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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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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부마 정종에게 거열형이 집행되는 장면
드라마 왕과 비에서

1. 개요2. 집행 방법3. 한국사에서4. 서양에서5. 거열로 처형된 사람들6. 거열이 표현된 콘텐츠7. 기타8. 관련 문서

1. 개요

거열형()은 사형의 방법 중 하나이다. 환열(裂), 환형(轘刑)으로도 불린다.

중국전국시대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변법과 개혁으로 유명한 나라 재상인 상앙이 개발했다고 전하며, 과 사지를 밧줄에 묶어 의 힘으로 각각 반대 방향으로 당겨 찢어 죽이는 방법이다. 이름에 수레 거가 들어가는 이유는 밧줄을 소의 몸에 묶은 모습이 우마차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사극 등에서는 이를 오해하여, 실제 수레가 형 집행에 동원되는 연출이 나오기도 한다.

2. 집행 방법

5마리의 를 이용해 당기기에 오우분시(五牛分屍)라고도 하고, 몸이 5조각이 나므로 오체분시라고도 한다. 잘 안 찢어질 경우에는 망나니가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칼집을 내기도 했다. 능지형 정도는 아니라도 심히 아프게 죽을 것은 확실하다.

실제로 거열형을 실행하면 무릎 관절 혹은 허벅지 관절부터 찢어지지만 허벅지 관절이 뜯어지는 상황은 거의 없다. 적어도 역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무릎부터 파열한다.[1] 또한 보통 상상하는 모습대로 양 손목과 발목에 줄을 묶었다간 손발만 뜯겨져 나가 죽지 않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팔꿈치와 무릎에 줄을 묶는다.

이 벌을 고안해낸 상앙은 결국 죽은 뒤 이 형벌부관참시를 당했다. 사형대 기요틴을 고안해 낸 기요탱 박사가 기요틴의 이슬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소문에 불과하지만 상앙의 거열은 사실이다. 산 채로 당한 것은 아니고 숙청의 위기에 몰린 상앙이 반란을 일으켰다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자 그 시체를 함양으로 끌고 가 거열에 처했다. 그는 변법으로 진나라에게 부국강병을 이뤄주고 전국을 통일할 발판을 마련해줬지만, 무자비한 처벌을 한 터라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러서 거열당한 뒤엔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다투면서 그의 살을 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로 반란을 꾀한 역적을 처형할 때 쓰이며, 동양권은 물론 유럽에도 마녀이단, 반역자 등 중죄인을 처형할 때 비슷한 방법을 썼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루이 15세의 암살 미수범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앵이 말 3마리에 묶여 처형당한 장면은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미셸 푸코의 대표 저작 <감시와 처벌>의 도입부에 전근대의 대표적인 형벌로써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잔혹함 때문에 공개처형의 한 방법으로 쓰이기도 했다.

사실 고대 기준으로도 너무 잔인한 처벌이라 춘추전국시대 지식인들도 거열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며, 중국에서는 978년 요나라에서 평왕의 아들 진가가 부왕을 살해하려다 거열형에 처해진 후에는 공식 형벌로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2]

3. 한국사에서

한국사에서 기록 상 나타나는 최초 집행은 통일신라시대에 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로 유명한 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 시절 반란을 일으켰던 이찬 근종이 거열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이 형벌이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 시대로 알려져 있다. 간혹 능지처참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른 형벌이다. 사극 '왕과 비'에서 능지처참을 한다고 해 놓고서는 거열형을 하는 장면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런 오개념을 더 키웠다. 그리고 다른 사극에서도 거열형을 시전하는 장면이 '능지처참/능지형'이라는 이름 하에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3]

실록에 보면 능지형을 했다는 구절이 있지만, 실제로는 거열로 보이고 태종황희의 대사에서도 조선에서는 거열로 능지를 대신한다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능지형이 너무 비인간적이고 잔인하여 거열형으로 대체하여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조 때 사육신 및 그 공범자들에 대한 처벌에 대해 '죄응능지처사'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거열형을 하고 효수를 부가했다고 하니 조선시대에는 능지처참을 거열형으로 집행한 것이 맞는듯 하다. 거열과 능지가 서로 다른 형벌이라고 어느 정도 알려진 게 오히려 21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즉, 사극에 나오는 그 장면이 고증오류는 아니란 소리.

거열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은 사람은 《왕과 비》79회와 176회를 보길 바란다. 제국의 아침 93화에서도 효은태자가 이렇게 죽었고, 불멸의 이순신 38화에서 사화동이 이렇게 죽는데 죽는 모습만 안 나올 뿐 꽤 리얼하다. 과거 사극 《황진이[4]와 《대왕 세종[5]에서도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미수에 그친다. 특히 위의 영화 혈의 누(영화)에서는 제대로 우마를 동원해 천호진이 맡은 강객주가 끔찍한 모습으로 처형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온다.[6] 이밖에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 1회에도 등장했다.

4. 서양에서

프랑스에서도 시행되었으며, 루이 13세 시대에 행해진 처형에 대해 세밀한 묘사가 남아있다. 소 대신 말을 쓴 게 동아시아와 다를 뿐.

영국에서는 교수척장분지형(Hanged, drawn and quartered)[7]이라 하여 남성 대역죄인[8]에게 가해지는 극형이었다. 이 형벌을 받은 대표적인 예가 윌리엄 월레스, 그리고 가이 포크스와 영국 상원의회 폭약 테러 주동자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교수척장분지형은 거열형 단독이 아니라, 우선 죽지 않을 정도로 교수형(Hang)에 처하다가 내려서 반드시 산 상태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draw) 뒤, 이후 목을 베고 사지를 자른(quarter) 후에 효수하는 형벌이다. 13세기부터 시행된 기록이 있는 유서깊은 형벌로 1814년에는 법이 개정되어서 교수형 단계에서 완전히 죄인을 죽이고 이후 시신 훼손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법제상으로는 1870년까지 남아있었다.

그 외에도 racks(랙스)라고 거열형과 비슷하게 줄로 사지를 묶어 잡아당기는 틀을 애용했다. 양쪽에서 바퀴를 돌리면 점점 밧줄이 감겨 팽팽해지는 방식이다. 다만 이쪽은 사형법이 아니라 고문의 일종이었으므로 사지가 찢길 때까지 늘이지는 않았다.

그 외에 남아시아, 페르시아, 신성로마제국러시아세계의 여러 문화권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존재해 왔으나, 밧줄로 사지를 묶어 찢어버린다는 형식은 공유되었다. 영어판 위키백과에서는 'Dismemberment'라는 용어로 총칭하며, 'Quartering'이란 단어도 쓰인다.

5. 거열로 처형된 사람들[9]

  • 강상인: 태종~세종 대의 무신으로 30년이나 태종을 모셔온 원종공신이었는데 세종 즉위 후에 태종이 군사일은 자신이 보겠다고 했음에도 강상인은 상왕 태종보단 금상인 세종에게 우선적으로 군사일을 보고했고 이게 빌미가 되어 관노로 몰락하는 신세에 놓인다. 그런데 태종이 심온 역모 사건을 조작하여 일을 확대시키자 다시 끌려와서 네차례나 압슬형을 당하고는 심온, 심정, 박습, 이관과 논의하여 나랏일은 한 군데에서 명이 내려오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짓진술을 한 뒤 거열형에 처해졌다. 최후를 맞을 때 유언은 "난 죄가 없는데 매를 견디지 못해 죽는다!"라고 절규했다.
  • 걸복공부: 서진의 인물.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자신의 숙부 걸복건귀와 그 자식들 10여명을 죽이고 대하(大夏)로 가 거병했다. 하지만 세자 걸복치반이 보낸 걸복지달에게 패배 후 사로잡혀 도성 담교로 압송된 뒤, 그곳에서 거열형으로 사망했다.
  • 곡사정
  • 근종: 한국사에서 기록 상 확인되는 최초의 거열형 처형자. 남북국시대 경문왕 치세에 이찬 벼슬이었는데,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거열형을 받았다. 관련 기록에서 새로운 형벌이라는 식의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이전에도 거열형이 실시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확인 가능한 기록 상으로는 이보다 오래된 것이 없다.
  • 김백함: 광해군봉산옥사가 터지자 엉뚱하게 8도 반란군의 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끌려왔다. 명백하게 자신의 무죄를 강변했다가 끝내 매를 견디지 못하고 사이가 나빴던 사람들의 이름을 대며 자신과 같이 역모를 꾀했다고 한 다음에 "나라가 나한테 속았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졌다.
  • 김옥균: 청나라 상하이에서 홍종우에게 총으로 암살당한 뒤, 그 시신이 본국으로 송환되어 거열 및 효수되었다.
  • 김일손
  • 김직재, 김백함, 황보신
  • 남공언
  • 남이 외 8명: 남이의 옥사로 죽었다.
  • 내은가이
  • 노애: 진시황의 모후인 조희와의 그렇고 그런 관계가 들통난 데다 진시황을 몰아낼 음모까지 꾸몄다.
  •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앵: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 암살 미수범. 프랑수아 라바이약과 비슷한 방식으로 처형됐다.
  • 미하우 피에카르스키: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3세 바사 암살 미수범. 프랑수아 라바이약과 비슷한 방식으로 고문당한 후 처형되었다.
  • 박두언
  • 사육신: 단종복위운동으로 처형되었다.
  • 상앙
  • 소진: 정확히는 사후에 시신을 거열하는 육시형에 처해진 건데, 본인이 자청한 특이 케이스. 자객에게 공격을 당해 부상을 입고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왕에게 자신이 죽으면 반역죄를 씌워서 육시형에 처하라고 부탁했다. 왕은 그의 유언대로 소진의 시신을 거열형에 처한 뒤 반역자 소진을 죽인 자에게 상을 주겠다고 언플을 시전했고, 과연 포상을 바라고 나타난 자객은 물론 그를 사주한 배후까지 걸려들어 둘 다 끔살당했다.
  • 숙영, 설향: 희빈 장씨의 시녀로 인현왕후를 저주했다 발각되어 고문 당한 끝에 거열형에 처해진다. 특히 설향은 당시 몸이 아픈 상태에 고문까지 당해 위독했기에 자백한 죄인이 자연사로 죽으면 안된다는 숙종의 특명에 의해 다른 죄인보다 앞서 거열형을 당했다.
  • 숙정: 장희재의 첩[10]으로 희빈 장씨의 궁녀 숙영, 설향 등과 더불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 발각되어 압슬형을 당하고 자백한 후 거열형에 처해진다. 사극에서는 참형당하는걸로 묘사되지만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분명히 능지처참 즉 조선에서는 거열형으로 대체되는 그 형벌을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수한 뒤 시신을 거열했다는 얘기.
  • 심기원: 역모를 꾸미다 발각되어 거열형에 처해졌다. 청성잡기에 의하면 이때 김자점이 사형집행관에게 처형방법을 물었는데 참수 후 사지를 찢는다고 하자 반대로 사지를 찢은 후 참수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들은 심기원이 너도 똑같이 죽을 것이라고 했고 이후 김자점도 역모를 꾸미다 같은 형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열형을 당하지 않았고 국법에 따라 참형되었다.
  • 양국충: 안사의 난에 대한 피난 과정에서 자신의 일족들 및 황제 현종만을 데리고 갔으며 이에 불만을 품은 진현례와 그의 군사들에게 결국 처형당하고 시신이 거열된 뒤 효수되었다.
  • 영이: 조선 인조의 후궁 귀인 조씨의 딸 효명옹주의 여종이자 귀인 조씨의 아들 숭선군의 첩이다. 귀인 조씨의 명으로 장렬왕후를 저주했다가 발각되어 형신 끝에 모든걸 자복해 김자점의 옥이 발생하는 시발점을 만들었으며 결국 군기시에서 거열형에 처해진다.
  •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 이괄: 부하였던 기익헌, 이수백에게 피살되었기 때문에, 시신만 거열형이 집행되었다.
  • 이홍윤: 명종충주의 대유학자인 이약빙의 아들. 윤임이 역모에 휘말려 사사되자 불측한 모의를 했다고 하며 그의 이복형 이홍남이 이를 수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고변했고 명종 시대 최대의 옥사인 이홍윤의 옥사가 밝혀짐에 따라 그의 친구 십여명과 함께 사형당했다.
  • 이시애: 유명한 이시애의 난의 주모자. 난의 대세가 기울자 달아났지만 그의 부하들에게 잡혀 구성군에게 넘겨졌고 한양이 아니라 함경도에서 바로 사형이 집행됐다.
  • 이인좌: 이인좌의 난의 주모자. 진압군 사령관 오명항에게 잡혔는데, 영조의 지시로 한양으로 압송되어 심문 후 사형이 집행되었다.
  • 양적선
  • 양헌
  • 애향: 조선 인조의 총애를 받던 상궁 이씨의 하녀. 인조의 관심이 점차 귀인 조씨에게로 향하자 상궁 이씨가 이를 투기해 애향을 시켜 귀인 조씨를 저주했다 발각되었고 애향은 군기시에서 거열형에 처해지고 상궁 이씨는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다만 이 사건은 귀인 조씨가 반대로 상궁 이씨를 제거하기위해 조작했다는 설도 있다.[11]
  • 위복사
  • 이고리 류리코비치: 키예프 루스의 대공으로, 이웃 부족인 드레블랴인들에게 공물을 삥 뜯으러 갔다가 붙잡혀 어린 나무 두 그루를 휘어서 양쪽에 각각 발을 묶은 뒤 놓아버리는 식으로 끔살당했다. 거열 집행에는 보통 동물을 사용하는데 식물의 탄성을 이용해 처형된 특이한 사례.(테세우스가 쓰러트린 시니스라는 도적의 방식과 비슷하다) 그 처형자들의 운명은 후임 대공의 섭정이자 이고르의 아내인 키예프의 올가 문서로.
  • 임희재 - 임사홍의 2남, 연산군의 폭정을 비난하자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왕에게 고발하여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임희재는 무오사화에서 찍힌 바 있어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 전향, 수근비: 연산군 시절의 궁녀들로 장녹수의 모함을 받아 두 사람 모두 장형 80대를 맞고 유배된 후 거열된다. 그후 사지가 분리된 시체가 전국에 순회공연 당하듯 전시되는 수모까지 겪는다.
  • 정여립: 정여립의 난으로 자결한 후 육시에 처해졌다. 이 때 김빙이란 이도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는 바람이 불면 눈물을 흘리는 병에 걸려 있었는데 마침 육시형에 처해질 때 바람이 불어 눈물을 흘렀고 그래서 역적이 형벌을 받는데 눈물을 흘리는거 보니 수상하다는 논리로 죽어야 했다.
  • 탁발근 : 의 왕족. 반란을 일으켜 나라 멸망의 원흉이 되었고, 함께 반란했던 사촌형 탁발식군과 함께 장안에서 거열형당했다.
  • 프랑수아 라바이약: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의 암살범. 모진 고문을 받고서도 자신의 단독범행이라고 끝까지 주장했으며, 능지형을 먼저 당한 후 거열형으로 공개처형되었다.
  • 허균
  • 허견: 효종, 현종, 숙종 대의 영의정허적의 서자. 허적이 유일하게 본 아들이라 서자임에도 매우 총애했으며 이로 인해 유부녀를 납치해서 능욕하고 남편을 협박하여 격쟁하게 만드는 등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나중에 복평군과 모의하여 역모를 꾀하다가 김석주에게 발각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아버지인 허적도 사약을 받았다.
  • 최만생: 공민왕이 총애하던 환관으로 밑에서 서술한 홍륜과 공민왕을 시해했다. 하지만 이인임에게 조사받고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 결국 거열형에 처해졌다.
  • 홍총각: 홍경래의 난이 터졌을 때 홍경래 군의 선봉장. 정주성 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조사를 받은 다음 참수한 뒤 시신이 거열되었다. 그가 사형당한 후에 정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허항의 아들과 부인이 그의 시체에서 간을 끄집어 낸 다음에 허항의 제삿상에 올렸다. 그 뒤 허항의 부인은 곡기를 끊고 남편의 뒤를 따르면서 순조에게 치하받았다.
  • 황사영
  • 홍륜: 자제위의 수장으로 공민왕을 시해한 뒤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다만 홍륜도 가만히 있다간 공민왕에게 죽을게 뻔해서 어쩔 수 없기는 했다.

6. 거열이 표현된 콘텐츠

7. 기타

가시개미개미들은 자신들을 습격한 곤충들을 상대로 거열형으로 맞선다고 한다. 적대적 곤충을 마비시킨 후 팔과 다리를 잡아당긴다.

8. 관련 문서


[1] 신체 구조상 무릎 관절보단 고관절 부분이 훨씬 깊고 단단히 붙어있기 때문이다.[2] 그러나 능지형과 박피형은 계속 쓰였다.[3] 영화 혈의 누에서도 능지처참을 한다고 해 놓고 거열형을 집행했다.[4] 김정한을 거열하려 했으나 황진이의 춤을 보고 마음을 바꾼 중종 덕분에 살아났다.[5] 대마도에서 온 첩자 평도전을 잡아다가 거열하려 했으나, 막 당기려던 순간 황희 덕분에 간신히 살았다.[6] 다른 예시들과는 달리 실제로 사람의 사지가 찢어진다.[7] 한국어판 브리태니커에서는 drawn and quartered를 '마예4열형(馬四列刑)'이라 번역했다.[8] 여성의 경우 화형에 처해졌다.[9] 사후 거열도 포함.[10] 첩이라지만 실상은 정실부인에 가까웠는데 장희재는 원래 아내는 내버려두고 숙정을 정실부인처럼 아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장희재의 처가 복수로 이 둘은 물론 남인들이 한 짓을 죄다 까발려서 죽게 되었다.[11] 귀인 조씨의 일대기를 다룬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에서는 애향이 귀인 조씨에게 맞아 죽는 걸로 각색되었다. 애초에 후궁이 추국 죄인을 멋대로 때려죽였다는 점에서 개연성을 상실한 장면이다.[12] 드라마에선 오토바이로 당하고 실제로는 랜드 크루저로 당했다고 한다.[13] 남자들이 모여드는데는 죄인은 무조건 벌거벗기고 죽였다는 것도 컷다. 여자라고 대우는 다를 거 없다. 관리의 강간은 덤.[14] "Hanged, drawn, and quartered"라 불리는 영국의 유서 깊은(?) 대역죄인 처형 방식이다. 교수척장분지형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일단 목을 메달았다가(hanged - 교수) 내려서 눕혀놓고, 배를 갈라서 뱃속의 장기들과 성기를 꺼내서(drawn - 척장) 희생자가 보는 앞에서 태운 뒤, 목을 치고 사지를 분해(quartered - 분지)해서 도시(또는 죄질이 크면 전국)의 네 모퉁이에 보내서 효수했다. 신체가 뜯어질 때까지 잡아당기는 것은 아니므로 엄밀히 따지면 거열형과는 다르지만, 목적이나 일부 집행 방식이 매우 유사하다.[15] 이 부분은 베트남의 비슷한 이야기인 "땀과 깜 이야기" 가 와전된 듯하다. 베트남은 물고기로 젓을 만들기 때문에 젓국물만 먹는다. 따라서 팥쥐에 해당하는 깜의 어머니가 먹은 느억맘 이 깜의 시체로 만든 것이니 이야기가 이루어지지만, 한국에서는 육고기로 젓을 만드는 풍습이 거의 없다. 콩쥐팥쥐 원본에는 거열 및 그 후 젓갈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엄연히 육고기로 젓갈을 만든 역사가 있다. 대역죄인이나 천륜을 거스른 범인을 처형한 후 육신을 찢어 팔다리, 내장을 분리해 팔도로 순회 전시시킬 때에 소금에 절여 독에 담아 보냈는데, 결과적으로 젓갈이 되기는 하나 이 경우는 식용이 아니라 방부 처리를 한 것이다.중국에서 흔했던 처형 방법이니 한국에 알려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16] 로고의 모양이 거열형의 모습과 비슷해서 짤방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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