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16:21:08

조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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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송신영 · 91 이승호 · 98 배영수'''
2군
'''70 손시헌 [[감독#s-1.1|
]] · 73 오준혁 · 75 김이슬 · 80 와타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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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군
78 이윤재 · 81 양지훈 · 87 정진식
컨디셔닝 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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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섬(임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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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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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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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1986)
성기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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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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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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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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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강병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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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998)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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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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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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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1)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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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감독 대행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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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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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대행
김용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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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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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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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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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1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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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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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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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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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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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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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20대부터 22대까지는 총괄코치 직함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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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우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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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6번}}}
최해명
(1992.5.7.~1993)
<colbgcolor=#000000> 조원우
(1994~1999)
팀 해체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36번}}}
팀 창단 조원우
(2000~2001)
곽국희
(2002~2003)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9번}}}
곽국희
(2001)
조원우
(2002~2005.6.2.)
조영민
(2005.6.3.~2006)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27번}}}
조영민
(2005~2005.6.2.)
조원우
(2005.6.3.~2008)
디아즈
(2009~2009.7.7.)
{{{#fff [[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88번}}}
김종수
(1989~1995)
조원우
(2009)
데폴라
(2011)
{{{#fff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4번}}}
매클레리
(2008)
조원우
(2011~2012)
정민태
(2013~2014)
{{{#fff [[두산 베어스|두산 베어스]] 등번호 78번}}}
고정식
(2012)
조원우
(2013)
최해명
(2014~2020)
{{{#fff [[SK 와이번스|SK 와이번스]] 등번호 74번}}}
조웅천
(2011~2013)
조원우
(2014~2015)
박진만
(2016)
{{{#fff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4번}}}
서한규
(2015)
조원우
(2016~2018)
최기문
(2019)
{{{#fff [[SSG 랜더스|SSG 랜더스]] 등번호 74번}}}
최상덕
(2017~2020)
조원우
(2021~ )
현역
}}} ||
}}} ||
<colbgcolor=#ce0e2d><colcolor=#ffffff> SSG 랜더스 No.74
조원우
趙原佑 | Cho Wonwoo
출생 1971년 4월 8일 ([age(1971-04-08)]세)
부산직할시 동래구
(現 부산광역시 수영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부산수영초 - 부산중 - 부산고 - 고려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4년 2차 5라운드 (전체 34번,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4~1999)
SK 와이번스 (2000~2005)
한화 이글스 (2005~2008)
지도자 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 (2009)
치바 롯데 마린즈 연수코치 (2010)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1~2012)
두산 베어스 1군 수비코치 (2013)
SK 와이번스 1군 주루코치 (2014)
SK 와이번스 1군 수비·주루코치 (2015)[1]
SK 와이번스 1군 작전·주루코치 (2015)[2]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5)[3]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6~2018)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연수코치 (2019)
SSG 랜더스 2군 감독 (2021)
SSG 랜더스 1군 벤치코치 (2021~2022)[4]
SSG 랜더스 1군 수석코치 (2023)
SSG 랜더스 1군 벤치코치 (2024~)
병역 전시근로역[5]
응원가 SK 시절: 소방차 - 어젯밤 이야기[6][7]
한화 시절: 동요 《금강산》[8]
가족 부인 황미화[9], 아들
파일:SSG 랜더스 홈페이지 로고.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쌍방울 레이더스2.3. SK 와이번스 시절2.4. FA2.5. 한화 이글스 시절2.6. 총평
3. 지도자 경력4. 감독으로서의 평가5. 기타6. 연도별 성적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소속의 외야수이자 現 SSG 랜더스 벤치코치.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을 맡기도 했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부산 출신의 선수로, 수영초-부산중-부산고를 졸업하고[10] 동기 강상수와 함께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했다. 고려대 체육교육학과 재학 시절에도 임수혁, 마해영, 강상수[11], 박정혁[12], 심재학, 조경환 등과 함께 1990년대 고려대학교의 불과 같다고 표현되던 극강의 타선에 일익을 담당하던 선수였다.

2.2. 쌍방울 레이더스

파일:/image/295/2010/01/10/13.jpg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파일:CWW1.png
1999년 쌍방울 시절 그의 모습[13]
복도에선 김 감독이 조원우를 붙잡고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LG 3차전 노아웃 상황에서 2루로 나간 조원우가 왜 도루를 하지 않았는지. 싸인을 기다렸던 것인지. 거기가 그날 승부처였던 것이다. - 방송 내용 중
파일:CWW2.png
사진에서 왼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조원우[14]

이후 1994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5순위(전체 34번)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15]

조원우의 부친은 육상선수 출신이었고, 그래서인지 조원우 역시 발이 빠른 편이었는데[16] 이 덕에 쌍방울 시절에는 1번 내지는 3번타자로 활약했다. 쌍방울의 전성기였던 1996년~1997년에는 상위타선에 발 빠르고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 최태원김실이 있었고 이어 조원우-김기태-심성보-박경완에 이르는 클린업이 포진됐다. 그야말로 장타와 단타가 연속적으로 터져서 상대를 공포로 몰아넣는 타선 구축이 가능했던 것.

1997년과 1998년에는 연속 3할을 기록했으며, 1997년에는 3루타왕(9개),[17] 1998년에는 홈런 12개를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도 있던 선수다. 특히 1997년에는 팀이 타율/출루율/장타율은 해태를 넘어선 2위를 기록했는데,[18] 그 중심에서는 조원우가 있었다. 97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김태한을 상대로 선두타자 홈런을 때려내며 큰 경기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해 비록 쌍방울은 삼성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지만, 그의 한방으로 쌍방울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불태울 수 있었다.

1998년에는 149안타로 최다 안타 부문 2위에 오르기도 했고 유일하게 그 해에 두자리수 홈런(12홈런)을 기록했으며, 또한 희생타 1위(39개)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큰 기대를 가지고 0.314로 고감도 타격을 보여주던 1999년 5월, 주간 수비 훈련 도중 공을 잘못 밟아 왼쪽 고관절 인대에 부상을 입었고 시즌 아웃되었다.[19] 이 부상으로 인해 군면제 처리됐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으며 이후 조원우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다른 팀에는 주간에 이런 무리한 훈련을 실시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지옥훈련으로 유명한 김성근은 체력 저하 및 부상 우려 논란에도 경기 시작 전까지 이런 훈련을 지속했었다.역시 킬성근

2.3.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image/100/2013/12/18/coming201312181434141_59_20131218143603.jpg

조원우가 재활을 하는 동안 쌍방울은 재정난 끝에 해체되었고 그 선수단을 이어받아 2000년 SK 와이번스가 창단되어 SK의 창단멤버가 되었다. 2000년 부상에서 복귀했으나, 부상 직전 리그 수위급 타자의 기량을 결코 회복하지 못했고 은퇴할 때까지 나머지 9시즌 동안 2할대의 평범한 타자에 머물고 말았다.

SK 와이번스로 인계되어 첫 시즌을 마친 2000년에 공인회계사인 황미화[20] 씨와 결혼했다.[21]
2003년부터 타격감을 다시 되찾기 시작하였고 그해 SK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프로 데뷔 첫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게 되나, 팀은 준우승에 그쳤다.

2004년에는 등장곡으로 숫자송을 사용했는데 시즌 중후반엔 응원가 원곡이기도 한 '어제밤 이야기'로 등장곡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 시즌에는 주장도 겸했었다.

2.4. FA

2004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어 FA를 행사하였으며 4년간 17억 5천만원의 조건을 요구하여 원 소속팀 SK와 이견을 보인 끝에 시장에 나왔고, 김재현을 놓친 LG 트윈스정수근의 이적 이후 외야요원의 공백을 메꾸는데 실패했던 두산 베어스 등에서 조원우를 노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요구조건이 너무 셌던 탓인지 다른 팀과 계약을 하지 못한 채 2005년 1월까지 FA 미아로 남아있다가 결국 원 소속 팀 SK와 계약 기간 2년 총액 4억 5천만원에 계약하였다.

2.5.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image/109/2007/05/20/200705201826101101_1.jpg파일:/image/117/2005/08/24/200508241547460400_1.jpg
한화 이글스 시절 그의 특유의 타격폼

FA 과정에서 미운 털이 박힌 탓인지, 외야진의 핵이었던 채종범이 병풍으로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드로 영입된 박재홍이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다. 여기에 좌익수 자리마저 군에서 제대하고 합류한 조동화가 차지하며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다가 2005년 시즌 중 투수 조영민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당시 1971년생과 1981년생의 트레이드였기에 많은 반발이 있었으나, 조원우가 연일 불꽃타를 휘두르면서 여론을 잠재웠다. 시즌 후반에는 규정타석을 채우며 막판까지 이병규, 김재현과 함께 타격왕 경쟁을 하기도 하였다.[22] 분위기를 탄 한화는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고[23] 조원우는 친정팀 SK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맹타[24]를 휘두르면서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이끌었다.

이후 2006년과 2007년에도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주전 좌익수로서 활약하였지만, 2005년의 모습같지는 않았으며 배트 스피드가 눈에 띄게 느려져 빗맞는 타구, 특히 수직으로 높이 뻗기만 하는 내야 플라이를 대거 양산하였고 이를 본 한화 팬들은 로켓타구만 날린다하며 조로켓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1군 5경기 출전에 머물렀고 동년 10월에 결국 방출되었다.

2.6. 총평

15년 동안 1,368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282, 68홈런, 443타점, 123도루를 기록했다.

커리어 최다 홈런이 12홈런으로 거포 스타일도 아니며 도루도 20개를 넘긴적이 한 번 뿐이라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준족도 아니였지만 2루타와 도루는 매 시즌 어느정도는 기록하였고, 타율 또한 2할 7푼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교타형 타자였다.

이것만 보면 그저 그런 선수시절을 보냈다고 생각 할수 있지만, 조원우에게는 세계 1위의 대기록이 하나 있는데 '외야수 부문 연속 경기 무실책 기록'이다. 총 494경기 연속 무실책[25] 을 기록하였으며 2001년 7월 5일 청주 한화전을 시작으로 이어진 이 기록은 팀을 한화로 옮긴 후인 2006년 5월 23일 대전 삼성전에서의 중계플레이 실책을 범하면서 마감했다. 한화 시절에는 실책이 나올 플레이를 안 해서 실책이 없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야 수비에 능통했던 것은 사실이다.

3.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조원우/지도자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감독으로서의 평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조원우/평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기타

  • 최초의 1970년대생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 이상하게도 컴투스 프로야구 2013에서는 조원우98카드가 SK 레전드 카드가 아닌 한화 레전드 카드로 되어 있다.
  • 가수 하청일[26], 소방차의 멤버 정원관과 2명의 얼굴이 닮았으며, 전직 은퇴한 쌍방울 시절 우완투수 신영균과 약간 얼굴이 닮았다.
  • 현역 시절 그의 대표적인 별명은 돌격대장. 쌍방울 레이더스 타선의 주축이자, 이후 4번타자 김기태 등으로 이어지는 쌍방울 득점라인의 선두였기 때문에 팀명의 별명인 '돌격대'에서 따온 별명이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조로켓이라는 별명도 얻었다.[27]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 되고나서는 돌머리라는 뜻의 조석두로 자주 불린다. 잘하는 날에는 보석두, 다이아몬두 등으로 불렸는데, 자기 이름 자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아이러니.
  • 현역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준우승은 SK 시절인 2003년, 한화 시절인 2006년에 2번이나 경험했고, 쌍방울-SK 시절 동료였던 김원형이 2007년 SK에서 첫 우승을 맛보면서 조원우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했다. 신의 허락 받지 못한 불운의 스타 4인방이었다. [28] 기사 그러다가 은퇴 후 SSG 벤치코치가 된 후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팀이 우승하며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해본다.
  • 여러모로 쌍방울 시절의 동료이자 친한 형인 김기태와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둘 다 쌍방울의 연고인 전북 지역이 아닌 타 지역 사람으로[29]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그 후 SK 와이번스에서 재회하게 된다.[30] 감독으로 임명될 당시 최연소 감독 타이틀을 얻은 것도 공통점.[31] 현역 시절에는 고향 연고지의 팀에서 뛰지 못하였지만 감독 시절에는 고향 연고지 팀의 감독을 맡은 것, 감독에서 물러난 뒤 해외에 있다가 다시 코치로 지도자 커리어를 이어나간 것, 그리고 둘 다 현역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다가 지도자가 된 뒤에야 우승을 경험해 본 것이 공통점이다. 둘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현역 선수시절 조원우는 수비 능력이 좋고 주력이 준수한 교타형 타자였다면 김기태는 장타력이 월등했다는 점.
  • 도전 골든벨 쌍둥이 2명 동시 최초 울리기 방송하기 2주일 전 261회 전 경남 김해고 편 45대 배순영(안경 쓴 학생), 327회 경북 칠곡군 순심고- 순심여고(2학교 이상) 중 2명 동시 도전 중 1명이 울린 56대 윤문열 남학생이 2명의 닮은 얼굴이 닮았다.
  • 롯데 자이언츠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한동안 근황이 전해지지 않다가, 2019년 3월 28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난다는 기사가 나왔다.#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연수를 받은 것에 이어 2번째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며, 트레이 힐만류현진의 주선을 받아 성사됐다고 한다.

6.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쌍방울 86 223 .274 61 5 1 4 13 26 15 13 .359 .312
1995 38 87 .230 20 5 1 1 7 14 3 5 .345 .272
1996 122 284 .268 76 7 1 2 29 39 8 27 .320 .328
1997 126 424 .321
(8위)
136
(8위)
18 9
(1위)
5 49 61 15 26 .441 .355
1998 126 479 .311
(6위)
149
(2위)
20 4
(8위)
12 62 80
(6위)
23
(7위)
42 .445 .365
1999 47 188 .314 59 9 2 6 22 25 11 13 .479 .358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SK 29 77 .221 17 0 0 1 10 5 0 6 .260 .267
2001 111 307 .244 75 15 1 7 39 43 7 46 .368 .339
2002 116 297 .269 80 8 2 8 36 42 4 23 .391 .320
2003 128 452 .281 127 18 0 8 48 65 13 49 .374 .349
2004 119 386 .277 107 17 2 3 35 59 5 53 .355 .361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한화 95 351 .302
(9위)
106 17 1 6 42 43 7 35 .407 .362
2006 106 341 .267 91 10 0 1 25 48 6 35 .305 .332
2007 114 319 .266 85 15 1 4 26 36 6 30 .357 .329
2008 5 5 .200 1 0 0 0 0 0 0 0 .200 .200
KBO 통산
(15시즌)
1368 4220 .282 1190 164 25 68 443 586 123 403 .381 .342

7. 관련 문서



[1] ~6월 4일[2] 6월 5일~8월 14일[3] 8월 15일~[4] 2022년 4월 26일부터 1군 엔트리에서 제외 후 미등록 코치 신분이었다가 9월 20일 1군 엔트리 등록. 상세 내용은 조원우/지도자 경력 하단 참고[5] 왼쪽 고관절 부상[6] (어젯밤엔 난 네가 미워졌어) 안타! 조원우! (어젯밤엔 난 네가 싫어졌어) 안타! 조원우! (빙글빙글 돌아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 혼자 가슴 아팠지) 안타! 조원우![7] 훗날 조동화가 이 응원가를 물려받았다.[8] 조원우 날려버려 안타조원우~ 조원우 날려버려 안타조원우~ 안!타! 조원우! (X2)[9] 2000년 시즌을 마치고 같은 해 연말 공인회계사와 결혼했다. #[10] 고등학교까지의 학력으로 보면 추신수의 직계 선배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2021년부터 SSG 랜더스에서 코치와 선수로 한 팀이 되었다.[11] 아마추어 시절엔 타자로써의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 롯데가 지명할 때도 투수가 아닌 내야수로 지명했으나 팀 사정 탓에 투수로 전향하게 됐다.[12] 휘문고 재학 시절 박찬호에게 3연타수 홈런을 친 것을 포함해 4연타수 홈런을 쳤던 초고교급 강타자였다. 그러나 고려대 진학 후 2학년 때 선배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던 중 팔꿈치를 크게 다친 뒤 선수 생명에 위기가 찾아왔고 결국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했다. 우여곡절 끝에 연습생 신분으로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은퇴한 비운의 선수. 은퇴 후에는 스포츠 에이전시 관련 사업을 준비하다가 1999년 12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29세. 생전에 고려대 90학번 동기였던 조원우와 친분이 두터웠고 그 외 출신학교는 달랐지만 같은 90학번이던 서용빈과도 친했다. 박정혁의 부고를 동기들에게 전한 사람도 조원우였다고 한다.[13]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김성근 감독과 대화하는 모습이다. 영상 속 37분 20초부터 그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14] 오른쪽은 김성래 전 한화 2군 타격코치. 말년에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쌍방울에서 뛰었다.[15] 1994 드래프트에서 쌍방울이 유일하게 건진 선수가 조원우 한 명이다...[16] 빠른 발과 정확한 컨택 능력을 생각한다면 2번 타순에 기용하는 것이 적당하나 나름 클러치 능력도 있어 주로 6번 타순에 기용됐다. 1번 타자로 출전한 적도 적지 않다.[17] 3루타는 타자주자의 주력도 관건이지만 야구장의 크기와 수비하는 외야수의 상황 등이 영향을 미치는 기록이다. 쌍방울의 홈이었던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은 좌우 95m-중간 110m 규모의 매우 작은 야구장이었는데 이 작은 구장에서도 3루타를 곧잘 때려냈다는 것은 그만큼 컨택 능력이 좋고 발이 빠르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다.[18] 팀 득점과 홈런에서는 해태에 밀린 3위를 기록했다.[19] 전년도에 트레이드로 팀을 떠난 김기태와 당뇨병을 앓고 있었던 심성보가 모두 이탈한 타선에 조원우마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쌍방울 입장에서는 큰 악재였다. 거기에 주축 투수인 김원형까지 장종훈의 타구가 얼굴을 정면 강타해 시즌 아웃되자 쌍방울은 완벽히 환승역 없는 8호선 신세가 된다.[20] 이화여대 경영학 91학번-95년 졸업[21] 결혼 후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에서 신접 살립을 차려 거주했으나, 그 후 큰 딸을 낳은 후 3년 후 2004년 8월 31일 건강한 아들을 낳아. 아내는 이날 부천의 순천향대학병원에서 2.9㎏의 아이를 낳았다. 큰딸에 이어 둘째아들을 낳은것[22] 그해 타격왕은 결국 이병규가 차지하였다.[23] 2001년 이후 4년만[24] 21타수 9안타, OPS 1.097[25] 메이저리그의 경우는 대런 루이스의 392경기가 최다 기록이며, KBO 리그의 종전 기록은 김종모의 265경기였다.[26] 서수남과 호흡함[27] 다만 이는 긍정적인 별명이 아니다. 노쇠화로 인해 배트 스피드가 느려지면서 늘 로켓같이 붕 뜨는 내야 플라이 타구를 날린다 하여 붙은 별명.[28] 좌투수 2명 주형광, 최창호, 좌타자 김기태 등 포함한 4인방이었다.[29] 조원우는 그나마 1969년 7월 7일생의 김기태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신인지라, 호남 지역 사람은 맞다.[30] 쌍방울 해체 후 선수단을 이어받아 창단한 SK의 창단 멤버이고, 김기태는 쌍방울 시절 트레이드로 삼성에 이적했다가 이후 SK로 재트레이드되어 재회하게 되었다.[31] 김기태는 2012년 LG의 감독으로 부임할 당시 43세였으며, 조원우는 2016년 45세의 나이로 롯데 감독 자리에 올랐다.