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XXX 때문에 개고생 류의 클리셰 중의 하나며 한마디로 부모, 형제, 배우자, 조상, 후손 등의 인물이 저지른 짓이나 행동들 때문에 개고생하는 클리셰를 말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와도 관계있다. 연좌제가 이것의 대표적인 사례. 이 경우 "저 놈 집안은 뿌리부터 글러먹었다"란 식의 대사가 대표적이다. 물론 도의적인 경우라면 몰라도 민주공화국에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친족의 잘못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기도 하고..혈연의 잘못 또는 실수 때문에 다른 혈연이 고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좋은 뜻으로 한 일 때문에 본의 아니게 혈연이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부모나 형제의 능력이 지나치게 뛰어나 비교를 당한다거나 명성이 높아 그 부담감이나 열등감 등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이 경우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 경우는 "우리 가문에서 너 같은 놈이 나오다니!" 식의 대사와 연관이 있는 클리셰. 아니면 아예 가족 구성원들끼리 서로 잡아먹으려드는 콩가루 집안이 그야말로 타인보다도 못한, 없는게 차라리 나을 혈연인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핏줄에 대한 미움이 아주 커질 수밖에 없다. 혈연의 숙적 때문에 그와 엮여서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보면 XXX 때문에 개고생 중에서 가장 괴롭고 억울한 경우이기도 하다. 친구나 동료, 연인 등의 자유의지로 맺은 인물로 인해 고생하는 경우는 절연 등의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는 자의에 관계없이 태어나면서 겪게 되고, 해결 방안도 상당히 어럽기 때문이다.[1]
2. 사례
주로 막장 부모, 패륜아, 범죄자 가족 등을 둔 인물들이 있다. 그 반대로 자기가 개고생할 경우 ☆.2.1. 실제 사례
- 중증 장애, 불치병, 난치병 환자 가족들 - 한 명 때문에 단체로 도탄에 빠지는 사례. 그러한 병이나 장애를 가진 구성원의 수발을 들어주는 것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치고 재정적으로도 파탄나 가난에 빠지기 쉬우며, 이러한 스트레스로 인해 해당 구성원을 유기해 고려장을 해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살해 한 후 자신도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 과거 역적 가문들 - 역사 대대로 역적이 생긴 가문은 그 친족은 물론이요 구족 즉 사촌의 사촌같은 꽤 먼 핏줄까지도 깡그리 잡아서 씨를 말려놓을 때도 있었다. 심지어 이웃이나 친구 그리고 이웃과 친구의 친족들까지도 죽일 때도 있을 정도다. 역적 모의만 해도 최소한 성인 남자 직계는 멸족시킬 정도.[2]
- 대부분의 친일파 후손들 - 어떤 기록이나 물품 등이 발견되어 처음에는 좋아라 했는데 알고 보니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주변으로부터 멸시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친일파들은 나라 팔았고 같은 민족들을 괴롭히면서 부귀영화를 누린 놈들이어서[3][4] 자업자득일 뿐이다. 이들 중 정신차린 후손들은 반성이나 속죄를 받아들이지만[5], 아직도 정신 못 차린 후손들은 조상이 매국노 짓으로 벌어들여서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을 빼앗지 말라고 적반하장하는 중이다.
- 윤석순 - 제5공화국 시절 국회의원을 역임한 인물이다. 아버지 윤종화가 조선인 중 최고위급 친일경찰이었으나 윤석순 본인은 8살 때 아버지가 소련군에 체포되어 행방불명이 되었기에 아버지의 행각과 관계없이 출세했으나 아버지의 전적이 드러나며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게 되었다.
- 미르 자파르의 후손들 - 미르 자파르는 플라시 전투 때 권력을 얻기 위해 일부러 영국에 져주며 영국의 인도 침탈에 불을 붙인 매국노로, 매국의 대가로 그 자손들은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 기간 동안 뱅골의 지배층, 못해도 토호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들은 인도가 독립하면서 토지개혁으로 토지도 다 뺏기고 인력거꾼으로 살아가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몰락했다. 그 후손 중에는 파키스탄의 독재자[6]로서 갓 독립한 파키스탄의 미래를 처참히 망쳐놓거나 미르 자파르는 매국노가 아니라며 조상을 미화하는 책을 써서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 관흥의 후손들 - 방회에 의해 멸족되었다.[7]
- 개성 왕씨 - 고려의 왕족 즉 핵심계층이었다는 주제에 이성계에게 멸족되었다.[8]
- 궁예
- 그레이스 켈리 - 장남 알베르 2세를 포함한 세 자녀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9]
- 기자오 - 아들 기철이 백성들을 괴롭히고, 딸 기황후는 원나라 황후가 되어 매국 행위를 하고 있다.
- 김병연 - 김삿갓이라고 알려진 인물. 하필이면 할아버지인 김익순이 지지리도 못난이었고, 그 자신도 알고 보니 자기 할아버지는 만 번 죽어 싸다는 글로 급제한 게 되어서...[10]
- 나치 후손들 - 대부분의 나치 후손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거의 안 좋은 취급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구드룬 부르비츠처럼 네오나치적 행보를 보이는 이도 있고, 아버지의 잘못을 사죄한 사람도 있다.
- 노비 - 일천즉천 원칙에 다라 부모 중 한 쪽이 노비면 자식도 태어날 때부터 자동으로 노비가 되어야 했다. 다만 이것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서 노비종모법[11], 노비종부법 등에 의해 아버지가 노비일 때 혹은 어머니가 노비일 때 노비가 되는 등 무조건적으로 일천즉천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비도 오래 살면 양인으로 면천시키기도 했다.
- 라마 9세 - 아내와 딸들은 개념인이지만, 정작 아들 라마 10세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 루돌프 황태자 - 부모인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황후, 할머니 조피 프리데리케 때문에 일생 동안 크게 시달려야 했다. 개혁적이고 진취적이었지만 보수주의자인 아버지의 강경한 친정 반대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가 쌓여 술과 마약에 빠져 지내다 아버지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과 결혼을 하지 못하게 하고 관심 없는 여인과 강제 결혼시키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가중되다 결국 자살했다.
- 루이 16세 & 마리 앙투아네트 부부 - 왕족치고는 매우 검소하게 살았지만, 이미 선대에서부터 이어져온 재정파탄을 막지 못해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현대의 역사서에서도 악평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 로힝야 - 영국령 버마 시절 대영제국을 등에 업고 버마족을 상대로 온갖 갑질과 횡포를 부리다 독립 이후 재산권과 공민권을 제한받더니 네 윈의 쿠데타 이후 그나마 남은 재산을 빼앗기고 라카인주 북부로 강제 이주되었고 지속적으로 토벌작전에 시달렸으며 국적법 개정으로 국적을 박탈당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었으며 불교로의 개종 강요, 모스크 폐쇄와 방화 및 파괴, 교육권 제한 등 극심한 탄압에 시달리다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의 발호를 계기로 미얀마군과 현지 소수민족들 민병대의 대대적인 학살이 시작되어 3만명 가량이 살해당하고 80만명 가량이 탈출하여 지금은 1~20만명 정도만 남아 있으며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 마저 미얀마군의 철저한 진압과 아라칸 반군의 세력 확대로 미얀마 내 아지트들을 전부 빼앗기고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마약을 팔고 난민들에 상납을 요구하는 등 깡패나 도적 수준으로 전락하였으며 비어있는 로힝야 마을들은 신속히 철거되어 군 기지와 불교도 정착촌이 들어서고 남아있는 로힝야족들도 자신들의 마을에 미얀마군과 아라칸 반군의 갈등으로 두 세력이 로힝야 마을에 전략적으로 주둔하게 됨으로서 자신들의 집을 막사로 압수당한다거나 불법체포 감금, 징용에 시달리고 인간방패로 이용되는 등 영고라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 마르셀 티베르크 - 모친의 조상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갔고, 얼마 후 사망했다.
- 마초의 일족들 - 마초가 반란을 일으키자, 수도에 있던 200명의 일족들이 처형되었다.
- 목종 - 그가 타락한 게 어머니 천추태후 때문이였다. 말년에 강조의 정변으로 폐위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 문앙
- 문종 - 친동생 수양대군의 권력욕 때문에 외아들 단종을 잃었다. 단, 문종은 아들 단종이 사망하기 이전에 요절했다.
- 미천왕 - 젊었을 때 백부 봉상왕의 만행으로 아버지 돌고를 잃어 소금장수로 살아간 적이 있었다. 다만 이후에는 백부를 몰아내고 고구려 15대 왕이 되지만 아들 고국원왕 시기에 중국의 선비족에게 개털리고 시신도 탈취당했다.[12]
- 사도세자 - 그의 타락의 원인은 아버지 영조의 어마무시한 학대 때문이였다.[13]
- 알렉산드르 3세 - 누나 알렉산드라 공주와 형 니콜라이 황태자는 병으로 요절했고,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가 말년에 불륜을 저질러 어머니 헤센의 마리를 맘고생하게 만들고 있다가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심지어 장남 니콜라이 2세 일가가 간신 그리고리 라스푸틴에게 세뇌당하는 바람에 로마노프 왕국이 멸망당했고, 남동생 미하일과 함께 볼셰비키에게 처형당했다.
- 연개소문 - 사후에 세 아들들 중 한 명이 당나라에게 나라를 팔아먹는 짓을 저질렸다.[14]
- 윤서인의 아들 - 아버지의 막장 행보로 인해 학교에서 아버지의 정체가 드러났고 이로 인해 아버지를 향한 비난과 왕따를 당한 전적이 있다. 심지어 이쪽은 아버지가 대놓고 유튜브에 자신의 아들의 이름과 얼굴을 당당히 까발린채 출연시켰다.
- 이방자 - 조선 왕족에게 시집을 간 일본 황족이어서 일제강점기 때 조선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조선인들을 등한시했던 다른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남편과 잘 지내며 나중에는 무난히 살아갔다.
- 이순신의 후손들 - 이순신 이전에는 문반 집안이었으나, 이순신의 후손들 중에는 문과 급제자가 1명뿐이고 나머지가 전부 무과 급제자일 정도로 무반 집안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이순신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무반으로 등과하기를 강제당한 정황도 있으며, 기껏 등과해도 툭하면 조상인 충무공과 비교당하며 까이기 일쑤였다. 충무공의 후예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도 있었고, 후손들도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는 하지만, 어느 의미에서는 혈연 때문에 후손들이 고생한 사례임에는 분명하다.
-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와 그 일가족 - 병자호란 당시 포로로 잡힌 조선인들을 돌려보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그들에게 여러가지를 배워올 정도로 총명했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막장암군인 아버지의 견제로 인해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귀국한지 1년도 안 돼서 병사[15], 아내 민회빈 강씨는 사실상 누명을 쓰고 어머니랑 동생들과 함께 인조한테 살해되었고, 3명의 아들들 중 막내를 제외한 두 아들은 유배를 가서 풍토병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막내도 귀양이 풀린지 얼마 안되어 요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현세자의 뒤를 이어 세자가 되고 왕위에까지 오른 효종의 직계는 끊겼고[16], 소현세자의 대는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관련된 가정들 - 예외사항이 존재하긴 한다만, 일단 일제강점기에는 100% 그랬다. 특히 독립군이 간도 지역으로 건너간 원인이 독립군의 가정을 몰살시켰기 때문. 게다가 광복한 뒤인 현재에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절대다수가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17] 대부분 정부 보조도 못 받고 숨을 거뒀다.
- 전우원 - 전두환의 후손으로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손자 폭로 사건이라는 내부고발을 통해 고생을 자처했다.
- 정세영 - 정주영의 남동생으로, 장남 정몽규가 현대가를 포함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최악의 악질을 저지르고 있다.
- 정주영 - 자식들(8남 3녀) 중 2명은 사고사나 자살을 했고, 그의 후손들 일부가 마약이나 음주운전 등 각종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 조조의 자식 중 조앙, 조비, 조간을 제외한 나머지 자식들[18]
- 조지 6세 - 형 에드워드 8세가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여 왕위에 퇴위하고 본인이 원하지 않게 왕위에 올라갔다.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지빌라 공녀 -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큰며느리로, 아버지 카를 에두아르트[19]가 나치당원으로 일을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남편 구스타프 왕자를 비행기 사고로 잃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지빌라는 왕세자비와 왕비가 되지 못했고, 외아들 칼 16세 구스타프가 국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 진골 - 성골의 맥이 끊겨 태종 무열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신라는 성골이 아니면 왕이 될 수 없었다.[20]
- 집시[21]
- 충숙왕 - 장남 충혜왕은 방탕하고 막장 행보를 보인 폭군이 되었고, 차남 공민왕은 초반에 정치를 잘하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 타락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 칭기즈 칸 - 하필 아버지가 약탈혼을 해서 본인은 이로 인해 아버지가 살해되고 아내를 도둑맞기까지 했다. 이것 때문에 약탈혼에 진저리가 제대로 났는지 후에 아예 금지시킨다. 이 외에도 이복형인 벡테르가 엄청 못살게 굴어서 어린 시절 내내 개고생을 했는데 어른이 되자마자 자신을 때린 벡테르를 활로 쏴서 사살해버렸다. 문제는 이것 때문에 어머니인 호엘룬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 태조 이성계 - 하필이면 5남 태종 때문에 자식들을 잃은 적이 있었다.[22][23]
- 프리드리히 대왕 일가 -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가정폭력 때문에 가족들 전체 다 개고생을 했다. 특히 어머니 조피 도로테아 왕비는 영국 국왕이었던 아버지 조지 1세가 어머니 조피와 강제로 이혼하여 오빠 조지 2세와 아버지를 원망했고, 남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 어린 두 아들을 잃었다. 결국 프리드리히 빌헴름 1세가 사망하자마자 가족들 전원 다 기뻐했다.
- 해명태자
-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 - 어렸을 때 혈우병 환자였던 남동생 프리드리히가 사고사했으며, 어머니 앨리스 공주와 여동생 마리도 디프테리아로 병사했고, 러시아로 시집간 두 여동생 엘리자베트와 알릭스가 가족들과 함께 볼셰비키에게 처형당했다. 심지어 셋째 외손녀 그리스와 덴마크의 케킬리아가 가족들과 함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고, 유일하게 생존한 외증손녀 요한나조차 수막염으로 요절했다.
- 홍사우 - 아들 홍륜이 공민왕을 살해하는 반역죄를 저질러 이로 인해 연좌제로 사형에 처해진다.
2.2. 종교/신화적 사례
- 기독교
- 인간 -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탓에 원죄를 짊어지게 되었다고 본다. 나중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세례를 통해 원죄를 씻을 수 있게 되었다.
- 야곱 - 아버지 이삭이 쌍둥이 형 에서를 편애한 것 처럼 어머니 리브가에게 편애를 받고 성장했다. 말년에 본인이 라헬과 그녀의 아들들을 편애하면서 자식 농사를 말아먹었다.[24]
- 요셉 -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인해 이복 형들의 질투를 받다가 노예로 팔려갔다. 다행히 파라오의 눈에 띄어 이집트 총리가 된 후 기근을 이겨내도록 도움을 주어 큰 위인으로 자리매김 하고 가족과 다시 만난다.
- 다윗 - 자기 부하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을 저질러서 그런지, 의도치 않게 자식 농사를 말아먹었다. 장남 암논은 삼남 압살롬에게 끔살 당하고, 삼남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키다가 요압에게 끔살, 사남 아도니야는 반역을 일으킨 혐의로 솔로몬에게 처형, 솔로몬은 말년에 우상 숭배를 저질려 왕국 분열의 원인을 제공했다. 딸 다말은 이복오빠 암논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 요나단 - 아버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어서 다윗을 몰래 도와주었다.
- 여호사밧 - 장남 여호람이 다른 형제들을 몰살시키는 바람에 창자가 빠져나오는 불치병에 걸려 최후를 맞이했고, 손자 아하시야는 예후에 잡혀 죽임을 당했다. 게다가 증손자 요아스와 현손자 아마샤는 반역자들에게 살해당했다.
- 요시야 - 조상 여호사밧과 비슷한 케이스. 아들들과 손자가 다 하나님께 죄를 짓다가 이집트나 바빌론의 포로로 끌러갔다.[25]
- 그리스 신화
- 데메테르 -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고, 제우스는 납치를 도왔다. 심지어 페르세포네를 찾던 도중에 포세이돈에게 겁탈당한다. 결국 개빡쳐서 파업하고 딸을 만난 것을 확인한 뒤에야 분노를 풀었다.
- 카드모스 관련 인물들 - 그리스 신화 최악의 불운 핏줄. 카드모스가 아레스에게 받은 저주가 후손들에게도 이어졌다.
- 세멜레 - 디오니소스의 어머니다. 제우스의 본모습을 보고 타 죽었다. 이후 디오니소스는 제우스가 거둬들여 키우게 된다.
- 아가우에와 펜테우스 모자 - 어머니는 조카이자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섬겼는데, 펜테우스는 사촌인 그를 위험시하며 신앙을 금지하려 했다가 어머니와 이모들에게 찢겨 죽는다.
- 악타이온 - 우연히 아르테미스의 나체를 본 죄로 사슴이 되어 사냥개들에게 찢겨 살해당한다.
- 니오베의 일곱 아들과 일곱 딸, 그리고 남편 암피온 - 어머니의 허풍으로 인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모두 살해당했고, 남편은 자식들을 잃은 충격에 자살했다. 자식들 중 가장 어렸던 막내 아들과 막내 딸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제는 니오베가 중간에 허풍을 그만뒀다면 딸들이라도 살 수 있었다는 점이다. 판본에서는 이 어린 막내들은 신들이 불쌍히 여겨서 살아남았지만 니오베는 위의 자식들이 전부 죽자 그 충격으로 돌이 된 것은 변함없다.
- 오이디푸스 일가 - 아버지인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에게 죽었고,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자살, 자식들 중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테베를 차지하려 싸우다 죽었으며, 안티고네는 이렇게 죽은 형제들의 시신을 거두어 주었다가 감금되어 자살하고, 이스메네는 안티고네의 죽음에 절망하여 자살하였다.
- 크레온 - 이오카스테의 오빠. 조카들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테베 공방전을 벌여서 아들 메노이케우스, 메가레우스를 잃는다.
- 아이손과 이아손 부자 - 아이손은 이부형제 펠리아스에게 폐위당했고, 이아손은 펠리아스의 명령대로 황금 양털을 가져왔지만 왕좌를 얻지 못했다.
- 아이에테스 - 메데이아에게 아들 압시르토스를 잃었고, 형제인 페르세스에게 왕좌를 뺏겼다.
- 압시르토스 - 누나 메데이아가 황금 양털을 빼돌리고 이아손과 도주할 때 살해당했다.
- 페르세우스 관련 인물들, 그냥 페르세우스 항목을 보자.
- 아크리시오스 - 페르세우스의 외할아버지. 외손자에게 죽을 것이란 예언을 막으려 딸을 탑에 가뒀고, 그래도 임신하자 상자에 넣어 바다에 던졌으나 결국 페르세우스가 원반던지기 대회에서 날린 원반을 맞아 사망했다.
- 다나에 - 페르세우스의 어머니. 공주였으나 아버지에 의해 탑에 갇히고, 제우스에 의해 페르세우스를 낳은 후에는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등 온갖 고생을 한다.
- 안드로메다 - 페르세우스의 아내. 어머니 카시오페이아 왕비의 오만의 죄를 덤터기쓰고 괴물에게 산제물로 바쳐질 뻔했다. 그래도 페르세우스에 의해 구해져서 해피엔딩.
- 프테렐라오스 - 적장 암피트리온에게 반한 딸 코마이토에게 배신당하고 죽는다.
- 아이트라 - 아들 테세우스가 헬레네를 납치하는 바람에 폴리데우케스에게 납치, 강간을 당하고 헬레네의 시녀가 된다.
- 이다스, 린케우스 - 사촌들인 폴리데우케스와 카스토르에게 약혼녀와 재산을 뺏겼다. 린케우스는 카스토르에게 살해당한 후 고인드립을 당했고, 이다스는 카스토르를 죽여 원수를 갚았지만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죽는다.
- 헤라와 혈연 관계가 없는 제우스의 자녀들 대부분 - 헤르메스처럼 헤라의 저주를 피하거나 페르세우스처럼 잘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제우스의 사생아들은 적어도 한번 이상씩 헤라에게 손질당했다. 사실 페르세우스도 외할아버지인 아크리시오스에게 버림받고 어머니 다나에와 함께 작은 상자에 갇혀 바다를 떠돌아다니다 어부 딕티스에게 간신히 구조당했다.아무리 헤라라 해도 개고생한 사람을 건드릴 리가...그마저도 헤라와 화해하고, 직접 인정받은 사생아는 헤라클레스 밖에 없으며, 그것도 생전에는 헤라의 농간으로 인해 엄청난 괴로움을 겪은 후라는 것이 함정. - 헬레노스를 제외한 트로이 왕족 대다수 - 시조인 다르다노스부터 아버지 제우스에게 형제 이아시온을 잃었다. 포세이돈과 아폴론을 기만한 라오메돈 때문에 헤라클레스에게 털리고, 남편이 있는 헬레네를 데려온 파리스 때문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버렸다. 게다가 헥토르와 데이포보스는 각각 아킬레우스, 메넬라오스에게 시체가 훼손당했다.[26]
- 아트레이드
- 펠롭스 - 아버지 탄탈로스에게 살해당한 후 자신의 시체까지 신들에게 먹힐 뻔 했다. 탄탈로스의 만행을 알아챈 제우스 덕분에 다시 살아나지만.
- 크리시포스 - 펠롭스의 편애를 받았기 때문에 이복형 아트레우스, 티에스테스에게 살해당했다.
- 티에스테스의 세 아들 - 큰아버지 아트레우스에게 살해당한 후 본인들의 시체는 티에스테스에게 먹혔다.
- 펠로페이아 - 아버지 티에스테스에게 강간당하고 자살했다.
- 탄탈로스 2세와 그 아들 - 조카 아가멤논에게 살해당하고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뺏겼다.
- 오레스테스, 엘렉트라, 이피게네이아 - 이피게네이아는 아버지 때문에 아르테미스에게 산 제물로 바쳐졌고,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에게 살해당할 뻔 했으며, 엘렉트라는 어머니에 의해 강제로 농부와 결혼하게 된다. 나중에 오레스테스의 주선으로 엘렉트라는 자신을 좋아하던 사촌남동생 필라데스와 결혼하지만. 이피게네이아도 그녀를 불쌍히 여긴 아르테미스가 신녀로 삼아 목숨을 건지고 동생들과 상봉하며 해피엔딩.
2.3. 가상의 사례
자세한 내용은 혈연 때문에 개고생/창작물 문서 참고하십시오.3. 관련 문서
[1] 그래서 학교 교사, 직장 상사, 군대 고참보다 가족내 손윗사람들이 똥군기를 잡는 것이 더 심각하고 무섭다는 것이다.[2] 다시 말해서 내가 역적 모의를 했다고 하면 나를 포함해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는 확실하게 죽는다는 거다.[3]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나라를 팔아먹었건 협조를 했건 간에 제정신 차려서 독립운동에 나서거나, 일본에 우호적이었다고 해도 나라를 팔아먹지 않으면 친일파, 정확히 말하면 친일반민족행위자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여기에 든 인간은 쓰레기들뿐이라고 보면 된다.[4] 다만 말단 순사, 실무 부역자(법조인, 공무원 등)처럼 비교적 가벼운 부역 행위를 한 경우는 어느 정도 참작 여지가 있다.[5] 애당초 그저 그들의 후손으로 태어났을 뿐인 그들이 반성이나 속죄를 할 필요조차 없다. 이 문서에조차 받아들인다 자체가 한국 사회가 아직 연좌제가 남아있다는 증거이다.[6] 파키스탄의 초대 대통령 이스칸데르 미르자. 미르 자파르의 9대손이며, 영국령 인도군에서 중령까지 진급하였다.[7] 이랬던 까닭은 방회의 아버지는 방덕이었는데 관흥의 아버지 관우와 싸우다 전사했다. 그나마 관우에게는 다행인 것이 장남인 관평의 자손은 살아남아(관평은 아버지인 관우와 함께 끌려가 오나라에서 죽었고 그 자손들까지 오나라에서 살게 되었는데 덕분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아직도 대를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8] 모조리 멸족된 건 아니지만 수십년간 온갖 고초를 겪었고, 아예 성씨를 바꾸고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이런 경우는 원래 다른 성이었는데 왕씨 성을 받았던 사람 자손이거나 아니면 진짜로 성을 바꾼 케이스) 얼마나 많이 줄었는지 개성 왕씨는 아직도 극소수다.[9] 알베르 2세는 사생아 2명을 두면서 결혼할 때 20살 어린 샤를린 공비를 강제로 데려왔고, 첫째 카롤린 공녀는 1번의 이혼과 속도위반 결혼을 2번을 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막내 스테파니 공녀는 문제가 많은 남자들을 만나 사생아를 낳은 기행을 했다.[10] 다만, 이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다.[11] 참고로 뉴라이트들의 주장과 달리 노비종모법과 일천즉천은 관계가 전혀 없다.[12] 다만 선비족은 증손자 광개토대왕이 철저히 분쇄시키긴 했다.[13]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가한 온갖 학대는 엄연히 정사에 기록된 사실이다. 특히 영조가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가졌고 매우 장수한 것이 사도세자가 미치게 만드는 것에도 연관이 없진 않다.[14] 나라를 팔아먹은 아들은 첫째인 연남생이며 끝까지 싸운 아들은 둘째 연남건이다.[15] 당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독살당했다는 설이 끊이지 않는다.[16] 과거에는 생물학적이라는 말을 썼지만 효종의 가계에는 공주, 옹주들도 있었기에 확실하지 않다.[17] 물론 기득권이 된 독립유공자 자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김구, 김좌진, 이회영의 후손들이 있다.[18] 다만 조비는 아직까지도 평가가 박하다. 아버지인 조조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19] 에두아르트는 빅토리아 여왕의 4남 레오폴드 왕자의 유복자였다.[20] 원래는 성골 남자만 왕이 될 수가 있었으나 이후 맥이 끊겨 최초의 성골 여자인 선덕여왕이 즉위한다. 이후 성골 여자도 맥이 끊겨 태종무열왕이 진골 최초의 왕이 된 것이다.[21] 이들은 집도 없고 방랑생활을 주로 하는데 그것 때문에 범죄에 쉽게 걸려서 표적이 되곤 한다.[22] 후처 신덕왕후 강씨의 낳은 두 아들인 이방번과 이방석 한정이다. 장남 진안대군 방우는 부친과 단절한 상태로 요절했고,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4남 방간은 친동생 태종에게 패배하여 유배 당했다.[23] 그러나 왕자의 난이 일어난 원인은 후처 신덕왕후 강씨가 낳은 이방석을 편애했기 때문이였다. 본인의 의도치 않게 전처가 낳은 아들들의 불만을 터뜨려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셈이다.[24] 장남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간통하는 바람에 장자권을 박탈되었고, 차남 시므온과 삼남 레위는 여동생 디나를 성폭행한 세겜 일가를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사남 유다는 큰며느리 다말과 근친상간을 저질러 쌍둥이 아들을 낳았고, 외동딸 디나는 히위 족속 족장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게다가 가장 아끼는 아들 요셉은 형들의 미움으로 노예로 팔려간 동시에 이집트의 죄수로 살아갔다. 다행히도 이집트 총리로 출세하여 다시 상봉했다.[25] 차남 여호야김과 막내 시드기야, 손자 여호야긴은 바빌론으로, 삼남 여호아하스는 이집트로 끌러갔다.[26] 그나마 헥토르는 신들이 시체를 보호해주기라도 했다.[27] 이 관점에서는 어찌보면 인생 자체가 개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