한 바와 같이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하는 적법한 방식은 어디까지나 정식으로 관할관의 구속영장을 받든지, 법정요건을 갖추어 검찰관의 지휘 하에 긴급구속을 집행하고 사후영장을 받는 것인데, 반란군은 이런 적법절차를 깡그리 무시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다는 것조차도 자신들의 행위를 외관상이나마 정당화시켜보려는 쇼에 불과했다.[11] 물론 먼저 재가를 받지 않고 왔으므로 거짓말이었다.[12] 당시 한남동은 외무부장관,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육·해·공 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 공관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기에, 여러 단체의 병력들이 기동타격대로 운용되고 있던 것이다.[13] 공관의 혼란한 상황을 보고 받은 뒤 일단 아군끼리의 무력 충돌은 피해야겠다는 판단에서 모든 무장병력의 복귀 명령을 내린 것이다.[14] 장태완의 회고록에 따르면 수표 1장과 함께 "형님! 얼마 되지 않지만 집의 김장에 보태 쓰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메모가 있었다고 한다.(전두환과 장태완은 동갑이고 오히려 전두환이 1월생으로 생일은 오히려 앞섰지만, 장태완이 선배라 이렇게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나이보다 군 경력이 우선시되기에 동갑이지만 2기수 차이인 박종규와 김오랑도 형동생 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단순 인플레이션 계산으로도 2024년 기준 7백만 원이고 당시 9급 공무원 월급의 수십 배에 달하던 거액이 김장값일 리는 없고, 사실상 뇌물에 가깝다는 게 자연스러운 추론일 것이다. 이에 장태완은 수경사 참모장이자 전두환의 동기인 김기택을 불러 난색을 표했고, 기왕 받은 것을 바로 돌려보낼 수도 없으니 총장과 장관에게 돈 100만 원씩을 추가로 받아서 이 백만 원에 합쳐 병사들의 연말 특식 준비에 쓰도록 김기택에게 맡겼다고 한다. 김기택은 반란 초반엔 장태완을 도왔으나 그를 배신하고 1공수여단이 행주대교를 통과할 때 검문소 병력에 저항하지 않도록 지시하는 등(장태완은 접근 병력에 발포하라 명했다.) 반란에 합류했으며, 이후 전두환 정부 하에 국방대학원장, 태평양 건설 사장, 제일화재해상보험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15] 골프 회동 후 노재현 장관은 김용휴 국방차관에게 의견을 물었고, 김 차관은 2시간 만에 즉시 전두환에게 달려가서 귀띔해준다.[16] 서대문구 연희로15안길 33-10 자리.[17] 우국일은 쿠데타 사실은 전혀 모른 채 다른 장군들을 대접하며 이들을 초대한 당사자인 전두환이 왜 이렇게 늦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훗날 우국일은 문민정부의 전두환, 노태우 사법처리 때 증인으로 출석해 이들의 군부와 정권 장악 움직임을 증언하기도 했다.[18] 김진기 헌병감이 연회에 참석하기 전 연회장 전화번호를 헌병감실에 알려놓고 나와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19] 이후 신윤희는 전두환 측에 회유되어 진압군 지휘부를 체포하는 만행을 저지른다.[20] 이때 보고를 듣던 장태완은 이들의 안하무인격 행보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보고를 중지시키고 줄담배를 연거피 피워댈 정도였다.[21] 흔히 장포스로 대표되는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니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니놈들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라는 말을 남겼다고 잘 알려져 있고 장태완의 회고록에도 비슷하게 "전차를 몰고 가서 박살내 버리겠다"는 맥락으로 말했다고 적혀있지만, 보안사 녹취록으로 남은 실제 발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22] 당시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리 정동호 준장, 청와대 대통령 경호실 작전과장 고명승 대령은 모두 하나회 소속.[23] 당시 총리공관 경호대장은 육군 중령 구정길[24] &하나회[25] 여단장 (하나회) 준장 박희도[26] 여단장 (하나회) 준장 최세창[27] 여단장 (하나회) 준장 장기오[28] 이날 수경사령관 체포작전을 주도한 수경사 헌병부단장 중령 신윤희는 하나회 멤버가 아니었으나 반란군 측에 회유된 상태였다. 이후 신윤희는 소장 계급으로 헌병감을 지내 제대로 반란의 댓가를 받았고 이후 12·12를 적극 변호하는 책을 내기까지 했다.[29] 원래 진압군 지휘부는 국방부에 있었으나 실병력을 지휘하기 용이한 수경사로 지휘부를 이동했다.[30]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육군헌병감 김진기,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하소곤, 육군본부 군수참모부장 안종훈 등[31] 16기 이필섭. 이때 공로로 훗날 합참의장[32] 연대장 김봉규. 이때 공로를 세우긴 하였으나, 이건영 군 사령관에게 병력 이동을 보고하는 바람에 별을 못 달았다. 연대장은 하나회 일원이 아닌데다가 전방부대를 빼는 사이에 북괴군이 침공할 것을 우려해 복명복창을 위해 노태우 사단장, 황영시 군단장을 찾으려 했으나 연락이 없자 이건영 사령관에게 연락 하여 삼송리로 출동 하겠다고 보고 했다.[33] 30사단장 소장 박희모는 육군본부의 진압 명령을 받았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전두환 측에 가세했다. 이후 제90기계화보병여단을 거쳐 2020년 12월 부대해체.[34] 2기갑여단장 준장 이상규는 하나회 멤버다.[35]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직[36] 현 해병대 2사단[37] 참고로 그 당시 9공수여단은 제5공수특전여단과 함께 인천 부평구에 위치해 있었고, 1980년대 중반경에 부천시로 이전했다.[38] 당시 9공수여단은 1개 대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대가 모두 훈련에 나가있었기 때문에 당장 이용할 차량이 없어 인근 3군지사에 차량 지원을 요청하여 차량을 지원받아 일단 부대에 있던 1개 대대만을 서울로 출동시켰다.[39] 5.18 민주화운동 때 시위대 진압을 거부한 중장 윤흥정(당시 전투교육사령관 겸 계엄사 전남지역 분소장)의 친동생이다.[40] 제1공수특전여단이 행주대교에서 지체되고 있었는데, 한강의 다리들 중 행주대교를 제외한 나머지는 수경사의 통제 하에 있었다. 비록 수경사 주력 병력은 반란군이었지만 이곳은 수경사 사령관 소장 장태완의 지시가 먹히는 곳이었다. 당시 행주대교는 제30기계화보병사단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장태완은 만약을 위해 다리 봉쇄를 부탁하였지만 이를 도청한 보안사의 1공수 통과 요구를 수용하였다.[41] 강변북로, 자유로가 잘 닦여있는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행주대교까지 우회한다고 해서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나 할 수 있지만, 당시까지 강변북로는 양화대교까지만 개통되어 있었고 행주대교까지의 구간은 1980년 1월에 착공 예정이었다. (이후 1982년 7월 개통) 아울러 당시나 지금이나 경복궁에서 제1공수특전여단까지의 최단 루트로 볼 수 있는 성산로의 경우도 성산대교가 아직 개통되지 않았을 때였다.(성산대교는 1980년 6월에 개통) 당시 박희도가 최단 시간 내에 경복궁에서 1공수여단까지 가는 길은 양화대교를 건너 공항로를 거치는 루트였는데, 양화대교를 통과할 수 없다면 합정동에서 방향을 틀어 연희동, 수색동을 거쳐 화전 30사단 앞을 지나 행주대교까지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 수색을 거치는 길 역시 수색을 지나면 구불구불한 예전 왕복 2차선 국도였다. 수색에서 고양시까지 이어주는 중앙로가 완공된 것은 1990년대에 일산신도시가 들어서게 되면서다.[42] 경복궁에 앉아있는 면면들을 살펴보면 국방부 군수차관보인 유학성은 지휘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 것 없고 수도군단장 차규헌도 한강 이남의 부대들이니 동원해도 전력상 아주 도움이 되지는 않으나, 1군단장 황영시는 예하에 1, 9, 25, 30사단과 2기갑여단이 있는데 이 중에 9사단과 2기갑 일부는 실제로 동원되었다. 물론 이 부대들 모두 3군사령관의 통제 하에 있지만 명령이 무시되고 있었다. 여기에 특전사 예하 4개 공수여단 중 반란군 통제 하에 있던 3개 공수여단은 이미 동원 중이였고, 수경사 예하 30, 33경비단과 헌병단은 사건 당시 알게 모르게 반란군이 통제하고 있었다.[43]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육본 측이 본인들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진압군 측에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수경사 부대 대부분이 이미 반란군 측에 있었으며, 시가전 특화 부대인 공수여단도 3/4이 반란군 측에 있었다. 적의 부대가 더 확장되는 것을 막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신들이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대 자체가 거의 없었다. 수경사와 특전사는 공수여단 없이도 반란군이 마음만 먹으면 점거가 가능했는데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44] 실제로 노태우는 신사협정이 불발되고 수경사와 9공수가 30경비단에 들이닥칠 경우 자살할 생각까지 했다고 회고에서 밝힌 바 있다. 조선일보 기사[45] B2 벙커는 군 수뇌부의 평시 본부로 쓰기 위해 만든 시설이므로 당연히 대한민국에 있는 방호시설 중에서도 최상위급 방어력을 갖춘 곳이고 수경사 사령부보다 훨씬 방어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즉 방어 태세만 잘 갖추면 그 어떤 부대도 넘보기 어려운 곳이다. 그 때문에 육본 수뇌부가 B2 벙커를 버리고 수경사로 이동했다는 말에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전두환이 매우 기뻐하는 모습,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신군부 측이 육본 수뇌부를 보며 "병신들, B2 벙커가 얼마나 뚫기 힘든데" 라며 비웃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46] 이 일로 결국 하나회임에도 준장으로 군 생활이 끝난다.[47] 참고로 노재현은 예비역 대장에 육군참모총장합참의장을 모두 거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어리석은 행보를 보인 것은 장군으로서의 자질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한 꼴이다.[48] 다만 상기했다시피 단순히 낚였다기보다는 서울에서 아군끼리 유혈사태를 벌이면 안보에 큰 위험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49] 정승화 총장이 납치로 인해 유고 상태였으므로 육본의 2인자인 그가 반란군 진압의 최고책임자가 됐다. 그럼에도 전술했듯 반란군과 신사협정을 맺고 안일하게 대응하다가 결국 반란군에게 상황을 정리당하고 만다. 이렇게 반란군에게 미온적으로 대응했기에 신군부의 바지사장이 되어 1군사령관, 합참의장 등을 거쳐 국방장관까지 올랐다.[50] 이때 회군 명령을 늦게 했더라면 부천IC에 진입하여 일단 서울까지는 가서 회군했어야 한다.[51] 방공포병이 운용하는 대공 발칸은 지상 사격이 가능하나, 포구조임쇠 등을 지상 사격이 가능하도록 교체하는 등 지상 화력 지원을 위해선 제반 준비가 필요하다. 게다가 방공진지들의 특성상 대항공기 사격을 상정해 배치되지 지상 사격 시의 사각을 고려하진 않으므로, 제대로 지상 표적을 공격하려면 결국 위치를 옮겨야 하며 청사 지상, 정문에 대한 사각 또한 확보해야 된다. 적 지상군과 조우할 위급 상황은 대비할 시간이라도 있지 쿠데타란 이 급박한 상황에서 이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52] 게다가 육본의 B2 벙커는 방어 시설은 탄탄했으나 방어 병력 인원은 얼마 되지 않았고, 육본 수뇌부들은 모두 수경사로 옮겨간 상태였다.[53]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자 소장으로 진급 후 56사단장을 지내고 예편했다. 하지만 하늘도 이 작자가 김오랑을 살해한 것에 대해 격분했는지 2010년에 식도암으로 사망했으며 향년 67세였다.[54] 명동역충무로역 사이 퇴계로에 있던 소규모 관광호텔로, 당시 수경사령부 주둔지(현 남산골한옥마을)의 코앞이다. 아스토리아 호텔은 2015년에 철거된 뒤 재건축해 현재 '디어스 명동'이라는 이름의 호텔로 영업 중이다.[55] 토우미사일은 유선유도 형식이라 시가지에서 끊어지기 쉬워서 참모들이 동원을 반대하였으나, 육탄 공격을 각오한 마당에 그런 걸 따질 장태완이 아니었다.[56] 전차는 엔진 소음으로 인해 무전기 소리가 매우 크게 세팅되어있다.[57] 이들도 전두환에게 포섭된 상태였다.[58] 관련 기사는 외부 링크 참조. 기사(조선일보) 옆에 광화문과 그 뒤에 중앙청이 보이고 경복궁 담장은 일제에 훼손된 채 그대로 남아있다. 경복궁 남쪽 담장이 복원된 건 2010년의 일이다.[59] 후일 12·12 공판 당시 신현확 당시 총리의 진술에 의하면 서명 시각은 12월 13일 오전 5시 10분이었으며, 전날인 12일 밤에 이루어진 정승화 총장 체포가 재가 이전에 벌어진 불법행위임을 명시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한 조치였으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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