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5 06:51:30

퇴계로(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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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점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서울역교차로
종점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성동고교교차로
연장
4.7km
개통
1938. 7. 10. 회현사거리 - 충무로역
1958년 서울역 - 회현사거리
충무로역 - 광희동사거리
1965. 10. 15. 광희동사거리 - 한양공고
관리
서울특별시 서부도로사업소
왕복 차로 수
6차로
주요 경유지
서울역명동충무로역한양공고성동고교

1. 개요2. 역사3. 상세4. 주요 시설5. 기타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서울역교차로에서 신당동 성동고교까지 이어지는 총 연장 4.7km, 왕복 6차선의 도로이다. 도로명은 퇴계 이황이 근방에 살았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1946년 10월 1일, 도로명 제정 당시에 이황의 호를 따서 퇴계로라 명명하였다.

서울역교차로에서 퇴계로2가교차로까지는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으로 지정되어 있고, 한양공고앞교차로에서 성동고교교차로까지는 60번 서울특별시도로 지정되어 있다.

2. 역사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남촌(南村)이라 불리던 곳으로서, 남산 북쪽 기슭의 택지가 자리잡은 곳이었다. 이 당시에도 퇴계로의 전신이 되는 도로가 존재하였으나 골목길 수준이었고, 본격적으로 도로가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1910년대부터 이 지역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현재의 한국은행앞교차로를 중심으로 조선은행(現 한국은행)과 미츠코시 백화점(現 신세계백화점 본점), 경성우편국(現 서울중앙우체국) 등이 자리잡아 경성 내 일본인들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 이르면 황금정(現 을지로)와 남대문통(現 남대문로)에 교통난이 빚어졌고, 조선총독부는 황금정과 남대문통의 교통난을 완화할 목적으로 1936년부터 경성역(現 서울역)에서 신당정(現 신당동)에 이르는 '남부간선도로(南部幹線道路)'를 계획하게 되었다.

1937년에 착공하여 1938년 7월 10일에 우선 회현사거리에서 현재의 충무로역까지의 구간을 개설하였고, 1939년에는 이 도로를 소화통([ruby(昭和通, ruby=しょうわどおり)], 쇼와도리)로 명명하였다. 당초 1939년에는 나머지 구간도 모두 완공할 계획이었으나, 어째선지 완공이 차일피일 미루어졌고, 1940년 이후로는 공사에 대한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준공이 늦어지던 차에 1941년 태평양 전쟁까지 발발하며 공사가 중지된 것으로 보인다.

1945년 초에는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서 방화대(防火帶)를 마련하고자 도로 주변의 건물들을 헐고 너비 40m로 대폭 확장하였다.[1] 해방 후에는 일제식 동명과 가로명을 재정비하면서 퇴계로로 명칭이 바뀌었다.

해방 이후에도 공사를 재개하지 못 하다가, 6.25 전쟁이 끝난 후에 서울 도심을 복구하면서 1차 구간이 개통된 지 16년 만인 1954년에 공사를 재개하였다. 이 또한 당초에는 1955년까지는 준공을 볼 계획이었으나, 공사 진행 속도가 더뎌 4년의 공사 끝에 1958년에야 서울역에서 광희동사거리에 이르는 구간이 개통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까지만 해도 광희동사거리에서 왕십리 방면이 곧장 이어지지 않아 동대문운동장까지는 교통난이 계속되었는데, 이를 해소하고자 1962년부터 왕십리로와의 직통 도로를 뚫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도로는 동년 10월 15일에 그 준공을 보았으며, 첫 삽을 뜬 지는 2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전 구간의 개통을 보게 된 것이다.

1966년 9월에는 종전 퇴계로의 구간을 회현사거리에서 광희동사거리로 단축하고 도로명을 광희로(光熙路)로 바꾸었다가, 1972년 10월에 다시 퇴계로로 환원하였다. 2010년에는 도로명주소 도입에 따라 종전 왕십리로 구간이었던 한양공고~성동고교 간의 구간을 퇴계로로 편입하였다. 해당 구간에서는 왕십리로에 이어 가변차로제가 시행 중이었지만 2018년부로 가변차로제가 폐지되었다.[2]

3. 상세

사대문 안에서는 종로, 을지로 등과 함께 동서를 잇는 주요 도로이자, 사대문 안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종축 도로이다. 퇴계로를 따라서 서울 지하철 4호선이 건설되어 있다.

서울역, 남대문시장, 명동, 충무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서울 도심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들을 잇는 노선이기 때문에 교통량이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왕복 6차선 밖에 되지 않아 테헤란로와 함께 서울특별시의 양대 상습 정체구간이다.

기점인 서울역에서는 통일로, 세종대로, 한강대로, 만리재로, 청파로와 만나고 종점인 성동고교사거리에서는 왕십리로와 직결되고 난계로와 만난다.

4. 주요 시설

5. 기타

다만 서울역고가차도의 버스 진입제한으로 인해, 7011번같은 노선은 퇴계로를 빠져나온 후에도 이쪽에 신호가 없어서 한참 위의 세종대로네거리까지 가서 돌리고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런 불편으로 인해 421번은 하행 한정으로 숭례문북창동으로 편도 운행한다. 게다가 이 진출입부가 서울역버스환승센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421번, 505번, 507번은 하행에만 환승센터 정차가 가능하다.

퇴계로 4가까지 반려동물 상가(충무로 애견타운), 5~6가에 오토바이 상가가 쭉 늘어서있다. 오토바이 수입딜러 뿐만 아니라, 코미네, 알파인 스타 등 오토바이 용품을 살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오토바이상가도, 반려동물샵도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누리다가 현재는 침체상태이다. 가장 큰 딜러매점이였던 강북혼다딜러매장도 청량리역 근처로 이전해버렸다.
퇴계로의 숲이라는 소설이 오래전에 나왔었다. 위에 서술된 퇴계로와의 연관점은 거의 없고, 내용은 상당히 야하다. 거의 야설수준...

게임 파이터즈 히스토리의 등장인물 미조구치 마코토의 승리대사가 "퇴계로 사거리!" 라고 들리는 몬더그린현상이 있다.


[1] 이 공습 대비 소개구역은 동서 구간인 퇴계로와 더불어 남북 구간도 있었는데, 이곳은 해방 후 판자집들이 들어섰다가 1968년에 세운상가로 재개발된다.[2] 현재 서울시내에서 가변차로제가 시행되는 곳은 소공로 중에서 조선호텔에서 한국은행 사거리까지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